우리나라 연극계 두 노장의 마지막 무대라고 하길래, 또 까마득한 옛날 봤던 연극을 다시 보는 것 역시 의미있다 싶어 예매했다. 이정희 교수도 마침 보고 싶었던 참이라며 함께 했다. 막이 오르면 그다지 크지도 높지도 않은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무대 뒤에 서 있고, 앞쪽엔 넓지 않으나 두 사람 정도가 앉을 만한 낮고 평평한 돌 하나가 있다. 그 돌에 앉아 불편한 신발을 벗으려 애쓰는 주인공. 그렇게 시작하는 연극은 거의 50년 전 대학생 시절에 봤던 ‘고도를 기다리며’와 똑같았다. 똑같은 건 그것뿐이었다. 그 옛날 탐구심과 지적 욕구도 왕성했던 대학생 때, 연극을 본 후 뭔가 아는 척하고 싶었지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던 연극이었던 기억밖에 없다. 하긴 은사이신 김춘수 선생님께 무의미시를 배우면서도 그 의미를 몰랐던 때였으니 부조리 연극이라고 한 이 작품을 이해하긴 어려운 젊음이었으리라. 하니 이 연극을 볼 거라는 나에게 남편도 ‘재미없는 걸 왜 보는데’ 했고 나는 ‘그러니 지금은 어떨지’ 대꾸했다.
두 주인공의 대사는 말 그대로 동문서답이 대부분이다. 대화를 하지만 그들은 각자가 지껄이고 싶은 걸 말한다. 서로 뭔가에 대해 묻지만 대답을 기대하지도 않고, 대답하지만 듣지도 않는 맥락없는 대화다. 잠시 뒤에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하는 대사가 또 오간다. 무엇인지 누구인지도 모를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나날이 무한 반복되는 듯한 2막의 연극을 숨죽여 웃으며 봤다. 그러면서 그들의 대사가 내겐 참으로 현실감 있었고 전혀 부조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로 어제의 경험이 자꾸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제, 손주 둘과 근처 공원에 갔다. 집에만 무료히 있느니 더워도 바깥에 나가 땀 흘리며 노는 게 나을 듯해서 제안했더니 둘 다 퀵보드를 타고 신나게 앞장섰다. 난 혼자 심심할 듯하여 강아지에 목줄 채워 데리고 나갔다.
따갑고 무더운 볕도 아랑곳 않고 퀵보드를 타는 아이들을 지켜볼 수 있는 그늘은 많지 않았다. 볕은 뜨겁고 오후의 그늘은 아직 길지 않았다. 나무 아래엔 이미 안늙은이 서넛이 앉아 있었지만 더위를 피할 곳은 그들 가까운 벤치밖에 없었다. 옆의 벤치에 앉고 강아지도 앉혔다. 자연스럽게 들려오는 그들의 대화를 의도치 않게 듣게 되었다. 잠시 후 한 분의 노인이 오시자 모두들 반가워하시길래 아는 분인가 보다 여겨 내 옆자리를 양보해 그들과 가까이 앉게 했다. 강아지에 시선을 주시며 고맙다고 하셨다. 한 분이 며칠 후의 자신 생일날 옆에 있는 분들을 초대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내 옆에 앉는 분에게도 그 얘기를 다시 시작했다. 또 한 분은 텀블러에 담아 온 커피를 옆자리의 노인에게 권했고 노인은 집에서 두 잔이나 마셨다며 사양했다. 그럼에도 서너 번을 더 커피를 권했고, 또 서너 번을 사양했다. 생일 초대의 노인은 작년의 생일을 장황하고 자랑스레 얘기하고 올해의 생일날 계획에 대해 또 말하기 시작했지만 그 말에 귀기울여 듣는 사람은 딱히 없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또 한 분의 노인이 휠체어를 능숙하게 몰며 벤치와 벤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고 커피를 권하던 노인은 또 커피를 권하고, 생일 초대의 노인은 또 생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제 다시 본 ‘고도를 기다리며’는 부조리극이 아니라 리얼리티 연극이었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