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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탁 시인의 “다음 김천 장날 또 바여”

등록일 2024-07-15 18:29 게재일 2024-07-1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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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경상북도 지역 방언은 의문형어미를 중심으로 3개 권역으로 나누어진다.

옛날 교통이 덜 발달되었을 때 낙동강을 중심으로 강 우측과 강 좌측으로 나누고, 또 태백산맥 끝자락이 경남으로 휘어지는 큰 산자락이 나뉘듯 3개 방언권이 나누어진다. 안동을 중심으로 경북북부권은 ‘-니껴’권이고 대구경주권은 ‘-능교’(-능게)권이다. 낙동강 우측 선산에서 김천, 의성 일부지역은 ‘-여’권으로 나누어진다. 경북은 경주와 상주가 경상좌우도로 나눠지기 이전 고대 신라의 웅혼한 고토여서 오늘날 한국어의 기반이자 뿌리를 이룬 지역이다.

경북방언은 악센트가 높고, 낮고 또 소리의 길이와 짧음이 아주 또렷하고 말씨는 왁자지껄한 느낌을 주어 투박하지만 그 자체에 리듬을 가지고 있다. 소리문법을 알아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지역보다 모음이 아주 단촐하다. 단모음 10개가 아닌 6개로 족하다. 모음이 적어도 악센트와 음장이 단어의 변별력을 높여주기에 의사소통에 전혀 불편하지 않다. “가가 가가가”, “운제요 나아 몬가니더”라는 말을 서울 사람들은 절대로 흉내 내지 못하며 그 의미도 읽을 수 없다. 경상도 깊은 산중의 오묘하고 심오한 말의 뜻을 전달하기 위한 오랜 전통과 역사가 악센트에 실려 있다. 또 말 수가 적은 경상도 사람들의 심성이 담겨 있다.

김천 출신 민경탁 시인이 사통팔달 경북 김천 시골 장터의 인심과 인정을 소복하게 시집에 담았다. “닷새마다 지례 5개 면에서/푸성귀, 과일, 알곡이 모여 듭니다/증산의 송이버섯, 대덕의 잡곡들/구성 양파 조마 감자 지례 마늘들/구름 타고 담쑥담쑥 모여 듭니다/장바닥에 엉기정기 들면/고등어 갈치는 부산에서/갈치젓은 제주, 목포에서/생굴은 통영에서, 멸치는 삼천포에서/새우젓은 추자도, 강화도에서/벌써 들어와 있습니다/“머라 캐여” “안 비싸여” “고마바여”/호박 같은 인심과 산꿀 같은 인정 버무려/지폐와 맞바꾸다 보면 해거름이 오죠/“또 다음 장날 바여”/파장하고 탁배기 한잔하면, 노을이 찾아옵니다/이때 우린 생선 사고 약 사 가지고/버스 타고 들어갑니다/“다음 장날 또 봐여(바여)”-‘달의 아버지’(‘황금알’, 2024)

교통이 발전되기 이전 태백준령의 산맥에 가로막힌 김천은 매우 깊은 산골이었다. 경부철도가 놓이고 경부고속도로가 터지면서 길을 가로막았던 높은 추풍령이 구름도 자고 가는 추풍령 휴게소가 되었고, 경남, 충청도, 전라도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가 되었다. 소설가 김주영과 송기원을 키운 것은 장터였다. 경북에 있는 객주는 김주영을, 전남 보성의 장터에서는 송기원을 낳고 키웠다. 이효석의‘메밀꽃 필 무렵’ 역시 장터가 배경이다. 사람들이 모였다 헤어지고 사람들 살아가는 삶의 정보를 서로 교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모일 때는 기쁘고 헤어질 때는 안타깝고 그립다. 장터란 바로 집산(集散)의 공간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그리움과 기다림의 미학의 장소이기도 하여 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소재가 된다.

민경탁 시인은 ‘달의 아버지’에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그렸다. 저녁노을 잔잔하게 퍼지는 서쪽하늘에 하얀 얼굴을 한 달님같은 아버지를 그리며 자식들을 먹여 키우기 위해 장터에서 장보는 아버지를 타자의 눈이 아닌 자신의 시각으로 그려내었다. 장터 풍경화에는 경상도 특유의 목소리가 그림처럼 펴져 있다. “머라 캐여”(뭐라고 합니까), “안 비싸여”(비사지 않아요), “고마바여”(고마워요) 아주 단호하고 칼로 자르는 듯한 토속적인 경상도의 심성이 울려난다. 구질구질하게 설명하거나 변명하지 않는다.

장터는 여러 지역의 물산들이 한 자리에 모여들 듯 장터 부근 골짝골짝 사람들이 장날이 되면 모여든다. 이웃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누구 집 아들 언제 장가보내고 어느 마실 어른 돌아가신 이야기며, 누구 집 아들 고등고시 되었고 누구 집 아들 유학 간 이야기며 기쁜 일 슬픈 일 함께 나누는 곳이 장터이다. 서녘 저녁노을이 물들면 파장이 된다. 서로 갈 길 다른 길을 떠난다.

고향의 추억과 기억들을 김천의 말씨로 호명해낸 시인의 시골 장터는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할 수 있는 황금시장이다. “다음 장날 또 보시더”. 아릿한 장터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민경탁 시인은 장터에 대한 절묘한 그리움과 기다림의 미학을 김천토박이말로 불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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