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4주년 맞아 김진국 고문 기고<br/>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게 만든 대구경북<br/>동북아 첨단 제조혁신 허브로 재도약을
왜 TK인가. TK는 어떻게 한국 정치의 중심에 섰는가. 도덕성을 지켜왔고 선구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사림의 전통은 충(忠)과 효(孝), 선공후사(先公後私)다. 퇴계(退溪), 서애(西厓), 학봉(鶴峯)을 받들고, 학문을 사랑했다.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나라를 걱정했다. 국난 때는 붓 대신 창검을 들고 의병으로 나서, 강산을 지켰다. 이러한 TK전통이 대한민국을 받쳐온 정신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0일 대구·경북을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게 한 성지(聖地)”라고 말했다. 정신적 숭고함에 그치지 않았다는 말이다. TK는 산업화의 기관차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보릿고개를 넘는 기적을 이끌었다.
윤 대통령의 표현대로 “우리나라를 근본에서부터 바꿔놓은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도 청도에서 시작됐다. 포항은 지난 70년간 대한민국의 획기적인 도약을 견인했다.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정신이 우리 산업 발전의 토대가 돼 한강의 기적까지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수많은 신생 독립국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 많은 나라 가운데, 산업화에 성공해, 원조받는 나라에서원조하는 나라로 변신한 것은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그 주역이 박 전 대통령과 TK다. 조상의 영광을 자존심으로만 간직한다면 비극이다. 본지가 창간한 지 34년. 노태우 정부 이후 대구·경북(TK)의 정치적 위상이 크게 흔들렸다. 이명박·박근혜, 두 분의 대통령을 배출했지만, 과거의 리더십은 빛이 바랬다.
TK가 한국 정치의 중심을 차지하던 시대는 이제 역사가 됐다. 다른 지역에서는‘TK’를 ‘권력 지향’과 동의어라고 생각한다. 90도 큰절을 하고, 동갑내기 동료에게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남인의 예법, 겸양이 된 지금이다. ‘TK의 시각’이라는 말은 강경 보수 세력 편협성을 나타내는 단어로 추락했다. 김경율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김건희 여사 ‘명품백’ 문제와 관련해 ‘TK의 시각’이라고 표현했다가 결국 사과했다. 어쩌다가 TK가 이 모양까지 왔을까.
국민의힘이 한 달 뒤 전당대회를 연다. 그런데 TK에는 대표 경선에 나설 사람이 없다. 중앙당이 공천하면 무조건 찍어주는 게 ‘텃밭’이다. TK와 호남에 붙은 불명예다. 호남은 ‘전략적 투표’라며 지극히 실리를 챙긴다. TK는 생각이 오그라들어 도계(道界)를 넘지 못한다. TK의 전통과 정신을 다시 수립할 때가 됐다. 그걸 이어가려면 당당해야 한다. 또 어른스럽고,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출세를 위해 허리를 굽히는 게 아니라, 국익을 위해 손해 볼 줄도 알아야 한다.
윤 대통령은 “경북이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산업구조 혁신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동북아 첨단 제조 혁신 허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차전지 메카, 수소 산업의 허브, 경주 소형모듈원자로 국가산업단지, 경산 스타트업 파크, 구미 시스템반도체 설계 검증을 위한 R&D 실증센터 등 청사진도 나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맨손으로 산업화를 이뤘다. 민둥산을 울창하게 만들고, 맨땅에 제철소와 조선소와 중화학공업단지를 일궈냈다. 미래를 향한 고속도로를 깔았으며, 나라를 위해서는 미국에 맞서기도 했다.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결코 수구(守舊)가 아니었다. 개혁과 실용을 추구했다. 애민(愛民)은 국민이 배곯지 않게 하는 게 기본이다. 그의 시대에 맞춰 TK가 우뚝 섰다. 영광뿐 아니라 그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대구역 광장과 경북도청 공원에 박정희 동상이 건립된다. TK 전통과 정신에 다시 불을 붙였으면 한다.
21세기가 벌써 4분의 1이 지났다. 밀레니엄의 꿈은 어디로 갔나. 인공지능시대에 고급 인력을 미국으로, 중국으로 빼앗기고 있다. 정치는 허구한 날 정쟁이다. 부(富)를 혐오하며, 첨단산업으로 가는 길을 막는다. 경부고속도로와 한일회담 반대 시위에서 한발도 못 나갔다. 다양한 의견과 토론은 발전의 자양분이다. 하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 정적을 죽이기 위한 반대는 국력만 소모할 뿐이다.
경북의 시·군들이 소멸 위험지역이다. 경북도는 ‘저출생과 전쟁본부’까지 만들어 대결을 벌인다. 대구·경북 통합도 ‘잘살아 보자’는 몸부림이다. 유습만 고집하면 역사의 퇴행이다. 품격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곰방대만 두드려서는 안된다. 미래 한국을 키워갈 첨단산업의 불씨를 살리자. 그게 TK의 정신이자 전통이다. (본사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