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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집으로 가는 길

등록일 2024-06-02 18:15 게재일 2024-06-0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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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통일전망대.

아버지는 6·25참전 용사다. 아버지 집 대문을 지키는 ‘6·25참전 용사의 집’ 이라는 문구를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지금의 내 아들보다 더 어린 나이에 아버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젊음과 목숨을 바쳐 싸웠다. 전쟁은 많은 상처를 남겼고 많은 것을 잃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끝내 지키고 싶었던 여동생은 지키지 못했기에 늘 가슴 한 조각이 분단된 조국처럼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70년을 넘게 통일이 되기만을 기다리며 사신 아버지는 아직도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동생의 얼굴은 아버지 기억 속에 아직도 선명하다고 했다. 함께 별을 보며 냇가에서 멱을 감던 기억이나 빨래줄에 빨래를 널던 수많은 기억들이 남아 있었다. 전쟁 중 아버지는 목에 파편을 맞아 상처가 깊이 박혔지만 그 상처보다 더 깊은 것은 여동생에 대한 기억이었다.

몇 해 전 아버지를 모시고 ‘고성 통일 전망대’에 다녀왔다. 조국분단의 현실을 볼 수 있는 통일전망대로 가는 내내 아버지의 얼굴은 어두웠다. 민통선 지역으로 향하며 출입국 신고서를 작성했다. 안보교육 영상도 보았다. 같은 나라 안이지만 민통선으로 가면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들이 많았다. 왠지 삼엄하고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통일전망대 관광’이라는 출입증을 국군들에게 받아 2차선 도로를 달렸다.

“이대로 금강산까지 가면 얼마나 좋을꼬”

아버지는 어서 이 길이 뚫려야 한다며 도로 옆 바다해변으로 고개를 돌렸다.

통일전망대 앞에 오니 계단이 있었다. 통일로 가는 계단이기를 바라며 아버지는 희망의 계단을 올랐다. 지척에 북한 땅이 보인다. 뛰어 가도 얼마 걸리지 않을 땅을 우리는 망원경을 통해 보았다. 어렴풋이 철조망도 보였다. 북한의 해금강, 낙타봉, 송도해변도 눈에 담았다. 남북을 자유로이 오가는 뻐꾸기에게 아버지는 통일의 염원을 담아 메시지를 보냈다. 뻐꾸기가 그 임무를 잘 완수해 줄 것이라 믿는다.

아버지의 여동생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생사를 알 수 없다. 아버지는 동생이 살아 있다고 믿었고 북쪽 땅 어딘가에 있기 때문에 만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놓지 않았지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분단은 우리 민족의 의사와 상관이 없었다. 우리는 암울한 역사를 극복하고 정상적인 역사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많은 대화로 풀어 나가야 한다. 통일은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실제 탈북자가 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통일을 ‘엄마’라고 정의했다. 통일이 되면 엄마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들의 그리움과 고통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데 늘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도 통일은 늘 마음의 소원이었고 동생이라 정의하는 단어였다.

아버지의 슬픈 안색이 기쁜 안색으로 바뀌는 날이 와야 할 텐데 생각하니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많은 이산가족들이 살아계시는 동안 가족을 만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구순을 훌쩍 넘기신 아버지의 기억은 아직도 그림을 그리듯 술술 풀어낸다. 여동생을 만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와 쌓아야할 추억거리가 쌓여 있는데 꿈에서조차 한 번을 만날 수 없는 시간을 한스러워했다.

김경아 작가
김경아 작가

분단의 슬픈 현실을 자손들에게 더 이상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다시 못 올 것만 같은 북한 땅을 원 없이 바라보시다가 ‘덕순아, 덕순아 살아 있거래이’하시더니 발길을 돌렸다. 목숨 걸고 탈출한 새터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나 뿐인 목숨을 걸지 않고도 여행 가듯 남북을 오갈 수 있는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다. 정치 이념 이런 것 다 내려놓고 그저 우리 민족이고 우리말을 쓰는 형제고 우리랑 같은 뿌리니까 쉽게 오고갈 수 있는 길이 열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통일이 되면 아버지 집 대문 앞에 ‘피양 랭면 배달’ 스티커도 함께 붙어 있겠지. 백두산 여행을 마치고 아버지와 고모가 나란히 함께 집으로 들어와 식초와 겨자를 곁들인 시원한 피양 랭면을 드시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리운 금강산’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마음먹으면 등산복 차림으로 다녀올 수 있는 그 곳이기를 바라본다. 아버지의 간절한 기다림에도 세월은 오늘도 기다려주지 않고 구름처럼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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