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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찾기

등록일 2024-10-13 19:21 게재일 2024-10-1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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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찾기 종이.

엄마는 한글을 모른 채 인생의 절반을 넘겼다. 둥글둥글한 엄마의 인생 중에 한 부분이 이가 빠져 있었다. 어려운 환경으로 놓쳐버린 것, 바로 엄마의 문자인생이다. 내가 글을 배우면서 엄마의 문자인생의 빈 공간에 조금씩 땜질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완전한 동그라미를 만들지는 못해도 문자로 답답해했던 엄마를 대신해서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나는 엄마 나이 예순이 될 때까지 손발이 되어주었다.

외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는 생활고에 시달렸다. 외할머니는 이런 저런 삶의 시련 끝에 장사를 시작했다. 자식들 배는 굶기지 말아야 한다는 강한 모성애였다. 외할머니가 장사를 나가면 장녀였던 엄마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야 했다. 이모와 외삼촌들은 고구마 줄기처럼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늘어졌고 할머니 이상으로 엄마의 삶도 고달팠다. 그러니 학교를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 고기 팔아 돈 많이 벌어 와서 학교 보내주께. 동생들 잘 보고 있거라.”

외할머니의 말이 엄마에게는 달콤한 사탕 같았다. 내일이 되어도 똑같은 삶의 연속이었다. 또 다시 엄마는 할머니를 졸랐다. 늘 똑같은 물음에 똑같은 대답이 이어지면서 세월은 야속하게 흘러갔다.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한이 맺힌 채로 엄마는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고 나를 낳았다. 자식에게만은 한을 물려주지 않으리라. 다짐에 또 다짐을 한 엄마는 남들보다 두 배로 열심히 살았다. 자식을 통해 간접적인 한풀이를 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한 한풀이가 아니었음을 알았다. 10년 전 어느 날, 친정에서 일이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책이 두 권 있었다. 한 권은 악보가 그려진 노래책이고 한 권은 ㄱ, ㄴ이 적혀있는 한글 기초 떼기라는 책이었다. 엄마는 지난달부터 노인학교에 한글반이 생겼다며 공부를 한다고 했다. 한글을 배워서 노래방에 가서 부르고 싶은 노래를 모두 불러볼 것이라 했다. 금방 터질 듯 부풀어 오른 풍선 같은 엄마의 모습에 나도 얼떨결에 기뻐해 주었다. 엄마의 각오는 대단했다. 한글은 엄마 인생의 목표였고 희망이었다.

김경아 작가
김경아 작가

다음 해 봄, 엄마는 노인학교 한글 반에서 소풍을 간다고 했다. 백발이 무성한 할머니들이 한글공부라는 한에 동질감을 느끼며 ‘학교’라는 이름으로 처음 가는 소풍, 어쩌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풍이 될지 모른다. 엄마는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신 모양이다. 내 어릴 적 소풍 때 엄마처럼 나도 엄마의 소풍을 챙겼다. 뜨거운 김이 나는 하얀 밥에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고 반지르한 김 위에 밥을 깔고 계란과 시금치무침, 우엉조림을 넣고 내 미안한 마음까지 돌돌 말았다. 나는 왜 엄마에게 지금까지 글 세상을 열어줄 생각을 못했을까. 엄마의 마음을 진작 읽어 드리지 못함에 자꾸 눈이 붉어졌다. 맛있는 간식을 사드시라고 용돈도 챙겨 엄마 생애 ‘첫 소풍 가방’을 챙겼다. 저녁 무렵 대문을 들어서는 엄마의 소풍 이야기는 시리즈로 이어졌다. 먼저, 노래자랑을 해서 받은 양은 냄비를 자랑했다. 그다음 보물찾기를 했는데 겨우 찾은 종이가 ‘꽝’이었는데 얼른 꽝 된 종이를 다시 숨기고 자리를 비켰단다. 다른 곳에서 엄마는 3장이나 더 찾았다. 보물찾기에서 받은 선물이라며 수세미, 비누, 치약들을 내놓았다. 엄마의 김밥이 최고 맛있었다는 다른 할머니들의 칭찬에 흡족해 하시는 엄마 모습에서 30년 전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칠순을 훌쩍 넘긴 엄마. 기나긴 인생의 여정 가운데 노래자랑 때처럼 설레는 순간도 있었겠고 처음 해 보는 보물찾기의 종이에 적힌 것처럼 `꽝’인 순간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제는 손자의 받아쓰기를 불러 줄 수 있고, 노래방에서 글을 보고 노래도 부를 수 있을 만큼 엄마의 인생은 멋지고 아름답게 변했다. 소풍의 보물찾기에서 선물 받은 수세미나 비누, 치약이 엄마 인생의 보물찾기에서 선물 받은 한글에 감히 비길 수가 있겠는가. 엄마 인생 최고의 보물찾기는 남편도 아니고, 자식도 아니고, 돈도 아닌 한글일지 모른다. 신문도 보고 책도 읽으면서 엄마의 인생 소풍 끝나는 그날까지 더 많은 보물들을 속속 찾아내길 간절히 소망한다. 돋보기를 끼고 손자의 받아쓰기를 불러주고 있는 엄마의 목소리에 오늘따라 힘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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