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엄마가 싫어하는 노래가 하나 있었다. ‘여자의 일생’이라는 노래다. 엄마는 그 노래를 유독 싫어했다. 큰 소리로 가요를 따라 부르다가도 그 노래가 나오면 빠른 속도로 버튼을 눌러 껐다. 그 노래는 우리 집의 금지곡이었다. 그 노래 속에는 엄마 동생의 삶이 들어 있었다. 노래의 가사처럼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떠나 버린 이모는 엄마의 아픈 노래였다.
이모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와 함께 살았다. 아버지는 이모의 공부 뒷바라지를 하며 처가의 짐을 덜어 주었다. 이모는 우리 남매들에게 언니 같은, 누나 같은, 아버지에게는 자식 같은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모 뒷바라지는 그리 길지 못했다.
이른 나이에 폐결핵으로 삶을 정리하며 집에서 요양을 했다. 젊은 엄마에게는 아버지의 병간호와 생계의 멍에가 너무 무거웠다. 엄마를 대신하여 이모는 학업을 포기 하고 우리를 돌보았고, 우리 남매들의 뜨신 밥을 맡으면서 우리 집의 살림도 떠맡게 되었다.
몸이 아픈 아버지는 예민해지고, 성격은 날로 불같이 변해갔다. 무슨 일이든 참지 못했고, 이모와 자주 싸웠다. 곰보였던 이모 얼굴은 비포장 길처럼 울퉁불퉁했다. 사춘기였던 우리 3남매는 그런 이모를 친구들 앞에서 늘 부끄러워했다.
어느 날, 집 마당이 소란스러워 나가보았다. 동네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건넛방 아저씨가 돈 3만원을 잃어 버렸다는 것이다. 마당을 쓸다가 3만원을 주운 이모는 도둑으로 의심을 받게 되었다. 이모는 자초지종을 말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모의 옷을 구석구석을 뒤졌다. 눈물로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이모의 음성은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가 되었다.
다음 날, 눈물 줄기 같은 비가 내렸다. 이모는 우리에게 말 한마디 없이 떠났다. 부엌의 도마 소리는 허공에서 자꾸만 들려왔다. 마당에 날아와서 먹이를 쪼아 먹던 까치도 외로워 보였다. 정답게 이야기 해 주던 이모가 사라진 자리에서. 모든 집안일은 아버지와 언니의 몫이 되었고 엄마는 더욱 바빠졌다.
이모는 점점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기억의 끈도 삭고 삭아졌다. 하지만 엄마는 우리와 달랐다. 텔레비전에서 ‘여자의 일생’ 노래가 나오면 채널을 돌렸다. 우리가 따라 부르는 것도 싫어했고 화를 내기도 했다. 잊히지 않는 이모를 떨쳐내고 있는 것이었을까.
창밖에 새끼 손톱만한 달이 까만 하늘에 노랗게 박혀있는 것을 보며 잠이 들었다. 어둠이 짙은 밤공기를 따라 흐르는 노래 소리는 구슬프게 들렸다. 엄마는 우리의 머리맡에 앉아 달을 보며 우리에게 금지시켰던 노래를 조용조용 부르고 있었다.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내 볼에 닿는 엄마의 소매는 젖어 있었다.
강산이 서너 번도 더 바뀌었다. 엄마는 10년 전부터 이모의 제사를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뜬금없이 엄마는 이모를 찾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엄마의 뜻을 받아들여 이모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모를 찾기로 마음먹기까지 참으로 오랜 아픔을 그냥 넘기며 살아왔다.
이모는 살아 있었다. 35년 만에 이모를 만났다. 이모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큰언니였던 엄마는 허리가 다 꼬꾸라져 있었고 말썽쟁이였던 막내 동생은 백발이 무성했다. 이모의 곰보 자국 덕분에 우리가 이모를 알아보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준비되지 않았던 이별과 만남의 대사는 눈물이 대신했다. 이모는 우리 집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그리도 모질게 대했던 아버지와 숙맥 같았던 이모의 만남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이가 숭숭 빠진 모습으로 끌어안고 우는 모습은 백일 된 아기 같았다. 눈물의 의미를 아무도 해석하지 않았지만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모는 아버지의 손을 맞잡았다. 모두가 손을 잡았다.
그때, 아버지가 ‘여자의 일생’ 노래를 갑자기 부르기 시작했다. 긴 세월 우리 집에서 금지 되었던 노래가 풀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