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는 동안 소나기가 내렸다. 시원해질까 싶었는데 오히려 습도만 높아졌다. 식당 바깥에 있는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오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언제 비가 내렸나 싶게 말갛고 파란 하늘이었다.
“아이고 더워라. 여서 뭐합니까? 그늘에 가서 좀 쉽시다. 담배도 한 대 피우고.”
검고 붉은 피부를 가진,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 키가 크고 깡마른 사내가 내 옆으로 와 섰다. 오늘부터 나와 한 조가 된 사내였다. 우리는 식당 처마 옆 그늘진 곳으로 가 앉았다. 사내는 두 손에 들고 있던 생수병 중 하나를 자기 얼굴에 문지르면서 남은 하나를 내게 건넸다. 냉동고에서 막 꺼낸 생수병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더라고. 쟤들도 살아가는 놈들인데. 햇빛은 볼 수 있어야 할 것 아니야. 비도 맞아야 하고. 미안합니다. 그라고 이건 선물입니다. 아니다 숙제인가. 볕 잘 들고 물기 많은 곳에 심어 주세요. 거기서 또 어떻게든 살아가게.
“이 일 한지 오래입니까?”
“오래 되고 말고가 있습니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데. 내가 전기 기술자도 아니고. 어제 처음 해 본 일입니다. 어제 하루 하고 말 줄 알았는데 다행히 오늘 또 나오라 하더라고요.”
태양광 발전 패널 설비 공사 현장은 처음이었다. 공사 현장이 집에서 비교적 먼 곳이라 어쩔까 했지만 일당이 나쁘지 않았고, 현장이 산이라 하니 마음이 갔다. 오후 작업을 시작한 후에도 사내는 계속해서 말을 걸거나 자기 이야기를 했다. 손놀림을 멈추거나 쉬지는 않았다. 입을 통해 노동의 무게를 내뱉고 덜어내는 것 같았다. 사내의 목소리가 조금 컸었는지 공사 감독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잠시 조용하다 싶었는데 감독이 사라지자 사내가 입을 열었다.
“이거, 이거 이름이 뭔지 압니까?”
보랏빛 꽃이었다.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가 뭉쳐진, 주위를 둘러보니 공사 부지에 지천으로 깔린 풀이었다. 사내가 가리킨 꽃으로부터 눈길이 닿는 곳까지 퍼져나간 보랏빛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아니오, 이름이 뭡니까?”
“이게 바로 닭의장풀. 닭장 옆에서 잘 자란다고 해서. 달개비라고 하면 들어 보셨을라나? 예쁘지요? 봄에 나는 것은 먹기도 했는데.”
사내는 꽃을 하나 꺾어 머리에 꽂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렸다.
“이것들이 예쁘기는 한 데 풀은 풀이거든요. 그래서 웬만하면 보는 족족 뽑아버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아주 엉망진창이 됩니다. 생존력이 엄청 나거든요. 여기 뽑아 놓으면 저기서 나고 저기서 뽑아 놓으면 저쪽 어딘가에서 또 나고 있고. 약으로도 쓰인다 듣긴 들었는데, 그렇다고 이걸 약으로 쓰겠다고 캐고 다니는 사람을 본 적은 없으니.”
4, 5일정도 평탄 작업이 끝난 후 콘크리트 작업이 시작됐다. 태양광 패널을 올리고 고정할 자리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설명을 듣고 흩어져 막 작업을 시작하려는데 보랏빛 꽃이 보였다. 나는 잠깐 머뭇거렸다. 꽃이라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쓰였다.
“왜요? 무슨 일입니까? 그 잡초 꽃 때문에요? 아이고, 보기보다 마음이 여리시네.”
뭐라 대답할 새도 없이 사내가 삽으로 땅을 내리찍었다.
“이 녀석들은 어디서든 잘 살아낸다 했지요. 걱정 마십시오. 죽었나 싶어도 다시 머리를 내밉니다. 자, 하지요. 오늘 좀 많이 파야 하던데.”
하지만 한 번 간 마음을 되돌릴 수 없었다. 작업을 하는 동안 가능한 꽃을 피해 삽질을 했다. 사내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지만 더 이상 입을 대지는 않았다. 땅을 파는 작업은 그전 작업보다 힘이 많이 들었다. 오전 일을 마칠 즈음 우리는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땀에 젖은 옷 때문인지 몸이 무겁다 느껴졌다.
일주일이 지났다. 전날부터 태양광 전지 패널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넓고 큰, 검은 판들이 땅을 덮었다. 설치는 전문업체의 사람들이 했고 나와 사내는 보조 일을 했다. 주로 장비, 도구를 가져오라는 심부름이거나 패널을 고정하는 동안 흔들리지 않게 잡고 있는 일이었는데 검은 전지판에 반사된 빛에 내내 눈이 부셨다. 그날따라 사내는 말이 없었다. 나는 사내가 입을 여는 것을 기다리다 먼저 말을 걸기로 마음먹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싸구려 선글라스라도 하나 가지고 오는 건데. 말이라도 좀 해 주지. 안 그래요?”
연철은 부러 툴툴거렸다.
“오늘 마치고 한잔 합시다. 술 하지요?”
사내가 말했다.
일을 마치고 둘은 식당에 남았다. 삼겹살과 소주 몇 병 준비해줘요,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에 식당 주인에게 부탁을 해놓았었다.
“이건 내가 낼 게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잘 마실 게요. 하하. 자, 한 잔 받으십시오.”
사내는 내 잔에 술을 따랐다. 둘은 공사가 얼마나 이어질지, 어느 어느 지역에 열린다는 큰 공사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가끔 티브이에 나오는 정치인이나 대통령 얼굴을 보며 욕을 해대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문득 사내가 했던 말이 떠올라 내가 말을 꺼냈다.
“그, 닭의장풀인가 하는 것들 말인데, 패널들이 다 올라가고 나면 햇빛을 못 받을 텐데 괜찮을까요? 오늘 보니 패널 밑은 완전히 응달이던데. 햇빛도 못 받고 비가 온다해도 빗물들이 스며들려면 오래 걸릴 텐데. 쟤들도 꽃이 피려면 해도 보고 비도 맞고 해야 할 텐데.”
“글치요. 햇빛을 아주 못 받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받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 겁니다. 물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위에서 흘러 내려오거나 땅속으로 흘러든 빗물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전만 못 하겠지요. 뭐,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그래서 잡촌데. 잡초가 제일 강하다 안 합니까.”
“그렇겠지요? 하긴, 우리가 잡초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몰랐으면 몰라도 알고 보니. 꽃이 예쁘더군요. 자꾸 보니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카는 말도 있다 아입니까. 무슨 유명한 시에 나온다 하던데. 하하.”
나는 사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 오늘 왜 말이 없었는지,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물었다. 사내는 소주잔을 들어 한입에 털어 넣고는 한숨을 쉬었다. 사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재건축이 된다고 했다.
“오늘 회식은 내가 쏠 일이 아니네. 듣고 보니.”
“그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입니다.”
재건축 이야기는 제법 오래 전부터 나왔다. 하지만 재건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아파트 주민들 중 상당수는 전세나 월세로 입주해 있는 사람들이었고 자가로 살고 있던 사람들도 막상 재건축을 위해 집을 비워야 한다는 생각에 들면 막막했다. 재건축을 위한 투표에서 찬성표는 번번이 60%를 넘기지 못했다.
“다들 말만 재건축, 재건축 했지 실제로 벌이지는 못했거든요.”
이번에는 달랐다. 외지의 한 부동산 업체가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더니 재건축을 위한 투표 공고가 붙었고 투표 결과 찬성률이 60%를 넘었다. 사내도 찬성표를 던졌다. 재건축조합이 결성되었고, 시행사와 건설사 입찰이 시작되었다.
“저야 뭘 압니까. 마누라가 이번에는 꼭 재건축을 해야한다 해서. 그런데 어제 웬 서류가 집에.”
재개발 후 지어질 아파트의 대략적인 평수, 호수와 조합원이 부담해야 할 자가 분담금에 대한 안내서가 왔다고 했다. ‘평당 건축비는 천만 원 정도 예상하고 있으며 기존 조합원의 경우 크기별로 기존 아파트의 가치를 산정해서 건축비에서 기존 아파트의 가치, 늘어나는 세대의 분양이 다 된다는 가정 하에서의 이익을 조합원 수로 나눈 가치 등등을 뺀 금액이 자가 분담금이 될 것이다. 그리고 경제성을 따져보니 아파트 층수를 기대만큼 높이지는 못한다. 이러저러하니 조합의 이익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양해 바란다.’ 는 내용이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이 열다섯 평인데 작은 것을 고른다고 해도 스물여덟 평이니 거의 두 배가 되는 셈입니다. 그것만 해도 건축비가 이억 팔천이라는 말인데 절반만 낸다 해도 일억 사천을 제가 감당해야 한다. 이런 엿같은 계산이 나오더라 이 말입니다. 시발.”
그것 때문에 아내와 심하게 싸웠다고 했다.
“마누라가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돈 못 버는 제 잘못이지요. 헛바람 불어넣으며 돌아다닌 나쁜 놈들 탓이지요.”
사내는 물잔의 물을 바닥에 부어 버리고는 소주를 물잔에 따르더니 벌컥거리며 마셨다.
“뭐, 어찌 되겠지요. 안 되면 팔고 또 이사 가면 됩니다. 우리가 한두 번 돌아다닌 것도 아니고. 아이들도 외지에 나가있으니 마누라하고 나하고 둘이야 어디든 누울 곳이 있겠지요.”
불판의 고기는 줄어들지 않았지만 술병은 쌓여갔다. 나는 이것저것 이야깃거리를 찾아 건넸지만 사내는 취한 탓인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일이 많아졌다. 간혹 중얼거리기도 했는데 알아듣기 힘들었다. 시발시발 욕지거리만이 분명하게 들렸다. 욕설이 사내의 술버릇이었는지 이번만 유독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거슬리지 않아 나는 가만히 있었다. 오히려 가끔 욕을 따라 하기도 했다. 사내가 시발하면 내가 따라서 시발, 사내가 지랄하면 또 따라서 지랄. 한동안 식당은 시발 지랄거리는 욕설로 가득했다.
사내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려나 싶었다.
“혼자 가도 괜찮겠어요? 넘어질 것 같은데.”
사내는 손을 들어 안심하라는 듯 휘휘 젓고는 식당 밖으로 나갔다.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 나갔던 사내가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서 잠이 든 것인지, 비탈을 굴러 아래쪽에 처박힌 것은 아닌지, 잠시 고민을 하다 나는 사내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아직은 달빛이 남아 있는 밤이었다. 그 달빛을 배경으로 누군가 연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사내였다. 사내는 대뜸 들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를 내게 건넸다.
“아무래도 안 되겠더라고. 시발. 쟤들도 살아가는 놈들인데. 햇빛은 볼 수 있어야 할 것 아니야. 비도 맞아야 하고. 아이, 시발. 미안합니다. 그라고 이건 선물입니다. 아니다 숙제인가. 볕 잘 들고 물기 많은 곳에 심어 주세요. 거기서 또 어떻게든 살아가게.”
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
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
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