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짧지만 긴 여운 …’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가로등이 깜빡거릴 때

등록일 2024-10-01 17:58 게재일 2024-10-02 17면
스크랩버튼
민성은 빈소 입구에 세워진 화환 두 개를 살피다 빠른 걸음으로 아버지를 쫓아갔다. 아버지와 민성은 욱이 삼촌의 영정과 마주했다. 웃고 있었다. 민성에게 코트를 사주던 시절 욱이 삼촌의 얼굴이…. /언스플래쉬

빈소는 2층에 있었다. 민성이 계단과 승강기 사이에서 머뭇하는 사이 아버지는 계단을 올랐다. 아버지는 접객실을 힐끗 본 뒤 빈소로 들어갔다. 민성은 빈소 입구에 세워진 화환 두 개를 살피다 빠른 걸음으로 아버지를 쫓아갔다. 아버지와 민성은 욱이 삼촌의 영정과 마주했다.

웃고 있었다. 민성에게 코트를 사주던 시절 욱이 삼촌의 얼굴이었다. 욱이 삼촌, 저 왔습니다. 욱이 삼촌의 얼굴을 보던 민성이 혼잣말을 했다. 아버지가 민성의 소매 끝을 잡아당겼고 아버지와 민성은 엎드려 절을 했다. 아버지는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언제 일어나시려나? 아버지를 살피다 정작 욱이 삼촌에게 한마디 말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후우, 숨을 내쉬는 소리와 함께 아버지가 일어났다.

민성과 민성의 아버지는 빈소에서 나와 접객실 한쪽 모서리 테이블에 앉았다.

-아주버님,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하셨지예. 민성이 니도 오느라 수고 많았제? 니가 아버지 모시고 왔나?

-네. 숙모님하고 동생이 힘든 일 감당하시는 것에 비하겠습니까?

아이고. 고개를 숙이며 혼잣말을 내뱉는 숙모의 손등을 사촌이 쓰다듬었다.

-멀리서 이렇게 와 준 것만 해도 고맙다. 뭣 하나 제대로 준 것 없는 삼촌 아이가. 하긴, 그래도 조카 중에는 니하고 젤로 가깝지 않았나?

민성이 어릴 적 욱이 삼촌은 명절이나 제사, 때로는 특별한 일이 없을 때에도 간간이 민성의 집을 찾아와 한참을 앉아 있다 가고는 했다. 약간은 낯선 듯 혹은 약간은 겁먹은 듯 두리번거리다 아버지나 어머니, 형제 중 한 명이 요즘은 어찌 지내는지 물으면 그제야 반색을 하며 입을 열었지만 욱이 삼촌이 말을 잇는 사이 어머니는 주방으로 아버지는 화장실로 갔다. 그러면 욱이 삼촌은 민성을 앞에 두고 비밀인 듯 낮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민성은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런 밤들 끝에 욱이 삼촌은 항상 현관에 서 있었다. 민성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내민 돈을 머뭇거리지 않고 받았다. 바지주머니에 넣고 고맙습니다, 큰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민성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현관을 나서는 욱이 삼촌을 보며 민성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왜 욱이 삼촌에게 자고 가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지 가끔 궁금했다. 어떤 날은 아버지나 어머니 누구도 욱이 삼촌에게 돈을 주지 않기도 했는데 그런 날 욱이 삼촌은 제사음식이 든 종이 가방을 든 채 말없이 현관을 나섰다.

-제수씨가 고생이 많습니다. 오늘만이 아니고 시집와서 지금까지.

-제가 뭘요. 한 게 뭐 있습니까. 하긴, 솔직히 말해서 아주버님 앞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합니다, 아주. 이제야 끝났나 싶기도 하고요.

숙모는 쟁반에 있는 음식을 상 위로 옮기며 아주버니는 한잔 하셔도 되는 것 아니냐 물었고 민성의 아버지는 잔을 내밀었다.

-술 때문이지예. 뭐,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꺼?

욱이 삼촌이 죽던 날 숙모는 다른 곳에 있었다. 벌여 놓은 일이 많아 일주일에 사오일은 다른 곳에서 지냈다고 했다.

-일이 벌어지기 이틀 전 얼굴을 본 것이 마지막이 되었습니더. 그날 좀 심하게 다퉜어예.

술 때문이었다. 욱이 삼촌이 만성 췌장염과 알코올 중독으로 여러 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뒤로 숙모는 집안에 술병이 보이면 개수대에 모두 비웠다. 그날도 그랬다.

-처음에는 고마 술을 마시게 두는 게 제가 편하더라고요. 술버릇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마시고 마시고 또 마시고 그카다가 조용히 잠을 자니까. 근데 이게 병이 되고 병원을 왔다갔다해야 되고, 또 병원에 가만히 있으모 되는데 퇴원하겠다고 난리를 부리고, 그러니까. 온전히 제 몫이 된 거지예.

집안을 구석구석 뒤지는 것, 집을 비웠다 돌아온 숙모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었다. 소주 병뚜껑이나 술이 포함된 마트 영수증을 찾아내는 날이면 삼촌과 심하게 다퉜다.

-울고불고 그러지는 않았으예. 니 죽고 나도 죽자, 이렇게는 못 살겠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젤로 심한 말이었지예.

최근 한동안은 잠잠했다. 숙모가 동네 마트와 편의점을 찾아가 삼촌에게 술을 팔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가까이 있는 몇몇 삼촌의 친구들을 불러 부탁을 한 뒤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라예.

삼촌 밥을 챙겨주고 반찬이라도 몇 가지 만들어 두려고 집에 들른 숙모가 쓰레기봉투에서 찢어진 마트 영수증을 찾아냈다. 걸어서 한 시간은 떨어진 다른 동네의 마트였다. 숙모는 신발장 낡은 구두와 장화 안에서 소주를 찾아냈다.

-다퉜다기보다는 제가 일방적으로 화를 낸 거지예. 대꾸를 하기도 했지만 아주버니도 알다시피 그 사람 성질은 순하다 아입니꺼.

그렇게 집을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숙모는 괜한 마음에 전화를 했지만 삼촌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또 어디선가 술을 사와서 마시나, 싶었지만 될 대로 되라 하는 마음에 몇 번 더 전화를 하다 말았다.

오륙 년 전 민성은 욱이 삼촌의 전화를 받았다. 소식을 듣지 못한 지 꽤 많은 해가 지난 뒤였다. 민성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네. 네. 아, 네. 하다 통화가 끝났다. 이후 이삼 개월 간격으로 욱이 삼촌이 전화를 했다. 췌장이 안 좋아 입원을 했다는, 대상포진에 걸려 고생을 했다는, 술을 끊으려 입원을 했었는데 잘 안되었다는 전화가 이어졌다. 술에 취한 듯 어눌하고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아프고 외롭다는 전화가 왔을 때 민성의 머릿속 기억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돈을 달라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행패를 부리던 삼촌의 눈빛, 아버지께 듣기 싫은 말 한마디를 들은 날이면 민성을 매몰차게 내던졌던 레슬링, 할머니가 남긴 얼마 안 되는 유산을 누가 가져갔느냐며 어머니를 몰아세우던 저녁, 자기는 받은 것도 없고 배우지도 못했으니 형들이 누나들이 책임지라며 엎었던 제사상이 앞, 뒤 구별 없이 부딪히고 섞였다. 할부금을 내지 않고 사라져 아버지가 대금을 지불했던, 집 담벼락 아래 서 있기만 하다 어디론가 팔려간 검정 세단 자동차. 그 자동차를 두고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오갔던 고성이 귓가를 스쳤다.

민성은 아버지에게 욱이 삼촌의 전화 이야기를 했다.

네게도 전화를 했더냐?

아버지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네게는 전화하지 말라고 했는데. 다시 한 번 이야기해야겠다. 너한테는 전화하지 말라고 일러둘 테니 혹시 다음에 다시 전화가 오거든 받지 마라.

아버지는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후로도 몇 번 욱이 삼촌으로부터 전화가 왔었지만 민성은 아버지의 말을 잘 따랐다.

-다음 날 저녁에 삼촌이 전화를 했더라.

숙모의 말을 듣던 아버지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일어서자 숙모는 민성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날 내가 많이 바빴다. 삼촌이 벌이를 못하니 내가 해야 안 되겠나. 이곳저곳에 열어놓은 가게들도 챙겨봐야 하고. 가게라고 해봤자 내 가게도 아니지만. 숙모가 다른 사람한테 월급 받고 관리하는 가게가 몇 개 있거든. 근처 촌에. 뭐, 자세한 것은 민성이 니가 알 필요는 없고. 무슨 일 있으면 또 전화를 하겠지 싶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까지 전화가 없는 거라. 받지도 않고.

숙모는 타지에서 살고 있는 아들에게 연락을 하려다 말았다.

-바쁜 아를 성가시게 하고 싶지 않았거든. 그런데 뒤에 들어보니까 자한테도 여러 번 전화가 왔었단다. 하필이면 자도 그날 회사 회식이 있어서 정신이 없었다네. 전화도 못 받았고. 그때 이 사단이 난 거라.

가로등이 휙휙 지나갔다. 다가오는 가로등 하나가 깜빡거렸다. 저렇게 깜빡거리다가 언젠가는 빛을 잃을 터였다. 지금 뭘 할 수 있겠어. 결국 누군가 알게 되겠지만 역시 뭘 하지는 않겠지. 세상도 그대로일 것이고. 민성은 네비게이션 화면의 도착 예정시간을 확인한 뒤 힐끗 옆자리의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벨트 위에 올려놓고 눈을 감고 있었다. 민성은 스피커의 볼륨을 낮췄다.

-무슨 일이냐?

비스듬히 누워있던 아버지가 자리를 고쳐 앉았다.

-주무시는 줄 알고.

-잠이 오면 자려 했는데 잠이 안 오네.

민성은 아버지의 말에 대꾸를 하려다 말았다. 깜빡이를 켜지 않고 들어온 컨테이너 트럭 때문에 브레이크를 살짝 밟아야 했다.

-그날 욱이가 전화를 했더라. 두 번. 벨이 울렸는데 안 받았다. 조금 피곤했거든. 그저 똑같은 전화거니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말이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아침에 일어나보니 부재중 전화가 세 통 더 와 있더라.

눈을 감은 채 민성의 아버지가 말했다.

-그게 마음에 걸린다.

전조등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날벌레들이 앞 유리창에 부딪혔다. 툭툭 터지는 소리가 났고 앞 유리창이 흐려졌다. 민성은 와이퍼를 움직여 유리창을 닦아냈지만 닦이지 않았다. 눈을 한 번 세게 깜빡이고 나서야 시야가 맑아졌다.

-전화를 받으셨어도 할 수 있으신 게 없었을 겁니다. 그 전화가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고. 그저 항상 그랬듯 한 잔 마시고 횡설수설 늘어놓으려 했을 겁니다.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그래도, 후우. 너는?

-예?

-너한테는 전화 안 했더냐?

민성이 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민성의 차가 흔들리며 2차선으로 들어섰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앞이 안 보여서요. 방금 마주 오던 트럭이 상향등을 켰더라고요. 아버지,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제가 잘 못 들었습니다. <끝>

김강 소설가·내과의
김강 소설가·내과의

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 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 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