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결혼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주말이 되면 카페에 앉아 가능한 주택 대출제도를 알아보고 앞으로 우리가 살 곳이 어딜지 점찍어 보며 살고 싶은 동네를 찾아가 찬찬히 둘러본다. 그것만으로 벌써 내게 마음에 드는 집 한 채가 생기는 기분. 연인의 손을 잡고 걷는 이 동네가 벌써 우리 것이 된 것만 같아 설렌다.
결혼이란 뭘까.
사실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으나, 때때로 결혼이란 상대에게 얽매이는 구속 또는 희생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렇게 지레 겁을 먹다보면 현재 내 앞의 행복이 소중하고 아까워서 놓치고 싶지 않아진다,
8평 짜리 원룸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자유의 공간. 하지만 사정이 좋지 않아 이곳에 배우자와 함께 살게 된다면? 아주 약간 망설여질 정도로 쉽게 내 공간을 내어주기란 쉽지 않다. 이 협소한 공간 속에서 우린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양보하며 살아가야 할 거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 근사한 결혼 생활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며칠 전 본 영화 ‘결혼 이야기’를 보고 결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LA 출신 여배우 니콜은 연극 감독인 찰리와 결혼을 하기 위해 배우 커리어를 버리고 그와 결혼해 뉴욕에 산다. 니콜은 결혼 생활 중 고향인 LA로 돌아가고 싶지만 찰리와의 결혼 생활 때문에 쉽게 내려가지 못한다. 그러던 중 니콜이 LA에서 촬영이 진행되는 한 파일럿 프로그램에 들어가게 되고, LA에 생활하며 찰리에게 이혼 신청을 요구한다.
그 와중 그들의 싸움은 점점 격해지며 결국 변호사를 고용해 이혼 소송까지 번지게 된다. 이혼 소송에서 일어나는 일과 인물의 감정선을 극의 절정까지 끌어올리며, 두 인물 모두 서툴고 인간적이며, 본인 스스로가 제일 중요한 이기적인 인간상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낸다.
사랑은 변하기 마련이다. 남녀간의 사랑은 결혼 전과 후 분명히 결이 달라진다. 무수히 많은 상황, 환경, 사건이 있겠고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거나, 변형되거나, 비틀어지거나, 끈끈해지거나, 단단해질 수도 있다.
이 영화를 통해 깨달은 건 사랑만으로 완벽한 결혼 생활의 완성을 꿈꿀 수 없다는 점이다. 나와 너는 우리로 묶이지만 어쨌든 다른 개개인의 인간이고, 더군다나 유통기한처럼 소멸하는 연인간의 뜨거운 사랑만으로는 결혼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
영화 속 니콜과 찰리는 웨딩마치 속 화려함이 완벽하게 빼내진 채로 담담하고 솔직하게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니콜은 찰리와 헤어지는 길에서 그의 풀린 신발끈을 정성스레 묶어준다, 이혼을 고려할 정도로 그를 증오하지만 그가 가는 길에 넘어지지 않도록 신발끈을 묶어주며 끝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니콜에게 찰리는 ‘우리끼리의 나눈 농담도 다 기억하는 사이’, ‘확신이 없는 나랑은 정반대인,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었으며 무엇보다도 ’그를 본지 2초 만에 사랑에 빠져‘버릴 정도로 내가 깊게 빠져들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상대를 답답해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소리를 지르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모난 말들만 던지는 싸움 속에서 그간 우리가 쌓아올린 존중과 신뢰의 태도를 굳게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싸움은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고, 감정이 고조되며, 본능적으로 손해를 보기 싫어하니까. 아담과 찰리도 그렇다. 서로를 위해 고상하게 차 한 잔 나누며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고, 벽을 부수고, 욕설을 내뱉는다. 하지만 그들이 사랑으로 쌓아올린 믿음까지 부수진 못한다. 그들은 과거의 사랑을 바탕으로 각자의 길을 걸어도 서로의 길을 응원하는 사이를 택한다.
파경 후 관계를 유지하는 ‘결혼 이야기’를 보며 나는 오히려 그전까진 알지 못했던 사랑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내가 무서워했던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소멸된 애틋한 사랑이었고, 이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아주 단순한 겁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자연스레 변할 테지만 함께 사랑해온 시간 속의 믿음과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언제고 연인과의 첫 만남, 우리가 나눈 눈빛, 여행지를 기억할 수 있고 이는 이미 내게 영원한 믿음으로 자리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