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문인수의 ‘내 마음의 유민들, 사투리’

등록일 2024-06-10 18:29 게재일 2024-06-11 16면
스크랩버튼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오늘 내가 좋아하던 경북 성주에 살던 문인수 시인이 파랑새처럼 하늘로 날라 갔다고 한다. 늘 불그스레한 황혼빛 웃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던 아름다운 시인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 어느 날의 내 일기장에서 눈에 띈 짧은 글이다. 지금 생각해도 참 쓸쓸하고 마음이 무겁다. 시인과는 고등학교 선배라는 인연도 있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그는 항상 따뜻했다. 마침표도 없이 앞뒤로 이어지는 시 화법을 구사한 그의 상상력은 따라잡기 난해한 부조리한 시어 문법의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 편하게 가슴에 다가선다.

‘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창비, 2015)는 시집 제목부터 문법 일탈이다. 이 생뚱맞은 제목 자체가 독자를 곧 바로 긴장으로 몰아넣는다.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이곳은 내가 존재할 곳이 못 된다는 말이다.

‘굵직굵직한 골목들’의 “작고 초라한 집들이 거친 파도 소리에도 와르르 쏟아지지 않는다. 복잡하게 얽혀 고부라진 골목의 팔심 덕분인 것 같다.”에서는 파도에 의지한 가파른 언덕 섬마을의 모습, 금방 쏟아져 내릴 듯 언덕배기 섬마을을 버티게 해주는 꼬불꼬불한 길을 “질긴 팔심”에 비유한다.

시인은 스스로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 비범한 시인이라는 꼿꼿함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실제로 문인수 시인이 범속한 인간이 아닌 건 아니다. “굵직굵직한 동아줄의 기나긴 골목”에서 한국어 조사 ‘-의’의 위력은 얼마나 대단한가? ‘-의’는 ‘-와 같은’과 동일한 직유의 기능을 하고 있다. 가파른 섬 언덕에 조개껍질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붉은 슬레이트 지붕 사이로 난 골목길을 질긴 팔뚝과 동아줄로 유추한 비유는 탁월한 시적 상상이다.

“해풍의 저 근육질은 오랜 가난이 절이고 삭힌 마음인데”에서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을 해풍의 근육질로 비유한다. 시인은 철부지 순수한 어린 아이처럼 변덕도 심하다. 골목길을 질긴 팔로, 또 동아줄로 비유하다가 이젠 끊임없이 세로로 일어서는 해풍의 강한 근육질로 눈길이 옮아간다. 이러한 자연의 긴장감, 팽팽히 당겨진 인력은 곧바로 그 섬마을에 삶의 거처를 둔 섬사람들의 끈질긴 생을 이야기하는데 성공한다.

문인수 시인에게 사투리는 한 시절의 추억이 유적이 되어 쓸쓸히 서녘 서방정토에 묻혀 있다.

‘내 마음의 유민들, 사투리’(‘요엄창큰비바리야냉바리야’, 서정시학, 2007)에는 경상도 사투리가 자동기술적으로 튀어오른다. “낫살이나 먹은 사람들의 몸엔 묵은 된장냄새 같은 말씨가 숨어 있다./귀에 쟁쟁, 목구멍 속에 오소리길처럼 파묻힌 말뜻이 있다.”라고 했다.

방언은 시인의 인식 내부 깊숙이 냄새, 소리, 목구멍으로 숨어 있 있다. 방언이 시학의 미적 가치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의 시에는 또 다른 액면 구성의 방식으로 시인의 목소리이면서도 마치 타자화한 토박이 방언인 듯 경상도 방언이 실려 있다.

“약삐야 덕삐야 살 꺼 없다. 디비가미 애믹이다. 심청머리. 곡식을 까부리다. 아망시다. 양발궂다. 모지락시럽다. 해찰궂다. 까리적다. 야무락지다. 자부럽다. 건성시럽다. 메메 문때다. 짜매다. 허퍼. 개얀타. 쌔비릿다. 넌 갓따리다. 잘 까바지다. 글마가 절마가. 알아서 미미이 잘할까. 각중에. 먹보. 얌새이 시염이다. 통시이. 여불떼기. 수굼포. 호메이. 깨이. 후치이. 써리. 그케. 뺀대기 쌔리다. 가릇부치다.” 이렇게 값진 방언 시어들이 시의 궤적에서는 전혀 일탈되지 않으면서도 정답게 시의 행간을 빼곡하게 차지하고 있다.

문인수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 말투들은 거칠지만 얍삽하지 않다. 양단간에 곧잘 앗사리 뿔랐뿐다.”라고 방언시에 사용된 방언 낱말의 정의를 바로 내린다.

낮은 여항의 일상의 말씨가 결이 곱지는 않지만 솔직한 유민들의 심정을 전해주는 말이라고 했다. ‘혹가다’(우연찮게) 머리에 떠오르는 모어가 아니라 연속의 불연속, 불연속의 연속으로 방언으로만 쓴 시의 한계치를 뛰어넘는다.

울림일까 주문일까? 그러나 경상도 사람 외에는 독해할 수 없는 배타성을 감추기 위해 메시지는 철저하게 감춘다. 이해해 달라는 의미일까? 시인 문인수는 뛰어난 서정 시인이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직관력과 순간순간 변하는 눈길로 풀어놓은 변덕스러운 시적 긴장감이 시의 맛깔을 한껏 돋운다.

이상규의 詩와 方言이야기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