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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어른에 대하여

등록일 2024-05-27 18:01 게재일 2024-05-2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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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어른이 되지만 모두가 좋은 어른이 되진 않는다. /언스플래쉬

스승의 날을 맞아 학생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애틋한 마음으로 함께 문학을 공부했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문득 한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개인적인 상황 때문에 힘들었는데, 그때 내가 좋은 어른의 역할을 해주어서 고마웠다는 것이었다.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나는 오랫동안 좋은 어른을 만나기를 바라왔으나 그것이 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은 보다 크고 본질적인 영역이었다. 연기처럼 피어나는 의문을 곱씹어보았다. 정말 나는 좋은 어른일까. 그러니까 좋은 어른이란 대체 무엇일까.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어른이다. 친구들은 각자 배우자를 찾았고 한 생명의 부모가 되었으며 자기 분야의 전문가로 거듭나는 중이다. 그러나 그건 삶의 모든 부분을 유려하게 운영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있고 내 안의 어떤 부분은 너무나 유치하고 저열해서 차마 글로 쓰지 못할 정도다. 학생들이 보았던 내 모습은 모두 꾸며낸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좋은 사람이라는 가면을 쓰고 어른의 언어를 흉내 내고 있던 것일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꽤 요란스러운 사춘기를 보냈다. 내가 어디에 발을 디디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끊임없이 시스템에 의문을 품었다. 그런 내게 만족스러운 답을 건네주는 어른은 없었다. 부모님은 늘 바빴으며 선생님은 돌발적인 질문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교실에 앉은 아이들은 모두 같은 자세로 앉아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러면 나는 비뚤어진 마음이 들어 교실을 박차고 나와 버리곤 했다. 교무실 한복판에서 벌을 받고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했다. 주먹을 꾹 쥐고 생각했다. 학교를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가면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이십 대의 내가 들떠있던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당시의 나는 나를 옥죄고 있는 모든 형태의 억압에서 벗어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날이 밝도록 술을 마셨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을 흥청망청 썼다. 그런 행동이 즐겁기는커녕 우울하고 불쾌한 감정이 더 자주 찾아왔다. 둘러보면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술집에 둘러앉아 세상의 부조리함에 관해 한참 토로하다 보면 날이 밝았고 나는 패배한 장수처럼 어깨를 늘어뜨리고 집에 돌아와야 했다. 문학하는 선생님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문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날도 잦았다. 그 안에 삶의 거대한 진실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너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어. 이곳으로 넘어오면 너도 답을 알게 될 거야.

시간이 흐르며 나는 내가 제대로 질문하는 법조차 모르는 사람이었단 걸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 자신 있게 정답이라고 외쳤던 것이 그의 오만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고 억지로 움켜쥔다고 해서 내 것이 될 수 없음을 이해하는 순간도 찾아왔다. 기성세대와 대화하면 경험할 수 있는 묘한 장벽 같은 것이 이런 식으로 생성되는 것일까. 정신 차려보니 나는 삶의 한복판에 놓여있었고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었다. 교실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당차게 삶을 박차고 나오고 싶지만 고개를 젓고 자리에 앉게 된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이젠 내가 안다. 도망치는 게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너무 쉽게 타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요즘이다. 규칙적인 운동과 철저한 식단으로 건강을 관리하는 이들과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이들, 괴로운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만든 이들의 이야기를 클릭 한 번이면 무한으로 시청할 수 있다. 그것들은 너무나 매끈하게 빚어져 있어서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은 인생의 답을 찾은 듯하고 그를 토대로 젊은이들에게 ‘인생 조언’을 내놓기도 한다. 그토록 원하던 어른들의 이야기가 우르르 쏟아지는 데도 마음이 채워지기는커녕 헛헛하게만 느껴진다.

시간은 아이를 어른으로 만든다. 모두가 어른이 되지만 모두가 좋은 어른이 되진 않는다. 어쩌면 좋은 어른이라는 건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좋은 어른은 꼭 필요하다. 정신적으로 기댈 곳이 없는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건 믿음이다. 믿음은 타인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어른으로 살아갈 것인지에 관해 상상하고 그것을 믿어야 한다. 거기서부터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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