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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학 개론

등록일 2024-05-27 18:01 게재일 2024-05-2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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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는 자신이 꼰대일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까. /ideogram

어도어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이 한동안 이슈였다. 인터뷰의 내용부터 그가 입었던 의상까지 화제가 되었지만 단연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것들은 그가 사용한 자유분방한 어휘였다. 비어와 속어를 넘나들며 등장시킨 단어들은 하나하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지만 그 중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단어는 바로 ‘개저씨’ 였다.

그것은 나의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나는 어느덧 30대 후반이 되었고, 곧 아이 아빠도 된다. 이제 형, 오빠 소리 들을 나이는 지났다는 이야기이다. 누군가 “아저씨!”하고 외치면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봐야 할 나이. 그 아저씨라는 호칭에 적응을 해야 하는 나이이기 때문에 아저씨와 연관된 단어가 더 인상깊게 남아있는 것이다.

개저씨. 개와 아저씨의 합성어로 중장년층 남성 중 무례하고 꽉 막힌 이들을 속되게 칭하는 말이다. 사실 해묵은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수년 전부터 국민들 상호간에 온갖 혐오들이 난무하며 생겨난 혐오 표현 중 하나이다. 한동안 유행을 타다가 시들해진 말인데, 민희진 대표의 입을 통해 다시 화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무례하고 꽉 막힌 어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하는데 그 대상을 반드시 남성만으로 한정시킬 의도가 없으며, 다소 거친 표현이기에 이 글에서는 기성세대를 지칭하는 오래된 은어인 ‘꼰대’정도로 바꾸어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꼰대란 무엇일까. 이와 같은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다. 몇 해 전,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처음 뵙는 자리에서였다. 처음 만나는 예비 사위와의 대화가 서먹할 것을 우려하신 장인어른께서는 나름 대화를 나눌 만 한 토픽을 하나 생각해 오셨다. “자네는 꼰대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나는 대답했다. “꼰대는 자신이 꼰대일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혹시 장인어른께서 ‘내가 꼰대는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다면 그것은 이미 장인어른께서 꼰대가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장인어른께서는 흡족한 미소를 지어주셨다.

꼰대는 이와 같이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며,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사람이다. 이 두 가지 특성이 절묘하게 버무려져 권위의식이라는 결과물을 도출해내기도 한다. 자신이 젊은 세대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러므로 젊은 세대에 대해 예의를 갖추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들이 바로 꼰대이다.

꼰대들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이들 모두가 그때부터 꼰대였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꼰대는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꼰대의 기질은 사실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자기가 옳다는 아집이 있고, 때로 무례해지는 순간도 있다. 그렇지만 그 정도에 차이가 있고, 그것을 얼마나 잘 억누르고 사느냐의 차이도 있다. 젊어서는 깊은 곳에 숨겨 두었던 꼰대 기질이 나이를 먹으며 자연스레 발현된다. 계기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결국은 ‘그래도 된다’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꼰대 기질 폭발의 시발점이 된다. 무조건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이야기를 쏟아냈는데, 그리고 무례한 행동을 했는데 내게 돌아오는 불이익이 없었던 경험들. 그것이 반복되며 ‘아, 나는 이래도 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이런 것들이 몸에 배며 한 사람의 꼰대가 탄생하는 것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그렇다면 이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유전적으로 질병 인자를 갖고 있다고 해서 누구나 이른 나이부터 그 질병으로 고통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앞으로 발현될 질병을 미리부터 검진을 통해 예방하려 노력하고, 또 누군가는 이 질병이 고개를 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미리 다스리며 질병이 생활을 지배하지 않도록 조치하곤 한다. 우리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미리 스스로에게 ‘내가 혹시 꼰대는 아닐까?’ 하는 질문을 때때로 던져야 한다. 혹시 스스로의 언행을 돌이켜봤을 때, 권위적이었거나 무례했다는 것이 생각난다면 빠르게 사과하고 반성해야 한다.

20대와 30대 시절에는 각기 그 시절에 가지게 되는 특성을 지니며 살아가게 된다. 사람들마다 편차는 있지만 대부분 그 특성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데 40대 이후로는 사람들의 성격이나 라이프스타일이 천차만별이 된다. 누군가는 여전히 20대 못지않게 ‘힙’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30대 못지않게 세련된 삶을 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또 누군가는 40대에 벌써 꼰대, 개저씨가 되기도 한다. 어떤 삶을 살지는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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