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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 목숨을 걸고 쓴 시

등록일 2024-05-27 19:58 게재일 2024-05-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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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죽음과 죽음 사이에/피눈물을 흘리는/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우리들의 아들은/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후략)’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시민군이 계엄군에 의해 진압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수백 명의 희생자를 남기고 비극적으로 끝났다. 그날 광주 전체엔 숨죽인 울음이 가득했다.

당시 32세의 전남고등학교 교사 김준태 시인 역시 평생 안고 갈 트라우마가 생겼다. 동료의 아내가 만삭인 상태에서 계엄군에 의해 죽었고, 며칠 전엔 도청 앞에서 10여 명의 사람이 총에 맞아 피 흘리며 쓰러지는 걸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

김 시인은 팔척장신에 형형한 눈빛이 범을 닮은 강골이다. 하지만, 인간 보편이 느끼는 공포가 그라고 왜 없었을까? 1980년 한국을 지배하던 신군부 앞에서 ‘5월 광주’에 관해 잘못 말했다간 체포와 투옥, 고문을 각오해야 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나, 김준태는 ‘양심을 가진 지식인으로서의 시인’이 되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광주 거리 곳곳에 피 냄새가 채 가시기도 전인 1980년 6월 2일 전남매일신문에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라는 109행의 시가 실릴 수 있었다.

모든 것을 걸고 하는 인간의 행위는 숭엄하다. 앞서 언급된 시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목숨까지 걸고 쓴 것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을 보태랴. 이젠 일흔여섯의 할아버지가 된 김준태 시인이 편찮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목숨 걸고’ 시를 쓸 수 있는 몹시 드문 시인인 그가 5월 광주정신과 함께 앞으로도 오래 건재하길 빈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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