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 선생이면서 두 딸의 아빠다. 그렇다 보니 아직 아이들이 어리지만, 우리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두 딸의 그림자를 발견하고는 한다. 내 자식의 10년 뒤 모습을 마주하며 어떻게 아이를 양육해야 좋을지 따져보는 식이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아이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요즘 아이들과 소통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욕망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 대학에 와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로 대학에 입학한 학생을 종종 만났다. 우리 대학에 오기 전까지 나에게 고등학교 자퇴는 공부와 담을 쌓고 술·담배에 익숙한 학생들이나 하는 행동이었다. 몇 년 전 무표정한 얼굴의 자퇴생을 처음 만나던 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표정의 변화는 없었지만 자기가 왜 고등학교를 더 이상 다니고 싶지 않았는지, 또 고등학교 자퇴 후 여행을 다니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등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이후에도 수업 시간에 그 어떤 학생보다 멋지기 발표하는 학생의 모습을 보면서 자퇴생에 대한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2024학번에도 고등학교 자퇴생이 있었다. 이 학생은 글쓰기 수업의 에세이 쓰기 시간에 자신의 자퇴 경험을 적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어떤 열정을 가지고 학교에 가는 모습과 그저 급식을 먹으러 학교에 가는 자기의 모습을 비교하며 자퇴를 결심했다고 썼다. 학교생활에 별다른 의욕을 느끼지 못하자, 고등학교 3년이 아깝게 느껴지고, 이는 다시 빨리 대학에 가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간의 시간 동안 몰입했던 그림 그리기가 유일한 즐거움으로 남은 학생이었다.
몇 년 사이 별다른 꿈이나 열정이 없는 학생들을 자주 만난다. 어린 시절 자신이 품었던 꿈은 학창 시절을 지나며 각자의 이유로 사라지고 내가 어떤 꿈을 꾸었다는 사실은 아득해진 채 무기력한 상태로 대학에 입학한다. 그렇다고 취업이란 당위명제가 선명한 대학에서 꿈을 발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학생에게 꿈은 직업이 아니라는 간단한 명제를 이해시키는 것에도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조금 다른 경험을 한 친구들은 꿈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아마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고등학생 시절을 자신의 의지로 거부한 경험이 만든 결과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는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평범한 학생들이 목표와 열의를 가지고 대학에 입학하기 어려운 과정이 문제이다. 여기에는 국가와 가정의 분위기가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요즘 초등학교 2학년인 첫째가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자주 한다. 평소 국·영·수 과목에 집중하지 못하고 체육과 미술을 좋아하는 성격이 영향을 미친 탓이다. 그럼에도 일단 국어와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아이가 크면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학교가 바뀌지 않는다면 의지를 가진 아이로 만들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게 키워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