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젠더 문제가 격화된 것은 2018년이었다. 미투(MeToo) 운동을 통해 현직 검사, 연극 연출가, 배우, 정치인 등 유명인의 성범죄에 대한 폭로가 이어졌으며, 2020년에는 유력 정치인의 자살이 사회적 충격을 주기도 했다. ‘페미니즘 리부트’로 명명되었던 2010년대 후반, 일련의 사건은 우리 사회의 성평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새삼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일부 남성들의 혐오 발언이 있었지만, 자성과 변화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이후 우리 사회는 젠더 갈등이 더욱 심해지고 혐오의 감정은 확산하였다. 2021년 도쿄올림픽 메달리스트에 대한 페미니즘 논쟁이나 지난 대선 당시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걸었던 정치인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페미니즘에 대한 양가적 시선은 반복해서 재생산되었다. 특히 2020년 트랜스 젠더 학생의 모 여대 입학을 페미니즘 단체를 표방했던 집단이 반대하며 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여성만을 위한 이념이라는 생각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정치적 지향을 둘러싸고 생겨난 ‘이대남/이대녀’라는 신조어도 우리 사회의 젠더 갈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이다. 이렇게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이념으로 우리 사회에 각인된 듯하다.
최근 본부의 남녀공학 전환 논의에 대학 건물 점거와 수업 거부로 대응했던 모 여대 사건이 보도되며 다시 우리 사회의 젠더 갈등을 가시화했다. 뉴스를 통해 과격한 발언을 하는 여학생들의 모습이 보도되고, 관련 기사를 퍼오며 ‘남성/여성’은 서로를 향한 혐오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이 사태에 대한 내 주위 학생들의 입장도 성별에 따라 둘로 나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우선 여대의 남녀공학 전환이라는 대학의 정체성을 변경하는 중요한 문제를 학생들과 소통 없이 진행하려는 본부의 태도가 문제이다. 학령위기의 급격한 감소라는 위기 앞에 남녀공학 전환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는 공감하지만, 학교의 본질을 뒤바꾸는 사안을 학내 구성원과의 협의 없이 진행하려는 독단적 태도가 일을 키웠다. 대학의 의사결정과정이 내재한 위계적 시선이 새삼 드러난 것이다. 학교 발전이란 대의에 모두 공감한다면 각자의 각론을 열어놓고 지루하지만, 꼭 필요한 토의의 과정을 거칠 수는 없었을까. 다시 말해 페미니즘이란 우리 사회 전반의 의사결정에 내재한 위계성을 재고하는 시각일 수 있다. 일상의 페미니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러한 시각은 그간의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페미니즘 혹은 젠더적 시각에서 세상을 본다는 것은 남성/여성의 이분법을 포괄한 위계와 배제의 시선을 인식하고 넘어서는 일이다. 대학의 의사결정권자들이 학내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학내 구성원을 배제하는 행위가 담고 있는 폭력성과 거기에 내재된 위계의 시선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더 나아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사회의 위계성을 파악하고 해결하고자 노력할 때 끝을 알 수 없는 젠더 갈등을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