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라는 웹소설이 있다. 소설은 환경오염이 심각해진 가까운 미래에 우주 개척마저 한계에 이르자, 거대 자본을 가진 강대국들이 심해를 개척한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심해기지에 도착한 치과의사 박무현은 부임 후 5일 만에 기지가 물에 잠기는 사태에 직면한다. 심해기지는 빠른 속도로 차오르는 물과 거주 인원보다 턱없이 부족한 탈출 보트 등으로 위기의 순간을 맞고, 사람들은 자기만 살겠다는 생각에 총을 난사하는 등 극단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설은 박무현이 주변 사람들에게 선의를 베풀고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반발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초점을 둔다. 가령 박무현은 생명이 위태로운 절체절명의 순간에 탈출을 미루고 동물을 구하거나 다른 사람을 돌보는 행위를 한다. 선의를 가진 박무현은 곧 죽음을 맞게 되지만 현실로 회귀하여 반복해서 탈출을 시도한다. 보통의 회귀물 웹소설과 다르게 박무현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처음부터 박무현의 관심사는 자신의 안전이 아니라 우리의 안전에 있었다. 이런 박무현의 행동을 일부 사람들은 ‘위선’이라고 비판했지만, 박무현은 ‘선의의 순환’을 생각하며, 무엇보다 자신의 행위가 타인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한 행동이라고 강변한다.
지난 12월 3일 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많은 국민이 고통받고 있다. 이전부터 수많은 시국선언이 있었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더 많은 곳에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과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정치집단은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권 연장에 급급한 모습이다. 최소한의 양심도 발견하기 어려운 이들의 뻔뻔함은 분노를 일으키지만, 한편으론 익숙한 것이다. 그렇다고 탄핵을 주장하는 정치집단을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현 대통령의 탄생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주목한 것은 이번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에 동조한 사람이다. 국회의 긴급현안 질의에 참석한 이번 사태의 동조자들은 하나 같이 잔뜩 위축된 표정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상부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따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아닐까. 막상 내가 그 위치에서 상부의 명령을 용기 있게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누군가를 쉽게 비난할 수 있지만, 자기의 양심을 지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의 양심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대통령 탄핵이 반복되는 현실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지금 대통령은 바로 우리 손으로 직접 뽑았다는 점에서 나의 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생업이 발목을 잡지만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다시 거리로 나서야 한다. 그렇게 선의의 순환이 이루어질 때 조금 더 나은 세상이 올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바로 나와 나의 아이들을 위해 다시 거리로 나가야 한다. 다시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