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정신건강이 좋지 않은 학생이 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쩌다 있는 예외적인 경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상당히 많은 학생이 아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동료 교수들과 만나 이야기하며 우리 대학만이 아니라 전국 모든 대학의 학생이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자살률이 OECD 국가 1위라는 불명예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 있지만, 이와 별개로 청년들의 정신건강은 계속 안 좋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 학기에 만난 어떤 학생은 스물여덟 살이란 나이에 특별한 관심사가 없는 자신의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제대 후 아버지 사업을 도우며 이 년을 일하고 졸업장을 받아 오라는 부모님 말씀에 따라 복학했지만, 학업에 특별한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졸업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조급함과 진로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던 학생은 한참이 지나서야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나는 현재 상황을 부모님과 공유하고 치료받기를 권했지만, 그 학생은 부모님께 자신의 병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또 다른 학생은 어머니와의 갈등이 정신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 경우였다. 오빠와 자신을 차별하는 할머니와 이를 모른 척한 어머니의 태도가 누적되며 학생은 마음이 아프고 모든 일에 자신감을 잃었다. 어린 시절부터 누적된 이러한 경험이 만든 삶의 태도가 더 큰 도약을 해야 하는 학생의 마음을 끌어내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어머니에게 자신의 병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첫 번째 학생과 비슷했다.
두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답답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두 학생은 자신의 아픔을 오롯이 혼자서 감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의 노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 대학도 그렇지만 많은 대학이 정신건강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검진을 진행하기도 한다. 분명 과거보다 대학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책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문제의 본질은 두 학생의 경우처럼 학생들의 정신건강은 미성년기부터 누적된 결과라는 점에 있다.
11월 14일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올해 수능을 친 학생들은 2025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한다. 수험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험을 마치면 누군가는 자신이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해 좌절하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다. 반대로 원하는 성과를 얻은 경우에도 대학 자퇴생의 증가라는 지표가 보여주듯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쪽이든 중고등학교 시절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공이 아니라 실패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그리고 실패한 아이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감싸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경쟁이 아니라 협동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지 않으면 마음이 아픈 청년은 계속 증가할 것이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더욱 감소할 것이다. 이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