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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과 문해력

등록일 2024-10-28 18:21 게재일 2024-10-2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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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지난 10일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이후 작가의 소설 판매량이 급증하여 단시간에 100만 부가 넘게 팔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또한 작가가 과거 정권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사실이 소환되어 정치적 쟁점이 되기도 했으며, 어떤 소설가는 한강의 소설이 역사를 왜곡했다고 주장하며 스웨덴 한림원 평가의 공정성에 의문을 표했고, 어떤 학부모 단체는 한강의 소설이 왜곡된 성 관념을 학생들에게 주입할 수 있다며 도서관 비치를 반대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정치와 경제, 그리고 교육 영역에 걸쳐 다양한 논쟁점을 만들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평소 문학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작품을 구매하는 현상은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어쨌든 소설책을 사서 읽고 한 번쯤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강의 소설이 역사를 왜곡했으며, 청소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왜곡된 역사관과 인식론을 증명하는 것이지만, 이로부터 작품을 깊이 읽고 해석하는 능력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나는 오래전부터 한강의 소설을 학생들과 읽어왔다. 특히 2016년 맨부커상을 받은 ‘채식주의자’를 많이 읽혔다. 이 소설집은 세 편의 연작소설로 구성되어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젠더 이분법과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다루고 있다. 그동안 많은 학생과 각자의 경험을 나누며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지만, 일부 학생들은 ‘채식주의자’에 수록된 ‘몽고반점’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소설의 전체구조를 읽지 못하고 형부와 처제의 육체적 관계라는 사건에만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삶의 윤리를 이야기하는 소설이 그들에게는 매우 부도덕한 작품으로 인식된 것이다. 차분하게 이야기해도, 그 학생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소설을 깊이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은 성인이 된다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기부터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대학생, 즉 성인이 된 학생들의 인식력과 판단력은 어지간해서는 잘 바뀌지 않는다. 직접적으로 말해서 청소년기에 ‘채식주의자’와 같은 도서를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지 않은 학생이 대학생이 된다고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 아직 미성년이어서 성을 소재로 한 작품을 읽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청소년기 학생들은 이미 온갖 성과 관련한 콘텐츠에 노출되어 있다. 부모나 선생이 통제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이럴 때 검증된(?) 소설 텍스트를 읽고 토론하며 문해력을 키우는 것이 현명한 일 아닐까.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K-콘텐츠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를 넘어서, 우리 국민이 사회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을 키우는 동력이 되길 바란다. 한강 작가의 소설에는 ‘한국’을 넘어서 전 세계인이 공감하는 통찰이 담겨 있다. 그렇지만 누구나 이 통찰을 읽어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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