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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극락을 만들라

등록일 2024-05-27 19:58 게재일 2024-05-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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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까마득한 후배 교수와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교정을 거닐었다. 봄은 무르익었고, 오가는 사람들은 무심하거나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나는 혼자 근심을 짊어진 사람처럼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세상은 곳곳이 모두 잘못되지 않은 것이 없건만, 제대로 된 쪽으로 미래 삶의 방향을 틀려 할 때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과 싸움을 벌여야 하는 힘든 길을 걸어온 것이다.

내가 소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답함’에서 하루키의 논리에 대항하고자 했던 것이 쓸데없는 만용이었던 것 같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루키는 말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동안 세 가지 네 가지 문제들이 발생할텐데, 왜 하나뿐인 귀중한 인생을 그렇듯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허비한단 말인가.

그때 나는 어떻게든 하루키가 옳지 못하다고 말하고 싶었고, 그의 허무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아내고 싶었다. 오죽하면 하와이에서 하루키가 낭독회를 연다는 소식을 접하고 하루키와 주인공이 만나는 한 장면을 쓰기 위해 왕복 250만원이 드는 난생 처음의 하와이 여행을 계획했더란 말인가.

이 소설을 쓴 후, 얼추 십년이 흐른 것 같다. 나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했고, 나는 더 많은 문제들에 휩쓸려 있다. 나는 하루키가 비난했던, 나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들에 시간을 바쳐 왔다. 남은 것이 없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젊은 후배가 나를 위해 하나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만해 한용운이 삼일운동으로 감옥에 가서 2년 6개월인가를 살았더란다. 수감되었던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하게 듣지 못했다. 검색으로 확인해보고 싶지만 지금 그럴만한 힘도 없다. 아무튼 긴 시간이다. 감옥에서 나오니, 세상은 지옥과도 같았다고 한다. 그때 만해가 깊이 생각한 끝에 얻은 경구가 하나 있다고 한다.

“지옥에서 극락을 만들라.”

나는 이 말을 듣고 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고작해야 스물한 살 때 겨우 한 달을 유치장, 구치소, 교도소를 속성으로 졸업한 내가 아니던가. 만해가 겪은 고통의 크기는 실로 헤아릴 수가 없다.

그리고 감옥에서 나와서 본 세상은 이광수의 ‘재생’이나 현진건의 ‘적도’에 나오는 현실처럼 끔찍했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 지옥을 극락으로 만들겠다니, 이런 의지의 정신력은 과연 어디서 솟아나는 것인가.

만 하루가 지난 후 나는 하루종일 집에 틀어박혀 외솔 최현배의 시조에 나타난 ‘님’에 대해 쓰고 있었다. 만해에게만 ‘님’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외솔에게도 ‘님’은 있었다.

캄캄한 밤이 되었다. 알고리즘 때문인지 내가 일을 하면서 틀어놓은 유튜브에서 어떤 연세드신 선생 한 분이 성경 강의를 하신다. 열왕기였는지 요한계시록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한마디 말만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고통을 영광으로 만들라.”

옛사람들은 인생이 얼마나 힘든지 진정한 것을 구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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