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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군위의 신공항 열매, 대구경북과 함께 나누겠다”

경북 군위군이 다음달 1일 대구광역시에 편입된다. 군위군은 다음달 1일부로 시행되는 ‘경상북도와 대구광역시 간 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구광역시 군위군’으로 새로운 행정시대를 맞는다.경북도와 대구시는 지난 2020년 7월 군위군의 대구광역시 편입을 전제조건으로 군위군 소보면과 의성군 비안면에 대구경북신공항을 건설하기로 공동합의했다.군위군의 대구광역시 편입은 지난 1895년 군위현에서 군위군으로 승격하고 1896년 8월4일 ‘13도제 실시’에 따라 경상북도에 속한 지 127년만이다. 또 군위군이 이웃한 의흥군을 통합해 현재의 모습인 ‘경상북도 군위군’으로 개편된 1914년 이후 109년만이다.특히 군위군 대구광역시 편입은 국가 정책적 목표로 이뤄진 기존의 광역시 편입 사례와는 달리 지방자치단체 간 합의로 이루어진 첫 사례로 기록된다.인구 2만3천명의 군위군이 대구시 편입되면 행정, 복지, 의료, 교통, 교육 등 사회전반에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대구시 편입을 앞둔 김진열 군위군수로부터 대구시 편입과 관련한 준비 상황과 대책, 비전 등을 들어봤다. -그동안 대구시 편입 준비 과정 전반을 진두지휘해 왔는데,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전직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군정 전반에 대해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중이다. 대구편입으로 인해 행정과 복지 등 사회전반에 많은 변화가 생긴다. 군민들의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다. 모든 군민들이 편입의 혜택을 골고루 누릴수 있도록 남은 기간 부족한 부분이 없는지 철저히 준비하겠다.-아무래도 행정적이나 지방재정적인 부분에서 많은 변화가 있 을것 같은데, 편입이 되면 당장 무엇이 달라지나.△경상북도에서 대구광역시로 행정구역이 변경된다. 1896년 13도제 편제에 따라 경상북도에 소속된 이후 128년만이다. 행정, 교통, 교육, 산업 분야 등에서 크고 다양한 변화가 예상된다. 무엇보다 전형적인 농촌인 군위군의 도시화 진입이 가장 큰 의미를 지닌다. 교통망 확충과 첨단산업단지 조성, 항공산업기반 확대, 생활환경 개선 등의 도시화가 가속화할 것이다.-주민들이 피부로 바로 체감할 수 있는 행정서비스는 어떤 것인지.△군민들의 생활과 가장 밀접한 상수도가 대구시상수도사업본부로 이관돼 체계적이고 깨끗한 식수를 공급받을 수 있다.학군이 조정돼 군위군에 있는 고교생은 대구의 1학군으로 편입되며, 중학생은 대구지역 추첨 배정고를 포함한 모든 학교에 지원할 수 있게 된다.경북경찰청 관할인 경찰사무가 대구경찰청으로, 경북 의성소방서 관할인 소방사무는 대구 강북소방서로 변경된다.무엇보다 군민들의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해 진다. 군위군 지역에 시내버스(급행) 노선이 신설되고 마을버스가 도입된다. 택시요금체계도 통합운영된다. 택시요금체계를 대구광역시 기준으로 통합하고 군위군으로 이동 경우 요금부담 경감위해 시계외할증요금은 적용하지 않는다.지역 어르신 통합 무임교통카드도 발급된다. 통합 무인교통 지원 대상은 올해 75세를 시작으로 해마다 1세씩 대상 연령을 낮춰 2028년에는 70세 이상 어르신은 시내버스(경산·영천 포함)와 도시철도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교통약자 이동 편의 지원서비스 통합, 확대 운영해 군위군 지역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도 크게 신장된다.기존 ‘군위 행복나드리콜’을 ‘대구 나드리콜’로 통합 운영하면서 차량 대수를 기존 특별교통수단 4대에서 14대(특별교통수단 6, 교통약자콜택시 8)로 늘릴 예정이다.-대구편입을 앞두고 지역에서 가장 낙후된 군위를 교육특구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구상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교육정책은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기반의 문제이다. 광역 교통망 확충과 산업기반 조성, 정주환경 개선이 되면 인구유입과 학생 수 증가로 이어져 교육기관과 시설이 크게 확충되게 된다. 군위군교육발전위원회는 약 220억 가량의 교육발전기금 조성하고 다양한 장학혜택과 교육 지원을 해오고 있다. 군위인재양성원이 종합 학생지원센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 대구편입에 맞추어 IB교육 도입하는 등 미래 인재를 길러낼 수 있도록 교육자유특구 지정사업을 구상하고 있다.-대구경북신공항 건설이 탄력을 받을것으로 기대한다. 군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대구경북통합신공항은 단순히 공항만 옮기는 것이 아닌 공항을 통한 산업구조를 개편하는 대역사이다. 200만평에 첨단상업단지와 에어시티 조성 등 공항복합도시를 건설할 계획이다. 항공산업 종사자 및 군인 등 인구 유입이 크게 증가하면 인구 15만 자급자족형 공항도시로 발전이 예상된다. 하늘길이 열리고 광역교통망이 확충돼 중남부권의 물류를 담당할 항공교통물류 허브도시로 도약할 것이다.-인구변화도 있을 듯한데.△인구변화는 군위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의 문제이다. 경북을 비롯해 전국의 지방중소도시들이 인구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하지만, 군위군은 신공항과 대구편입으로 다행히 인구소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통합신공항이 속도를 내고 대구편입이 완료되면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져 젊은 인구 유입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K2 영외관사 배치로 2천세대, 통합신공항 건설에 따른 취업유발인구 4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다 광역교통망 확충으로 인한 점진적 도시화, 출산에서 대입까지 책임지는 다양한 교육지원사업, AI명의 사업 등 스마트 건강관리서비스를 통한 정주여건이 개선되면 인구 유입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마지막으로 군민과 대구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7월 1일이 되면 대구광역시와 군위군이 행정구역상 하나가 되는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에 와 있다. 지방소멸 1순위인 군위군은 대구라는 날개를 달고 새롭게 도약하고 대구시는 전국 최대광역시로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특히 대구경북신공항 건설은 대구에는 후적지를 활용한 UAM(도심항공교통) 특화도시 구현을, 군위에는 항공물류와 배후산단에 따른 인구유입으로 자립도시 구현이 가능해 졌다.경제적 효과가 51조원, 취업유발인구가 40만 명이라는 열매를 군위군만이 아닌 대구경북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또한 공항 접근성을 향상을 위한 땅길, 철길의 광역교통망으로 대구와 군위의 접근성은 비약적으로 향상될 것이며 이 역시 군위만의 혜택이 아니라 대구경북이 함께 성장하는 기회의 장이 될 것이다. 대구편입, 통합신공항, 덧붙여 군부대 이전까지 이 3대 키워드로 대구시와 군위군이 상생할 수 있는 그날의 기쁨을 군위군민뿐만 아니라 대구경북 시도민과 함께 나누고 싶다.군위/김현묵기자 muk4569@kbmaeil.com

2023-06-21

지략 갖춘 무장·베테랑 외교관, 생사에 깃든 빛과 그림자

서기 660년 백제에 이어 668년 고구려가 신라에 병합된다. 이로써 이른바 삼국통일(三國統一), 혹은 삼한일통(三韓一通)이 완성된 것이라 역사학자들은 말한다.7세기 중반에서 후반은 한반도에 존재했던 나라들 사이에서 수많은 전투가 벌어졌고, 다양한 방식의 외교 전략이 구사됐던 시기다. 오늘날까지도 구전되는 당시의 인물과 사건들이 숱하다.7세기 우리 땅은 어느 시대보다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드라마틱한 공간이었다. 신라, 고구려, 백제는 서로 경쟁하거나 갈등하면서도 때로는 필요에 따라 협력관계를 이어가며 각자의 국력을 키우는데 전력했다.앞서 말했듯 이 과정에서 수많은 전쟁과 전투, 외교 협상과 비밀스런 사건이 발생했고, 오랜 시간이 흐른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은 인물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신라가 어떤 방식을 통해 백제와 고구려를 복속시켰으며, 압도적 우위의 국력이 없었음에도 삼국통일에 성공한 고대국가로 기록될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아보는 건 역사를 통해 현대를 해석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유의미한 행위이자 과정일 터. ◆ 영화처럼 흥미로운 7세기 신라를 찾아가는 여행본지는 2023년 ‘경주의 재발견’이란 타이틀 아래 연중기획으로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벌어진 여러 사건과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긴 당시 인물들의 행적을 세밀하게 추적하고자 한다.이는 7세기 신라는 물론, 21세기 현재의 경주를 바라보는 독자들의 호의적 관심을 유발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미래’를 설계하는 가장 주요한 재료는 ‘과거’다. 지난날은 다가올 날의 거울이 된다. 바로 그 지난날, 즉 과거의 총합이 역사라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다소 멀어졌다는 느낌을 받는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과 통일이 가지는 의의.이것들을 다시 한 번 면밀하게 반추함으로써 7세기 한반도의 역사를 환기시키고, 경주시민과 경주를 찾는 여행자들에게 역사를 알아가는 즐거움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 역시 본지의 연중기획 목적 중 하나다.김유신, 무열왕 김춘추, 문무왕, 황산벌전투, 당시 신라와 당나라의 역학관계, 화랑, 백제와 고구려의 마지막 왕이 겪은 수모와 치욕….이 모든 사건과 인물이 등장하는 7세기 한반도. 그 어떤 영화보다 흥미진진한 그 시절을 향후 경주 현장취재와 관련 논문 검토, 가상 역사소설과 당시를 다룬 문학작품의 해석 등을 통해 다시금 돌아보고자 한다. ◆ 김유신, 신라의 대표적 화랑으로 ‘仁(인)’을 실천하다지난주 목요일. 삼국통일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김유신과 무열왕 김춘추의 유택(幽宅)을 돌아보기 위해 경주로 갔다. 초여름 날씨는 생각보다 더웠고, 조금만 걸어도 흐른 땀이 셔츠를 적셨다.다행히 김유신의 묘와 무열왕릉은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멀지 않았다. 먼저 찾은 곳은 충효동에 자리한 김유신의 묘. ‘신라 태대각간 김유신 묘(新羅 太大角干 金庾信 墓)’라는 글씨가 새겨진 비석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태대각간’은 지금의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을 합친 특별한 관직이다. 김유신이 이 벼슬에 오른 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668년 고구려를 병합하는데 세운 공을 인정받은 것.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이상훈 연구교수는 그의 논문 ‘삼국통일기 화랑정신과 김유신의 리더십’에서 7세기 ‘대표 화랑’ 김유신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설명하고 있다.“신라의 삼국통일은 우리나라가 하나의 단일국가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 되었다. 삼국 가운데 가장 약했던 신라는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고, 유연한 사고를 가졌다. 특히 삼국통일과정에서 전쟁에 참여한 화랑집단의 활약은 돋보였다. 이들은 세속오계를 화랑정신의 근본으로 삼고 전쟁에서 물러나지 않고 국가에 대한 충성을 다했다. 화랑정신은 충효사상과 직결되었고, 신라의 장수들은 충효사상을 바탕으로 솔선수범함으로써 부하들을 이끌었다. 이러한 변혁기에 화랑정신을 몸소 구현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김유신이다.”당시 김유신이 가졌던 권력과 권한의 크기는 조성된 묘역만 봐도 어렵지 않게 추정이 가능하다.직경 15.8m 높이 5.6m의 거대한 봉분에 38개의 탄탄한 난간석을 둘렀고, 묘를 호위하는 십이지신(十二支神)까지 탱석에 새긴 것. 이는 여타 신라 왕릉의 규모와 화려함을 압도하는 것이다.사실 김유신은 사후 흥무왕(興武王)으로 추존(追尊·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이에게 임금의 칭호를 주는 것)되기도 했다.앞서 언급한 이상훈 교수의 논문은 김유신의 당대 활약상과 그가 귀하게 여겼던 정신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이런 대목이다.“김유신은 629년 낭비성 전투에 참가해 신라군의 사기를 끌어올렸으며, 642년 압량주 군주로 임명돼 지방의 군사력을 새롭게 확충했다. 이후 660년 백제의 멸망과 668년 고구려의 멸망에 직간접적으로 활약하였으며, 나당전쟁에도 깊이 관여한 것으로 여겨진다. 김유신은 삼국이 통일되는 시기에 태어나 화랑정신을 바탕으로 삼국을 통일하는 주역이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仁(인)’을 몸소 실천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이처럼 살아서는 그 나라 최고위직 관료가 됐고, 죽어서는 왕으로 추존됐으며, 1천40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무시로 오르내리는 이가 바로 김유신이다.그러나, 인간의 생애엔 빛이 있다면 그림자도 있는 법. 김유신 역시 마냥 행복한 사람만은 아니었다. 김유신의 삶과 죽음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에 관해서 차차 알아보기로 한다. ◆ 서악동에 남은 ‘신라 최고 외교관’ 김춘추의 흔적들신라의 스물아홉 번째 통치자 무열왕의 이름은 김춘추. 그 역시 김유신만큼이나 사람들에게 친숙하다. 유명세로 따지자면 신라시대 인물 중 으뜸과 버금을 다툰다.김유신이 지략을 갖춘 단호한 무장(武將)이었다면, 동시대를 살았던 김춘추는 당대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능숙하게 파악하고, 이를 전략과 전술에 능란하게 적용시킬 줄 알았던 ‘베테랑 외교관’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그가 묻힌 무열왕릉은 경주시 서악동에 있다. 김유신 묘를 살핀 후 가볍게 점심을 먹고 무열왕 김춘추의 유택을 향했다. 두 무덤 간의 거리는 멀지 않다. 택시로 10분 안팎이면 도착이 가능하다.역시 ‘신라 태종무열왕릉비(慶州 太宗武烈王陵碑)’라 적힌 묘비가 제일 먼저 기자를 반겼다. 661년 세상을 떠난 무열왕의 탁월한 외교력에 관해선 ‘신라 천년의 역사와 문화 편찬위원회’가 간행한 ‘통일신라 시기 1-중앙과 지방’에 간략한 서술이 등장한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전략) 뛰어난 외교가 김춘추는 대내외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고구려, 왜(일본), 당(중국)을 대상으로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쳤다. 이는 결국 통일전쟁이 단순히 삼국 간의 싸움에만 한정되지 않고 동아시아 여러 나라가 참전하는 국제전(國際戰)의 성격을 띠게 만들었다. 신라가 삼국 통일전쟁에서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었던 요인은 성공적 외교에 있었다.…(후략)”무열왕 김춘추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엇갈린다. “당(唐·당나라)이라는 외세를 통일전쟁에 끌어들인 사대주의자”라는 사학계의 비판적 견해는 몇몇 상업영화를 통해 대중들에게 전달되기도 했다.하지만, 7세기 신라의 입장에서 ‘외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한 문제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고운기의 ‘인물한국사’는 이에 관해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비교적 호의적인 평가다.“김춘추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특히 당나라 군대를 끌어들인 데 대해 그렇다. 그러나, 냉정히 따졌을 때 당대 세계문명의 중심인 당과의 외교에 한발 앞선 신라의 노력을 평가절하 할 수는 없으며, 백제건 고구려건 신라로서는 당과 마찬가지로 외국이었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앞으로 전개될 연재기사에선 김유신과 마찬가지로 무열왕 김춘추의 생사에 깃든 빛과 그림자에 관해서도 탐구해 볼 예정이다.(계속)/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사진/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2023-06-20

고령 ‘어메이징 가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꿈 영글다

최근 고령군은 오는 9월 예정인 가야고분군(지산동 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대비 체류형 지역특화 관광상품인 ‘어메이징 가야(Amazing Gaya)’가 경북 대표 관광상품 왕중왕전에 최종 진출했다고 알렸다.경상북도는 관광객 1억 명 유치를 위한 관광활성화 붐업과 체류형 관광 활성화로 생활인구 증가와 지역경제를 살리고자 꾸준히 노력해왔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경쟁력 있고 잠재된 관광상품 발굴을 통해 경북 대표 관광상품을 선정하고자 군위군을 제외한 22개 시·군을 대상으로 이번 공모를 진행했다.1차 서류심사에서 권역연계형(2개 시·군 이상 구성) 3개 상품, 단일시군형(1개 시·군 구성) 15개 등 18개 상품계획서를 평가해 9개 상품이 이 심사를 통과했고, 지난 9일 2차 프레젠테이션 발표 심사를 통해 최종 6개 상품(권역연계형 2, 단일시군형 4)이 왕중왕전 본선에 진출했다.이번 ‘경북 대표 관광상품 왕중왕’에 선정된 여행상품은 방송캠페인, 스팟광고 등 홍보마케팅과 여행전문가들이 실제 상품을 체험해보는 참가자 평가, 관광박람회의 상품 홍보 등을 거쳤다.이후 참관객 현장 평가, 방송사 특집방송을 통한 시청자 평가 등을 거쳐 연말 최종 ‘왕중왕’상품 1개를 선정하고 내년 사업비 지원과 상설 운영을 진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 고령, 경북 유일의 가야문화권 관광상품 개발에 주력고령군에서 신청한 ‘어메이징 가야(Amazing Gaya)’는 경북 유일의 가야문화권 관광상품 개발과 운영으로 양적인 측면에서 체류형 관광객 유치 증대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질적인 측면에서도 관광 트렌드를 반영한 야간 관광으로 여행자들의 만족을 높이는 것도 사업 목적으로 하고 있다.지산동 고분군은 고령군을 병풍처럼 감싼 해발 310m의 주산으로부터 남쪽으로 뻗은 가지능선을 따라 형성돼 있다.능선의 꼭대기 지점엔 비교적 대형 고분이 분포해 있고, 그 주변으로 대형 고분보다 작은 봉분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형상을 보인다. 지금까지 확인된 봉토분은 706기로 알려져 있다. 봉토가 남아있지 않은 소형 무덤을 포함하면 수천 기의 고분이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지산동 고분군은 5세기부터 6세기에 걸쳐 축조된 대가야 지배층의 집단묘역으로 추정된다. 긍정적 시각을 가진다면 대가야의 역사가 현대에 와서 고령군의 빼놓을 수 없는 관광자원이 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이런 점을 감안해 ‘어메이징 가야’의 핵심 프로그램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예정인 지산동 고분군 야간 트래킹이 당연히 포함됐다. 여기에 국악기 가야금 연주 체험, 전통엿 만들기 체험, 대가야복식(한복) 체험, 가야금 퓨전공연 등이 더해졌다.이와 더불어 참가자 체험프로그램인 족욕 체험, 지역특화음식 미식 체험, 전통주인 대가야 스무주 체험과 오는 7월에 촬영 예정인 음악·예능 방송프로그램을 통해 창작되는 지역송(노래) 부르기 등으로 구성했다.특히, 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을 스토리텔링화 한 대가야 궁성지와 왕정을 방문하는 것으로 다른 프로그램과의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 주목된다.고령의 지산동 고분군을 비롯해 가야고분군은 오는 9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가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이런 상황에서 시의적절하게 추진되는 경상북도의 대표 관광상품으로 ‘어메이징 가야’를 브랜딩하고, 차별화된 관광 콘텐츠를 개발·운영하며, 다양한 온·오프라인 홍보채널을 통해 관광상품을 적극적으로 알릴 계획인 것이다.고령군은 이번 경북 대표 관광상품 왕중왕전 최종 진출로 관광상품 판매 활성화와 관광객 유치 증대, 체류시 야간관광을 통해 여행자들의 만족도를 높인다는 복안을 마련했다.이는 궁극적으로 경북 유일의 가야문화권 체류형 관광상품 개발, 고령의 관광이미지 및 관광객 수용태세 개선, 야간 관광 활성화로 이어져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클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 고령 딸기 활용한 전용서체 개발로 지역 정체성 알려고령군청 관광진흥과 관광마케팅팀은 민선 8기의 시작과 더불어 지역 관광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달성군과 달서구 등 낙동강을 인접하고 있는 지자체간 연계 관광사업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진행했다.또, 투어버스 ‘달리고(달성군+달서구+고령군)’사업도 의욕적으로 추진했고, 지난해 10월 한 달간 고령 방문 캠페인으로 ‘고령 관광의 달’을 기획해 17개 세부사업을 치밀하게 실행했다.특히, 지역특산물인 고령 딸기를 활용한 전용서체 개발을 완료하고, 전 국민이 사용할 수 있도록 무료로 배포해 지역의 정체성을 대외적으로 알렸다. 또한, 이를 관광 안내, 상품 포장, 홍보인쇄물 제작 등 다양한 분야의 산업디자인에 적용해 활용도를 높이기도 했다.사실 고령군은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농산물이 다른 어느 지방자치단체보다 많다. 수박과 감자에 이어, 얼마 전부터는 양파까지 소비자들에게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딸기 역시 제외하면 안 될 고령의 특산물이다.오늘날 우리가 먹고 있는 재배종 딸기는 유럽과 미국에서 자생하던 몇몇의 야생종을 교배시킨 것인데, 본격적으로 기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무렵이다. 고령군에서는 1973년에 처음 딸기를 재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해 쌍림면 안림리 600여 평 밭에 딸기 모종이 처음으로 심어졌다. 이후 1980년부터 ‘반촉성 재배’가 일반화됐고, 1982년에는 쌍림면 곽해석 씨 등이 촉성재배를 시작했다는 것이 고령군청의 설명이다.고령 딸기가 현재의 전국적 명성을 얻기까지는 농민들의 적지 않은 노력이 있었다. 고령에서 딸기를 기르는 농민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가야산 줄기 미숭산과 만대산의 깨끗한 물과 그 일대 기름진 흙이 고령 딸기의 맛을 알렸다”고. 이에 더해 “유기농법에 의한 재배도 품질 향상의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명품 딸기가 된 것이니, 고령군민들이 딸기에 관해 가지는 자부심은 크다. 그러니, 지역 특산물인 딸기를 관광 활성화에도 접목시킨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그렇기에 고령군은 ‘카페 청솔로9’와 공동으로 지역특산물 고령 딸기를 활용해 관광마케팅 협력사업을 위한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이를 통해 FB 상품라인을 출시해 농가의 소득 증진은 물론, 협력마케팅으로 지역 이미지 향상과 매출 확대도 실현 중인 것. 이는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 ‘관광 3.0시대’를 열어갈 고령군 만들기 위해 노력고령군은 올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대비하고 군정 목표에 부응하고자 가일층 적극적 행정을 펼쳐 △한국관광공사의 강소형 잠재관광지 발굴·육성사업 △디지털 관광주민증 사업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만들기 지원사업 △경상북도의 시·군 대표 관광자원 발굴·육성사업 △경북 대표 관광상품 왕중왕전 공모에 선정됐다.군청의 1개 팀이 5개의 공모사업에 도전해 모두 선정되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린 것이다.이에 관광업 전문가들은 “민선 8기 들어 3건의 업무협약과 더불어 즉각적인 후속사업 추진으로 상생협력과 관광의 시너지 효과가 상승되고 있다”는 호평을 하고 있다.고령군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각오다. 2023년 관광마케팅팀 본예산의 2배 이상을 공모사업으로 확보했으니, 하반기부터는 선정된 공모사업과 상호 연계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관련 행정 절차에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이와 관련해 고령군청 최용석 관광진흥과장은 “지산동 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보다 적극적인 관광마케팅 행정을 펼쳐 국·도비 예산울 확보하고, 특화된 관광상품 개발과 보다 많은 관광객 유치로 고령의 관광 3.0시대를 열어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전병휴 기자 kr5853@kbmaeil.com

2023-06-19

“임업 공무 30년, 산은 늘 들인 노력보다 더 크게 보상하죠”

나무 그늘을 찾게 되는 계절이 왔다. 포항시 청하면 소재지에서 폭이 좁은 곡선도로를 15분간 오르면 무음(茂蔭)의 수목원을 만난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고산수목원인 경상북도수목원이다. 해발 650미터에 위치한 이곳에는 3천여 종의 식물과 백여 종의 희귀식물이 서식한다. 지형을 그대로 살린 산책로 또한 산 구릉의 굴곡을 닮았다. 수목원의 계절은 도심과 다르다. 봄꽃은 늦게 피고 단풍은 일찍 든다. 우거진 나무의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여름에는 평균 기온이 4도 이상 낮다. 구태의연한 계절과 조금씩 어긋난 계절을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다. 경상북도수목원의 이종환 관리소장을 만났다. - 타 지역과 다른 경북수목원의 특징은 무엇인가.△전국에 68곳(국립 4, 공립 36, 사립 28)의 수목원이 있지만 고산지대는 드물다. 고산에 조성하다 보니 나무는 그냥 두고 평탄한 전답이 있던 곳에 전시원을 조성했다. 도심의 수목원보다 경관이 잘 보존되고 자연과 어우러진다. 지정 면적도 전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넓다.-고산지대니 수종도 다르겠다.△참나무가 우세한 혼효림이다. 고산지대 치고는 굴참나무가 많아서 양묘협회 관계자들이 신기하다고 말하더라. 굴참나무는 표피가 두껍고 나뭇잎에 수분이 많아 화재에 강한 ‘내화 수목(耐火樹木)’이다. 참나무류와 함께 우리나라 극상수종(極相樹種·안정된 숲에서 나오는 수종)인 서어나무도 많다. 서쪽에 있는 나무라는 뜻의 ‘서목’이 변한 이름이다. 줄기 모양이 사람 근육처럼 울퉁불퉁한 것이 특징이다.-수목원마다 대표하는 식물이 있다. 경북수목원이 자랑하는 희귀종이 있다면.△수목원 내 망개나무 자생지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망개나무는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로 세계적으로 희귀한 수종이다. 충청도와 경북 북부에만 보이는 고산수종으로 경북수목원의 깃대종(한 지역의 생태계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종)이다. 경북수목원에 많이 서식하는 희귀식물은 백리향과 노랑무늬붓꽃이다. 울릉도 식물원에 일부 있고 다수의 희귀종은 관람 구역 이외에 많다.-관람객들의 출입 가능한 구역은 어디까지인가.△경북수목원의 관할구역은 2926㏊로 관람구역(55㏊)과 보존구역(2871㏊)으로 나뉜다. 수목원에 방문하면 관람구역 안의 고산식물원, 울릉도·독도식물원, 희귀식물원 등 26개 분원을 둘러보게 된다. 다음으로 수목원 등산로와 거의 유사한 14.62㎞의 생태관찰로가 있다. 관람구역은 관리팀에서 매일같이 보살피고, 생태관찰로는 수시로 점검한다. 이외 보존구역은 1년에 10㏊씩 숲가꾸기 사업을 실시하는데, 숲가꾸기의 가치를 생각하면 면적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수목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나.△정규직원 7명과 공무직 6명, 산림 관리원들까지 합치면 45명 정도 된다. 주요 부서는 수목원을 관리 운영하는 운영지원팀, 식물종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보존연구팀, 생태체험 프로그램과 전시원을 관리하는 숲문화팀이다. 나를 포함해 8명은 수목원 내의 직원 숙소에서 생활하며 식물들을 보살핀다. -수목원이 공원이나 식물원과 다른 점은.△수목원의 본래 목적은 식물유전자원의 보전이다. 경북수목원은 해마다 300여 종의 종자를 채취해서 반은 자체 보관하고 나머지는 백두대간 수목원의 종자저장소(시드볼트)에 기탁한다. 두 군데에서 병행해서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함이다. 식물원은 풀과 나무 등 식물을 가리지 않는 박물관이라면 수목원은 주로 나무 위주이다. 수목원에 피는 꽃은 특별하게 다가오는지 꽃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맘때면 수국이 개화했는지를 묻는 전화가 걸려온다.-수국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가.△여름이면 수국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삼미담(森未潭) 주변과 전시온실 앞으로 가면 산수국이 피어있다. 우리가 기다리는 수국 명소는 침상원(지면보다 낮은 정원으로 계단식으로 조성)이다. 수국으로 꾸며 놓은 화계(花階)가 두 줄 있다. 바람막이를 할 수 없는 구조라서 겨울철 추위를 잘 견디는 것이 관건이다. 이곳 찬바람이 워낙 매서워야 말이다. 올해는 꽃송이가 풍성하길 바라며 가지를 정리하는 등 여러모로 강구하고 있다.-꽃을 피우는데 그렇게 정성을 들이는지 몰랐다.△경북수목원은 고산지대라 철쭉이나 산벚처럼 산에서 자생하는 종류를 제외하곤 꽃을 잘 못 피운다. 볼거리를 원하는 관람객을 위해 작년에 장미와 맥문동을 심었다. 영하 20도 아래의 거센 겨울바람을 막기 위해 일일이 바람막이를 세운 덕에 장미가 활짝 피었다. 중앙광장 소나무 아래엔 맥문동을 5만4천본 심고 겨우내 짚으로 덮어놓았는데 곧 개화할 것이다.-계절별 수목원의 매력은 무엇인가. 관람객이 많이 찾는 계절도 궁금하다.△봄꽃은 도심보다 보름 이상 늦지만 단풍은 열흘 정도 일찍 든다. 봄은 더디고 가을은 서둘러 오는 셈이다. 관람객이 많은 계절은 가을이다. 삼미담 앞의 단풍이 절경이다. 겨울에는 눈이 있느냐는 문의가 자주 온다. 시내에 비가 오면 여긴 눈이 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눈이 귀했던 지난겨울, 지형이 움푹 들어간 전시구역만 눈이 쌓여 다들 신기하다고 했다.-경북수목원에서 반드시 보고 가야 할 하나를 꼽는다면.△삼미담(森未潭)은 꼭 들러야하는 곳이다. ‘숲에서 미래를 보는 연못’이라는 이름부터 얼마나 멋진가. 수련과 애기부들 등이 서식하고 지금은 노랑어리연꽃을 볼 수 있다. 삼미담 옆 창포원은 꽃창포로 뒤덮인 습지이다. 빽빽하게 들어찬 꽃창포 사이로 올챙이들이 꼬물거리는 재미난 곳이다. 해발 730m에 위치한 전망대 ‘영춘정(봄을 맞이한다는 뜻)’은 대부분의 관람객이 거쳐가니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반면 숲해설전시관을 지나쳐가는 경우가 많다. 수목원 입구에 위치한 전시관은 숲해설가들이 상주하며 설명을 해주고 안내서도 구비되어 있다. 지난 14일부터는 올해 새로 제작한 식물표본을 전시하고 있다. -안 그래도 식물표본실을 둘러 보고 왔는데, 제작 과정이 흥미로웠다.△식물표본은 식물의 DNA까지 가진 가장 효율적인 학술적, 교육적 식물 자료이다. 식물 연구에 가장 기본이 되는 식물표본 채집은 ‘수목원 코디네이터’가 참여한다. 채집한 식물을 세척하고 핀센으로 일일이 펴고 압착, 건조까지 품이 드는 작업이다. 레진 기법을 활용한 표본은 산뜻함과 화사함을 더한다.-지대가 높고 숲이 우거져 야생동물도 많겠다.△창포원 습지는 멧돼지들의 목욕탕이다. 습지에서 뒹구는 멧돼지의 몸집이 얼마나 큰지 섬뜩할 정도였다. 삼미담에 오래 살던 팔뚝만 한 잉어를 4년 전 수달이 잡아먹었다고 한다. 그 후 오리를 키웠지만 삵이 전멸시켰다. 올해 다시 잉어를 키우는데 수달이 올까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고 있다.-새소리도 끊이지 않는다.△손바닥에 땅콩을 올려놓으면 곤줄박이가 날아와서 물어간다. 사무동 옆으로 할미새가 자주 보인다. 노랑할미새와 딱따구리, 어치, 직박구리, 까마귀, 참새, 박새 등도 많다. 유아숲 체험장의 목조는 딱따구리가 여기저기 구멍을 내놓았다. 수목원에는 산책하며 듣기 좋은 배경음악이 흐르는데, 지저귀는 새소리가 좋다고 볼륨을 낮춰달라는 관람객이 있었을 정도다.-면적이 넓고 탐방로, 등산로, 임도가 여러 갈래여서 관리가 쉽지 않을 것 같다.△2005년 개원해 시설이 노후된 편이다. 시설물의 유지와 보수에 투입되는 현장인력들이 안전하게 작업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애써 가꿔놓은 숲을 한순간에 잃게 되는 산불은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등산객들도 인화물질은 가져오지 않도록 주의를 부탁드린다.-30여 년 산림 공무원으로서 바람이 있다면.△당장 눈앞의 작은 묘목은 엉성해도 세월이 흐르면 울창한 숲이 된다. 산은 늘 들인 노력보다 더 크게 보상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수목원을 찾도록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올해는 전망대로 가는 낡은 목계단을 복구하고 삼미담에 낮은 분수대를 세운다. ‘산림복지’라는 말이 있다. 산림을 활용해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는 것을 말한다. 수목원을 단장하고 쾌적한 산림을 더 많은 관람객들이 즐기도록 만드는데 자부심을 느낀다.이종환 관리소장은경북대학교 농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김천시청 녹지과를 시작으로 임업 공무에 몸담은 지 30년이 넘었다.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소와 산림소득개발원, 산림생태과학원, 도청 산림자원과를 거치며 산림분야 정책과 현장을 두루 섭렵했다. 주로 산림재해를 예방과 복구, 황폐화를 막는 사방 분야에 매진했다. 2020년에는 산림환경연구원 사방기술교육센터장이 되어 우수한 경북지역 사방기술을 전파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했다. 지난해부터 경상북도수목원 관리소에서 일하면서 경북지역의 산림자원 보존과 식물자원화 연구를 이끌고, 도민에게 심신 휴양과 자연체험 교육장을 제공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배은정 작가

2023-06-19

영주 주민참여예산제 ‘착착’… 정책 입안·프로그램 개발 속도

영주시는 영주의 미래를 위해 주민이 참여하고 주민이 주인 의식을 갖는 정책 입안과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1년 8월 10일 제정된 영주시 주민참여 예산제 운영 조례가 그 대표적인 예다.주민참여예산제 운영 조례가 시의회로부터 제정된지 3년여가 지난 2014년 9월 본격적인 첫발을 내디딘 후 현재까지 제도운영 성과점검 및 제도 운영계획, 주민참여 확대 방안 등을 개선해 오고 있다. □ 주민참여예산 제도의 의의우리는 우리가 선출한 대표자 혹은 전문가 집단을 통해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과 서비스 제도를 마련해 주길 기대해 왔다. 이런 방식을 두고 대의민주주의란 표현을 쓴다.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 변화와 혁신은 주민이 참여하고 결정하는 제도에 대한 요구가 늘어났고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영주시는 이러한 추세 속에 지방자치단체로서는 발 빠르게 주민참여 기회 확대와 지방정부의 권한을 내려놓고 주민이 주인 되는 사회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길을 선택했다.주민참여형 예산제도는 사회적 약자 즉 열악한 주거환경과 기본 생활권 영역이 힘든 이들이 목소리를 내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 할 수 있다.세계적으로 주민참여예산제도의 대표적 성공사례는 1989년 브라질 히우그란지두술주의 주도인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찾아볼 수 있다.1989년부터 1997년까지 주민참여제도를 시행한 포르투알레그레는 상하수도 보급률 75%에서 98%로 변화시켰다. 주민 건강과 교육을 위한 보건 및 교육예산은 13%에서 40%로 확대, 학교 수는 약 4배, 도로 및 건설 분야는 5배 증가 등 다양한 곳에서 그 성과를 얻었다.1990년 1천여 명의 시민 의회 참여자는 1999년 들어 4만명에 달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이런 현상은 주민참여예산 제도의 성장성과 다양성, 지역 발전을 위한 공동체 의식 강화를 통한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는 미래형 행정의 한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영주시의 주민참여 예산제영주시는 2011년 8월 12일 영주시 주민참여 예산제 운영 조례를 제정했다. 제정 조례는 영주시의 예산편성 등 예산과정에 주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예산의 투명성을 증대하기 위한 내용을 담았다.조례 총칙 제5조에 보면 주민은 누구나 이 조례가 정한 범위에서 시의 예산과정과 관련한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라고 명시했다.시는 공정과 투명성 확보를 위해 예산편성 방향, 주민참여예산의 범위, 주민의견수렴 절차 및 방법 등 주민참여 예산제 운영계획을 수립해 시보,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 등에 공고해야 한다.또, 공정한 절차 진행을 위해 당연직과 위촉직위원으로 주민참여예산위원회를 구성한다.이런 절차는 위원회 참여를 희망하는 주민을 대상으로 공개모집 절차에 따른 선정과 주민참여예산 지역회의에서 추천한 사람, 지방재정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선정한다.이와 함께 지역 균형발전과 우선 사업, 폭넓은 지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읍면동에는 주민참여예산 지역회를 두고 있다.지역회의는 각 지역에서 발생하거나 우선 사업으로 진행돼야 할 사안에 대한 검토와 이에 따른 의결을 거쳐 시에 안건을 상정하게 된다.이러한 절차는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요구와 의견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주민참여 예산제 미래를 위한 선택주민참여 예산제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그러나 관행적으로 이어져 온 행정 절차에 비교해 보면 아직 많은 주민들의 이해와 참여가 필요한 문제점도 있다.이뿐만 아니라 주민예산참여제도의 적극적인 확대와 행정 전반에 걸친 주민참여의 다양성을 위한 노력도 함께해야 할 것이다.그러나 2011년 시작된 영주시의 주민예산참여제도는 지방행정부로서는 큰 결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 세대를 위한 선진형, 미래지향적 제도를 과감하게 시행한 것은 미래를 통찰하고 예견하는 영주시만의 미래를 내다보는 자신감의 표출이라 할 수 있다.성공적인 미래를 위해서는 주민참여형 예산 제도의 절차와 범위를 법제화해야 한다.이는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뀌어도 제도를 훼손할 수 없게 하고 시민이 지방정부로부터 소외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필요하다면 영주시가 제정한 조례도 시민과 영주 지역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더욱 강하고 단단한 규제의 강화도 필요할 것이다.영주시는 미래지향적 도시 건설, 대한민국 중심으로 성장하기 위해 선택한 주민예산참여제가 깊이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현재도 진행형으로 추진 중이다. □ 시민포용을 위한 행정영주시는 주민예산참여제 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시민 포용 정책도 함께 추진 중이다.시는 지역의 관행적 요소를 벗어내기 위한 노력에도 적극적이다. 이는 개선 과정을 거쳐 시대적 요구에 맞는 새로운 변화와 변동을 위한 추진력이 될 것이다.영주시는 지역의 다양성을 위해 교육과 공중보건, 치안유지를 위한 활동, 지역사회의 감독, 인프라 구축, 기후변화에 대한 준비, 미래를 준비하는 시민들의 의식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현대 사회의 포용성은 미래 주역인 젊은이들의 자유 표방과 정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이런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 영주시는 미래사회의 주역인 청년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참여기회 확대, 지원방안 마련을 위해 다양한 부분에 대해 검토와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특히 시민이 정치적 주체이자, 경제적 주체, 미래를 준비하는 카테고리, 새로운 변화의 대응과 변동의 주체, 시민 누구나 애착과 친밀한 공간 영주건설, 수직적 인간관계가 아닌 수평적 사회 구조를 위한 기반을 영주시는 닦아가고 있다.□ 미래를 위해 다양성과 거버넌스 형태의 주민참여제영주시는 주민참여형 제도의 다양성에도 적극적인 모습이다.시는 민주적인 형태의 주민참여 확대를 위해 제도의 활성화 방안을 검토 중이다.각종 위원회 제도를 실질화 시키기 위해서다.위원회의 구성원들을 소수 특정 전문가나 선거를 지원했던 주변 인물 위주에서 불특정 다수의 일반 시민들도 자연스럽게 각종 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적극나서고 있다.영주시는 특히 지자체 주도의 정책 결정과 통제, 관리에서 벗어난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주체적인 행위자로 협의와 합의를 거쳐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해나가는 사회적 통념시스템인 거버넌스 방식의 주민참여제도의 정착과 발전에 방점을 두고 있다./김세동기자 kimsdyj@kbmaeil.com

2023-06-18

‘태권도 챌린지’ 통해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돕는다

‘2030 세계박람회’ 개최지 결정이 6개월도 남지 않았다. 세계박람회(EXPO)는 인류의 산업·과학기술의 발전 성과를 알리고, 개최국의 역량을 과시하는 장으로 경제·문화올림픽으로도 불리는 국제적인 행사다.우리나라는 현재 이 세계박람회의 부산 유치를 위해 각계각층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행사 개최가 가져올 긍정적인 경제 파급효과를 염두에 둔 주요 기업의 총수들은 물론, 정치권과 문화예술계에서도 힘을 보태고 있는 형국.여기에 한국의 국기(國技)인 태권도를 통해 세계박람회의 부산 유치를 염원하는 이들도 가세했다. 그 중심에 국기원 이지성(59·태권도 8단) 이론교수가 있다.이 교수는 국기원 남승현 시범단장과 힘을 합쳐 ‘태권도 챌린지’를 기획했다. 서울과 경북을 포함한 한국의 50여 개 지역에서 태권도 시범단과 지역민들이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한 힘찬 발차기를 진행하는 것이다.“내 인생의 전부인 태권도가 세계박람회 유치에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하는 이지성 교수가 태권도와 함께한 시간은 자그마치 52년. 삶의 거의 대부분을 태권도와 함께 살아온 셈이다.“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매개체로 나라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이고, 불황의 그늘에서 경제적 돌파구를 찾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고 말하는 이 교수가 어떤 경로를 통해 태권도와 만났고, 태권도가 세상에 미칠 수 있는 영역을 넓혀왔는지 궁금했다.얼마 전 청와대와 국기원에서의 태권도 챌린지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고향 포항을 찾은 이지성 교수를 지난 일요일 본사 편집국에서 만났다. 아래는 그날 오고간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나이와 출생지는.△1964년 포항 오천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교사였고 지금 여든여덟이신 아버지도 거기서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위로 누나가 있고 아래 여동생이 있다.-처음 태권도를 접한 시기는 언제인가.△대여섯 살 때다. 포항 동빈동에 허름한 창고를 개조한 태권도장이 있었다. 그때는 몸이 많이 약했다. 건강을 되찾고 체력을 기른다는 단순한 이유로 어머니 등에 업혀 도장을 찾았는데, 지금까지 50년 넘게 태권도와 인연을 이어오게 됐다.-대학과 대학원에선 체육교육을 전공했다. 그 길을 선택한 이유는.△중학교 시절에 서울로 갔다. 그 학교에 태권도부가 있어 거기서 활동했다. 하지만 그때도 초등학교 때처럼 몸이 많이 아파 선수 생활이 힘들었다. 이를 걱정하시던 아버지가 ‘그렇게 태권도를 좋아하니, 선수가 아니라면 지도자가 되라’고 권유했고, 그게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로 진학한 이유가 됐다. 지금은 국기원 이론교수로 ‘지도자를 가르치는 지도자’가 됐으니, 꿈의 절반은 이룬 셈이다.(웃음) -포항시체육회와 경상북도체육회에서도 일했다고 들었다.△미국에서 유학하고, 거기서 태권도장도 운영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지속적으로 태권도 관련 단체에서 일했다. 나이를 먹으니 연로하신 부친이 계신 고향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50대 중반에 포항으로 와서 포항시체육회에 몸담았다. 이전엔 포항시체육회가 정부로부터 예산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내가 근무할 때 18억 원의 예산을 받을 수 있었던 게 보람 있고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더불어 포항 만인당의 효율적인 리모델링과 한마음체육관 건립에도 힘을 쏟았던 시기다. -포항시체육회에서 일하던 시절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면.△구미에게 뺏겼던 도민체전 우승기를 포항으로 가져온 일이다. -미국에서도 태권도장을 운영한 것으로 안다. 미국에서 태권도의 위상은.△미국인들이 태권도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한국과는 조금 다르다. 우리가 직접 배우는 아이들 중심이라면 미국은 가족이 중심이었다. 미국 사람들은 평생 즐길 수 있는 생활스포츠로 태권도를 인식하고 있다. 가족 사이의 화합에 태권도가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태권도를 통해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태권도의 가장 큰 매력은 뭔가.△‘수련(修鍊)’이다. 태권도는 다른 사람을 제압하는 싸움기술이 아니다. 수련은 누구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다스림으로써 스스로를 이기는 것 아닌가. 그런 차원에서 태권도에서는 수련의 개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몸과 더불어 정신까지 함께 성장시킬 수 있는 게 태권도다.-아이들을 위한 태권도 관련 책을 준비 중이라던데.△한국만이 아닌 세계의 많은 아이들이 태권도를 배우는데 그들에게 읽힐만한 책이 거의 없다는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한 태권도 전집을 기획해 집필 중이다. 현재 1차로 10권이 출간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 총 40권을 만들 예정이다. 이번에 나오는 것은 역사 이야기를 담은 태권도 동화다. 향후 알기 쉽게 풀어쓴 태권도 교본과 태권도로 국위를 선양한 위인들의 이야기 등이 연이어 출간될 것이다. -판화가로도 활동 중이라 들었다.△어릴 때부터 태권도 만큼이나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미대를 가고 싶을 정도였다. 태권도와 미술을 겹합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판화를 해보기로 했다. 나무에 형상을 조각한다는 건 태권도의 주요 개념인 수련과 유사한 행위다. 게다가 판화는 보급하기가 편해 작품을 아이들에게 선물하기도 좋았다. 판화를 시작한 2000년대 초반엔 경주 미술대전에서 입선도 했다. 태권도와 미술은 둘 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그것들을 접목시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게 행복하다. -판화의 주요 소재는 무엇이고, 왜 그 소재를 사용하는지.△거의 100%가 태권도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걸 소재로 삼는 게 보통의 미술가들 아닐까? 내게는 태권도가 인생의 전부였다.-‘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기원하는 태권도 챌린지를 진행 중인데.△세계박람회는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큰 행사다. 경제적 파급 효과와 나라의 이름을 높이는데 좋은 영향을 미칠 이런 행사를 우리나라 부산에서 개최했으면 하는 건 나만의 바람이 아닌 전 국민의 희망사항 아니겠는가. 그것에 태권도인들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태권도가 매개체가 돼 세계박람회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물론, 관심이 없는 사람들까지 힘을 모았으면 한다. -태권도 챌린지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태권도와 지방자치단체가 힘을 합치는 형태가 될 것이다. 각 도시에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공간, 빼어난 경관을 가진 곳에서 태권도가 가진 매력을 선보이고, 그걸 영상에 담아 대중들에게 배포하게 된다. 가장 먼저 태권도의 헤드 쿼터(Headquarter)라 할 국기원과 청와대에서 태권도 챌린지가 진행됐고, 당연히 경북 지역의 명소도 곧 찾아갈 것이다. 향후 50여 곳에서 태권도 챌린지가 진행될 예정이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태권도 선수들의 근사하고 화려한 시범을 볼 수 있을 것이니 여러분들의 애정 어린 관심을 부탁한다.-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은.△오는 10월엔 충청남도 금산에서 국제무예올림피아드가 열린다. 이 역시 주목할 만한 국제행사다. 여기서 한국총괄위원장이란 역할을 맡게 됐으니, 최선을 다해 행사 성공에 보탬이 되려 한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3-06-13

“화약을 사용하는 가장 아름다운 일… 환호와 박수에 환희”

국내 3대 불꽃쇼에 드는 포항국제불빛축제가 4년 만에 포항의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불꽃은 사그라들어도 그날의 밤하늘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 축제에서 사람들은 한국팀의 ‘그랜드 피날레’를 단연 압권으로 기억한다. 벅찬 감동의 불꽃쇼 뒤에는 20년 경력의 김주식 불꽃 디자이너가 있다. 그는 불꽃 디자인을 불꽃이라는 물감으로 밤하늘에 그림을 그리는 일로 비유했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그저 태어나지 않는다. 찰나의 예술이라는 불꽃은 1초를 서른 번으로 쪼개고 색과 위치, 모양을 철저하게 계산해 배치한 결과라고 한다. -올해 포항국제불빛축제의 그랜드 피날레는 단연 압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포항국제불빛축제는 10여 년째 연출하는 축제라 애정이 크다. 포항국제불빛축제가 열린 형산강 무대는 부산 광안리와 비견되는 최장 거리의 무대다. 무대의 장점을 살려 웅장하고 가는 것을 기본으로 했다. 노르웨이 출신의 작곡가인 토마스 베르게르센(Thomas J. Bergersen)의 ‘지구 생성(Creation of Earth)’을 선곡한 것도 장엄하고 강렬한 분위기를 위해서다. 화약은 컬러가 다채롭게 구현되는 종류로 사용했다. 하나의 색이 단발류로 터지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발이 여러 색으로 변하는 식이다. 역동적인 퍼포먼스로 웅장함과 감동을 전하고자 했다.-한 편의 웅장한 서사시를 연상케 했다. 형산강에서 열린 올해 포항국제불빛축제를 디자인할 때 포인트를 준 부분은.△연기가 하늘에 꽉 차기 전인 초반에는 고가의 ‘타상 불꽃’과 ‘장치 불꽃’을 사용해 연출 효과를 극대화했다. ‘타상 불꽃’은 하늘 높이 올라 높은 고도에서 터지는 불꽃이고, ‘장치 불꽃’은 낮은 고도에서 터진다. ‘타상 불꽃’의 경우 점화된 다음 하늘로 올라가는 시간이 있어서 개화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장치 불꽃’은 점화하자마자 바로 볼 수 있어 섬세한 연출이 가능하다. 그랜드 피날레의 중반부에는 다양한 색상의 ‘장치 불꽃’을 사용했다. 작은 불꽃이 분수나 지뢰처럼 분출되거나 혜성의 불꼬리처럼 길게 늘어진 형태를 봤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후반부에는 형산강 전체를 골드빛의 불꽃으로 표현했다.-국내 3대 불꽃쇼로 꼽히는 포항국제불빛축제만의 차별성은 무엇인가.△포항국제불빛축제가 열리는 형산강의 최고 장점은 국내 최장거리의 무대에서 초대형 불꽃 연출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2019년 형산강에서 1킬로미터 불꽃쇼를 처음 시작했다. 이번에도 열흘 동안 현장을 오가면서 하루에 7~8킬로미터는 족히 걸었다. 물론 부산불꽃축제가 열리는 광안리도 무대 길이로 치면 포항 버금간다. 하지만 관람석과의 거리는 포항이 으뜸이다. 형산강의 강폭은 360미터로, 국내 불꽃쇼 가운데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불꽃을 감상할 수 있다.-순식간에 밤하늘을 수놓고 사라지는 불꽃은 찰나의 예술로 불린다. 찰나의 불꽃쇼가 탄생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축제를 기획하고 행사 운영을 총괄하는 프로젝트 매니저(PM)가 있다. 프로젝트 매니저가 축제조직위원회, 문화재단과 큰 틀에서 윤곽을 잡으면 디자인이 시작된다. 계절이나 현장 상태를 충분히 확인한 다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음악 선곡과 편집이다. 정해진 음악의 리듬에 맞게 화약을 배치하는 작업이 그다음이다. 그렇게 작성된 ‘작업지시서(어드레스시트)’에 따라 물류팀과 기술팀은 화약을 준비한다. 현장 세팅은 행사 열흘 전부터 한다. 화약 배치를 할 땐 디자이너도 한 발 한 발 낱낱이 확인해야 한다. 혹여라도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열흘 동안 현장에서 움직인 인원이 하루 50명 정도였으니, 세팅부터 철수까지 100여 명은 족히 수고했을 것이다. 포항국제불빛축제의 불꽃쇼는 백여 명의 인력이 4개월 넘게 공을 들인 결과이다.-음악에 불꽃을 입히는 디자인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달라.△음악의 리듬에 맞춰 어떤 화약을 어느 위치에 얼마나 쓸지를 정하는 일이다. 불꽃의 모양과 색깔, 각도, 위치를 일일이 계산해 프로그래밍한다. 불꽃이 여러 색을 내는 것은 화약물질과 금속이 일으키는 연소반응 때문이다. 어떤 물질을 더 넣느냐에 따라 불꽃의 색과 패턴은 천차만별이므로 우리가 관리하는 불꽃 종류만 천 가지가 된다. 축제에 쓰일 수만 발의 불꽃을 음향의 파장에 맞춰 타이밍을 디테일하게 계산한다. 안전하게 화약을 터트리려면 얼마나 안전거리가 필요한지도 치밀하게 계산해야 한다.-하늘에서 터지는 불꽃을 보며 그 뒤에 누가 있는지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어떤 계기로 불꽃 디자인을 시작하게 됐나.△대학생이던 2000년에 ‘서울세계불꽃축제’를 보고 불꽃의 매력에 빠졌다. 화학을 공부하던 학생이라 더 마음을 빼앗겼던 것 같다. 이듬해 ‘화학류 관리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지금까지 불꽃쇼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처음 3~4년간은 암기와 배움의 연속이었다. 불꽃마다 터지는 시간과 모양, 지속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폭죽 하나하나의 특징을 완벽하게 파악해야 불꽃을 디자인 할 수 있기 때문이다.-불꽃 디자이너의 요건이 따로 있나.△자격증이 필요한 일은 아니다. 디자이너라고 하지만 사실 콘텐츠 기획에 가까운 일이다. 불꽃을 좋아하고 음악적 감각이 있으며 화약의 특성이나 발사 시스템을 잘 알면 된다.-불꽃 디자인을 시작한 지 20년 차인데, 불꽃축제에도 트렌드 변화가 있나.△장비의 성능이 월등하게 좋아졌다. 과거에는 사람이 음악에 맞춰 하나씩 버튼을 조작해서 불꽃을 쏘아 올렸다. 그때도 시스템은 있었지만 불완전해서 수동으로 거들어야 했다. 중소 규모의 불꽃업체가 첫 직장이었는데, 얼마나 긴장되던지 발사 버튼을 누르면서 진땀을 뺐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컴퓨터가 지시하는 전기신호로 불꽃을 자동으로 발사한다. 발사 시점을 0.03초 단위까지 조정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나왔다. 1초를 30프레임으로 쪼개어 연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덕분에 음악과 불꽃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한 편의 이야기를 하는 ‘스토리텔링 불꽃쇼’ 연출이 가능해졌다. 이처럼 한 땀 한 땀 만든 불꽃은 현장에서 영화처럼 흘러간다.-불꽃이 밤하늘을 수놓는 순간 디자이너는 뭘 하나.△연출한 의도대로 잘 나오는지 살핀다. 수정을 거듭하면서 수없이 마주한 장면이다.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실사와 거의 비슷하게 구현되기 때문에 지겹도록 본 장면이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다르다. 현장에서는 오감으로 전해지는 공기의 울림이 있다. 화약이 펑 하고 터지면서 만드는 공기의 울림이 전율을 전한다. 무대에서 멀리 떨어져서 관람하거나 혹은 영상으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떨림이 있다.-오차 없이 준비해도 의도대로 안 되는 것이 현장의 속성 아닌가.△실수로 세팅을 거꾸로 한 적이 있다. 생각보다 결과물이 좋아서 한동안 그렇게 했다. 각도가 틀린 적도 있는데 이것도 나름 괜찮았다. 의도치 않은 실수가 더 나은 연출로 이어지는 사례는 현장이 주는 선물이다.-불꽃쇼가 끝나면 드는 감회는. 디자이너의 감회는 관람객과는 다를 것 같다.△관중의 환호와 박수에 환희를 느낀다. 디자이너뿐 아니라 설치하고 발사까지 함께 한 모든 기술자들이 관중의 환호에 그동안의 노고를 잊는다. 화약은 세 가지의 기능이 있다. 산업적인 측면이 아니면 생명을 해치거나 혹은 살리거나. 화약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일이니 이만큼 좋은 일이 어딨겠나. 화약을 사용하는 가장 아름다운 일을 하는데 자부심을 느낀다.-불꽃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좋은 불꽃쇼는 무엇인가.△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더 크고 화려한 불꽃도 안전을 기반으로 가능하다. 그 다음으로 연출과 화약의 퀄리티가 중요하다. 그림도 물감이 좋아야 하듯이 불꽃은 화약의 품질이 중요하다. 불꽃 디자인은 밤하늘을 캔버스 삼아 불꽃이라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다.-앞으로 연출하고 싶은 불꽃쇼가 있나.△한국의 불꽃 디자인 능력을 전세계에 알리고 싶다. 국내 3대 불꽃쇼를 전담해오면서 빠듯한 일정에 해외를 거의 나가지 못한다. 우리가 가진 세계적인 실력을 해외의 권위 있는 대회에서 인정받고 싶다. 우리나라의 불꽃 연출력과 기술력으로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전하고 싶다. 김주식 불꽃 디자이너는 건국대학교 화학과를 나와 중소규모 불꽃업체에서 경력을 쌓고 2012년 한화에 입사했다. 현재 한화 컨텐츠사업팀 과장이다. 포항국제불빛축제와 부산불꽃축제, 평창동계올림픽 개폐막식과 메달플라자, 전국체전 100주년 개회식 기념 불꽃쇼 등을 디자인했다. 1년에 10여 건의 불꽃쇼를 담당하고 있다. 2014년부터 포항국제불빛축제를 디자인하고 있으며 ‘2023 포항국제불빛축제’에서 웅장한 스토리텔링 기법의 연화 연출로 ‘그랜드 피날레’를 장식해 관람객들의 갈채를 받았다. /배은정 작가

2023-06-12

“섬유산업 미래, 융복합 활성화 등 과감한 체질 개선에 달려”

섬유산업은 한국을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린 중심산업이고 대구경북은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섬유산업의 메카다.AI시대에도 섬유는 여전히 인간 생활에서 의식주를 이루는 근간이다.대구경북섬유산업연합회 조정문 회장은 “4차산업혁명시대의 섬유산업은 다른 업종과의 융복합 가능성이 매우 크며 섬유산업의 시장 예상규모는 반도체나 자율주행 자동차보다 오히려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EU가 봉제산업으로 먹고 살듯 글로벌 선진국들은 섬유산업 선진국이라며 “대구경북 섬유산업도 체질개선을 통해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를 탈피하고 과감한 선도적 투자와 기술 도입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어내겠다”고 말한다.섬유산업이 과거의 영광을 넘어서는 미래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다. - 회장을 맡고 2년동안 지역 섬유산업에 눈에 띄는 변화가 있나.△변화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책임을 맡았다. 지난 3월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경북섬유박람회도 그런 성과를 보여준 사례 중 하나다. 참가업체나 참관 기업들, 특히 방문객이나 실질적인 수출상담 실적에서도 나타났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벗어나 4년만에 공개 개최된 박람회에서 종전보다 많은 성과를 냈다. 이번 박람회가 섬유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는 물론 미래산업으로 도약하는 또 하나의 전환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고 그렇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섬유산업을 이야기할 때 사양 산업이라거나 변화가 필요하다고도 한다. 지역 섬유산업의 수장으로서 섬유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보나.△섬유산업은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한 중심산업이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2008년경부터 추진해오고 있는 첨단산업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섬유산업은 다른 산업과의 융복합 가능성이 매우 큰 산업으로 반도체나 자율주행 자동차보다 시장성이 높다는 연구도 있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패러다임을 변환해 나가고 있다.-코로나 팬데믹으로 또 한 번 고전한 것으로 들었다.△그런 부분도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수출이 힘들어지고 경영이 악화하면서 대외적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디지털 전환 가속화 등 대외 환경까지 급변하면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업계의 단합된 노력과 정부 지원으로 회복단계에 들어섰다.-전기료 인상이 확정됐다. 가스료 등 에너지의 가격 상승이 원가 상승으로 이어져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지금까지 싼 전기료가 경쟁력의 한 원인이었다면 이젠 그런 시대는 지난 것 같다. 특히 전기료 문제는 탈원전이라는 지난 정권의 거꾸로 가는 에너지 정책 때문에 빚어진 면이 있다. 전기 생산 원가가 낮아져야 회복될 문제 같다. 기업 입장에서는 함께 인내하면서 극복해 나가야 할 문제이지만 국가에서도 정책적으로 빨리 원전 증설을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본다.-정권이 바뀌고 1년이 지났다. 기업의 입장에서 정부와 정책이 섬유산업에 우호적인가.△지난 문재인 정권에서도 친기업이라고 노래를 부르지 않았나. 정권마다 말로는 ‘기업 프렌드리’를 외쳤지만 기업에서 공감할 수 있는 체감온도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다. 이제 코로나가 지나갔고 정권이 바뀐 지 1년이 지났으니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다. 섬유연합회 차원에서 건의도 했고 또 염색공단의 첨단화 사업과 탄소중립 그린소재 사업이 채택되어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본다.- 섬유산업의 국내 산업에서의 위치와 지역 섬유산업의 위치는 어느 정도인가.△우리지역 섬유산업은 우리나라의 중심산업이었다. 세계적으로 섬유수출 4위의 실적을 기록했다. 화섬직물 수출은 한 때 세계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섬유만으로 무역수지 100억불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대구경북 지역 섬유산업은 국내 섬유산업에서 업체수와 종사자수, 출하액과 수출액에서 모두 2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지역내 산업에서도 사업체수와 종사자수에서 15% 이상, 출하액과 수출액에서 1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며 국내 최대 화섬산지로서의 입지와 재도약을 위한 잠재력도 갖고 있다.- 기업으로서 섬유산업의 미래를 위해 어떤 정책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나.△섬유산업이 과거에만 안주해서도 안 되고 자존심만으로는 발전할 수 없다. 체질을 바꿔야 한다. 전략을 바꿔야 한다. 협회로서는 업체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줄 뿐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체질을 바꿀 것을 조언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하나.△우선 경영자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신기술 도입을 위한 시설과 설비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차별화된 기술 개발에 투자를 늘리고 디지털과 자동화로 전환해야 한다. 또 산학연 연계를 통한 전문인력 육성도 필요하다.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와 소통을 확대하면서 민간과 정부가 합심해서 역량을 집중한다면 섬유산업도 미래산업으로 재도약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거기서 연합회가 하는 일은 뭔가.△연합회의 입장에서는 지방 및 중앙정부과 협의하여 지역 섬유패션산업의 미래를 위한 현안과 과제들이 정책에 잘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연합회는 지역 섬유패션산업의 거버넌스로서 산학연과의 연계강화와 중장기 비전 제시를 위한 싱크탱크 역할을 하면서 유관 기관 단체들과 공조를 하는 구심점이 되는 것이다.-우리나라가 세계 4대 섬유수출국이라는데, 그러면 현재 우리의 섬유 산업은 세계적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냉정하게 말해서 중상 정도라고 보면 된다. 선진국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가 아는 유명 브랜드, 디자인이 지역에 있나? 지금 알고 있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나 디자인 중에서 우리가 생산하고 있는 제품이 얼마나 있나? 기술이나 디자인, 마케팅에서 우리는 선진국과 경쟁하고 있지만 세계 시장에서는 중위권 정도에 머물고 있다고 본다.-섬유산업의 부가가치를 이야기한다.△섬유가 첨단 산업에 비해 뒤떨어진 산업처럼 치부하는데 잘못된 견해다. 선진국인 EU가 봉제산업으로 먹고 산다고 하면 이해되겠나. 브랜드의 가치다. 국민소득 5천불 시대의 제품과 3만불 시대의 제품은 달라야 한다. 인건비가 그만큼 올라가면 상품의 형태도 달라져야 하고 거기서 부가가치가 창출돼야 하는 것이다. 과거의 방식을 고집해서도 안 된다. 높은 인건비를 충당할 수 있도록 제품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새로운 방식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이유다.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산업의 형태가 바뀌어야 한다. 과거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과거 만들면 팔리던 의류 중심의 산업에서 고기능성, 고감성의 산업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거다.- 이 시대의 화두가 융합이기는 하다. 섬유산업에서도 융합이 화두가 되고 있다.△섬유산업에서 융합은 소재간의 융복합과 산업간의 융합이 모두 필요하다. 첨단 융복합 섬유소재 산업은 의류용과 생활용 및 국방, 안전 방재 등 산업용의 융복합 제품 개발을 확대하고 탄소와 슈퍼 등 고강도 고기능성 소재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특히 산업간 융합은 섬유산업이 토목과 건축, 물산업 등 모든 분야에서 융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올리고 있는데 이를 더 확대해 나가는 연구가 필요하다. 자동차산업만 하더라도 에어백 등 많은 분야에서 섬유와 융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 섬유산업계를 자주 왔다갔다. 최근의 세계 섬유산업의 동향은?△21세기의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는 에너지 자원과 환경적 맥락에서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섬유 패션산업 역시 지속가능성을 위해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 목표를 세워놓고 제품의 수명을 연장시키거나 산업 자체를 순환 경제의 일부가 되도록 섬유 폐기물을 줄이고 지속적인 섬유의 재사용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강하다. 특히 지구환경 보호와 기후변화에 대응하면서 지속 가능한 생산방법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환경규제 강화와 친환경 제품 사용에 대한 규제가 증가하고 있고 이에 따라 친환경 섬유 개발을 위한 기술투자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최근 섬유산업의 글로벌 트렌드이다.- 우리보다 섬유 선진국이나 세계적인 섬유패션산업계의 친환경 소재 사용 동향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나.△EU는 그린 섬유 개발과 섬유공정 전 과정에 친환경 간계 도입 등 순환경제 가속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본은 4차 산업혁명과 연계해서 섬유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친환경화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은 쓰레기 해결을 위한 재단 설립과 기금 신설, 인프라 구축을 포함하는 법안을 통해 플라스틱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중국도 첨단 섬유 신소재 개발과 친환경 디지털 제조기술력을 강화하고 있어 질적 성장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도 구찌, 발렌시아가, 생로랑, 버버리, 샤넬 등 명품 브랜드와 GAP, HM, ZARA 등 SPA(의류 생산 유통 전문 통합)브랜드, 나이키, 아디다스, 몽클레어 등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자발적으로 친환경 섬유소재를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산업용 섬유에서는 BMW, GM, 볼보, 아우디 증 자동차 기럽들이 내외장용 소재를 친환경 섬유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 우리의 섬유 산업은 어떻게 해나가야 하나.△의류용 제품은 축적된 노하우와 글로벌 시장 중심의 친환경 고감성 고기능성 제품 개발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침장 인테리어 같은 생활용 섬유제품은 지역의 우수한 기술력과 디자인을 바탕으로 맞춤형 고부가 제품 개발과 온-오프라인 마케팅 확대를 통해 수입대체와 수출 확대에 나서야 한다. 산업용 섬유는 수입 의존도가 높은 탄소 아리미드 섬유 등 고성능 소재를 국산화해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탄소중립과 연계해 전후방 산업에 필요한 소재 부품 장비용 융복합 제품개발로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으로 전환해 가야 한다. 입는 에어백 제조기술을 보유한 지역 기업에서 생산한 제품이 세계 시장을 노리고 있기도 하다. 일회용인 차량용 에어백에 비해 충전용으로 30회까지 재활용 가능한 제품은 바이크나 사이클 같은 레저용에서부터 추락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는 산업현장에서 크게 히트할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제품들이 개발돼 세계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대구시·경북도와의 협력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나.△대구시와 경북도가 추진하고 있는 여러 사업들을 섬유산업과 연계해서 산업간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도 필요하다. 지능형 자동차와 로봇, 반도체, 스마트, 디지털, 바이오, 뷰티, 탄소소재 부품, 친환경 소재, 신공항 이전 사업 등에서 모두 섬유산업과의 연계 협력이 가능하다. □ 조정문(趙正文·66)대구경북섬유산업연합회 회장대구 출생. 경대사대부고. 한양대 공대 섬유공학과 졸.미 스탠퍼드대 AMP 수료.국제상사 섬유수출부, 한일합섬 섬유수출부. 새날 이사.1996년 새날테크 대표이사 사장.구미중소기업자문협의회 위원, 대구경북섬유산업협회 신성장전략위원회 위원.구미상공회의소 회장. 경북상공회의소협의회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역임.대한민국산업포장(2016).선대로부터 이어받은 2세 경영인. 빌 게이츠도 옷을 벗고 살 수는 없다며 섬유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섬유맨.“골프를 몰라서 못 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며 섬유산업에서도 신기술 도입과 체질개선을 주장하고 변화를 강조한다. /이경우 편집위원

2023-06-11

하얀색 범꼬리가 바람에 살랑이자 스님과 동자 전설이 이내 피어난다

야생화가 바람에 살랑거린다. 호랑이의 꼬리를 닮았다는 하얀색의 범꼬리꽃이다. 조금 더 걸으니 이번에는 스님과 동자의 전설이 얽혀 있는 동자꽃이 보인다. 여기는 강원 태백의 대덕산 분주령이다. 분주령(1천80m) 금대봉(1천418m) 대덕산(1천307m)을 거쳐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로 이어지는 능선은 국내 최고의 야생화 군락지이다.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고 해서‘천상의 화원’으로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여름의 초입인데도 숲길에선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하늘은 맑고 눈에 보이는 곳마다 야생화가 피어 있어 마음까지 환해진다. 미국의 명문장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야생화는 단 한순간도 햇빛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날씨에 감사하는 것은 인간보다 꽃”이라고 말했다. 햇살 아래 빛나는 야생화의 흔적을 찾아 여름 여행을 떠나보자. 금대봉 야생화 군락지. ◇여름꽃만 30여 종…길섶의‘야생화 천국’분주령 야생화 트레킹은 해발 1천268m의 두문동재에서 시작된다. 고지대인 두문동재는 지금도 등산객 외에는 찾지 않는 한적한 곳이지만 예전에는 ‘오지 중의 오지’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조선 개국 후 고려의 마지막 신하들이 조선 태조 이성계의 눈을 피해 이곳에 자리 잡고 두문불출한 데서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야생화 천국으로 알려진 두문동재에서 분주령까지의 트레킹 구간은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 천연기념물인 하늘다람쥐가 날아다니고 꼬리치레도롱뇽, 참매를 비롯해 대륙목도리담비, 오소리, 고라니, 청설모, 방패벌레, 그림날개나방, 꽃등에, 맵시벌 등 다양한 동물이 함께 살고 있다. 대성쓴풀과 모데미풀, 한계령풀 같은 희귀식물도 발견된 곳이다.분주령 트레킹은 늘 새로운 느낌이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산길을 걸으면 신선한 숲의 공기가 산뜻하게 다가온다.숲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울어대는 벙어리뻐꾸기 소리는 산세를 더욱 깊게 꾸며주고, 분주령 쪽으로 오를수록 숲 또한 점점 짙어진다. 심연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야생화 천국 분주령에서만큼은 등산객도 한 명 한 명 야생화나 다름없다.길 양쪽으로 야생화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분주령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갈래길이 나온다. 한쪽은 금대봉 방향, 또 한쪽은 분주령 방향이다. 산불조심 기간이어서 막혀 있는 금대봉을 뒤로하고 분주령 방향으로 걷다 보면 확 트인 산봉우리가 보인다. 정면으로 보이는 것이 분주령, 오른쪽 방향으로 솟아 있는 것이 대덕산이다. 나무데크로 이어진 내리막길이 제법 길게 이어진다.분주령으로 가는 길섶에서 볼 수 있는 여름꽃만 해도 범꼬리를 비롯해 동자꽃, 요강나물, 할미밀망, 산꿩의다리, 좀꿩의다리, 개병풍, 노루오줌 등 족히 30종이 넘는다. 정겹고 미려한 수많은 야생화를 만날 수 있는 그야말로 ‘천상의 화원’이다. ◇노루오줌·동자꽃…이름마다 갖가지 사연분주령 가는 길이 매력적인 것은 시기마다 다른 야생화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7월에는 개망초와 하늘나리, 일월비비추, 산꿩의다리를 볼 수 있다. 꽃들은 저마다 사연을 지니고 있다. 노루오줌은 노루가 다닐 만한 산에 사는데 뿌리에서 지린내가 나서 노루오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노루오줌이 이런 냄새를 풍기는 건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동자꽃에는 애절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옛날 어느 암자에 스님과 동자가 살았는데 스님이 마을로 내려갔다가 눈이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산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눈이 녹은 뒤 산사에 올라보니 동자가 얼어 죽어 있었다. 스님은 동자를 양지 바른 곳에 고이 묻어줬는데, 이듬해 동자의 얼굴처럼 둥글고 붉은 꽃이 무덤가에서 피었다고 한다.이름이 재미난 꽃도 부지기수다. 할미밀망, 사위질빵, 쥐털이슬, 산꿩의다리 등은 듣기만 해도 절로 웃음꽃이 필 것만 같다. 꽃들 사이로 사향제비나비가 사뿐히 내려앉고 벌들이 웅웅거리며 주변을 맴돈다. 헬기장 옆 길가에는 개망초도 자리를 잡았다. 국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개망초는 낯익은 식물이지만 구한말에 도입된 북미 원산의 신귀화식물이다. 원래 이름은 망초인데 ‘개’자가 앞에 붙은 것은 왜일까. 망초는 왜풀, 개망풀 등으로도 불리는데 ‘왜풀’이란 이름은 개망초가 일본을 거쳐 도입됐음을 유추하게 한다. ◇이무기가 용이 된 전설이 있는 검룡소두문동재에서 약 1시간30분을 걸으니 평평하고 넓은 분지가 나온다. 이곳이 바로 분주령이다. 원래 분주령은 정선과 태백 사람들이 만나 분주하게 물건을 교환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두문동재에서 분주령까지가 평평한 산책길 같았다면 분주령에서 대덕산까지 가는 길에선 다리에 힘이 제법 들어간다. 능선을 따라 1시간 정도 올라가면 드디어 대덕산 정상이다. 바람결에 색색의 야생화가 흔들린다. 대덕산 정상에서 검룡소로 내려가는 길목에도 흑쐐기풀, 짚신나물 등 갖가지 토종 야생화들이 속속 눈에 들어온다. 길을 따라 내려가니 어느덧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다.금대봉 산기슭에 자리한 샘인 검룡소는 하루 2천t의 지하수가 석회암반을 뚫고 나와 20여m에 이르는 계단식 폭포를 만드는데 그 물줄기가 용트림을 닮았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전설에 의하면 서해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 한강의 시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왔는데, 시원이 되는 연못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친 자국이라 한다. 금대봉에는 제당굼샘, 고목나무샘, 물골의 물구녕 석간수, 예터굼에서 물이 솟아나는데 이 물이 다시 지하로 스며들었다가 검룡소를 통해 분출된다고 한다. 연중 9도를 유지하는 검룡소에서 솟아난 물이 골지천, 조양강, 동강을 지나 단양, 충주, 여주, 양수리, 서울을 지나 서해바다로 들어간다. 총길이 514㎞에 이르는 긴 여정이다. 검룡소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20여 분 정도 걸어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데, 들어가는 길이 완만하고 아름다워 산책하기에도 좋다.검룡소에 도착하면 야생화 여행이 끝지점까지 온 것이다. 두문동재에서 출발한 지 대략 4시간 30분. 꽃향기에 취해 걷다 보니 어느새 길이 끝났다. 길은 끝났지만 아직도 야생화의 향기는 코끝에 묻어서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 여행팁금대봉~대덕산 야생화 감상 코스는 둘로 나눌 수 있다. 두문동재~금대봉 구간은 산책 같은 코스로 왕복 2시간 정도 걸린다.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야생화를 감상할 수 있는 구간이다. 야생화와 함께 본격 산행을 하고 싶다면 대덕산 코스로 가면 된다. 대략 4~6시간 걸린다. 트레킹을 마친 뒤 원점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대개 검룡소 주차장에 차를 두고 태백지역의 콜택시를 타고 두문동재로 가서 트레킹을 시작하는 게 좋다. 야생화 트레킹로는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관광보존지역이다. 1년에 두 번 출입을 통제한다. 2월 15~5월 15일, 11월 1~12월 15일엔 산길이 폐쇄되니 이 기간은 피해야 한다. 야생화 트레킹을 하려면 국립공원공단 태백산 예약통합시스템에서 미리 예약해야 한다. /최병일 작가

2023-06-08

고령, ‘스마트시티’로 지역소멸·환경문제 해결 나선다

고령군은 스마트도시를 체계적으로 조성하기 위해 ‘사람을 생각하는 스마트 고령이라는 슬로건’으로 스마트 도시계획 수립용역을 일찌감치 진행했다.스마트도시란 구체적으로 어떤 걸 의미할까? 그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토지이용 용어사전’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도시의 경쟁력과 삶의 질의 향상을 위하여 건설·정보통신기술 등을 융·복합하여 건설된 도시기반시설을 바탕으로 다양한 도시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속가능한 도시를 지칭한다.”고령군은 미리 시작한 용역의 결과로 지난 2021년 5월 26일 전국의 군 지역에서는 최초로 국토교통부로부터 승인을 받아냈다.이후 사업의 첫 단추로 행정안전부의 ‘2022년 디지털타운 조성사업’에 지역주민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인구소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건강누리마을 조성사업’을 신청했고, 이 역시 선정됨에 따라 총사업비 10억원(국비 5억, 도비 1억5천, 군비 3억5천)으로 해당 프로젝트를 원활하게 추진하고 있다.건강누리마을 조성사업은 관내 경로당 20곳을 선정해 각종 의료측정기기와 인공지능(AI) 대화로봇을 비치해 어르신들의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강샘터 서비스’를 핵심으로 한다.이외에도 홀몸어르신, 장애인 등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의 건강과 생활안전을 위한 ‘건강두레 서비스’로 함께 구성하여 더불어 추진 중이다. □ 인구소멸과 환경문제 해결 위한 기반시설 조성또한 군청, 경찰서, 소방서, CCTV관제센터, 시장, 주요관광지 등 주요 생활시설과 거주지가 집중된 대가야읍에는 스마트도시의 기반시설들이 조성되고 있다.이는 현재 직면하고 있는 인구소멸, 교통, 환경, 안전 등 다양한 분야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국토교통부의 ‘2023년 스마트시티 솔루션 확산사업’ 공모에 지난 4월 13일 최종 선정돼 총사업비 40억원(국비 20억, 도비 6억, 군비 14억)을 확보함으로써 추진 동력을 얻었다.고령군은 군민들의 생활안전을 위해 112 긴급영상 및 긴급출동 지원서비스, 119 긴급출동 지원서비스, 재난상황 긴급대응 지원서비스, 사회적 약자·어린이 및 치매노인 보호서비스 등 도시안전 연계서비스를 구축하는 것에 진력하고 있다.또한 차량번호 인식, 재난데이터를 연계해 제공하는 등의 스마트도시 통합플랫폼 구축, 신호등이 없는 무신호구간의 보행자나 운전자들의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스마트 횡단보도(20곳), 보차도(보도와 차도)의 정보수집 및 전달용 스마트 폴, 대가야초등학교 주변의 어린이들을 위한 안전용 스마트 폴, 군정을 홍보하기 위한 미디어용 스마트 폴(25곳)도 설치하는 중이다.덧붙여 경로당을 방문하는 어르신들의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스마트 헬스케어(13곳), 지산동 고분군을 탐방하는 고객들의 안전과 탐방로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스마트 지산동 고분군 탐방로 관리 등을 구축하는 스마트시티 솔루션 확산사업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 도시 이미지 개선할 지산동 고분군 유네스코 등재특히 대가읍은 대가야의 도읍지로 지산동 고분군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하여 고분군 탐방로 관리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 도시 이미지를 혁신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도 더불어 기울이고 있다.주목할 것은 또 있다. 오는 2023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들을 보다 더 체계적으로 관리 보존하고자 국토교통부의 ‘2023년 디지털 트윈국토 시범사업’에 ‘신비의 세계유산 대가야 고분군 디지털 트윈 구축’이라는 부제로 지난 5월 말에 공모를 신청했다.이 사업의 핵심 세부사항은 △고령군 전 지역의 건축물들과 대가야 고분군을 쌍둥이로 만들어 디지털트윈 기반을 갖추는 대가야 고분군 디지털트윈 서비스 △대가야 고분군 지역을 드론으로 촬영해 재해·재난·멧돼지 등에 의해 손상된 고분군을 원형그대로 복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드론기반 고분군 형상관리 서비스 △고분군 발굴현장과 기록들을 가상기술(그래픽)로 재현하는 VR기반 고분군 발굴기록 서비스 등이다.‘지형 공간정보체계 용어사전’은 스마트도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어디서나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고 영상회의 등 첨단 IT기술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미래형 첨단도시다. ‘유시티’라고도 불리며 유비쿼터스 기술을 이용하여 도시 내 모든 시설들이 지능화시키고 통신하면서 다양한 유비쿼터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시의 개념이기도 하다.”이에 따르면 고령군의 미래가 스마트도시인 동시에 유시티로 진화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 이남철 고령군수 “방문객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남길 터”앞서 언급한 ‘토지이용 용어사전’에 따르면 아래와 같은 시설을 스마트 도시기반시설이라고 한다.△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의한 기반시설 또는 공공시설에 건설 · 정보통신 융합기술을 적용하여 지능화된 시설 △초고속정보통신망, 광대역통합정보통신망, 지능화된 시설로부터 수집된 정보와 스마트도시의 관리 · 운영시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전달하는 유·무선 센서망 △스마트도시서비스의 제공 등을 위한 스마트도시 통합운영센터 등 스마트도시의 관리 · 운영에 관한 시설 △스마트도시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필요한 정보의 수집, 가공 또는 제공을 위한 건설기술 또는 정보통신기술 적용장치로서 폐쇄회로 텔레비전 등의 시설 등.고령은 이처럼 첨단화된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순서를 밟으며 나아가고 있다.“스마트도시 건설을 위한 일련의 사업들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후 지산동 고분군 형상관리와 향후 가야문화권 지방자치단체 확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라고 판단해 공모사업에 적극 응하고 있다”는 것이 이와 관련된 고령군 관계자의 설명이다.이남철 고령군수 역시 “대가야읍을 비롯한 고령군 전역을 스마트도시로 조기에 조성해 군민들 삶의 질을 높이고, 고령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스마트하고 아름다운 도시의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고령/전병휴기자 kr5853@kbmaeil.com

2023-06-07

봉화 베트남마을, 韓-베트남 관계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길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그곳을 찾는 관광객들이라면 누구나 ‘호안끼엠(還劍) 호수’를 찾게 된다. 서울이라면 광화문, 대구라면 두류공원, 포항이라면 영일대해수욕장처럼 외국인은 물론 그 지역 주민들까지 산책과 휴식을 즐기는 공간. 기자 또한 지난 5월 두 차례에 걸쳐 그곳을 돌아봤다.호안끼엠 호수 산책로엔 거대한 조형물이 서있다. ‘리 왕조’의 태조 이공온(李公蘊·974~1028)의 동상이다.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처럼 우뚝하다. 이공온은 어떤 인물일까? 이 궁금증에 ‘리브레위키’가 답한다.“베트남 역사상 최초로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고, 지금의 하노이를 수도로 정한 황제다. 974년 박린성 뜨선에서 태어났다. 1009년 나라가 내란에 휩싸이자 학식과 인품 모두에서 존경받던 이공온이 차기 황제로 추대된다. 수도를 옮긴 후에는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각 계층간의 화합에도 힘을 기울였다. 불교를 국교로 삼아 문화를 발전시켰고, 주변 국가의 침탈도 막아내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한 나라 수도 한복판에 동상을 만들어 그 업적을 기릴 정도라면 ‘리 왕조’와 이공온이 베트남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터.‘리 왕조’는 216년간 지속되다가 사라진다. 영원히 지속되는 영광이란 세상에 없는 법. 차오른 달은 때가 되면 기운다. 왕국 통치자의 성(姓)이 ‘이씨’에서 ‘진씨’로 바뀐 것. 이어 ‘리 왕조’ 혈족들에 대한 살육이 시작된다.글 싣는 순서1. 한국과 베트남 교류 역사의 시작2. 동반 성장의 파트너가 된 베트남3. 봉화군이 조성할 베트남마을4. 베트남인들이 생각하는 한국과 봉화군5. 봉화군과 베트남이 함께 꿈꾸는 내일 ◆봉화 충효당의 주인공 이장발은 베트남 ‘리 왕조’ 태조의 후손이공온의 7대손인 왕자 이용상은 목숨이 백척간두에 선 상황을 피해 먼 고려로 몸을 피한다. 망명이었다. 고려의 왕은 이용상을 내치지 않고 예를 갖춰 맞았다.그가 처음으로 밟은 고려의 땅이 황해도 화산이기에 ‘화산 이씨’라는 성(姓)도 사용하게 했다. 지금으로부터 800여 년 전인 1226년이다.몰락한 ‘리 왕조’의 왕족들은 이후 고려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 세월은 흘러 1392년 왕국의 이름이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뀌었다. 화산 이씨 역시 고려의 백성에서 조선의 백성으로 살게 됐다.1592년. 조선 역사에서 가장 큰 비극이라 할 수 있는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섰다. 봉화도 다르지 않았다. 봉화가 고향인 화산 이씨 가문의 장발(長發)은 분연히 떨쳐 일어나 문경 일대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 나선다. 홀어머니를 두고 이장발이 전사했을 때 그의 나이 겨우 열여덟이었다.‘베트남마을 조성 예정지’ 가운데 들어서 있는 봉화 충효당은 이장발의 기개와 애국심을 높이 평가한 조선의 유림들이 기꺼운 마음으로 만들었다. 자그마치 8세기 가까이 이어진 ‘화산 이씨’와 ‘봉화군’의 인연은 위와 같이 요약될 수 있다.그간 한국과 베트남은 두 나라 모두 왕국에서 공화국으로 변했고, 수없이 많은 통치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졌지만 양국이 오래 이어온 인연의 끈은 그것들과는 무관하게 아직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60년 전 베트남전쟁에서의 비극을 떨치고, 이제는 빼놓을 수 없는 우방국으로 서로를 인식하며 경제와 문화 교류를 가속화하고 있는 한국과 베트남.봉화군이 전력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이 21세기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프로젝트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역사와 문화를 잇는 교류의 다리될 것”인터뷰 박현국 봉화군수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교류의 다리가 되고, 미래세대에겐 두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교육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할 ‘베트남마을 조성 프로젝트’는 박현국 봉화군수의 역점 추진사업 중 하나다.베트남마을 조성의 신속한 추진을 위해 박 군수는 지난 5월 초 17명의 봉화군대표단을 구성해 ‘리 왕조’의 태동지 베트남 박린성 뜨선시를 방문하기도 했다.본지는 서면 인터뷰를 통해 베트남마을 조성과 관련해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을 묻고, 박 군수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구체적인 봉화군 베트남마을의 모습을 들어봤다.-봉화군에 ‘베트남마을’이 조성돼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뭔지.△나라가 서구열강에서 독립해 부강해지면 많은 국가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반드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을 거친다. 베트남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 중국에서 독립해 독립된 국가를 이뤘던 베트남 ‘리 왕조’에 대한 문화나 역사에 대한 재조명이 아닐까. 봉화군은 베트남 리 왕조의 역사가 이어지는 국내 유일의 유적지로서 다른 어떤 지역보다 한국-베트남 교류와 협력의 상징이 될 베트남마을 조성의 최적지라고 믿는다.-베트남마을 조성은 봉화군이 추진할 주요사업 중 하나다. 어떤 이유에서 이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것인가.△봉화는 현재 지방 소멸 위기에 직면한 인구 3만의 농촌지역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과 차별화 된 킬링 콘텐츠가 절실하다. 나는 우리 군과 베트남 리 왕조의 인연이 바로 그것이라 생각한다. 베트남마을 조성, 즉 베트남 콘텐츠 선점은 농촌 일자리, 농산물 판로 확대, 문화교류와 관광 활성화, 인구 증가 등 다양한 방면에서 봉화군에 활력을 가져다 줄 것으로 예측된다. 그렇기에 사명감을 가지고 추진 중이다.-올해 새롭게 추진될 베트남마을 조성 관련 사업은 어떤 것이 있을까.△우선 하드웨어적으로는 봉화 충효당과 재실을 잇는 ‘교류의 길’과 연꽃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특별교부세 20억 원을 신청해 놓았다. 대규모 사업 전 기초 인프라를 닦기 위해서다.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올 하반기 베트남 뜨선시 우호대표단 초청과 국제 자매결연 체결을 통한 지속적인 문화 교류를 진행할 예정이다.-지난 5월 초 베트남 박린성 뜨선시를 찾았다. 베트남마을 조성에 관해 어떤 구체적인 협조와 지원을 약속 받았는지 궁금하다.△이번 방문에서 많은 성과를 얻었다. 항 바 위 뜨선시장은 베트남 건축양식에 대한 자문을 약속했고, 꾸억 투언 박린성 부성장은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사업 성공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했다. 여기에 더해 하반기 봉화군 우호교류단 초청과 국제 자매결연 체결 요청에 흔쾌히 응하며 실무단 구성을 지시했다.-예상되는 고용 창출 효과, 인구 증가 효과,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 등을 포함한 베트남마을의 대략적인 모습은.△베트남을 생각할 때 우선 많은 인구를 바탕으로 한 역동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붕화군이 만들 베트남마을도 현지 주민과 베트남 다문화인, 다양한 관광객이 공존하는 역동적인 명소가 되었으면 한다. 구체적인 사업 계획과 고용 창출 및 인구 증가 등의 효과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베트남마을 조성사업 보완용역에 반영해 연말에 가시화 시키려고 한다. 여러분들의 관심과 기대를 부탁하고 싶다.끝/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3-06-06

"이준석, 당 공천 받기 어려울 듯" 신평 변호사 예측

지난해 대선을 즈음해 윤석열 대통령과 정치적 견해를 주고 받는 친밀한 관계가 부각,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신평(67) 변호사. 그후 지금까지 1년여 동안 한국 정치의 민감한 고비 때 마다 매번 강도 높은 쓴소리로 일관해 왔다.그러다 소위 대깨문 등 정치 일각의 집중 포화에 시달리다 가족이 공황장애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여권 일부가 불편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2023년 현재 한국 정치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신 변호사를 3일 경주 황리단길 인근 사정동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신 변호사는 “지난 20여년간 매일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 1시간씩, 하루 2시간 동안 미국 공영 시사 라디오 프로 NPR을 청취해 왔다”며 “이제는 세계 정세에 대해 웬만한 외신 기자 보다 밝다”고 조심스레 말했다.신 변호사는 하루 일과를 오전 6시부터 자택에 붙어 있는 텃밭 500여평에서 농사일로 시작한다. 상추와 옥수수, 감자, 호박, 오이 등을 재배하는 모습은 영낙없는 촌로다. “요즘은 산딸기가 많이 나 지인들과 나눠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자랑했다.“오후 시간에는 서너시간씩 독서 삼매경에 빠진다”고 했다. 텃밭 한켠에 만든 소규모 건물 서재에서 “요즘‘논어’를 읽는 중”이라고 했다. 저녁 식사 후에는 부인과 황리단길 주변 고분공원 등지에서 매일1시간여 동안 산보룰 한다. “서울은 자녀도 만나 볼겸 방송사 출연이 있을 때 가끔씩 간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의 인연은?△ 대선 1년전 쯤인 지난 21년 페이스북과 한겨레신문 칼럼을 통해 윤 대통령을 ‘검찰 지상최고주의와 출세주의자’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는데 지인들이 한번 만나보길 권했다. 당시 윤 대통령과 독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매우 선하고 인품이 훌륭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또 강한 리더십이 느껴졌고 평소 ‘운동권 청산이 차기 정권의 시대정신’이라는 소신이 윤 대통령을 돕게 됐다. 대선 과정에서는 선거 일정을 마친 늦은 밤, 윤 대통령과 전화를 통해 정치적 견해를 주고 받기도 했다.- 현 정국에서 신 변호사의 정치적 입장과 역할은?△ 윤석열 정부 성립에 작은 기여를 한 사람으로서, 윤 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다. 직책이 없으니 외곽에서 응원할 뿐이다.- 내년 총선에 대한 전망?△ 여야 모두 내부적인 문제가 심각해 보인다. 국힘당은 당이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다. 당대표의 리더십이 약해 보인다. 특히 최근 갤럽조사에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35% 수준에 머물렀다. 40% 중반에는 안착해야 안정적인데 걱정스럽다.일반적으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비대위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 민주당은 이탄희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상정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국힘당의 경우 ‘올 가을쯤에는 비대위 구성 내지 선대위원장 체제로 가야 하지 않느냐’는 예측이 많다.최대 관건은 ‘양당 모두 내년 총선을 앞둔 향후 11개월 동안, 어떻게 성공적인 진화를 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정확한 예측이 어렵다.사실 국힘당 내부에서는 “내년 총선에서 국회 150석 확보가 좀 어려워 보인다”고 전망하는 것 같다.- 내년 총선에서 대구경북의 전망은?△ 국힘당 전원이 당선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구·경북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는?△ 아쉬운 점이 많다. 국정에서 썩 두각을 나타내는 분이 많지 않다.- 내년 총선에서 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의 물갈이 수준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과거에도 매번 절반 가까이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 대구·경북지역은 공천= 당선이기 때문에, 중앙당에서 부담 없이 물갈이 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MZ세대 중심 총선이 될 가능성은?△ 그렇게 돼야 한다.- 이준석 전 국힘당 대표에 대한 당 공천은?△ 이준석 본인은 ‘억울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윤 대통령을 너무 비하했고 실제 그렇게 처신을 해왔다. 현 정부 출범 이후에도 계속 비난했다. 과연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공천을 줄 수 있나. 反윤석열 행보가 너무 멀리 간 것 같다.- 이준석이 공천을 받지 못할 경우 내년 총선에서 MZ세대의 역풍이 없을까 ?△ 없다고 본다. 이준석은 ‘젊은층을 많이 흡수했다’고 주장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젊은 여성 유권자들이 대거 민주당으로 갔다. 이준석이 가진 상징성이 ‘능력주의’와 ‘안티 페미니즘’인데 시대적 흐름에 뒤쳐져 있다. 젊은층의 폭 넓은 지지를 받는데에는, 도리어 이준석이 방해가 되고 있다. 젊은 남성 유권자 표에서는 조금 손해를 보겠으나, 국힘당이 이들을 흡수 할 보완책을 마련한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조국의 차기 대권 주자설과 내년 총선 관악갑 출마설을 제기했는데.△ 한국의 정치 지도자는 ‘고난의 서사’와 ‘사람을 끌어 모으는 힘’ 등 2가지 덕목이 있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야권에는 조국을 필적할 만한 인물이 없다. 이재명도 어느 정도 근접하지만, 조국이 이재명 보다 낫다.조국 본인의 입장에서도, 현재의 깊은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는 정치 밖에 없을 것이다. 조국이 현재 진행중인 재판 2심에서 실형을 받는 돌발사태가 없다면, 반드시 출마할 것이다. 현재 여의도에는 조국이 내년 총선을 위해 관악 갑에 공을 들인다는 소문이 나 있다.- 최근 “안철수가 당 대표가 되면 윤 대통령이 탈당해 신당을 창당 한다”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됐는데 그 이유는?△ 지금은 밝힐 수가 없다. 시간이 좀 지나면 이야기 할 때가 올 것이다.- 안철수의 미래는 어떻게 보는가?△ 지난 국힘당 대표 선거에는 안철수가 나서면 안되는 타이밍이었다. 왜 출마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안철수가 전략적 사고를 못해서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대통령 임기 초반에 안철수 미래권력이 내년 총선을 지휘하겠다고 나선 것은, 현 권력에 대한 도전이다. 살아 있는 권력에 도전하는 세력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하지만 안철수는, 그가 가진 상징성 때문에, 국힘당의 상당한 정치적 자산이다. 정치적 지도자의 2가지 덕목을 고려할 때, 현재 국힘당에는 안철수 보다 나은 조건의 정치인은 없어 보인다. 개인적으로 정치적 자질도 높이 평가한다. 내년 총선에서 국힘당에게는, 안철수가 꼭 필요해 보인다. 그 이유는 총선 승리의 키 포인트인 중도층과 수도권 표심을 움직이는데, 안철수의 역할이 클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얼마전 ‘윤대통령이 자기 지지층 구애를 위해 서문시장을 4번 방문했다’고 지적해 여권에서 논란이 됐는데.△ 내년 총선은 중도층과 수도권 표심이 결정한다. 그걸 간과하면 결코 이길 수 없다. 물론 윤 대통령의 핸디캡인, 지역 기반이 없는 점을 극복하기 위해 대구경북 텃밭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수도권 표심에 무게 중심을 두지 않을 경우 패인이 될까 염려된다. 또 국힘당 일부에서는 현재의 민주당 악재들을 거론하며 “내년 총선은 우리가 질 선거가 아니다”라고 자신하지만,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민주당이 향후 11개월 동안 젊은층을 흡수하는 등 혁신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경계를 늦춰서는 안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풍산개 월 사육비 250만원,국비 지원 안돼 파양’에 대한 발언으로 한동안 시끄러웠는데.△ 제가 얼마전 유기보호견센터에서 안락사 직전의 8개월 된 믹서견 한 마리를 입양했는데, 월 사료비가 10만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문 전 대통령의‘풍산개 월 사육비 250만원 계산법’이 어떻게 나온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또 사진을 자세히 보면 문 전 대통령은 개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확실하다. 이미지 정치를 위해 개의 위대한 가디언(수호자)으로 연출하는 것이 우습기만 하다. 반면 본인 입장에서는 거짓 연출이 괴로울듯 하다.- 홍준표 대구시장의 차기 대권 후보 가능성은?△ 홍 시장은 지난해 대선 당내 경선에서 “국민 여론조사에서 이겼으나 당내 투표에서 져 대통령 후보가 못 됐다” “후보가 됐으면 내가 대통령이 됐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것 같다. 하지만 당시 민주당 지지자들이 윤 대통령을 안티하기 위해 국민여론조사에서 홍시장에게 표를 몰아주는, 역선택을 한 결과로 보인다. 시대가 변하고 있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논객 활동의 힘든 점은?△ 지난 대선 때 윤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 했다. 조국사태에서는 제가 처음으로 글을 올려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소위 대깨문들의 정치적 비난 등 인터넷 집중 공격을 받고 집사람이 공황장애로 경주동국대병원에 입원하는 등 1년째 약을 먹고 있다. 나는 끄떡 없지만 가족들의 고생이 많다. 최근에는 조국 교수의 대선 출마를 예견했다가 우파의 심한 공격을 받았다. 한국 정치는 좌·우파 모두 과열 팬덤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끝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뿐이다. 윤 정부에 이어 차기 정부도 우파가 집권하길 바란다. 우파 정권 10년이면 한국이 안정과 번영을 이룰 것이다. 그때쯤 되면 386운동권 세력이 퇴조를 하면서 민주당도 정화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이 보수·진보의 건강한 양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 오를 수 있을 것이다.인터뷰를 하는 동안 신 변호사의 부인이 차와 과일, 주전부리 등 3가지를 내놨다. 이날이 3번째 방문이었는데 매번 격식을 갖춘 손님 응대였다.기자가 휴지를 사용할 경우 신 변호사는 바로 일어나 쓰레기통을 가져다 줬고, 노트북 전기코드를 바닥의 콘센트에 연결할 때는 먼저 허리를 굽혀 도왔다.또 신 변호사의 부인은, 현관에 벗어 둔 기자 구두의 방향을 신기 편하게 반대로 돌려 놓아 주었다.신 변호사는 상대 입장을 헤아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성품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박진홍기자 pjhbsk@kbmaeil.com

2023-06-04

흥행대박 ‘문경찻사발축제’ 명성 가을 오미자·사과축제가 잇는다

한국의 모든 도시가 마찬가지다. 그 도시를 발음하면 자연스레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기 마련.경북 문경 역시 다를 바 없다. 문경새재의 아름다운 풍광과 숲의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맑은 공기는 문경으로 향하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여기에 더해 문경은 품질 좋은 도자기의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조선 초기부터 분청사기와 백자가 많이 생산되는 지역으로 이름이 높았던 문경은 미려하고 다양한 형태는 물론, 오묘한 빛깔로 호평 받는 도자기와 찻사발로 이름이 높다. 도자기를 사랑하는 수집가들은 “문경은 도예 부문 무형문화재와 명장의 작품 도자기를 만날 수 있기에 자주 찾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위의 언급처럼 문경에는 전통 방식의 도자기 제작법을 지켜가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유명한 도요지 역시 많다. 규모가 큰 도자기박물관도 있다.그렇기에 지역의 전통을 이어가고, 이를 지역경제 활성화로 연결시키기 위해 문경시는 오래전부터 ‘찻사발 축제’를 개최해 왔다, 찾는 이들이 많았고 인기도 높았다.이와 관련 문경시 관계자는 “한국 도예의 전통을 지켜가겠다는 건 우리들의 변하지 않는 지향이고, 의지다”라고 설명한다.□ ‘코로나19 사태’ 후 첫 대면 축제 ‘2023 문경 찻사발축제’지난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국에선 ‘대면 축제’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반갑지 않은 손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창궐 탓이었다. 나라 전체가 그런 달갑지 않은 상황을 긴 기간 겪어야 했다.문경 또한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품인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알림으로써 여행자들의 예술적 욕구를 충족시킬 ‘찻사발축제’을 오랜 기간 열지 못했다. 그러나, 영원히 지속되는 불행과 비극은 없는 법.올해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문경 찻사발의 매력을 대면 축제를 통해 홍보할 수 있었다. 지난 4월 29일 시작돼 5월 7일까지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에서 펼쳐진 ‘2023 문경 찻사발축제’가 그 생생한 현장이었다.문경시 관계자에 의하면 “축제가 진행된 9일간 24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문경을 찾아 문경 도예의 진수를 만끽했다”고 한다. 특히 장시간 노력을 들인 기획전시와 특별행사, 체험행사와 부대 이벤트 등 50개가 넘는 프로그램을 접한 방문객들은 “알차고 의미 있는 전시와 행사였다”는 평가를 내놓아 축제를 준비한 이들이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게 문경시의 설명.지역에서 열리는 축제는 그곳을 기반으로 생활하는 소상공인들에게도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 형성되는 게 정한 이치이기 때문이다.이번 축제로 문경시가 도자기와 특산물 판매, 간접 고용 등을 통해 얻은 경제 효과는 약 150억 원. 찻사발을 포함한 문경 도자기의 가치를 알리는 효과 외에도 지역민에게 적지 않은 실익이 돌아간 것이다. □ 철저한 축제 준비로 문경 찾은 관광객들 호평 이어져사실 그간 ‘문경 도자기는 좋은 만큼 비싸고 구매하기가 까다롭다’는 선입견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2023 문경 찻사발축제’는 이런 선입견을 없애줬다.가지려고 하면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5천 원부터 몇만 원대의 생활도자기를 대거 선보인 것. 그러니 적지 않은 축제 방문객들이 문경에서 만들어진 값싸고 실용적인 생활도자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또한, 평소에는 접하기 힘든 고가의 명품 도자기도 하루 20~30점을 10만 원대 가격에 내놓은 파격행사도 만나볼 수 있었다는 게 참석자의 전언이다. 이는 축제 기간 펼쳐진 ‘문경 도자기 명품 경매’가 눈길을 끌었던 가장 큰 이유다.21세기형 축제가 지난 시절과 변별되는 가장 큰 지점은 ‘체험’이다. 스스로 행사에 참여해 주인공이 되는 경험은 어린아이들은 물론 어른까지 즐거움 속으로 이끈다. 올해 ‘문경 찻사발축제’는 여기에도 주목했다. ‘체험 행사’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찻사발 빚기, 찻사발 그림 그리기, ‘황금 찻사발을 찾아라’, 다례 시연, 스탠딩 찻자리 등의 다종다양한 소통형 프로그램을 대거 만든 건 이른바 ‘신의 한 수’였다.이 프로그램들은 관람객은 물론 문경시민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어낸 것. 이는 찻사발축제장의 활력소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는 칭찬을 받았다.‘2023 문경 찻사발축제’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 그 추억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문경시민과 더불어 즐겼던 시민의 날 행사와 마술사 이은결의 공연 등 참여형 콘텐츠는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문경시 역시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다른 걱정 없이 축제를 즐길 수 있게 입장료와 주차 요금을 없애고, 행사장을 오가는 전동차를 운행했던 것도 성공적인 축제 운영의 한 축이었다”고 자평했다. □ 올 가을엔 문경 오미자축제와 사과축제가 여행자들 기다려2023년 봄을 ‘찻사발축제’가 장식했다면, 오는 가을엔 문경의 또 다른 축제 2개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문경 ‘오미자축제’와 ‘사과축제’가 바로 그것.앞서 말한 것처럼 특정 도시를 떠올리면 이어지는 관련 이미지가 있는데, 문경의 연상 이미지 중에는 도자기와 함께 오미자와 사과도 있다.여러 문헌에 따르면 오미자는 혈류 개선, 고혈압, 뇌졸중, 심혈관 질환 예방, 면역력 개선, 당뇨병 예방, 호흡기 질환 개선 등에 효과가 있는 약용식물. 덧붙여, 오미자의 항산화 성분은 피부 질환에도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다. 특히, 문경에서 생산되는 오미자는 해발 고도 300m 이상의 깨끗한 자연에서 친환경 방식으로 재배되고 있기에 좋은 품질을 예전부터 인정받고 있다. 이를 토대로 문경은 오미자를 이용한 각종 제품을 다양하게 생산한다.부끄러움 없이 내세울 수 있는 농산품을 가진 고장은 그것을 핵심 주제로 하는 축제를 만들게 되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 그렇기에 문경의 ‘오미자축제’는 찻사발축제 못지않은 문경시의 대표 행사로 관광객들의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이를 증명하듯 작년 9월엔 문경에서 ‘다섯 가지 맛의 비밀-문경 오미자’라는 슬로건 아래 관련 축제가 성대하게 열렸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축제 현장을 찾아 문경 오미자의 맛과 향을 즐겼다.지난해엔 채 걷히지 않은 ‘코로나19’ 걱정으로 6만 명의 관광객이 문경을 찾았지만, ‘코로나 엔데믹’이 선언된 올해는 더 많은 이들이 새콤하고 달콤하며 약용 성분까지 듬뿍 품은 문경 오미자를 맛볼 수 있을 듯하다. 문경시 역시 “올해는 보다 철저한 준비와 내실 있는 축제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도록 오미자축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비단 초가을 오미자축제만이 아니다. 가을이 좀 더 깊어질 10월엔 ‘문경 사과축제’가 출격 준비를 하고 있다. 그야말로 연이은 행복한 페스티벌이다.문경에서 오랫동안 사과를 재배해온 농민들은 “중산간 지역 비옥한 토질에서 자라는 우리 지역 사과는 당도가 높고 맛과 향이 뛰어나다. 그래서 ‘꿀사과’라는 별명으로 불린다”며 엄지를 세운다.지난해 10월 중순 개최된 ‘문경 사과축제’에선 200t이 넘는 사과를 방문객들이 구입했다. 이는 현장에서 확인된 문경 사과의 인기를 가감 없이 보여준 사례다.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의 제목에서 착안한 ‘백설공주가 사랑한 문경 사과’라는 카피 또한 축제장을 찾은 가족들의 웃음을 불렀다.올해도 문경시 농민들과 문경시청 축제 담당자, 각계의 전문가들이 아이디어를 모아 사과축제의 성공을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이번 주말엔 어디로 가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명쾌한 해답을 주고 있다.‘문경의 봄’은 찻사발축제로 빛났다. 이제 곧 다가올 여름을 넘기고나면 시작될 ‘문경의 가을’. 그 계절엔 문경 ‘오미자축제’와 ‘사과축제’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 기다림은 지루함보다는 행복에 가깝다. 문경/강남진 기자75kangnj@kbmaeil.com

2023-06-04

전국 배드민턴 동호인 2천명 ‘셔틀콕 대향연’

포항시가 주최하고 경북매일신문, 포항시배드민턴협회가 주관하는 ‘포항국제불빛축제 기념 2023 포항시 OPEN 배드민턴대회’가 지난 3∼4일 이틀간 포항종합운동장 만인당 체육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이번 대회에는 전국 950여개 배드민턴클럽 동호인 2천여명과 응원차 방문한 가족 1천여명 등이 참석해 전국 최대 규모의 ‘셔틀콕 대향연’을 벌였다.첫날 개최된 개막식에는 최윤채 경북매일신문 사장과 안승도 포항시 남구청장, 백인규 시의회 의장, 김일만 시의회 부의장, 김종익 포항시의원, 함정호 포항시의원, 박용선 경북도의회 부의장, 김유곤 포항시체육회 부회장, 황종현 포항시배드민턴협회장 등 많은 내빈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개회식 직후 진행된 황금라켓(18k)과 LED TV, 배드민턴 용품 등 푸짐한 경품이 걸린 행운권 추첨 이벤트는 동호인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황금라켓의 주인공으로 선정된 최수영(48·동해면)씨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당첨돼 너무 기쁘다”며 환하게 웃었다.최윤채 경북매일신문 사장은 대회사를 통해 “포항국제불빛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개최된 본 대회는 올해 18회째를 맞게 됐다”면서 “이번 대회에는 무려 950여개팀이 참석하면서 전국 최고의 배드민턴 대회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 본 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협회·동호회의 애정과 성원 그리고 포항시와 배드맨턴 협회의 헌신과 봉사 때문이었다”면서 “이번 대회에 출전한 모든 동호인들은 목표한 성적을 올리면서 포항에 대한 좋은 추억도 함께 가져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안승도 포항시 남구청장은 “배드민턴은 오랫동안 실생활에서 친숙한 생활운동으로 자리잡아 남녀노소 누구든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면서 “대회 참가 동호인들은 땀을 흘리며 모든 스트레스를 날리는 한편 소통과 화합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환영사를 했다. 백인규 포항시의회 의장은 “배드민턴 동호인들의 포항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면서 “이번 대회를 통해 생활체육 배드민턴 발전과 해양관광·스포츠 명품도시인 포항이 전국에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박용선 경북도의회 부의장은 “오늘 대회를 알차게 즐기시고 포항에서 즐거운 추억 많이 쌓아가시길 바란다”고 했다.전국 각지에서 내로라하는 배드민턴 강호들은 이번 포항대회에서 남·여 복식과 혼합복식 3개 종목에서 20∼60대 연령별로 셔틀콕을 주고 받으며 열전을 벌였다. 포항 형산강클럽 이동현(31·해도동)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클럽 대항전을 통해 1년간 실력을 키웠다”라면서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한편 이번 대회 기간 종합운동장 주변 숙박업소와 식당 등이 대회 참가자들로 북새통을 이루면서, 지역 경제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50대 초급 복식’ 우승자 인터뷰“파트너와의 연습경기 도움 행복한 마음으로 운동할 것”“작년에 이어 올해도 우승하면서 바라던 C급으로 승급하게 돼 정말 기쁘고 기억에 남는 대회가 됐다”며 “어느 대회든 첫 경기가 매우 중요한데 이번 대회 첫 경기에서는 24대 25로 단 1점차 진땀승을 거두면서 우승까지 갈 수 있었던것 같다”고 말했다.포항시가 주최하고 경북매일신문과 포항시배드민턴협회가 주관한 2023 포항시 OPEN 배드민턴 대회에서 포항 지곡동 한마당체육관 사철클럽 소속 정석배(51)씨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50대 초급 복식 종목 우승을 거머쥐면서 파트너 윤기배(55)씨와 함께 초급에서 C급으로 승급했다.그는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파트너 윤씨와 최대한 많은 연습경기를 치루면서 호흡을 맞춘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회 당일 첫 게임을 가져오면서 굳었던 몸이 풀렸고 덕분에 남은 게임까지 연승을 거두면서 우승을 차지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정씨는 “배드민턴을 시작한지 6년차가 되면서 점점 더 욕심이 생기고 있다”며 “최종 목표는 A급이지만 배드민턴을 항상 행복한 마음으로 즐기면서 건강도 찾고 삶의 활력도 지켜 나가겠다”고 다짐했다./강준혁기자사진=이용선기자

2023-06-04

고난의 역사 겪은 한국과 베트남, 강한 나라로 거듭나다

“현재 경북 봉화군은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그곳 봉성면 창평리엔 당신들의 조상인 ‘리 왕조’ 후손 이장발의 애국심을 기려 세운 충효당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일대에 역사와 문화, 휴양을 동시에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베트남역사관, 공연장, 연수·숙박 시설, 잘 꾸며진 정원까지 들어설 예정이다.”기자의 말을 들은 주한 베트남관광청 리 쓰엉 깐(65) 대사는 “그 소식은 들어서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가 이어졌다.“이미 천 년 전부터 활발하게 교류했던 두 나라의 관계가 재정립되고, 지금 진행되는 한국과 베트남의 협력이 보다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기에 의미 있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36년, 베트남에서 29년을 살았다. 두 나라는 고난의 역사를 겪었다는 점과 충효를 중시하는 정서 등에서 많은 공통점이 있다.”리 쓰엉 깐 대사는 13세기 초반 베트남에서 고려로 ‘정치적 망명’을 감행한 ‘리 왕조’의 왕자 이용상의 후손이다. 1994년 베트남으로 귀화하기 전엔 이창근이란 이름의 한국인으로 생활했다. 그러니, 누구보다 양국의 국민성과 지향점을 잘 알고 있을 터.비단 이창근 대사만이 아니다.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과 베트남 모두가 과거 식민지였던 경험을 가지고 있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지속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했다는 사실 정도는 인지하고 있다.글 싣는 순서1. 한국과 베트남 교류 역사의 시작2. 동반 성장의 파트너가 된 베트남3. 봉화군이 조성할 베트남마을4. 베트남인들이 생각하는 한국과 봉화군5. 봉화군과 베트남이 함께 꿈꾸는 내일 ◆식민지 경험과 뜨거웠던 독립 의지라는 공통점한국은 20세기 초반 팽창하던 제국주의 국가 일본에게 국토와 국권을 빼앗긴다.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고, 자신의 땅에서 생산된 각종 재화를 일본에게 수탈당했다. 국민의 거의 전부가 일본의 종살이를 한 형국이었다.베트남은 이보다 먼저 19세기에 프랑스의 식민지가 됐다. 제국주의의 착취 양상은 유사하다. 프랑스도 베트남 노동자들을 강제 징발했고, ‘아편의 원료를 재배하라’는 부도덕한 명령까지 내리는 등 베트남 국민의 일상을 파괴했다.억압이 심해질수록 한국과 베트남의 독립의지는 뜨겁게 불붙었다. 이민족으로부터 나라를 해방시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독립투사들’이 생겨난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었다.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유관순은 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옥사(獄死)한다. 고문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었을 때 그녀의 나이 겨우 열여덟이었다. 윤봉길은 자신의 나라를 탄압하던 일본의 고위관료와 장성을 처단하기 위해 폭탄을 품고 중국 상해로 떠난다. 당시 그의 나이도 겨우 스물넷.한국에 유관순과 윤봉길이 있다면, 베트남엔 ‘보 티 사우’가 있다. 150㎝ 남짓의 조그만 소녀는 자신의 민족을 배반하고 프랑스의 주구(走狗)로 살던 베트남 관료를 폭사시킨다. 보 티 사우가 던진 폭탄에 프랑스 군인 20명도 부상당한다.식민지 베트남에서 열린 프랑스의 법정. 법관은 그 조그만 소녀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총살이 집행되던 날. “내 나라의 강과 산을 보며 죽겠으니 눈가리개를 풀어라”고 당당하게 일갈하며 순국한 보 티 사우는 유관순보다 한 살 어린 열일곱이었다. ◆나라 위해 기꺼이 생명 버린 베트남계 조선인 이장발한국과 베트남 청년들의 순정한 애국심은 비단 20세기 전후에만 발휘된 게 아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에도 봉화 출신의 열여덟 살 청년 하나가 문경새재에서 일본군과의 교전 중 사망한다. 이장발(1574~1592)이다.홀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기던 그는 ‘더 큰 어머니’인 조국을 위해 주저함 없이 생명을 바친다. 그는 ‘리 왕조’의 혈통인 화산 이씨. 그러니, 말하자면 베트남계 조선인이다.1750년 조선 유림들은 이 어린 청년의 기개와 용기를 높이 평가해 ‘충효당 화산 이공 유허비’를 세우고, 충효각을 지어 그의 정신을 기렸다. 이장발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남겼다는 시는 이런 내용이다. ‘두산백과’를 인용한다.百年存社稷·백년사직을 구할 계획을 가지고六月着戎衣·유월에 갑옷을 입었다憂國身空死·나라를 위해 몸은 죽지만思親魂獨歸·어머니 못잊은 혼백은 돌아가네이장발은 1226년 베트남에서 고려로 이주한 이용상의 후손이다. 이용상 역시 몰락한 외국의 망명객을 따스하게 맞아주며 ‘화산 이씨’라는 성(姓)까지 선물한 고려를 위해 몽골군과의 전투 최전선에서 용맹하게 싸웠다는 기록이 전한다.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난 이창근 대사와 ‘리 왕조’ 건국 기념행사 덴도 축제가 열린 박린성 뜨선시에 동행한 화산 이씨 종친회 이부영 부회장은 입을 모아 말했다.“아무리 강한 외세일지라도 굴복하지 않고, 부모를 섬기는 걸 높은 가치로 평가하며, 무엇보다 자녀들의 교육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예나 지금이나 한국과 베트남은 닮았다”고. 여기에 이런 말도 덧붙였다.“한국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반면, 베트남은 그렇지 않다. 인구의 대다수가 30대 이하인 젊은 국가다. 한국의 경제개발 노하우와 베트남 젊은이들의 열정이 효과적으로 결합된다면 두 나라는 더불어 커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사실 1960~1970년대에 걸쳐 벌어진 베트남-미국간 전쟁에 한국이 참전한 시기를 제외하면 양국의 우애는 나빴던 때가 거의 없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다. ◆한국-베트남간 우호적 교류 전통 이어갈 봉화 ‘베트남마을’‘동북아문화연구 제26집’에 실린 강은해(계명대학 인문대)의 논문 ‘한국 귀화 베트남 왕자의 역사와 전설’의 서두는 아래와 같이 시작된다.“한국과 베트남 두 나라는 일찍이 서로 동경하고 소통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중국이나 몽골, 일본 등 주변 국가와 달리 양국의 관계는 침략으로 얼룩지지 않았다…(중략) 우리나라 고려시대 황해도 옹진현에는 베트남 리 왕조의 왕자 이용상(李龍祥)이 망명해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전설과 문헌 사료가 전해오고 있다…(중략) 조선시대 1598년 정유왜란 때 진주에 살았던 선비 조완벽은 왜구에게 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교토의 상인에게 팔려 문자를 안다는 이유로 상선을 타고 베트남을 세 차례나 오갔다. 베트남 사람들은 그에게 이수광의 시를 보여 주며 고아(高雅)한 시를 쓴 조선 선비에 대한 존경과 호의를 표시하기도 하였다…(하략).”위의 논문을 통해 알 수 있듯 2023년 현재 한국과 베트남의 활발한 경제·문화 교류와 양국 사람들이 직업을 구하기 위해서나, 관광을 하러 서로의 나라를 찾는 건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이미 수백 년 전, 아니 1천여 년 전부터 두 나라가 밀접하고 호의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왔다는 건 여러 고문헌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위에 언급한 논문엔 ‘망명객 이용상’이 정치적 박해 탓에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고향 땅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에 관한 구전도 인용된다. 이런 대목이다.“高麗(고려) 때, 安南國(안남국·베트남)의 왕자 李龍祥(이용상)이라는 이가 우리나라에 망명을 해왔는데, 그는 고국 생각을 잊을 수 없어, 항상 이 바위 위에 올라서서 고국이 있는 남쪽 하늘 끝을 바라보고는 방성통곡하였다고 한다. 이런 일로 인하여 뒷날 이 바위를 越聲岩(월성암)이라 불러온다는 것이다.”고려와 대한민국, 13세기와 21세기가 무엇이 다를까? 고향을 그리워하는 건 인간 보편의 감정이다. 오죽하면 미물인 여우조차 죽을 때는 고향 쪽으로 머리를 둔다고 했을까.봉화군이 추진 중인 ‘베트남마을 조성 프로젝트’는 한국인에겐 오랜 친구인 베트남과의 교류 역사를 떠올리게 하고, 한국으로 이주한 베트남인들에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줄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계속)/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3-05-30

지역 예술가들 ‘형산장여관’에 묵다

여관의 사전적 의미는 ‘여행객이 묵는 집’이다. 누군가에게는 어쩌다 한 번 머무는 공간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거듭 돌아오는 장소일 수 있다. 어떻든 간에 떠나는 자들의 공간인 여관은 여인숙을 밀어내고 한 시대를 풍미하다 지금은 신축 숙박업소에 밀려 사라졌거나 후줄근한 이미지로 연명한다. 포항시 남구 포스코대로 436번지에도 시류를 놓쳐버린 여관이 있었다. 과거에는 여행객이 묵었지만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지금은 예술이 묵는 곳이 된 ‘형산장여관’이다. 시간의 더께를 그대로 간직한 공간은 예술과 어우러져 상상 이상의 공간이 됐다. 형산장여관을 ‘ART436’으로 재탄생시킨 문화예술협동조합 ‘잇다’의 안성용 대표를 만났다. 그는 30년 넘도록 송도의 시간을 렌즈에 담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이다. -낡은 여관은 어떻게 갤러리가 됐나.△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으로 지원받고 나머지는 예술인들이 십시일반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허가한 단체는 전국에서도 드문 것으로 안다. 지난해 인가를 받고 꿈틀로 인근의 비어있는 건물을 수소문한 결과, 포항의 스토리를 간직한 건물을 찾았지만 건물주는 예술가들에게 임대하기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매매하길 원했다. 그러다가 오랫동안 비어있던 형산장여관과 연이 닿았고 포스코 집수리 봉사 단체와 예술인이 힘을 모아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낡고 거친 그대로의 인테리어가 독특하다.△별다르게 덧댄 건 없고 벽을 턴 정도이다. 처음에 들어가 보니 10년 전 달력이 그대로였고 천장에서는 빗물이 샜다. 10개 넘는 객실마다 침대와 화장대, 화장실의 세면대와 양변기를 뜯어내니 쓰레기양이 어마어마했다. 원형을 보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최대한 손을 덜 댔다. 전시장이라면 하얀 벽이 기본이지만 부서진 벽돌을 그대로 두었다.-칠이 벗겨진 간판도 그대로다.△사실 초기에는 관람객뿐 아니라 일부 회원들도 민망하다고 간판을 떼버리자고 했다. 여관에 들어가는 걸 누가 보고 오해라도 하면 어쩌냐는 말도 하더라. 철거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한번 파괴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다들 포항역을 아쉬워하지 않나. 포항역은 포항 시민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역사는 한번 지워지면 복구가 안 된다. 오래된 것은 파괴할 것이 아니라 고쳐 써야 한다.-갤러리가 되기 전 형산장여관의 스토리를 들은 바 있나.△형산장여관은 1970년대 만들어졌다. 형산큰다리 건너기 직전에 위치해 포스코 협력업체나 연관업체 직원들이 출장와서 묵었다고 한다. 한창 경기가 좋을 때는 지하 주점도 제법 돈을 끌었다고 들었다. 세월이 흐르고 더 좋은 숙박시설이 생기면서 이용객이 줄었다.-형산장여관을 갤러리로 만든 주축은 문화예술협동조합 ‘잇다’이다. 예술가들이 협동조합을 조직한 이유는.△ 작가들에게 늘 아쉬운 것은 관객과 만나는 공간이다. 규격화된 공산품은 온라인으로 봐도 상관없지만 예술품은 실물을 영접해야 진가를 알 수 있다. 작가들이 재능을 마음껏 펼치고 판매를 통해 적게나마 수익을 창출하는 공간이 필요했다. ‘ART436’은 작가들의 필요를 모두 담은 공간이라고 보면 된다. 작가 개인은 이루기 어려워도 모이면 힘이 커진다.-기존 전시 공간으로는 부족한 편인가.△50만 인구라면 최소 50곳의 전시장이 있어야 한다. 포항에는 시립미술관, 문화예술회관, 중앙아트홀, 문화예술팩토리(북구청), 꿈틀로 스페이스298 등의 전시장이 있다. 이외에도 몇몇 있지만 예술을 바라보는 형편없는 시각을 드러낼 뿐이다. 시립미술관은 한국 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공공미술관의 역할이 있다. 지역 작가들이 전시하기 좋은 곳들은 기획전만 하거나 원하는 일정을 잡기 어렵다. ‘ART436’은 지역 작가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대관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7회 정도 전시를 했다. 현재는 포항예술문화연구소의 정기전 ‘시선의 경계’가 열리고 있다.- ‘ART436’이 된 형산장여관에 숙박객 대신 예술가들이 묵는다고.△ 1층은 갤러리이고 2~3층은 입주작가 작업실이다. 회화와 조각, 사진, 영상, 디자인, 설치, 문학 등 전 장르의 작가들이 입주해 있다. 입주작가는 공모를 통해 모집했다. 월세는 10~15만원으로 전기나 수도요금은 조합의 프로젝트를 통해 충당한다. -문화예술협동조합 ‘잇다’의 특별한 운영 원칙이 있나.△ 특별한 것은 없다. 예술품을 생산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열려있다.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참여한다. 사진을 하다 보니 주위에 사진가가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여러 장르의 작가들이 모이니 액자에만 갇혀있던 작품이 설치미술과 결합하고 장르를 넘나들면서 작품이 풍부해졌다.-궁극적인 예술 활동은 예술가 개인의 몫으로 여겨진다.△물론 장단점이 있다. 문이 항상 열려있는 나의 꿈틀로 작업실은 동네 사랑방이다. 손님이 오면 커피를 내려주는데 종이컵 수거함이 금세 꽉 찬다. 하지만 그런 만남 속에서 협업 프로젝트가 나온다. 나의 작업을 위해서는 따로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낮에 사람을 만나느라 여유가 없는 날은 밤늦은 시간을 빌려와야 한다.-30년 넘게 포항 송도를 렌즈에 담아왔다. 요즘도 송도를 촬영하나.△강의가 없을 때는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송도를 어슬렁 거린다. 대부분의 사진 촬영이 송도 해변이나 송도의 뱃공장 주변에서 이뤄진다. 계절마다 아침저녁으로 풍경이 다르고 찾는 이들도 달라 변화무쌍하다. 뭐 그렇게 찍을 것이 많냐고 하지만 매일 찍는 사람이 더 촬영할 거리가 많다. 요즘은 동빈대교 교각 기둥이 올라가는 모습이 주요 기록 대상이다.-송도에선 너나없이 사진을 찍는다. 사진가의 렌즈가 향하는 곳은 일반과 어떻게 다른가.△사진가는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각이 드러나야 한다. 내가 다른 걸 찍는다면 그건 두 가지다. 하나는 시간을 수용하는 방식이다. 사진을 찍는 순간 시간은 정지된다. 사진은 시간을 가두는 일이다. 자전거를 타는 풍경을 찍는다고 치자. 어디든 렌즈를 들이댈 수 있지만 자전거의 뒤를 표현한다면 곧 사라지는 시간이 개입된 것이다. 대상에 따라 시간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를 매 순간 고민한다. 그리고 주목하는 또 하나는, 대상과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내용이다. 나는 한 공간에서 다른 커뮤니케이션이 생성되는 체계를 주목한다. 같은 공간 속의 인물들이 동일한 목적에 충실한 장면이 아니라 공감대가 깨진 상황을 포착한다. 다소 엉뚱하고 생뚱맞은 장면이 던지는 새로움과 신선함을 즐긴다.-송도를 고집하는 이유는 뭔가.△작가는 흉내 낼 수 없는 무엇을 해야 한다. 지난 시간을 담은 사진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송도해수욕장의 전성기는 60~70년대였다. 내가 포항에 온 1990년대 송도는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올여름 재개장을 앞두고 있다. 무려 16년 만이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을 목격한 기록자이다. 송도 모래사장이 도로가 되었다가 다시 해수욕장이 되는 과정을 촬영했다. 해수욕장이 역사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살아나는 모든 시간을 기록했으니 나는 운이 좋다.-자신의 작업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작가는 작업을 함으로써 의미와 소통이 이뤄진다. 작업을 제대로 하려면 위대하게 해야 한다. 슬쩍 폼만 잡아선 안 된다는 말이다. 나는 아직 작업량이 많지 않다. 30년간 송도 촬영만 몇십만 컷을 했지만 의미 있는 작업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물리적으로 하루에 필름 10롤은 찍어야 한다. 돈으로 치면 하루 30만 원, 1년에 억 단위의 필름을 소비해야 한다. 구구한 변명이지만 현실이 그렇다.-송도의 기록을 통해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송도 사진을 전시하는 뮤지엄을 만들고 싶다. 그러려면 송도에서 촬영한 100년의 사진이 필요하다. 포항의 2세대 사진가인 이도윤 선생이 60년대부터 송도를 담았다. 선생은 한국사진작가협회의 산증인으로 사진의 미학적 측면을 추구한다. 태풍에 부서지거나 손상된 송도 풍경이 거의 없는 이유다. 황송하게도 필름을 통째로 넘겨주셔서 디지털 작업을 해놓았다. 이도윤 선생의 60년에서 80년대 송도 사진과 90년도 이후 나와 후배들의 사진이 있으니 송도 100년 사진 전시관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전국의 사진하는 친구들이 포항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사진 잘하는 도시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포항은 빛의 도시이고 사진은 빛의 예술이다. 지금까지 포항 경제의 주축이 포스코였다면 앞으로는 사진을 비롯한 문화가 차세대 먹거리가 될 것이다.-렌즈에 담고 싶은 단 한 컷이 있다면.△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아직도 송도 주변을 서성거린다. 내일 나타나길 바란다.안성용 사진가는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과를 졸업하고 대구대학교에서 사진학 석사와 조형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0년 포항공대 홍보과 교직원으로 포항에 정착하면서 송도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는 전업으로 사진에 전념하고 있다. ‘더, 포항’ 외 5권의 사진집을 펴냈고, 24편의 방송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했다. 현재 포항사진작가협회 회원이며, 문화예술협동조합 ‘잇다’ 대표이사이다. 국내외 사진작가들의 축제인 ‘사진의 섬 송도’를 기획해 올해로 제7회 행사를 앞두고 있다./배은정 작가

2023-05-29

주말엔 화사한 수국길 따라 힐링 산책 어떠세요

프랑스의 시인인 제라드 드 네르발(Gerard de Nerval)은 모든 꽃은 자연에서 피어나는 영혼이라고 했다. 시인의 말대로라면 우리가 꽃을 좋아하는 것은 자연의 영혼과 교감하는 일일지도 모른다.꽃도 유행을 타는 것 같다. 최근까지 가장 인기 있었던 꽃은 유채꽃이었다. 아직도 가을철에는 메밀꽃이 대세고 겨울철에는 동백꽃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꽃은 아니지만 불과 3년 전만해도 전국이 핑크 뮬리(분홍억새)가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2019년 국립생태원에서 핑크 뮬리가 생태계를 교란하는 식물로 지정한 이후 빠르게 퇴출됐다. 핑크 뮬리가 사라진 자리를 채운 것이 바로 수국이다. 수국은 한자로 ‘물 수(水)’에 ‘국화 국(菊)’ 자를 쓴다. 이름에 걸맞게 물을 좋아하고 국화처럼 넉넉한 꽃을 피운다. 수국하면 제주도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경남 고성에 있는 그레이스 정원은 조금 덜 알려진 수국정원이다. 정갈하게 조성된 수국정원은 이름 그대로 성스러운 느낌마저 준다. 이번 주말에는 탐스럽게 핀 수국을 따라 꽃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수십만 그루 수국이 맞아주는 민간정원경남 고성 백암산 뒤편에 비밀의 정원이 있다. 2020년 6월 25일 문을 연 그레이스 정원은 수국을 테마로 한 59만5천여㎡ 규모의 민간정원이다. 메타세쿼이아가 마치 군인처럼 도열한 입구부터 보랏빛 수국이 화사한 꽃송이를 자랑한다. 6월 중순은 넘어야 제대로 만개할 터인데 올해는 일찍 찾아온 더위 탓인지 벌써부터 정원 곳곳에서 수국이 얼굴을 들이밀었다.돌담을 따라 올라가니 구릉과 언덕에도 각양각색의 수국이 만발하다. 숲 한가운데는 붉은 벽돌로 지은 작은 교회도 있고, 이국적인 분위기의 공연장도 있다.그레이스 정원은 경남 창원의 마금산 온천에서 온천장을 운영하는 조행연(여·78) 씨가 15년에 걸쳐 가꿔온 정원이다. 그레이스정원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눈치 챘겠지만 실상 이 정원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조 씨가 선교센터를 지을 목적으로 만든 곳이다.정원의 시작은 자신이 운영하는 온천장에 있던 메타세콰이어를 옮겨 심는 것이었다. 길 양옆으로 정갈하게 줄지어 메타세콰이어를 심은 뒤 숲 한가운데 붉은 벽돌로 교회부터 지었다. 그때부터 정원과 식물에 대해 공부했다. 원예와 관련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유튜브를 뒤졌다. 하나하나 공부해가면서 정원 만들기를 진두지휘했다. 10여 년이 넘게 정원을 꾸미는 과정에서 조 씨는 자료를 뒤지고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조언을 얻어 식물과 관련한 실전 지식을 익혔다.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는 지금도 매일 창원에서 인부들을 태우고 출퇴근한다. 정원에서는 팔을 걷어붙이고 손수 꽃밭을 일구고 나무와 꽃을 심는다. ◇허세 없이 담백하고 성스러운 수국 천국조 대표가 처음 수국을 심게 된 것은 지난 2006년 창원의 갈멜수도원 수녀들로부터 얻은 수국 300주가 계기가 됐다. 수녀들이 캐낸 수국을 정원에 옮겨 심었는데 이듬해부터 탐스럽게 피어나는 수국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됐다. 수국이 꽃이 피는 시기나 토양에 따라 전혀 다른 색깔의 꽃을 피운다는 것을 알게됐다. 처음에는 흰색에 가깝다 시간이 지나면 연한 녹색을 띠고 이후 밝은 파란색을 거쳐 자주색이나 분홍색으로 변했다. 심지어 토양에 따라 꽃의 색이 변하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토양이 알칼리성이면 분홍색이 짙어지고 산성이면 푸른색으로 변한다. 중성이면 흰색꽃이 핀다. 새로운 품종의 수국을 수집해 심는 재미도 있었다.그레이스 정원에서는 다양한 수국 품종을 볼 수 있다. 재래종인 산수국이 특히 많다. 꽃송이가 큰 서양 수국과는 매우 다르게 생겼다. 매우 아기자기하고 화사하면서 품위가 느껴진다. 그레이스 정원은 전문가들이 본다면 어딘가 허술해 보일 수도 있지만 허세나 과장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꽃의 생태적 특성보다는 꽃이 주는 위안을 생각하여 만든 정원이라 더 친근하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메타세콰이어 길에 한쪽은 수국을 심고 반대쪽에는 경사진 물길을 놓고 작은 연못을 만들어 물소리를 배치한 조경이다. 그레이스 정원의 수국은 청명한 날에도 좋지만 장맛비가 그치고 꽃과 잎의 색감이 짙어질 때 더 청량하다.정원에는 수국만 있는 건 아니다. 정원 위쪽의 경사지에는 자작나무와 해국을 심어 멋스러움을 더했다. 이밖에도 꽃산딸나무, 꽃창포, 수레국화, 옥잠화 등 다양한 꽃을 즐길 수 있다. 온 몸을 휘감아 도는 짙은 풀 냄새를 맡으면서 꽃과 미소를 나누노라면 자연이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은총’을 주는지 실감하게 된다. 햇살은 더 농밀해지고 수국을 따라가는 길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여행수첩그레이스 정원은 한 바퀴 둘러보는 데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정원에는 가벼운 산책 코스 외에 깊은 숲속 트레킹 코스도 있다. 이 밖에 숲속 교회, 갤러리, 연못 등 소소한 볼거리가 걷는 재미를 더한다. 입장료는 어른 5천원, 청소년 4천원, 어린이 3천원이며, 관람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연중무휴)다. 주말에는 오전 8시~오후 7시까지 운영한다. 이곳도 들러보세요△34만㎡ 규모 ‘만화방초’고성에는 또 한곳의 수국 명소가 있다.‘만 가지 꽃과 향기로운 풀들이 있는 곳’이라는 뜻의 만화방초(萬花芳草)가 그곳이다. 규모는 그레이스 정원이 더 크지만 수국정원을 먼저 조성한 곳은 만화방초다. 1997년 정종조 대표가 도시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안식처를 마련해 주고자 수국을 심기 시작하면서 조성한 정원이다.만화방초의 전체 공간은 33만578㎡인데 이중 6만6천115㎡는 야생 녹차밭이며 야생식물도 700여 종이나 서식하고 있다. 정원에는 200종이 넘는 다양한 품종의 수국이 제 색깔로 자라고 있다.일부 수국정원이 수국을 보다 화려하게 보이기 위해 인공으로 색깔을 내는 경우가 있지만 만화방초는 자연을 최대한 살리자는 정 대표의 철학을 충실하게 구현했다.포크레인 작업을 거의 하지 않고 길도 원래 짐승이 다니던 길을 그대로 활용했다. 만화방초는 오래 가꿔온 곳이니만큼 식생도 다양하고 공간도 다채롭다. 노랑어리연꽃이 만개한 작은 연못이 있는가 하면, 계곡 옆으로 울창한 편백나무와 수국이 어우러진 공간도 있다.편백숲에서 돌아 나오면 기억의 동산이 나타난다. 조용히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추억에 잠기는 장소다. 잠시 마음을 비울 시간을 갖도록 테이블과 의자가 여러 개 놓였다. 햇빛에 색이 바랜 장독 수십 개도 설치됐다. 장독 아래로는 차나무가 자란다. 그 너머로는 고성 전경이 펼쳐진다. 산 아래로 전경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눈이 시원해진다.만화방초에서 수국이 가장 많이 핀 곳은 수국꽃길이다. 6월 초입인데도 탐스러운 수국이 지천으로 피었다. 정원 위쪽은 벽방산으로 이어지는데 정 대표는 전망대까지 수국을 심어 그야말로 수국천지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최병일 작가

2023-05-25

‘봉화 베트남마을’ 조성 착착… 韓-베트남 모범적 사례되길

한국 기업의 현지 생산 공장이 다수 들어서 있고, 한 해 평균 200만 명에 가까운 한국인 관광객이 드나드는 베트남은 우리와 가장 친숙한 국가 중 하나다.갈수록 ‘국경’이란 개념이 사라지고 있는 21세기. 서로 다른 정치·이념 체계로 인해 갈등하고 반목했던 20세기 중반과 달리 이제 한국과 베트남은 떼어놓기 힘든 우방국으로 변화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과 베트남은 아직 사회와 학교, 가정에 유교적 전통이 남아 있는 국가라는 공통점까지 가졌다.봉화군은 이런 시대적 추세와 유사한 민족성에 주목해 몇 해 전부터 베트남마을 조성에 진력하는 중이다.2017년 11월 당시 대통령이던 문재인이 고려로 망명한 화산 이씨의 시조 이용상을 언급한 이후 2018년 초엔 응웬 부 투 주한 베트남 대사가 봉화군 충효당(임진왜란 때 순국한 화산 이씨 이장발의 애국심을 기려 지은 사당)을 찾았다.이어 같은 해 봄에는 봉화군 대표단이 베트남을 방문해 우호·교류의향서를 전달했다. 베트남 ‘리 왕조’의 태동지인 박린성 뜨선시에서 열리는 덴도 축제에 참가한 것도 이때부터.베트남마을 조성을 위한 양국의 협력과 교류는 2019년에도 이어져 봉화군 대표단이 거듭해 덴도 축제를 찾았고, 지난해 12월엔 박현국 군수가 베트남 정부의 최고위급 인사인 주석을 만나 MOU를 체결했다.지난 5월 초순 역시 군수와 군의회 의장을 포함한 17명의 봉화군 관계자들이 하노이와 뜨선시를 찾아 두 나라가 함께 만들어갈 봉화 베트남마을에 관해 진지한 논의를 진행한 바 있다.글 싣는 순서1. 한국과 베트남 교류 역사의 시작2. 동반 성장의 파트너가 된 베트남3. 봉화군이 조성할 베트남마을4. 베트남인들이 생각하는 한국과 봉화군5. 봉화군과 베트남이 함께 꿈꾸는 내일 ◆베트남 현지 분위기 또한 ‘봉화 베트남마을’ 조성에 호의적5월 1일부터 5일까지 취재를 위해 베트남 하노이와 박린성 뜨선시를 돌아봤다. 아시아를 넘어 북미와 유럽까지 뒤흔들고 있는 ‘K-팝’과 ‘K-드라마’의 열풍은 베트남에서도 그 위력을 과시 중이었다. 베트남 젊은이들이 모이는 이른바 ‘핫 플레이스’에선 어렵지 않게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고, 기자가 탑승한 버스에 오른 몇몇 청년들은 핸드폰을 통해 베트남어 자막이 달린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그들은 원체 많은 한국 여행자를 봐 온 터라 낯선 외국인에게 가질 수 있는 경계심도 거의 없어 보였다. 수많은 고층 건물이 들어선 하노이 중심가엔 한국 물품을 판매하는 매장이 적지 않았다. 불고기와 비빔밥 등 ‘K-푸드’의 위세도 대단했다.통역을 맡아준 화산 이씨 종친회 이부영 부회장에 따르면 “베트남 10~20대가 한국 문화와 음식에 열광한다면, 역사를 전공하는 대학생이나 지식인 계층에선 한국과 베트남간의 교류 역사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차츰 늘어가는 추세”라고 한다.베트남 박린성과 뜨선시 인민위원회 고위급 간부들이 봉화군이 추진하는 베트남마을 조성 프로젝트에 적지 않은 관심을 보인다는 건 현재 취재를 통해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베트남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자존심이 강하다. 그 배경엔 제갈공명에게 일곱 번이나 사로잡혔으나 결코 항복하지 않았던 베트남 장수 맹획에 관한 칠종칠금(七縱七擒)의 고사(故事)가 있고, 초강대국 프랑스와 미국에게 굴복하지 않고 저항했던 베트남 현대사가 있다.자존심이라면 한국인도 이에 지지 않는다.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려는 당당한 태도가 없었다면 5천 년 내내 지속됐던 숱한 외침과 내환을 견뎌내고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터.베트남 정부 관계자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 역시 양국의 모범적 협력 사례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은 봉화 베트남마을 조성에 주목하고 있다.이를 반영하듯 이달 초 오영주 주베트남 대사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인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 증진을 위해서라도 이 사업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계속) “베트남과 한국 잇는 가교 역할에 보람”인터뷰 주한 베트남관광청 이창근 대사 지난 5월 1일 봉화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의 현지 취재를 위해 하노이에 갔다. 그날은 마침 주한 베트남관광청 리 쓰엉 깐(65) 대사가 업무를 위해 하노이를 찾았던 때. 급하게 연락해 리 대사의 하노이 사무실을 찾았다.그는 800여 년 전 고려로 망명한 이용상의 31대손으로 1994년 베트남으로 귀화했다. 한국 이름은 이창근. 인터뷰 자리엔 ‘리 왕조’ 탄생 축제 참석을 위해 베트남을 방문한 화산 이씨 종친회 이부영 부회장도 동석했다.-베트남을 여행하는 한국 관광객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주한 베트남관광청 대사를 맡은 건 언제부터인지.△2017년이다. 3년 임기인데 현재 연임 중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재임명을 받았다. 나는 화산 이가(花山 李家)고, 1958년 한국에서 태어났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거기서 살았다. 조상의 땅인 베트남과 30대 중후반까지 살아온 한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음에 보람을 느낀다.-어린 시절에도 당신의 뿌리가 베트남에 있음을 알고 있었는지.△숙부가 혈통에 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셨다. 그에게 1천 년 전 베트남 왕족이었던 우리 가문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러다보니 학생 때도 베트남 관련 기사가 나오면 신문을 꼼꼼하게 읽었고, 대학 땐 화산 이씨와 관련된 논문을 찾아보기도 했다. 아쉽게도 숙부는 1975년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가 단절되면서 세상을 떠났다.-1990년대 한국-베트남 수교가 재개된 후 귀화했다고 들었다.△내 중시조(中始祖)는 1226년 고려 고종 13년에 망명한 이용상이다. 그는 고려와 베트남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애썼다. 나 역시 미력하나마 그런 삶을 살고 싶어 1994년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베트남에 정착했다. ‘리 왕조’를 기억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호의적인 태도가 여기서 자리 잡는데 큰 힘이 됐다.-현재 경북 봉화군이 베트남마을 조성에 힘을 쏟고 있는데.△환영할 일이다. 베트남마을 조성은 한국과 베트남이 보다 친숙한 나라가 되는데 작지 않은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화산 이씨들은 ‘한국에 세종대왕이 있다면, 베트남엔 리 왕조가 있다’는 긍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봉화군이 관련된 조언과 도움을 요청할 때면 언제든 기쁜 마음으로 응한다. 게다가 봉화엔 우리 조상을 모신 충효당도 있지 않나. 마음 같아서는 조성에 필요한 자금도 보태고 싶다.-한국에 거주하는 ‘화산 이씨’는 어느 정도 되는가.△대략 2천여 명 정도다. 적은 숫자이니 종친회 활동이 다른 가문 같지 않지만, 소수라 결속력은 더 강하다. 베트남마을 조성 등의 계기가 생긴다면 더 잘 뭉치지 않겠는가.(웃음)-한국과 베트남에서 인생의 절반씩을 살았는데.△두 나라는 유사한 측면이 많다. 애국심과 효심을 높이 받드는 것이 특히 그렇다. 그러니, 이질적인 민족성으로 인한 어려움은 없었다.-베트남 사람들에게는 ‘리 왕조’가 존중의 대상인 듯하다.△왕조가 생겨난 것을 기념해 해마다 ‘덴도(DO-temple) 축제’를 열고, 수도인 하노이 한복판에 ‘리 왕조’ 태조의 동상도 서있다. 이런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베트남인들이 내 조상이 다스렸던 시기를 좋게 평가하는 것 같다.-향후 한국과 베트남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는지.△내겐 태어난 한국과 뿌리가 있는 베트남 모두 중요하다. 두 나라는 오래 전부터 교류를 해오던 사이였다. 그런 역사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올해 베트남 인구가 1억 명을 넘어섰다. 베트남은 30대 이하 인구가 다수인 젊은 국가다. 교육열과 발전가능성 또한 높다. 한국과 베트남이 윈윈(win-win)하는 사이로 동반 성장할 수 있었으면 한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3-05-23

몽니 김신의, 경주서 7080 ·MZ 감성을 노래하다

국내 최정상급 가창력과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 톡톡 튀는 재밌는 입담으로 유명한 가수 김신의. 그의 공연장을 압도하는 풍부한 성량과 고음 처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김신의가 보컬로 활동중인 몽니밴드가 26일 오후 8시 경주 원도심 봉황대 광장에서 젊은 감성적 음악과 7080 취향의 노래들로 지역민들과 만난다.특히 김신의는 현재 포항 송도윈드서핑클럽 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경북과 깊은 인연을 가진 점도 눈길을 끈다.이날 몽니밴드는 김신의가 직접 작사 작곡한 히트곡 ‘소년이 어른이 되어’, ‘소나기’, ‘그대와 함께’, 신곡 ‘견딜만 해?’ 등을 불러 젊은층 관객들의 오감을 전율케 할 준비를 마쳤다.이와함께 KBS2TV 음악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7080 곡들을 재해석한 ‘무인도’와 ‘세상만사’ ‘젊은 태양’ 등을 노래해 중장년층들의 많은 사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지난 2004년 결성된 몽니밴드는 김신의(보컬 기타), 정훈태(드럼), 이인경(베이스기타), 공태우(기타)로 구성된 감성적이고 강렬한 모던 록 4인조 혼성 밴드다. 몽니밴드는 밴드 초창기 수년간 서울 홍대 앞에서 인디밴드 활동을 한 탓에 여성팬들이 많다.무엇보다 몽니밴드는 지난 20년간 단 한번의 멤버 교체가 없는, 대중음악계에서 흔치 않은 밴드로 인정 받고 있다.김신의는 “멤버들의 음악성과 성격, 경제적인 문제 등 3박자가 맞아야 가능하다”면서 “호흡이 잘 맞고 한결 같은 음악성 등 완벽한 팀워크가 자랑”이라고 말했다.또 김신의는 철저한 자기 개발과 자기 관리로 정평이 나 있다. 먼저 음악성 확장을 위해 바쁜 방송 일정 가운데도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무려 14년 동안 뮤지컬 배우를 병행하는 힘든 길을 택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유다역.‘삼총사’의 아라미스역, ‘마리아 마리아’의 예수역등 뮤지컬 10개 작품에서 주연급으로 500여 회 출연했다.김신의는 “뮤지컬을 통해 어릴 적 배우의 꿈을 이루면서 노래에 연기력를 가미할 수 있게 됐다”면서 “공연 무대에 올라서면 몸과 마음이 한결 자유로워지면서, 스스로 공연을 즐길 수 있게 됐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가수가 끼를 발휘해 공연에 더 몰입할수록, 관객들도 더 많이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하지만 ‘방송과 뮤지컬 병행은 체력 유지와 밴드 연습 시간 활용이 쉽지 않았다’며 그간의 어려움도 토로했다.“뮤지컬 공연 전 2개월 동안 하루 5시간씩 강도 높은 연습을 한 후 다시 밴드공연 준비를 하려면 강한 체력이 관건”이라며 “매일 한시간 이상 스포츠를 틈틈이 했기 때문에 버텨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김신의는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는 서울 한강이나 340여km 떨어진 포항 송도해수욕장을 찾아 강풍 속에서 거친 윈드서핑으로 심신을 단련했다”고 했다.“체력이 약해지면 성량도 약해지기 때문에 가수의 생명이 단축된다”라며 “강인한 신체를 유지하는 것이 장수하는 가수의 버팀목”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김신의는 작사·곡을 배운 적이 없지만 그동안 히트곡을 포함해 70여 곡을 작사·곡했다.삶의 경험을 통해 가사를 만든 후 어릴 때부터 익힌 기타나 피아노를 통해 멜로디를 붙이는 습관이 20년을 넘어가면서, 자연스레 작사 작곡가가 됐다는 것.한국에서는 ‘록밴드가 성공하기 어렵다’는 대중음악계 속설이 있지만, 김신의는 이미 방송가의 스타로 떠오른지 오래다.KBS2의 ‘불후의 명곡’, MBC의 ‘복면가왕’과 ‘나는 가수다’, 유희열의 ‘스케치 북’, MBN의 ‘보이스 킹’ 등 방송 각종 음악 프로그램의 단골손님으로 15년째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입담도 좋아 ‘불후의 명곡’ ‘토크 대기실’ 코너에서 개그맨 김준형·트로트 가수 이찬원과 호흡을 맞추면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무대 매너도 뛰어나다’는 평가다. 공연 상황마다 적절한 액션 구사력이 적절하고, 관객들과 호흡을 잘 맞춰 공연장 열기를 최대한 끌어 올린다는 평을 받고 있다.재능과 끼를 가지고 유명세를 구가하는 김신의이지만, 처음부터 음악을 편하게 시작한 것은 아니다.지난 2000년초쯤, 군을 제대한 후 대학을 중퇴하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음악으로 인생의 승부를 걸겠다’는 결정을 했지만 사업가인 아버지의 “소위 딴따라는 먹고 살기 힘든다’는 강한 반대에 부딪힌 것.하지만 결심을 밀어부쳤다. 서울 여의도 자택 아파트의 5평 남짓한 방에다 방음 공사를 해 작업실을 만든 후 기타와 피아노, 음악컴퓨터, 녹음장비 등을 들여다 놓았다. 그리고는 4년간 작업실에 틀어 박힌 김신의는, “밥 먹고 잠자는 시간 이외 하루 14시간씩 음악에만 몰두했다. 곡 쓰고 노래만 했던 그 때가 너무 좋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2004년 드디어 몽니밴드를 결성한 김신의는 홍대 앞 라이브클럽 ‘슬러그’와 ‘잼머스’등지에서 인디밴드 생활 4년을 시작했다. 이후 기획사를 통해 방송 출연이 시작되면서 방송가 메이저 가수로 인정받게 된다.‘서울 깍쟁이’같은 세련된 외모와는 달리 김신의는 매우 성실하고 진중해 지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선배들을 깍듯이 모시는 한편 후배들을 잘 챙기는데다 만능 스포츠맨으로 우직한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선배인 록밴드 YB 윤도현과는 서울에서 양양까지 2박 3일 자전거 투어를 다녀올 정도로 막역하고, 가수 조장혁으로부터는 골프를 배우기도 했다.후배 가수 김기태와는 수시로 만나 음악에 대한 토론을 벌인다.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김신의는 “10년 전 쯤 방송국 녹화 도중 불을 끈 상황에서 기타를 들고 걷다가 1.5m 아래 무대 밑으로 떨어져 곤혹을 치른 적이 있다”라면서 통념적으로 연예인 같지 않은 소탈한 성격도 그대로 드러냈다.대구의 박진현(57) 윈드서퍼는 “김신의의 겸손함과 성실함은 국내 윈드서핑계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면서 “음악뿐 아니라 스포츠에서도 집중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김신의는 “이번 경주 공연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면서 “관객들이 좋은 추억을 남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박진홍기자 pjhbsk@kbmaeil.com

2023-05-22

DWTC와 맞손… 글로벌 전시컨벤션센터 도약 ‘씨’ 뿌렸다

대구 엑스코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발판을 만들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내외적으로는 다양한 전시회를 마련하는 한편, 국제적으로도 교류 영역을 확장하고 있어서다.21일 엑스코에 따르면 지난 18일 엑스코는 글로벌 전시컨벤션센터로의 도약을 위해 동서양 최대 무역허브인 두바이와 협력관계 구축에 나섰다.이날 엑스코 이상길 대표이사 사장은 중동 최대 MICE 복합 센터인 ‘두바이 세계무역센터(Dubai World Trade Center, 이하 DWTC)’를 방문해 두바이에서 신규 국제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상호 협력 방안을 마련했다. 엑스코의 이번 협력관계 구축은 월드컵, 올림픽과 함께 3대 메가 이벤트로 불리는 세계박람회를 중동 지역 최초로 개최한 도시이자 MICE 산업 중심지로 떠오르는 두바이와의 협력 강화를 통해 MICE 산업 활성화 및 동반성장 방안을 모색하고 글로벌 전시컨벤션센터로 도약하기 위해 추진됐다.이날 DWTC에 방문한 이 대표이사 사장은 DWTC의 전시부문 총책임자인 마히르 줄파르 부사장을 만나 △대구와 두바이의 MICE 산업 발전을 위해 양 기관이 추천하는 혁신기업 육성 연계 무역대표단·투자자문단 교류 및 파견 △양 기관 대표 주관전시회의 국제화를 위한 전시장 및 바이어 교류 및 전시회 홍보 강화 △신규 전시회 론칭·새로운 비즈니스 행사 개최 등 상호 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지난 1979년 설립된 DWTC는 21개 전시홀과 400개 회의실로 구성된 12만773㎡의 규모로 연간 500개의 전시행사가 개최되며, 전 세계 300만여 명이 방문하는 아랍에미리트 최대 MICE 복합 센터이다.올해 DWTC는 중동 최대 규모 ICT 전시회 ‘GITEX Global’, 중동 최대 물·에너지·기술·환경 분야 전시회인 ‘WETEX’, 글로벌 탄소중립 기조에 따른 지속가능 모빌리티 전시회 ‘Global EV Show’ 등 주요 전시회의 개최를 앞두고 있다.엑스코는 글로벌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있는 DWTC와 교류를 통해 엑스코 대표 주관전시회인 ‘국제그린에너지엑스포’, ‘대구국제미래모빌리티엑스포’, ‘ICT융합엑스포’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고, 향후 신규 전시회를 양 기관이 공동으로 개최하기로 협의했다.또한, 이날 엑스코는 DWTC 방문에 이어 소방청, 소방산업기술원, 소방산업협회 관계자와 함께 중동 최대의 소방장비 제조업체인 ‘나프코(National Fire Fighting Manufacturing Company, NAFFCO)’본사에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표이사 사장은 NAFFCO 본사의 칼리드 알 카티브 사장과 함께 엑스코 대표 주 관 전시회이자 국내 최대·국내 유일의 소방안전분야 박람회인 ‘국제소방안전박람회’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NAFFCO는 지난 1991년 설립된 곳으로 전 세계 100여 개국으로 화재·안전·보안장비 등을 수출하는 중동 최대 소방제조사로, 엑스코에서 오는 8월 30일 개최되는 국제소방안전박람회에 대규모 전시부스로 참가하기로 확정지었다.NAFFCO는 소방안전박람회 기간 중 10명 내외로 구성된 품목별 구매팀을 파견해 국내 소방장비업체들과 1:1 구매상담회를 개최하기로 했다.아울러 NAFFCO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소방기업의 중동 진출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으며, 이에 소방청, 소방산업기술원, 소방산업협회 관계자는 NAFFCO의 국내 시장 진출과 향후 소방산업 발전에 있어 적극 협력하겠다고 응답했다.앞서 엑스코는 최근 ‘제20회 그린에너지엑스포’를 성료하는 등 국내에서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린에너지엑스포는 국내 최대·아시아 3대·세계 10대 신재생에너지 전문 전시회로 지난달 12일부터 14일까지 사흘간 진행됐다.이 행사에는 22개국 3만2천800여 명이 방문했으며, 국내외 136개 업체가 306건 상담을 진행했다. 수출상담회에는 아이솔라에너지, 에스에너지 등 55개 유수의 업체가 참여해 총 6억6천200만 달러 상당의 수출 상담 실적을 기록했으며, 지난해 상담액인 1억8천100만 달러와 비교해 약 3.7배 증가한 실적이다.이상길 엑스코 대표이사 사장은 “이번 방문을 시작으로, 엑스코는 DWTC와의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여 글로벌 전시컨벤션센터로 도약을 위한 연내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NAFFCO와도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통해 소방안전박람회의 국제경쟁력 강화에도 이바지하겠다”고 전했다.한편 올해 엑스코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125건의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으로, 전시장 가동률 55%를 목표하고 있다./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2023-05-21

다낭 여행자 한 해 100만명… ‘경상북도 다낭시’ 불리기도

불과 50~60년 전엔 총탄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적과 적으로 만났다. 하지만 엄혹했던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국가들 사이에 실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보편화되면서 한국과 베트남은 이제 ‘친구 이상의 나라’가 됐다.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다.짙푸른 바다가 유혹하는 베트남의 유명 관광지 다낭(Da Nang)을 찾는 한국 여행자는 한 해에 100만 명. 그중엔 경북도민도 수없이 많다.허니, 베트남어보다 한국어가 더 많이 들리는 그곳을 ‘경상북도 다낭시(市)’ 혹은 ‘경상북도 다낭군(郡)’이라 부르는 농담까지 나오는 상황.뿐 아니다. 근래에 들어 국제결혼이 늘어나면서 베트남은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나라’로 불리기도 한다.노동 가능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한국 농촌에서 노인들을 대신해 각종 농작물의 파종과 수확을 도와주는 베트남 계절근로자 역시 봉화군을 포함한 경북 전역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봉화군이 진행하고 있는 ‘베트남마을 조성 프로젝트’는 이런 흐름 속에서 기획됐다. 여기에 봉화군은 베트남과 관련된 주요한 유적지까지 가졌으니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를 상징할 공간을 우리 고장에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할 명분이 충분하다.글 싣는 순서1. 한국과 베트남 교류 역사의 시작2. 동반 성장의 파트너가 된 베트남3. 봉화군이 조성할 베트남마을4. 베트남인들이 생각하는 한국과 봉화군5. 봉화군과 베트남이 함께 꿈꾸는 내일 ◆봉화 충효당(奉化 忠孝堂)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와 의미800여 년 전. 베트남 북부를 통치하던 리 왕조의 직계 후손 중 일부가 정치적 박해를 피해 고려로 망명한다. 고려 왕실은 이들을 깍듯한 예법으로 받아들여 우리 땅의 일원으로 살게 했다. 그들이 바로 ‘화산 이씨(花山 李氏)’다.봉화엔 화산 이씨 장발(長發)의 강직한 품성과 애국심을 기려 세운 유적이 있다. 이름하여 충효당. ‘두산백과’는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 자리한 이곳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경상북도 기념물로 1750년경 후손과 유림에서 조선 선조 때 사람인 이장발(1574~1592)의 충효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했다. 이장발의 자는 영백(榮伯)으로, 어려서부터 재질과 의지가 굳어 배움에 부지런했고 효성이 지극했다.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열아홉 어린 나이에 편모슬하의 가장이면서도 망설임 없이 전장으로 달려가 문경새재에서 혈전 끝에 전사했다. 죽기 바로 직전에 못다 한 충효의 마음을 읊은 시를 남겨 후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됐다. 나라에서 순국의 공을 치하하고자 공조참의의 직위를 추증하고 출생지인 봉성면 창평리에 ‘충효당 화산 이공 유허비’를 세우고 충효각을 지었다. 충효각은 정자 뒤편에 있다.”사선을 넘어 베트남에서 고려로 왔을 때 따스하게 맞아준 은혜를 잊지 않고, 목숨을 걸어 ‘제2의 고향’이라 할 고려와 조선을 지키고자 했던 ‘화산 이씨’는 이장발만이 아니었다.리 왕조의 직계손이자 ‘화산 이씨’ 시조인 이용상(李龍祥·리 왕조 6대 왕의 일곱 번째 아들) 역시 고려를 침탈한 몽골 군대에 용맹하게 맞섰다. 다시 ‘두산백과’를 인용한다. 이런 내용이다.“1253년 12월. 고려로 망명한 이용상이 정착해 살던 웅진성 동쪽 화산에 몽골군이 침입하자 토성과 목책을 쌓아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이에 고려 고종은 이용상에게 관직을 내리고, 옹진 화산 지역 30리 인근과 식읍 2천호를 선사했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제수를 내리고, 화산관(花山館)의 문미에 수강문(受降門)이란 글자를 써주기도 했다.” ◆봉화군과 리 왕조의 태동지 박린성 뜨선시의 공통점충효의 정신과 인간 사이의 예법을 중시하는 건 긍정적 측면에서의 유교적 전통이다. 봉화군은 아직 그런 전통이 남아있는 고장. 이는 베트남도 다르지 않다고 한다.기자는 지난 4월에 봉화 충효당을, 5월 초순엔 베트남 박린성 뜨선시(市)를 찾았다.충효당 앞에서 만난 나이 지긋한 어르신의 말과 뜨선시 덴도((DO-temple)축제 현장에서 만난 ‘화산 이씨 종친회’ 이훈 회장의 이야기는 그 뜻이 서로 통했다. 요약해 전달하자면 이런 내용이다.“한국과 베트남은 어른을 공경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걸 높은 가치로 여긴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앞장섰던 선열을 존중하고, 부모를 극진히 모신 효자, 효녀에 얽힌 설화가 흔한 건 두 나라가 비슷하다.”그런 소프트웨어의 동질성 때문일까? 충효당이 위치한 봉화군 봉선면과 리 왕조가 시작을 알린 뜨선시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외부적 환경, 즉 하드웨어까지 닮아있었다.2023년 초여름 현재. 봉화군은 충효당 일원에 베트남마을을 조성하는 사업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를 실증하듯 지난 1일엔 5일간의 일정으로 박현국 봉화군수를 단장으로 한 ‘봉화군 교류단’이 리 왕조의 발원 지역인 뜨선시를 방문했다.여기엔 봉화군의회 김상희 의장과 박동교 부의장 등도 동행했다. 올해 봉화군의 주요 시책 중 하나인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의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베트남 정부와 박린성, 뜨선시의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방문 일정을 리 왕조 건국을 기념하는 덴도축제 기간에 맞춘 것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 이 일정을 취재하며 직접 확인한 뜨선시의 환대는 800년 전 이용상을 받아들인 고려 왕실의 그것처럼 살가웠다.지난 5월 3일 저녁. 맛깔스런 베트남 전통요리로 차려진 환영 만찬을 준비한 뜨선시 측에선 건축을 전공한 황 바 휘 시장이 봉화 베트남마을에 들어설 건축물에 관한 자문을 약속했고, 부엉 꾸억 투언 박린성 부성장(한국의 부지사격)은 한국-베트남 문화교류를 위해 올 하반기 공연단을 파견하겠다고 말했다.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을 통한 결과물로 만들어질 베트남마을이날 봉화군 교류단은 베트남 리 왕조의 후손 ‘화산 이씨’와 관련된 유적지인 충효당 일대에 베트남마을이 만들어져야 하는 당위성을 박린성과 뜨선시 관계자들에게 설명했다.“역사·문화·휴양을 테마로 한 베트남역사관, 전통공연장, 연수·숙박·교육시설, 정원 등을 조성하기 위해 국비 확보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에 만찬에 참석한 베트남 사람들은 박수로 화답했다.사실 이번 자리가 새삼스런 것은 아니다. 봉화군과 박린성, 봉화군과 뜨선시 간의 교류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지난 2018년엔 봉화군 관계자들이 응웬 티 킴 응언 베트남 국회의장을 만나 베트남마을 조성에 협조를 부탁했고, 2019년에는 응구옌 투 꾸인 박린성 인민위원장(한국의 도지사격)을 단장으로 하는 우호교류단이 봉화군을 찾아 충효당을 둘러봤다. 베트남마을 조성 예정지를 미리 살핀 것.설화 또는, 전설처럼 전해오는 인연을 귀하게 여겨 그 끈을 놓치지 않은 베트남 리 왕조와의 교류는 80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봉화 베트남마을 조성 프로젝트의 구체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박순교 경북대 특임연구원의 논문 ‘花山君 李龍祥(화산군 이용상)에 관한 연구’는 한국과 베트남, 미시적으로 봉화군과 뜨선시 사이 우호의 출발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전승에 의하면 대월(리 왕조) 출신 이용상은 고려 고종 치세에 송나라를 거쳐 고려로 이거했다. 황해도 웅진 화산에 정착한 그는 얼마 뒤 몽골의 침입을 격퇴한 공으로 고려 조정으로부터 화산군에 책봉되었고,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리 왕조의 혈손인 그의 존재는 한국과 베트남 양국 선린의 가교이자 상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계속)/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3-05-16

“청송군민 모두가 체감할 수 있는 ‘든든한 보편복지’ 실현”

지난 시대와 달리 21세기는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복지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다. 한국 어느 지자체 할 것 없이 이는 공통된 고민이자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다.청정한 자연환경으로 ‘산소카페’로 불리는 청송군 역시 군민이 몸으로 직접 느끼고, 마음 깊이 감동하는 복지정책의 수립과 시행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지방소멸시대의 도래와 지속적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청송군은 현재 지역에 거주하는 군민들을 보다 잘살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데 행정력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올해 청송군이 주민 체감형 맞춤복지로 추진하게 될 여러 정책들을 아래에서 면밀하게 검토해보고자 한다. □ 1석3조 효과를 보고 있는 청송 무료버스청송군은 버스 탈 때 돈을 내지 않는다. 전국 최초로 도입한 ‘모든 승객 공짜’ 무료버스 덕분이다. 군은 “보편복지·탄소중립·경제 활성화라는 1석 3조 효과를 보고 있다”고 설명한다.청송군은 2023년 새해 첫날부터 지방소멸 위기 극복과 교통복지 향상을 위해 군민은 물론 관광객 등 청송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내 시내버스 이용 무료화 정책을 시행했다. 청송에서 운행되는 모든 시내버스에 요금통을 떼버린 것.무료버스 제도를 도입한 지 5개월째 들어선 현재 주민들은 물론 청송을 찾는 여행자들도 환한 웃음으로 이 정책을 반기고 있다. 주식회사 청송버스는 ‘농어촌버스 무료 운행’ 후 버스 이용객이 25%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그동안 비용적인 측면과 버스를 탈 때 요금 지불의 번거로움으로 인해 승차를 꺼렸던 지역민들이 부담 없이 바깥출입을 하게 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이와 관련 무료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청송의 한 어르신은 “전에는 병원 한 번 가려면 일부러 참았다가 다른 볼일 있을 때 가곤 했는데, 이제는 몸이 아프다 싶으면 바로 병원에 가니까 아픈 것도 덜하고 멀리 사는 아들 내외의 걱정도 줄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장날 버스를 이용한 주민 역시 “장바구니를 차에 올리고 잔돈 꺼내다 보면 마음도 급하고 비틀거릴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운전기사가 짐 옮기는 것까지 도와주니 버스 타는 게 즐겁다”며 좋아했다.이런 실질적인 주민들의 평가는 군민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안전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청송군의 무료버스 도입 취지와 잘 부합되는 대목.청송군 담당자는 “아직은 대부분의 승객이 지역 주민이지만 앞으로 관광객들의 방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슬로시티 청송에서 버스로 관광하는 새로운 여행트렌드가 자리 잡고,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산소카페 청송군’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지역경제 활성화로도 이어질 것으로 추측된다.“군민의 호응과 관광객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수시로 버스와 터미널을 점검해 쾌적한 버스 이용 환경을 만들고, 운전기사들의 서비스 교육에도 만전을 기하겠다”는 것이 무료버스 운행과 관련된 윤경희 군수의 약속이다. □ 군민 불편은 우리가 해결한다… 8282민원처리 기동반지난 1월 9일 청송군은 ‘8282민원처리 기동반’ 발대식을 열었다. 이를 기점으로 8282민원처리 기동반이 활동을 시작했다. 5개월이 지난 지금 “여러가지 불편한 일이 있을 때 만능해결사 역할을 해준다”는 청송주민들이 칭찬이 이어지고 있다.2개 조로 구성된 기동반은 그간 청송군 전역 1천152가정, 2천534건의 생활민원을 처리하는 실적을 올렸다. 수많은 민원을 처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휴일과 설 연휴에도 쉬지 않고 군민을 위해 일한 기동반의 땀이 있었다.청송군은 민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고령층의 고충을 작은 부분까지 해결해주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 그분들에겐 불편사항이 생활의 큰 제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접수된 민원 1천152건 중 98%에 달하는 1천130건을 처리하는 성과를 이뤘다. “이후에도 신속하고 수준 높은 서비스 제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방침”이란 게 청송군의 부연.직접 서비스를 받은 한 가정은 “갑자기 전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전화 한 통에 집으로 달려와 해결해주고, 무엇이 문제인지 사용 방법을 알려주는 등 친절한 모습에 감동받았다”고 말했다.이와 관련 윤경희 군수는 “8282민원처리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보다 많은 가정의 불편사항을 해결해주다 보면, 찾아가는 적극행정의 모범사례로 꼽힐 것”이라며 “향후 청송을 대표하는 서비스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했다.8282민원처리는 전기(전등, 스위치 등), 수도(수도꼭지, 싱크대 수전 등), 기타(문 손잡이 등) 분야 등 가정에서 발생하는 불편사항을 처리해주는 서비스다. 물론, 청송군민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다. 다만 빈집과 상가 등은 제외된다. 관련 문의는 ☎054-870-8282. □ 행복 청송·복지 청송을 위한 발걸음 오늘도 진행 중2023년 청송군의 복지시책 추진 방향을 요약하면 ‘군민이 체감할 수 있는 든든한 보편복지의 실현’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군민 중심의 사회안전망 구축에 적극 나선다는 뜻.청송은 올해 노인·아동·청소년·여성·다문화가정 등 다양한 계층에게 적합한 복지서비스를 지원하고,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함으로써 군민 모두가 행복한 맞춤 복지를 구현해나갈 방침이다.이를 위해 가장 먼저 어르신들에게 쾌적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경로당 신축 및 개·보수와 경로당 활성화 물품을 지원한다. 특히 소파·입식테이블을 보급해 경로당의 ‘좌식문화’로 불편을 겪고 있는 어르신들의 건강을 보조하게 된다. 더불어 매년 노인 일자리사업 대상자를 확대해 안정된 노후생활 기반을 조성하고, 사회 참여의 폭 또한 넓혀갈 계획이다.기초연금 지급, 어르신 목욕비 지원, 경로당 행복도우미 운영도 주요한 사업들. 여기에 일상생활을 혼자 하기 어려운 취약 노인들에게는 적절한 돌봄서비스를 제공해 종합적인 사회안전망 구축에 노력하게 된다.양질의 보육환경 조성과 출산 분위기 장려에도 힘을 쏟는다. 부모급여, 영유아보육료 및 가정양육수당, 아동수당 지원을 통해 맞춤형 보육서비스를 제공하고, 노후화된 보육시설에 대한 ‘그린 리모델링 사업’을 통해 안전한 보육환경을 만들어 나갈 예정.드림스타트사업·지역아동센터·다함께돌봄센터 개소,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 개강, 청소년 보호육성사업 등이 진행되면 아동들에게 종합적인 방과 후 돌봄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청소년들에게는 다양한 여가활동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돕는다.다문화가족의 적응을 위한 방문교육과 우리말 공부방, 사회적응 특화프로그램 등도 운영·지원할 방침. 여기에 더해 방과후 학교 운영을 지원하고, 중·고등학교 신입생 교복구입비, 고등학교 무상교육도 지원한다. 이는 청송군 교육여건 개선에 힘이 돼 줄 것으로 기대된다.“청송인재양성원은 지역 학생들의 교육 의지를 높이고,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행복청송 아카데미, 행복청송 군민대학, 성인문해교육 지원 등도 추진할 것”이란 게 청송군청의 설명.한편, 이웃사촌복지센터를 운영해 주민 조직화와 주민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민이 주도적으로 마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마을복지계획을 수립·실천한다는 것도 청송군의 청사진이다.더불어 사회보장수급가구(기초생활보장수급, 기초연금, 차상위계층 등) 책정을 위해 행정안전부, 국세청, 금융기관과 연계된 사회보장시스템을 적극 활용한다. 적정한 급여를 결정하고, 맞춤형 보장급여제도를 튼튼히 하겠다는 의지인 것이다.복지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집중 발굴 기간도 운영된다. 위기가구에 대한 지원계획도 세웠다. 필요한 서비스를 연계 지원하고 점검하는 등 지속적이고 의욕적인 통합 사례관리도 상시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는 보다 나은 복지안전망 구축을 위한 전략.시련의 역사 속에서 구국의지를 실천하다가 산화한 국가유공자와 가족에 대한 예우와 지원을 위해서는 참전명예수당, 보훈예우수당, 참전배우자수당을 지급한다.소외되기 쉬운 장애인들의 사회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서 장애인일자리 참여자 수를 늘리고 장애인연금·수당·의료비 지원 등도 살필 것이다. 이는 모두 맞춤형복지 서비스의 실현을 위해서다.군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복지 청송’, 안정되고 윤택한 ‘행복 청송’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올해 내내 쉼 없이 진행된다./김종철·홍성식 기자

2023-05-15

“전통건축은 상품이 아닌 작품이다”

금세라도 날아갈 듯 한껏 치켜 올린 처마, 한국 건축의 아름다움은 건축 자체의 조화에서 처마 끝까지 풍겨난다. 세계인을 놀라게 만드는 또 하나의 한류 문화다.경북도 무형문화재 김범식 대목장은 평생을 목수로 살아왔다. 한국적인 아름다움,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어 건축으로 살려 내는 것을 사명으로 살아온 김 대목장은 “전통건축은 상품이 아닌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얼과 문화와 전통이 건축에 스며든 것이 전통건축이라는 것이다.건축모형을 통해 우리의 전통 건축 기술을 지키고 전수하는 데 정열을 쏟고 있는 김 대목장은 “사람들이 장인을 이야기할 때도 목수만은 ‘목수양반’이라 불렀다”며 목수일에 대한 자긍심을 빳빳이 세운다. 조선 세종 때 숭례문 보수 총책임자였던 대목은 정5품이었고 성종 때 개축 공사를 맡은 대목은 정3품 당하관이었다고 했다. -여전히 전통 건축 보전과 기술 전수에 왕성하게 활동을 하신다.△지난해 영남대에서 건우정을 신축했고 청도 운문사의 죽림헌을 수리 보수했다. 올 3월 KBS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년 동안에는 북한의 평양 을밀대와 보통문, 개성 남대문 등 건축 모형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일 하는 것이 쉬는 것이다.-지금까지 김 대목장이 수리 보수하거나 신축한 주요 건축물은 어떤 것들이 있나.△(모두 열거하는 것은 지루하다는 듯 ‘연도별 실적 목록표’를 건넨다. 거기에는 1964년 김천 직지사 청풍료 신축에서부터 최근까지의 주요 문화재 보수와 전통건축 신축현황 200여 건이 빼곡하게 일목요연 적혀있다.)-한국전통건축연구원에 전시돼 있는 모형들을 보니 김 대목장의 열성이 느껴진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작업들을 해왔나.△(연구원에는 서울의 남대문과 동대문, 덕수궁 중화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안봉 봉정사 극락전, 대구 동화사 대웅전,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김제 금산사 미륵전, 밀양 영남루, 평양 을밀대 등 남북한의 전통 건축 모형 70여 점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리고 옆 건물에는 전통가옥과 한옥모형을 축소 제작한 모형 80여 점이 들어차 있다.)△오래 전부터 한 점씩 만들어왔다. 후세들에게 우리 전통건축물을 이해하고 계승할 수 있도록 연구 교육 자료로 제작한 것이 지금은 100여 점을 훌쩍 넘겼다. 전통건축은 겉으로만 보아서는 내부 구조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부 모형 몰에서 천장과 내부 구조를 볼 수 있도록 지붕을 덮지 않은 것도 있다. 실제 축적의 10분의 1크기(전체 규모는 1천분의 1)로 제작했지만 문화재 수리보고서를 보고 정교하게 재현했기 때문에 재료가 적게 들었을 뿐 시간과 공력은 본 건물만큼 걸렸다. 작게는 3개월에서 숭례문 같은 대작은 1년이 넘게 걸렸다. 마치 손목시계가 큰 벽시계보다 품이 덜 드는 것이 아닌 것처럼.-건축 모형에서 실제 건축물의 어떤 특징들을 확인할 수 있나.△우리나라 사찰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답다는 예산 수덕사의 대웅전에는 소의 꼬리를 닮았다고 우미량(牛尾樑)이라 부르는 굽은 부재를 썼다. 그런데 대형 건축물이어서 거기에 꼭 맞는 굽은 나무를, 그것도 4면에 16개를 같은 크기로 찾아내 만들었는데 그걸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불국사 대웅전 포(包) 위의 돼지가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이곳 모형에서 돼지 조각을 어디에 어떻게 만들어 두었는지 찾아볼 수 있다. 밀양 영남루는 경사진 지형을 이용해서 주변 자연과 어울리게 건축물을 축조했는데 우리 전통건축이 자연과 주변에 조화를 이루며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도 한 눈에 이해할 수 있다. 또 동화서 대웅전 모형을 보면 지붕 서까래를 잇는 연침과 추녀를 고정시키는 비녀잠을 확인할 수 있는데 모두 철제 못을 사용하지 않은 전통 건축의 원형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모형마다 이런 특징들을 확인할 수 있도록 실제 그대로 정교하게 제작됐다.-전통 건축과 문화재 보수로 60년을 살아왔다.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당시 기술은 도제식 전수였다. 스승인 김윤원 대목장은 당대 최고수인 김덕희 대목장의 아들이다. 김윤원 대목장은 특히 대자귀질과 도끼질을 잘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직지사 청풍료(현 박물관) 신축공사에 김윤원(5년 전 작고) 대목장이 도편수로 일을 했고 김윤원 대목장의 제자였던 내가 대패를 들고 현장에 뛰어들게 됐다. 옛날 목수들은 다양한 목공예 기술을 보유했다. 목재 가공과 조각, 연결 기술 등 다양한 기술을 숙달해서 전통 건축물을 정교하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런 기술은 건축뿐만 아니라 가구, 문화재 등의 제작에도 적용됐다.-소목장인 부친의 재주를 많이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목수일은 재주가 중요한가.△어릴 때부터 연장을 다루는 아버지에게서 배우기는 했다. 군 시절에 주특기(수송)를 무시하고 목공이 됐다. 그때 차량 바퀴에 피대(벨트)를 걸어 통나무를 켜는 재주를 발휘하기도 했다. 목수는 재주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수많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 노력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다.-전통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 주변의 경치, 태양의 위치, 바람 등과 같은 요소를 고려하여 건축물의 방향성과 조망을 결정해야 한다. 풍수를 생각하면 쉽다. 특히 한국 전통건축은 자연환경과의 조화를 중시하며 자연재료와 기술을 적절히 활용하여 건물을 건축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한옥의 경우 간결한 형태와 내외부 공간의 유기적 연결을 통해 자연환경과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한국 전통건축이 중국이나 일본 건축과 다른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한국 전통건축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연과의 조화, 유연한 곡선미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중국 전통건축은 역사적으로 장대한 궁궐과 탑, 장식적인 요소들을 포함하는 복잡하고 화려한 건축양식으로 유명하다. 중국 전통건축은 대단히 다양한 형태와 장식을 가지고 있으며, 보다 웅장하고 화려한 느낌을 주는 것을 중요시한다. 일본 전통건축은 기능적이면서도 간소하고 정제된 디자인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기둥이나 석가래, 도리를 사각재로 쓰는 등 직선적인 형태와 단순한 장식이 특징이며, 습한 기후로 인해 개방적이고 통풍이 잘 되는 건축을 추구하고 있다. 일본 전통건축은 균형과 조화, 세련된 디자인을 강조하며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한다.-문화재를 수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현대 건축에서 잘못하고 있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문화재 수리는 단순히 외관을 복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건축물의 원래 의도와 목적을 이해하고 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화재는 그 시대의 사회 문화생활 방식을 반영하고 있으며 특정한 기능과 의미를 갖고 있는 문화재들이 많이 있다. 따라서 문화재의 본래 의도와 목적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복원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화재를 수리할 때는 원래 사용된 재료와 기술을 최대한 존중하고 활용해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사용된 자재나 기술은 문화재의 역사와 특성을 반영하며, 그에 따라 건축물의 모습과 기능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가능한 한 원래 사용된 재료와 기술을 사용하여 복원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현장에서 작업할 때 특별히 요구하는 금기 같은 것이 있나.△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안전교육을 하고 지신제를 지내고 공사할 때는 금주와 금연을 특히 강조한다. 또 작업 공간은 항상 청결하고 깔끔하게 정리한다. 모두 안전을 위해서다.-전통 건축물, 한옥의 경우 미관은 좋은데 냉난방 등 효율이 떨어지고 생활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다.△한복을 생각해보면 된다. 개량한복은 아름다우면서도 생활에 편리하다. 우리 한옥도 그렇게 시대에 맞게 개량해 나가고 있다. 한국전통건축연구회가 표준형 한옥 모델을 제작 전시하고 있는 것도 한옥의 보급을 위해서이다.-아파트나 대형 주택 등 현대 건축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나.△현대 아파트는 대량 생산과 표준화를 통해 건설되기 때문에 일정한 형태와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개성과 독창성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 있다. 전통적인 한옥의 디자인 요소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거나, 전통 건축의 조형적인 특징을 현대적인 건축물에 적용하여 고유한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다.-시멘트는 전통 건축 재료가 아니다. 그런 공법으로 시공한 문화재가 있나.△대구 만촌동의 영남제일관을 복원할 때(1979년)다. 당시엔 나라 사정이 외화가 부족해서 외국에서 목재를 수입해 올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기둥에서부터 서까래까지 90%를 목재가 아닌 콘크리트로 만들었고 심지어는 성문까지도 콘크리트로 복원했다. 목재 다루는 솜씨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결국은 눈속임이고 그 자체로 역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나라 형편이 좋아지면 언젠가는 목재로 새로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지금 전통 건축이 현대 건축에 밀려나고 있는 것 같다.△건축비가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 약점이긴 하다. 그러나 사람이 건강하게 살려면 전통 건축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하고 전통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과 건축비에 맞춰 건축을 하다보면 작품이 아닌 상품이 되고 만다. 그래서 건축 모형을 만들어 후세에 건축 기법을 전하려는 거다.-문화재 보전과 건축에서의 목수 위상으로 볼 때 정책적인 제안을 한다면.△정부가 전통 건축 보전과 전승에 좀 더 관심을 갖는 정책과 지원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문화재의 보호와 보전 정책, 전통 건축 관련 기관의 지원과 장기적인 계획과 프로그램까지 포함한다. 전통 건축을 하는 목수들은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교육과정 및 인증 시스템을 강화해 줄 것을 요구한다. 제도를 통해 목수들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지원해주면 좋겠다.-무형문화재 대목장으로서 앞으로 할 일은 무엇인가.△대목장은 목수의 우두머리이자 책임자이다. 전통 건축을 하는 목수로서 무형문화재 대목장 칭호를 얻었다. 경북 최고장인으로 인정받았으니 열심히 산 것 아니겠나. 이제는 전통을 제자들에게 전수하는 것이 내게 남은 소명이다. 건축 모형 작품들을 대중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장을 만들려는 것도 그래서이다. □ 김범식(金範植·80)충남 서산.전통건축연구원장. 경북무형문화재 대목장.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화재과 수료.한국전통건축연구원 대표.전 (주)정동종합건설 대표.경북도 최고장인.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 37호 대목장.1964년 김윤원 대목장 입문.1977년부터 전통건축, 문화재 200여 건 수리, 복원, 신축.교육용 전통건축 모형 140여 점 제작.2012년 대구문화예술회관을 시작으로, 경주엑스포, 대덕문화전당, 경산시민회관, 아양아트센터, 수성아트피아 등에서 개인전 52회. 초대전 60여 회.2017년 베트남 호찌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7 전시, 2017년 프랑스 기메박물관 한국문화재 재현전,2018년 미국 LA 가이아 갤러리 등에서 경북 최고장인 작품전, 중국 연길 두만강 국제투자무역박람회 등 해외전시 5회.전통목조건축 관련 특허 14개, 교육용 건축모형 디자인등록 42개, 실용신안 1개.비계기능사, 온수온돌기능사, 건축도장기능사 등 자격증 7종.한식목공, 목조각공, 드잡이공 문화재수리기능자.신지식인 국회의장상.그의 평생 소망인 교육 및 건축 모형 전시관 건립 지원과 논의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모두 무산됐다고 했다. 특히 그의 재주를 아끼고 실력을 인정해 준 김관용 전 경북도지사가 전수관을 지원해 주기로 했으나 도청 신청사 건립으로 미루어진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이경우 편집위원

2023-05-15

홍콩의 매력속으로… 무료항공권 2만4천장을 잡아라

코로나 이전으로 일상회복이 빨라지면서 홍콩이 해외 인기여행지로 다시 뜨고 있다.한국에서 비행기로 서너시간 거리인 홍콩은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해외관광지중 한 곳이다. 아시아의 금융허브인 홍콩은 현대와 전통,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며 관광과 쇼핑을 동시에 체험할 수있는 여행지다.3년이 넘는 긴 코로나 기간 꽁꽁 문을 닫았던 홍콩은 지금 코로나 이전으로 회복에 전력을 쏟고 있다.다시 말해 종전 홍콩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각오다. 다른 산업보다 관광과 여행산업 활성화를 위해 수십만장의 무료항공권을 뿌리고 쇼핑바우처를 제공하며 해외관광객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홍콩은 코로나 이전인 2018년 연간 6천500만명의 해외 관광객이 찾았다.그러나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후 사실상출입국 빚장을 걸어 잠그면서 홍콩의 해외관광객은 급감했다.2022년의 경우 코로나 이전의 10분의1에 불과한 60만명에 그쳤다. 그전에는 10만명도 채우지 못했다.홍콩경제에 차지하는 관광업의 비중이 17%에 육박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해외여행객 급감은 홍콩경제에 치명적이다.다행히 홍콩을 찾는 해외 여행객이 올해 들어 대폭 늘어나면서 외식업과 소매업 등 관광분야의 경기는 빠르게 회복중이다.지난 4월말과 5월초 노동절 황금연휴기간, 중국본토와 해외에서 250만명의 관광객이 홍콩을 찾아 유명관광지와 쇼핑센터가 위치한 도심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도심 호텔 예약률은 100%에 달하고 유명체인음식점은 본토 관광객들로 발디딜틈이 없을 정도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홍콩 정부에서도 각종 국제 행사를 유치하며 관광 경기 활성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홍콩의 이런 분위기를 타고 각국 항공사들도 속속 중단했던 홍콩행 항공편을 재개하가나 증편하며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데 힘을 쏟고 있다. 코로나 기간 한산하기 그지없던 홍콩공항은 지금은 입출국하는 해외여행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빈다.연휴땐 출국장 수속행렬은 말 그대로 장사진을 이룰때가 빈번하다. 출국수속의 대기시간도 코로나 이전보다 더 걸리고 있다. 코로나기간 직원들을 줄였던 항공사들이 인력부족으로 항공수요 급증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다.홍콩으로 가는 항공편도 코로나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서서히 회복중인 추세다.국적기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물론 홍콩 국적기인 캐세이퍼시픽 등 각국 항공사들의 증편도 계속되고 있다. 인천에서 홍콩가는 항공편은 하루 10여 편이 넘는다.그 만큼 가기 훨씬 편해졌다.홍콩은 지금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세계 관광객을 상대로 무료 항공권 증정 행사가 진행중이다.무료항공권은 코로나 이전 홍콩을 찾은 국가별 관광객 비중에 따라 배분된다.한국은 무료항공권 50만장중 4.8%에 해당하는 2만4천장이 16일부터 뿌려질 예정이다. 행사에는 캐세이퍼시픽, 홍콩익스프레스, 홍콩항공, 그레이터베이 등 홍콩의 4개 항공사가 참여한다.홍콩 여행하면 트램을 타고 올라간 해발 552m인 빅토리아 피크에서 내려다본 멋진 야경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피크에서 내려다보는 홍콩섬과 바다건너 구룡반도의 하늘높이 솟은 고층빌딩들의 스카이라인이 만든 멋진 풍광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하다.빅토리아 피크로 올라가는 트램은 코로나 기간 6세대 트램으로 교체됐다. 차창도 넓어지고 훨씬 쾌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홍콩여행은 주로 홍콩섬과 구룡반도의 주요 관광지와 명소를 둘러보는 코스다. 영국의 조기 정착지인 홍콩섬은 정치, 경제, 금융의 중심지인 센트럴과 애드미랄티, 완차이,코즈웨이베이 등을 중심으로 홍콩의 화려함과 식민시대 건물을 개조한 찻집에서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길수 있다. 물론 곳곳에 숨어있는 핫플과 맛집도 빼놓을 수 없다. 센트럴에서는 영화 ‘중경삼림’에 나온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미드레벨에스컬레이터가 명소 중 하나다.길이800m, 높이135m에 이른다. 센트럴과 미드레벨을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좌우로 펼쳐진 홍콩의 풍경을 보는 것도 여행의 큰 재미다.구룡반도는 쇼핑과 문화의 중심지인 침사추이, 몽콕, 그리고 템플스트리트 야시장이 여행코스로 추천된다. 홍콩섬에서 페리를 타고 도착하는 침사추이는 쇼핑과 문화의 중심지다. 인근 스타의 거리에 있는 이소룡의 동상과 랜드마크인 시계탑이 눈길을 끈다.홍콩의 도심에서 벗어난 해수욕장 리펄스베이는 부자들의 주거지로 유명하다. 홍콩시민들이 즐겨찾는 피서지이자 주변의 레스토랑과 유명 커피숍에 들러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겨보는 것도 홍콩여행의 묘미가 아닐까.홍콩에는 크고작은 240여개의 섬이 있다. 라마섬 등 인기있는 섬에는 도심에서 벗어나 여유와 운치를 즐기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일정이 괜찮으면 페리를 타고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홍콩은 유명 트래킹코스들이 많다. 산속을 걸으며 푸른바다와 홍콩의 비경을 감상하는 멋진 트래킹을 통해 진정한 홍콩 여행의 퍼즐이 완성될 것 같다./정상호기자 jyr933@kbmaeil.com

2023-05-14

고달픈 유배생활서도 귀히 여긴 ‘비밀정원’

전남 강진에는 세 가지 보물이 있다고 이곳 사람들은 자랑한다. 고려청자와 영랑 김윤식, 그리고 다산 정약용이다. 강진은 다산이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다산이 유배를 가서 처음 머무른 주막집인 사의재부터 다산초당, 백련사, 유배생활의 고달픔을 달랜 백운동 원림까지 곳곳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다산의 유배생활이 고달프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백련사의 혜장 스님과 우정을 나누고, 혜장의 제자인 초의선사에게 차에 관한 지식을 전수했다. 또한 유배지 강진에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무려 600여 권의 책을 썼다. 강진을 여행하는 것은 실상 다산의 숨결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조경예술의 백미, 백운동 원림강진 월출산 기슭에 있는 백운동 원림을 강진 여행의 첫 번째 행선지로 잡은 것은 다산이 가장 애정을 쏟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유배 중이던 다산은 1812년 제자들과 함께 월출산을 등반하고 백운동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백운동 원림을 보는 순간 다산은 한눈에 반해버렸다. 다산은 원림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 12곳을 정해 제자인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자신은 친필 시를 써서 한데 묶은 ‘백운첩’을 남겼다.백운동 원림은 조선시대 원림의 극치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력적이다. 원림의 안뜰에 시냇물을 끌어들여 마당을 굽이굽이 돌아나가게 만든 절묘한 배치부터 소나무와 대나무, 연, 매화, 국화, 난초 등이 조화를 이루며 피어 있는 모습까지 황홀하기 그지없다.하지만 이 모든 풍경은 예고편에 불과하다. 백운동 원림 뒤편 정선대에 오르면 백운동 원림이 왜 빼어난 조경예술의 백미인지 저절로 알게 된다. 백운12경 중 제1경인 월출산 옥판봉과 함께 정원의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원 안에서는 숲으로 둘러싸여 볼 수 없던 풍경들이 옥판봉과 함께 살아나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주위 풍경을 끌어들여 정원의 구성요소로 만드는 차경(借景) 기법을 확인할 수 있다.백운동 원림을 조영한 사람은 이담로(1627~1701)다. 그는 이곳을 만든 뒤 손자 이언길에게 귀하게 여기라는 유언까지 남겼다고 한다. 다산이 이곳을 찾게 된 것도 이담로의 6대손인 이시헌을 막내제자로 받아들인 인연이 계기가 됐으니 후손들이 선조의 유지를 제대로 지킨 셈이다. ◇4대째 143년 동안 차 만드는 차 종갓집다산 정약용 하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차와 얽힌 인연이다. 월출산에는 국내 최대 야생차 군락이 있었고, 유배 시절 다산은 이곳의 야생차를 즐겨 마시며 건강을 회복했다고 한다. 다산이 즐겼던 야생차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놀랍게도 명맥이 끊어지지 않았다. 조선 후기인 1878년부터 4대째 143년 동안 차를 만들고 있는 전통차의 종가가 맥을 이어온 덕분이다.이한영(1868~1956)은 1890년대부터 이 땅 최초의 차 브랜드인 백운옥판차를 출시한 전설의 차인이다. 백운옥판차는 월출산 아래 백운동 옥판봉에서 난 야생 찻잎으로 만든 차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한영은 열 살 때인 1878년부터 스승 이흠 선생으로부터 제다법(製茶法)을 배워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흠은 백운동 원림을 조영한 이담로의 6대손이자 다산의 막내제자였던 이시헌에게 제다를 배웠다.다산이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 남양주로 돌아간 뒤에는 이시헌이 매년 곡우 때 스승에게 백운옥판차를 보냈다. 이후에는 이한영이 해마다 다산의 집안에 백운옥판차를 만들어 보냈다고 한다. 이한영은 초의선사와 다산의 차맥을 이었고 지금은 이한영의 고손녀가 뒤를 잇고 있다.◇다산이 마신 야생차를 지켜내다이한영의 고손녀가 바로 ‘이한영 차문화원’의 이현정 원장이다. 이 원장이 월출산 아래 백운동 차막에서 그 전설의 백운옥판차를 다시 만들고 있다. 이 원장이 어렸을 때, 백운동 사람들은 다들 월출산 야생차를 따다가 차를 만들었다. 제다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 풍습이었다. 시아버지(이한영)에게 차를 배운 이 원장의 할머니는 며느리(이 원장의 어머니)에게 제다법을 전수했고, 이 원장도 그것을 어깨너머로 배웠다. 하지만 월출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야생차 채취가 금지되면서 백운동 사람들의 차 만들기도 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이 원장도 자연히 차와 멀어져서 오랜 세월 도시에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차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귀향해 월출산 아래에 자리 잡고 고조할아버지인 이한영 차의 맥을 잇고자 했다. 그런데 월출산 아래에 대규모 차밭을 조성하고 있던 한 대기업이 이한영이 만들었던 차들을 이미 상표로 등록해 놓은 상태였다. 이한영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출시한 백운옥판차, 금릉월산차, 월산차 등 3개의 차 상표였다. 이 원장은 할아버지의 상표를 되찾기 위해 3년에 걸쳐 소송을 했고 마침내 모두를 되돌려받았다. 다산과 월출산의 소중한 차문화 유산을 지켜낸 것이다. ◇실학사상의 산실 다산초당의 고졸한 맛다산의 실학사상의 산실이 된 곳은 다산초당이다. 다산 선생은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강진에 유배되어 1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게 된다.다산 선생이 연루된 황사영 백서사건은 천주교 신자 황사영이 중국 천주교회 북경교구의 천주교 주교에게 혹독한 박해의 전말보고와 그 대책을 흰 비단에 기입한 밀서가 발각된 일을 말한다. 황사영이 정약용 선생의 (배다른) 맏형인 정약형의 사위되는 사람이니 다산은 물론 형제들에게도 불똥이 튀고 말았다. 정약형은 물론 손위 형 정약종은 참수를 당하고 둘째 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뿔뿔이 흩어져 유배를 가게 된다.다산초당은 다산 선생의 담백한 성격답게 아담하면서도 고졸한 맛을 풍긴다. 제자들이 학문탐구에 매진했던 부속건물인 서암 외에는 이렇다 할 건물도 없다. 마당 앞에는 자그마한 반석이 놓여있다. ‘차를 끓이는 부뚜막’이라는 뜻의 ‘다조’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이곳에서 자생차를 솔방울을 지펴 차를 끓였던 곳이라고 한다.초당 서편에는 선생이 ‘정석(丁石)’이라고 글씨를 새겨놓은 ‘정석바위’가 있고 초당 뒤편 맑은 샘이 흐르는 약천이 살림살이의 전부다. 초당 옆의 연못만이 선생의 가장 큰 호사였다. 바닷가의 돌을 직접 가져와 만든 연못에는 조그만 봉을 쌓아 ‘석가산’이라고 하고 나무 홈통을 이용하여 산 속 물을 떨어지게 만들어 ‘비류폭포’라 이름지었다. 동암에서 조금 뒤편에는 ‘천일각’이 있다. 다산은 특히 형 정약전과 우애가 돈독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흑산도로 유배 간 형을 그리는 마음을 다스리려 올라가던 누각은 쓸쓸하면서도 아름답다.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은 다산유적지의 정수다. 도보로 겨우 20여 분에 지나지 않는 길이지만 동백나무와 차나무가 서로 어울려 짙은 향기를 뿜어댄다.이 길을 다산은 혜장선사를 만나러 가기 위해 오갔다. 물이 오르는 숲길로 난 오솔길에 들어서면 삿된 생각이 스르르 힘을 잃고 수풀 속으로 사라져간다. 함께 가볼만한 곳 ‘남미륵사’남미륵사도 꼭 가볼 만하다. 절 입구인 일주문에서 경내로 들어가는 길에 철쭉과 서부해당화가 빚어낸 화사한 꽃 터널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봄꽃 인증샷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진늦은 봄에 봄꽃들이 저버렸다고 낙심하지 않아도 된다. 초여름이면 빅토리아 연꽃과 수련이 소담스럽게 핀다.오백나한상과 삼십삼관음전, 팔각 13층석탑, 높이가 5m나 되는 거대한 부부 코끼리상 등의 이채로운 볼거리도 가득하다. /최병일 작가

2023-05-11

베트남 ‘리 왕조’와봉화군 연결고리는

국가와 국가 간에는 영원히 지속되는 우호도 없고, 불화도 없다.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 역시 그랬다. 현대사의 비극 중 하나로 기록된 베트남전쟁. 한국군은 1965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남 군대와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였다.1992년 수교가 이뤄지기까지 19년 동안 베트남은 한국 대중들에게 적성국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그런 불화가 있기 1천여 년 전 한국과 베트남은 호의적 관심을 가지고 교류하던 사이였다. 이런 사실은 그 당시를 연구한 여러 논문을 통해 이미 잘 알려져 있다.고려의 왕이 위기에 처한 베트남 왕족 이용상의 정치적 망명을 흔쾌히 받아들여 작위를 주고, 화산 이씨(花山 李氏) 성을 사용하게 해 우리나라로의 정착을 적극 도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지금의 베트남 북부 박린성(省) 뜨선시(市)에서 태동한 ‘리 왕조’는 216년 동안 지속되며 8명의 왕을 탄생시켰다. 1대 왕인 태조 이공온은 베트남인들에게 존경받는 인물. 수도인 하노이 한복판에 동상을 세울 정도의 역사적 위상을 가진다.바로 이 태조 이공온의 후손이 고려로 망명한 이용상이고, 그들의 후손인 이장발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맞서다 목숨을 잃었다. 그 공로가 인정돼 세워진 것이 봉화군 봉성면의 충효당.21세기에 들어서며 한국과 베트남의 교류·협력은 여러 부문에서 보다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두 나라의 우호적 관계는 해마다 200만 명의 한국 관광객이 베트남을 찾는 것에서 확인된다.봉화군은 이런 흐름에 주목하고 몇 해 전부터 충효당 일대에 베트남마을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베트남 주석과 박린성장, 뜨선시장 등도 이 사업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협력을 약속한 바 있다.본지는 매주 수요일 5회에 걸쳐 기획기사 ‘봉화군과 베트남 리 왕조의 연결고리를 찾아’를 연재할 예정이다. 고대 베트남 리 왕조의 역사와 봉화군 베트남마을 조성 프로젝트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기대한다. 관련기사 16면/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3-05-09

1226년 베트남 ‘리 왕조’ 7대손 이용상, 망명객으로 고려 정착

1960~1970년대에 걸쳐 진행된 베트남전쟁의 비극은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하지만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끝나고, 냉전체제가 해체된 1990년대 이후 베트남은 한국의 주요한 우방국 중 하나가 됐다.양국 사이 교류 속도는 하루가 다르게 가속화 돼 이제 한국과 베트남은 사회 전 분야에 걸친 협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이런 분위기 속에서 봉화군은 베트남마을을 만들기 위해 힘을 쏟는 중이다.봉화엔 베트남 리 왕조의 왕족 출신 화산 이씨(花山 李氏) 이장발(李長發·1574~1592)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충효당(忠孝堂)이 자리해 있다.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겨우 열여덟 어린 나이에 홀어머니를 두고 전장에 뛰어들어 전사한 이장발은 1226년 고려에 정착한 베트남 왕족 이용상(李龍祥)의 후손.본지는 5회에 걸친 연재기사를 통해 리 왕조의 흥망성쇠와 현재 베트남인들이 평가하는 리 왕조, 베트남 박닌성 뜨선시와의 교류·협력 속에서 베트남마을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봉화군의 오늘을 면밀하게 점검하고자 한다.글 싣는 순서1. 한국과 베트남 교류 역사의 시작2. 동반 성장의 파트너가 된 베트남3. 봉화군이 조성할 베트남마을4. 베트남인들이 생각하는 한국과 봉화군5. 봉화군과 베트남이 함께 꿈꾸는 내일 할머니가 들려주던 전설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한국에선 고려가 태동해 국가의 기틀을 잡아가던 1009년. 지금의 베트남 북부에 독립된 왕국이 건설된다. 탕롱(현재 명칭 하노이)을 도읍으로 한 ‘리 왕조’다.1대 왕 태조 이공온은 당시 강위력한 힘을 가졌던 중국의 군대를 격퇴한 문무겸비(文武兼備)의 인물. 베트남인들은 ‘리 태조’를 기리며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산책로 중앙에 그의 동상을 세워놓았다.‘환검’(還劍·칼을 돌려받다)이란 뜻을 가진 호안끼엠은 국가적 재난이 닥칠 때면 거북이가 칼을 물고 나와 나라를 구하게 했다는 설화가 전하는 호수다. 베트남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공간.그런 곳에 리 태조를 형상화한 거대한 조형물을 만들었다는 건 베트남인들이 리 왕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미루어 짐작케 해준다.◆베트남 리 왕조 후손 이용상은 왜 고려에 왔을까리 왕조는 216년 동안 베트남을 지배했다. 과거제도를 도입하고, 국립대학을 만들었다. 동아시아 전역에서 베트남이 안남(安南)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한 것도 리 왕조였다. 알다시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에서 수확되는 쌀을 ‘안남미(安南米)’라고 부른다.그러나, 어떤 왕조도 흥할 때가 있으면 필연적으로 쇠락의 시기가 있는 법. 리 왕조의 고종 이용한 시대에 들어서며 이반된 민심이 백성들의 반란으로 이어졌다. 진씨 성을 가진 사람이 리 왕조의 마지막 왕 혜종(惠宗)을 폐위시키고, 자신의 딸을 왕으로 세우면서 2세기에 걸친 리 왕조의 시대가 저문다.오늘날과 같은 선거의 형식이 아닌 무력을 통해 정권이 바뀌면 무자비한 학살과 숙청이 잇따르는 게 고대 왕국들의 특징. 리 왕조의 혈족들도 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이용상(李龍祥)은 리 왕조 태조의 7대손. 그는 주변에서 친인척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라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1226년 일이다. 리 왕조를 주제로 다룬 여러 논문에 따르면 소수의 측근들만을 데리고 망망대해를 떠돌던 이용상이 도착한 곳이 황해도 옹진군 화산면이다.당시 고려의 왕 고종(高宗)은 이용상 일행을 내치지 않고 따스하게 맞이했다. 화산군(花山君)이란 작위(爵位)까지 내렸다.현대적으로 말하자면 정치적 망명객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 고마움을 잊지 않은 이용상은 몽골군이 고려를 침탈했을 때 앞장서 싸움으로써 은혜를 깊이 새기고 살았음을 보여주었다. ◆800년 전에도 베트남과의 교류는 빈발했다인하대학교 전임연구원 허인욱은 ‘高宗代 花山 李氏 李龍祥(고종대 화산 이씨 이용상)의 高麗(고려) 정착 관련 기록 검토’라는 논문을 통해 이미 800여 년 전부터 베트남과의 교류가 있었음을 알려주며, 이와 동시에 이용상에 관한 보다 상세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이런 내용이다.“베트남 왕족 출신으로 고려에 정착한 이용상에 관한 이야기는 화산 이씨 집안의 족보에 전한다. 현재 전하는 화산 이씨 집안의 가장 오래된 족보는 1921년에 해주에서 이승재가 간행한 ‘花山李氏世譜’(화산이씨세보)다. 화산 이씨의 시조인 이용상의 베트남 리 왕조 탈출과 고려 정착 등의 내용은 ‘花山君本傳’(화산군본전)에 기재돼 있다. 이용상과 관련한 사실은 1925년의 ‘개벽’과 1928년의 동아일보에 기사가 실릴 정도로 일찌감치 알려져 있는 내용이었다. 지금도 이 내용은 고려시대에 베트남과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이와 관련해 부산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조흥국 교수는 한국인과 베트남 사람들의 유사성과 동질성을 언급하며, 다시 한 번 고려로 이주한 리 왕조의 망명객 이용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전략)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유교적 전통에 입각해 가정에 충실하고 부모를 공경하며 효심이 지극하다. 베트남 사람들의 한국 이주는 오래 전부터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인 13세기 초 베트남의 왕족이 한국에 와서 花山 李氏(화산 이씨)를 창건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화산 이씨의 始祖(시조)인 李龍祥(이용상)이 베트남인이란 것이 밝혀지면서 한국과 베트남의 언론과 학계는 이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후략)”매우 적은 숫자가 생명을 위협하는 세력을 피해 타국으로의 이주를 결행했던 이용상을 포함한 리 왕조 사람들.화산 이씨 종친회 이부영 부회장에 따르면 “지금도 한국에 거주하는 화산 이씨는 1천700여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그럼에도 이용상이 고려의 군사들과 함께 원나라 기병대의 말발굽 앞에서도 당당하게 저항했듯, 리 태조와 화산군 이용상의 후예인 이장발도 일본군의 조총과 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봉화 충효당’을 세워줄 정도의 기개였다. ◆이장발의 충효정신 서린 봉화에 베트남마을 조성을충효당이 자리한 봉화는 베트남에 뿌리를 둔 화산 이씨, 좀 더 의미를 확장하면 베트남과 쉽게 떼놓을 수 없는 고장이다. 그렇기에 ‘베트남마을 조성’은 봉화군의 주요한 숙원사업 가운데 하나였다.이 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박현국 봉화군수는 지난해 12월 리 왕조의 태동지인 베트남 박린성 뜨선시와 ‘우호협력 강화 협약서’를 체결했다.이미 몇 년 전부터 봉화군과 뜨선시는 베트남마을 건설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서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함께 고민해왔다.체결식이 열린 날 항 바 위 뜨선시 인민위원장(한국의 시장격)은 “봉화 베트남마을이 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역사적 뿌리를 공감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는 희망을 전했다. 물론 앞으로 전폭적인 협력도 약속했다.이에 박현국 군수는 “베트남마을의 성공적인 조성은 봉화군과 뜨선시의 우의를 다지는 것을 넘어 한국과 베트남의 동반 성장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화답했다고 한다.‘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한 2020년 이전엔 한 해 200만 명을 넘나드는 한국인들이 베트남을 오갔다.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여행자라면 하노이를 여행할 때 리 왕조를 떠올렸을 듯하다.‘코로나19 바이러스’가 꼬리를 감추기 시작한 2023년 봄. 베트남으로 향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다시 늘고 있다.이를 감안해 지난 3일엔 베트남관광총국 응우엔 쭝 칸 총국장이 주한 베트남관광청을 찾았다. 베트남관광청 대표부 관광대사는 화산 이씨 31대손 이창근(베트남 이름 리 쓰엉 깐)씨. 두 사람은 베트남 관광 홍보 활성화 방안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한국과 베트남의 교류는 역사와 관광 외의 영역에서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봉화군 역시 지난 3월 국내 각지에 거주하는 베트남 다문화인들을 충효당으로 초청했고, 거기서 베트남마을 조성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계속)/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3-05-09

“마을단위에서 공동체 안녕 비는 굿은 동해안별신굿 유일”

사전에서 ‘굿’을 찾으면 ‘종교 제의’보다 ‘신명나는 구경거리’가 먼저 나온다. 여러 사람이 모여 떠들썩하게 노는 신명 한 판이 지난 2일 포항시 송라면 방석 1리에서 펼쳐졌다. 방파제 앞 간이무대에서 밤새도록 이어지는 무박 2일의 굿판은 노래와 춤, 연극과 사물놀이가 어우러진 문화공연 콘텐츠의 보고였다. 16개의 굿거리는 각각 독립적인 주제와 색깔로 펼쳐졌다. 흥이 난 주민들은 굿판으로 나와 춤을 추거나 “얼씨구”, “아이고 내 팔자야” 같은 후렴구를 넣으며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굿판의 무녀와 악사는 젊은 세대가 많았다. 한때 무속신앙으로 천대받던 별신굿이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배움을 청하는 국악도가 많아진 덕이다. 동해안별신굿의 최연소 전승교육사로 지정받아 별신굿의 현대화와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동해안별신굿보존회 정연락 사무차장과 만났다. 인터뷰는 행사 전날 따로 자리를 마련해 진행됐다. -굿을 어떻게 접하게 됐나.△고교 시절 청소년 수련단체 활동을 하며 사물놀이부터 접했다. 야구 선수를 하다 부상으로 그만둔 상황이라 사물놀이에 더 푹 빠졌던 것 같다. 포항에는 사물놀이를 배울 곳이 없어 찾던 중 당시 부산 시립국악관현악단의 타악 연주자던 김정희 선생(이 시대 마지막 화랭이라고 불린 인물로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과 교수)이 구룡포에 거주하는 사실을 알게 됐다. 19살부터 그 아래 들어가서 배웠다. 남들이 미쳤다고 할 정도로 틈만 나면 연습하고 굿판마다 잔심부름을 하며 따라다녔다. 그러다 하루는 현재 동해안별신굿보존회장인 김동연 양어머니가 “내 아들 할래?”라고 툭 말을 던졌고, 그 한 마디가 인연이 되어 30여 년 한 길을 걸어왔다.-동해안별신굿에서 최연소 전승교육사로 지정받았다고.△국가무형문화재는 인간문화재로 불리는 보유자를 정점으로, 명예보유자-전승교육사-이수자-전수생이라는 전승체계를 가지고 있다. 김석출(1922-2005) 명장 가계의 최고령인 김영희 선생이 명예보유자이고, 아래로 5명의 전승교육사가 있다. 나는 마흔 살에 동해안별신굿 전승교육사가 됐다. 다른 부문의 전승교육사들의 평균 연령이 70대이니 상당히 이른 편이다.-흔히들 굿을 하는 무당은 신내림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동해안별신굿은 신내림이 아니라 예능을 배워서 대물림되는 세습무이다. 동해안별신굿의 근간은 인간문화재 김석출 만신(무당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김석출 명장은 조부에게 무업을 배운 3대 세습무이고, 현재 굿판을 함께 하는 김영희(김석출의 장녀), 김동연(김석출의 2녀), 김동언(김석출의 3녀), 김동열(김동언의 남편), 김영숙(김석출의 형인 김호출의 며느리) 선생이 4대이다. 내가 속한 5대부터는 양자나 양녀를 들여 세습되는 학습무 형태이다. 요즘 국내 대학 국악과에는 동해안별신굿이 필수 커리큘럼이다. 타악 수업 중에서도 가장 난도가 높다. 동해안별신굿을 배우고 싶어 보존회로 찾아오는 국악도가 많다.-동해안별신굿을 배우고 싶어 하는 이유는 뭔가.△동해안별신굿의 무악(巫樂)은 타악기로만 반주된다. 남성 악사들에 의한 타악 장단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복잡하고 정교한 경지를 보여준다. 서양에 재즈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동해안별신굿이 있다고 할 정도로 자유스러움과 즉흥성이 뛰어나다. 호주의 유명 재즈 드러머가 김석출 명인으로 인해 음악 인생에 큰 변화를 겪는 여정은 영화 ‘땡큐 마스터 김’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90년대 영국 런던 로열홀에서 동해안별신굿 공연을 보고 한국에 배우러 온 사이먼 빌리지라는 친구가 있었다. 김정희 선생 아래서 나와 함께 별신굿을 공부하고 박사논문까지 썼는데, 지금은 영국 더럼대학교 인류학과 교수로 있다.-동해안별신굿이 전승되는 데 있어 포항의 역할은.△동해안별신굿의 핵심 전승자가 포항에서 나고 자란 김석출 명장이다. 한국 3대 무당으로 서쪽은 김금화, 진도의 박병천, 동쪽은 김석출을 꼽는다. 그중에서도 김석출 명장은 무당의 왕이라는 의미로 ‘샤먼 킹’이라 불렸다. 따라서 포항에는 동해안별신굿 원형의 텍스트가 많다. 8,90년대 중반까지 영일만축제 기간에 동해안별신굿 공연을 하면 포항실내체육관이 꽉 찰 정도로 관객이 많았다. 하지만 90년대부터 한동안 단절되었고 최근에 와서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김석출 명장에 관해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태평소와 장구, 꽹과리 등 모든 민속 악기에 탁월했다. 손수 만들어 분 태평소 연주는 독보적인 경지에 이르러 ‘김석출류 태평소 산조’를 일구었다. 세계 각국의 전통음악가나 재즈음악가와 교류하며 음반을 남겼다. 동양철학에 능해 사주나 이사 방위, 신수를 손으로 짚어보는 수장(手掌)을 잘 봤다.-포항 송라면 방석리에서 열린 동해안별신굿을 주민들은 풍어제라고 부른다. 풍어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이고 동해안별신굿은 제82-1호인데, 어떤 관계인가.△원래 명칭은 동해안별신굿이 맞지만, 일제강점기 무속신앙으로 굿을 금지하면서 풍어를 위한 기원이라고 구슬려 풍어제라는 용어를 썼다고 들었다. 동해안은 수심이 깊고 바람이 강해 80년까지만 해도 바다에서 생사를 달리하는 어민들이 많았다. 이들의 영혼을 달래고 풍어를 기원하며 마을이 화합한다는 의미도 있다. 마을 단위에서 공동체가 잘 되도록 비는 굿은 동해안별신굿이 유일하다.-요즘도 별신굿을 하는 마을이 많이 남아있나.△최길성 민속학자의 조사에 따르면 1970년대에는 동해안 마을 200곳에서 별신굿을 했지만 지금은 80곳으로 줄었다. 어업량이 저조하고 마을 구성원이 부재한 탓이다. 현재 포항에는 송라면의 지경, 화진, 방석과 호미곶면의 대보, 강사, 구룡포읍의 삼정, 구룡포리, 장기면의 황바우(계원리) 수영포(영암리) 등 9곳에서 이어진다. 6개 마을에서 이어지는 부산보다 많다. 다만 부산의 굿판은 6박 7일 일정으로 규모가 크지만 포항은 무박 2일이 일반적이다.-방석리 동해안별신굿의 진행 과정은.△부정굿, 당맞이굿, 하회굿, 세존굿, 조상굿, 성주굿, 천왕굿, 놋동이굿(놋 세숫대야를 입을 물고 하는 굿), 심청굿, 손님굿, 제면굿. 용왕굿, 꽃노래, 뱃노래, 등노래, 거리굿을 한다. 한 굿거리마다 무녀 1명과 악사 예닐곱 명이 참여하며 보통 1~3시간 걸린다. 방석리 별신굿을 위해 보존회원 20여 명이 왔고, 이들이 돌아가면서 공연을 한다.-마을마다 내용의 차이가 있나.△마을마다 풍습이 다르다. 예전 포항 이가리의 경우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지신밟기를 했지만 방석리는 하지 않는다. 대신 방석리에는 무당 하나를 바다에 빠뜨리는 풍습이 있다. 바다에 용떡을 띄워 헌식하고 돌아오면서 ‘액맥이(액막이)’의 하나로 굿판에 처음 온 남성 악사를 물에 빠뜨린다. 조사리도 이 풍습이 있었지만 지금은 굿을 안 하니 방석리가 유일하다. -굿판을 장식하는 종이꽃인 지화도 직접 만든다고.△우리 윗세대 악사들은 모두 지화(紙花)를 만들었다. 지금은 나를 포함해 한두 명만 만든다. 지화는 일상의 공간을 신성한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매개체이다. 지화를 놓은 그곳이 굿당이 되고 신들이 좌장 한다. 지화는 수개월 전에 만들어 숙성시켜야 한다. 큰 종이를 오려서 성형해놓고 잠을 재운 뒤 꽃을 끼워 완성해야 단단하게 고정된다.-굿판에 오르는 악사이자 지화 공예가이며 별신굿 연구자기도 하다. 현재 가장 몰두하는 작업은 무엇인가.△지화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고 2006년부터 매년 한두 차례 전국에서 전시를 열고 있다. 예전에는 굿판의 지화를 그대로 재현했다면 지금은 시대에 맞게 새로운 시도를 한다. 지화는 전시 작품으로도 무대 소품으로도 훌륭하다. 미학자와 디자이너, 미술사학자들과 함께 지화의 예술적 가치를 논한 자리가 있었는데 세계적인 경쟁력을 인정하더라. 올해도 3개의 전시를 준비 중이고, 내년에는 프랑스 파리문화원에서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할 예정이다.-동해안별신굿의 발전을 위해 바라는 바가 있다면.△동해안별신굿은 무악(巫樂), 무가(巫歌), 무무(巫舞), 연희극(巫劇), 지화(紙花) 5가지 분야로 나뉜다. 무악은 원체 관심이 집중되는 분야이고, 춤은 아내(홍효진 이수자)가 학위를 받았으며, 지화 연구는 내가 이어가고 있다. 노래 가사 격인 무가는 90년대 초까지 연구가 한창 이뤄지다 지금은 뜸한 상황이다. 동해안별신굿은 장편의 서사 무가가 탁월하고, 굿판에서 무녀의 기량은 서사 무가의 구연 능력을 든다. 무가 쪽 연구가 더 이뤄져야 균형이 맞지 않을까 싶다. 현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협의가 진행 중이다. 그러면서 생기는 또 하나의 바람은 전승관이다. 김동연 보존회장이 10여 년간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로 활동하면서 전국에서 배움을 청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들과 별신굿을 배울 공간이 만들어지길 바란다.정연락 전승교육사는포항 출신으로 1997년 동해안별신굿 보존회 악사로 입문했다. 고(故) 김석출 명인을 비롯해 당대 최고의 악사들에게 무악과 지화 제작 전반에 걸친 세습무 학습을 사사 받았다. 동해안별신굿의 학문적 체계화를 위해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동해안별신굿의 특색 중 하나인 지화로 15여 차례 전시를 했고, 한국의 무가를 주제로 10여 권을 저술했다. 동해안별신굿보존회 30주년 기념공연 ‘회상’(국립극장, 2015)을 비롯해 ‘굿이로구나’(부산국립국악원, 2019), ‘세자매 이야기’(서울 남산국악당, 2021), 탄생 100주년 명인 오마주 ‘김석출’(국립무형유산원, 2022) 등을 기획·연출하고 국내외 다수의 공연과 전시를 통해 동해안별신굿의 대중화와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배은정 1974년 대구 출생. 경북대학교 사학과 졸업. TBC·포항MBC·경북교통방송 작가. ‘포항문화의 상징과 공간’ 공저/배은정 작가

2023-05-08

가족과 함께한 축제… 궂은 날씨에도 즐거움에 흠뻑

지난 주말 포항과 안동, 예천에서 경북매일신문이 주최·주관한 다채로운 행사가 성황리에 펼쳐졌다.먼저 지난 5일 어린이날을 맞아 미래 세대의 주역인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체험과 놀이활동으로 신나고 유익한 하루를 선사해 주기 위한 ‘101주년 기념 2023 어린이날 큰잔치’가 포항시 주최, 경북매일신문 주관으로 포항 철길숲 한터마당 일원에서 개최됐다.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에도 어린이, 학부모 등 2천여 명이 철길숲 오크광장을 가득 메운 이날 행사는 오전 10시부터 다양한 체험과 축하공연, 어린이 시상식 등이 진행돼 행사에 참여한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줬다.김정재(포항북) 국회의원, 김남일 포항시 부시장, 백인규 포항시의회 의장과 유문선 포항북부소방서장, 연규식 도의원, 김종익·김하영 포항시의원, 최윤채 경북매일신문 사장 등 내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기념식에는 학교별로 추천한 모범어린이 시상에 이어 참석 어린이와 내빈들이 단상에 올라 어린이날 노래를 합창하며 어린이날을 축하했다.이강덕 시장을 대신해 참석한 김남일 포항시 부시장은 “포항시 어린이들의 101번째 어린이날을 축하한다”며 “많은 어린이들이 있다는 점에서 포항시는 행복한 도시인 것 같다. 포항시 어린이들이 서로 도와가며 행복하고 씩씩하게 자라주길 바란다”고 전했다.김정재 국회의원은 “여러분들이 좋하는 것을 열심히 하는 어린이가 되어 꼭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달라”고 당부했으며 백인규 시의회 의장은 “포항의 미래를 이끌어갈 주인공으로 성장해달라”는 말을 전했다.최윤채 경북매일신문 사장은 “어린이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오늘 날씨가 심술궂지만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부모님과 맛있는 거 먹고 즐거운 시간 보내기 바란다”고 말했다.이어 6일과 7일 안동과 예천에서 진행된 ‘제50회 차전장군 노국공주 축제’와 ‘2023 예천활축제’ 프로그램에 더해 경북매일신문 주관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 행사가 진행돼 해당 축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6일 오후 6시 30분 안동에서 진행된 ‘안동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은 MC 한기웅씨의 사회로 비가 오는 날씨에도 많은 관람객이 운집해 김용임·박성연·류지광 등 8명의 인기 트로트 가수들의 멋진 공연을 즐겼으며 류지광 등 가수들의 팬클럽은 자신들이 응원하는 가수가 등장하자 이름을 연호하며, 해당 공연장을 환호성으로 가득차게 만들었다.이어 7일 오후 7시 예천에서 진행된 ‘예천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은 박현빈·박성연·정미애·허찬미·노지훈 등 유명 가수들이 대거 출연해 화려한 무대를 장식하는 등 관람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특히, 유명 가수들이 총출동하자 인근 지역민들도 가족들과 함께 축제장을 찾아 멋진 공연을 더불어 즐기기도 했다.이들 양 축제에서 진행된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행사는 관람객을 축제장으로 유도하고, 축제의 흥을 더욱 폭발시키는 킬러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행사를 주최·주관한 경북매일신문 최윤채 사장은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 행사가 낙동강이 지나는 시·군에서 열리는 축제와 행사마다 구름 관람객을 몰고 다니는 마중물이 될 수 있게 콘텐츠를 보강하는 등 더욱 내실을 키워가겠다”고 밝혔다.■ 포항 ■ 안동 ■ 예천 사진=이용선기자/정안진·피현진·이시라·구경모기자

2023-05-07

‘가정의 달’ 5월에 잘 어울리는 영화 찾고 있나요

언필칭 ‘계절의 여왕’으로 불리는 5월이 열렸다. 환하고 따스한 햇살, 머리칼을 날리는 시원한 바람 속에서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좋은 날들이다.그러나, 세계와 인간의 역사 속에 마냥 즐거워만 해도 좋은 시절은 없는 것. 한국의 5월은 ‘쉬이 지울 수 없는 아픔’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그 명백한 사실은 너도 알고 나도 안다.“꽃잎에 지는 바람으로 5월을 노래하지 말라”고 일갈한 시인 김남주(1946~1994)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아래 추천하는 2편의 영화를 보며, 이토록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5월의 행복과 더불어 되새겨야 할 이 땅 ‘5월의 슬픔’까지 함께 더듬어보는 게 어떨까. 영화 ‘이웃사촌’의 한 장면(위)과 포스터. 아프게 떠올리는 이 땅의 1980년대… ‘이웃사촌’때로는 영화가 입담 좋은 ‘역사 선생’ 혹은 또 다른 ‘근현대사 교과서’로 역할 한다. 그런 경우를 직접 이야기 들은 적이 있다.몇 해 전이다. 중학교에 다니던 조카딸이 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 와서는 동생에게 진지한 얼굴로 묻더란다.“아빠, 옛날엔 진짜로 우리나라 군인들이 죄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총 쏴서 죽이고 그랬어요? 아니죠?”동생이 뭐라고 답했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다만 ‘아직도 학교에선 중학생들에게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 건가’란 의문이 생겼을 뿐.그래도 다행이다. 조카가 백부처럼 캄캄한 골방에서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비밀스럽게 제작한 ‘광주항쟁 사진집’을 통해 끔찍한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된 게 아니라서.1988년 고등학교 2학년 때 그 책을 펼치고 총 맞아 죽은 광주 청년의 반쯤 감긴 눈을 보며 홀로 경악하던 밤이 잊히지 않는다. 아마 기자가 살아있는 내내 그럴 것이다. 이후로 35년 세월. 세상은 많은 부분 바뀌었다.비단 기자의 조카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택시운전사’ ‘1987’ 등 비극적 한국 현대사를 다룬 영화를 본 중학생들은 자기들 학교 역사 교사에게 “이게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고 사실인가요?”라는 질문을 했을 듯하다. 그 아이들은 어떤 답변을 들었을까?영화 ‘이웃사촌’ 역시 입담 좋은 ‘역사 선생’ 혹은 또 다른 ‘근현대사 교과서’의 역할을 자처한 작품으로 느껴진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민주화 이전, 공간적 배경은 한국, 밑바탕에 깔린 메시지는 ‘슬픔과 저항’이다.상영 시간은 2시간 10분으로 꽤 길지만, ‘이웃사촌’의 스토리 라인은 몇 줄로 정리가 가능할 정도로 간명하다.DJ(김대중)와 YS(김영삼)를 섞어놓은 듯한 민주화운동 투사(오달수 분)가 있고, 그를 감시하는 정보기관의 공무원(정우 분)이 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투사의 진심을 알게 된 정보기관 직원은 그간 살아온 삶의 태도와 지향을 180도 바꾼다. 시대의 슬픔을 자기희생과 저항을 통해 이겨낸 둘의 재회로 영화는 마무리. 정치적으로 끔찍했던 한국의 1980년대를 다루면서도 영화는 우리를 울리다가 웃기고, 서럽게 만들다가 깔깔거리게 한다.감독 이환경의 스타일은 말 잘하고 재밌는 역사 교사와 닮았다. “감정 과잉에 신파적이라 영화가 19세기 동화 같다”는 비판을 들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쩌랴. 그게 ‘7번 방의 선물’ 등 전작들에서 이미 봐온 이환경의 패턴화 된 영화 연출 방식이라면 인정할밖에.조연들의 빼어난 연기력은 ‘이웃사촌’의 핍진성을 높여준다. 지난시절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 속 정보기관의 고위직 역을 맡은 배우 김희원은 “악역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소화한다”는 세간의 평가에 값하는 연기를 이 작품에서도 보여준다.민주화운동 투사의 딸 역할로 나온 이유비의 눈빛 연기는 극장 안 사람들의 서러워서 뜨거워진 가슴에 기름을 붓는다. 제법이다. 기대하지 못했던 연기력이라 불러도 좋을 듯했다.어쨌건 한국의 비극적 현대사에 카메라를 들이댄 또 한 편의 ‘좋은 영화’로 점 찍을 수는 있을 것 같다. 기자 외의 관객과 평론가들에게는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모르겠지만.어쨌건, 이제는 대학생이 된 조카딸은 ‘이웃사촌’을 봤을까? 봤다면 또 동생에게 질문을 던졌을까? 그게 아니면 제법 컸으니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이 땅의 1980년대를 기록한 책을 읽었을까?조카의 의문에 답해줄 좋은 역사책 한 권 선물하고 싶은 5월이다. 누가 소녀들을 지옥으로 보냈나?… ‘귀향’‘태백산맥’을 쓴 소설가와 동명이인인 조정래. 그는 14년에 걸쳐 한 편의 영화를 위해 제 생의 많은 시간을 바쳤다.놀라운 건 7만5천270명. 어떤 이익단체도 쉽사리 끌어 모을 수 없는 숫자의 사람들이 몇천 원 또는, 몇십 만 원의 돈을 기꺼이 쾌척해 이 영화가 개봉되길 열망했다는 사실이다.이는 전례가 드문 일.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위해 이른바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하는 건 한국인들이 적극적 예술향유자로 문화계 전면에 등장했다는 걸 증명하는 사례로 기록되기도 했다.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전쟁. 개인의 의지를 압도하는 집단의 지향에 의해 상처받고, 고통 받은 이들이 적지 않다. 이는 비단 일본이 획책했던 태평양전쟁에 한정되지 않는다. 역사학자와 철학자들은 말한다. “전쟁이란 인간이 구축해온 합리적 이성이 무너지는 순간”이라고.긴 이야기는 필요 없겠다. 영화 ‘귀향’. 개봉 당시, 터무니없이 적었던 개봉관으로 상영했지만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반자본적 기현상이 나타났고, 영화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눈물을 흘렸다는 주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기자 역시 그런 상황 속에서 영화를 봤던 기억이 있다.오늘날, 제2차대전의 와중에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전쟁터로 끌려가 인권을 유린당하고,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짓밟히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은 여성들이 많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그러니, ‘귀향’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부정하거나 거부할 사람들 역시 적다. 그 당시 어떠한 일이 일어났고, 그 끔찍한 역사적 사건 탓에 보호받아야 할 한 개인의 삶이 타의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다는 것 역시 대부분이 알고 있다. ‘귀향’은 기본적 역사인식만 갖췄다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화다. 입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나 말할 수 있다.“1930~1940년대 아무 것도 모르던 소녀를 끌고 가 그들을 고통 속에 빠뜨린 일본의 군인들은 나쁘다” 혹은, “제국주의의 야욕 달성이라는 전체주의적 욕망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킨 일본의 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등.사실 ‘귀향’은 영화의 기술적 완성도와 스토리·구성의 핍진성에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하루 한 끼 챙겨 먹기도 힘들만큼 가난이 보편적이었던 1940년대 한국 농촌을 유토피아로 묘사한 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의 수난을 겨우 등에 드러난 푸른 멍자국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한 것, 전투 장면에서 보이는 제국주의의 저항세력이 중국인인지 한국독립군인지조차도 알 수 없게 만든 역사 재현의 조악함, 억울하게 죽어간 소녀들의 죽음을 해원하는 방식이 겨우 무당의 굿판을 통해서였다는 점 등. 곳곳에 산재한 부족한 부분들을 무시할 순 없다.그러나 그럼에도 ‘귀향’은 사람들을 울린다. 왜 그럴까? 답은 매우 단순하다. 겨우 열네 살 소녀가 자신이 ‘이상향’으로 꿈꾸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든 거대한 시스템, 그것을 향한 반감 때문이다. 바로 제 욕망을 위해 수백 만 명의 인간을 희생시킨 일본 제국주의.이처럼 간명한 영화적 결론이라면, 여기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세간의 인식과는 또 다른 저서를 펴내 비난을 화살을 맞고 있는 세종대 박유하 교수도 들먹일 필요가 없고, 일본 정치권과 현실적 실익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한국 정권의 입장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왜냐? 아픔과 그 아픔을 넘어서는 카타르시스란 어차피 객관이 아닌 주관의 영역이기에.이렇게 말해보자. 세상의 어떤 일은 복잡한 논거와 긴 설명 없이도 그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 영화 ‘귀향’이 그 안에 담고 있는 메시지는 간명하다.“왜, 열네 살 어린 조선 소녀가 부모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타의에 의한 죽음을 맞았던가? 그 죽음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 답변이 너무나 빤한 질문.때론, 삼척동자도 아는 쉽고 분명한 사실이 사람을 울린다. ‘귀향’이 가진 기술적 흠은 관객의 눈물을 부르는 역사적 사실을 이기지 못했다.해서, ‘귀향’은 영화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어떤 빛남을 지닌 영화다. 그 빛남에 우리가 안아줘야 할 약소국 소녀의 피가 묻어있을지라도. 해서, 이 빛나는 햇살 아래 5월에 보길 권한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3-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