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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 붉은 줄기선 용기를, 푸른 솔가지선 희망을 보았다

등록일 2024-04-03 17:48 게재일 2024-04-0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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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예천 천향리 천연기념물 석송령 노거수 <하>
청룡과 붉은 뱀이 한 몸이 된 듯 보이는 예천 천향리 석송령.

700년이나 살아온 소나무에서 비상하는 청룡과 똬리를 튼 붉은 뱀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의 모습에서 힘찬 기운과 안식의 편안함을 느꼈다. 무심하게 흐르는 세월에 딱딱하게 굳어져 가는 고목의 붉은 나무줄기에서 용기와 바람에 손짓하는 푸른 솔가지에서 희망을 보았다.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도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았다. 세월의 모진 풍파에 굴하지 않고 사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면서 고귀한 품격을 다듬고 빛을 발하는 노거수를 보면서 내 늙음의 후줄근한 모습을 벗어던지고 밝은 웃음 가득한 얼굴로 일신우일신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오늘도 노거수를 찾아다니면서 늘 힘을 얻고 새로운 무엇인가 지혜를 터득하고 배운다.

청룡과 함께 붉은 뱀이 똬리를 틀고 동거하는 모습은 황홀경 그 자체이다.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꿈에서만 볼 법한 괴이하고 신비한 모습이다. 용과 뱀이 동거하다니, 그야말로 상상의 세계에 온 느낌이다. 용은 신비한 조화능력이 있어 수많은 신화와 설화, 전설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용은 비구름을 몰고 다니고 천둥 번개 등 날씨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요술도 함께 지니고 있다.

 

700년 훌쩍 넘은 노목의 위용

키 11m에 가슴 둘레 4.2m

동서 폭 34m·남북 폭 22m

앉은 면적은 1,000㎡ 달해

괴이하고 신비한 ‘황홀경’ 선사

비상하는 청룡·똬리 튼 뱀

상상·현실의 동물 형상이

큰 사각형 ‘연리지’ 만들어

주민들의 극진한 나무사랑

79개의 ‘나무 지팡이’ 선물

돌기둥 팔걸이 5개도 설치

울타리·자물쇠로 철통방비

매년 정월대보름마다 제사

큰바윗돌 노래비까지 세워

반대로 뱀은 실제의 동물이면서도 불구하고 인류 문화 발전에 가장 오래된 의식에 관여해 왔다. 지혜와 의술의 상징이기도 하면서 남을 해치려는 사악함, 욕심 등 나쁜 이미지를 품고 있기도 하다.

뱀은 지느러미와 다리, 날개도 없으면서 산, 들, 사막, 바다, 강 등 어느 곳이든 용케도 살아가는 지혜로움과 무섭고 사악한 이미지를 함께 가지고 있다. 용과 뱀은 우리 민속 문화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이런 상상의 용과 현실의 뱀이 동거하는 모습은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804번지에 있는 부귀와 장수, 상록을 상징하는 700년이 훌쩍 넘은 석송령에서 볼 수 있었다.

키 11m, 가슴높이 둘레가 4.2m, 나무 폭이 동서 34m, 남북 22m, 앉은 면적은 1,000m²에 이르는 거대한 소나무 노거수였다. 주민들은 노령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 나무 지팡이를 무려 79개를 선물하고 편한 팔걸이 돌기둥 5개를 설치하여 주었다. 그 신비함과 그 영험함을 알리기 위하여 제단을 설치하고 금줄을 쳐 놓았다.

또한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철책 울타리를 설치하여 자물쇠를 채워 철통같은 방비를 해 놓았다. 매년 정월 대보름날 새벽이면 제단에 제물을 놓고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 누구도 마을 주민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드나들 수 없어 용과 뱀이 동거하는 것을 외부 사람들은 알지도 보지도 못했을지 모른다. 알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 범인의 일상이고 보면 뭐 그리 나무랄 일도 아니다 싶었다.

늘 푸른 솔잎 속에는 밑둥치에서 몸을 뒤틀면서 솟아올린 아름드리 줄기에는 거북등처럼 육각형의 껍질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밑둥치에서 뒤틀면서 힘차게 불끈 솟은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몸은 바로 힘의 원천이며 청룡이 하늘로 승천하려는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문어발처럼 다섯 개의 팔은 하늘을 향하여 비상하려는 청룡이었다. 그 모습은 웅대하다 못해 미래를 향한 무한한 발전의 원동력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가슴 속 심장의 고동이 요동치면서 나를 흥분하게 했다. 느지막한 황혼에 이런 뿌듯하고 황홀함을 느낄 수 있을까 하고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갑진년 청룡의 해에 사라져가는 불꽃이 다시 피어나는 느낌이었다.

마음이 눈을 대신했다. 붉은 근육질의 몸에 청룡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자세히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아 슬그머니 위로 고개를 돌렸다. 청룡의 몸에 붉은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놀라움에 그만 발이 얼어붙고 말았다. 얽히고설킨 뱀의 똬리는 그 누구도 떼어놓지 못할 것 같았다. 한두 마리가 아닌 가족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었다. 징그럽고 사악함이 아니라 아름답고 지혜로움의 상징물로 다가왔다. 황혼에도 끝없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우애와 평화, 지혜로움을 달라고 빌었다. 인간 태생이 욕심 덩어리인 것을 뻔히 알면서, 이 또한 욕심이 아닐지 의심하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청룡의 품에 뱀의 똬리는 큰 사각형 모양의 연리지를 만들어 놓았다. 이는 수백 년이라는 세월이 아니면 도저히 만들 수 없는 희귀한 연리지였다. 신비함에 나도 모르게 경배의 기도를 드렸다. 도저히 혼자 보고 넘길 수 없었다. 함께 간 H 교수를 불렀다. 그도 석송령의 아름다움에 빠져 여기저기로 방향을 바꾸어 가면서 석송령의 신비한 모습을 카메라 렌즈에 담기 바빴다.

와서 보더니 감탄해 마지않았다. 카메라에 오롯이 잘 담아 사진전에 출품해 보라면서 소나무 연리지에 대한 유래를 들려주었다. 그 뜻을 알고는 더욱 신통하다면서 놀라워했다. 똬리를 튼 붉은 뱀을 품은 펼쳐진 푸른 잔솔가지 사이로 드나드는 빛의 음양과 바람이 묘한 느낌을 주었다. 흩날리는 솔향은 혈액을 타고 더덕더덕 붙은 몸속 땟물을 말끔히 씻어내고 솔잎은 바람의 빗자루가 되어 허공을 향해 설렁설렁 비질하니 빗살 끝에 닿은 하늘은 더욱 눈이 시리도록 맑았다. 몸도 마음도 맑은 하늘도 모두 하나의 자연이 되었다.

잠에서 깨어나듯 정신을 수습하여 주변을 살펴보니 석송령의 자식 둘이 어머니 곁을 지키며 건장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2세의 자식은 번식과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서 1996년 9월 28일 종자를 받아 1997년 3월 24일 싹을 틔웠다. 그리고 1998년 4월 3일 예천읍 생천리 실증 시험 포장에 옮겨 키운 후 2002년 10월 19일 이곳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나이 27세가 되도록 아직 이름이 없다니 언제까지 두고만 볼 것인지, 어미의 모습을 딴 용과 뱀을 의미하는 뜻을 가진 이름은 어떨까. 아무튼 어머니처럼 재산을 증식할 줄도 알고 수굿하게 마을 사람살이에 끼어들어 흔쾌히 모은 재산을 내놓는 훌륭한 목품(木品)으로 자라야 할 텐데.

석송령 앞에는 거대한 바윗돌에 노래비를 세워놓았다. 나무에 대한 시비는 본 적이 있어도 나무에 대한 찬양의 노래비는 처음 보았다. 석송령의 아름다운 푸른 자태를 칭송한 노래였다. 한 몸이 된 청룡과 붉은 뱀의 모습은 보지 못했는지, 청룡의 영험함과 붉은 뱀의 지혜를 칭송하지 못했는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의 영험함과 지혜를 노래했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 청룡과 붉은 뱀이 한 몸이 된 석송령의 기이하고 신비한 아름다운 모습은 세월이 빚어놓은 생명이 깃든 진품·명품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석송령 노래비는…

송문헌이 작곡하고 석만수가 작사한 석송령 노래는 2021년 8월 노래비로 만들어졌다. 아래는 석송령 노래비에 새겨진 가사다.

천년세월 돌고 돌아 석관천을 들어서니 칠 백년 석송령이 그림같이 장관일세.

푸른 솔 아름다운 절경이로다. 바람 따라 뭉게구름 휘감고 춤을 춘다 아~

한평생 욕심 없이 옷 한 벌로 사는구나. 오고 가는 나그네가 가던 길을 멈추네.

천년세월 돌고 돌아 식관천을 들어서니 칠 백년 석송령이 그림같이 장관일세.

오는 님 반가웁게 맞이하면서 가는 님 다시 오라 말없이 손짓하네 아~

푸른 솔 가지마다 새들 노래 즐겁구나. 오고 가는 나그네가 가던 길을 멈추네.

/글·사진=장은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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