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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미향, 의원직 사퇴하고 재판받아야 마땅

검찰이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을 지낸 민주당 윤미향 의원을 보조금관리법 위반 등 총 6개 혐의, 8개 죄명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윤 의원은 검찰의 결정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법정에서 결백을 증명하겠다고 밝혔다. 정의연도 검찰을 향해 “억지 기소, 끼워 맞추기식 기소”라고 반발했다. 민족적 분노를 악용해 사적 이익을 취했다는 죄명을 받고도 엉뚱한 소리만 하는 위선투성이 시민단체 세력의 뻔뻔함, 그 극치를 본다. 서울서부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최지석)가 밝힌 윤 의원의 혐의는 ‘보조금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지방재정법 위반·사기’,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기부금품법) 위반’, ‘업무상 횡령’, ‘업무상 배임’, ‘준사기’,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등이다. 정의연 이사인 A(45)씨도 보조금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기부금품법 위반·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나란히 불구속 기소됐다.검찰에 따르면 윤 의원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정의연의 전신)가 운영하는 박물관에 허위로 학예사를 등록하는 수법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로부터 3억여 원의 보조금을 부정수령했다. 총 41억 원의 기부금품을 신고없이 불법 모집했고, 나비기금·김복동 할머니 장례비 명목으로 1억7천만 원의 기부금품을 개인계좌로 모금한 혐의도 받는다.놀라운 것은 윤 의원이 개인계좌를 이용해 모금하거나 정대협 경상비 등 법인계좌에서 이체받아 2011년부터 임의로 쓴 돈은 1억여 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 사실이다. 윤 의원은 “윤미향 개인이 사적으로 유용한 바 없다”고 주장하고 “위안부 피해자를 또 욕보인 주장에 검찰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또다시 할머니들의 명예를 끌어들였다.망국의 불행 속에서 비운의 희생양이 된 할머니들을 앞세워 앵벌이 수단으로 악용해 국민의 코 묻은 돈, 혈세를 빼먹은 비리 의혹으로 기소된 피의자로서 윤 의원과 정의연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양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윤 의원은 의원직을 내려놓고 석고대죄하며 재판을 받는 게 도리다. 이렇게 비겁하게 국회의원 배지 뒤에 숨는 것은 말이 안 된다.

2020-09-15

본격 시동 거는 대구경북 행정통합론

지난해 연말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공식 제기한 대구경북 행정통합 문제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다음 주 대구경북 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와 범시도민추진위원회를 각각 출범시키기로 했다. 지난 4월 대구경북연구원이 ‘대구경북 행정통합 기본구상안’을 발표하고, 지난 6월 민간주도의 첫 세미나가 있은 뒤 공식적 기구가 드디어 출범한 것이다. 공론화위원회는 지역의 학계, 경제계, 언론계 등 전문가로 구성하고 향후 행정통합과 관련한 최고 자문기구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고 한다. 대구시와 경북도 관계자는 “위원장 선출 등 공론화위가 공식 출범하면 행정통합 절차가 본 궤도에 오르는 것으로 봐도 된다”고 말하고 “10월부터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것”이라 했다.대구경북 행정통합론은 날로 비대해지는 수도권에 대응하기 위한 지역권 중심의 초광역 도시화 시도다. 처음 시도되는 광역행정통합이라는 점에서 대구경북의 행정통합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최근에는 부산, 경남, 울산시가 메가시티를 추진하고 광주 전남과 대전 세종시의 행정통합 움직임도 대구경북의 영향이 크다. 이젠 지역단위의 광역통합이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대구경북 통합론의 출발점은 지방소멸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감이 작용했다. 날로 비대해지는 수도권에 대응할 수단으로 초광역화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대구경북은 한 뿌리라는 지역의 정서적 동질성도 행정통합에 힘을 보탰다.특히 이 도지사의 통합론 제기에 권영진 대구시장이 화답을 함으로써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는 공감대가 넓어진 것이다. 또 대구경북민의 통합 찬성 의견이 반대의 두 배를 넘은 것으로 조사됐다.이제 대구경북은 멀고 험난하지만 반드시 가야하는 행정통합의 길로 가는 길목에 섰다. 지역민의 공감대를 넓히면서 광역행정통합의 선두주자로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대구경북의 행정통합이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의 문제며 국가균형발전과도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널리 알려야 한다.특히 대구경북통합 특별법 제정 등 지금부터 지역 정치권의 할 일이 많아졌다. 정치권과 행정력이 머리를 맞대 소멸위기에 봉착한 지역을 살리고 수도권과 비교경쟁력을 갖추는 500만 광역도시를 만드는데 총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2020-09-15

망국병

망국병이라 함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를 말한다. 그 고질병을 콕 꼬집어 말하라고 하면 “이거다” 하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이유가 매우 다양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조선말 단재 신채호는 조선이 망한 이유로 유교문화를 손꼽았다. 그가 주장한 유교망국론에 대해 당시 많은 지식인이 동조했다. 유교문화에서 비롯된 사대주의 사상과 당파 싸움, 허례허식과 같은 잘못된 문화가 결국 조선을 멸망의 길로 이끌었다는 것이다.한나라가 융성하고 쇠락하는 것은 외적 요인보다 내적요인에 의한 것이 더 많다. 내적 요인이란 그 사회와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지도자나 국민을 말한다. 국민이 똑똑하거나 뛰어난 지도자가 나와 국가를 잘 경영한다면 나라가 망할 이유는 없다. 특히 과거처럼 전쟁과 무력으로 한 국가를 점령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간 것이다.인도의 간디는 나라가 망할 때 나타나는 일곱 가지 병폐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성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종교 등이다.틀릴 데가 없는 말이다. 사회정의는 반드시 원칙이 있어야 세워지고, 부를 축적하려면 땀과 노력이 필수여야 한다. 종교가 희생이 없다면 종교로서 의미를 상실한 거나 같다.정부의 2차 재난지원금이 국회 문턱을 넘기도 전에 여권 내부에서 내년초 3차 지원금 얘기가 흘리고 있다. 국민이 곤경에 빠졌다면 정부가 할 일은 마땅히 해야겠지만 나랏빚이 산더미인데 국민 세금을 선심 쓰듯 하겠다는 집권여당의 생각이 지극히 실망스럽다. 포퓰리즘으로 망한 나라는 얼마든지 있다. 포퓰리즘적 발생이 잦으면 그것도 망국병이 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9-15

이율배반적인 관료들

강희룡서예가전국시대 맹자는 유가학파의 분류상 사맹학파로 공자 문하의 적통을 대표하며, 철두철미하게 백성을 근본으로 생각했던 민본주의 사상가이다.전국7웅이 다투는 혼란의 와중에서도 꿋꿋하게 백성을 중심에 놓는 민본주의를 꿈꾸며 임금은 백성과 함께 즐겨야 한다며 민권(民權)을 더없이 높였고 민본사상을 최대로 고취시켰다. 반대로 패도정치는 악덕하므로 오래가지도 못하고 천하를 통일해도 참다운 패자(覇者)가 될 수 있는 길이 아니라고 지적했다.당시 맹자는 이상 사회를 꿈꾼 것이 아니라 그 실현 가능성에도 털끝만큼 의심하지 않았다. 부국강병의 패도주의가 오히려 비현실적인 뜬구름이라며 군주들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맹자 이후 2천300여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그가 그토록 믿어 의심치 않았던 민본주의라는 이상사회는 실현된 적이 없다. 다만 현대사에서 일컫는 민주주의시대가 열린 것만 해도 인류 역사의 큰 성취로 보아 이를 위안으로 삼아야 할 형편이다. 맹자의 민본주의는 말 그대로 ‘백성을 뿌리’라고 생각하는 사상이다. 맹자가 생각한 백성은 보이지는 않지만 땅 위에 서 있는 큰 나무를 지탱해 주는 뿌리와 같은 존재였다. 비록 정치적인 힘은 없지만 백성이 없으면 국가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나무의 뿌리가 조금이라도 상하면 나무 전체의 생명이 위태롭기에 백성 역시 하나라도 소외되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였다.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라고 최고 법에 명시한 민주주의라는 우리사회를 맹자가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우리는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정치가는 국민의 머슴이나 심부름꾼이라고 부르짖는다. 맹자가 그토록 갈망하던 민주주의라는 이름만 듣고는 백성이 주인인 시대가 열렸다고 기뻐하다 그 내막을 들여다보고는 크게 실망하며 분명 적지 않게 의아해 할 것이다.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머슴이 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 부으며 머슴살이 시켜달라고 애원하며, 자기들보다 몇 배 더 잘 살도록 돈을 걷어서까지 머슴 월급을 줄 주인이 과연 어디 있단 말인가!이러한 기이한 현상을 보고나면 맹자는 명(名)과 실(實)이 맞지 않으니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고치거나 이름에 맞는 참된 민주주의를 시행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이 주인 노릇을 하는 경우는 선거 때마다 한 표를 던지는 일 밖에 없다. 제도의 한계나 권력추구자의 행태를 탓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가 의(義)가 아닌 이(利)에 눈이 멀어 표밭의 노예가 되기를 자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 같다. 국민들의 정치 선진의식이 깨어있어야 국민의 바람과는 동떨어진 의구심이 가는 검찰개혁추진과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서슴지 않는 조국이나 추미애 같은 관료를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것이다.국민이 권력추구자의 정치놀음에 놀아나지 않고 모두가 깨어서 냉철한 눈으로 권력자를 바라볼 때라야 비로소 주인은 국민이 되고 권력자들의 술수는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2020-09-14

무기력증에 빠진 당신에게

문가인참마음심리상담센터 원장심리상담도 유행이 있다. 분노조절장애(전문용어 간헐적 폭발성장애)가 유행이었던 적도 있고, 공황장애가 유행이었던 적도 있는 것 같다.요즘에는 무기력증을 호소하며 상담센터를 방문하는 이들이 많다. 아동, 청소년, 청년, 성인, 노인 가릴 것 없이 의욕이 없고, 만사가 귀찮고, 온종일 누워만 있고 싶다고 한다. 심지어 두통을 비롯해 가슴의 답답함까지 호소하기도 한다.외관적으로는 우울증과 비슷해 보이지만 자신, 환경, 미래에 대한 부정적 사고를 주로 호소하며 자살까지 생각하기도 하는 우울증과 무기력증은 다르다. 그들은 부정적 사고를 크게 호소하거나 죽고 싶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단지 몸과 마음에 활력이 없다고 한다.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의 신체 건강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무기력증이란 바이러스로 마음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다. 그들은 힘없는 목소리와 흐릿한 눈동자로 나에게 도움을 청한다. 생존의 욕구가 그들에게 나를 만나러 오게 한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오기도 하지만 가족 중의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나를 찾아온다.나는 고민한다. 그들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 무기력증에 빠진 그들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세계적인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1964년 개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탈출구가 없는 상자에 갇힌 개에게 지속해서 전기자극을 주었을 때 처음에는 개가 팔짝팔짝 뛰다가 나중에는 웅크린 자세로 주저앉는다는 그 실험에서 우울증의 학습된 무기력 이론이 생겼다.우리의 지금 상황이 그렇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처음 우리의 대기를 떠돌 때는 당황하고 놀라고 두려워하고 분노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장기화함으로써 무기력해져 버리는 것이다. 그중에 몇몇은 심각한 우울증 등의 심리적 문제로 발전하기도 할 것이다. 그중에 몇몇은 지혜로운 방법을 스스로 찾을 것이다.마틴 셀리그먼의 실험에서도 모든 개가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지는 않았다고 한다. 자신이 탈출할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이전에 학습한 개는 포기하지 않고 탈출할 방법을 찾아서 도망을 쳤다는 것이다. 학습된 무기력이 있다면 학습된 낙관주의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부정적인 마음도 학습될 수 있듯이, 긍정적인 마음도 학습될 수 있다는 것이다.학습된 낙관주의로 우리는 이 코로나 시국에서 탈출해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의 하나로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외부의 전문가를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그 외부의 전문가들을 너무 맹신하거나 쉽고 빠른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 말라.나는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그들이 심리상담 및 최면을 통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갈 무렵, 이렇게 말한다.“밀림의 성자 슈바이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사람들은 자신이 의사인 줄 모르고 외부의 의사를 찾으러 돌아다닌다.”“신이 인간에게 자신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비밀의 열쇠를 어딘가에 숨겨두었다고 합니다.”“그 비밀의 열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십시오.”

2020-09-14

저 자비롭게 나투는 꽃처럼… 고령 반룡사(盤龍寺)

일주문은 길을 살짝 비켜나 높은 곳에 서 있다. 절을 드나드는 사람들과는 무관하게 먼 곳을 응시하는 눈빛에서 느껴지는 고독한 품격은 그 상징성만으로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쉽게 일주문을 통과했지만 이내 단단한 철문이 더 이상의 진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장내 집회를 금한다는 하얀 안내문이 콜록거리며 반룡사를 보호한다. 경내는 공사 중인지 푸른 가림막이 쳐져 약간은 어수선하고, 인기척 없는 산중에 빗줄기만 뿌려댄다. 그냥 돌아서기에는 아쉬움이 남아 철문 아래로 몸을 굽혀 허락없이 경내로 들어선다.반룡사는 동화사의 말사로 신라 애장왕 3년(802년) 해인사와 함께 창건된 절로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가 중건하였고, 고려 공민왕 때 나옹선사가 다시 중건하였다. 대가야의 후손들이 신령스러운 용의 기운이 서려 있는 곳에 세웠다고 해서 반룡사라 이름 붙였다. 임진왜란의 병화로 소진된 것을 사명대사가 중건하였지만, 화재로 전소되어 1764년 영조 때 대웅전과 만세루를, 1930년경 다시 중수하였으며 1996년 대적광전을 건립하여 오늘에 이른다.허락 없이 들어서는 사찰이라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미숭산 품은 더 없이 아늑하고, 그 안에 자리 잡은 반룡사는 바깥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따뜻한 기운이 흐른다. 퇴락해 가는 천년고찰의 상실감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가지런히 쌓아올린 담들과 잘 가꾸어진 나무들이 절의 품격을 한껏 높여 주고 있다.커다란 굴참나무가 불이문을 대신하고 맞은편에는 잘 정돈된 승탑밭이 숙연하게 나를 돌아보게 한다. 크게 두 곳으로 나뉘어 배치된 당우들도 산만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대적광전 앞에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예불을 볼 수 있도록 검은 차양막이 쳐져 시대의 아픔을 호소하는데, 법당 뒤편 레이스빛 불두화들만 축제를 벌이듯 쓸쓸히도 탐스럽다.굵어지는 빗줄기를 피해 대적광전 법당문을 열고 들어선다. 손 세정제와 방명록이 사천왕처럼 나를 점검하는 이색적인 풍경, 이 모든 것들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이름을 적고 백팔배를 시작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법당은 언제나 위험과 불안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던 가장 안온한 공간이었다. 아무도 없는 법당에서 기도할 때면 저절로 감사함으로 행복해지곤 했다.그런데 오늘은 텅 빈 법당에서 올리는 백팔배가 부끄럽다. 잔인했던 태풍의 상흔과 도무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회는 의기소침한데, 나는 그들의 아픔을 방관하지는 않았는지, 위기 앞에서 나를 동여매느라 타인과 사회로부터 돌아앉아 있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본다.궂은 날씨에도 몸은 가볍다. 가뿐히 백팔배를 끝내고 가부좌를 하고 비로자나불을 올려다본다. 만물의 창조주인 비로자나불의 미소에는 견고한 침묵만 흐를 뿐 말이 없다. 부드러움과 힘이 공존하는 목조비로자나삼존불상은 경북 유형문화재로 17세기를 대표하는 조각승 혜희(慧熙)의 작품이다. 여느 불상과는 다른 묵직함이 마음을 사로잡는다.영혼을 태워 불상을 탄생시켰을 조각승의 일생이 떠오른다. 오로지 한 곳을 향한 집념과 절절함으로 이루어졌을 모든 날들, 그의 삶에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깊고 푸른 호수 하나 자리 잡고 있었으리라.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피그말리온의 조각상처럼 생명의 기운이 도는 부처님, 마침내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는 순간의 감격과 희열을 무엇에 비하랴.조낭희수필가비로자나불의 엄숙하고도 잔잔한 미소에서 조각승의 얼굴이 보인다. 일상의 위기 앞에서 수많은 염원과 기도로 무릎을 꿇던 순간들도 있었으리. 생각지 않았던 역병과 수많은 자연재해들, 인류가 쌓아올린 질서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좀 더 겸허해지고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 하리라. 오래도록 비로자나부처님을 우러러 본다.부처님과 나 사이에 수많은 말씀들이 오고간다. 생명력이 느껴진다는 것은 세월과 정성이 빚어낸 아우라를 뜻한다. 예측조차 할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와 현실 앞에서 부처님은 꺼지지 않는 빛이 되어 존재하신다. 나의 백팔배는 좀 더 이웃의 아픔을 돌아볼 줄 아는 자비심으로 이어져야 함을 깨닫는다. 내 안에 맑은 기운이 솟아오른다. 법당을 나설 때는 바람은 멎고 빗줄기는 유순해졌다.물기를 머금은 절은 한층 깊고 힘이 넘친다. 대단한 풍광을 자랑하지도 않고, 크지도 작지도 않으며,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도 없다. 하지만 눈길 닿는 곳마다 안정적인 맥박이 함께 한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소나무와 배롱나무 들은 조화롭게 서로를 보듬고, 적당한 높이의 돌축대에서는 반듯함이 읽혀진다. 욕심 없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중용의 아름다움을 갖춘 선비와 대화를 나누듯 나는 경내를 거닌다.우측 산기슭에 자리 잡은 약사전과 지장전을 둘러보는데 여성 불자 두 분이 우산을 쓰고 절을 빠져나간다. 어디에 있었던 걸까? 이야기를 나누며 내려가는 발걸음에 부처님이 보인다. 이끼 낀 돌축대는 여전히 좌선 중이고, 넓은 파초잎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염불을 외며 그들을 배웅한다.나는 철 늦은 꽃들이 시간을 품은 채 나투시는 모습을 그윽히 바라보며 절을 나선다.

2020-09-14

쇠퇴하는 바로크, 떠오르는 신고전주의

1750년을 전후로 서양미술사에서는 신고전주의 양식이 나타나 프랑스 혁명기 동안 전유럽에서 유행했다. 신고전주의는 앞선 바로크와 로코코의 현학적인 기교에 대한 미학적 반발로 등장하면서 고대, 특히 고대 로마 미술에서와 같이 형식과 내용의 통일성과 명료성을 강조했다.신고전주의가 유럽 전역에 급속히 확산 되는데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수백 년 동안 화산재 속에 덮여 있던 고대도시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의 발굴이다. 고대의 정신을 이상적 가치로 여기던 유럽인들에게 고고학적 발굴로 옛 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으니 그 흥분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예측된다. 많은 유럽인들이 상상으로만 그리던 고대 도시의 모습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향했고, 부유한 영국인들 사이에서는 유서 깊은 도시를 방문해 그곳의 문화와 역사를 현장에서 체험하고 익히는 이른바 그랜드 투어가 유행했다. 지적 호기심에 가득찬 여행객들 중에는 당연히 미술가들도 포함돼 있었다. 미술가들은 눈앞에 펼쳐진 고대의 생생한 모습을 그림으로 담아 판매했고, 타국에서 몰려온 여행자들은 현장의 감동을 오래도록 간직할 목적으로 그림을 구매해 집으로 돌아갔다. 이처럼 고대에 대한 지적 호기심의 고조가 신고전주의 양식이 급속히 전파되는데 적잖은 역할을 했다. 신고전주의는 고대를 모범으로 삼았지만 신고전주의가 발달한 것은 이탈리아가 아니라 프랑스였다. 유럽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프랑스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주도의 체계적인 미술교육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바로크적 미술 취향을 밀어내고 신고전주의가 싹을 틔운 것은 18세기 중반이다. 이 양식이 번창했던 것은 초기 혁명기에서부터 나폴레옹 시대까지 다다르는데, 1800년경 낭만주의 미술과 일정 기간 공존하다 서서히 사라졌다.신고전주의 미술을 이끌었던 가장 대표적인 미술가는 자끄-루이 다비드(1748∼1825)라는 인물이다. 위풍당당 말을 타고 ‘알프스를 넘어가는 나폴레옹’(1801년)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나,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성대히 거행된 ‘나폴레옹의 대관식’(1806년) 장면을 담은 그림이 바로 그의 대표작이다.다비드는 프랑스 왕립미술학교에서 그림을 배웠는데, 당시에는 귀족들의 유희와 쾌락이 강조된 장식성 짙은 로코코 양식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시대적 유행과는 달리 다비드는 신고전주의 양식을 발달시킨 선구자 조셉-마리 비엥(1716∼1809)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1648년 루이 14세의 명으로 문을 연 프랑스 왕립미술학교는 해마다 각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들을 선발해 로마로 국비유학을 보내주는 ‘로마 대상’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자끄-루이 다비드는 1774년 명예로운 로마 대상을 수상해 1775년부터 1780년까지 로마에 머물며 이탈리아 거장들의 미술은 물론 고대에 대한 식견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로마로 유학을 떠난 다비드는 이제 막 발굴되기 시작해 지식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폼페이를 방문해 고대 유물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폼페이에서의 경험은 훗날 다비드가 신고전주의 양식 최고의 대가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로마 유학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온 다비드는 프랑스 왕실로부터 한 점의 그림을 주문 받았고, 그렇게 그려진 그림이 루브르가 소장하고 있는 다비드의 대표작 ‘호라티우스 형제들의 맹세’(1784년)이다. 고전미술을 모범으로 내용과 형식에서 명료함과 통일성을 완벽에 가깝게 구현한 다비드의 그림은 1785년 파리의 살롱전에 소개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한 점의 그림으로 자끄-루이 다비드는 단숨에 프랑스 미술계 일약 스타로 급부상했다. 고대로마의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그리고 리비우스의 ‘로마사’에 묘사된 한 장면을 그리고 있는 ‘호라티우스 형제들의 맹세’는 화가 다비드의 출세작임과 동시에 바로크가 막을 내리고 신고전주의라고 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중요한 걸작이다. /미술사학자 김석모

2020-09-14

인연

초가을 햇살이 눈 안에 반짝인다. 녀석은 순하고 따뜻한 성격이다. 태풍 두 개가 지나갈 때도 잘 참고 작은 박스집을 의지 삼아 잘 견뎌 주었다. 내 곁에 온 두 살배기 라마스테다. 녀석의 고향은 스코틀랜드라 했던가. 이억만 리가 고향인데 어떻게 한국의 땅 경주까지 왔을까. 인연법이란 참 묘하다.나름대로 사랑을 독차지한 녀석에게 어느 날 이변이 생겼다. 인연이련가. 다른 절에서 키우던 집고양이 자몽이 4개월 정도에 인연 따라 여길 왔다. 여동생이 생긴 셈이다. 녀석의 눈치를 보니 처음에는 서로가 경계하는 듯하더니 어느새 어린 동생을 잘 돌봐주고 덕과 아량을 베풀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집을 뺏기기 시작했다. 사료도, 장난감도 빼앗기며 순번이 뒤바뀌는가 싶더니 두 녀석의 서열 싸움이 시작되었다.사람도 성격과 습관이 다르듯 두 녀석은 확연히 다른 성격이었다. 녀석이 모든 것을 내주는 부모 같은 성격이라면 다른 절에서 온 고양이는 질투심과 이기가 대단해 온순한 라마스테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암고양이였다. 어느 날부터 라마스테의 몸이 야위기 급속히 야위기 시작했다. 들어보니 바람개비처럼 휙 그냥 들린다.어느 날은 녀석이 이틀간 보이지 않았다.“라마스테 오빠 찾아 와. 네가 밥도 집도 다 빼앗아 배가 고파 나갔으니 빨리 찾아 와.” 그랬더니 눈 옆에 눈물을 흘린다. 아량 넓고 모든 걸 양보하던 라마스테가 없어진 것을 그때야 알아차린 듯 자몽의 눈가에 눈물 자국이 크게 나 있었다. 갑자기 짠해졌다. 동물도 저러한가. 며칠을 찾은 끝에 옆집 담장 사이에 빠져 못 나온 라마스테를 구조했다. 가끔 기도를 할라치면 사람처럼 손과 두 다리를 모으고 한 자리에 두 시간을 앉아 있는 라마스테를 본다. 아마도 전생에 많이 닦은 수행자의 모습이다. 나와 세 번째 가을을 맞이한 라마스테가 오래오래 인연이 되길 바란다. 라마스테(그 안의 불성이 거룩합니다)라는 의미처럼. /지원 스님(경주시 외동읍)

2020-09-14

빛과 기다림의 예술

우리는 지금 사진의 숲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진이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인터넷 광고는 물론이고 심지어 음식점의 맛있는 음식도 사진으로 찍어 SNS로 보내는 실정이다.그럼 어떤 사진이 잘 찍은 사진이고 못 찍은 사진인지 평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잘 찍은 좋은 사진일 수도 있고 잘못 찍은 나쁜 사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좋고 잘 찍은 사진은 아름답거나, 다른 사람에게 감명을 줄 수 있는 사진, 작가의 생각과 느낌을 잘 나타내야 좋은 사진이라 할 수 있다.사진은 빛과 기다림의 예술이라 한다.많은 사진인들이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또 순간의 찰나를 포착하기 위해 먼 장거리도 마다 않고 출사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큰 사진은 러시아의 이르크추크시 앙가라강변의 영하 30~40℃ 되는 새벽 풍경이다. 이 사진은 누가봐도 혹한의 추위를 느끼게 하는 사진이다.혹한을 느끼게 하는 건 주위에 눈, 상고대 뿐이 아니고 사진의 빛의 색 때문에 이다. 아마 이 사진을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빛으로 찍었으면 이렇게 리얼하지 않았을 것이다.이 사진은 올해 경북사진대전에서 최고의 상인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작은 사진은 고니 사진이다. 고니는 몸통이 커서 한번 앉으면 잘 날지를 않는 습성을 가지고 있어 활공이나 착지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이 고니의 착지와 비상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 많은 기다림으로 순간을 포착한 작품이다.다른 사람에게 감동 여부를 평가 받는 방법으로는 공모전에 출품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권일영 사진작가

2020-09-14

초보 농사꾼 입문기

농사를 짓다 보면 생각만큼 쉽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직장 생활이 힘들거나 하던 일이 잘 안 풀리면 ‘고향에 내려가 농사나 짓지 뭐’하고 씹던 껌 버리듯 무심코 말을 내뱉지만 농사야말로 그 어떤 일보다 많이 생각 해보고 결정을 내려야 될 일이다.남편이 정년퇴직을 앞두고 퇴직 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무료한 시간을 보낼 겸 소일거리로 할 수 있는 조그만 농장을 하나 샀다. 뜻하지 않게 나를 동참시키는 바람에 얼떨결에 남편이랑 같이 농사를 짓게 되었다. 산비탈 들쑥날쑥한 땅을 포크레인으로 고르게 평탄 작업해 놓으니 땅 모양이 화장한 여인처럼 근사하게 바뀌었다. 초봄이라 잡풀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이 새로 집을 지어 이사한 것처럼 흥분되고 설레기까지 했다. 예쁘게 자랄 방울토마토, 오이, 가지, 고추 등을 상상해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봄이 무르익자 온갖 잡풀들이 쑥쑥 올라왔다. 작물들을 심으려고 땅을 뒤집으니 곳곳에 돌이 박혀 있어 돌 고르는 작업을 먼저 해야 했다. 뒤집으면 다시 돌이 올라오고 치우고를 반복하며 우리 부부는 조금씩 지쳐갔다. 남편이 전화로 서울 사는 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토요일에 아침 일찍 내려왔다가 일요일 저녁에 올라가면 어떻겠냐고. 아이들은 왕복 열차표를 끊어 준다는 남편의 제안에 흔쾌히 수락했다.처음으로 해보는 어설픈 호미질에 외발 수레에 돌을 싣고 언덕을 오르는 작은 딸아이가 몇 번씩 고꾸라졌다. 남편은 눈짓으로 내게 못본척 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옷이 흙으로 더럽히고 손바닥이 까여 상처가 났지만 일하고 먹는 삼겹살 맛이 최고라며 밥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그 후로 두 번 더 주말에 내려와 돌 고르는 작업을 도왔다. 직장에 다니는 아이들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두 명 왕복 열차 값이면 포크레인 하루 부르고도 남는다는 내 푸념에도 남편은 고집스럽게 제 주장대로 밀고 나갔다.눈앞에 웃자란 부추가 땅에 늘어져 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들깨가 출렁이며 흔들린다. 알싸하고 고소한 향이 코끝을 스친다. 어설프지만 우리 부부가 힘들여 지어 놓은 농막 하우스에는 붉은 고추가 널려있다. 유례없이 긴 장마를 이겨 내고 올겨울 김장 양념으로 식탁에 오를 생각을 하니 여태껏 고생한 수고로움이 봄 눈 녹듯이 사라진다. 물건의 질이 좋으냐 나쁘냐를 떠나 내가 기른 농산물은 내게 최고의 가치다. 많은 시간과 노력, 땀방울과 한숨이 그 속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한 해의 결실이 손에 쥐어지면 힘들었던 과정은 깡그리 잊어 버리고 다시 내년 농사를 준비할 것이다. 농부가 아니라 진정한 농사꾼으로./김지연(경주시 마동)

2020-09-14

냉장고 털기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다. 주방에서만 걸음이 늦었던 나는 대단한 결심을 하였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이 집을 떠나 있다는, 회식이 잦은 남편 때문에 한걸음 뒤에 두었던 냉장고를 털기로 했다.앞치마를 두르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채소 칸에 쟁여 놓은 한 보따리의 욕심이 가득하다. 싱싱하다 싶으면 사고 일대일 행사제품을 보면 왠지 남는 장사라 싶어서 산 것이다. 비닐에 싸인 봉지를 꺼내 식탁에 쌓았다. 쿰쿰한 냄새를 품은 봉지가 식탁에 가득하다. 한 봉지를 열어 보니 호박들이 뒤엉키고 짓물러 서로 붙어 있다. 겨우 하나를 살리고 나머지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다. 물러진 대파와 양파, 버섯은 그들이 갉아 먹은 시간을 갈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채소 칸을 비워 햇볕에 말리니 내 마음에 윤이 났다. 하나 남은 호박을 씻어 놓으니 참 매끈하다. 물러진 양파는 한 귀퉁이를 잘라 투명한 통에 넣었다. 내일이면 이 녀석들은 된장찌개에 들어가 통렬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내친김에 냉동실도 열었다. 내용물을 알 수 없는 봉지가 칸칸이 가득하다. 말끔해진 식탁 위에 또다시 얼음덩이가 하나 둘 쌓였다. 봉지를 열어 보니 봄에 데쳐 물과 함께 넣었던 나물이, 지난겨울에 지인이 국산이라고 주었던 고사리가 보였다. 고등어와 오징어 가자미 등 생선이 꼬리를 물고 나왔다.정리정돈의 첫 단계는 버리기다. 그다음에는 공간의 재배치이다. 그래서 나는 냉장고 문을 다시 열었다. 비웠으니 한눈에 볼 수 있게 반찬들을 배치했다. 자주 사용하는 것들을 앞에 놓고 장류와 양념 통은 냉장고 안쪽에 두었다.냉장고 털기는 마음이 가벼워지는 나의 훈련이다. 정리정돈에 약한 내가 정기적으로 치러야 하는 의식 같은 것이다./이순혜(포항시 남구 효자풍림아이원)

2020-09-14

지방재정 빨간불…경기침체 가속화될라

대구시와 경북도의 재정에 빨간불이 켜졌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코로나 관련 지원금은 계속 늘어난데다 경기침체에 따른 세수감소가 이어지고, 교부세 등 중앙정부 예산지원은 줄고 있기 때문이다.대구시와 경북도는 이미 두 차례 추경을 통해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예산확보에 전력을 쏟아 부었다. 마른 수건을 짜내듯 구석구석의 예산을 줄여 이제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는 상태다.경우에 따라 지방채 발행이라는 최악의 수단을 동원해야 할지도 모른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대구시의 경우 1차 추경에서 3천200여억원, 2차 추경에서 4천200여억원의 시비를 동원했다. 각종 행사 취소는 물론 대구시 재난·재해기금과 시청사 건립비까지 끌어다 썼다. 경북도도 마찬가지다. 도는 두 차례 추경에서 기존보다 1조1천억원이 많은 예산을 동원했다. 3차 추경에 가면 기채를 발행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한다.정부가 3차 추경예산을 편성하면서 올해 국세수입이 예상보다 10조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았다. 지방교부세, 교부금 규모도 덩달아 4천억원 가량 줄 것으로 내다봤다. 이 상태로 라면 정부지원은 아예 기대할 수 없다. 지방재정이 얼마나 더 버틸지가 문제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한다면 내년도 지방재정 상태도 마찬가지다. 올해보다 더 나아질 게 없다. 경기침체로 세수감소는 여전할 것이고 정부 교부세는 줄면서 정부의 뉴딜사업 등에 대응해야 할 지방비 부담은 더 커질 것이 뻔하다. 불요불급한 예산을 과감히 줄이고 효율적인 예산편성과 운용이 절실한 때라 하겠다. 그러나 원천적으로 부족한 예산을 어떻게 잘 운용해야 할지는 큰 숙제거리가 아닐 수 없다.코로나19 사태로 자영업자와 영세기업의 줄도산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영세 취약계층의 생계 문제도 지방정부가 챙겨가야 할 일거리다.이미 우리경제는 코로나 직격탄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수출이 줄고 내수경기 침체가 거듭되고 있다. 암울한 경제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만 높아지고 있다.지방정부는 지방대로 재정악화에 따른 특단의 준비에 골몰해야 한다. 지방재정 악화는 지역경기를 살릴 불씨를 잃는 것과 같다. 쓰러져 가는 상인과 기업을 살릴 묘안이 절실한 때다.

2020-09-14

코로나 시대에 행복해지는 법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코로나가 발생한 지 8개월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끝나리라는 희망을 갖기가 어렵다. 전염력이 강한 데다 그야말로 글로벌하게 발생하고 있으니 피할 곳도 없다. 그러나 어려운 시기일수록 행복 찾기는 더욱 절실하다. 여기저기서 심리적 적응을 위해 자구책을 제시한다. 그러나 심리적 자구책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다.한국인의 행복지수와 관련해서 장기 연구가 있다고 한다.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 팀은 2017년부터 매일 한국인의 행복도를 설문지로 조사하고 있는데, 올해도 이 연구가 계속되어 1월부터 6월까지 60만 명이 참여했다. 올해는 특히 이 조사를 통해 코로나 확진자 수 변화와 설문참가자들의 행복도 사이에 상관관계를 성별, 나이, 경제 수준, 성격 등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연구하여 그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여자들의 행복도가 언제나 남자보다 낮고, 두 번째는 경제 수준이 낮은 사람의 행복도가 경제 수준이 높은 사람보다 낮았다. 마지막으로 나이 든 사람들의 행복도가 젊은이보다 높았다.경제 수준이 낮은 사람, 여성의 행복도가 낮은 것은 충분히 예상할 만한 결과지만, 50대 이상의 행복도가 젊은이보다 높고 변화폭이 적다는 것은 의외의 결과다. 연구 팀이 분석하기로는, 나이가 들면 반응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나쁜 일에 대한 충격도 그만큼 적은 데다가 나이 든 사람들은 평소에도 거리를 두고 살았기 때문에 격리 상황에 대한 불편함이나 그에 따른 우울감이 적다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참고할 것은 행복의 의미다. 행복에는 삶의 만족도, 긍정적 정서, 삶에 대한 의미 경험 등의 요소가 있는데, 코로나 시기에 만족도나 긍정 정서는 하락했지만, 삶에 대한 의미 경험은 상승했다고 한다. 부정적 감정을 많이 느끼는 중에도 삶에 대한 성찰력은 높아졌다는 것이다. 나이 든 사람들의 성찰력이 젊은이보다 높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것이 나이 든 사람의 행복도가 높은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그러나 이런 결과가 있다고 해서 나이 든 사람의 행복 찾기 방식을 모델로 삼기는 어렵다. 이것은 나이듦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데다, 무엇보다 외부 변화에 반응력이 낮은 것을 긍정적인 신호라고 보기 어렵고, 평소 대인 관계에서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심리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행복도가 낮은 사람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자영업의 휴업이 잇따르고 고용도 불안정하니 한창 일할 젊은이들의 행복도가 낮고, 특히나 여성들은 언제나 낮다. 이 결과를 보면,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물리적 조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에 의미를 부여하여 말을 줄이고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거나, 내 방도 여행하고 몸과 마음을 살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모두가 그런 방식으로 행복을 찾을 상황에 있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정책 입안자들의 현명한 대처가 더욱 필요한 이유다.

2020-09-14

‘단지 셰어링’서비스

세대별로 갑자기 필요한 물품이나 부탁할 일이 있을 때 서로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마을공동체 문화를 되살리는‘단지셰어링’서비스가 새롭게 소개돼 관심을 끌고있다.예를 들면 컴퓨터가 갑자기 말썽을 일으켜 쓸 수 없게 됐을 때 “노트북 한나절만 빌려주실 분 찾습니다”라고 올리면, 주민 가운데 그날 하루 컴퓨터 쓸 일이 없는 사람이 “제가 빌려드릴게요”라고 댓글로 응답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급하게 외출해야 할 일이 생겨 아이를 잠깐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거나 집들이를 해야 하는데 큰 상이나 그릇이 필요한 경우에도 이런 앱을 이용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골프 강사나 아이 미술·음악·운동 선생님 등을 찾거나, 유모차·장난감과 어린이용 자전거 등이 필요한데 잠깐 쓸 용도여서 목돈주고 장만하기 애매할 때도 유용하다.단지셰어링 서비스 아이디어는 어린 시절 웬만한 것은 마을 주민끼리 다 해결할 수 있었던 시절의 추억에서 비롯됐다. 아이 학교 육성회비를 내야 하는데 돈이 떨어졌으면 이웃에게 빌렸고, 갑자기 호미나 낫이 필요할 경우 이웃집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 급하게 외출을 할 때도 마주치는 동네 주민에게‘우리 애들 밥 좀 챙겨줘’라고 말하면 됐던 시절이었다.이같은 앱서비스를 개발, 제공하고있는 쏘시오리빙은 2018년 설립해 시작한 종합 주거 서비스에 아파트단지 주민끼리 물품과 재능을 공유할 수 있게했다. 이 서비스는 현재 서울 강남의 아크로비스타·신반포자이와 수원시 꿈에그린 등 5개 아파트단지 5600세대를 대상으로 제공되고 있다. 우리 전통의 아름다운 마을공동체 문화가 4차산업혁명 시대에 되살아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9-14

秋 입장문, 사과·해명 빙자 ‘수사 가이드 라인’

아들의 군복무시절 ‘황제 휴가’ 논란으로 곤경에 처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아들의 검찰소환 조사에 맞춰서 사과의 뜻을 담은 입장문을 내놨다. 그러나 추 장관의 글은 ‘찔끔 사과’에 ‘잘못이 없다’는 변명을 섞어낸 ‘짧은 자서전’, 최소한 검찰에 내린 ‘수사 가이드 라인’으로 읽힌다. 지지자들을 향한 구구한 비호 청탁서가 돼버린 이 글은 의역하면 교묘한 ‘선전포고’다. 도대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이래저래 검찰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추미애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제 아들의 군 복무 시절 문제로 걱정을 끼쳐드리고 있다. 국민께 정말 송구하다는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들의 특혜 휴가 의혹은 부인했다. 추 장관은 아들이“병원에서 수술 후 3개월 이상 안정이 필요하다고 진단했지만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부대로 들어갔다”라며 “이것이 전부”라고 규정했다. “그렇기에 딱히 절차를 어길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도 덧붙였다.추 장관은 검찰이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면서도 남편의 교통사고사에다가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신파조의 호소를 이어갔고, 마지막엔 뜬금없이 ‘검찰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결의로 맺었다. 국민을 ‘개혁’만 외치면 무조건 박수를 보내는 바보로 취급하는 행태다. 여당 국회의원들은 온갖 궤변을 총동원해 추 장관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 황희 의원은 추 장관 아들의 특혜 휴가 의혹을 제기한 사병의 실명을 공개하며 ‘단독범’으로 규정했다. 청와대는 추 장관 가족의 민원제기 사실이 담긴 국방부 문건이 언론에 공개되자 느닷없이 ‘공직 기강 감찰’을 선언했다. 내부 제보자들에게 재갈을 물리려는 뜻으로 해석된다.추 장관은 입장문에서 ‘거짓과 왜곡은 한순간 진실을 가릴 수 있겠지만, 영원히 가릴 수는 없다’고 했다. 온 나라를 뒤흔들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퍼 올리고 있는 이 사건의 참담함을 근근이 견디는 국민의 심정으로 추 장관에게 자신의 말을 되돌려주고 싶다. 거짓과 왜곡과 강압으로 진실을 영원히 가릴 수는 결코 없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야말로 진실을 밝힐 시간이다.

2020-09-14

울릉도 특별재난지역 신속 지정해야

김두한경북부제9호 태풍 마이선과 제10호 태풍 하이선이 잇따라 동해안을 관통하며 울릉도가 큰 피해를 입었다. 섬 전체가 무너지고, 부서지고, 깨지고, 날라가고, 침몰하는 등 멀쩡한 곳의 하나도 없을 정도로 초토화됐다.울릉도 주민 80%가 직간접적으로 관광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관광객이 크게 줄어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태풍마저 연이어 덮치며 아사지경으로 내몰았다.육지와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여객선 선착장과 터미널이 부서지고 울릉도 대동맥인 섬 일주도로가 무너지고 뜯겨나갔다. 50t급 시멘트 구조물이 날아다닐 위력의 파도가 덮쳤으니 해안가를 따라 개설된 도로의 파괴는 짐작하고 남을 일이다.지난 3일 울릉도를 관통한 태풍 ‘마이삭’은 최대순간파고가 19.5m로 기상관측 이래 가장 높은 파고를 기록했다. 아파트 7층 높이의 파도가 덮친 셈이니 해안가 시설물과 주택이 온전하게 버텨낼 수 없었다.성한 곳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파괴된 울릉도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재난, 재해가 발생하면 피해를 정리 입력하는 NDMS(국가재난관리시스템)가 있다. 여기에 울릉도 피해를 입력한 결과 546억 원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아직 제10호 태풍 하이선의 피해는 제대로 산정하지 않은 집계이니 울릉도의 피해 규모가 어느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특별재난지역선포기준 피해예상금액 75억 원 이상이면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시행령 제69조’에 의거 최종 피해금액이 확정되기 전 예비조사를 거쳐 특별재난지역으로 우선 선포할 수 있다.정세균 국무총리와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국가관리연안항, 국가어항 시설의 책임자인 해양수산부장관까지 피해현장을 목격했다.따라서 당장 특별재난 지역으로 선포해야 한다. 울릉도는 육지와 달리 피해 복구하는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울릉도의 태풍 피해복구를 서둘러 시작해야 한다.울릉주민들의 울분을 달래고 합리적인 법적 근거에 따라 정부는 자체없이 울릉도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울릉도주민들이 삶의 의욕을 되찾도록 해주기 간곡히 바란다./ kimdh@kbmaeil.com

2020-09-13

사업의 성패는 간판보다는 내용

최근 마이삭과 하이선이라는 강력한 두 개의 태풍이 경북 동해안 지역을 강타하며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울릉도는 방파제가 유실되고 차량과 선박이 파손되었으며 도로도 유실되었다. 포항을 비롯한 경주, 영덕, 울진 등지도 집중호우로 한 해 농작물이 추석을 앞두고 쓰러지고 심지어 어디에 있던 것인지도 모르는 컨테이너 하우스가 버젓이 남의 논밭에 자리를 잡기도 하였다. 코로나19로 어렵던 시기를 보내고 있던 소상공인의 가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돈을 들여 세워두었던 입간판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건물 외벽에 전기장치까지 달아 두었던 세로형 간판은 구겨지고 떨어졌다. 어느 모델의 옥상 간판도 넘어졌지만 옥상 안쪽으로 넘어져 다행히도 인명피해는 나지 않았다. 아는 지인이 경영하는 철강공장도 지붕이 구겨지고 훼손되었지만, 그 옆 공장의 지붕은 아예 이번 태풍이 뜯어갔다고 한다.포항시 등 지역 공무원들은 불어난 강물로 오염된 산책로에 쌓인 쓰레기를 수거하고, 부러진 가로수를 처리하는 등 불철주야 고생하였다. 그동안 공무원들의 일 처리에 불만이 있던 시민들도 이번에는 박수를 보냈다. 코로나19사태가 확대된 이후부터 최근 태풍 피해 복구 등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올해만큼은 공무원들이 모두 월급 값 이상을 한 것만은 틀림없다고 본다. 이번 재해는 특히 아주 가끔 나타나는 초대형 태풍이었기에 아무리 사전에 철저하게 단속하고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자연의 힘은 언제나 인간의 상상을 이겨왔기에 피해가 전혀 없을 수는 없었다.이처럼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이후부터는 복구가 최대 현안이 된다. 하지만 태풍이라는 자연재해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그때마다 지금처럼 강풍으로 훼손되는 주요 대상이 늘 같다는 것이 문제다. 간판이다. 그동안 상인들은 자기 가게 홍보를 위해 어느 한 곳이 돌출형이나 세로형 간판을 만들면, 그 옆 가게는 그보다 더 크고 더 화려한 간판으로 대응해왔다. 입간판이나 돌출간판, 세로형 간판 등은 오래전부터 도시미관을 해치고, 자동차 운전자들의 시각을 어지럽게 하며, 보행자에게는 불편을 주는 대상이었다.약 16년 전인 2004년 당시 건설교통부는 신도시 건설이 한창이던 경기도 화성과 판교지역의 건축주나 건물사용자가 건물에 간판을 함부로 설치하지 못하도록 규제한다는 방침을 세웠었다. 최근 두 도시를 가보지 않아 지금의 모습은 모르지만, 그때 정부가 내세운 기준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신도시 건축물 간판 경관제도’라는 이 정책은 무질서하고 원색적인 건물 간판이 도시 미관을 해치고 운전자의 주의를 분산시켜서 교통사고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기존 도시보다는 신도시 건설 단계부터 적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여겨 시행했던 것 같다. 당시 계획으로는 업소당 가로형 간판 1개만 허용하고 세로형 간판은 설치를 금지하며 돌출형 간판은 4층 이상 건물에서 통일된 형태로 설치할 때만 허용하였다. 또 가로형 간판의 경우 3층 이하에는 위층과 아래층 사이 폭 이내에서만, 그리고 4층 이상에는 건축물 상단과 측면에만 설치할 수 있도록 하며, 간판의 색채는 주변 건물이나 간판과 어울리지 않는 순도 높은 원색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문자도 딱딱한 느낌을 주는 사각형체 사용을 억제하는 상당히 강력한 방침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아무리 강한 의지로 규제하더라도 언제나 그 틈새는 있기 마련이다. 상인들도 자신의 가게가 생존하고 더욱 번창하려면 더욱 기발하고 크며 화려한 간판이 필요하다고 믿으며 지금에 이르렀다.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간판(看板)’이라는 존재와 용어 자체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의 거래는 시장이 중심이었고, 그곳에서 거래를 위해 모인 상인들은 호객하거나 자신의 거래목적을 위해 장터를 돌아다니다 적당한 상인을 발견하고 거래하거나 거간꾼을 통해 매매하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이었다. 이후 상인이 자신의 가게에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상가가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일본인들이 상회 등 회사조직을 도입하면서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 시대에도 물론 유사한 기능은 있었다. 주요 건물에는 간판이라는 용어가 아닌 현판이나 편액 등이 걸렸다. 때로는 나무판자에 붓글씨를 써서 대문 근처에 걸어두기도 하였다. 당시 일본인들이 도입한 간판과 유사한 기능을 가지면서 지금의 네온사인과 같이 밤에도 빛나는 초롱을 걸던 곳도 있었다. 깊은 밤중 산길을 밝혀주는 지금의 여인숙 기능을 함께 하였던 주막의 등불이었다.이처럼 간판이라는 존재는 근대 이후든 이전이든 그 가게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용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파는 곳인지 알려주는 용도 등에 일차적 목적이 있다. 그리고 산업사회가 발달하면서 많은 사람이 멀리서라도 자신의 가게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알려주는 용도로 오랫동안 긍정적인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때마다 다시 그림이나 글자를 새로 쓰던 아날로그 간판은 순식간에 글씨를 바꿀 수 있는 디지털 간판으로 바뀌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누구나 지닌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위치 기능을 이용하여 가게 이름부터 주변 맛집 검색 등을 통해 정확하게 해당 지점까지 지도로 안내해주고 있다. 굳이 입간판, 돌출간판, 세로형간판 등 온갖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간판이 없어 가게나 어떤 업체를 찾아가지 못하는 경우란 있을 수 없다. 대형 건물에 입주한 기업이나 점포도 굳이 머리를 치켜들어 빌딩 바깥의 간판을 보고 몇 층에 있는지 찾을 필요도 없다. 건물 로비에 들어가면 네모난 아주 작은 크기의 판에 각층별로 입주한 업체나 가게를 깨알같이 써서 안내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종의 간판이다.우리는 간판의 크기와 모양을 생각하기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이 있음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제아무리 간판이 화려하고, 네온사인을 두르고 원색적인 글자로 손님을 유혹한다고 하더라도 가게의 성업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유통점이라면 그 점포에 진열된 상품들의 품질이나 상태가 양호하고 다양성이 갖추어져 있고, 접객하는 종업원의 친절도가 고객의 재방문을 결정한다. 음식점이라면 아무리 수시로 실내 장식을 바꾸고 온갖 진귀한 진열품으로 가게 분위기를 화려하게 꾸미더라도, 정작 그 가게의 정체성인 음식점으로서 음식이 맛없거나 청결하지 않고 손님들이 불편하면 소용이 없다.이번에 마이삭과 하이선이라는 초대형 태풍이 연속으로 강타하면서 지역 곳곳에 있는 많은 사업체의 간판을 부수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당장 망가진 간판부터 새로 만들기 전에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였으면 한다. 또다시 지금처럼 태풍이 와서 강풍으로 날아갈 세로형 간판이나, 입간판, 돌출형 간판을 굳이 돈을 들여 마련해야만 할지를.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강력한 태풍은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그동안 도시미관을 헤친다는 지적이 있었던 간판이라면 더더욱 이번 기회에 깔끔한 작은 디자인으로 만들어, 스스로 우리는 간판보다는 내용이 충실한, 간판이 없어도 경쟁력이 높은 가게임을 자랑해보면 어떨까. 명함에 금박을 입혔다고 그 사람이 높게 평가받는 것은 아니다. 안 그래도 어려운 시기다. 시간이 흐르면 녹슬고 태풍 때마다 날아갈까 노심초사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업의 성패는 간판보다는 내용에 있음을 잊지 말자./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9-13

고3 수험생 입시 불이익 없게 만반의 준비를

100일도 채 남지 않은 대학수능시험이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고3 수험생의 불안감이 날로 커지고 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수능일이 연기되는 등 입시 전반이 심각히 흔들리고 있어 수험생에 대한 교육당국과 학부모의 관심이 각별히 요구되는 때다. 교육부는 한차례 연기한 12월 3일에 수능을 예정대로 실시한다고 밝히고 있으나 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거듭되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유행의 분위기로 보아 장담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언제 어디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대유행을 할지 몰라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방역당국이나 교육당국은 감염병 예방에 집중하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책이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고3을 비롯 전 학년이 대면수업을 하는 등 학교수업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고3의 경우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린 1학기만 해도 전년보다 한 달 늦게 온라인 개학을 한데다 대면수업은 5월에 들어가서야 겨우 시작할 수 있었다.학생들의 학습 공백으로 학교별, 학생별 학력 격차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재수를 시켜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의 목소리는 지금도 들린다. 수능일의 연기로 일부대학이 수능 전으로 잡아둔 논술고사를 수능 후로 옮기는 등 대학입시 일정변경도 학생들에게는 혼란스럽게 느껴졌다.올해 고3의 입시 불이익을 우려하는 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구시 교육청이 2021학년 대입에 대비해 수시 및 정시모집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맞춤형 상담 프로그램을 개발, 보급한다고 한다. 시의적절한 대처방법으로 보인다. 입시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 학교당국의 정확한 입시관련 정보의 신속한 전달은 매우 유익할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을 이유로 학생들을 각자도생의 길로 가도록 방치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일선학교와 학부모들의 관심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 특히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돌발변수는 될 수 있으나 학생들의 진로는 막을 수 없다. 학교당국과 학부모들이 긴장감을 갖고 수험생을 독려해가야 한다.

2020-09-13

‘사석(捨石)’ 놀이

안재휘 논설위원바둑판 격언 중에 ‘기자쟁선(棄子爭先)’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돌 몇 점을 희생시키더라도 선수(先手)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수는 돌을 아끼고 상수는 돌을 버린다’는 속담도 있다. 바둑판에서는 초심자일수록 자기편 돌은 하나라도 죽이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고수는 사석작전(捨石作戰)에 능하다. ‘버림돌’을 잘 써야 고수다.‘내 살을 내어주고 상대의 뼈를 자른다’는 뜻인 육참골단(肉斬骨斷)은 일본 사무라이들의 세계에서 하수가 고수를 상대할 때 쓰는 비법으로 통한다. 변화무쌍한 정치권의 쟁패에도 이 작전은 왕왕 구사된다.연초부터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병역논란이 도무지 종식될 기미가 없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적극적인 반격을 개시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2건의 ‘추 장관 탄핵’ 국민청원에 각각 24만여 명, 21만여 명의 동의를 얻으며 답변 요건을 충족하자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국방부의 급변이 특히 눈에 띈다. 국방부는 관련 규정들을 구구히 들며 전화로 휴가 연장한 추 장관 아들의 휴가 연장 절차에 하자가 없다는 해석을 내놨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휴가연장 명령서나 청탁 전화 등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나마 국방부의 해명이 민주당과의 협의 절차를 거쳐서 작성되고 공유됐다는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추 장관 아들 측의 법적 대응도 주목거리다. 추 장관 아들 서모 씨 군부대 배치 청탁 의혹을 보도한 SBS와 소속 기자를 형사 고발한 데 대해서는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3단체가 ‘언론 길들이기’라는 비판과 함께 고발 철회를 촉구했다.정부와 민주당의 반격에도 불구하고 추 장관 아들의 ‘황제 휴가’ 논란에 대한 국민 정서는 험악하다. ‘병역’이라는 민심의 역린을 건드린 일이어서 갈수록 고약해질 공산이 크다. 정치인들이 정치적 해법은 도외시한 채 스스로 판검사 밑으로 기어드는 현상은 우리 정치의 천박성을 상징한다.드디어, 정권이 추미애 장관을 ‘사석(捨石)’으로 놓고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조국 사태 때도 그랬지만, 팬덤이 지배하는 돌연변이 정치풍토 속에서 온 나라가 난리를 쳐도 거시적 계산법으로는 ‘총알받이’를 장기간 두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전략일 수 있다. 야권은 지금 ‘전술’에서는 이기고 ‘전략’에서는 지는 게임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헐벗은 경제도, 조국도, 윤미향도, 윤석열의 위기도 잊히고 있다. 윤영찬도 곧 잊혀질지 모른다.무능한 정권에 대해 ‘퇴진’을 요구하는 제2의 촛불 민심은 ‘코로나19’가 대신 막아주고 있으니 문재인 정권은 참 복도 많다. 적지 않은 국민이 선동 장난질에 부화뇌동하고 선심 정책에 휘둘리는 수준에 머무는 현실은 참으로 기막힌 노릇이다. ‘깨어있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했던가. 독재 타도를 위해 평생을 뜨겁게 살다 간 고(故) 함석헌 선생의 말이 다시 새록새록 떠오른다.

2020-09-13

개천절 집회·추석, 부디 지혜롭게 넘기자

보름 앞으로 다가온 한가위 명절 귀성풍속과 일부 보수단체의 개천절 집회 문제를 놓고 뒤숭숭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이라는 대명제 앞에 이동과 집회가 유보돼야 한다는 명분은 역연하다. 국무총리와 여당 대표가 잇달아 나서서 온라인 성묘와 이동자제를 권고했다. 야당 지도부는 보수단체의 개천절 집회 자중을 호소하고 나섰다. 국가적 방역위기를 지혜롭게 넘겨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정세균 국무총리는 신종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면서 추석 연휴 기간 이동자제를 권고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도 국민에게 추석 명절에 이동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오는 개천절에 또다시 대규모 거리집회가 열린다고 하는데, 부디 여러분의 집회를 미루고 이웃 국민과 함께해주길 두 손 모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국민의힘을 향해 “개천절 집회에 참여하는 이들은 출당 조치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안 대표는 “이런 상황에서 개최되는 대규모 도심 집회는, 중도층 국민들을 불안하게 해서 등 돌리게 하고,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권에게 좋은 핑곗거리만 주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8·15 광화문 집회는 성공한 시위가 아니었다. 코로나19라는 재앙의 특수성을 외면한 집회강행 결과, 온 사방천지로부터 맹비난만 샀다. 현재 상황에서 오프라인 군중집회는 효과적인 의사표출 수단으로서는 하지하책(下之下策)에 불과하다. 아무리 소리 높여 ‘정권 퇴진’을 외쳐 봤자, 그 소리가 국민 귀에 들어가 민심이 반응하기를 기대하기는커녕 공포의 바이러스 전염병이 훨씬 더 빨리 가까이 다가와 생명을 위협할 따름이다.시골 고향 집에서 자식들 기다리는 재미로 살고 계신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올해는 참아야만 한다. 이제 민중의 의사표시도 ‘온라인’ 등 비접촉 수단을 개발하여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살아내야만 할 코로나 시대에 적합한 슬기로운 선택이 절실히 필요하다. 명절풍속도 귀하고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우선 건강하게 살아남고 봐야 할 것 아닌가.

2020-09-13

김치의 힘

김치는 우리나라 전통 발효식품이다. 지역과 가정마다 담그는 방법이 다양해 우리나라에는 200종이 넘는 김치가 있다.지역별로 보면 추운 북쪽지방은 고춧가루가 적게 들어간 백김치, 보쌈김치, 동치미 등이 유명하며 영남지방은 짠 김치, 호남지방은 매운 김치가 특색이다.김치에 들어가는 고추에는 비타민이 매우 풍부하고 마늘과 파, 생강 그리고 젓갈류 등이 가미되면서 김치는 영양학적으로도 우수한 건강식품이다. 미국의 건강잡지인 ‘헬스’는 세계 5대 식품으로 한국의 김치를 선정했다. 웰빙식품인 김치에는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해 소화를 원활히 하고 암을 예방하는데 유익하다는 것이 선정 이유였다.한방에서도 김치를 음양이 조화된 완전식품으로 설명한다. 성질이 서늘한 배추와 무가 열이 많은 고춧가루, 마늘, 파, 생강 등과 음양의 조화를 잘 맞춘 식품이라 건강에도 좋다고 했다.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동국세시기’가 김장 담그기와 장 담그기를 우리 민족의 중요 연례행사로 소개할 정도로 김치는 우리민족과는 뗄 수 없는 관계다.최근 프랑스의 한 연구진이 코로나19 사망자수와 국가별 식습관 차이간 상관관계를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진은 확진자 대비 사망자수가 적은 국가로 한국과 독일을 주목했다.두 나라는 발효된 배추와 양배추를 주된 부식으로 먹고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한국의 김치와 독일의 ‘사우어크라우트’다. ‘사우어크라우트’는 양배추를 시큼하게 절여 발효시킨 음식이다.코로나 사태 속에 국내 김치의 수출이 전년보다 무려 44%나 증가했다. 국내 김치업계는 김치가 코로나 면역력 증강에 좋다는 소문이 알려지면서 김치의 해외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놀라운 김치의 힘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9-13

“뭉쳐라”, “흩어져라”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뭉쳐야 찬다’란 tv예능프로그램이 있다. 한 때 대한민국 내노라하는 스포츠 스타들이 축구종목으로 한 팀을 만들었다. 2002년 월드컵축구 반지의 제왕 안정환 선수가 감독으로 팀을 이끈다. ‘전설’, ‘신’, ‘천하’, ‘제왕’, ‘대통령’ 같은 으리으리한 수식어를 장착한 왕년의 최고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다. 동호회 팀들과 겨뤄 처참하게 연패를 당했다. 어느새 목표치 1승을 넘어 제법 하는 축구팀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재미와 의미를 더해간다. 자신들과 무관했던 새로운 종목으로 one팀을 만들어 좌충우돌하는 설정이 쏠쏠한 재미다. 선수와 감독시절 버럭 소리의 대명사였던 농구대통령 허재의 허접한 말과 유행어들이 웃음으로 반전을 이루며 감칠 맛나게 한다. 웃음 뒤에 밀려오는 잔잔한 의미들을 곱씹어 보게 된다. 지나가는 세월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경험하지 않은 종목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정상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사람들이 패배를 받아들인다. 내려놓음의 미학을 음미하게 된다. 자기주장이 강하거나 능력을 과신하는 구성원들이 많은 조직은 갈팡질팡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함께하며 양보, 희생, 배려의 미덕을 보인다.전혀 다른 종목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모여 one팀을 이뤘지만 개성을 크게 내세우지 않는다. 팀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뭉쳐서 살아가는 지혜다. 감독의 목표달성을 위한 열정, 적절한 전술, 연공서열을 넘는 파격적인 출전 선수 선발, 선수들의 건강을 챙기는 자상함에 조직의 리더로서 역량도 보게 된다. ‘뭉쳐서 찬다’ 축구팀은 뭉쳐서 잘되고 있는 조직 같다.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뭉쳐서 잘했다. 몽골의 침략도, 임진왜란도, 6·25 남침도 모두 뭉쳐서 막아냈다. 일제강점은 ‘조선인은 세 명만 모이면 싸운다.’는 허언으로 뭉쳐서 저항을 할까 두려워했다. 코로나 사태로 뭉치는 일이 금기시 되고 있다. 뭉치면 죽는다는 말과 동의어로 ‘흩여져야 산다’는 메카폰 소리가 도처에서 울린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크린은 “join or die”(뭉치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말로 영국 식민에 저항의 메시지를 던졌었다.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호소했다. 건국 후 좌우 이념의 극한 대립에 통합과 단결을 외쳤다.작금의 대통령은 ‘흩어져야 산다’고 한다. 이념과 정체성이 대비되는 대통령들의 외침에서 공교롭게도 정치적 메타포를 보는 것 같다. 뭉침은 저항의 최고 공격 무기다. 뭉침은 억압의 공고한 방패다. 부동산 정책, 장관아들 군복무 스캔들 등 난제들로 웅성거림이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뭉쳐서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광장은 나쁜 바이러스로 이미 폐쇄되었다. 한가위 달빛을 그리며 달리고 싶던 철마는 주춤거리고 있다. 간만에 큰 제사상 받아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듣고 싶던 조상님도 올 추석은 혼자 계셔야 할 처지다.암은 혈류와 신진대사의 막힘이다. 웅성거림이 막혀 밀폐된 중얼거림은 대중의 암이 될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방패삼아 이곳저곳 웅성거림을 막으려는 의도가 아닐까? 곱지 않은 시선이 나돈다. 뭉쳐서 살아났었던 민족이다!

2020-09-13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김현욱시인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이 길어지면서 반 아이들과 일주일에 한번밖에 못 만나고 있다. 저번에는 태풍 때문에 하루 등교하는 날조차도 온라인수업으로 전환했다.아이들 만나서 할 일이 태산이었는데, 망연자실이다. 최초로 학급 선거를 온라인으로 치러야 할 판이다. 글기지개 2권 넘어가는 아이들도 있어 진심으로 격려하고 새 공책을 챙겨줘야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학기 초 꿈꿨던 많은 것들. 이를테면, 시 암송, 시 쓰기, 글기지개, 학급카페, 놀이 활동, 가정독서토론 등등이 코로나19로 물거품이 되는 꼴을 보자니 코로나 블루가 아니더라도 가슴에서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가장 걱정스러운 모습은 교실에 등교한 아이들 중 몇몇이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존다는 것이다. 물어보면, 십중팔구, 새벽까지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동영상을 봤다고 한다. 생활리듬이 완전히 깨진 것이다. 뭐든지 귀찮아요, 귀찮아요, 귀찮아 타령을 하는 아이도 늘었다. 학부모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또한 학부모이므로 고충을 모를 리 없다. 눈치를 살살 보면서 벌써부터 요령을 피우는 딸아이를 보자니, 이를 어쩌나, 싶다.누굴 탓하랴. 원격수업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담임과 학부모가 좀 더 관심과 인내를 가지고 도와주는 수밖에. 코로나19 치료제 희소식이 들리니 아무쪼록 내년에는 마스크 없는 세상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어울리며 수업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오은영 교수의 ‘내 아이가 힘겨운 부모들에게’는 사춘기 아이들의 심리와 부모들의 고민을 담은 책이다.5학년 담임으로서 예사롭지 않게 읽혔다. 특히, 자녀와의 관계가 삐걱거리는 시점을 ‘공부’로 잡은 것은 몸소 체험한 일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보통 공부를 시작하는 시점부터 말을 안 들어요. 공부를 놀이처럼 즐겁게 하는 아이는 없거든요. (중략) 이렇게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부터 아이와 부모는 사소한 일에 티격태격하게 돼요. 관계가 삐걱대기 시작하는 거죠.”딸아이의 공부, 특히 수학과 영어를 봐주기 시작하면서 나는 딸에게 화를 많이 냈다. ‘내가 왜 이러지’란 생각을 자주 하면서. 그전에는 늘 “우리 은유 참 열심히 했네.”, “우리 은유 자랑스럽다” 이런 말들을 자주 했는데 공부를 시작하면서, 아이가 잘 못 하는 것에만 도끼눈을 뜨고 있는 것이다.‘나는 내 아이에게 일체의 요구와/그 어떤 교육도 하지 않기로 했다/미래에서 온 내 아이 안에는 이미/그 모든 씨앗들이 심어져 있을 것이기에//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동무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 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박노해 시인의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라는 시를 알아도 현실은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라는 시구를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본다. 경험상, ‘공부는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란 말도 함께.

2020-09-13

내 고장 9월은 사과가 익어가는 시절

윤경희청송군수“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렇게 시작하는 이 글은 우리 청송 근교에 위치한 안동의 저항 시인, 이육사의 ‘청포도’라는 시의 첫 구절이다. 그런데 시가 창작됐던 일제강점기 당시 안동에는 사실 청포도가 재배되지 않았다. 조국 광복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로 뭉친 모습을 알알이 영그는 청포도 송이에 비유했을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내 고장 청송의 7월은 사과가 영그는 시절”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추석을 앞둔 지금 9월은 명품 청송사과가 탐스러운 빛을 발할 시간이라고.“청송사과”는 따로 수식어가 필요 없는 지역 최고의 특산품이다. 필자는, 청송사과의 명성이 날로달로 높아지는 이유가 결코 변하지 않는 명품 맛에 있다고 본다. 청송은 일교차가 매우 크고 해양성과 내륙성 기후가 교차하는 등 사과가 자라기 위한 최적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서 그 맛이 일품이다. 또 농가에 대한 지속적인 영농교육 및 선진재배기술의 도입으로 타 지역보다 상품성이 우수하며, 당도가 높고 과즙이 풍부해 신선도가 오래가므로 맛 또한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이다.이를 증명하듯 청송사과는 2020년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사과브랜드 부문에서 8년 연속 대상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특히 차별화 측면에서 월등한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됐는데, 이는 소비자 반응이 우수한 시나노골드 품종을 ‘황금진’ 브랜드로 개발해 황금사과 이미지를 선점하고 붉은색으로만 치우친 사과 시장에 시각을 자극하는 ‘컬러 마케팅’의 남다른 전략 덕분에 성공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황금사과는 사과 소비가 부진한 젊은 층에 인기가 높은 품종이어서 미래 고객인 젊은 세대를 겨냥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 군이 만들어가는 황금사과의 미래가 전설처럼 황금빛으로 물들 것이라 예상하는 건 당연지사.“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천혜의 자연이 만들어 준 생육 환경 위에 다채로운 정책들이 얹어졌다. 그 시너지 효과는 명품 청송사과의 품질, 유통 및 홍보 등 다방면에서 상호 상승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앞서 언급한 청송황금사과 브랜드 ‘황금진’을 필두로 해 청송황금사과 한국시리즈 나들이, 전국 146개 이마트 납품, 사과유통공사 시스템 재정비, 농산물 택배비 지원 사업, 청송사과 품질보증제 등이 그것이다.프로야구 한국시리즈 개막 시즌에 맞춰 서울시민과 관람객들에게 3만 개의 청송사과를 무료로 나눠준 아이디어는 독특하고 유쾌한 홍보 전략이었다. 또 필자가 임기 초부터 자처하며 강조한 ‘세일즈 군수가’ 되기 위해 전국 146개 이마트 납품은 물론, 국내 최대 농산물 도소매 매장인 서울 하나로클럽 양재점에서 홍보 판촉행사를 추진했다. 마찬가지로 매년 행안부의 지방공기업 평가에서 최하위를 면치 못하던 부실 공기업인 청송사과유통공사를 유통센터로 전환해 전국적 생산과잉 시대를 대비한 산지유통 시스템을 재정비했다.이렇듯 청송사과의 내일을 위해 이 시절 각 농가마다 주렁주렁 열린 사과들처럼 다양하고 유익한 정책들을 실현하려고 부단히 노력했고, 필자는 황금빛 미래라는 열매를 ‘주저리주저리’ 결실 맺게 하기 위해 그 노력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다.“내가 바라는 손님은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매년 10월 말경 성황리에 개최했던 청송사과축제를, 올해는 안타깝게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전 세계적으로 위협을 가져온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다. 군민들의 소중한 피땀으로 알알이 익힌 사과를 전 국민과 함께 축제로 즐기며 맛볼 수 없어서 심히 유감스럽지만, 군민의 안전과 감염 예방이 무엇보다 우선이므로 취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시인 이육사가 바라는 손님은 푸른 베옷을 입고 찾아오는 조국 광복이었다. 그렇다면 필자가 민족 대명절을 앞둔 지금 바라 마지않는 손님은 감염병으로부터 우리 군민을 안전히 지켜내는 것과, 황금사과로 인해 빛나는 청송의 미래뿐이다. 한 시인이 하얀 모시 수건을 앞에 두고 조국 광복을 기다렸던 것처럼 필자 또한 그런 날을 염원해 본다.

2020-09-13

돌에 새기는 마음

금오산을 오른다. 제일 먼저 메타세쿼이아가 푸른 숲에 잘 오셨다고 반갑게 길을 안내한다. 양옆으로 늘어서서 그늘을 만들어주니 눈부터 시원해지고 ‘좋다~’라는 소리가 입에서 반사적으로 흐른다. 메타세쿼이아에게 배턴을 이어받은 소나무 산책로,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켰는지 둘레가 어른 한아름으로도 모자라다. 산새 소리와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의 협주곡이 더위에 지친 나그네를 위로한다. 곳곳에 놓인 나무마루에 일찌감치 눌러앉은 가족들, 얕은 물에 뛰노는 아이들 소리가 ASMR이 되어 숲에 마음을 내려놓게 한다. 금오산이 주는 선물이다.산 좋고 물 좋은 자리에는 늘 정자가 있다. 채미정도 그런 곳에 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너머에 흥기문이 보인다. 오래전 이곳에 주인이었던 길재 선생이 거닐었을 그 길에 내 발을 얹어본다. 그가 자란 고향이자 나이 들어 고려의 기울어짐을 바로 세울 힘이 없음을 알고, 어머니와 가족을 거느리고 찾아왔을 때 변함없이 우뚝 솟아 긴 산자락을 펼치고 선생을 안아 준 것은 금오산이었다.금오산은 본래 대본산(大本山)이란 이름이 있었는데 세월 따라 여러 개의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중국 허난성 숭산과 생김새가 비슷한데다 남쪽에 있다 해서 고려 때는 남숭산(南崇山)이라고 불렸는데 북한 황해도 해주에 북숭산을 둬 남북으로 대칭되는 산의 이름이었다. 지금의 이름인 금오산(金烏山)이란 명칭은 저녁노을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에서 비롯됐다. 한편 중국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 먹다 죽은 백이와 숙제처럼 이 고장 출신의 고려 충신 야은(冶隱) 길재의 충절을 기려 옛사람들은 금오산을 일컬어 수양산이라 부르기도 했다.고려 말기의 충신이며 학자인 야은(冶隱) 길재(吉再) 선생은 조선이 개국하자 태상박사(太常博士)의 관직을 받았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은거 생활을 하면서 절의를 지켰다. 1419년에 별세하자 나라에서 충절(忠節)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768년(영조 44)에 채미정을 건립하였다. 뒤편에는 숙종의 어필 오언시(五言詩)가 보존되어 있는 경모각이, 옆에는 구인재가 자리했다. 길 건너에는 기념관이 있다.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뜻하지 않은 곳에 갈 때도 있다. GOP에 근무하던 군인 아들 면회하러 가는 길에 민통선 내에 있어서 평생 가 볼까 말까 한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을 우연히 들렀다. 그곳에서 신라왕이 왜 경기도에 묻혔는지 그때야 새삼 깨닫게 됐다. 둘째 아이가 강원도 고성에 배치되었을 때에는 근처의 송지호 호수와 청간정에 올라 보기도 했다. 아이들이 거기에 있지 않으면 평생 가보지 않고 살았을 곳이다. 채미정도 큰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구미에 있어서 둘러본 곳이다. 고려 삼은 중에 한 분이라서 더 가봐야지 했다. 삼은 중에 포은 정몽주는 경상북도 영천군 임고면에 서원이 있고, 목은 이색은 경상북도 영해읍 괴시리에 기념관이 있다. 두 곳은 예전에 가 보았기에 채미정을 둘러보았으니 이제 삼은을 다 만나본 것이다.김순희수필가세 사람이 삼은으로 불리기 시작한 시기와 이유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조선 중후기의 사림을 형성하는 성리학자들이 다름 아닌 야은 길재의 후학들이기 때문에, 이색-정몽주-길재로 이어지는 동방 성리학의 거성들을 숭상하기 위해 여말삼은이라 칭했을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인생 말년을 금오산에 은거하며 스스로를 ‘금오산인’이라 불렀던 야은 길재의 대표 시이다. 이 시조는 채미정 입구 바윗돌에도 새겨져 있다. 고려의 서울이던 개성을 그리며 쓴 ‘회고가’이다. 돌에 새겨놓은 그의 마음이 절절하다. 내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려 길재 선생의 절절한 마음까지는 이해 못 하면서도 달달 외워서인지 수십 년 후의 내 입에서도 절로 흘러나온다. 오늘 그의 마음에 오래 간직한 충심을 다시 들여다보며 시를 읊조려 본다.

2020-09-13

추미애 장관, ‘논란 본질’ 살펴 결단할 시간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복무와 관련된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추 장관은 아들의 휴가연장 청탁에 개입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추 장관이 직접 휴가를 연장해달라고 민원을 제기했다는 부대 기록이 공개되면서 곤경에 처하게 됐다. 추 장관 아들 군 복무 논란의 본질은 ‘불공정’이다. 청년들의 분노에 이미 불이 질러진 상태다. 이쯤 됐으면 추 장관이 본질을 제대로 살펴 결자해지에 나서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이 입수해 발표한 국방부 인사복지실의 ‘법무부 장관 아들 휴가 관련’ 문건에는 “(병가를)연장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추 장관 부부가) 문의를 했다”고 적시돼 있다. 군 관계자는 “부모님이라 함은 어머니인 추 장관을 말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정치권 공방은 격화일로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0일 “추 장관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고위공직자로서의 도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침묵을 깨고 “무차별적 폭로와 검증되지 않은 의혹들로 사회적 논란이 커지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발전도 확전 양상이다. 추 장관 아들의 변호인 현근택 변호사는 언론사와 제보자를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시민단체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도 추 장관을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추 장관 아들과 관련해 평창동계올림픽 통역병으로 선발해달라는 청탁이 있었다는 증언까지 등장하고, 딸의 비자 조기발급 청탁 의혹도 불거져 있다.한국 사회에서 특히 젊은이들에게 병역·입시·취업과 관련한 공정성 문제는 민심의 역린이다. 이 문제를 건드린 이상 합법이냐 불법이냐 따위의 쩨쩨한 논쟁은 의미가 없다. 추 장관은 아들 군 복무 논란이 나올 적마다 신경질적으로 대응하는 등 사태를 키워왔다. 진실을 고백하든지, 아니면 신뢰를 잃은 수사관들을 다 빼고 특임검사든 뭐든 객관성을 완벽히 담보할 수 있는 수사팀을 꾸려서 독립적으로 수사하도록 해 진위를 가리도록 해야 한다. 미적미적 뭉개고 넘어갈 수 있는 길은 모두 차단된 상황이다.

2020-09-10

축약어 시대

영어 브런치(Brunch)는 아침식사와 점심식사 그 사이에 먹는 식사를 말한다. 미국에서는 브런치를 먹는 가정이 많아 자연스레 생긴 단어라 한다. 우리나라도 언제부턴가 이를 아점이란 말로 부르기 시작했다. 국립국어원에서 어울참으로 사용할 것을 권했지만 아점으로 그냥 굳어져 가고 있다.긴 단어나 말을 줄여 부르는 현상이 어느 듯 우리의 일상에서 신조어라는 이름을 달고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소확행이나 버스카드 충전을 가리키는 버카충, 생일파티의 생파 등은 그래도 점잖은 표현이다. 낄낄빠빠(낄때 끼고 빠질때 빠져)나 안물안궁(안물어 봤고 안궁금함), 걸조(걸어다니는 조각상) 등은 설명을 듣지 않으면 내용 파악이 쉽지 않은 축약어다.법률분야에서도 단통법(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과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등과 같이 줄여 부르는 일들이 다반사로 행해지고 있다. 축약 언어의 사용은 세태 반영과 더불어 언어 관습의 변화란 관점에서 유의 있게 볼만한 일이다. 일부 전문가는 한국인의 축약어 사용은 민족의 조급성을 반영한 것이란 설명도 하고 있으나 더 자세한 것은 연구가 있어야 할 일이다.긴말을 줄여 부르는 것이 꼭 언어의 왜곡으로만 볼 수 없다.영어에도 축약어가 많이 있다. see you를 CU, First를 1st 등으로 부르는 것 등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축약된 언어가 무질서하게 난무한다면 언어 정화 차원에서 재고의 여지는 있다.최근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되면서 젊은층 사이에 영끌이란 말이 유행이다. “영혼까지 끌어 모은다”는 말의 줄임이나 작고 사소한 것까지 탈탈 털어 모은다는 뜻이다. 기성세대에 실망한 젊은층이 지어낸 축약어라서 씁쓸한 뒷맛이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9-10

통신비 지원보다 전국민 독감 무료접종이 낫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과 독감이 동시 유행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독감백신 무료예방접종 범위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코로나19에 대응키 위해 올해의 인플루엔자 예방 무료접종 대상자를 예년보다 크게 늘렸다. 고령자에게만 무료 지원하던 것을 생후 6개월-만18세 어린이와 청소년, 임산부, 만62세 이상 고령층까지도 무료접종 대상에 포함했다. 이로써 무료접종 대상자는 전 국민의 37%인 1천900여만 명이 된다. 그러나 야당은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추경을 하더라도 전 국민을 독감백신 무료접종 대상자로 하자는 의견을 제기했다. 전국의 일부 지자체는 자체적인 예산 확보로 전주민 독감백신 무료접종을 실시하는 곳도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를 혹독하게 경험한 대구시의 권영진 시장은 최근 국무총리 주재 대책회의에서 독감백신 무료예방접종을 전국민으로 확대하자는 의견을 제안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도 “주호영 원내대표가 전국민 독감 무료예방접종을 정부에 제안한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했다. 제주도는 도지사 특별명령으로 만19세부터 만61세까지 도민을 대상으로 독감무료 예방접종을 실시할 예정이라 한다. 이처럼 독감백신 무료접종 범위를 두고 논란이 이는 것은 독감과 코로나19가 동시에 유행하게 되면 의료체계에 대혼란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감염증의 증상이 고열에다 두통, 근육통 등 증상이 비슷해 자칫하면 외국처럼 환자를 의료기관에 보내지 못하고 집에서 자가 치료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질병관리청은 “국민 모두가 예방접종을 할 필요는 없다”고 밝히고 “접종 우선순위에 있는 사람부터 먼저 받고 무료접종 대상자가 아니더라도 만성질환자는 접종을 받길 권하나”고 했다.코로나19는 언제 어떤 방법으로 유행할지 알 수가 없다. 또 한번 유행하면 이를 제압하는 일도 쉽지 않다. 사전예방이 그만큼 중요하다. 민주당과 정부는 최근 민생 위기대책으로 13세 이상 전국민에게 1인당 2만원의 통신료를 지급키로 가닥을 잡았다 한다. 받는 사람으로서 크게 체감하지 못할 적은 액수다. 그러나 나라 전체로 보면 1조원에 가까운 돈이 사용된다. 실효성보다 민심성에 가까운 예산지출보다 코로나 예방에 효과가 기대되는 전국민 백신 무료접종에 사용하는 것이 낫다.

2020-09-10

여당의 실책이 야당의 성공?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더불어민주당의 잇따른 헛발질이 여권에 대한 여론의 반감으로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고 야당인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율이 급격히 오르고 있지도 않다. 이런 측면에서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비록 지금은 정부여당을 구석에 몰아넣고 공세를 퍼붓는 양상이지만 절대 자만할 일이 아니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적지않다.우선 여당 대표 출신의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특혜성 휴가 논란이 통역병 지원과정에서의 청탁논란 등 군복무전반에 있어서의 불공정·특혜논란으로 번지고 있어 여권에 상당한 타격이 되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말한 것처럼 “병역문제는 국민의 역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병역 불공정문제에 대해 분노를 느낄 젊은 세대는 서씨의 휴가 특혜논란에 상대적인 박탈감과 함께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가뜩이나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에서 공정성 문제가 이슈가 된 마당에 추 장관 아들문제가 또 다시 한번 공정성에 의문을 갖게하는 충격을 더한 것이다. 또 여당 의원들의 잇따른 실수도 공교롭다. 최근 윤영찬 민주당 의원은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연설을 하는 과정에서 포털 메인뉴스 화면의 뉴스편집에 문제를 제기하며 카카오 관계자를 국회로 부르라고 지시하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는 장면이 보도됐고, 야당은“포털 통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후 윤 의원은 ‘카카오 문자’논란에 대해 “질책을 달게 받겠다”고 사과했지만 여당의 오만을 보여줘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대목이었다.엎친데 덮친 격으로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출신으로, 4선 중진인 우상호 의원이 “카투사 자체가 편한 군대”란 취지로 말했다가 호된 비판에 직면했다. 우 의원은 추 장관 아들의 특혜성 휴가 의혹 방어에 나서서“카투사는 육군처럼 훈련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편한 보직이라 어디에 있든 다 똑같다”며“카투사에서 휴가를 갔냐 안갔냐, 보직을 이동하느냐 안하느냐는 아무 의미가 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 발언이 알려진 직후 카투사 출신 네티즌들이 활동하는 한 커뮤니티에서 우 의원의 사과를 촉구하는 성명이 발표되는 등 일파만파였다. 결국 우 의원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현역 장병들과 예비역 장병의 노고에 늘 감사한 마음”이라며 공개사과했다. 이 같은 여당 의원들의 실책 때문일까. 리얼미터의 9월 2주차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32.8%로 민주당(33.7%)을 오차범위내로 추격했고, 20대에선 8.9%p 오른 36.4%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그러나 이번 국민의힘 지지율 상승은 정부여당 실책에 따른 반사이익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오히려 국민의힘이 최근 당명 및 정강정책을 개정하고, 로고와 상징색을 바꾸는 등 변신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데 대한 평가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새 정강정책에 더불어민주당이 도입을 검토하던 기본소득을 정강정책에 포함하는 등 중도보수층을 아우르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데 대한 국민의 평가가 향후 대권 승부를 가르는 관건이 될 수 있다.

2020-09-10

분열의 정치

김병래시조시인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한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백인 정부의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느라 대학시절부터 줄곧 감옥을 들락거리다가 1963년엔 종신형을 받아 1990년 석방될 때까지 27년 넘게 감방과 채석장에서 복역을 했다. 석방된 후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의장으로 선출되어 백인정부와 협상, 350여년에 걸친 인종분규를 종식시킨 공로로 199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1994년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다. 취임식에 옛 교도관을 초대했는가 하면 자신을 투옥시킨 사람들을 내각에 등용해서 갈등과 상처의 치유에 힘썼다.그를 추종하는 국민들로부터 종신대통령직 제안을 받았지만, 아프리카의 민주주의는 선거에 의해 지켜져야 한다며 거부하고 1999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이었던 클린턴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밝혔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 정책)의 지지자와 피해자가 함께 일하는 광경은 보기 좋았다. 그들은 과거를 부정하지도, 현재의 의견 불일치를 감추지도 않았다. 그러나 공동의 미래를 구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것 같았다. 그것은 만델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화해의 정신 덕이었다.” 그리고 그는 만델라에 대해 ‘오랜 수감생활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우정, 친절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고 썼다.그와는 정반대로 문재인 정권은 오로지 분열의 정치에만 목을 매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 취임사에서는 분명 통합과 공존의 세상을 열어가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언명했지만, 실상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분열과 적개심을 조장하는 일에 앞장을 선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지난 정권과 상대 당을 모조리 적으로 몰았고, 반일감정을 부추겨 우파들에 토착왜구란 프레임을 씌운 것,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편을 갈라 증오와 보복의 정치를 한 것, 최근에는 의사와 간호사들까지 이간질을 하는 비열한 행태를 보였다,정치적 책략 중 가장 비겁하고 치사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것이 바로 분열의 정치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좌우의 대립이 상존해 왔으므로 적당한 구실을 던져주고 프레임을 씌우면 알아서들 피터지게 싸운다. ‘대가리가 깨어져도’밀어붙이는 절대 지지층을 손쉽게 확보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그 다음엔 부화뇌동하는 중도층을 포퓰리즘으로 끌어들이면 정권유지가 보장되는 것이다. 그런 전략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것이 바로 지난 총선이었다. 재난지원금이란 구실로 돈을 풀어먹인 것이 주효했다.정권이 획책한 대로 대한민국은 지금 분열과 갈등의 양상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 팽배한 불신과 적개심은 가뜩이나 어려운 국가의 전망을 더욱 암담하게 한다. 관용과 배려의 정신은 실종되고 나라가 망하든 말든 끝장을 보겠다는 광기와 증오가 난무한다. 넬슨 만델라와 같은 현인(賢人)이 참으로 아쉬운 시국이다. 최근 들어 문제인 정권을 지지했던 일부 지식인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다. 올바른 식견과 분별력을 가진 사람들이 바른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사필귀정의 결과를 기대할 수가 있다.

2020-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