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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꿈을 키우는 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방탄소년단(BTS)의 맹활약이 세계적인 각광을 받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방탄소년단을 ‘올해의 연예인’으로 선정했다. BTS는 팝의 본 고장 미국에서 지난 9월 ‘다이너마이트’로 빌보드 싱글차트(핫100) 1위에 오르더니, 지난달 30일에는 한국어 노래인 ‘라이프 고즈 온’으로도 1위에 오르는 진기록을 세웠다. 또한 빌보드 싱글·앨범·아티스트 차트의 세 부문에서 그룹으로 동시에 1위를 한 가수는 BTS가 유일하다 하니, 한국 대중가수로는 단연 최초이거니와 비영어권 곡으로 데뷔하자 마자 1위에 오른 것은 빌보드 차트 62년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라 한다.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노래’를 보여주는 이와 같은 지표만 봐도 BTS의 독보적인 음악과 눈부신 활약상이 실감된다. 더욱이 암울의 터널 같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두가 힘겨워하는 때, 끊임없이 대중들과 소통하고 연대하며 음악으로 따스한 위로와 희망을 전했다는 점이 돋보인다.이를테면 ‘다이너마이트’가 밝고 경쾌한 톤의 ‘힐링송’이라면, ‘라이프 고즈 온’은 서정적인 분위기로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라는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단순한 K팝 선두주자가 아니라, 세상이 멈춘 듯한 시기에 사람과의 연결, 다정함, 안심, 긍정 에너지로 세계적인 BTS팬덤을 구축했다는 사실은 경이롭기만 하다.방탄소년단이 어떻게 세계인의 감성을 자극했을까? 독창적인 음악성과 퍼포먼스, 팬들과의 교감 등 다양한 요인이 있었겠지만, 필자의 관점에서는 포용과 희망, 융화와 시스템의 진화가 압도적인 성공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엔터테이너와 팬들 사이의 진정한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음악의 소비방식에의 새로운 변화, 현실을 반영한 진정 어린 메시지를 SNS 메커니즘으로 유효적절히 활용하며 가수멤버와 스태프가 혼연일치로 만들어낸 꿈과 상상력의 다이나믹한 표출로 여겨진다.이 모든 것들은 꿈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현재진행형으로 꿈의 현실화는 계속되고 있다. 과연 꿈은 무엇일까? 꿈은 인생의 길이며 목표이며 그 빛깔이다. 또한 꿈은 강력한 에너지이다. 때로는 빛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길을 밝혀 주기도 한다.‘평범한 노력은 노력이 아니다/남 모르게 흘리는 땀이 비범을 낳으리라/처절한 몸부림만이 경이를 보이리라//막연한 꿈은 부질없는 바램이다/활시위의 긴장과/눈물 같은 땀방울로/무진장/뒤척거리는 고독/기적의 꽃이 피리라’ -拙시조 ‘꿈-기적의 꽃’중현재의 BTS가 세계적으로 우뚝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연습, 좌절과 인내가 있었을까? BTS의 RM 김남준이 UN연설에서도 밝혔듯이, 진정한 사랑은 자신에서부터 시작되고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에 대한 얘기로 자기만의 빛나는 별무리의 꿈을 이루는 것을 강조했었다. 많이 휘청거리고 넘어지더라도 앞으로 지침없이 나아가려는 노력이야말로 꿈을 향한 줄기찬 도움닫기가 아닐 듯싶다.꿈은 끼를 먹고 자란다. 끼가 있는 당찬 포부와 눈물겨운 노력으로 기적의 꽃은 피어난다. 긍정과 용기, 시도와 모험으로 꾸준히 추구하고 자신감을 가지면 마침내 BTS처럼 꿈은 현실화되는 것이다.

2020-12-15

코로나 대응 급해도 취약층 복지 챙겨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사회복지 안전망이 크게 흔들린다는 소식이다. 특히 연말연시를 맞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가정은 많으나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온정의 손길은 되레 뜸해지고 있어 취약층의 겨울나기가 걱정이다.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세를 보이고 있는 코로나19가 대구경북에까지 여파를 미치면서 이곳 상황도 심상찮다. 추가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선 다중 이용시설에 대한 폐쇄 등 선제적 조치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취약층을 위한 복지시설에 대한 재제로 파생하는 복지 공백에 대해서는 당국의 세심한 배려가 별도로 있어야 한다.10여년간 지역 소외계층에게 따뜻한 밥 한끼를 제공하며 사랑방 역할을 해 왔던 포항노년자원봉사회 연일무료급식소가 문 닫을 처지에 빠졌다고 한다. 하루 이곳을 찾아 식사를 해결했던 150여명의 노인들의 끼니가 당장 걱정이다.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감염을 우려한 자원봉사자가 줄어들고 시중 경기마저 침체해 경제적으로 운영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라 한다.지난 2-3월 대구경북에서는 코로나19가 집중 발생하면서 무료급식소와 노인복지회관 등 각종 복지시설들이 줄줄이 휴관에 들어간 적이 있다. 노인복지시설의 휴관으로 노인들의 활동이 위축되고 특히 홀몸 노인 등은 끼니 해결에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지금과 같은 코로나 대유행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노인복지시설을 비롯한 각종 사회복지시설의 안전망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 연일무료급식소처럼 무료급식소 상당수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코로나 위기에 대응하느라 일손이 부족하더라도 취약층을 위한 배려에 당국과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한 때다.올 한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온 사회가 어려움에 처하면서 어려운 이웃을 돌볼 마음적 여유가 적어진 것은 사실이다. 연말연시를 맞아 불우이웃돕기를 위한 사랑의 온도탑도 이런 점을 감안, 예년보다 모금액을 낮추는 등 코로나 여파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웃을 돕는 따뜻한 마음이야말로 우리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대구경북은 이웃돕기에 남다른 실천력을 보여온 곳이다. 코로나 대처로 미처 살피지 못한 곳이 있다면 당국이 나서 보완하고 시민들은 정성으로 동참하는 행동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2020-12-15

굽혔다 펴기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내 연구실 책상 앞의 의자는 굽혔다 펴지는 의자이다. 굽혔다 펴진다기보다는 뒤로 펼쳐졌다가 바로 세워진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그 의자가 얼마 전부터 소리가 나고 뭔가 불편했는데 나사 하나가 빠져 굴러다니고 있는 것을 오늘에야 보게 되었다. 의자 몸통과 다리를 연결해주는 나사였다. 제 자리를 찾아 단단히 돌려 넣으니 훨씬 편해진 느낌이다. 제대로 굽혀지고 펴진다는 사실이 몸과 맘을 얼마나 편하게 만드는지. 의자 나사 하나로 하여 새삼 삶의 이 간단하면서도 오묘한 이치에 한 발짝 더 다가선다.시인 한우진은 ‘굴신(屈伸) 이후’라는 시에서 “오징어나 쥐포를 구워본 사람은 알지 / 오징어나 쥐포를 구워보면 그것들의 몸땡이가 / 여실히 뜨거운 쪽으로 오그라지듯이…. 가진 자를 향해, 후끈한 쪽으로 / 아, 사람들 등때기 휘는구나! 구부러지는구나”라며 힘 있는 사람들 앞에 몸을 굽히는 인간 군상을 오징어와 쥐포에 비유하였다.굴신(屈伸)은 ‘다리 따위를 굽혔다 폈다 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부정적인 단어가 아니다. 이와 비슷한 말로 ‘몸을 앞으로 굽힘. 겸손하게 처신함’을 뜻하는 굴신(屈身)이 있다. 우리말 발음은 같지만 한자가 다르다. 굴신(屈伸)은 굽었다 펴지는 것이지만 굴신(屈身)은 계속 구부린 채 있는 것이다.‘굽신거리다’라는 우리말도 있다. 이 말이 굴신에서 왔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굽신거리다’는 원래 ‘굽실거리다’의 잘못된 표현이었다. 그런데, ‘굽신거리다’를 하도 많이 사용하다 보니 국립국어원에서는 2014년 표준어 사정 때 ‘굽실거리다’의 복수 표준어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둘다 맞는 말이라는 것이다.김명인 시인은 그의 시‘안정사(安靜寺)’에서 “이 윤회 벗어나지 못할 때 웬 아낙이 / 아까부터 탑신 아래 꼬리 끌리는 촛불 피워놓고 / 수도 없이 오체투지로 엎드린다 / 정향나무 그늘이 따라서 굴신하며 / 법당 안으로 쓰러졌다가 절 마당에 주저앉았다가 한다”라고 하였다. 절하는 여인과 함께 나무 그늘이 불상 앞에 드리워진 모습을 이렇게 그렸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전 세계는 모두 코로나 앞에 굴신 중이다. 되우 몸을 굽히고 몹시도 움츠러들어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이 상황을 굴신(屈身)이 아닌 굴신(屈伸) 중이라 여기고 싶다.1340년대에 유럽 대륙을 휩쓸고 지나간 페스트는 당시 유럽 인구의 1/3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인구 감소는 노동력의 부족을 초래했고, 농노의 지위가 올라가면서 장원제도와 봉건제도는 몰락하게 되었고 이는 르네상스 운동의 경제적 근거로 작용했다는 주장이 있다. 페스트가 르네상스의 동인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럽은 페스트를 극복하고 되살아났다. 그리고 몇 세기 후에는 세계를 휘어잡는 대륙이 되었다.계속 굽은 채로 있으면 그대로 굳어버린다. 계속 편 채로 있어도 마찬가지이다. 굴신(屈伸)은 우리 몸을 부드럽게 만들고 탄력성을 부여해서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만든다. 코로나로 잠시 굽히고 있을 뿐, 우리는 지금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굴신 운동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2020-12-15

절체절명의 시간

14세기 중엽 유럽지방으로 번진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절반 가까운 인명을 앗아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많게는 1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유행성 바이러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의학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당시는 어떤 경로에 의해 병에 감염되는지 알지 못해 오로지 기도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교회로만 사람이 몰렸다 한다. 교회가 되레 집단감염의 매개가 되고 말았으니 흑사병의 유행을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1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인 1918년 시작한 스페인 독감도 최대 5천만명에 달하는 인류의 목숨을 앗아갔다. 우리나라도 같은 해 가을부터 겨울 사이 스페인 독감이 돌기 시작해 당시 조선인 인구의 절반가량이 독감에 걸렸으며 그 중 약 14만명이 생명을 잃었다고 한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전 세계적으로 현재까지 7천만명의 환자를 발병시켰으며 그 중 150만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아 갔다. 불과 1년도 채 안되는 짧은 기간이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류에 끼친 피해는 막강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피해와 고통을 안겨줄지는 알 수가 없다.인류는 오래전부터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벌여왔다. 역병이라 일컬어지는 미지의 병과의 싸움은 현대과학이 발달한 지금도 종착지를 찾지 못하고 있다.국내 코로나 확산 분위기가 심상찮다. 대통령이 절체절명의 시간이라 하면 상황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이스라엘 유발 하라리 교수는 세계적 연대를 통해서만이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했다. 인류를 공격할 미래의 또다른 전염병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은 지구촌 인류의 연대가 유일하다는 그의 말이 실감난다./우정구(논설위원)

2020-12-15

야당·언론의 입 틀어막는 ‘민주주의’는 없다

수적 우위를 앞세운 집권 여당의 폭주가 갈수록 태산이다. ‘공수처법’과 ‘기업규제 3법’에 이어 ‘국정원법’ 등 문제투성이인 법안들을 완력으로 밀어붙였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법조 기자단을 해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야당과 언론의 입을 틀어막는 ‘민주주의’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수십 년 피땀으로 일궈온 이 땅의 민주주의가 삽시간에 위태로워지고 있다.‘필리버스터’란 국회(의회)에서 소수파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의사진행을 지연시키는 무제한 토론이다. 지난해 이 필리버스터에 느닷없이 끼어들어 해외토픽감을 만들었던 집권 여당이 올해는 아예 국회선진화법을 악용해 야당의 입을 틀어막은 채 입법폭주를 하고 있다. 더욱이 야당의 무제한 토론을 막지 않겠다고 약속해놓고, 또다시 ‘코로나’ 핑계를 도깨비방망이처럼 써먹으며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고 있다.민주당이 본회의에 올라온 국정원법 개정안과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강제로 종결했다. 국회 재적 의원 5분의 3(180석) 찬성으로 필리버스터를 종결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을 또 활용한 것이다. 소속 의원들과 범여권을 총동원해 180석을 채웠다. 토론을 보장해야 할 무당적의 박병석 국회의장까지도 찬성투표에 끼어든 일은 참으로 낯부끄러운 기록이다.작년 2월 이른바 ‘대구 경북 봉쇄’ 발언으로 대변인직에서 사퇴했던 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이번에는 필리버스터 도중 추미애 장관에게 ‘법조 기자단 해체’를 권유했다. 국회 출입기자단 운영 시스템과 관련해서도 “국회에서 출입기자 소통관을 왜 만들어서 (운영)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집권 더불어민주당의 거침없는 과속질주는 이 나라 자유 민주주의를 위기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무소불위의 대통령 친위대를 창설하고, 권력층의 비리 부정을 파고드는 검찰총장을 쫓아내고, 국정원을 국가안보 조직이 아닌 초헌법적 민간사찰기구로 개악하는 일을 하면서 야당과 언론에 재갈까지 물리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아무리 바뀐 세상이라도, 이게 어떻게 자칭 ‘민주화 투사’들의 새로운 사명이 될 수 있나.

2020-12-15

거실 공부방

공부방처럼 꾸며진 허명화씨의 거실.거실을 공부방처럼 꾸미기로 했다. 차일피일 미루어둔 일이라 양치 안 한 식후처럼 불편하던 터였다. 거실을 지나다니며 ‘정리를 해야지’하면서 신경이 쓰이는 순간부터 마음도 들쑥날쑥 했더랬다. 며칠 전 집 정리 tv프로그램을 본 것이 결정적이었다. 늘 바쁘다는 남편에게 아이들도 자랐으니 거실을 공부방으로 만들면 완벽한 공간이 될 거라고 바람을 잡았다.한 동안 거실을 중심으로 삼고 지내온 흔적들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우선 버려야 할 것들을 아이들과 타협해야만 했다. 피아노 위에 도토리 키 재기로 앉은 인형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 어릴 적 사촌들에게 받은 거며 벼룩시장을 통해 하나둘 쌓인 것들이다. 이웃에 나눔을 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의 반대에 부딪쳐 후줄근 한 건 버리고 그 수를 줄이기로 했다.다음은 책장이다. 무엇보다 제일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녀석. 떠나보내기 아쉬운 책들과 어린이집과 유치원 때의 추억의 활동 파일들, 학원 수업 자료, 문제집들, 해마다 늘어나는 나와 남편의 책들까지 한 몸이 되어 아우성 치고 있다. 이 공간이 안고 있는 무게를 쏟아내야만 했다. 고심 끝에 방과 거실의 책장 위치를 바꾸기로 했다. 옮기는 건 남편의 몫이다. 키가 높았던 책장이 새로운 장소에서 옆으로 누우니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 어울렸다. 서로의 책들을 묵혀둔 빨랫감을 빨아버리듯 말끔히 정리했다.공부방 꾸미기의 가장 골칫거리는 TV였다. 남편에게 TV시청보다 가족 간의 대화가 더 중요하다고 말해보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견물생심이라고 대거리를 해보지만 tv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남편의 지론이다. 그렇다고 방으로 옮기기도 침대위치까지 바꿔야 하는 탓에 쉽지 않았다. 떡하니 놓여있는 tv와 남편을 째려보며 주말에만 보기로 약속하고 한 발 물러선다.옆집과 마주하고 있는 빈 벽에는 방에 있던 세계지도와 대한민국전도를 내걸었다. 탐험가가 되고 싶어 하는 둘째가 지도를 가까이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역사에도 관심이 생기고 지도를 보며 유럽이랑 아시아가 하나로 이어졌다는 것도 알게 되니 벌써부터 성공인 셈이다. 비어있는 거실 한가운데는 베란다에 잠들어 있던 긴 탁자를 가져와 책상으로 쓰기로 했다. 탁자까지 자리를 잡으니 시작할 때 그렸던 공부방의 모습이 갖춰졌다.마지막은 이 공간을 채울 우리 가족의 모습이다. 공부방으로 정리된 모습에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와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재잘재잘 풀어 놓을 것이고 나와 남편은 녀석들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그러면서 책을 볼 것이리라. 때로는 가족회의와 나의 열람실도 되어 주면서. 책상에 앉은 아이들 사이로 초겨울 햇살이 한 가득이다. 바라보는 내 마음에도 빛이 난다./허명화(포항시 북구 우현동)

2020-12-14

약봉지

지금 나는 내가 스무 살 일 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다. 엄마는 열아홉 살부터 아들 다섯을 드문드문 낳았다. 나는 엄마 나이 서른여덟에 늦둥이 고명딸로 태어났다. 돌아가실 때까지 나는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런 내가 몇 개월 동안 현실의 아픈 손가락의 고통으로 고생 중이다. 저녁이면 붓고 아프고 구부러지지도 않는다. 밤잠을 이룰 수도 없고 통증은 새벽까지 이어진다. 어떤 이는 류머티스라 하고, 어떤 이는 퇴행성관절염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갱년기 증상이라고도 했다.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병원을 찾았다. 원인을 알아야 뭐든 노력해 볼 것 같았다. 한 달째 온갖 검사를 하고 의사는 내 안의 나를 공격하는 놈이 있다며 처방전을 내렸다. 다행히 나는 아직 젊고 그것들은 착한 녀석들이니 두 달 후에 다시 보자고 했다. 그때는 좀 좋아져 있을 거라고 희망을 던졌다.예전에 아버지가 사 오시던 뻥튀기 봉지만 한 약봉지를 받아들고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무심하게 보아왔던 그분들의 수두룩하던 약봉지들, 마치 고정 멤버처럼 식탁 위에 자리 잡고 있던 어머니 아버지의 약봉지가 자꾸만 생각난다. 그때는 그냥 연세가 들면 어른들은 다들 저런 약들을 드시는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왔다. 어쩌면 그렇게 어수룩하고 무심한 딸이고 며느리였을까? 멀리 산다는 핑계로 내가 한 일이라고는 빼먹지 말고 드시라고 약봉지에 날짜를 적어드리거나 약 드실 시간에 고작 알림 설정을 해 드렸을 뿐이었다. 병원에 모시고 가거나 약을 타는 것은 늘 부모님 근처에 사시는 오빠나 시아주버님의 몫이었다. 그분들의 그림자 같았던 효심과 수고로움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어느새 내가 그런 나이가 되었나 보다. 그러나 아직 누구에게 의지할만한 나이는 아니다. 가족들은 각자의 삶에 바빠 있다. 자신의 일은 자신들이 알아서 해야 할 시대이기도 하다. 무슨 일이든 자기가 체감하고 겪어봐야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병도 그렇다. 어떤 병이든 자기가 아파봐야 남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처럼 말이다.비가 오는 병원 담벼락을 끼고 한 손에 커다란 약봉지를 들고 한 손에 우산을 들고 걸었다. 약봉지가 비바람에 흔들린다. 약봉지 크기만큼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으로 내 마음도 자꾸 흔들린다./김은희(포항시 남구 대이로)

2020-12-14

책 읽기는 당분간 금지

오늘 사진을 네 장이나 찍었다. 내 모습을 찍기는 오랜만이다. 자세를 잡아주는 남자분의 손길이 조심스럽다. 찍기 전 목걸이가 거슬린다고 빼란다. 내가 혼자 빼려고 애쓰고 있으니 그것도 손수 빼주신다. 자상도 하시지. 목부터 전면 옆모습, 그러더니 누우란다. 난 마지못해 누웠다. 옆으로 돌아누운 모습까지 찍고서야 됐다고 나가 있으란다.의사가 사진을 보더니 목이 많이 삐었단다. 한동안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약도 처방해준다. 그리고 물리치료실로 갔다. 이곳은 물리치료를 잘한다고 지인이 추천한 병원이다. 뜨듯한 찜질팩을 목과 허리에 대고 누우니 잠이 온다. 목에 뭔가 한참을 문질러 주기도 하고 전기 충격 같은 것도 주고 원적외선도 쬐었다.그렇게 오래 기다리니 물리치료사가 나타났다. 아까 다정히 사진을 찍어준 그 사람이다. 다방 면에서 일하는군. 내 옆 침대의 할머니를 먼저 만졌다.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어떻게 다친 건가요. 손을 잡고 요리조리 움직이게 하고 한참 돌려도 보고는 아픈 데를 찾았는지 치료를 시작했다. 허리벨트 같은 걸 자신의 몸에 두른다. 어머나 왜 자기 몸에 저걸, 하는 그 순간, 그 띠를 할머니 팔에 같이 끼고, 당기고 밀고를 반복한다.그러는 동안 내내 조곤조곤 할머니께 왜 아픈지를 설명하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치료가 끝나자 할머니는 팔을 잘 움직였다. 마법 같다. 내 목도 만졌다. 눕혀 놓고 당기고, 앉혀놓고 인사시키고, 뒤로 젖히고. 그러고 나니 금방 움직여진다. 완벽하게 안 아픈 건 아니지만 움직임이 훨 편해졌다.책 읽기는 당분간 하지 말아라, 스마트 폰도 들여다보지 말라는 잔소리가 듣기 싫지 않다. 만지는 솜씨도 좋지만 잘 들어주고 환자들의 시시콜콜한 질문에 차분히 답해주는 게 환자들의 마음을 낫게 하는 거 같았다. 집에서 한참 먼 거리라 세 시간은 비워야 가능하지만 낼 또 가야지. /김상동(포항시 북구 장성동)

2020-12-14

1930년대 한국에 덮쳐온 ‘맬서스’라는 공포

과학은 인간이 저 미지의 바깥 세계에 대해 갖기 마련인 호기심을 시각화된 도구를 통해 풀어내어 우리 눈 앞에 명료하게 제시하는 학문이다. 지금 우리 인류의 진보가 과학의 발전으로 갈음되기 마련인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이 얼마든지 발전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우리를 둘러싼 외부 세계에 대해 미지의 영역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과학적 지식이 세계를 해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또 다른 미지의 세계로 열린 구멍이 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다. 앨리스가 그 구멍을 통해 이상한 나라로 들어갔듯, 인간은 우리 세계를 확정하는 과학적 지식들의 틈새를 통해 우리를 공포에 빠뜨리는 또 다른 상상의 세계로 돌입한다.시대를 풍미했던 쥘 베른(1828~1905)의 과학소설(science fiction), ‘지구 속 여행(1864)’이나 ‘해저 2만리(1870)’, ‘80일 간의 세계일주(1873)’ 등 우주여행이나 해저의 잠수함 등, 당시 세계에서 확립된 자연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그 지식을 활용하여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바람을 다룬 것이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인간의 상상과 욕망은 과학 기술이 얼마간 발전했다고 해서 그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마리로 단단하게 엮인 지식의 체계 안쪽으로 더욱 더 깊이 파고 든다. 인간의 영혼의 실체 내지는 4차원 같은 우주의 구조, 시간 여행 등에 대한 상상은 인간에게 호기심과 공포를 자극하면서 과학적 세계와는 또 다른 자리에 이야기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세계를 이해하는 인간의 과학적 지식이 축적될수록 오히려 인간의 상상은 더욱 더 촉발되는 것일지도 모른다.1930년대 무렵, 한국, 아니 전 세계를 덮쳤던 과학적 지식과 그것이 불러일으킨 공포는 바로 맬서스(1766~1834)가 이미 한 세기도 전에 남긴 ‘인구론’에서 비롯되었다. 인구의 자연 증가가 기하급수적인 데 비해, 식량의 생산은 산술급수적이므로, 인간은 필연적으로 빈곤해질 수 없다는 부정적인 미래 예측이었던 것이다. 이 맬서스의 인구론은 1929년 대공황을 겪으며 인류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가 팽배하던 시대에 다시 등장하여 당시 사회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과학적인 논의는 이처럼 인간의 미지의 시대에 대한 비관적 견해와 결합될 때, 인간에게 치명적인 공포로 작동한다.번역이나 번안을 제외하고, 한국에서 가장 최초의 과학소설로 간주되는 김동인의 ‘K박사의 연구(1929)’는 맬서스가 불러일으킨 공포에서 시작한다.‘K박사’는 맬서스의 신봉자로, 인류의 비관적인 미래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의 대변을 처리하여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한다. 인간의 대변을 다시 식량으로 활용한다는 것에 대해 인간이 갖는 본질적 거부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박사는 이른바 매드사이언티스트, 미친과학자의 전형이다. 과학자와 조수들은 세부적인 사실은 숨기고 여러 명사를 초청하여 시식회를 여는데,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모두 구토를 하며 시식회는 난장판이 된다. 인간의 이러한 감각을 이해하지 못하던 박사는 지방으로 피신했다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먹지 않는 ‘개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제야 구토를 하며 인간들의 반응을 이해한다.김동인의 이 흥미로운 소설 속에는 당시 맬서스가 초래했던 인류의 멸망에 대한 공포가 투영되어 있다. 작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K박사라는 독특한 존재를 제시하며 이른바 무한순환이 가능한 생태 시스템을 고안하고 그것이 왜 불가능한가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실체는 당연히 인간이 갖고 있는 생래적 거부감 때문이다. 소설을 쓰며 책상 맡에서 인류 사회에 대한 비관과 새로운 가능성 사이를 오가면서 상상했을 작가 김동인을 생각해보면 꽤 재미있다.상상의 이야기는 실제의 일이라면 아무것도 해결해 줄 수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홍익대 교수

2020-12-14

부처를 생각하면 부처가 보이고… 전남 곡성 태안사(泰安寺)

유순한 보성강 줄기를 따라 겨울 햇살이 반짝이며 따라온다. 보성강을 건너 잡목숲사이로 접어들자 차는 마른 먼지를 일으키며 힘들게 나아간다. 그토록 그리던 태안사 가는 길은 온통 그리움에 젖어 있다.작은 주차장에 차를 세운 건 지붕 있는 다리, 능파각 때문이었다. 정면 1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한 능파각은 850년 혜철국사가 지었지만 파손되어 1767년에 복원했다. 누각이면서 다리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는 아름다운 건축물에서 선인들의 여유와 풍류를 읽는다. 능파각 아래로 펼쳐지는 계곡의 풍경과 물소리에 저절로 번뇌가 사라진다. 나는 큰길을 두고 능파각에서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옛길을 걷기로 했다.피안으로 가는 길이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차고 딱딱한 시멘트 길이지만 이상하게 편안하다. 낙엽하나 떨어져 있지 않은 정갈한 길, 곧게 뻗은 전나무들의 선한 눈빛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일주문이 보인다. ‘동리산 태안사’, 일주문 편액에는 그린 듯 편안한 성당 김돈희의 서체가 담겨 있다. 고전적인 묵직함보다 세련미가 돋보이는 서체와 잘 어울리는 사찰이다.산세가 오동나무 속처럼 아늑해서 오동나무 속이라는 뜻을 가진 동리산, 그 깊은 곳에 보금자리를 꾸민 혜철국사의 풍수적 안목은 가히 뛰어나다. 사찰은 지나치게 웅장하거나 화려하지 않으며 중용의 도리를 몸에 익힌 군자처럼 기품이 넘친다. 부드러운 고요 속에 잠든 경내, 내 발걸음 소리에 산사가 깰 것만 같아 조심스럽다.화엄사의 말사로 대안사(大安寺)라고도 불린 태안사는 신라 경덕왕 원년(742년)에 세 분의 신승(神僧)이 창건하였다. 백여 년 뒤 문성왕 9년(847년), 적인선사 혜철국사가 동리산문을 열고, 고려 태조 때 광자대사가 중창하여 동리산파의 중심사찰로 삼았다. 조선 초 효령대군이 머물기도 했으며 송광사와 화엄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로 사세가 컸지만 6.25전쟁 때 전각이 불타 대부분 복원한 것이다.겨울 산사답지 않게 바람 한 점 없이 안온하다. 풍경마저 잠든 고요한 경내를 걷는 동안 알 수 없는 그리움이 가슴을 파고든다. 흔한 법구경이라도 흐를 법한 휴일, 절은 굳게 침묵하고 있다. 선원으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는 꼿꼿한 자존심과 시대에 편승하지 않는 올곧음이 보인다. 단청 없는 염화실과 선원, 머리 숙여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혜철국사의 부도비, 독백처럼 흐르는 기운들 속에 붉은 열매를 맺은 남천이 인적 없는 산사를 지킨다.보제루에는 사계를 담은 사진들이 쓸쓸히 축제를 벌이고 목어의 눈빛은 먼 곳을 더듬는다.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고 추구하던 고결한 정신과 영혼은 어디로 갔는가? 우리는 무엇을 향해 떠밀리듯 가고 있는가? 물질과 정보의 홍수에 밀려 철학의 빈곤으로 신음하는 사회, 그 아픔조차 무디어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내 불안한 상념과 달리 태안사는 조급함에 휘둘리지 않고 확신에 찬 듯 초연하다.대웅전 법당 문을 열자 일렬로 걸려 있는 스님들의 가사가 유난히 따스하게 안겨든다. 정갈하게 깔린 카펫, 은은한 자연 채광으로 인한 아늑함에 이끌려 백팔배를 시작한다. 혜철선사와 도선국사가 득도한 수도 도량, 무아 무소유의 삶을 몸소 보여주신 선지식 청화 스님의 아름다웠던 시간들, 그 때의 영화가 다시 태안사에 머물기를 기도한다.수년 전 정만 스님이 스승이신 청화 스님의 수행법에 관한 책을 주시면서 맺게 된 작은 인연이 오늘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장좌불와(長坐不臥)의 수행과 고매한 정신과 인품으로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던 청화 스님, 생전에 친견한 적은 없지만 서적과 법문을 통해 감동 받은 후 나는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빠져들게 되었다.조낭희 수필가염불심시불(念佛心是佛), 참다운 진리는 우주에 가득 차 있어서 부처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곧 부처일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 좋았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록 분별과 시비심에 사로잡혀 중생의 선을 조금도 넘지 못하고 있다. 부처와 중생의 차이를 아는 것은 쉽고 간단한데 그 경계를 넘는 일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마음과 부처는 둘이 아닌데 내 구분하는 마음은 언제쯤 내려질 것인가. 날마다 백팔배를 하면서도 뜬구름 같은 감정에 휘말려 진여불성(眞如佛性)을 놓치고 살아가는 나를 돌아본다. 쉽다고 일러주신 스님의 말씀과 달리 근본자리를 지키는 일은 멀고도 험하다. 오늘만큼은 청화 스님을 기리며 참마음으로 시주를 하고 기도를 한다.법당을 나오자 태안사의 반듯한 어깨 위에 얹힌 밝은 미래가 보인다. 200여 미터 산길을 오르면 한 때 수행하는 스님들로 북적였던 선원이 있다고 들었지만 애써 궁금함을 누른다. 우주의 기운은 모든 중생을 본래의 성품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목적의식을 갖고 있다니 부질없는 걱정일지 모른다. 다만 동안거에 들어간 스님들의 용맹정진을 조용히 응원할 뿐이다.청화 스님이 중창불사를 할 때 젊은 스님들이 손수 지겟짐을 져나르며 만들었다는 연지, 커다항 연못 안에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삼층석탑과 태안사가 스스로를 비추고 있다. 두 손을 모으고 아미타불을 외며 연못을 돈다. 염불과 참선은 둘이 아니라는 청화 스님의 말씀이 내 어깨를 토닥인다.

2020-12-14

코로나19, 변화 그리고 여성가족정책 방향

박은미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실장전례 없는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로 인적·물적 이동 위축이 경제침체로 이어지는 보건 및 경제 동반 위기 하에 수요·공급 위축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국내외 경기침체 심화로 고용상황 악화 장기화 및 신(新)산업분야 투자 활력 저하가 우려되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 경제 전반의 비대면화(Untact)와 디지털 전환 등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 되고 있다. 특히 비대면화·디지털화 대응에 중점을 두어 디지털 기반 경제혁신 가속화 및 일자리 창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다.온라인 플랫폼 기반 교육, 비대면 의료, 원격근무 등 비대면 활동 속도와 범위가 급속하게 증가하였다. 비대면 비즈니스와 온라인 서비스 가속화로 인해 개인주의 성향 및 IT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트렌드가 자리잡아 가고 있다. 최근 배달음식과 넷플릭스, 유튜브 등 영상플랫폼, 화상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정보기술(IT)·전자산업 등이 위기 상황에서도 성장하고 있다. 금융 부문 역시 스마트뱅킹과 핀테크가 확고한 대세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비대면 활동의 급속함으로 인해 온라인 유통 매출이 급성장 하였다. 대면 접촉을 꺼리는 소비자의 증가로 O2O(Online-to-Offline)를 기반으로 하는 신선식품 배달 비즈니스는 가속화로 인해 신선식품 새벽배송과 가정간편식 인기가 상당하다.한편, 이 과정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충격은 많은 취업자들이 생계곤란에 직면하게 되었다. 고용보험 밖의 취업자(특수고용형태종사자, 영세자영업자 등)는 소득 수준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소득 급감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운 취약계층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는 불안과 초조함, 우울감, 불안장애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였다. 이는 전 지구의 인구가 동시에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최초의 팬데믹으로 볼 수 있으며, 개인의 생활영역에 미칠 영향을 지금도 가늠하기는 어려움이 있다.코로나19로 인한 침체된 경제 불안과 하락하고 있는 소비 성향은 여성가족분야에도 다양한 위협적인 요소를 작용하고 있다. 위협적인 요소를 기회의 요소로 만들려면, 첫째,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고용구조 개선 및 산업구조 변화에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 스마트워크 기반을 활성화하여 사회 전반에 일·생활균형 문화가 일상화 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어린이집 안전 및 긴급돌봄서비스에 대한 불안감 해소를 위해 사각지대가 없는 공적돌봄체계를 구축해야 하며, 안전시설 인프라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한부모가족, 조손가족, 다문화 가족 등 취약가구를 대상으로 한 비대면 시설 인프라 개선 및 프로그램 확대, 정서적 지원 등 틈새를 해소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코로나19는 불안이나 우울감을 비롯해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스트레스도 심화되고 있다. 여성가족정책분야별 정서적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적극적인 개입이 있어야 할 것이며, 보다 더 촘촘한 심리방역체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와 우리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2020-12-14

고전에서 찾는 리더십

강희룡 서예가전후 일본사회는 논어의 가치관과 상당히 겹치는 조직을 꾸렸다. 1990년대 이후 일본식 경영시스템이라 부르는 이 풍토는 일본 대기업의 스캔들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그 원인 속에는 관대한 정치, 즉 덕치의 문제가 노출되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사회문제의 해답을 중국 고대사 속에서 찾는다면 논어의 대립 명제로 한비자를 찾을 수 있으며, 현대의 성과주의로 대변된다고 하겠다. 공자의 인간관에는 상황에 관계없이 교육받지 못한 사람과 나쁜 교육을 받은 사람은 악해진다는 논리가 있는 반면, 한비자의 인간관에는 교육에 관계없이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인간은 이기적으로 변한다는 함의가 있다.한비자는 고분(孤憤)편을 통해 지혜로운 인재가 정치에 등용되기 어려운 현실을 지적하며 리더는 무엇보다 사람을 보는 안목과 부하를 다스리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나 리더는 앞날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하는데 미세한 싹을 보고도 장래 일을 알 수 있으며 단서만 보고도 결과를 짐작하는 기술을 적고 있다. 한비자는 신상필벌을 강조하면서도 ‘법불아귀(法不阿貴)‘를 강조했다. 이 말은 법은 귀한 사람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법은 만인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국가나 사회가 정의롭다는 것을 강조했다.이익은 그의 저서 ‘성호사설, 만물문(星湖僿說, 萬物門)’에서 ‘사람을 관리로 쓸 때는 반드시 재주와 능력을 가려서 써야 하며, 아무 하는 일도 없이 녹만 먹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백성을 잘 다스리라고 뽑아 놓았는데 재주와 능력이 없거나 있더라도 하는 일 없이 놀고먹기만 한다면 그런 쓸데없는 관리는 곧바로 퇴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송나라 때의 소식(蘇軾)이 ‘쥐가 없다고 사냥 못하는 고양이를 기르거나, 도둑이 없다고 짖지 못하는 개를 키워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또한 이어서 ‘차라리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낫지, 좋은 머리를 이용해 나랏돈을 빼돌리고 백성을 수탈하는 관리가 된다면 더 위험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하며 원(元)나라 정개부가 말한 ‘고양이를 기르는 것은 쥐를 방비하고자 함인데, 탐욕스러운 고양이인 줄 모르고 기른다면, 음식을 도둑맞는 폐해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개를 키우는 것은 도둑을 막아내고자 함인데, 사나운 개인 줄 모르고 키운다면 사람을 해치는 폐단이 더욱 커질 것이다.’ 부패한 관리의 폐단을 적은 것이다.쥐를 잡으라고 기른 고양이가 반찬을 훔쳐 먹거나 닭을 물어 죽이는 일이 흔히 일어난다. 도둑 잡으라고 키운 개가 오히려 주인에게 덤비는 사건도 심심찮게 보도된다. 선생의 표현대로 이는 이롭기는커녕 재물을 축내고 백성을 못살게 굴어 국가나 국민에게 패악이 되는 상황들이다. 위에서 열거한 이야기는 우화가 아니라 바로 지금의 우리 현실처럼 들린다. 지난 역사 속에는 통치나 삶의 잠언이 수없이 많다. 지도자는 국가를 공정하게 관리할 의무가 있다. 어떤 시대든 법과 정의가 지켜지지 않고 혼란한 모습도 늘 있었다. 지도자를 비롯한 위정자들이 모든 게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교훈을 잊는다면 국민들만 환란 속에 허우적거린다는 진리는 여전히 의미 있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2020-12-14

스피어피싱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무역 거래가 늘면서 특정 업체에 악성 코드를 심은 이메일을 보내 정보를 빼내는 ‘스피어피싱’ 공격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스피어피싱은 불특정 다수의 개인정보를 빼내는 피싱(phising)과 달리 특정인의 정보를 캐내기 위한 피싱 공격으로, 열대지방 어민이 하는 작살낚시(spearfishing)에 빗댄 표현이다.주로 수신자에게 익숙하고 믿을만한 송신자 혹은 지인으로부터의 메일을 사용한다. 수신자의 친구, 혹은 물건을 구입한 온라인 쇼핑몰의 계정으로 가장해 메일을 보내 수신자의 개인 정보를 요청하거나 정상적인 문서 파일로 위장한 악성코드를 실행하도록 하는 방식이 많다.국정원이 최근 국내 기업과 정부기관을 상대로 스피어피싱 주의보를 내렸다. 국내 업체 A사는 해외 거래처 B사로부터 “방역 마스크를 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A사는 또 다른 해외기업 C사로부터 마스크를 사서 재판매하기로 하고 물품대금을 보냈으나 마스크를 받지는 못했다. 알고 보니, A사를 해킹해 거래처 정보를 파악한 국제범죄조직이 B사와 C사 2곳을 동시 사칭해, 거래 시작부터 끝까지 A사를 속인 것이었다. 국내 D사의 이메일 계정을 뚫어버린 한 범죄조직은 싱가포르 거래처에 허위 계좌를 보냈고, “이 계좌가 맞느냐”는 거래처 확인 요청 메일까지 실시간으로 삭제해 물품대금을 가로챈 경우도 있었다.스피어피싱을 막기 위해서는 해외 거래처가 결제대금 계좌 변경을 요청할 경우 반드시 전화 등으로 진위를 확인하고, 출처 불명 파일은 바로 지우고, 악성 코드를 주기적으로 검사하는 등 보안 수칙을 철저히 지켜야한다. 비대면시대, 낯선 유형의 범죄인 만큼 한층 경각심을 높여야 막을 수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2-14

3단계 격상도, 백신 확보도 늦출 일 아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진자 수가 하루 1천명을 넘어선 지 하루 만에 하루 2∼3천명선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문가의 경고가 나오고 있어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을 두고 검토에 착수했지만 시기적으로 이미 늦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코로나19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이 누적돼온 데다 그동안 방역당국의 단계 조정이 선제적으로 이뤄지지 못해 실효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머뭇거리다 성과를 못 냈다는 평가다. 지난 8일부터 시작한 전국 2단계, 수도권 2.5단계 격상도 사실상 실패다. 정부는 다음 주에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기세에 미뤄볼 때 실패로 보는 게 맞다.야당에서는 코로나19의 확산세와 관련, “정부가 K방역 성과 홍보에 집중하다 3차 대유행 사태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판단한 때문”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대책을 비판하고 있다.서울 등 수도권의 유치원과 초중고교가 15일부터 3단계에 준하는 전면 원격수업에 들어가고 있다. 이번 주의 신규 확진자 흐름에 따라 3단계 격상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이나 지금의 감염속도로 보아 3단계 격상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외신에 따르면 미국은 13일부터 백신 배포에 들어가 14일부터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는 소식이다. 영국이 제일 먼저 백신 접종을 시작한 이후 미국과 곧이어 일본 등도 백신 접종에 들어간다고 한다. 정부가 발표한대로라면 우리는 내년 하반기에나 백신 접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내년 2월 1천만명분을 1차적으로 도입하기로 했으나 그나마 제약회사 제품에 대한 안전성 결과가 아직 나오지 못한 상태라고 하니 자칫하면 백신접종 후진국으로 전락할까 걱정스럽다. 국민의 이같은 불안감을 의식해 더불어 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내년 3월 이전 백신접종이 가능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말로만 되는 일이 아닌 문제인 만큼 정부와 여당이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조치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대구와 경북도 신천지교회 집단감염 사태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경북은 병상 포화상태가 임박하다고 하니 지역차원의 방역조치들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 마스크 쓰기 등 시민 각자도 방역 파수꾼이 돼야 할 시점이다.

2020-12-14

‘탈원전’하면서 탄소중립(?)…기업 살아남을까

문재인 대통령의 ‘2050년 탄소중립 선언’에 화답해 정부가 내놓은 범부처 탄소중립 추진 전략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거창한 목표만 보일 뿐 이를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이나 재원 대책이 빠졌다는 지적부터 나온다. 기후대응기금과 탄소세 등 기업이 부담해야 할 복병이 숨어 있어 업계의 속앓이도 커지고 있다. ‘탈원전’하면서 탄소중립을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호된 비판이 빗발친다. 이산화탄소 순 배출량을 2050년까지 0으로 만들기 위한 정부의 전략을 간략히 요약하면 이렇다. 우선 산업·수송·건물 등 모든 부문에서 에너지효율을 높여 에너지 사용을 최대한 줄이고, 필요한 에너지는 가능한 한 전기로 대체하고, 전기는 대부분 태양광·풍력을 통해 생산한다는 것이다. 어쩔 도리 없이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포집 기술을 통해 땅속에 파묻거나 나무를 심어 흡수해 상쇄시키겠다는 것이다.청와대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인 ‘국가결정기여(NDC)’를 2030년까지 2017년 배출량 대비 24.4% 감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비용이다.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 탄소세 도입이나 경유세 인상 방안을 검토 중이다. 탄소 사용료를 비싸게 만들어 탄소 감축을 압박 유도하겠다는 의미다. 정부의 3대 정책 방향 어느 것도 고비용을 수반하지 않는 대목이 없다. 예기치 못했던 코로나19 여파로 가뜩이나 어려워진 기업들이 살아남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마저 대두된다.전문가들은 이산화탄소 배출 없이 안정적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전원으로 원자력을 꼽는다. 원전을 탄소중립을 위한 전원믹스에 포함시키면 고비용의 태양광·풍력의 발전 용량을 줄일 수 있고, 자연스럽게 잉여전력도 우리가 감당할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독일을 제외한 세계 주요국이 탄소중립을 위해 원전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의 섣부른 ‘탈원전’정책이 탄소중립 실현의 치명적인 걸림돌이 돼가고 있다. ‘탈원전’이냐, ‘탄소중립’이냐를 놓고 하나를 선택하라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20-12-14

문재인, 루비콘 강을 건너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문재인 대통령은 “살아 있는 권력에도 엄정하라”고 당부했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실제로 그렇게 하자 황급히 징계 수순에 들어갔다. 정치적 수사(修辭)에 능한 위선적인 대통령과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우직한 검찰총장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너고 있다. 이것이 바로 대통령이 약속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의 실체이다.대통령이 법무장관을 앞세워 검찰총장을 제거하고 공수처를 출범시키려는 것은 정권안보 때문이다. 대통령과 권력실세들이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들에 대한 검찰수사를 무력화하기 위해서다.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조작, 울산시장 선거개입, 라임·옵티머스 사건 등은 청와대의 ‘아킬레스건’이다. 윤석열을 제거한 후, 이 사건 수사를 공수처로 이첩하거나, 공수처가 직권남용을 이유로 담당 검사들을 수사함으로써 검찰을 무력화할 수 있다.여론은 어떠한가? 국민은 ‘검찰개혁을 외치는 대통령’이 아니라 ‘법치주의와 헌법정신을 역설하는 검찰총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윤석열은 ‘권력의 검찰’이라는 ‘꽃길’을 거부하고 ‘국민의 검찰’이 되기 위하여 ‘가시밭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전국의 검사들이 총장 징계가 부당하다는 성명을 발표하였고, 법무부 감찰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징계청구·직무배제·수사의뢰가 모두 부적정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법원에서는 윤총장의 직무배제 정지 가처분신청을 인용했으며, 전 대법관과 법무장관 등 600여명의 변호사들은 법치를 파괴한 추미애의 해임을 요구하였다. 최근 리얼미터 조사에 의하면 검찰총장 직무정지에 대해 56.3%가 잘못했다고 지적한 반면, 38.8%만 잘했다고 응답했다. 문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는 58.2%, 긍정평가는 37.1%로서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이러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법무장관은 검찰총장 징계를 강행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여당은 야당의 거부권에 막혀 공수처법 처리가 어렵게 되자, 한 번도 시행해 보지 않은 이 법을 또 다시 개정하여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검사는 물론, 판사와 국회의원까지도 수사할 수 있는 ‘괴물 공수처’의 출현은 3권 분립의 파괴로서 한국민주주의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이처럼 절제되지 못한 권력은 필연적으로 비극을 초래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대통령들의 불행한 말로(末路)를 벌써 잊었는가? 퇴임 후를 대비하여 법적·제도적 안전장치를 만들었던 그 어떤 대통령도 결코 자신을 지켜주지는 못했다. 정치의 세계에서 영원한 권력은 없기 때문이다.따라서 무도한 정권의 권력 폭주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투쟁의 최전선에 있는 야당의 정치력이다. 야당성도 투쟁전략도 없는 무기력한 ‘국민의 힘’은 전열(戰列)을 재정비하고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싸워야 한다. 또한 양심적 지식인과 정론(正論)언론을 중심으로 깨어있는 시민들이 결속하여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2020-12-14

강박증, 마음의 역설

문가인참마음심리상담센터 원장강박증이라고 들어보았는가?강박증이라는 단어는 평생 정신과 병원이나 심리상담센터를 가보지 않았어도 한 번쯤은 들어본 단어일 것이다. 강박증이라 함은 강박 사고(반복적인 사고)나 강박 행동(반복적인 행동)을 둘 다 지니고 있거나, 하나만 지니고 있어도 부적응이 심하면 진단되게 된다.자신도 괴롭지만, 그 괴로움을 주변 사람에게 호소하면서 주변 사람도 당황하면서 괴로워하게 된다.성인이 강박증을 지닌 경우도 괴롭지만, 성인은 그 증상에 어느 정도 적응되어 있어서, 일할 때는 잊고 있다가 잠을 자기 전이나 휴식할 때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는 강박증을 지닌 아동을 만났을 때이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한 아동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강박증을 지닌 성인이나 강박증을 지닌 아동을 나는 꽤 많이 치료했다.참 헛웃음이 나온다.내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초보 심리학자 시절, 모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님에게 강박증의 치료원리를 진심을 담아 물었다. 그는 대답을 회피했다. 그가 몰라서 회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나는 그 교수님을 만나면 강박증이 무엇인지, 강박증의 치료원리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말해줄 수 있다.나는 최근에 어떤 방탄소년단 같은 외모를 지닌 소년에 대한 강박증을 최면 상담했다. 그는 공부도 잘했고, 부모를 비롯하여 친구 및 선생님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었다. 부모도 그를 사랑하고 그도 부모를 사랑하며 정말 완벽한 가정이었다. 그 소년은 코로나19가 창궐한 3월 어느 날 잠이 오지 않기 시작했다. 학교에 가서 공부도 하고, 친구와 놀고, 선생님과 대화하지 못하는 날이 지속되자 잠이 오지 않게 된 것이다.그러다가 학교를 다시 나가게 되면 괜찮아지다가 어느 날은 원하지 않는 생각이 머릿속에 반복적으로 떠오르게 되었고, 부모님께 같은 질문을 하게 되는 그날이 왔다. 그 소년을 너무나 사랑하는 그 어머니는 대한민국의 모든 인터넷 사이트를 폭풍처럼 검색하였고,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방에서 나를 찾아왔다.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어머니의 상상대로 되었다.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그 비밀을 한가지 알려주겠다.그 비밀은 마음의 역설(paradox of mind)이다. 나는 아동과 볼펜의 스프링을 가지고 실험을 했다. 스프링은 가볍게 누르면 가만히 있지만, 세게 누르면 높게 튀어 올라서 어딘가로 사라져버린다. 그 소년은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최면을 진행하였고 그 소년은 환한 미소를 나에게 선물하였다.즉, 마음의 역설을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잠을 자려고 하면 더 잠이 안오고, 어떤 생각을 안하려고 하면 더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강박사고를 지닌 사람이 가장 괴로워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 침투사고가 계속 떠오르고 그것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다보니 더욱 생각나서 괴로워지게 된다는 것이다.“강박증, 마음의 역설을 기억하라.”“어떤 생각을 안 하려고 하면 더 생각나고, 그냥 내버려 두면 그 생각은 사라진다는 것을.”

2020-12-13

삼무(三無)의 자동차 왕국

윤영대수필가저녁 산책을 하며 우현 사거리와 창포 사거리를 걷노라면 퇴근 시간이라 참 놀라운 광경을 본다. 저녁노을이 물들기 시작하는 시간이라 어둠이 깔리는 긴 도로에는 반짝이며 다가오는 전조등과 반대편으로 몰려가며 점점이 줄지은 빨간 미등(尾燈)이 흡사 크리스마스 장식등 같이 아름답게 끝없이 이어져 있다.자동차 홍수의 시대. 언제부터 우리는 자동차 왕국이 되었는가!2020년 6월 말 기준 우리나라 자동차 등록 대수는 약 2천400만 대를 넘어 인구 2.1명 당 1대꼴, 1가구 1대의 시대라고 한다. 포항시민을 50만 명이라고 한다면 포항지역에만 20만 대가 넘는다는 계산이다. 나는 88서울올림픽이 치러질 즈음 처음 자가용을 가졌다. 그때만 해도 ‘마이카시대’라는 말을 처음 듣고 그 비싸고 귀한 자가용을 어떻게 집집마다 가질 수 있는가? 그런 시대가 온다니 ‘꿈을 꾼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거리에서 자동차의 물결을 보고 있는 것이다.1955년 ‘시발(始發)’이라는 조립 SUV가 처음 나오긴 했지만 1962년 첫 승용차 ‘새나라’를 연간 100대씩을 생산한 것을 시초로 국민의 인기를 차지한 ‘코로나’가 대량 생산의 길을 열었고, 45년 전인 1976년엔 우리 고유의 브랜드인 ‘포니’를 탄생시켰으며 2010년 이후에는 연간 약 400만 대의 생산능력을 가진 세계 5위권에 등극을 했다.차들이 쉴새 없이 지나가는 낙엽 진 거리의 간이 정류소에 앉아 생각에 잠겨본다. 저 많은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한 자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자동차는 철판으로 만들고 기름을 태워 고무바퀴로 굴러가는데…. 우리나라는 지하자원 종류가 많아서 ‘광물의 표본실’이라고 불리지만 원료인 철광석, 원유 그리고 천연고무의 자원은 거의 전무한 데도 자동차 선진국이라니 신기하다.철광석은 거의 북한에 분포하며 호주, 브라질 등지에서 연간 약 7천300만 t을 수입하고 포스코, 현대제철 등에서 고품질의 조강생산을 하여 세계 6위 철강생산국이다. 원유는 그야말로 한 방울도 나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산을 중심으로 연간 약 10억 배럴 전량을 수입한다. 그러니까 1일 300만 배럴, 즉 150만 배럴 대형유조선 2척이 매일 먼 바다를 항해해 와야 한다. 그것을 잘 정유하여 42% 정도를 자동차 연료를 사용하고 나머지는 석유화학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석유수출국이라는 명예도 안고 있다. 또 타이어를 만드는 원료인 천연고무나무밭은 한 곳도 없는 나라. 물론 100% 천연고무가 아닌 합성고무로 만들고 요즘 말썽이 되고있는 폐타이어를 수입하여 재생 타이어를 만들어 사용한다지만 자동차에 필요한 이들 3가지 원료가 우리나라에는 전혀 없는 삼무국(三無國)이다.이들을 전량 수입하여 우리의 뛰어난 산업 기술과 제조 능력으로 오늘날의 중공업 산업을 성공시켜 자동차 왕국을 건설한 것이다.아침저녁 도심의 넓은 도로를 꽉 채우며 극심한 정체를 유발하는 자동차 홍수의 현실을 보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우리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는 듯하여 앞으로 새로운 연료 방식인 수소차와 전기차의 도래도 기대해 본다.

2020-12-13

2020년 포항시의 주가 동향

주식시장에서 주식 가격은 투자가들이 그 종목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오르내린다. 특정 기업의 미래가치가 반영된 주식 가격 즉 주가가 저평가되었다고 보는 투자가는 사고, 주가가 고평가된 데다 미래 성장동력도 부족하다 느낀 투자자는 판다. 주가의 변동은 그러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주가는 검은색으로 표시된 전일 종가에서 오르면 빨간색, 내리면 파란색으로 표시된다.기업들처럼 각 지역이나 도시가 그 지역의 지속가능성, 미래에 대한 기대, 현실 경제 등을 재료로 주식시장의 한 종목으로 거래된다고 가정해보자. 2019년 종가를 기준으로 출발하였던 포항시 주가는 2020년을 마무리하는 지금 과연 빨간색일까, 아니면 파란색일까. 개인적인 시각으로 올해의 포항시 주가에 대한 동향을 월 단위로 짚어 보았다.1월 초 포항시 주가는 좋은 조짐을 보이며 상승 출발하였다. 9일 포항의 규제 자유 특구에서 GS건설의 ‘배터리 리사이클링 제조시설’에 대한 투자 협약식이 대통령까지 참석하며 열렸기 때문이다. 연초의 희소식에 포항시 주가는 빨간색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지난 연말 국회에서 통과된 포항지진 특별법의 시행령이 마련되는 대로 시민에 대한 피해 보상과 흥해지역을 중심으로 도시개발사업이 본격 추진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포항시 미래가치에 호재로 작용했기 때문이다.그런데 2월이 되자 포항시 주가는 예기치 않은 충격으로 하락하기 시작하였다. 19일 포항 최초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는 데다, 대구와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거의 모든 지역 내 경제주체의 경제활동이 빠르게 위축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3월 들어서는 11일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에 대한 ‘세계적인 대유행(pandemic)’을 선언하고, 국내에서는 방역 마스크 부족 사태로 5부제 판매가 시행되었다. 포항에도 재택근무와 근로시간 조정과 같은 코로나19의 영향이 산업계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포항시 주가는 다시 하락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포항시가 자체 마스크생산공장을 건설하려는 의지를 나타내고, 리튬 이차전지 소재 생산기업인 에코프로지이엠이 24일 영일만 제1산업단지에 제1공장을 준공하면서 앞으로 5년간 총 3천억 원을 투자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져 포항시 주가의 하락세는 다소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다.4월에는 코로나19에 대한 긴급대책으로 포항시가 지역 소상공인부터 학계, 금융기관, 기업체와 협력체계를 구축하기로 하는 노력도 심리 안정에 도움을 주어 2월 이후의 포항시 주가도 추가 하락하지 않고 박스권을 유지하면서 조정기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였다.하지만 5월이 되자 코로나19 사태가 조기 종식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지역 내 음식 숙박업과 소상공인, 전통시장을 불문하고 비대면, 비접촉의 영향이 확대되면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실물경제 관련 지표들이 크게 나빠져 포항시 주가는 지지선 아래로 다시 하락하였다. 게다가 지역에서 추진하던 차세대 방사광가속기 유치까지 실패하자 포항시 주가는 계속 파란색을 보였다.6월부터는 포항철강산업단지를 비롯한 지역 중소기업의 경영난이 본격적으로 심해지기 시작한 데다 시민들도 비대면 비접촉에 적응하여 대부분 생필품을 온라인이나 택배로 주문함에 따라 오프라인 중심으로 운영하던 지역 소상공인의 매출이 크게 하락하여 심지어는 휴폐업하는 곳까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에 포항시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하였다. 반면 포항지진 이후 하락 경향이 이어지던 지역 부동산경기는 상승세로 돌아섰다. 부동산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수도권 투기 세력이 포항 지역까지 갭투자에 나서 진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간의 하락 폭이 컸던 만큼 특정 매매 물건을 제외하고는 예년 수준의 시세 회복에 그쳐 이른바 ‘부의 효과(wealth effect)’까지 가시화되지는 못하였다. 이에 따라 포항시 주가도 부동산 경기회복이라는 재료만으로는 상승세로 전환하지 못하였다.7월 들어서도 포항의 부동산경기 상승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해 시작한 중앙상가의 영일만 친구 야시장이 재가동되지 못하는 등 여전히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실물경제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다만 오랫동안 막혀있던 포항공항의 하늘길이 진에어의 취항으로 열리면서 포항시 주가의 추가 하락을 막은 것은 다행이었다.매년 8월이면 포항 어촌마을과 해수욕장, 주변 상권에서 특수를 기대했었으나 올해는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거의 개점 휴업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포항시 주가도 여름철인 6월 이후 8월까지 하락 경향에서는 벗어났지만 그렇다고 뚜렷한 반등 재료도 없어 여전히 바닥권에서 횡보하였다.9월 들어서자 바로 찾아온 마이삭과 하이선이라는 두 태풍으로 인해 어촌마을은 물론 시내 곳곳의 건물 외벽, 공장에 큰 피해가 발생함에 따라 포항시 주가는 다시 급락하였다. 하지만 지진 특별법 시행령에 따라 지진피해 보상에 대한 신청이 접수되기 시작하면서 시민들의 가슴에 맺혔던 응어리도 조금은 풀리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영일만항 국제 크루즈 부두의 완공을 계기로 포항과 일본, 러시아를 오가는 정기 국제카페리 노선이 정식 개설됨에 따라 국제 항만도시 포항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크게 높아졌다. 이에 따라 월초 일시 하락하였던 포항시 주가는 중순 이후 호재가 이어지는데 힘입어 올해 처음으로 상승 마감하며 빨간색을 나타내었다.10월에는 포항시 주가를 움직일 만한 큰 재료가 없었으나 문화의 달을 맞이하여 지역 내 다양한 문화 관련 단체, 기관들이 포럼, 연주회 등 문화행사를 비대면, 온라인중계 등의 방식으로 활발히 개최하면서 미래 문화도시 포항에 대한 기대감을 높임에 따라 포항시 주가도 폭은 크지 않더라도 9월 상승세를 이어 빨간색으로 마감하였다.11월이 되자 포항시 주가는 다시 가파른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였다. 5일 송도동과 항구동을 연결하는 ‘동빈대교’의 기공식, 13일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에서 국내 최초의 ‘그린 백신 실증지원센터’의 기공식에 이어 18일에는 영일만 제4 일반산업단지에서 (주)에코프로이엠 이차전지 양극재 공장의 착공식이 열렸다. 이처럼 포항시 미래가치를 높이는 희소식이 연이어 전해지자 연초 이후 하락하였던 포항시 주가는 단숨에 연초 기준가격을 넘어 본격적인 상승 장세를 타기 시작하였다.12월이 되어서도 포항여객선터미널과 환호공원 사이를 자동순환식 왕복 모노 케이블카가 오가는 이른바 ‘해상케이블카’의 설치가 추진된다는 소식, 철강산업의 재도약을 위한 기술개발사업의 본격화 소식, 대규모 연어 스마트양식 산업단지 조성과 같은 희소식이 잇달아 전해졌다. 이 소식들이 앞으로 포항시의 미래가치에 호재로 나타나면서 포항시 주가는 큰 폭의 상승세를 보여 결국 지난해 종가보다 상승한 빨간색으로 연말 장을 마감하였다.이상의 포항시 주가 흐름은 개인적인 견해지만 포항의 미래가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질수록 인구도 투자도 늘어날 것은 분명하다. 주요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할 때 시민을 포함한 이해당사자에게 중장기적인 사업을 착실하게 보여줄수록 포항의 지속가능성과 더불어 포항의 미래가치는 높게 평가받을 수 있다. 내년에는 올해 사업들이 계획대로 추진되고 포항의 실물경제도 큰 폭의 회복세를 보이기를 기대한다.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12-13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경주시민 여러분의 지혜와 역량

주낙영경주시장2020년 10월 28일은 경주시에 있어서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 40여 년간 경주시민들의 지역 최대 숙원이었던 천북면 신당3리 한센인촌 ‘희망농원 환경개선’을 위한 길이 마침내 열렸기 때문이다.이날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과 이철우 경북지사, 이강덕 포항시장, 주대영 대구지방환경청장, 희망농원 주민들이 함께 희망농원 현장을 방문하고 기관조정 회의를 열어 ‘희망농원 환경개선’사업을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희망농원은 1979년 보문관광단지 개발 당시 현재의 위치로 136가구 486명이 강제이주돼 양계를 위주로 생업을 유지해 왔다. 그동안 무허가 주택에서 거주하면서 노후화된 계사의 슬레이트 지붕에서 나오는 1급 발암물질과 악취, 해충, 오염수 배출 등 생활환경이 열악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여기에 계사 축분과 오염된 생활하수가 포항시민들의 식수원인 형산강으로 흘러들어가 많은 피해를 발생시켰다. 강제이주 당시 정부에서 지어준 주택과 계사가 무허가 건물이다 보니 태풍과 홍수 같은 각종 자연재해를 입어도 전혀 지원을 받지 못하는 등 한센인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그동안 청와대, 국회, 여러 정부기관에 수차례 탄원서를 제출하고 문제해결을 호소하는 등 백방으로 뛰었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그런 세월이 무려 40여년, 경주의 한센인들은 정부의 외면과 여러 관계 부처가 연관되어 해결에 나설 주체가 없다는 핑계로 돛대를 잃은 채 표류하는 난파선처럼 절망적인 상황이었다.하지만 ‘절망적인 상황이란 없고, 다만 절망에 이르도록 방치하는 상황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경주시는 포기하지 않고 희망의 불씨를 계속해서 지펴왔다. 민선7기 경주시정이 이 문제 해결에 반드시 마침표를 찍겠다는 굳은 각오로 전 행정력을 동원해서 매달렸다.다시 한 번, 한센인은 물론 경주시민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힘을 모았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끈질기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중 이 사안을 종합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곳이 국민권익위원회라는 판단에 이르렀다. 문제해결의 열쇠를 찾은 것이다. 곧바로 권익위의 문을 두드렸다.지난 3월 31일 권익위에 최초로 민원을 접수하면서 문제해결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권익위 주관으로 환경부를 비롯한 6개 기관이 모여 협의를 가졌다. 연이어 9월까지 관계기관이 다섯 차례의 현지조사와 실무협의를 거쳤다. 마침내 10월 세부조정안을 마련하고 조정일시를 잡으면서 희망농원 환경개선에 ‘희망’의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40여 년간 복잡하게 엉켜있던 실타래가 드디어 풀리게 된 것이다.이번 기관조정회의의 핵심은 낡은 집단 닭 사육 시설과 폐슬레이트 철거, 노후 침전조, 하수관거 재정비를 위한 국비 210억원을 중앙부처에서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이에 따라 경주시는 우선 내년 상반기까지 철거와 재정비를 위한 기본정비계획을 수립하고 희망농원 주민들과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노후 주택정비 등 거주여건 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친환경 농작물 재배와 새로운 일자리 및 농가소득 창출을 위한 기반 조성, 한센 요양원, 복지시설, 생태공원 등 주민들을 위한 종합정비계획도 차례로 마련될 것이다. 경북도와 포항시, 대구지방환경청도 예산 확보와 적극적인 행정지원을 통해 신속하게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보태기로 약속했다.우리 민족 역사의 뿌리이자 문화의 중심인 이곳 경주는 이천년 동안 숱한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경주시민의 위대한 정신으로 지켜온 곳이다. 신라 천년을 지켜온 호국정신이 그랬고, 인간존중과 만민평등의 정신을 내세운 동학정신의 태동이 그랬다.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실천한 최부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를 굳건히 지켜온 버팀목이 되는 사상과 지혜가 이곳 경주에서 시작되고 이어져 왔다.경주 한센인촌 희망농원 환경개선 사업도 그런 지혜와 역량으로 가능했던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다가오는 2021년도 26만 경주시민이 계속해서 만들어갈 역사적인 해가 될 것이다.

2020-12-13

오래된 책을 사다

아들과 산책을 나갔다. 동네 산책로는 마스크 낀 사람들로 늘 붐벼 차를 타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갔다. 김병례 작가는 산책을 책을 산 것으로 표현했다. 자신처럼 매일매일 나가는 것은 월간지를 구독하는 것이고, 나처럼 계절마다 찾아가는 것은 계간지를 읽는 것이라고 했다.계간지 중에 오래된 책을 사러 나갔다. 이 동네를 들어서려면 먼저 은행나무 가로수를 지나고, 소나무가 솟을대문처럼 터널을 이룬 길을 지나야 나온다. 몇백 년의 세월을 지닌 아름드리 나무들이 성큼성큼 그늘을 만들어 준다. 마을의 오래된 역사를 정자나무가 책의 서문이 되어 알려준다. 여기가 이언적 선생이 살았던 마을이라고.옥산서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세심대로 향했다. 포장하지 않은 흙길에 아들과 나의 발소리만 사박사박, 딱따구리 녀석이 머리 위에서 나무를 쪼아대고 있다. 카메라를 들이미니 포로록 다른 나무로 자리를 옮겨 버렸다. 길옆으로 자계천이 따라붙는다. 가뭄이라 그런지 수량이 더 줄어 졸졸 낮은 목소리를 낸다.물 떨어지는 소리가 좀 더 커지는가 싶으면서 너럭바위가 펼쳐진다. 이곳을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닦는 곳이라고 세심대라 부른다. 이언적 선생이 사시는 동안 주변의 산과 계곡마다 이름을 붙였는데 사산오대(四山五臺)라 하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세심대이다. 읽은 책을 겹겹이 쌓아 놓은 듯한 책바위가 골짜기를 가득 채웠다. 바위에 이황 선생의 글씨로 ‘세심대’를 새겨넣었다. 그 옆으로 용추 폭포가 물소리를 증폭시킨다. 폭포 아래 용소를 건너는 외나무다리가 놓였다. 아들 손을 잡고 오래전 이 다리를 건너간 선생의 산책로를 따라 독락당으로 향했다.동네 골목길을 지난다. 집집마다 주소를 세심로 00번지라 적혔다. 동네 이름도 세심마을이라고 명패를 달았다. 까치밥을 단 감나무와 봄을 미리 준비한 매화나무를 구경하다 보니 금방 독락당 주차장이 나타났다. 버스 주차장 앞에 가게 이름은 ‘자옥슈퍼’다. 자옥산에서 따온 듯하다. 산 이름도 이언적 선생이 붙인 것이다. 독락당의 백미는 계정에서 보는 경치다. ‘계정’이라는 명패는 한석봉 선생의 글씨다. 봄, 여름, 가을에 지인들과 올라앉아 마루에 앉아 한나절 이곳을 지나는 바람을 즐기고 책도 읽었다. 그래서 오늘은 자계천에서 계정 뒤로 지는 노을을 보려 한다. 자계천으로 내려섰다. 돌다리를 건너며 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가라앉은 가을 나뭇잎 사이로 송사리가 분분히 노닌다. 그 위로 기와를 얹은 한옥이 까치발을 들어 물속에 모습을 비춰 매무새를 다듬는다. 물고기들이 계정에 올라 풍류를 즐긴다.계정은 건물에 붙여 달아낸 누각이다. 바위의 모양이 들쑥날쑥하니 기둥의 길이도 제각각이다. 돌의 모양에 따라 나무기둥 밑을 깎아서 앉히는 그랭이 공법을 썼다. 살창을 내어 물소리와 계곡 풍경을 집안으로 들여놓은 선생의 기발함을 누각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건물이 냇물에 한 발 내딛고 있어 난간에서 내려다보면 물 위에 떠 있는 듯하다. 건너편 앞산도 한 걸음 더 가까워져 손에 닿을 거리다.김순희수필가자계천에서 바라보니 굴뚝과 아궁이는 계정 밖에 나와 있었다. 난간 밑 벽체에 제비집처럼 매달아 놓았다. 세상에 아궁이가 저런 곳에 달렸구나, 세상에 이런 굴뚝도 있구나. 한옥의 설계도는 대목수의 머릿속에만 있다더니 선조들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인지 계절마다 간간이 넘겨보는 산책자는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한참을 물소리에 젖어서, 계정의 아늑함에 물들어서 그 자리에 서 있었다.아들과 독락당 담장과 담장이 만든 골목을 걸었다. 비스듬히 누운 향나무가 매력적인 사진을 만드는 곳이다. 가만히 한 컷 찍다 보니 발아래 빨간 산수유 열매가 떨어져 있다. 담 안에서 키를 키운 산수유의 품이 담 밖으로까지 뻗었다. 오늘의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오래전 미리 발간한 이언적 선생의 고서적의 품이 참으로 넓다. 오후의 산책만으로 그 뜻을 다 헤아리기 힘들어 월마다 구독해 펼쳐 봐야겠다.

2020-12-13

정치후원금, 세상을 바꾸는 “돈의 힘”

조윤현문경시선거관리위원회 홍보주무관모든 활동에는 돈이 필요하다. 정치 또한 마찬가지다. 권력은 막강하고도 달콤하지만, 정치자금이라는 비용이 필요하다. 그것을 충당하기 위해 누군가는 권한을 남용해 타인을 수탈하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그 권한으로부터 지대를 추구하는 자에게 포획되기도 했다. 부정부패, 정경유착. 익히 들어온 이야기다. 정치자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이 때문일 것이다.이러한 부정을 방지하고자 정치자금법이 제정됐다. 엄격한 통제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법 또한 다른 수단으로서 돈의 힘을 빌린다. 제1조에서 말하는 “정치자금의 적정한 제공을 보장”, 바로 정치후원금이다.현행 정치후원금 제도에는 중앙당이나 정치인의 후원회에 기부하는 ‘후원금’과 선거관리위원회에 기탁하는 ‘기탁금’이 있다. 후원금은 해당 중앙당이나 정치인의 후원회에 기부되고, 기탁금은 국고보조금 배분율에 따라 각 정당에 배분·지급된다. 양자 모두 선거관리위원회가 운영하는 정치후원금센터(www.give.go.kr)에서 신용카드나 모바일결제, 연말에 버려지곤 하는 카드 포인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단으로 기부할 수 있다. 기부자는 기부금에 대해 10만원까지는 전액, 10만원을 초과하는 금액은 15%(3천만원 초과 금액은 25%)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단 정치적 중립의무가 있는 공무원과 교원은 기탁금만 기부할 수 있다.정치후원금 홍보와 세제혜택은 소액 다수의 정치자금 기부문화의 정착과 확산을 위함이다. 이로써 우선 정치자금 수입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소수의 밀실보다는 다중의 광장에서 부정은 발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이로써 정치문화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 정치후원금으로써 국민은 정치에 참여하고, 정치인은 국민적 평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정치후원금은 정책 개발의 동기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정치인이 소신을 지킬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기도 할 것이다.누군가는 지지하는 정치인을 위하여, 누군가는 싫어하는 정치인에게 욕을 하기 위하여, 또 누군가는 효과적인 세(稅)테크를 위하여 정치후원금을 기부할 것이다. 그 동기가 어떻든 간에 소중하게 기부된 정치후원금은 정치발전에 기여할 것이다.누구나 원하기 때문에 얻으려 노력하고, 그러한 노력의 여파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하여금 세상을 시나브로 바꾸어나가게 하는, 바로 그것이 돈의 힘이기 때문이다.

2020-12-13

수도권 코로나 과부하 돌입, 지역 방어 총력을

전국에서 하루 1천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코로나19 방역체계가 초비상 국면이다. 정세균 총리는 지난 주말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1천명 돌파와 관련, “지금은 촌각을 다투는 긴박한 상황”이라며 거리두기 3단계 격상에 대비한 전문가 의견 수렴을 지시했다.지난 주말인 13일 하루 신규 확진자는 전날 950명에 이어 1천30명으로 집계됐다.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한 1월 20일 이후 가장 많은 기록이며 천명대 돌파는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 발생이 792명으로 전체의 70%를 넘고 있다. 그러나 지역에서도 신규 확진자 수가 지속 확대되고 있다. 같은 날 부산 57명, 대구 28명, 경남 24명, 경북 17명 등으로 전국 16개 시도에서 골고루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을 주장하고 경기도라도 특단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은 극약처방과 다름없다. 원칙적으로 집에만 머물고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할 것을 권고하는 조치다. 10인 이상 모임이나 행사는 할 수 없으며 음식점, 상점, 의료기관 등 필수 시설 이외는 모든 다중이용시설은 문을 닫아야 한다. 학교는 원격수업으로 전환해야 하는 상황이 시작된다. 전국적으로 50만개의 상점이 문을 닫아야 하고 국민의 일상이 셧다운되는 사태가 초래된다. 서울의 일부 종합병원 응급실은 벌써 일반응급환자를 더이상 받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병상 부족으로 500명이 넘는 확진자가 집에서 대기중이라 한다.대구와 경북에서도 신규 확진자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토요일 대구에서는 교회발 신규 확진자 35명이 발생한 데 이어 일요일에는 교회발 감염자가 45명으로 늘었다. 경북도 13일 18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으며 최근 일주일 사이 64명의 확진자가 새로 발생한 불안한 상황이다.연말을 앞두고 각종 모임이 많아지는 시기라 수도권발 지역 전파가 걱정이다. 특히 수도권 방역 강화를 피해 지역으로 원정와 송년회를 한다는 소문까지 나돌아 시민과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1차 대유행을 경험한 대구경북은 사생결단의 각오로 코로나19의 지역 전파를 막는데 역량을 모아야 할 것이다.

2020-12-13

무자식 상팔자일까

무자식이 과연 상팔자일까? 자식이 없어 도리어 걱정이 없어 편하다는 이 말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옳은 것일까.요즘 젊은세대 가운데서는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통계상으로도 이는 확인이 된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결혼한 지 5년이 안 된 신혼부부 중 자녀가 없는 비율이 지난해 경우 42.5%다. 10명의 신혼부부 중 4명은 자식이 없다. 통계작성 이후 최고 수치라 한다.여성의 사회참여로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부담과 주거문제 등이 아이 없는 신혼부부를 양산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은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자녀를 낳지 않고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를 말한다. 양육과 경제적 부담을 덜고 자기중심적 삶을 살겠다는 사람을 지칭하는 신조어다.최근 방송인 사유리씨가 일본에서 정자를 기부받아 출산한 일이 알려지면서 비혼 출산이 주목을 받고 있다. 젊은층 사이에 비혼을 희망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한다.하지만 전통적 가족관이 무너지는 우리 사회의 현상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수년 전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된 ‘무자식 상팔자’라는 드라마는 한가정에서 부부와 자녀부부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과 싸움을 소통과 화해로 풀어가는 과정을 그려 인기를 모았다. 보통의 가정이면 있을 법한 평범한 사건을 인간적인 터치로 풀어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느끼게 한 드라마다.스웨덴의 스톡홀름대 연구팀이 400만명의 의료 기록을 분석해 봤더니 자녀를 낳았거나 입양한 부모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오래 살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무자식 상팔자, 무턱대고 믿고 따를 일은 아닌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12-13

반문연대, ‘극우 회귀’ 왜곡선동 감당 묘책 있나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등 보수 정당과 야권 사회단체 대표들이 통합 투쟁기구인 ‘폭정종식 민주쟁취 비상시국연대’를 출범시켰다. 정부·여당의 목불인견 입법독주를 비롯한 반민주적 행태를 보면 야권연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를 바라보는 민심이다. 특히 이런 움직임을 ‘극우 회귀’, ‘수구꼴통 구태’로 몰아붙일 왜곡선동 역풍을 감당해 중도민심의 이반을 막을 묘책도 없이 아무나 마구잡이로 뭉치자고 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반문(반문재인)연대’로 불리는 비상시국연대는 공동대표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 7명을 추대했다. 국민통합연대 이재오 집행위원장, 자유연대 이희범 대표,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 김태훈 회장, 신문명정책연구원 장기표 원장,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도 공동대표를 맡았다. 출범식에는 이태규 국민의당 사무총장과 홍준표, 윤상현 무소속 의원과 40개 시민단체 등도 참석했다.그러나 국민의힘은 이런 일을 잘못 주도하다가는 치명적인 되치기를 당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당의 잘못으로 얻은 반사이익이라고는 해도 최근 제1야당에 대한 지지율이 상승하는 상황이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정에 대해 대국민 사과하겠다는 계획 표명 등으로 국민적인 지지와 공감을 얻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마구잡이식 외연확대는 자칫하면 또 다른 패착이 될 위태로움이 크다.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11일 ‘반문연대’에 대해서 “수구 냉전 보수의 본색을 드러냈다”면서 “시대의 부적응자일 뿐”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한 것은 일종의 선동 신호탄이다. 이른바 ‘태극기 부대’와 손을 잡으려는 움직임으로 덮어씌우고 그간의 쇄신 노력을 깎아 먹는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비아냥이 이미 여기저기에서 불거지고 있다.문재인 정권의 난폭한 질주를 방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구태의연한 방법으로 막아서다가 회복할 기회를 가까스로 조금씩 얻어가고 있는 우호적 민심마저 영영 놓치는 실수만큼은 피해야 한다. 비난만 일삼는 단세포적 행태를 넘어 감동적인 정책대안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쉽게 접근하다가는 정말 망친다.

2020-12-13

독재의 ‘꿀단지’

안재휘 논설위원유신헌법 제53조에 규정된 ‘대통령 긴급조치권’은 단순한 행정명령 하나만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무너뜨린 초헌법적 권한이었다. 1975년 5월 유신헌법에 대한 일체의 비판과 보도를 금지한 긴급조치 9호는 살벌했다. 긴급조치 9호는 800여 명에 달하는 무고한 지식인·청년 학생들을 마구 잡아 가뒀었다.‘긴급조치’는 국민을 굶주림의 도탄에서 구한 박정희 대통령의 영웅적 일생에 큰 흠집을 낸 독재의 상징으로 역사책에 남았다. 3선 개헌·유신헌법에 이어 ‘긴급조치’를 추동한 배경은 일말의 가책이 빚어낸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최근 민주당이 벌이는 입법독주 쇼의 배경에도 유사한 현상이 얼비친다. 그들을 비상식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 역시 일종의 ‘두려움’일 것이다.‘윤석열 찍어내기’에 혈안이 된 여권(與圈)의 칼춤이 금도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가 대표 발의한 검찰청법·법원조직법 개정안은 실소를 부른다. 개정안은 검사·판사 등에 대해 ‘선거일 90일 전’까지로 돼 있는 현행 사직규정을 ‘1년 전’으로 늘리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법안 발의에는 민주당 의원 10명도 참여했다.누가 보아도 이 법안은 ‘윤석열 출마 금지법’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마저 “당장 최강욱 자신도 공무원들의 정치적 중립을 감시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을 그만둔 지 한 달 만에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느냐”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대표적인 헌법학자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헌법의 피선거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위헌”이라고 지적했다.그러거나 말거나, 여권은 ‘윤석열 출마 금지법’을 밀어붙일 개연성이 높다. 이 정권엔 당장의 ‘위헌 시비’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도 대략 자기들 편이라고 믿고 있거니와 위헌심판은 워낙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우선 칼을 휘둘러 처치한 다음 시간을 벌고자 하는 전략이 작동하는 까닭이다.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5.18역사왜곡처벌법’은 박정희 시대의 ‘긴급조치 9호’를 연상케 한다. 이 법에는 5·18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자에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 처분의 끔찍한 처벌조항이 들어있다. 몇몇 인사들이 5.18에 대해 증거도 없이 함부로 말하는 방종을 두둔할 이유는 없지만,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 소지’ 를 지적한다.민주당은 세월호 관련 범죄 공소시효를 2022년 6월까지 정지시키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 요청안도 일방적으로 가결했다. 내년 보궐선거와 내후년 대선까지 계속 세월호를 붙들고 선동을 하겠다는 뜻이다.여기저기에서 “제발 세월호 좀 그만 우려먹으라”고 외치고 있으니, 머지않아 ‘세월호왜곡처벌특별법’도 나오게 생겼다. 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야당의 비토권을 거세한 ‘공수처법 개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키면서 국민의힘을 향해 외친 ‘독재의 꿀’ 힐난은 어처구니가 없다. 작금 ‘독재의 꿀단지’를 노골적으로 탐하는 자들이 정녕 누구인가.

2020-12-13

달달 외우는 인재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태정태세 문단세….” “웃어서 세우세….”어려서 이런 말들을 달달 외던 생각이 난다. 누구나 눈을 감고 초중등 학교 시절 외우던 말들이다. 이조시대 왕들의 순서를 외웠고, 영어의 will, shall 용법을 외우던 시절이다. 어떻게 쓰이는 지도 모르고 무조건 외웠 다.대부분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달달 외우는 것을 잘하던 아이들이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생각하지 말고 외워!”우리나라 초등학교 4학년생과 중학교 2학년생의 수학·과학 성취도는 세계 최상위권이지만, 해당 과목에 대한 흥미도는 꼴찌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IEA)는 58개국 초중등 학생 50여만명이 참여한 ‘수학·과학 성취도 추이 변화 국제 비교 연구’결과를 발표했다.우리나라 초등학교 4학년생의 성취도는 수학 3위, 과학 2위를 기록했다. 이 평가를 처음으로 실시한 1995년부터 우리나라 초등학생의 성취도는 수학 2~3위, 과학 1~2위로 최상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우리나라 중학생의 성취도도 그동안 수학 1~3위, 과학 3~5위로 우수한 성적을 이어가고 있다.문제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수학·과학에 대한 자신감이나 흥미도가 밑바닥 수준이라는 점이다. 특히 중학 2년의 경우 수학·과학에 대한 흥미도가 조사 대상 국가 중 가장 낮았다고 한다.“미국 수재들은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 경쟁하기가 힘들어. 우리 교육방식의 문제야.” 몇 년 전 서울대에서 포스텍으로 자리를 옮긴 한 수재 과학자가 한 이야기이다. 그가 던진 독백과 같은 이 한마디가 내내 뇌리를 때린다.그가 해준 카이스트 총장이었던 미국 국적의 러플린 이야기도 흥미롭다.러플린은 벨 연구소에서 일했는데 괴짜이고 주변 사람과 어울리지 못해 쫓겨났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로 돌아와 스탠퍼드 교수가 되었는데 벨 연구소에서 연구한 연구업적을 근거로 48세인 1998년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 후 벨 연구소의 해당 연구실은 러플린을 몰아낸 걸 크게 후회하였고, 노벨상 수상자를 몰아낸 연구실로 낙인찍혔다는 이야기다. 그는 러플린이 괴짜 연구자라고 하면서 한국에서 성장했으면 학교를 다니다가 쫓겨났을지도 모른다고 말헀다.또, 현 서울대 총장의 일화도 흥미롭다. 그는 초등학교 그리고 그 명문 중고교를 내내 수석으로 다니면서 전국 대학 입학고사 수석, 대학 수석졸업을 했던 수재이다. .그러나 그는 스탠퍼드 유학시절 “태어나서 유학까지 수석이었으나, 논문을 쓰려니 수석을 못하겠어”라고 술회하여 주변 친구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난 한국의 암기식 교육의 피해자”라고 말하며, 그의 눈가에는 가벼운 이슬이 맺혔다고 한다.오늘도 대학입시를 위한 교육방송의 유튜브의 입시 강의가 요란하다. 수억대 연봉의 스타 강사들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그들은 “외우자, 문제 형식을 알고 해법을 외우자”라고 오늘도 외친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 노벨상을 탈 수 있을 것인가?

2020-12-10

돌아보는 달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달력이 달랑 한 장 남았다. 농협에서 발행하는 12장짜리 달력의 마지막 장이다. 새해 첫날, 새 달력을 벽에 걸어 놓고 바라보면서 하루하루를 담고 있는 큼직큼직한 고딕체 숫자들이 마치 부화를 기다리는 유정란(有精卵)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매년 서른 개나 서른 한 개들이 유정란 열두 판을 선물로 받은 셈이다. 물론 겨우 몇 개나 한두 판밖에 받지 못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받은 것을 중도에 파기하고 가버린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올해 내가 받은 삼백 육십 여섯 개 중에 이제 스물 한 개가 남았다. 나는 지금까지 몇 개나 부화시켜 날려 보낸 것일까. 갓 깨어난 병아리처럼 새롭고 생기로운 날이 며칠이나 되었던가. 현자(賢者)들은 하나같이 지나간 것에 연연하거나 날을 앞당겨 걱정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 충실하라고 한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보통사람들이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이 지금에 충실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기 마련이고.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달마다 저들의 환경과 생활에 관련된 이름들을 붙였다. 가령 크리크족은 12월을‘침묵하는 달’이라 했고, 수우족은 ‘나뭇가지 뚝뚝 부러지는 달’, 샤이엔 족은 ‘늑대가 달리는 달’, 위네바고족은 ‘큰곰의 달’ , 퐁카족은 ‘아무것도 갖지 않은 달’ 등으로 불렀다. 나는 12월을 ‘돌아보는 달’이라고 부르고 싶다. 한 해의 마지막 한 달은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성찰하고 정리하는 기간으로 삼는 게 바람직할 거라는 생각이다. 자신의 삶의 궤적을 돌아본다는 것은 곧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그렇게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자기가 누구인 알기 위해서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삶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돌아보면 지난 한 해 우리나라 정국(政局)은 한 편의 막장드라마요, 소위 망나니 춤의 난장판이었다. 일 년 내내 숨 가쁘게 이어져온 광기어린 ‘망나니 춤’은 국민들의 뇌리에 한 장의 캐리캐쳐를 또렷하게 각인시켜 놓았다. 검찰총장이란 명패를 단 사내를 결박해놓고 법무장관이란 이름표를 붙인 여자가 봉두난발하고 권력이라는 칼을 휘둘러대는 장면이다. 둘러선 군중들도 두 편으로 갈라져서 서로 핏대를 세우고 삿대질을 하며 싸우고 있는, 이 한 장의 그림이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풍자화가 아닐 수 없다.철학자 소크라테스는‘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다. 일일삼성(一日三省)이란 말도 있다. 공자의 제자 증자가 하루에 세 번씩 자기성찰을 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자신을 몰각하고 반성할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다. 철면피, 파렴치, 몰지각, 적반하장, 후안무치, 막가파, 내로남불…. 이런 패륜의 말들을 날마다 곱씹어야 하는 한 해였다. 한 나라의 살림을 맡은 위정자들이 도무지 반성할 줄을 모른다면, 그 해악은 얼마 못 가서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하는 한 해였다. 누구든 나라의 녹을 먹는 공직에 있는 사람들은 이맘때쯤 제발 자신을 좀 돌아보라고 간청하고 싶다. 그래야 나라가 바로 서고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0-12-10

페어플레이 정신

정치와 스포츠는 닮은 데가 많다. 스포츠가 멋진 승부를 통해 관중의 인기를 얻어가듯 정치도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해선 대중의 인기에 부응할 것에 대해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마케팅도 마찬가지다. 스포츠는 팀의 인지도와 이미지 개선을 위해 마케팅이 필수 영역이다. 궁극적으로 팀의 수익성 창출에도 크게 기여할 분야다. 정당도 마케팅을 잘해야 경쟁 정당에 대해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스포츠가 신인선수를 스카우트하듯이 정당도 실력과 덕망이 있는 인물을 꾸준히 영입하여 정당 조직의 기반을 굳건히 다져야 한다.스포츠가 좋은 경기와 멋진 승부로 팬들을 기쁘게 하듯이 정치도 좋은 정치를 펼쳐야만 지지자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이다.다만 정치와 스포츠가 다른 게 하나 있다면 스포츠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강한 반면 정치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아예 반칙을 밥 먹듯 할 때가 많다. 관중인 국민을 안중에 두지 않을 때도 있다. 페어플레이 정신을 지키겠다고 약속하고도 거짓말을 한들 제재가 안 된다. 이젠 국민도 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페어플레이 정신은 정정당당한 경기 정신이다. 스포츠맨십이나 기사도 정신 같은 것을 말한다. 진실과 성실의 정신으로 공정한 게임을 하겠다는 뜻이다. 여당의 일방적 공수처법 통과로 지금 우리 정치가 극한 대립과 혼란으로 치닫고 있다. 처음부터 정치권의 페어플레이를 믿지는 않았지만 역시 우리 정치는 실망을 안겨주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무신불립(無信不立)은 정치가 국민의 믿음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훌륭한 정책을 펼쳐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페어플레이 없는 우리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착잡할 뿐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