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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구미 ‘보람이 비극’은 사회에 뭘 말하고 있나

최근 들어 우리사회에 아동학대와 이로 인한 사망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달 구미시 한 빌라에서 미라상태로 발견된 보람이(3세)의 생전모습이 지난 13일 MBC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되면서 아이를 방치해 숨지게 한 김모씨(22)와 김씨의 어머니 석모씨(48)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부모 잘 만났으면 너무도 건강하고 예쁘게 자랐을 아이들이 계속 희생되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는 등의 댓글이 이어지면서 보람이의 비극이 ‘제2의 정인이 사건’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우리 사회를 가슴 아프게 한 정인이 사건은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입양한 여자 아이를 부부가 장기간 학대하여 16개월이 되었을 때 죽음에 이르게 한 일이다. 지난해에는 정인이 사건 외에도 천안에서 계모가 아홉 살짜리 의붓아들을 여행 가방에 7시간 넘게 넣고 다니다가 아이가 사망한 사건, 그리고 창녕에서 아홉 살 여자아이를 계부와 친모가 동물처럼 쇠사슬로 묶고 불에 달궈진 쇠젓가락으로 발바닥을 지지는 고문을 한 엽기적인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19년 기준 아동학대 피해 경험률은 아동인구 10만 명당 381건으로 1년 전 301건보다 80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72.5건을 시작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이 “아동학대 피해 건수는 신고된 사건만을 집계하기 때문에 학대가 급증한 것인지 신고가 늘어난 것인지 구분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한 것처럼 아동학대 대부분은 집 안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가해자가 부모이기 때문에 정부가 학대 사실통계를 정확하게 집계하기는 어렵다. 요즘에는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인해 아동이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정부에서는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전수조사에 착수하겠다는 등의 대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범죄는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아동학대 범죄는 아이에 대한 사회 구성원 모두의 따뜻한 관심과 적극적인 주변의 피해신고가 전제돼야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2021-03-15

언론경쟁 유지법

미국 의회가 언론사들의 뉴스로 거대한 이익을 남겨온 구글·페이스북 등 인터넷 공룡기업을 상대로 뉴스 공짜사용을 막는 ‘2021 언론경쟁 유지법’을 발의했다.플랫폼 기업들이 언론사 뉴스를 트래픽 유인 수단으로 이용해 이익을 올리면서도 정작 언론사에 제대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법안 도입 취지다.이번에 발의한 법안에 따르면 주 1회 이상 기사를 작성하는 미국내 모든 신문·방송·인터넷매체가 연합해 구글·페이스북 등 뉴스로 이익을 남겨온 플랫폼 기업과 협상에 나설 수 있도록 했다. 현재 구글은 검색 결과에서 전문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언론사에 저작권료 대신 광고 수익 일부만 나눠주고 있다. 미국은 테크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시장 자율에 맡기고 정치권과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거대 테크 기업의 횡포로 미국 언론 산업이 피폐해지자 정치권이 더이상 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실제로 미국 신문 광고시장은 2005년 494억달러(약 56조1천431억원)였던 것이 2018년 143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구글의 광고 매출은 61억달러에서 1160억달러로 치솟았다. 지난 15년간 미국 신문사 2천100개가 사라졌다. 유럽연합도 지난 2019년 저작권 규정을 변경해 구글·페이스북 같은 플랫폼이 언론사에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게 했다. 호주도 플랫폼이 언론사와의 저작권료 협상에 실패하면 정부가 개입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뉴스로 인한 광고료 대부분을 포털이 독식하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언론이 살아야 나라가 바로 선다. 우리 국회도 포털 기업의 광고독식을 더이상 방치하지 말고, 언론경쟁유지법 발의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3-15

코로나 재확산 조짐…긴장 고삐 죄야

정부는 코로나19의 3차 유행이 다시 확산세에 있다고 조심스레 진단하고 있다. 코로나19와 관련한 각종 지수가 모두 악화되고 있는 것이 판단의 근거다.문제는 날씨가 풀리면서 봄철 행락객 등 나들이 인파가 늘면 지금의 확산세가 더 커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정부는 15일부터 현행 거리두기 방역체계를 2주간 더 연장키로 했으나 유흥시설 영업시간과 사적모임의 금지 조건을 일부 완화해 코로나 재확산의 불씨로 작용할까봐 걱정이다.15일 0시 현재 코로나 신규 확진자는 모두 382명으로 일주일만에 400명대 밑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전날이 검사 건수가 줄어든 휴일인 점을 고려하면 확산세가 진정된 것이라 보기가 어렵다. 9일부터 6일간 연속으로 400명대를 이어온 국내 코로나 감염증 사정은 각종 수치에서 나쁜 단계로 전이되는 모습이다.한 사람의 전파력을 말하는 코로나19 재생산지수가 1.07을 기록하면서 3주만에 1.0을 넘었다. 1.0 이상이면 유행의 확산으로 볼 수 있는 수치다. 또 최근 일주일 60대 이상 환자는 하루 평균 113.9명으로 일주일 전 82.6보다 31.3명이나 늘었다. 감염경로가 확인되지 않는 비율도 24.5%로 최근 4주 사이에 가장 높았다. 최근 일주일 일 평균 신규 확진자 수(439명)를 두고 보면 이미 2.5단계(전국 400∼500명) 수준에 들어선 셈이다.국내 코로나19가 수도권 중심으로 전파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지방도 사적 모임이나 목욕탕 등을 통해 확진자가 꾸준히 발생한다. 안심할 수 없는 상태다. 15일 대구경북에서도 8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정부는 4월부터 65세 이상 고령자를 비롯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대규모 접종을 시작할 계획이다. 2∼3월 접종 대상자의 10배 규모가 2분기 중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중에는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에 대한 불신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곳곳에서 접종 후유증을 호소한다. 백신 접종에 대한 불신을 불식시키면서 백신 접종자수를 늘리는 보건당국의 신속한 대응이 요망된다.이제 날씨가 풀리는 행락철이 돌아오면서 전국에는 나들이객으로 크게 붐빌 것이 예상된다. 백신 접종으로 인한 면역력이 형성될 때까지 보건당국과 국민 모두가 긴장감을 놓지 말아야 한다.

2021-03-15

예술의 일상화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모든 생물체의 움직임은 자극과 반응으로 이뤄진다.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맡거나 먹거나 하는 등으로 주변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대상을 느끼며 외부를 인지하는 것들은 모두, 생물체 고유의 감각기관의 작용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사람이나 동물의 몸에서 외계의 현상을 받아들여 뇌에 전달하는 시각, 후각, 청각, 미각, 촉각 등의 감각기관은, 외부 자극에 변화하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내부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반응하며 동작이나 행위를 하게 된다. 이를테면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喜怒哀樂) 등을 느끼는 것들은 순전히 대상물이나 주변 상황에 따른 신체반응의 결과물인 셈이다. 인간은 감정적 또는 이성적인 동물이기에 외부 자극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의식적이나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고 표현하게 된다. 외부 현상에 의해 다양하게 표출되는 인간의 무수한 감정은 개인의 인격이나 행동, 가정과 사회생활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좋은 감정은 뇌활동을 활성화시키고 건강에 도움을 주며 긍정과 발전의 방향으로 꾸준히 이끌어 주기도 한다.어쩌면 그래서 예술이 탄생했는지도 모른다. 멋진 경치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 누구나 감탄하거나 호감을 가지게 된다. 미적(美的) 가치를 형성하는 인간의 창조활동인 예술은, 세상을 밝고 새롭고 향기롭게 하며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본질이다. 오묘하고 무진한 예술은 보이지 않은 세계를 열어주고 복잡다단한 현실을 정화시켜 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예술품과 예술세계를 통한 감정이입으로 대리만족이나 생각을 새롭게 하고 깨우침과 발돋음의 계기로 삼으며 마음을 다듬고 넓히기도 한다.창작의 예술품을 거리에서 만나고 생활 속에 스미게 하면 어떻게 될까? 예컨대 가로등이나 간판의 스타일을 이채롭게 하고 벤치나 건축물의 외형을 예술적으로 디자인해서 적용한다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한결 새로움을 더하고 흥미와 감각을 부추길 것이다. 정형화, 획일화돼가는 도시에 신선한 문화의 바람이 일고 색다른 볼거리가 늘어날 것이다.예술과 접목되는 일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추구해왔고 현재도 계속 진행되는 테마가 아닐까 싶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같은 이색 건축물이나 로테르담의 초대형 예술품 같은 마켓홀 이색 시장, 통영의 동피랑 벽화마을 등을 비롯하여 하프현 같은 다리, 상징성이 가미된 벤치, 조형미가 곁들여진 간판 등은 마음을 한결 넉넉하게 하거나 재미난 스토리를 엮어내게 만든다. 평범하고 사소한 부분에서 오브제 같은 작품이 출현한다면 다채로움과 경이로움을 더해줄 것이다.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전시되는 예술작품도 나름 가치가 있겠지만, 실용성이 어우러지고 대중성을 더해가는 예술이야 말로 더욱 친숙하고 가까이서 향수하게 될 것이다. 일상에서 예술을 만나고 예술이 일상화 되듯이, 자연미와 더불어 예술미가 묻어나는 작품들이 도처에 즐비하다면 코로나로 지쳐가는 심신이 조금이나마 위무되고 힐링되지 않을까?

2021-03-15

좌절의 취업 준비생

권윤구포항 중앙고 교사학생들은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개학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가슴 졸이면서 코로나19를 걱정했다. 그동안 참 해괴한 코로나19에 의해 무참히 무너지는 인류 공동체를 지켜보면서 앞날의 삶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이 될 것이라 불안해했다.허구적 세계에서나 보아 왔던 디스토피아적인 미래가 현실이 되면서 막연하게 미뤄두었던 해결책에 대한 탐구도 서두르고 무엇보다 무심한 일상이 축복임을 깨달은 것은 역설이다. 이제 우리는 당연하게 여겨왔던 일상과 관행에 질문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다양한 첨단 기술이 사회 변혁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지만, 이러한 기술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을 더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인간의 책임을 고양하는 방향으로 줏대를 세워야한다.코로나19의 방역 차원에서는 적절한 조치지만 취업 준비생에게는 가혹한 조치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도서관이 문을 닫고 그나마 차선으로 선택했던 카페마저 이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지난 1년 동안 방안에서 한 번도 밖을 나올 수 없는 취업 준비생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조치이다. 필자의 아들도 젊고 젊은 나이에 1년 동안 책상 앞에서 책만 보면서 젊음을 죽이고 있다. 탈모현상까지 와서 병원을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있다. 가슴이 답답하다. 울고 싶다.지난 2020년에는 여러 가지고 취업 준비생에게 힘든 한 해였다. 상, 하반기 채용 시험이 없어지거나 미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취업 준비생에게 취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기업 10곳 중 7곳은 “채용 계획 없다”이다. 설 추석 명절에 부모님을 볼 수 없는 미안함 안타까움에 좁은 취업문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젊은이들이 자신을 포기하는 니트(neet)족이 많이 생겼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를 볼 수 있는 희망이 있는지 묻고 싶다.희망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사회도 이제는 젊은 사람의 취업에 점점 둔감해지고 있다.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희망이 희망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미래가 있는가. 취업을 하지 못하니, 결혼을 할 수 없고, 결혼을 못하니,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 단적으로 출산율을 보면 알 수 있다. 2020년 기준으로 0.84명으로 역대 최악을 기록했다. 요즘은 ‘삼포세대’에서 ‘칠포세대’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 집 마련, 취업, 희망의 일곱 가지를 모두 포기한 세대를 의미한다. 이들이 세상에 나아가 당당하게 접어두었던 자신의 꿈을 보여주는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눈물을 흘리는 취업 준비생들이 모호하고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일 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취업 준비생들의 눈물을 닦아줄 사회적 관심과 따뜻한 배려 사랑이 필요할 때이다.코로나19가 여전하지만 이제는 긴 터널 끝에 빛이 조금은 보이는 듯하다. 사람들 마음에도 봄은 온다. 또한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안 한해였다.올해는 눈물이 아닌 희망이, 웃는 얼굴을 보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2021-03-15

최정우 2기 포스코, 상생과 안전으로 거듭나길

정치적 외풍을 뚫고 포스코 최정우 회장의 연임이 확정됐다. 국회 산재 청문회 개최 등 정치권의 흔들기에도 주주들의 뜻이 반영되면서 최 회장의 연임이 성사된 것은 다행이다. 최정우 회장 2기 출범을 맞은 포스코는 이제 과거와 같은 흑역사를 되풀이 하여선 안 된다. 세계 최고의 글로벌 철강사로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총력을 쏟아야 한다. 정치권의 입김에 흔들리는 일은 기업의 성장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그러나 주총에 앞서 최 회장 연임 반대의 명분이 됐던 산업재해와 환경오염의 문제는 최 회장 스스로가 반드시 해결해 가야 할 과제다. 주총직후 출발한 ESG 경영체제 강화가 그에 대한 대응책으로 보여지나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두고 볼 일이다. 2018년 7월 중도 하차한 권오준 전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최 회장은 취임 초부터 기업시민이라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사회적 가치실현에 앞장서 왔다. 협력사와의 상생은 물론 지역사회와 더불어 사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 실천에도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해 왔다.경영성과 측면에서도 지난 한해는 코로나19라는 악재에도 불구, 비교적 선방을 했다. 지난해 2분기는 창립 이후 처음으로 분기 영업 손실이 발생했지만 비상 경영체제를 가동함으로써 한 분기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글로벌 철강사 중 최고 수준의 신용등급도 유지했다. 다만 연임 반대의 명분이었던 산업재해 부문은 사망사고 등이 잦아 오점을 남겼다. 포스코는 철강산업 분야에 있어 세계 최고의 기업이다. 우리나라 국가산업 성장의 선봉이자 상징이다. 이제 최 회장의 2기 포스코는 세계 일류기업을 추구하는 민간기업으로서 이미지 구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역대 포스코 회장 중 연임 후 임기를 제대로 마친 경우가 없다는 불명예도 이번에는 씻어야 한다.오로지 기업의 발전과 사회발전을 위한 기업의 공존공생 가치 실현에 열과 성을 다하여야 한다. 지금은 코로나 이후 다가올 글로벌 경쟁시대에 살아남는 전략에 시간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미래시장 선점이 기업의 100년 미래를 보장한다는 각오로 뛰어야 한다. 최정우 2기 포스코에 거는 포항시민의 기대도 크다. 포스코 본향이라는 자부심에 부응하는 포스코의 변화와 발전에 큰 응원을 보낸다.

2021-03-14

“국민을 바보로 아는가”

심충택논설위원정부 산하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같이 엄청난 이권(利權)을 가진 수많은 공기업과 공공기관, 기타공공기관이 있다. 이들 기관에 소속된 공직자들의 비리는 주로 내부고발, 국민권익위 신문고 등에 의해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비리내용이 가볍다고 판단될 때는 자체감사로 종결되지만, 비리규모가 크고 사회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으면 해당 정부부처 감사실이나 감사원에서 감사반이 투입돼 조사를 한다. 그러나 감사주체가 어디든 비리혐의 당사자가 자신의 부정행위를 시인하지 않고, 증거자료도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검찰에 수사의뢰를 할 수밖에 없다. 증거자료를 찾기 위해서는 계좌추적이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검찰을 통해 법원에 영장을 발부받아야 하기 때문이다.LH 임직원들의 수도권 신도시 땅투기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출범한 정부합동조사단이 지난주 국토교통부와 LH 임직원 1만4천명을 대상으로 토지거래를 조사한 결과 20명의 투기의심사례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당초 민변과 참여연대가 투기의심 현직 LH 직원 13명을 공개했던 것을 포함하면 합조단이 새롭게 밝혀낸 직원은 7명에 불과하다. 청와대도 같은 날 “비서관급 이상 간부들을 전수조사한 결과 투기의심 거래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정부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가 그야말로 빈수레만 요란했던 셈인데, 국민 대부분은 “우리를 바보로 아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애초 비리수사를 검찰에 맡기지 않고 국토부의 ‘셀프조사’에 의존할 때부터 예상됐던 일이다.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얼마 전 신도시 땅투기 의혹과 관련해 “직원을 조사할 게 아니라 돈 되는 땅을 조사하고 매입자금을 따라가야 한다. 거래된 시점, 거래된 단위, 땅의 이용실태를 분석한 뒤 매입자금원을 추적해 실소유주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투기의혹을 조사하기 위한 상식적인 수사기법을 얘기한 것이다. 윤 전 총장의 말처럼 돈 되는 땅과 돈의 흐름을 즉각 대대적으로 뒤졌다면 투기의심자가 이 숫자 밖에 나올 수가 없다. 이러니 여야를 막론하고 이번 조사에 대해 “지인이나 차명거래는 물론이고 배우자 기록도 조사된 바 없는 ‘무늬만 조사’”(윤희숙 국민의 힘 의원), “부동산 타짜들이 제 이름 갖고 투기하느냐. 셀프조사의 뻔한 엔딩”(심상정 정의당 의원), “국민이 만족하기 어려운 어설픈 대응은 화를 키울 뿐”(노웅래 민주당 최고위원)이라는 비난을 쏟아내지 않는가.LH 직원들이 공적(公的) 지위를 이용해서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은 중범죄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청년들과 서민들은 지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 부동산 가격 때문에 내 집 마련 꿈을 포기하고 절망에 빠져 있다. 그런데 국민 세금으로 먹고사는 공직자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땅 짚고 헤엄치듯 거액을 벌어들이고 있으니 민심이 악화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인해 검찰에 수사를 맡길 수 없다고 하는데, 정부·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땅투기 발본색원’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21-03-14

대구시 땅 투기조사 ‘맹탕’소리 안들어야

대구시가 지난 주말(12일) “대구시 본청과 구·군, 대구도시공사 등 소속 공무원 및 임·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관내에서 시행된 대규모 개발사업지구 12곳 모두에 대해 불법 투기여부를 합동으로 전수조사 한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관 사업지구인 연호공공주택지구,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 등 5개 지구 9천159필지와 대구도시공사 주관 사업지구인 수성의료지구, 안심뉴타운 등 7개 지구 4천761필지 등 총 12개 지구 1만3천920필지다.공영개발 택지에 대한 불법 투기행위로 인해 전국적으로 공직사회에 대한 불신과 의혹이 높은 시점에서 대구시가 전체 공무원과 대구도시공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투기의혹에 대한 조사를 하기로 결정한 것은 잘한 일이다. 안 그래도 대구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는 대구지역 공직자들의 부동산 불법 투기여부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 왔다.대구시는 전수조사를 2단계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공무원과 대구도시공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1차 조사를 한 뒤 법률 검토 등을 통해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등으로 범위를 넓혀 추가 심층 조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대구시는 “심층 조사의 경우 국세청과 협의를 한 뒤 혐의점이 있으면 고발조치 등을 취하겠다”고 했다.현재 대구시뿐만 아니라 경기도와 인천시, 경남도도 소속 공무원과 지방 공기업 임직원의 땅투기 여부에 대한 전수 조사 방침을 발표했다. 경북도는 감사관실에서 경북개발공사가 시행한 택지개발지역과 주변 땅을 대상으로 투기여부를 조사하기로 했다. LH 임직원들의 신도시 땅투기 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사는 만큼, 지방자치단체도 관련직원들의 투기여부를 철저히 조사해서 공직사회를 둘러싼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지자체가 자체적으로 합동조사단을 꾸려 부동산 투기조사를 하는 것에 대해 실효성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직원 명단과 토지거래내역, 등기부등본 등을 대조하는 조사 방식으로는 불법여부를 밝히기는 힘들다. 내부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 개연성이 높은 노른자 땅의 경우 국세청과 경찰, 검찰의 협조를 받아 자금흐름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거래내역을 철저히 밝혀내 국민신뢰를 받도록 해야 한다.

2021-03-14

빙산의 일각

길거리에 툭 튀어나온 돌멩이처럼 몸체는 묻혀있고 한 부분만 뾰족이 솟아난 것을 두고 순 우리 말로 ‘뿌다구니’라고 부른다. 표준국어 사전에는 “물체의 삐죽하게 내민 부분”이라 설명하고 있다. 돌출부와 비슷한 뜻이다.어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고 극히 일부의 사실만 밝혀진 경우에도 “뿌다구니에 지나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과 같다. 빙산은 빙하나 빙봉이 바다까지 흘러나와 자연스럽게 생긴 얼음 산이다. 물 위에 떠있는 얼음조각이 모두 빙산은 아니다. 보통 빙산이라 함은 물 위에 나타난 얼음의 높이가 최소 5m 이상일 때를 말한다. 그 이하면 흐르는 얼음 조각이란 뜻으로 유빙(流氷)이라고 한다.물은 응고되면서 수소와 결합해 부피가 늘어난다. 액체 상태일 때보다 밀도가 작아져서 물 위에 떠있을 수 있게 된다. 물과 얼음의 밀도 차는 10% 정도인데, 물 위에 떠있는 부분은 전체의 10% 미만이다. 위로 돌출된 부분이 5m 정도 높이라면 얼음 속 깊이는 30∼50m 크기 정도는 된다고 보아야 한다.배가 항해를 할 때 빙산을 발견하면 선회해 가지만 실제는 비껴가지 못하고 선체 밑바닥 일부분이 거대한 빙산과 충돌할 수 있다. 빙산과 충돌한 대표적 선박 사고가 1912년에 일어난 타이타낙호의 침몰이다. 1천명이 넘는 승객이 사망한 세계 최대 해난 사고다.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신도시 100억원대 땅 투기의혹 사건이 걷잡을 수 없는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의 발본색원 의지에도 국민들 반응은 싸늘하다. 전국에서 정치인, 공직자 등의 유사 투기사례가 연일 드러나 국민들은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 생각한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는 이미 밑바닥까지 갔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3-14

SNS 다이어트

이재혁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목 디스크가 의심될 정도로 아픈지가 한참은 된 것 같다. 예전에는 심하게 과로를 하면 등이 아프고 어깨와 목이 많이 아팠는데 요즘은 이런 통증이 일상이 되었다. 목 통증 원인을 알기 위해 병원을 찾았지만 X-레이 촬영을 통해 일자목, 거북목이란 진단과 물리치료를 하라는 답뿐이다. 일시적 통증 완화다. 일상 속에서 원인을 찾아보면 컴퓨터의 장시간 사용과 누워서 TV를 보는 습관이 큰 원인 같지만 사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고개를 숙여서 가장 많이 목을 혹사시키는 것이 스마트폰 사용이다.스마트폰으로 SNS를 많이 이용하는데, SNS는 사회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또는 사회 네트워크 사이트(Social Network Site)를 말한다. SNS는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 문화적 영향력이 엄청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영향력이 존재하는 만큼 다수의 부작용도 존재하고 있다.과거에는 전화통화와 문자메세지 이용이 전부였지만 정보통신의 발달로 요즘 사람들은 카카오톡, 밴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많이 이용중이며 TV나 영화도 스마트폰으로 많이 시청하고 있다. 목 통증의 원인이 스마트폰의 사용이지만 해결하기가 쉽지가 않다. 필자는 올해 초부터 SNS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사실 SNS가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원하지 않는 단체 카톡방 초대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태그들은 많은 부담을 준다.특히 카카오톡의 단체방은 “카톡 지옥”, “카톡 감옥”이라고 불릴 정도로 피해가 상당하다. 모르는 사람이 초대한 그룹 채팅에 참여한 후 빠져나오고 싶어도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도 있고 불특정한 다수 이용자가 한꺼번에 초대되는 카카오톡 감옥은 채팅방을 나가도 다수 이용자가 동시에 다시 초대해 나갈 수가 없어진다.SNS에 명품, 여행, 음식, 외모 자랑 등의 게시물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게시물들을 보다보면 자신이 기준점이 아닌 상대를 기준으로 삼아 그들의 화려하고 행복한 일상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은 실제로 잃은 것이 없지만 상대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잃은 듯한 상대적 박탈감, 허탈감, 자존감 결여, 우울증 등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 증후군으로 사이버 리플리 증후군, 포모 증후군이 있다.사이버 리플리 증후군이라 불리는 증상은 사이버 상에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자신의 인생이라고 착각하는 증후군이며 다른 사람의 사진을 자신의 것처럼 사용하고 마치 그 사람인 것처럼 행세한다. 심한경우 절도, 사기, 살인 등 큰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포모 증후군(고립공포감)은 매진임박, 한정수량 등 제품의 공급량을 고의로 줄여서 소비자를 조급하게 만들어 심리적 압박을 이용해 물건을 사게 하는 마케팅사용법에서 파생되었는데 자신만 세상의 흐름을 놓치고 있고 같은 동료나 친구들 사이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해 사회에서 자신이 제외될까봐 두려워하는 증상을 뜻한다. SNS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의존하며 불안감이 매우 큰 증상을 말하며 이러한 심리적 문제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개인정보 유출이나 심지어 SNS상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사기행위도 행해지고 있다.팔이피플이란 신조어는 ‘팔이’와 ‘피플(people)’의 합성어로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influencer : SNS에서 수만 명에서 수십만명에 달하는 많은 구독자를 통해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가 SNS를 통해 제품을 홍보하고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일컫는다. 주문을 받으면 제조업체가 재고를 관리하고 배송을 해주고 제품의 가격은 비밀 댓글로 문의해야하며 카드결제는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문할 수 있는 기간은 한정되어 있고, 물건을 받을 수 있는 날짜는 주문일로부터 10일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다.전자상거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 17조 제 1항에 따르면 단순 변심이어도 제품을 받은 7일 이내 환불과 교환 모두가 가능하다 하지만 몇몇 팔이피플은 맞춤제작, 공구 특성상 등 이런저런 이유로 교환과 환불이 어렵다고 하는데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이다. 심지어 제품이 불량인 경우에도 하루나 이틀 안에 연락해야만 교환, 환불이 가능하다 또한 식품, 화장품의 경우에는 제대로 된 품질관리나 성분 검사가 안 된 제품도 많고 허위, 과대광고도 문제가 심각하다.정보화 사회, 4차 산업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정신적, 신체적, 경제적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SNS 다이어트를 가져볼 필요가 있다. 필자의 경우에도 스마트폰을 통해 파일전송이나 사진전송을 쉽게 하다가 문자만 사용함으로 불편은 있지만 이메일을 적극 사용하고 간단한 사진은 문자로도 전송할 수 있어 크게 불편함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무조건 SNS를 사용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SNS 사용에 시간을 얼마나 쓰는지를 스스로 확인해보고 장단점을 고민해보면 해답은 쉽게 얻을 수 있다. 스마트폰 설정에서 디지털웰빙, 방해금지모드, 앱시간 제한 등의 기능을 사용하면서 오늘부터 서서히 SNS 다이어트를 통해 더 많은 시간을 스스로에게 선물해보면 어떨까?

2021-03-14

위드 코로나 시대의 도시

윤대식영남대 교수·도시공학과코로나 사태가 벌써 1년을 넘기면서 시민들의 활동은 크게 위축됐고, 도시의 모습 역시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시민들의 이동을 위한 교통수요는 크게 감소했으며, 특히 대중교통수요가 크게 줄면서 도시철도와 버스는 깊은 적자운영의 늪에 빠졌다. 그러나 전자상거래와 배달주문의 활성화로 물류와 택배는 증가하고, 언택트 산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재택근무의 증가로 말미암아 주택이 주거기능뿐만 아니라 사무공간의 기능도 함께 수행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세계적인 대도시들은 재택근무의 영향으로 대도시 ‘엑소더스’와 함께 임대료가 싸고 주거환경이 좋은 교외지역으로의 주거이전도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이 모든 것들이 위드(with)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도시 모습들이기는 하지만, 코로나 사태와 관계없이 이미 오래전에 많은 미래학자가 전망했던 도시의 모습들이기도 하다. 최근 수십년 사이에 가장 획기적인 기술혁신과 실용화가 이뤄진 분야가 정보통신기술임에 반해, 획기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영역이 많은 분야가 바이오(의료)기술이다. 바로 이러한 현실을 상기한다면 요즈음 우리가 겪는 위드 코로나 시대 도시의 모습들은 현재의 정보통신기술과 바이오(의료)기술의 수준을 매우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도시의 모습들은 미래학자들이 전망했던 것보다 좀 더 빨리 우리에게 다가왔을 뿐이다.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가장 큰 변화는 모임(집합)과 이동의 통제로 인한 전반적인 교통수요의 감소와 버스와 도시철도와 같은 대중교통의 이용 기피이다. 따라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 대량수송 위주의 교통정책에서 탈피해 시민들의 보건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교통정책으로 전환이 불가피하다. 결국, 효율성 위주의 교통정책에서 벗어난 다른 가치와 목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함을 일깨워 준다. 아울러 증가하는 물류와 택배 수요를 충족시키고자 물류 인프라를 확충하고, 비대면 택배 송수신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힘써야 한다.한편,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재택근무의 증가이다. 평소에는 재택근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가졌던 공공기관과 기업들도 재택근무의 새로운 가능성을 살펴볼 기회를 이번에 가지게 된 것이다.코로나 사태 이전에 많은 직장인에게 주택은 단지 퇴근 후 잠시 쉬고 잠만 자는 공간에 불과했으나, 재택근무를 하면서 주택이 사무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재택근무로 인해 통근 대신 통신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고, 인간관계의 중심도 직장에서 주거지역과 온라인 커뮤니티로 변하고 있다. 재택근무와 전자상거래의 증가로 주거공간수요는 늘어나는 반면, 상업시설의 공간수요는 줄어들고 있다. 주택은 주거공간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워크스테이션(work station)으로서의 기능도 가지게 되면서 주거입지 패턴 및 주택의 실내공간과 주거단지의 구성에 대해서도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아울러 도시의 주요 기능도 단순히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과 판매의 장소에서 벗어나, 문화의 생산과 소비, 그리고 교류의 장소로 변화를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결국 인간의 거주공간은 분산된 집중의 형태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이처럼 예견되는 전망을 바탕으로 도시공간의 재구조화(restructuring)가 필요하다.도시는 유기체(有機體)이다. 도시는 단순히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생명력을 갖고 있어서 진화할 수도 있고 사멸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도시의 흥망성쇠는 사회적 재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좌우됐고, 도시계획 사조(思潮)와 제도도 사회적 재난을 겪으면서 변화했다.서구(西歐)사회에서 근대적 의미의 도시계획에 대한 입법은 대부분 산업혁명 이후 도시로 대량 이주해 들어오기 시작한 노동자들의 비위생적이고 불량한 주거환경 개선에 초점을 뒀다. 도시 저소득 노동자들의 건강과 위생 상태에 대한 관심은 사실상 19세기 초부터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컨대, 영국의 ‘공중위생법’(Public Health Act) 등의 보건 및 위생 관련 입법조치들은 상하수도, 도로포장 등에 대한 규정을 포함함으로써 근대적 도시계획 입법의 선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도시계획의 집행수단인 용도지역제(zoning)도 사실은 주민들의 위생과 보건에 관심을 두고 만들어진 제도이다. 16세기 스페인의 필립(Philip) 왕이 신세계(개척지)에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 때 길은 바람에 휩쓸리지 않는 방향으로 내도록 하고, 도살장은 주민들에게 악취를 풍기지 않도록 도시의 외곽지역에 입지시키도록 명령한 것이 용도지역제의 초기 시도이다.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도시는 새로운 진화를 모색하고 한다. 이제 전염병을 비롯한 사회적 재난에 강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드는데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도시는 유기체이고, 언제든지 사멸할 수도 있고 진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21-03-14

나뭇가지 자르기

윤영대수필가봄비가 내리고 나니 뒤뜰의 대나무 숲은 겨울의 한기를 씻어 곧고 푸른 줄기가 더욱 생기를 찾고 마당 앞 담장 곁에 있는 몇 그루 나무들도 가지에 물기를 머금은 듯하다. 벌써 꽃망울 부푼 나무들도 있고 몇 년간 미처 손쓰지 않은 탓인지 삐죽한 가지들이 제멋대로 자란 녀석도 있다. ‘가지를 칠 때가 되었지’ 하고 나무들을 둘러 보았다. 산야에 자라는 나무들은 그곳의 환경에 맞게 제멋대로 자라겠지만 정원의 나무는 알뜰히 가꾸어 주어야만 좋은 모습을 갖는다.전정(剪定) 작업은 불필요하거나 오래된 가지를 자르고 다듬는 것을 말하는 데, 나무의 특성을 살려 외형을 다듬으며 햇빛과 바람이 잘 통할 수 있게 속 가지를 솎아주고 또 풍요로운 결실을 위해 잔가지를 잘라주어 바람직한 성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좁은 정원을 10여 년째 돌보다 보니 몇 가지 기본적 지식을 머릿속에 넣어두었다. 전지(剪枝)하는 순서로는 키우고 싶은 수형에 맞게, 큰 가지나 굵은 가지부터 자르는데 위에서 아래로, 또 밖에서 안으로 가지들을 정리하면 된단다. 그래도 가지를 자르다 보면 멈칫멈칫 아리송한 경우가 많다. 자를 때의 세부적인 규칙도 있다. 서로 엇갈리거나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자라는 가지, 아래로 축 처지는 가지와 자기 혼자 쭉 올라가는 가지를 균형 있게 자르고, 물론 부러졌거나 죽거나 약한 가지는 모두 자른다.보리수나무는 여름이면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서 많이 따먹었는데 작년 이맘때 앞 담장을 향하는 낮고 굵은 밑가지를 잘랐더니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열매도 많이 달리지 않았고 도장지들만 쑥쑥 자라고 있다. 꽃말이 ‘부귀’라는 배롱나무도 매년 매끄러운 가지 끝에 화려한 분홍 꽃들을 피워 그냥 두었더니 이제 내 키를 훌쩍 넘어 자랐다.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사다리를 놓고 전지가위도 큰 것 작은 것 그리고 톱도 꺼내 들었다. 우선 눈에 먼저 띄는 웃자란 도장지를 솎아 자르고 내가 원하는 나무의 모양을 그리며 가지들을 잘라 나갔다.해마다 노란 모과를 한 소쿠리씩 던져주던 모과나무도 그새 자라서 앞집 지붕 보다 커버렸다. 어렵게 나무 사이를 기어올라 중앙의 굵은 가지를 싹둑 잘라서 키를 낮추었더니 한결 보기가 좋다. 석류나무도 얽히고설켜 서로 가지를 부딪히던 것을 많이 잘랐다. 가죽나무는 벌써 망울이 보이기에 올봄 새순을 따먹은 후에 가지치기할 작정이다.우리 일상의 삶도 ‘가지자르기’가 필요하다. 마구 벌여 놓은 일들, 복잡한 인간관계 등도 자신이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과 경제력에 맞게 잘 자르고 가다듬어서 모양 좋고 꽃들이 잘 어울려 피고 열매도 풍성하도록 해야한다. 물론 요즘의 세태를 보면 정치계도 깔끔한 전지작업이 필요하다. 제멋대로 놓아둔 나무들은 가지들이 서로 엉켜 수형은 물론 병충해가 들끓어 나무둥치가 썩고 죽은 잎은 가지에 쌓여 햇빛이 들지 않아 그 열매조차도 맛을 잃기 때문이다.곧 4월, 뜰의 소나무를 전지할 시기이다. 새순을 따고 가지를 다듬어 우아하고 품위 있는 자태를 가질 수 있도록 잘 가꾸고 싶다.

2021-03-14

도박에 빠진 당신에게

문가인참마음심리상담센터 원장인간의 구성요소를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어떤 사람은 남자와 여자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심리학자인 나에게 물어보면 생각, 감정 및 행동이라고 대답하겠다. 이 세 가지가 자신에게 도움 되는 방향으로 향한다면 적응, 이 세 가지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향한다면 부적응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겠다.인간은 태어나서 당연히 살기를 원하고 삶에 도움 되는 방향으로 행동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예도 있다.20세기 정신과 문화에 영향을 미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했다.“인간은 살고자 하는 본능도 있지만 죽고자 하는 본능도 있다.”그래서 그런지 사람들 중에는 생각과 감정 및 행동이 부적응적인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나를 찾는 내담자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생존본능을 향해 나아가지만 어떤 사람들은 죽음의 본능에 휩쓸리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인 것이다. 생각과 감정의 부적응문제가 대부분이지만, 그중에는 행동의 부적응문제도 상당하다. 그 문제가 바로 중독과 관련된 문제들이다. 대표적으로는 알코올중독, 도박중독, 니코틴중독, 게임중독 등일 것이다.그중에서 도박중독은 도박장애라는 정식 진단명을 가지고 있다. 즉, 정신질환이라는 것이다. 정신질환을 극복하려고 할 때 스스로 안되면 외부의 전문가를 찾게 된다.나는 심리학자이므로 약물치료를 하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도박중독을 비롯한 중독문제를 가진 사람을 치료적으로 접근할 때, 그들의 감정과 습관을 주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을 도박중독환자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들의 감정이 도박을 일으키고, 그것이 습관화되어 조절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감정과 습관을 적응적으로 변화시켜주면 도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감정이 있어서 우리가 사랑과 우정을 느끼면서 행복을 누릴 수 있지만, 이 감정 때문에 우리는 좌절하고 실패하며 불행해지기도 하는 것이다.내가 최근에 만난 도박중독이라는 낙인을 지닌 내담자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가 도박을 주로 하는 경우를 분석해보면, 그는 ‘상실감’, 즉 불쾌한 감정이 든 어느 날 우연히 도박하게 되었다. 도박을 하는 순간 상실감을 잊어버리고 벗어나게 되면서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게 된 것이다. 그것이 몇 번 반복되니 그의 마음속에 그것은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자동화되었고, 어느 날 자신이 하는 행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단계에 오게 된 것이다. 그의 감정과 습관의 연결고리를 찾아보면 도박문제도 쉽게 풀리게 되어 있다.‘도박은 절대로 끊지 못한다. 손가락을 잘라도 안된다’라는 말들이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 방법을 찾아보지도 않고 미리 포기하면서 불행 속에서 허우적거릴 수도 있다.인간은 진화하고 심리치료 기술도 진화하고 있다. 당신 앞에 넓은 문과 좁은 문 두 개가 있다. 어리석은 자가 선택하는 넓은 문에는 답이 없다. 당신이 부디 좁은 문을 선택하여 지혜로운 자가 되기 바란다.“도박은 정신병이 아닌 습관입니다.”

2021-03-14

백신사업으로 시작된 안동 미래 혁신

권영세안동시장코로나19와의 1년, 전례 없는 위기 속에 비대면은 일상이 되고 마스크는 필수품이 되었다. 지역 경제는 막대한 타격을 받았고 밤낮없는 의료현장의 사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근 백신이 공급되면서, 우리는 조금씩 회복에 다가서고 있다.지난 2월 24일 국내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을 위탁 생산·공급한 SK바이오 사이언스 안동L하우스백신센터는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됐다. 노바백스와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하며 백신 주권에 한 발짝 다가섰고 이로써 국가적 재난에 대응해 진정한 기업의 가치를 실현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한편으로는, 코로나19 조기 종식의 최전선에 안동시가 함께함으로써 시민들에겐 자부심을 안겨주기도 했다.2010년 당시는 아무도 코로나19의 출현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신종 인플루엔자 등 팬데믹의 위험성으로 인해 백신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던 시기였다. 경북도와 안동시,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이 추진한 ‘인플루엔자 등 백신원료 맞춤형 생산지원 사업’의 참여기업으로 SK케미칼이 최종 선정됐다. 백신사업을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정하고 다년간 사업 준비에 박차를 가해온 SK케미칼과 국가 필수예방백신 개발·생산을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를 이루고자 한 경북도와 안동시의 협력이 코로나19 백신 생산의 모태가 된 것이다.안동시는 백신 산업 집적화에 더욱 집중하여, 2016년 국제백신연구소 안동분원을 유치했고, 시와 투자협정한 SK플라즈마는 900억 원을 들여 3만1천㎡ 규모의 혈액제 공장을 준공했다. 포화된 1차 일반산업단지에 이어 2019년 49만6천㎡ 규모의 경북바이오 2차일반산업단지를 기공했고, 지난해 말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 건립을 통해 백신 연구·개발을 위한 최고 수준의 시설을 제공하고, 세계적 수준의 임상용 백신 생산을 지원할 계획이다.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원으로 추진된 백신사업이 마침내 국내 최초의 백신 공급이라는 결실을 맺게 됐다. 지난해 말 대구경북통합신공항 대상지로 군위와 의성이 확정되며 경북권역 대도약의 서막이 올랐다. 올 1월에는 신형 KTX의 중앙선 복선전철이 청량리~안동구간까지 개통되며 경북 북부권의 교통 접근성이 대폭 향상되고 있다. 인구소멸로 존립 기반자체가 흔들리는 경북 북부권은 이와 연계한 미래성장동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이다.이번 중앙선 철로 변경에 따라 1942년 2월 일제강점기에 임청각 마당을 가로지르며 놓인 철로가 철거되고 있다. 임청각은 2025년까지 280억 원을 들여 옛 모습으로 복원된다. 기존 역사부지를 포함한 폐선부지는 문화관광시설로 조성된다. 안동 원도심의 중심지인 구역사부지는 테마공원, 지하주차장, 문화시설 등으로 조성해 시민들의 품으로 돌려줄 계획이다. 경북도청 이전, 터미널·기차역 이전 등으로 성장의 축이 서쪽으로 편향된 것을 만회하고 구역사부지를 원도심 발전의 중심지로 새롭게 개발해 나갈 계획을 갖고 있다.이에 앞서 지난해 1월 지역관광거점도시에 선정된 안동시는 대한민국 대표 세계문화유산 관광도시를 비전으로 첫 발을 디뎠다. 앞으로, 2024년까지 1천억 원을 투입해 내국인 관광객 수 1천만 명, 방한 관광객의 5%가 안동을 방문할 수 있도록 도시브랜드 구축, 거점자원 매력강화, 관광수용태세 개선, 관광생태계 조성에 전력을 집중할 계획이다.올해 완공되는 세계유교문화박물관, 안동국제컨벤션센터, 한국문화테마파크 등 3대문화권 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 한국 정신문화의 근간인 유교문화와 21세기 첨단 기술을 결합해 유교 대중화 및 세계화에 진력해 나간다.앞으로 안동시는 지역특화사업 즉, 문화관광, 바이오·백신, 대마 등의 산업을 활용해 ‘10년간’ 매년 가용재원의 10%를 꾸준히 지원하여 지역대학, 중소기업과 연계해 안동형 일자리를 창출한다.지역 거점 대학에서 관련 산업 전문가를 키우고 지역 소재 기업체에 취업시킴으로써 코로나 이후 경제 활성화를 견인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민선 7기의 마지막 1년여를 앞두고 유종의 미를 거둘수 있도록 지역 역점사업의 주춧돌을 공고히 놓으며 지속가능한 안동 미래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2021-03-14

소나무 숲에 숨어서

가야지 가야지 하며 못 가 본 곳이었다. 경주에 터를 잡은 선배를 만나러 갔던 날, 늦은 점심을 먹고 어디로 갈까 하길래 관광객은 모르는 곳에 데려가 달라 했다. 그랬더니 데려간 곳이 선도산이었다. 꼬불꼬불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는 동네 골목길을 따라 오르니 도봉서당이 나타났다. 오후의 햇살이 산으로 둘러싸여 우묵한 곳에 자리한 탑을 비춰 주고 있었다.주차장 위로 닥나무가 훤칠하니 서 있었다. 그 옆에 삼층석탑이 우두커니 섰다. 문화재에 대해 모르는 이가 보기에도 탑의 모양이 어딘가 이상했다. 문화재 안내판의 내용을 읽어보니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때도 석공의 기술이 다 좋지는 않았나 보다. 오늘의 목적이 이 탑이 아니었으니 해지기 전 서둘러 산으로 발길을 재촉했다.동네 이름이 서악이다. 서쪽에 있는 돌산이라는 뜻이니 저 산 어딘가에 돌을 숨겨놓았을 것이다. 선배가 마애삼존여래입상을 보여주겠다며 소나무 오솔길 사이로 난 임도로 우리를 안내했고, 빽빽한 소나무 사이로 이어진 길을 무작정 따라 올랐다. 처음 걸을 땐 등산 초보자도 걸을 만했는데 그늘이 없어지고 가파른 길만 계속되니 30분 만에 산멀미가 찾아왔다. 어지러워서 더이상 나아가지 못해 아쉽지만, 운동 열심히 해서 다시 오자하고 삼존불은 보지 못 하고 발길을 돌렸다.내려올 때는 숨이 덜 차, 올라갈 때 보이지 않던 소나무 숲에 가만히 엎드린 능이 보였다. 한두 개가 아니라 십여 개의 능이 삼층탑을 중심으로 빙 둘러선 모습이었다. 능 사이로 걸었다. 경주는 어디를 가나 능이 보이는 곳이다. 거리에 붙은 출산장려정책 포스터에도 능과 임산부의 불룩한 배를 형상화해서 천년을 이어온, 천년을 이어갈 책임을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었다.하지만 능을 이렇게 가까이 돌며 걸을 수 있는 곳이 몇 안 된다. 위에 능부터 주인의 이름을 보니 그 유명한 진흥왕릉이었다. 화랑도를 국가조직으로 공인하고, 황룡사 건립하여 신라의 국력 과시. 한강 유역 모두 장악, 대가야 병합, 함흥평야 진출 등 신라 최대의 영토를 개척해서 진흥왕 순수비를 곳곳에 세운 왕이다.  그 밑에 진지왕, 문성왕, 헌안왕의 능이 차례로 있어서 사이를 오가며 내려왔다. 그 끝에 바위에 구멍이 뚫린 청동기 유적도 있어서 아이들과 와서 보면 좋을 곳이었다. 다만 신라 시대 능 옆에 번듯하게 비석이 놓인 조선 시대 묘가 있어서 이건 뭐지 싶은 풍경도 있다.네 개의 왕릉 맞은편에도 그 안에 누가 누운 자리인지 모르지만, 능이 십여 개 더 있어서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산책길 중간중간에 벤치가 놓여있으니 두런두런거릴 수 있어서 더 좋은 소풍 장소였다.이곳에 다녀온 후 만나는 이마다 산책할 좋은 장소를 발견했다고 자랑했다. 진흥왕릉에 가 보았냐고 물으니 다들 그 아래 무열왕릉은 알아도 진흥왕릉이 어디 있는지는 몰랐다. 네이버 지도에서 검색하던 H가 “여기 가을에 구절초 축제하는 거기 같은데.” 한다. 예전엔 삼층탑 앞에 절이 있어서 사람들을 불러들였을 테지만 지금은 봄에 작약꽃을 피워서, 가을엔 만발한 구절초가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 이끈다. 꽃 앞에서 인증샷을 찍으면서도 소나무 사이에 엎드린 능을 알아채진 못했던 것이다.몇 해 전, 독서회 회원들과 옥산서원에 봄 소풍을 갔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곡을 옆에 끼고 서원을 향해 걷는데, 한 회원이 여름마다 아이들 데리고 물놀이 왔던 곳이라며 화들짝 웃는다. 나두나두 하며 두 명이 합세했다. 매 해 물놀이를 하면서도 서원 건물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문화재가 우리 생활에서 얼마나 멀리 있는지 말해주는 듯했다.오월이 오면 작약을 보러 한 번, 시월에는 구절초를 만나러 또 한 번 서악동에 가야겠다. 꽃과 함께 소나무 숲에 엎드린 능의 주인들과 역사 이야기도 나누면서 산책길을 돌아야겠다. /김순희(수필가)

2021-03-14

투기 막겠다던 정부, 뭐했나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또 한번 도마에 올랐다.수도권 집값을 잡겠다고 24차례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며 부산을 떨었던 정부다. 그 와중에 공공택지를 개발해 공급하는 한국주택토지공사(LH) 직원들이 개발정보를 빼돌려 광명·시흥·과천 등 3기 신도시 개발예정지에 대거 땅 투기에 나선 사실이 밝혀졌다. 언론보도만 살펴봐도 수도권 신도시 개발예정지에서는 물밑 아귀다툼처럼 투기가 벌어졌던 모양이다. 국민의힘 부동산투기조사특별위원회 소속 곽상도 의원실에 따르면 2018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광명·시흥 7개동 일대 토지 실거래 내역을 전수 조사한 결과 3기 신도시로 지정되기 이전 2년여간 광명·시흥 일대(7개 동)에서 땅 투기거래를 한 사람 중 LH직원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74명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광명과 시흥뿐만이 아니라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과천에도 LH직원들이 땅을 산 정황이 나왔고, 행정수도인 세종시에서도 투기의혹이 일고 있다. 지난 2018년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된 세종시 연서면 와촌리 일대 땅을 산단 발표 직전 외지인들이 사서 조립식 건물, 이른바 ‘벌집’ 100여채를 곳곳에 지었다고 한다. 경기도 광명시 공무원 6명과 시흥시 공무원 8명이 본인 또는 가족 명의로 광명·시흥 신도시개발 예정지에 땅을 산 사실도 드러났다. LH직원 본인 명의 말고, 가족 명의로 산 땅도 다수 확인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가 모두 발본색원, 일벌백계, 부당이익 환수 등을 약속했고, 정부합동수사본부가 18개 시·도경찰청, 관계기관 인력파견 등 총 770명 규모로 구성됐다. 하지만 정작 부동산 투기 등에 대해 전문적인 수사역량을 갖춘 검찰이 수사본부 구성에 빠져 있어 왠지 찜찜하다. 투기혐의를 받고 있는 직원 상당수가 2기 신도시인 분당 판교와 수원광교에 있는 값비싼 집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나 투기의 뿌리를 캐다보면 어디까지 뻗쳐있을 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더구나 지금대로라면 LH직원들을 처벌하거나 이익을 환수하는 게 그리 쉽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현행 부패방지법에 따르면 업무과정에서 얻은 정보로 이익을 얻을 경우 7년 이하 징역이나 7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지게 돼있다. 하지만 LH직원들은 이미 다른 사람도 다 알고 있는 시중의 정보를 바탕으로 투자했을 뿐이라고 주장, 내부정보를 활용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처벌 자체도 어렵다. 무엇보다 금융위원회 소속 공무원과 금융감독원 임직원들에 대해서는 부당이익 취득을 할 수 없도록 감독과 통제 제도가 잘 돼있는 데 반해 유독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 부동산 공기업만 통제가 느슨했으니 무슨 할말이 있으랴.국민권익위가 지난 2013년 이후 19대와 20대 국회에 발의했으나 폐기된 이익충돌방지법안만 법제화돼 있어도 부당이익 환수가 한결 수월했으리라는 때늦은 후회도 있다. 이제라도 땅 투기를 일삼아온 부동산 공기업 직원들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철저히 이뤄져 국민적 분노가 가라앉을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랄 뿐이다.

2021-03-11

들썩이는 물가… 서민가계 위협한다

국제유가 상승의 영향을 받은 휘발유, LPG 등 국내 에너지 요금의 오름세가 장기화하면서 서민생활에 미칠 여파가 심상찮아 보인다. 특히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버스 등 대중교통 요금과 전기, 도시가스 등의 생활요금 인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 서민들의 가계 부담을 벌써 압박하고 있다.지난해 8월부터 꾸준히 오름세를 보인 국제 곡물가격 상승으로 시중에는 햄버거, 빵, 즉석밥 등 가공식품 가격은 이미 많이 올랐다. 이런 가운데 에너지 요금 상승이 겹치면서 올 들어 생활물가 전반에 걸쳐 불안감이 확산되는 분위기여서 걱정이다. 버스나 지하철 요금의 인상이 불가피할 것 같다는 전망도 나와 서민들을 우울하게 한다.직장인이 사먹어야 하는 시중의 점심 식사가격은 올 들어 이미 많이 올랐다. 웬만한 식사 한 끼는 이제 1만원 정도는 주어야 먹을 수 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영업이 어려워진 식당업주로서는 가격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하겠으나 알게 모르게 시중의 물가는 조금씩 오르고 있는 것이다.물가가 오르면 가장 먼저 고통을 받는 사람은 취약계층민이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서민들의 일자리가 많이 사라졌다. 소득도 전년보다 줄었다. 지난해 4분기 소득하위 20% 가구의 근로소득은 13.2%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이 줄어든 서민의 입장에서 물가 상승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최근 발표되는 정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고용상황도 최악이다.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 쪽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물가는 오르고 소득이 줄어드는 이른바 삶의 질이 떨어지는 나쁜 환경이 당분간 지속될 것 같아 보인다. 물가당국의 선제적 대응이 지금 있어야 할 때다. 물가지표상으로는 아직 심각한 단계에 이르지 않았으나 물가당국은 지표만 보지 말고 서민들에게 민감한 생활물가의 동향에 더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야 한다. 정부가 보유한 물량을 풀어 가격의 안정을 꾀하는 것과 같은 당국의 신속한 물가 대응 정책이 있어야 한다.마침 정부가 코로나 지원금을 풀겠다고 하니 마구잡이로 집행말고 실효성 있게 사용하여야 한다. 정말로 어려운 서민에게 지원금이 돌아가게끔 하여야 한다. 물가만큼 서민에게 민감한 문제도 잘 없다.

2021-03-11

망언(妄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말은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한 망언으로 알려져있지만 실제로 그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녀를 미워했던 프랑스 국민이 모함하기 위해 날조한 것이란 설이 유력하다.세상 물정을 모르는 높은 권력자의 탁상공론식 이야기가 튀어나올 때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빵 발언은 빠짐없이 등장한다.2018년 지방선거 때 “서울서 이혼하면 부천으로 이사가고, 망하면 인천으로 이사간다”는 이부망천의 발언을 했던 모 국회의원은 이 말로 인해 당을 탈당해야 하는 곤욕을 치렀다. 이후 그는 이 발언에 발목이 잡히면서 다음 선거 때 공천도 못받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정치에 실패했다.하버드대학 램지어 교수가 2차 대전 중 일본인이 저지른 우리나라 위안부의 비극을 자발적 매춘으로 폄하했다가 국제적 비난 여론에 직면한 일도 비록 논문이지만 망언이나 다름없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지만 그에게는 이 망언이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수모로 남는다. 말 한마디 잘못으로 공든 탑이 무너진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변창흠 교통부장관이 LH 직원의 땅 투기 의혹을 옹호하듯 발언했다가 장관 자리를 내놓을 처지에 몰렸다. 말은 엎질러진 물과 같다. 한번 내뱉으면 되담을 수 없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 갚는다”는 속담에 선조의 지혜가 숨어 있다.LH 직원의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 참으로 가관이다. “꼬우면 니들도 우리회사로 이직하든지 공부 못해 못와놓고 꼬투리 하나 잡았다고 조리돌림한다”는 막말을 올렸다.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한데 익명 속에 숨어 이런 망언을 서슴치 않는 세태가 걱정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3-11

여권 인사들도 가덕도 공항은 “무리수”

더불어민주당 대구 지역 국회의원을 지낸 김부겸 전 의원과 홍의락 대구시 경제부시장이 문재인 정부가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추진하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사업에 대해 ‘룰을 깼다’ 또는 ‘무리수’라고 비판했다.김 전 의원은 그저께(10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가덕도 특별법과 관련, “절차의 정당성이 훼손된 문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구·경북 민심과 관련해서도 “동남권 신공항 사업에서 5개 지자체장의 합의가 일종의 ‘룰’이었는데 그 자체가 깨진 데 대해서는 정부에 대해 화가 나 있다. 이 국책사업이 이렇게 선거를 앞두고 손바닥 뒤집듯이 해도 되는 것인가라는 데 화가 난 것”이라고 말했다.홍의락 대구시 경제부시장도 이날 시청출입기자들과 만나 “가덕도 특별법은 무리수를 쓴 거다. 대구·경북에 대해서는 곁눈질도 안하고 거리낄 게 없다는 식”이라며 정부의 ‘TK패싱’을 직접적으로 지적했다. 그는 “현 정권은 가덕도 신공항으로 거침없이 가는 상황이고, 대구·경북은 뭘 할 것인가에 대해 우리끼리 치열하게 논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대해 여권 인사들을 비롯해 부산시민들조차 상당수 우려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해당부처인 국토교통부는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됐으니 공항 입지에 대해서는 더이상 관여할 부분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국토부는 최근 발빠르게 ‘가덕도 신공항 건립 TF’를 발족했으며, 곧 가덕도 신공항 사전타당성조사와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하위법령 정비 등의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가덕도는 지난 2016년 국토부가 프랑스 파리공항 공단엔지니어링(ADPi)에 의뢰한 사전타당성조사에서 신공항 입지 후보지 중 최하위 점수를 받은 바 있다. ADPi가 접근성, 소음·환경보호, 프로젝트 완료·실현 가능성 등의 지표에 가중치를 적용해 점수를 매겼더니 김해공항 확장안과 밀양에 이어 3등을 차지한 것이다. 이제 국토부가 과거 논리를 하나하나 뒤집으며 새로이 가덕도 공항건설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국토부가 앞으로 진행될 사전타당성 조사에서 기존 보고서를 어떤 논리로 번복할지 모두 눈여겨 보고있다.

2021-03-11

벚꽃 피는 순서와 지역대학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대구의 모 대학 총장이 대학의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지만, 최근 대학 내부 게시판에 올라온 입시 실패에 대한 총장 책임을 묻는 글 아래에 “이번 학기가 끝나기 전 새로운 집행부가 출범할 것이라는 사실만 약속드린다”는 댓글을 달았다고 한다. 사실상 총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내비친 셈이다.올해 대입에서 정원을 못 채운 지방대가 속출하면서 ‘대학이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닫는다’는 말이 나돌곤 있지만, 이제는 총장 사퇴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 대학 신입생 충원율은 80%라고 한다.이 대학 뿐만 아니라 인근 대구권 4년제 대학의 정원 미달 상황은 심각하다. 추가모집이 모두 진행됐지만 100% 최종 등록률로 이어진 곳은 한 곳도 없다.전통의 지역 명문교인 K, Y 대학들도 100% 등록에 못미쳤다고 한다.반면 포항의 한동대, 포스텍은 100% 등록률을 보였다. 포스텍은 전국적인 명성의 프레미어 대학이므로 가능하였지만 한동대의 100% 충원은 다른 지역대학들이 벤치마킹할 부분이 있다. 글로벌 역량강화와 선택과 집중으로 성공한 예라고 본다.1960∼70년대 시절 신생아는 연 100만명에 가까웠고 초등학교는 한반에 100명 가까운 콩나물 교실이었다. 2부제, 3부제 수업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초등학교 교실은 한반에 20∼30명 수준이고 폐교되는 학교도 종종 있다.우리나라 주민등록인구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출생아가 사망자보다 적은 ‘인구 데드 크로스(Dead Cross)’ 현상이 당초 예상보다 9년이나 앞당겨 금년에 시작되었다고 한다.한국은 지난해 출생아가 역대 최저치인 27만여 명으로 30만명 선이 무너졌다고 발표했다. 금년의 대학정원은 49만명, 지원자는 42만명이었다. 27만명 시대가 오면 대학의 거의 반은 문을 닫아야 한다.사실상 대학 폐교의 문제는 ‘벚꽃 피는 순서’라는 말에서부터 나온다. 이는 지역대학을 폄하하고 서울로 향하는 국민 전체의 인식에서부터 나온다.일부 대학의 폐교는 어쩔 수 없다 하여도 지역대학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줄어든다면 현 대학정원 미달의 문제는 상당부분 해결 가능하다. 재수, 반수를 통해서 인서울 대학으로 가려는 분위기도 큰 몫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미국의 많은 우수한 대학들이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에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주요 명문 주립대학들은 주의 수도가 아닌 작은 마을에 있다. 이것은 교육선진국이라는 유럽이나 일본도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마찬가지이다.미국과 같이 한국도 서울 지역 가리지 않고 대학이 교육과 연구의 질로 승부하는 그런 상황이 되어야 한다.서울·지방 이분법은 이 사회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악습이다.‘벚꽃피는 순서’라는 말이 사라질 때 한국의 대학충원율 문제도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21-03-11

봄갈이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날마다 산책을 하는 들판이 말끔히 봄단장을 했다. 겨우내 굳어있던 논바닥을 갈아놓은 것이다. 쟁기로 논을 갈던 시절에는 이른 봄이면 여기저기 소모는 소리가 온종일 들판을 울렸는데, 요새는 트랙터가 참 쉽게도 갈아엎는다. 논을 갈아 놓으면 공기에 노출된 속흙에 미생물의 번식이 왕성해져서 지력이 좋아진다. 식량이 모자라 이모작으로 논에도 보리를 심었던 지난날엔 모내기철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보리를 베어내고 논갈이를 했지만, 지금은 미리 논을 갈아 놓은 채로 봄철 내내 바람과 햇볕을 쐬고 눈비를 맞게 한다.논밭은 한 해만 묵혀 두어도 온갖 잡초가 길길이 자라서 묵정밭이 되고 만다. 쑥대와 억새와 망초 같은 거친 풀들을 베어내고 쟁기로 깊숙이 갈아엎어야 다시 옥토가 된다. 물론 농사를 짓는 일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논밭은 수시로 돌보지 않으면 금방 잡풀이 우거진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안다.농작물을 잘 키우려면 물을 대고 거름을 주는 것보다 풀과의 전쟁이 더 큰일이라는 것을. 요즘은 아예 잡풀이 나오지 못하도록 비닐로 멀칭을 해서 김매는 일손을 대신한다.사람의 마음 밭도 수시로 갈지 않으면 황폐해진다. 편견이나 고정관념, 맹신 따위로 굳어진 마음 밭에 탐욕과 거짓, 적개심 같은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묵밭이 된다. 심지어는 그렇게 무성한 잡초를 오히려 풍성한 농작물로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가 않은 것 같다. 재물이나 권력, 명예 따위의 열매는 바로 그런 잡초들에 열린다는 믿음이다. 저 혼자 그렇게 살다 죽겠다는 걸 말릴 필요가 있겠느냐고 하겠지만, 그것이 곧 다른 사람들에게 해악이 된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마음이 황폐한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란 삭막하고 패역한 황무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봄맞이를 위해서 논갈이를 하듯이 사람들 마음 밭도 봄갈이를 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오래 돌보지 않아서 묵정밭이 되지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 고요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현대인들은 늘 무엇에 쫓기듯 사느라 차분히 자기성찰을 할 겨를이 없다고 한다. 일이 많아서 바쁜 사람도 있겠지만 시간이 있어도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왠지 제 마음을 들여다보기 거북하고 싫어서 일부러 외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슨 이유로든 오래 살피지 않고 묵혀둔 마음 밭은 굳어지고 잡초가 우거지게 마련이다. 우거진 잡초를 제거하고 갈아엎기 위해선 위해서는 낫과 쟁기가 필요하다. 철저한 자기성찰로 낫을 벼리고 종교의 경전이나 성인들의 금언으로 마음을 가는 보습을 삼아도 좋을 것이다. 좋은 책이나 강의를 통한 공부나 돈독한 신앙생활, 명상수련 등이 낫과 쟁기가 될 수도 있을 터이고.나라 역시 갈지 않으면 온갖 비리와 부정이 우거진 묵정밭이 된다. 도무지 자기성찰이라곤 없는 후안무치, 적반하장, 내로남불로 철갑을 두른 자들이 정권을 잡고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다. 다가오는 선거에서는 반드시 갈아엎어야 하는 이유다.

2021-03-11

교육 지우기 3 - 교사 멋대로 규정들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학교가 해결해 줄 것 같아!”말에는 어조가 있다. 특히 학생들이 학교에 대해 하는 말에는 아이들의 감정이 그대로 살아있다.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였지만, “같아”라는 말 안에는 체념과 불신, 그리고 분노가 담겨 있었다. 이 학생의 말에서 알 수 있듯 학교는 이제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곳으로 변해버렸다. 더 정확히 말해서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문제를 생산하는 곳이 되었다.학교가 죽은 지는 오래전이다. 물론 필자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들도 학교의 모습을 보면 자신들의 생각을 고집하지는 못할 것이다.“아침부터 운동장 7바퀴 돌았어. 하라니까 했는데,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못 하겠더라.”가만히 듣던 친구로 보이는 아이가 라면을 건져 올리던 젓가락을 내리고 이유를 물었다.“교복 위에 후드티 입어서. 근데 이해할 수 없는 건 지퍼가 있는 후드티는 괜찮다는 거야.”그날은 분명 추웠다. 뉴스는 연일 이상 한파에 따른 사건 사고 소식을 보도하였다. 굳이 뉴스를 보지 않더라도 다양한 방한용품으로 온몸을 감싼 사람들의 모습에서 추위의 강도를 알 수 있었다. 필자는 옷 때문에 벌을 받았다는 학생을 보았다. 그 학생은 추울 정도로 너무도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벌을 받았다니, 필자가 더 화가 났다.“화장 규정 등 다른 규정은 그래도 이해하겠어. 그런데 복장 규정은 도저히 이해가 안 돼!”“그래도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방법을 찾아 주시지 않을까? 날씨가 정말 춥잖아!”어떤 답을 할지 필자는 귀를 최대한 열고 기다렸다. 학생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학교가 해결해 줄 것 같아!”학생의 말에는 어떤 감정도 없었다. 화가 가득 묻어 있을 법도 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차분했다. 모든 것을 단념했을 때, 기대감이라고는 전혀 없을 때 나오는 어조였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은 괜한 것에 시간을 빼앗겼다는 듯 빠르게 라면을 먹었다. 그리고 학원 시간에 늦었다며 자신들의 자리를 치우고 편의점 점원에게 인사를 하고는 학원을 향해 뛰어갔다.학생들이 떠난 자리에는 강추위보다 더 매서운 학교에 대한 불신만 가득했다. 추운 날씨에 운동장을 도는 학생의 모습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융통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곳이 학교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그래놓고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두루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겠다니, 대한민국 교사들이시여, 이 어찌 부끄럽지 아니한가!여러 이유에서 규정은 필요하다. 그런데 법을 자기들 편한 대로 주무르는 정부나 거기에 속한 일부 인권 단체가 말하는 모든 학생이 만족 하는 규정은 없다. 분명한 건 최소한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규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3월, 강추위에 후드티를 입었다고 운동장을 도는 학생이 더는 없도록 학생 학대 수준의 교사 멋대로 해석하는 규정은 없는지 점검하자!

2021-03-10

미얀마의 후진적인 군부 쿠데타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1960년대를 전후하여 신생 독립국에서는 군부 쿠데타가 빈발했다. 1952년 이집트 자유 장교단 소속 나세르가 주도한 군부 쿠데타는 쿠데타의 모델이 되었다. 그 후 아시아 아프리카의 신생 독립국의 군부 쿠데타는 유행처럼 번져 갔다.우리나라에서도 4·19혁명 이후 1961년 박정희 소장의 5·16에 이은 전두환의 12·12 쿠데타가 있었다. 쿠데타(coupd’Etat)는 군부가 물리력으로 정상적인 정권을 전복 탈취하는 행위를 말한다. 어느 쿠데타나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부패 청산, 정치혁명이라는 명분을 앞세운다.미얀마 쿠데타의 참극은 우리의 두 차례 쿠데타를 회상케 한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 의원 선거 결과에 불만을 갖고 정권을 전복하였다. 미얀마 독립영웅의 딸 아웅산 수지는 감금되었고 관련자 1천700여명이 구금되었다. 5·16 쿠데타 세력이 민주당 정부의 장면 총리를 연금하고 수많은 정치인들을 구금한 사실과 대동소이하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민간 정권을 전복하고 새로운 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를 약속하고 있다. 우리나라 5·16 쿠데타 세력이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양심세력에게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공약과 거의 같다.미얀마 군경은 쿠데타에 반대하는 청년학생들을 무자비하게 총살하고 있다. 미얀마의 평화적인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다. 일부 공무원과 교사들이 파업에 동참하고 승려 200여명의 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일요일 38명의 시위자들이 거리에서 조준 총탄에 희생되었다. 19세 소녀 치알 신은 ‘다 잘 될 거야’라는 조끼를 입은 채 사살 되었다. 그녀는 미얀마 민중 항쟁의 상징이 되고 있다. 쿠데타의 부당성을 폭로한 UN 미얀마 대사는 군부정권에 의해 전격 해임됐다.미얀마 쿠데타 정권은 스스로 탈취한 권력을 절대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손가락 세 개를 편 시민들의 극한적인 반대시위는 계속될 전망이 우세하다. 이러한 대치 상황이 계속된다면 미얀마의 민주화를 외치는 시민들의 희생은 더욱 커질 것이다. 미얀마 군부는 극한적인 대치 상황에서 ‘국민 대학살’을 자행할 지도 모른다. 곧 계엄령이 선포되고 수많은 시위자가 체포 구금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러한 쿠데타가 미얀마에서 재발한 것은 그들의 정치적 후진성을 노출한 것이다.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는 어떤 명분으로도 용인 될 수 없지만 이를 저지할 처방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미얀마의 민주화 세력은 국제적인 연대와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가 과거 암울했던 시절 국제 앰네스티에 지원을 호소한 것과 같다. 그러나 유엔도 미국도 미얀마 군부를 비판하면서도 직접적인 개입은 꺼리고 있다. 불행히도 인접 중국은 미얀마 군부의 정치 개입을 묵인하고 오히려 지지하는 입장이다. 미얀마 무역의 40%, 투자의 38%를 중국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도 과거 미국의 국익에 반하지 않으면 후진국의 쿠데타를 승인한 전력이 있다. 미얀마 사태가 심각한 상황이다. 유엔 인권 위원회는 미얀마의 인명피해를 막는 긴급조치라도 취해야 한다. 후진국의 민주주의는 피를 흘리지 않고 성공할 방도는 없을까.

2021-03-10

바보 아버지

장규열한동대 교수탐관오리(貪官汚吏). 탐욕스러운 관리와 더러운 벼슬아치. 옛날이야기에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보통사람들만 멍이 드는 느낌이 아닌가. 국민이 모아준 세금으로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할 터에, 일터에서 얻은 정보를 가로채 자신들만 배를 불렸다. 국민을 대신해서 일하라 했더니, 국민을 속이면서 얼마나 고소했을까. 도둑이 들끓는다 듣기는 했지만, 이처럼 당하고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게 만약 공직사회에 만연한 평균적 조류라면, 국민은 누굴 믿고 일상을 이어갈 것인가. 나라의 내일은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 다음세대에게 우리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선진국이 된다한들 무너질 질서를 어찌할 것인가.70년대와 80년대를 가로지르며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이어질 무렵에 기초조사와 기본설계의 맨 앞에서 일했던 토목기술자가 있었다. 필자의 선친이었던 그는 사업가였던 선대의 핏줄을 따라, 나라의 동맥을 연결하는 일이 부동산에 미칠 영향을 잘 알고 있었다. 장차 고속도로가 완성되면 주변의 땅값은 폭등할 것이며 한 덩어리라도 구입하면 큰 이득이 생길 것도 알고 있었다. 공직자로서 그는 그리 하지 않았다. 손수 설계하고 모든 정황을 다 꿰뚫고 있었지만, 아내에게마저 한 톨도 발설하지 않았다. 나라의 운명을 가를 대역사를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모친은 지금도 당시 일을 회상하며 안타깝다 하신다. 한 자락만 알려줬어도 아쉽지 않은 세월을 보냈을 터인데. 하지만, 어머니도 아버지의 어깨에 걸렸던 성실함과 정직함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신다. 아들은 직장생활 몇 년 만에 모은 돈만 가지고 떠난 유학길에서 동네 신문도 배달했었다.아버지는 바보였을까. 나라가 맡겨준 일을 통해 획득한 정보가 본인에게는 나름 기특할 것이다.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공유하게 된 정보를 사사로이 유용하면 챙길 이득이 분명히 있다. 거대한 부와 걱정없는 내일이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여, 어지러워질 세상과 복잡해질 속내는 어찌해야 하는지 생각하기 싫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국가와 국민에 대한 신의와 성실을 지키며 밤낮을 뛰는 공직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들 덕에 나라가 굴러가고 사회가 평안하다.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당신같은 관리들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이만큼 자라왔다는 믿음이 있다. 바보같이 욕심없이 섬겨온 덕에 나라의 길들이 무사히 이어졌을 터이다.‘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시인 윤동주가 적어내린 심정에 우리는 어떻게 답하여야 하는가. 공직을 사익에 이용한 당신은 그래도 잘못이 없다고 우길 참인가. 공직사회의 청렴함을 회복하기 위해서 정부는 특단의 결단을 하여야 한다. 다음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물려주기 위하여 사회가 맑아져야 한다. 그의 삶이 일을 잘하기 위한 욕심으로 가득했었지만, 어느 한 자락도 자신을 위해서는 쓰지 않았던 ‘바보 아버지’가 오늘 새삼 그립다.

2021-03-10

행정통합 분위기 이렇게 안 떠 ‘公論’ 만들겠나

대구경북 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가 주관하는 권역별 대토론회가 경북 북부권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9일 경북도청에서 열린 북부권 토론회도 지난 4일부터 열린 대구권, 경북 동부권, 경북 서부권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활발한 의견개진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북부권 토론회에서는 행정통합을 통한 규모의 경제실현에 대한 긍정론이 나오긴 했지만, 예상대로 ‘대구경북 특별자치정부’의 청사 위치를 일찌감치 못 박아야 하고, 행정통합이 북부권에는 아무런 이득이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이 강하게 대두했다.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앞으로 직접 주민과 대화하며 통합 당위성과 비전을 설명하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 4차례의 토론회에서 대구·경북 지역민들의 공론을 정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우선 지역민들의 참여가 너무 저조해 토론회가 활기있게 진행되지 못했다. 코로나19 탓이 크지만 오프라인 토론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이 거의 없었으며, 생중계된 유튜브 구독자도 별로 없었다. 북부권 토론회의 실시간 시청자수는 60여 명이었고. 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의 유튜브 구독자 수는 500명도 되지 않는다. 북부권 토론회에서 최철영 공론화위 연구단장이 밝힌 대로 대구·경북이 행정통합을 하면 인구와 GRDP 규모가 경기도, 서울시에 이어 3번째로 부상한다. 그렇게 되면 중앙정부와의 협상력이 커져 이 지역이 국토균형발전을 주도할 수 있다. 행정통합의 핵심적인 장점은 대구와 경북이 지금처럼 경쟁하지 않고 경제적, 사회적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통합이 만능은 아니라는 부정론도 무시하면 안 된다.대구경북행정통합이 지역민들의 공론을 바탕으로 성사되려면 지금처럼 가라앉은 분위기로는 곤란하다. 향후 일정을 고려하면 시간이 촉박하다. 공론화위원회는 앞으로 시·도민 여론조사와 숙의 토론조사(500명 참가) 등의 절차를 거쳐 행정통합에 대한 의견을 취합한 뒤 최종 기본계획을 작성해 시·도지사에게 제출해야 한다. 오는 8월에 행정통합 찬반 주민투표를 실시하려면 시간이 빠듯하다. 미래의 대구·경북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만들어 시·도민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21-03-10

임시검사소 확대, 더 많은 숨은 감염자 찾아내길

보건당국이 코로나19 검사 접근성 강화를 위해 비수도권지역에도 임시 선별검사소를 확대 운영하기로 했다. 대구를 비롯 부산, 울산, 광주, 충남 천안, 아산 등 6곳에 설치되는 임시선별검사소는 오는 4월까지 운영된다. 운영 후 내용을 평가한 뒤 추가 운영여부도 앞으로 검토키로 했다고 한다.대구에는 국채보상공원에 임시선별검사소가 설치될 것으로 보이며, 운영은 8개 보건소가 합동으로 맡는다. 임시선별검사소에서는 증상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무료로 검사를 받을 수 있고 익명검사도 가능하다.3차 대유행이 시작한 수도권은 현재 98개소의 임시선별검사소를 운영하고 있다. 약 3개월간 이곳에서 검체한 검사건수는 242만여건으로 일 평균 2만8천여건에 달한다. 현재까지 발견된 확진자 수는 총 6천522명으로 양성율이 0.27%다. 같은 기간 전체 확진자 수의 약 13%에 해당한다.보건당국은 수도권의 임시선별검사소 운영으로 지역내 숨어 있던 조용한 감염원을 찾아내는 성과를 냈다고 분석한다. 이번에 지역으로 임시검사소를 확대 설치하려는 것도 숨은 감염원을 미리 찾아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병의 4차 대유행을 사전에 막아 보겠다는 것이 주 목적이다.지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병은 3차 대유행이 넉달 가까이 진행 중이다. 10일 현재 신규 확진자는 470명이 발생해 전날에 이어 400명대를 유지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신규 확진자가 점차적으로 감소세를 보이나 400명대 안팎이라는 여전히 높은 선을 유지하고 있다. 정체 상태라고 말하고 있지만 아슬아슬한 상황이 되풀이 되는 국면이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솔직하다.확진자 발생도 축산물공판장, 공동어시장, 제조업체, 병원과 어린이집 등 일상 공간 어느 곳이든 상관없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무증상의 감염자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 임시선별검사소를 통한 감염병 차단 병행 노력이 필요하다. 수도권에서는 10일 하루동안 임시선별검사소에서 확인된 확진자가 수도권 전체의 21%에 달했다. 국내 누적 확진자 수가 9만3천명을 넘었다. 위중한 상황이지만 거리두기와 백신접종 외 뾰쪽한 대책이 없다. 임시선별검사소를 통해 숨은 감염자를 찾아내는 것도 좋은 방책이 될 것이다.

2021-03-10

규제의 역설

‘규제의 역설’은 좋은 의도로 특정행위를 규제한 정책이 정반대의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를 가리킨다.대표적인 사례가 2015년 영국의 비닐봉투 절감정책이다. 정부는 비닐봉투 대신 여러 번 쓸 수 있게 ‘생명을 위한 가방’을 만들고, 가방에는 ‘비닐이 썩는 데 걸리는 시간은 500년, 한 번 쓰고 버리지 마세요. 환경오염을 막는 방법’이란 문구를 썼다. 결과는 의도와 달랐다. 비닐쓰레기의 양은 매년 증가했다. ‘가방’을 만드는 데 비닐이 3배나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비자는 ‘가방’을 습관처럼 한 번만 사용했다.성매매 금지규제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성매매를 금지했지만 아무리 강력히 금지해도 성매매는 음지에서 확대됐다. 한국에서도 성매매를 강력범죄로 단속, 성매매를 대표했던 집창촌은 없어졌지만 성매매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변종 성매매 업소들이 대폭 증가했다. 다만 최근 통신 시장에서 벌어진 ‘규제의 역설’은 뜻밖의 결과다.지난해 12월 30년간 통신 요금시장을 지배했던 요금인가제가 폐지되자 SK텔레콤이 기존보다 30% 싼 온라인 전용 요금제를 깜짝 발표했고, 잇따라 LG유플러스와 KT까지 비슷하거나 더 싼 요금제를 내놔 요금 인하경쟁이 벌어졌다.어떤 사회의 규제와 정책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 규제가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 지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빈부격차 감소에 실패한 부유세, 실업자를 늘린 비정규직 보호법, 전통시장 매출을 감소하게 만든 대형마트 의무휴업, 도박 중독을 심화시키는 카지노 입장 제한조치 등도 우리 사회가 직면한 규제의 역설이다. 선한 의도보다 중요한 건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3-10

당신의 작은 두 손을 내밀어 보세요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빅토리아(1819∼1901)는 영국의 여왕으로서 가장 오랜 기간인 64년 동안 재위하였고 그 기간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대영제국의 최고 전성기이었다. 여왕은 1877년에는 영국의 군주 중 최초로 인도 황제가 되기도 했다. 그녀는 남편을 깊이 사랑하고 신뢰하였으며 1861년 남편의 사망으로 큰 충격을 받고 한동안 두문불출하기도 하였다. 남편과의 사이에 4남 5녀를 두었으며 대부분 자녀가 유럽의 주요 왕족과 결혼하여 말년에는 유럽의 할머니로 불렸다.빅토리아 여왕은 입헌 군주로서 현실 정치에 미친 영향은 미미하였으나 그녀의 정절과 화목한 가정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도덕주의의 상징이 되었으며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군주들 가운데 하나였다.여왕은 어느 평범한 농부의 아내가 아기를 잃었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여왕은 남편을 잃은 깊은 슬픔을 겪은 적이 있었기에 농부의 아내가 슬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여왕은 수행원들을 거느리고서 그리 멀지 않은 농부의 아내를 찾아갔다.불시에 찾아온 여왕 때문에 농부의 아내는 무척이나 당황하고 놀랐다. 그러나 그녀에게 자연스럽게 대하는 여왕의 태도에 마음이 놓여 곧 평안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여왕은 얼마 동안 농부의 아내와 함께 머물다가 왕궁으로 돌아갔다. 여왕이 떠나고 나자 이웃 사람들이 몰려와서 농부의 아내에게 물었다.“여왕님이 무슨 말씀을 하던가요?” 그러자 농부의 아내가 말했다. “여왕님은 내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그저 내 손을 끌어다 두 손으로 잡아 주셨을 뿐입니다. 그리고서 우리는 서로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라고 대답했다.빅토리아 여왕이 농부의 아내에게 한 것이라고는 두 손을 잡아 준 것뿐이었지만 그 농부의 아내는 빅토리아 여왕의 그 따뜻한 마음을 평생을 잊지 못했을 것이다. 여왕이 농부의 아내 마음을 헤아려 준 따뜻한 마음이 농부의 아내에게는 얼마나 큰 감동으로 다가왔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감동들이 모여 빅토리아 여왕은 가장 훌륭한 영국의 여왕으로 오늘날까지 존경을 받고 있다.두 손을 잡아 준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는 감동이라 할 것이다. ‘기운생동’(氣韻生動)의 봄이 왔다. 우리 곁에 상처 입은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지 살펴보시기 바란다. 누군가 다가와 우리들의 따뜻한 작은 두 손을 기다리는 이웃에게 조용히 다가가서 따스한 손을 내밀어 보자. 그곳에 작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될 것이다.

2021-03-10

비가 올라나 눈이 올라나

“낮부터 내린 비는 이 저녁 유리창에 이슬만 뿌려 놓고서 밤이 되면 더욱 커지는 시계 소리처럼 내 마음을 흔들고 있네”햇빛촌이 부른 ‘유리창엔 비’ 노랫말이다. 창밖엔 비가 내리면 메마른 마음도 이런저런 상념에 촉촉이 젖는다. 그것은 그리움이기도 하다가 외로움이기도 하다가 근원을 알 수 없는 서러움이기도 하다. 그 눈물은 눈가에 이슬처럼 방울 맺히고 보슬비처럼 보슬보슬 젖고 장대비처럼 주르르 흘러내리기도 한다.·가랑비-가늘게 내리는 비. 이슬비보다 더 굵다.·개부심-장마로 홍수가 난 후에 한동안 멎었다가 다시 내려, 진흙을 씻어내는 비.·는개-안개비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도둑비-밤에 몰래 살짝 내린 비.·먼지잼-먼지가 일지 않을 정도로 아주 조금 내리는 비.·발비-빗발이 발처럼 보이도록 굵게 내리는 비.·보슬비-바람이 없을 때 작은 알갱이로 보슬보슬 내리는 비.·부슬비-보슬비 알갱이보다 조금 굵은 비.·산돌림-이 산 저 골짜기로 돌아다니면서 한 줄기씩 내리는 소나기.·싸락비-싸래기처럼 포슬포슬 내리는 비.·실비-실처럼 가늘게, 길게 금을 그으며 내리는 비.·소낙비-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이내 그치는 비(소나기).·색시비-수줍은 새색시처럼 소리 없이 내리는 비.·안개비-눈에 보이지 않게 내리는 비.·여우비-맑은 날에 잠깐 뿌리는 비.·웃비-좍좍 내리다가 잠시 그쳤으나 다시 내리는 비.·이슬비-는개보다 굵고 가랑비보다 가늘게 내리는 비.·작달비-굵고 세차게 퍼붓는 비.·자드락비-굵고 거칠게 내리는 비.·장대비-빗줄기가 굵은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진눈깨비-눈도 비도 아닌, 눈과 비가 뒤섞인 비.·채찍비-채찍으로 후려치듯 굵고 세차게 내리는 비.비는 때에 따라 나름의 이름이 있다. 음력 보름 무렵에 내리는 비는 보름치며 음력 그믐께 내리는 비는 그믐치다. 견우직녀가 만나는 칠월칠석에 내리는 비는 칠석물이며 양이 모종하기에 알맞도록 내리는 비는 모종비이다. 모내기할 무렵에 한목 오는 비는 목비며 뜨거운 복날 전후에 시원하게 내리는 비는 복비다. 농사를 짓도록 적합하게 내리는 비는 꿀비며 필요할 때를 맞추어 알맞게 내리는 비는 단비요, 약처럼 요긴할 때 내리는 비는 약비다.그런가 하면 어떠한 행위를 부르는 비도 있다. 할 일 많은 봄에 내리는 비는 일을 부르므로 일비라고 한다. 바쁜 일이 없는 여름에는 비가 오면 낮잠을 자기 좋으므로 잠비라고 한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비가 오면 떡을 해 먹으면서 여유 있게 쉰다고 떡비라고 한다. 농한기인 겨울에 내리는 비는 술 마시며 놀기 좋다고 술비라고 부른다. 비의 이름에 삶의 정취가 고스란히 녹아있지 않은가.우리네 조상은 일상을 비에 맞추었다. 잔비, 흙비, 해비, 가루비, 누리비, 봄장마, 장맛비, 달구비, 궂은비, 마른비, 비보라, 바람비, 우레비, 가을비, 겨울비, 건들장마, 억수장마, 모다깃비, 무더기비, 비에 따라 일을 하거나 집에서 쉬었다.농경문화에서 비는 곧 하늘의 말씀이었다. 천둥, 번개와 함께 비를 퍼부으면 하늘이 노했다고 믿었고 오래도록 하늘이 외면한다고 여겼다. 가뭄을 끝내는 비에 웃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홍수가 나면 울었다. 다 마른 빨래를 적시는 소낙비를 원망하고 더위를 식히는 소나기에 고마워했다.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존재인 비, 그래서 정선아리랑에는 목놓아 울고 싶은 마음을 이렇게 읊었다.“비가 올라나 눈이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우리네 가요에는 비가 많이 내린다. 새벽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안개비가 소리 없이 마음을 적신다. 그대는 봄비를 무척 좋아하는지 다정하게 묻고 이 빗속을 둘이서 말 없이 걸어보자고 청한다. 비라도 내리면 금방 울어 버리겠네 라고 울먹이고 가랑비야 내 얼굴을 세차게 때려달라고 읍소한다. 이별 뒤 슬픔을 이기지 못해 찬비야 내려라 밤을 새워 내려라고 절창한다.요즘은 비에 대한 서정이 옛날 같지 않다. 비가 삶을 좌우하는 시절이 아니므로 일상에서 비에 울고 웃을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선지 무엇에 젖는 문화보다 무엇을 즐기는 문화가 성행한다. TV는 먹고 놀고 즐기고 춤추는 예능 프로그램이 점령한 지 오래다. 생각하고 사색하는 프로그램이 몇 있지만, 그 분량이 적어 안타깝기도 하다.어느새 버들가지에 연둣빛 봄물이 파릇하다. 봄비 내리면 우산을 들고 들녘에 나가봄직도 하다. 차박차박 빗방울이 대지를 두드리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고, 발끝으로 고인 물 찰박찰박 차며 걸어도 보고, 그렇게 젖다 보면 무엇에 젖는다는 것의 의미를 느낄 수 있을 터이니./수필가·문학평론가

2021-03-10

때로는 기적이

배문경수필가겨울 끄트머리에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번쩍하며 벼락이 떨어졌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세 마리의 개와 산책하던 남자가 벼락을 맞고 의식을 잃는 모습을 보았다. 다행히 근처에 있던 소방관이 심폐소생술로 그를 살렸다는 기사와 현장상황이 CCTV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졸지에 벼락을 맞은 남자는 몇 달째 치료중이라니, 지독스럽게 운이 나빴지만 그 와중에도 목숨을 건졌으니 천운은 아니었을까.사람이 길을 가다 벼락을 맞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57만6천분의 1이다. 그리고 그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은 223만분의 1이다. 가까운 지인 중에 벼락을 맞았지만 멀쩡하게 살아있는 두 사람을 알고 있다. 그중 한 명은 처음 바닷가로 떠난 MT에서 금속벨트를 착용한 친구가 벼락을 맞으면서 그 옆에 있다 변을 당했다.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귀가 찢어질 것 같은 굉음에 그대로 쿵하고 뒤로 넘어졌다는데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다른 한 명은 우산을 들고 있었는데 플라스틱 우산 꼭지가 벗겨지며 피뢰침이 되어버린 우산대로 전류가 흐른 모양이었다. 그때 평생들을 수 없을 만한 굉음으로 인해 한동안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할 상황이었다. 다행히 플라스틱 손잡이였기에 전류가 몸으로 통과되지는 않았다. 역시 살 사람은 사는 모양이다.벼락을 맞는 것도 드물지만 벼락을 맞고 산 사람도 흔하지 않으리라. 그럼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될 확률은 얼마일까? 무려 814만5천60분의 1이다. 이것은 하루 동안 벼락을 세 번 맞은 사람이 다시 차에 치이고 뱀에 물리고도 죽지 않을 확률이다. 더욱이 로또의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 당첨될 확률은 1억7천522만3천510분의 1이다. 이 기막힌 숫자계산을 한 사람이 도리어 놀랍기도 하다.국내에서 발행한 최초의 복권은 1947년에 다음해 있을 런던 올림픽 참가비용을 모으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때 액면가는 백 원이었고 일등 당첨금은 백만 원이었다. 이렇게 마련된 경비 팔만 달러로 선수단은 런던으로 떠날 수 있었다. 사소한 듯 낸 돈은 큰 목적에 사용되고, 다수가 낸 돈을 소수의 사람에게 행운으로 몰아주는 방식이다. 요행히 나도 5만 원에 당첨된 적이 있었다. 흥분되었던 나의 기억도 총 구입비용을 계산한다면 빙산의 일각이었다.복권에 인쇄된 것은 아니지만 당첨만 된다면 자신을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는 상사 눈치 안보고 작은 봉급에 연연해하지 않고 사표를 쓰리라. 날마다 치솟아 오르는 아파트에 나도 몸을 실어보리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인심을 내리라. 가난한 이웃을 도우리라. 무엇 무엇에 대한 수많은 기대와 포부가 복권 안에 담겨있다. 숫자 여섯 개를 맞추다 실망하여 ‘오늘도 안 되는구나’라는 한숨을 내쉬며 한두 개 일치하는 숫자나 세 개 정도 맞아 본전을 건지면 아쉬운 마음을 정리한다.그렇지만 오늘이 주는 힘듦을 잠시잠깐 상상력이 만들어낸 유토피아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힘이 하늘과 맞닿으면 일등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선택은 로또 자신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숫자의 배열 그 신비한 힘이야 말로 번개에 몇 번 맞고도 살아있는 사람처럼 기적이다. 때론 광고를 보며 ‘이거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야’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복권(福券)이 복권(福權)이 되길 바란다.그러고 보면 벼락을 맞고도 살아있는 사람과 복권 일등에 당첨된 사람은 행운을 거머쥔 사람이다. 어쩌면 유년에 연탄가스에 취해 죽다가 살아난 나의 삶도 벼락을 맞고도 살아있는 사람들과 뭐가 다르겠는가. 엄청난 경쟁을 뚫고 한 인간으로 살아남아 여기까지 온 것이 진정 기적일 것이다.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승리자다. 지금 이 순간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행운이리라.연탄가스로 죽다 살아난 자의 운과 이십년 운전하며 사고 한 번 나지 않은 행운에 산을 그렇게 올라도 뱀에 물리지 않고 내려온 운을 보태 이번 주말에도 복권을 샀다.문을 열자 천둥번개는 사라지고 새소리가 초록을 잉태한 봄을 깨우고 있다. 오늘도 기적의 하루를 열어젖힌다.

2021-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