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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치의 이상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현대에서 정치의 이상향은 어떤 것일까.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고, 우물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먹으니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 있으랴.” 태평성대의 대명사 격인 ‘요순시대’의 격양가에는 좋은 나라, 좋은 지도자란 서민들이 나랏일 신경 안 쓰고 자기 일만 하게 하는 존재라는 교훈이 담겨 있다. 인류역사상 정치가 있는 듯 없는 듯 여겨졌던 날이 며칠이나 있었을까. 인류 역사는 권력투쟁의 역사로 이어져왔기 때문이다.이 나라 민주주의 역사도 피와 땀으로 얼룩져있다. 일제로부터 광복이후 동족상잔의 6.25전쟁을 겪었고, 자유당 정부의 방종과 혼선에 이어 5·16혁명을 거친 군부정권의 경제개발, 그 이면에 독버섯처럼 피어난 독재, 문민정부 시대로 바뀐 이후에는 지역과 지역, 보수와 진보진영으로 나뉘어 격돌해온 정치판이다. 문제는 국민의 힘으로 군부독재를 타도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쟁취한 이후다. 어찌된 일인지 이 나라는 아직도 한마음 한뜻으로 국론을 모으지 못하고 정쟁을 거듭하고 있다.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람사는 세상 홈페이지에 ‘정치, 하지 마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무척 진솔한 성품의 노 전 대통령은 그 글을 통해 정치인으로서 살아온 자신의 고뇌와 고통을 가감없이 털어놨다.그는 “이웃과 공동체, 그리고 역사를 위해 가치있는 뭔가를 이루고자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라면 한참을 지나고 나서 그가 이룬 결과가 생각보다 보잘것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 이라고 진단했다. 바로 노 전 대통령 자신이 정치를 시작하게 된 이유와 그 결과를 촌평한 것 처럼 느껴진다. 특히 그는 “정치인이 가는 길에는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거짓말의 수렁, 정치자금의 수렁, 사생활 검증의 수렁, 이전투구의 수렁 등의 난관과 부담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이 가운데 ‘이전투구의 수렁’ 에 대한 설명에서 그는 “정치인은 왜 그렇게 싸우는가? 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민주주의 정치구조가 본시 싸우도록 돼 있기 때문에 싸우는 것” 이라고 말했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독재시절에는 여야의 싸움을 전쟁처럼 감시하고, 조사하고, 죄를 씌우고, 감옥에 보냈다.패자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으니 전쟁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는 싸움이 전쟁에서 게임으로 바뀌어 패자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민주주의라고 해도 정쟁을 전쟁으로 하던 적대적 정치문화의 전통이 남아있고,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큰 나라에서는 싸움이 거칠어지고 패자에 대한 공격도 가혹해지기 마련이라는 설명도 덧붙었다. 어쩌면 자신의 운명마저도 예측한 듯한 내용이어서 마음 짠했던 대목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구이자 동지로서 평소 “정치하지 마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을 법한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국회 시정연설에 나섰다가 야당의원들로부터 냉대와 야유를 받았다. 민주주의가 원래 비효율적이고, 시끄러운 정치시스템이라 했던가. 이상적인 정치를 꿈꿔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구인 문 대통령의 소회가 새삼 궁금해진다.

2020-10-29

핑크빛 주유권

강길수수필가여직원이 불렀다. 친구의 사무실 문을 나서는 참이다. 뒤돌아서니 명함크기만한 봉투를 내밀었다. 뭐냐고 묻자, 사장님이 드리라고 한다는 말만 남기고 여직원은 총총 안으로 가버렸다. 조금 의아한 기분으로 봉투를 주머니에 넣으며 하늘을 바라본다. 벌써 때 이른 가을 저녁노을이 핑크빛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있다.차에 돌아와 봉투를 열었다. 핑크색 주유권 한 장이 들어있다. 보너스 카드 포인트로 주유권을 받은 적은 있지만, 손으로 내용을 적은 주유권을 받기는 처음이다. 사무실에서 직접 주면, 내가 곤란해 할까 봐 배려하는 친구의 마음이 느껴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선물이다. 하지만, 마음 한편이 편치만은 않았다. 만나는 동안 부지불식간에, 동정(同情)이라도 바라는 태도를 그에게 보이지는 않았나 하는 염려 때문이다.친구 사무실에서의 상황을 되돌아본다. 내 차림이 종전과 다른 것은 없다. 방문목적도 내가 활동하고 있는 문학단체의 동인지를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대화도 내 문학 활동에 관한 이야기와 친구의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짧은 시간 나누었을 뿐이다. 오가는 말 중에 경제적 어려움을 말하거나, 평소와는 다른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다. 그러니 친구는 내 태도를 보고 주유권을 선물한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마음에서 우러나는 호의를 베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정리되니 고맙고 즐겁다.친구의 사무실엔 이런저런 일로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들르게 되었다. 갈 때마다 그는 비서를 시켜 주유권을 선물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미안하고 고마운 감정이 교차하기도 했다. 그러나 횟수가 거듭됨에 따라 마음이 두 갈래로 갈리는 현상을 자각해 갔다. 한마음은 ‘그래. 전에 내가 친구 회사와 거래할 때, 주유권에 비교되지 않을 이익을 안겨주었는데 뭐 대수이랴’하는 마음이다. 다른 마음은 ‘아니야. 그건 정당한 거래였으니, 주유권과는 무관한 거야. 그러니 주유권에 담은 친구의 따사한 마음은 참 고마운 일이지.’하는 마음이다.지난봄 코로나19 사태로, 소위 재난지원금이란 공짜 돈을 정부로부터 덥석 받았다. 우리 부부 두 사람 몫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나랏빚을 늘려서 국민에게 지급한 것 같다. 우리 집의 경우, 늦은 나이에도 일해야 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빠듯하게 살아도 그 돈이 가계에 큰 보탬이 되지는 않았다. 공짜라 꼭 필요치도 않은 것 몇 가지 사니 금방 다 없어졌다. 그 때문에 우리 집은 공짜심리로 과소비가 되었지 싶다. 어쩌면 정부의 숨은 의도도, 돈을 돌리기 위한 과소비 조장이 아니었을까.주유권 선물을 받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시나브로 생각도 않던 바람(望)이 마음에 자리 잡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친구 사무실에 가려고 마음먹으면, ‘오늘도 주유권을 주려나’라고 속으로 은근히 바라고 있는 자신을 만나곤 했다. 기실 그 무렵은, 조기퇴직 후 시작했던 1인 사업이 신통치 않아 휴업 상태였다. 자연히 차를 쓸 일도 줄어, 친구가 준 주유권이 거의 수요를 맞추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가계에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튼 친구에게 주유권을 받을 때마다, 고마우면서도 찝찝한 무언가가 마음 바닥에 하나씩 가라앉는 것 같은 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짐이 아닌데도, 짐같이 느껴지는 아이러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란 속담이 떠오르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무언가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짙어갔다.신통치 않던 사업수익마저 끊어졌다. 그때 기술 자격으로 취업하라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취업사이트에 한동안 부지런히 이력서를 냈다. 제법 시일이 흐른 후 다행히 취업하였다.친구 사무실에 갈 일이 생기자, 우선 생각나는 것이 핑크색 주유권이었다. 재취업하였으니 고마운 주유권은 그만 받겠다고 정중히 사양하여, 마음의 짐을 덜었다. 핑크색 주유권이 핑크빛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정부의 공짜 돈은, 국민의 세금으로 의타심도 얹어 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친구의 주유권은 자기 것을 나누어주는 사랑의 핑크빛 징표로 가슴에 아로새겨져 있다.오늘 저녁에도 핑크빛 하늘이 열리겠지.

2020-10-28

타자기를 추억함

노트북 키보드가 흠집투성이입니다. 자주 누른 글쇠는 보호막 비닐이 너덜거리는데다 글자 표식마저 벗겨져 잘 보이지 않습니다. 닳은 정도에 따라 어떤 글쇠가 혹사를 당했는지 금세 알 수 있습니다. 각각 왼손 검지와 중지가 맞닿은 ‘ㄹ’과 ‘ㅇ’의 윗면은 허옇게 까졌고, 오른손 중지가 관장하는 ‘ㅏ’ 글쇠자리는 영어 자판 ‘K’ 안내 글자가 사라지고 없을 지경입니다.오래된 노트북도 아닌데 키보드가 이렇게 너저분하게 된 것은 오래된 습관 때문입니다. 저는 손바닥을 키 판에 대지 않고 허공에 띄운 채, 손가락을 세워 자판을 내리찍는 편입니다. 자연스럽지 못한 이런 타격법은 손목에 힘이 들어가 타이핑 소리도 시끄럽습니다. 손톱에도 힘이 실려 글쇠판이 쉽게 긁힙니다. 이런 방식은 수동식 두벌 타자기를 칠 때 유용합니다.제 이십대의 글자 생활은 두벌 타자기의 나날이었습니다. 대학시절 한때 한글 운동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모임의 취지는 순우리말을 아끼고 퍼뜨리는 데에 있었습니다. 한자어가 칠십 퍼센트 이상인 게 우리 모국어의 현실인데, 순우리말을 고집한다는 것은 코미디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청춘의 열정과 우정으로 그 활동을 즐겼습니다. 지금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 한글 운동의 여러 행동강령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글자 생활을 기계화하자’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또한 미적 감각을 지닌 문자인가를 기계화를 통해 널리 알리자는 취지였지요.개인용 컴퓨터가 일반화되기 전인 그때 글자 생활의 기계화란, 타자기를 활용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도 거창한 슬로건이었지요. 하지만 실제 글자 생활을 기계화하는 회원은 흔치 않았습니다. 절실하게 와 닿지 않은 면도 있었고, 무엇보다 주머니 사정이 타자기를 구할 만큼 넉넉지 않았지요. 그럴수록 그 모토가 제겐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행동강령을 실천하는 차원이라기보다 타자기로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댔던 것 같습니다. 이미 서구 작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타자기가 선사하는 경쾌한 터치감의 글 너울을 맘껏 타보고 싶었습니다. 자판 위에 손끝을 올리는 상상만으로도 얽힌 상념들이 흰 종이 위에서 사유의 길을 내는 것만 같았습니다.학교 정보센터 타자 교실에 등록을 했습니다. 수업이 없는 시간마다 들러 자판을 익혔습니다. 낱개였던 자모음이 유의미한 문장이 되어 꼬리를 잇는 게 신기하고 뿌듯했습니다. 창가 자리에 앉아 더듬더듬 자판을 익히는 그 짬 속으로 희망이라는 빛이 스며드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럴수록 타자기를 갖고 싶다는 열망은 더했습니다. 지금처럼 아르바이트 거리가 쉽게 나던 시절이 아니었으므로 주머니 사정은 늘 빈궁했습니다. 타자기를 산다는 건 제 깜냥으론 어림없는 일이었습니다. 마음을 읽은 큰오빠가 크로바 두벌식 중고 타자기를 사들고 왔습니다. ‘열심히 써봐라.’ 타자기 케이스를 열어 주던 큰오빠의 무심한 듯 따스한 눈길.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었지요. 그렇게 타자기는 제 보물 1호가 됐습니다.종이를 롤러에 끼우고 원하는 자판을 두드립니다. 글자쇠막대가 잉크 묻은 리본 위를 건반처럼 때립니다. 촬촬촬,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자를 만들어내는 해머의 타격감은 지금 생각해도 무척 낭만적입니다. 종성용 자음을 칠 때는 왼쪽 아래에 있는 ‘받침’이란 누름쇠를 누른 뒤 해당 자판을 눌러야 합니다. 초성에 쓰였던 글자가 받침자리로 옮겨져 타이핑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면 받침 글자가 중앙으로 쏠려 묘한 듯 매력적인 두벌식 타자 특유의 서체가 나옵니다. 한 줄 글이 다 써지면 왼쪽에 달린 레버를 밀어 종이 위치를 중앙으로 옮겨 주면 됩니다. 오타가 나면 타자용 흰 물감지우개를 글자 위에다 덧씌우고 다시 타건하곤 했지요. 청아한 쾌감을 지나 숙연한 의지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그 정신적 사치를 꽤 즐겼습니다. 저만의 보물인 크로바 타자기로 우리말을 갈고닦거나(?) 리포트를 작성했으며 단상도 끼적였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타자기의 자판을 두드리려면 손가락 각도를 가파르게 한 채 손끝에다 힘을 실어야 했습니다. 지금의 키보드처럼 평면이 아니라 계단식 글쇠판이라 글자를 누르는 동안 손바닥은 항시 허공에 떠있어야 했지요. 오래된 이 습관이 타자기 시대를 접은 지금까지 이어져 키보드에다 생채기를 내는 것이지요.버리기 좋아하는 저는 이사를 핑계로 많은 물건을 버렸습니다. 크로바 타자기도 예외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버린 것에 대해 좀처럼 후회하지 않는 편이지만 가끔은 그것이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타자기의 나날과 함께 했던 소박한 열정이라는 연결고리가 쉽게 버려질 수 있는 건 아니겠지요. 버리려 해도 버려지지 않는 그때를 떠올리며 뒤늦은 마음의 자판을 눌러 봅니다. ‘추억추억’하며 글자가 종이에 박히는 동안, 공중에 뜬 두 손바닥 사이로 파노라마처럼 한 시절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2020-10-28

미워하여 행복할 수 있을까?

장규열 한동대 교수당신은 잘살고 있는가. 어떻게 해야 잘사는 것일까. 부귀영화를 누리며 만수무강하는 삶, 모두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을까. 1975년에 62세였던 기대수명이 오늘은 83세가 되었다. 일인당 국민소득은 1975년에 600불을 겨우 넘겼었는데 오늘은 3만불에 육박하고 있다. 스무 해도 더 오래 살게 되었으며 오십 배나 더 많이 버는 셈이 아닌가. 그 어떤 잣대로 견주어 보아도 손색이 없는 국격을 지니게 된 오늘, 우리는 행복한가 다시 물어야 한다. 겉으로 보아 모자람이 없는 조건 속에서 어째서 우리는 아직껏 만족하지 못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어느 산사(山寺)에 큰불이 났다. 까닭을 찾고 보니 어느 여인의 방화였다고 한다. 다른 종교를 믿는 그는 우상을 섬기는 절간을 용서할 수 없었다는게 아닌가. 미움으로 가득한 그 마음으로 남의 종교를 말살할 작정이었는가 보다. 사회 규범과 법적 통제가 있어 제어할 수는 있겠으나, 우리 종교계는 이런 혐오범죄에 어떤 의견을 가지는지 궁금하다. 종교는 미움을 가르치는가 아니면 사랑을 가르치는가. 종교가 혐오를 바로잡지 않는다. 미워하고 배척하는 태도를 종교만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진영을 갈라 싸우는 일에 능한 정치는 백성들을 자기편에 세우기에만 최선을 던진다. 날마다 지지율을 확인하며 세를 불리기에 집중하느라 나라의 마음이 혼란스러워지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정치도 혐오를 바로잡을 생각이 없다.미움은 자란다. 시간이 지나며 혐오의 수렁은 깊어가고 표현의 강도는 짙어진다. 미워할 까닭을 배우고 익히며 다지고 훈련하여 행동에까지 이른다. 진행 중인 미국의 대선판에도 혐오와 테러의 그늘이 드리워졌다. 급기야 해외 공관들에게 선거 전후에 있을지도 모를 폭력사태에 대비하라는 훈령이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미국 사회가 어떻게 치유와 회복의 길에 들어설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혐오의 늪에 빠진 개인은 위태롭고 미움에 물든 사회는 위험하다. 돌이킬 수 없을 지경에 이르기 전에 사회적 각성이 있어야 한다.국민은 피곤하다. 정치와 종교가 만들고 퍼붓는 사회적 혐오에 지친다. 정치가 편안한 사회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가 부끄럽다. 종교가 평온한 개인을 회복해 주리라는 희망도 허망하다. 남 탓에만 익숙한 ‘내로남불’이 식상하고 자신은 돌아보지 않는 ‘후안무치’에도 기가 질린다. 부귀영화와 만수무강을 누리면서 선진국에 살아도 행복하지 않은 까닭이 혹 ‘미움’ 탓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좀 부드러운 시선과 따듯한 마음이 필요한 게 아닐까. 각자의 부족함과 허술함에 겸허하며 남을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일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그동안 부수고 깨뜨려 정복하는 일에 몰두해 있었다면, 이제는 보듬고 다독이며 함께 쌓아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완전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며 완벽한 사회는 지구상에 없다. 주어진 환경에 오늘의 최선을 함께 던져야 한다. 미워하여 행복할 방법은 없다.

2020-10-28

주식리딩방 주의보

주식리딩방은 자칭 투자전문가가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등을 통해 투자자문을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곳을 말한다.문제는 주식리딩방이 금융감독원의 엄격한 규제를 받는 투자자문업자와는 달리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간행물, 출판물, 통신물, 방송 등을 통해 대가를 받고 단순한 투자조언을 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유사투자자문업자’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이들은 ‘고수익 보장’ ‘연간300% 수익’ 등과 같이 소비자들이 혹할만한 문구를 내세워 유혹하거나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광고모델로 내세우기 때문에 외관만을 믿고 유료회원으로 가입했다가 큰 손실을 입고 계약을 해지하는 사례가 많다.주식리딩방을 이용할 때는 우선 금융감독원에 신고된 유사투자자문업체인지 확인이 필요하다. 금융감독원 소비자정보포털 ‘파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금융감독원에 신고된 유사투자자문업체라고 하더라도 금융에 대한 전문성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유사투자자문업자의 경우 전문인력을 보유해야하는 요건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위 ‘주식리딩방’을 운영하는 운영자가 일반 개인인 경우 전혀 전문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유사투자자문업자는 법적으로 일대일투자자문을 할 수 없고, 오직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조언만 가능하다. 상담게시판이나 카카오톡 등 대화방을 통해 특정 주식에 대한 추천을 하거나, 전화를 이용한 매수·매도 권유는 모두 불법이다.수수료의 환불조건, 환불방법 등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피해를 입었다면 금융감독원 유사투자자문피해신고센터에 신고하면된다. 금융감독원 홈페이지를 통해 신고하면 연2회 심사를 통해 건당 최고 200만원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0-28

경주, 세계적 역사문화관광 도시로 거듭나길

경주의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에 관한 ‘신라왕경특별법 시행령’이 12월 11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경주의 신라왕경 복원과 정비를 위한 사업이 보다 탄력을 받게 됐다.우리민족 첫 통일국가로 1천년의 역사를 가진 신라의 수도 경주가 얼마나 옛 모습을 찾아갈지 기대가 모아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경주는 6년전 시작한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사업에 대해 상당한 기대감을 가졌으나 신라왕경 복원사업에 대한 법적근거가 없어 사업 자체가 사실상 지지부진했다. 2025년까지 총 9천45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었지만 문화재청, 경북도, 경주시 등 추진 기관간 업무협약 형식으로 추진되면서 사업의 체계성이나 신속성이 많이 부족했다.이번 시행령에는 신라왕경 복원사업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도록 강제 규정하고 재정적 지원에 관한 규정도 마련했다. 또 핵심 유적의 범위와 종합계획, 연도별 시행계획, 추진단 업무의 구성과 운영에 관한 내용도 구체화 했다.이에 따라 월성과 황룡사지, 동궁과 월성, 첨성대, 대릉원 일원 등 7군데이던 사업 대상지가 14군데로 확대됐다. 경주 신라유적지 대부분이 복원 대상에 포함됨으로써 천년고도 신라의 복원에 대한 기대감을 더 한층 높게 하고 있는 것이다.경주는 찬란한 통일 신라의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발길을 돌리는 곳마다 문화재를 만날 수 있으며,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역사학자 유홍준 박사는 경주를 제대로 보려면 최소한 한 달은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찬란한 문화유산의 보고(寶庫)라는 별명이 걸맞는 곳이다. 전국 어디에 가도 이런 곳은 없다. 과거 수학여행하면 경주를 먼저 손꼽았다. 역사문화와 관광의 대표적 도시였다. 그러나 다른 도시가 발전하는 동안 경주는 역사문화도시로서 특징을 살리지 못하고 옛 명성만 간직한 채 한번 들르면 다시 찾지 않는 도시로 남았다. 신라왕경 복원과 정비를 위한 특별법의 시행을 계기로 경주의 문화재가 2천년의 역사를 뚫고 세상의 주목을 받았으면 한다. 특히 이번이 경주가 세계적 역사문화관광의 도시로 발전하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세계 어느 문화역사 도시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는 경주는 이제 세계적 관광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은 것이다.

2020-10-28

부동산·고용 통계까지 ‘엉터리’ 논란… 한심

현 정부 들어 정부의 입맛에 맞춰 통계 수치가 조정되는 이른바 ‘코드 통계’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부동산 통계에 대한 의문 제기에 이어 고용통계까지 시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통계청장 출신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 통계에 대해 쓴소리를 내놨다. 유 의원은 특히 “통계조작은 곧 국민의 알 권리를 묵살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여론조작’으로 이어지는 ‘코드 통계’ 논란의 의혹은 낱낱이 규명되고 시정돼야 한다. 유경준 의원은 페이스북에 “전일제 환산 취업자 지표(FTE) 기준 올해 한국의 일자리가 135만 개 줄었다”고 주장했다. 통계청이 지난 9월 기준 취업자가 39만2천 명 감소했다는 통계발표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FTE는 일주일에 40시간 근무한 것을 일자리 1명분으로 산정하지만, 통계청의 취업자 계산 방식은 일주일에 1시간만 일해도 취업자 1명으로 계산하는 국제노동기구(ILO) 방식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 의원은 “‘일자리가 늘었다’는 정부 여당의 말 잔치는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비판했다.지난 7월 국회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 아파트 가격이 14% 올랐다”고 답변해 논란이 일었다. 김 장관이 인용한 수치는 한국감정원 매매가격지수였는데, KB국민은행 지수 상승률과 격차가 컸다. 그 이후 이상한 현상들이 벌어졌다. 지난 2003년부터 17년간 다양한 부동산시장 동향지수를 매주 발표해온 KB부동산이 매매·전세 거래지수 관련 통계를 10월부터 중단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실거래가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부동산 통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문재인 정부에 대해 “집값 잡으랬더니 집값 통계를 잡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정부가) 통계를 자주 바꿔 시계열 분석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통계’는 정부 정책의 출발점이고,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기초자료다. 통계 전문가 유경준 의원의 “이 정부의 고용통계가 처음에는 ‘무지’였지만 지금은 ‘사기’다”라는 지적이 놀라우면서도 쓰리다.

2020-10-28

포스트 자유학년제 준비를!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아빠,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 학교에서는 1분이 1시간보다 더 길던데 ….!”월요일 아침 일찍 깨워달라고 한 중학교 1학년 아이가 일어나면서 한 첫마디다! 알람 소리를 사이렌 소리로 할 정도로 등교에 대한 의지가 강한 아이지만, 잠에는 장사가 없었다. 그래도 잠시 뒤척이더니 벌떡 일어나서 2주 만의 등교 준비를 하였다.출근 준비를 하다 달력을 보았다. 한 주밖에 남지 않은 10월이 필자를 처연하게 보고 있었다. 달력에서 제일 먼저 마음에 들어온 것은 “상강(霜降)”이었다. 출근길에 상강을 생각했다.상강은 가을의 마지막 절기이다.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라는 속담처럼 차창 너머 들판에는 가을걷이가 한창이었다. 멀리서도 농부의 콧노래가 들리는 것 같아 손장단을 쳤다. 내년을 위해 숨 고르기에 들어간 추수를 끝낸 들판을 지날 때는 손이 더 경쾌하게 움직였다. 자연과 함께 하는 출근길은 늘 즐겁다. 끝은 시작이라는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증명하는 자연이 필자에게 화두를 던졌다. 핵심은 “준비”였다.“아빠, 내년부터 시험 보는 것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아.”코로나 19 때문에 모두가 힘들지만, 가장 큰 혼돈을 겪는, 또 겪을 층은 현 중학교 1학년이다. 중학교 1학년은 자유학년제에 해당하는 학년이다. 하지만 등교일 자체가 얼마 되지 않기에 중학교 1학년들은 자유학년제 프로그램은커녕 중학교 생활 자체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 경험 부족은 당연히 이해 부족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해 부족은 부적응을 낳을 것이 뻔하다.자유학년제를 지낸 학생들은 자유학년제 전후 학교생활은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자유학년제는 취지만 보면 교육계의 문명(文明)과도 같은 제도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자유학년제 해당 학년은 문명 이후의 삶이라면, 자유학년제가 끝난 학년의 삶은 문명 이전의 혼돈의 삶이다.교육 수요자는 자유학년제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데, 교육 당국은 연계학기(년)제라는 말도 안 되는 제도를 예로 들면서 괜찮다고만 한다. 과연 학교 현장에서 자유학년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시행할 수 있는 교사가 몇이나 될까? 필자는 오래전부터 서열경쟁 중심의 교육과정 속에서는 자유학년제는 절대 불가능한 제도라고 계속해서 외치고 있지만, 씨알도 안 먹힌다.그래도 또 제안한다. 자유학년제를 지속하려면 학생들이 자유학년제 이후의 중학교 생활을 준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학생들이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바로 학교 정규 시험이다. 그러니 중학교 1학년 11월부터는 자유학년제의 이상을 거둬내고 학생들이 대한민국 학교 현실에 적응할 수 있도록 1학년 정규 시험 기간을 두자. 이런 준비도 없이 그냥 학생들을 중학교 2학년으로 진급시키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범법 행위이다.사교육 현장에서는 “수학은 대학을 결정하고, 영어는 직업을 결정한다.”라고 학생들을 세뇌하고 있다. 이 말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초등학교 8학년인 내년 중학교 2학년이 걱정이다.

2020-10-28

가짜편지

김규종 경북대 교수며칠 전 삼성 이건희 회장이 별세했다. 숱한 화제를 뿌리며 한국 사회를 쥐락펴락했던 인물. 언젠가 노무현 대통령이 “이제 권력은 시장(市場)으로 넘어갔다”고 일갈했을 때, 시장이 뜻하던 바는 삼성. 삼성 총수가 6년 넘도록 투병하다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그의 죽음이 10·26과 하루 차이라는 우연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절대권력도 엄청난 돈도 결국에는 죽음 앞에 무의미해진다는 자명한 사실.그들도 사랑 때문에 밤을 새우거나 가슴이 아파 몇 날 며칠 두문불출 괴로워한 일이 있는지, 궁금하다. 18년 권력을 휘둘렀던 전직 대통령과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면서 이 나라 삼척동자도 아는 재벌총수. 그들이 사랑하는 여인으로 번민의 밤을 하얗게 밝혔을지, 그것이 알고 싶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김수영 시인처럼 나는 왜 사소한 일에 관심이 있는지 모를 일이다.그의 죽음에 즈음해서 가짜편지가 시중에 떠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그가 손수 썼다는 편지는 여러모로 흥미롭다. “아프지 않아도 해마다 건강검진 받아보고, 목마르지 않아도 물을 많이 마시며”로 시작하는 장문의 편지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양보하고 베푸는 삶을 설교하는 대목도 이채롭다.사람의 가치가 비싼 옷과 자동차와 집이 아니라, 건강한 몸이라고 설파하면서 만족할 줄 알라고 편지는 충고한다. 중간 이후는 스스로 자책하면서 늙고 젊은 사람들에게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무한한 재물추구는 나를 그저 탐욕스러운 늙은이로 만들어 버렸어요. 내가 한때 누렸던 돈, 권력, 직위가 이젠 그저 쓰레기에 불과할 뿐….”자신의 성취와 소유를 이토록 강렬하게 부정할 줄 아는 비판능력의 소유자! 편지를 읽으면서 곳곳에서 나는 전율했다. 그리고 ‘좋아요’를 눌렀다. 젊은이들은 너무 황망히 서둘러 살지 말기를, 나이든 축들은 행복한 만년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라는 가르침. 내가 알던 재벌총수 이건희와 너무도 다른 모습에 당혹스럽기도 했다.삼성은 편지가 가짜라고 확인한다. ‘에휴, 그러면 그렇지!’ 하는 아쉬움과 허망함이 동시에 몰려온다. 숱한 불법 탈법 무법 초법(超法) 위법을 감행하면서 거대재벌 총수로 등극한 사람이 저리 자상하고 따뜻한 인물이었다니, 하는 희열의 순간은 아주 짧았다. 만일 우리나라 유수의 재벌 가운데 누군가 저런 편지를 유훈으로 남기면서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을까?! 빌 게이츠 같은 사람 말이다.가짜로 드러났지만, 많은 사람이 감동과 기쁨과 연민을 동시에 느끼도록 한 편지는 오래도록 인구에 회자(膾炙)될 듯하다. 우리의 확증편향과 선택적 기억을 단박에 날려버리는 청량한 한줄기 소낙비 같은 편지였으므로! 가짜도 이런 가짜는 닦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나뭇잎처럼 말이다. 하나의 시대가 조용히 저물고 있다. 21세기가 흘러간다, 붉게 물든 단풍잎처럼!

2020-10-28

인재경영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영국의 과학잡지 ‘네이처’가 선정한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 10인 중 한 명이다.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인재로 그는 화가,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과학자. 의사, 천문학자 등 수많은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그가 남긴 대표작 ‘모나리자’ 하나만으로 그의 천재성은 충분히 입증된다.보통 천재라 함은 “선천적으로 남보다 월등히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 하지만 심리학계는 이를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았다. 하나는 표준화한 지능검사 결과, 보유능력이 뛰어난 인물을 가리킨다. 미국의 심리학자 터먼은 지능지수 140 이상을 잠재적 천재로 보았다. 그 숫자는 전체 인구의 0.4%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또 하나는 실제 업적에서 나타난 높은 수준의 창조적 능력을 말한다. 천재는 독창성과 창조력, 사고력을 필수적으로 지녀야 하며 미개척분야를 개척함으로써 그 속에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본 것이다.‘네이처’지가 선정한 역사상 세계 최고의 천재로 꼽힌 인물치고 빛나는 업적이 없는 이는 없다. 독일 문학 최고봉을 상징하는 괴테나 영국이 낳은 극작가 셰익스피어, 상대성 이론의 아인슈타인, 미켈란젤로, 뉴턴 등등 그 어느 누구도 천재라 불러도 어색지 않는 인물이다.한 사람의 천재성이 지구와 인류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사실에 반론할 이유는 없다. 지난 25일 타계한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인재경영론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천재 1명이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그의 철학은 지금 삼성을 세계 최고 기업으로 만든 원동력이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도 사람이 하듯 인재중시 경영의 가치는 앞으로도 존중돼야 할 경영지표다./우정구(논설위원)

2020-10-27

고종 황제의 친일 행각을 다시 본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아직도 이 땅에는 친일 문제가 청산되지 못했다. 과거 친일을 논할 때 한일합방에 앞장선 소위 박제순, 이완용 등 매국에 앞장선 을사오적을 혹독히 비난했다. 친일 인명사전 발표 후 친일의 범위는 대폭 확대됐다. 백선엽이 등장하고 ‘토착왜구’가 회자되는 오늘의 현실이다. 을사조약 전야의 고종의 무능과 친일 행적이 드러나고 있다. 한말 고종의 일본정부의 뇌물 수뢰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한말의 고종의 친일 행적을 찬찬히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국정 최고 책임자 왕의 책무를 되새겨 보기 위함이다.한일합방 전후의 고종의 정세 판단 능력이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임란 시 정명가도(征明假道)를 내세워 조선을 침공한 일본을 막지 못한 선조보다 못한 그의 처신이다. 고종은 1896년 아관파천에 이어 러일전쟁 초 일본군의 창덕궁 진입까지 허락했다. 일본의 노일 전쟁의 승리는 미일간의 소위 ‘가쓰라-테프트 밀약’으로 이어졌다. 고종은 이 밀약대로 필리핀은 미국이, 조선은 일본이 분할 통치하는 사실도 몰랐다. 고종은 당시 일본과 미국이 조선을 보호한다고 믿었으니 정말 무능의 극치다. 고종은 당시 밀약의 추진자 미 대통령 루즈벨트의 딸의 조선 방문 시 극진히 대접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고종이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 체결 일주일 전 일본 공사로부터 뇌물 2만원을 받았다. 현재 우리 돈 25억원에 이르는 거금이다. 수뢰 명목은 대사 이토오 히로부미 접대비로 되어 있다. 대표적인 친일 관료 박제순 1만5천원, 이완용은 1만원, 관료들도 친일 행적에 따라 3천원에서 5천원 씩 받았다. 일본 왕실의 주한영사 기록 24권(1905년 12월11일)에 기록된 내용이다. 고종은 그해 3월 31일 일본 특사로부터 당시 경부선 철도 지분과 함께 뇌물 30만 엔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1904년 당시 영국 외무부 자료) 모두가 충격적인 사실이다. 당시 왕실의 뜻있는 관료들은 고종의 친일적 행위를 반대했다. 당시 의정 참정 한규설은 고종의 을사조약 체결을 적극 반대하다 파면됐다. 고종은 매국노 박제순을 그의 자리에 앉혔다. 당시 의정부 참찬 이상설은 박제순의 의정 서리 임명에 울분을 참지 못해 연해주 망명길을 택하였다. 원로대신 조병세는 왕에게 읍소하다 파직되고 민영환 역시 울분을 참지 못해 자결했다. 고종은 갑신개혁의 김옥균의 시신까지 찾아 응징했다. 매국관료들은 승승장구하고 이를 상소한 충신들이 파직되는 상황에서 나라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우리 역사는 을사오적은 비난하면서도 이들을 비호한 고종만은 비판하지 않았다. 조선의 마지막 왕에 대한 동정의 발로였을 것이다. 해외의 애국지사들은 멀리 망명지까지 고종을 모셔오기로 결심했다. 해외 연해주에서도 상해 임정에서도 고종의 구출 작전까지 세웠다. 일본 총독부의 엄격한 감시로 모두 좌절됐다.고종 장례 일에는 한성뿐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대성통곡하는 행렬이 이어져 3·1 만세 시위로 변했다. 고종의 친일 행적을 모르는 순진한 민초들의 눈물이었다. 무정한 역사는 숨겨진 비밀만은 감추지 못하는 법이다.

2020-10-27

협박부터 앞세운 與 ‘공수처’ 접근법 수상쩍다

국민의힘이 그동안 시간을 끌어오던 공수처장 추천위원회 야당 몫 위원을 결정하고 공수처 설치에 대한 협조를 시작했다. 26일까지 시한을 정해 압박하던 여당은 이번에는 추천된 인사의 면면을 시비하면서 의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 1개월이라는 공수처 출범시한 데드라인을 내놓고 공수처법 개악을 걸어 압박을 펼쳤다. 공수처법의 핵심조항인 ‘중립성’을 하염없이 위협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속셈은 대체 무엇인가. 국민의힘은 대검찰청 차장검사 출신 임정혁 변호사와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지낸 이헌 변호사를 결정 통보했다. 지난 1월 14일 공포된 ‘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6개월이 경과한 7월 15일 공수처를 출범토록 규정하고 있다. 제1야당은 그동안 “우리는 찬성한 적이 없다”, “헌재판결까지 미루자”는 비논리로 공수처 출범을 발목잡기 식으로 지연시켜왔다. 일부에서 제1야당의 이런 행태에 ‘전략 미스’라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공수처’ 설치를 ‘검찰 개혁’의 본령인 양 오도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이 결정한 추천위원을 놓고 불신부터 드러내고 있다. 이낙연 대표는 야당의 추천위원을 가리켜 “한 분은 세월호특조위 활동 방해 의혹으로 고발당했다”면서 “출범을 가로막는 방편으로 악용하려 한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법사위원장인 윤호중 민주당 의원도 “공수처법 개정 논의는 계속 진행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현행 공수처법은 공수처장후보추천위 위원 7명 중 6명 이상 찬성으로 처장 후보를 의결되도록 규정해 ‘야당의 비토권’을 보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 조항을 들어서 “공수처는 정치적으로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누누이 강변해왔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을 ‘국회 4명 추천’으로 바꾸고 추천위의 의결정족수도 5명으로 완화하는 개정안을 내놓고 야당에 겁박을 일삼고 있는 민주당의 행태는 본질을 훼손하는 망발이다. 만약 공수처가 그렇게 돌아간다면 이 나라는 곧바로 야만적 ‘독재국가’로 회귀하게 된다. 국민의힘은 일단 ‘공수처’ 설치에 협조해야 한다. 민주당도 흑심을 버려야 한다. 그게 정도(正道)다.

2020-10-27

소멸위기 전국 1위 의성군의 반전 주목하라

경북 의성군이 지방소멸 위험지역 전국 1위라는 불명예에서 탈출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지난 8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합계출산율 자료에 따르면 의성군의 합계출산율은 1.76명으로 경북도 평균 1.09명과 전국 평균 0.92명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전년도보다 0.13명이 증가하면서 경북도내 시군 중 1위를 차지했다. 전국적 인구감소 추세를 감안할 때 의성군의 합계출산율 증가는 매우 이례적이고 고무적이다.한국고용정보원 자료에 의하면 2016년 7월 의성군은 노인인구 1천명당 20∼39세 여성의 숫자가 168명에 불과했다. 젊은층이 대도시로 떠나면서 생긴 인구구조의 변화가 만든 지방 농촌의 전형적 모습이다.한국고용정보원은 2016년 전국 지자체 가운데 저출산 노령화로 인구소멸 위험지구에 접어든 시군이 모두 84곳(37.2%)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이것이 2020년 5월에 와서는 105곳으로 증가했다. 수도권으로의 인구이동이 지속 이뤄지면서 지방 소도시의 몰락을 예고하는 인구의 수도권 집중화가 빚은 결과다. 지방도시 소멸이란 가임여성의 수가 줄어들고 인구 노령화가 확대되면서 도시 자체의 생산력이 저하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인구와 산업 등 전 분야에서 수도권 집중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의성군의 출산율 증가는 충분히 주목할 만한 일이다. 전국 지방도시가 인구증가를 위해 각종 출산율 제고 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실제적 인구증가 효과는 얻지 못하는 마당이다.의성군은 2015년부터 지방소멸 전국 1위라는 불명예를 벗고자 각종 인구대책을 꾸준히 전개했다. 그 결과가 합계출산율 증가로 나타났다. 의성군은 높은 출산율 유지를 위해 모든 정책을 청년, 결혼, 임신, 출산, 육아 등에 맞췄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월급 받는 청년농부와 스마트팜 창업지원 사업 등은 청년의 유입을 재촉하는 사업으로 좋은 성과를 냈다고 한다. 의성군의 출산율 증가는 고령화와 저출산을 극복하려는 지자체의 모범적 사례가 될 만한 결과다.지방도시의 소멸은 지역민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국가 경쟁력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의성의 소멸지역 탈출은 아직은 미미하지만 그 성과에 관심을 갖고 더 많은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겠다.

2020-10-27

깡 신드롬과 환불원정대를 탄생시킨, 댓글 ‘판’ 짜는 MZ세대

사회적 거리 두기의 영향으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플랫폼의 시장이 더욱이 급성장하고 있다. 나 또한 하루에도 적지 않은 시간을 스트리밍 플랫폼에 사용하고 있는데, ‘넷플릭스’의 시리즈물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는 이미 본 것이라도 습관적으로 틀어 놓는 편이다. 영화가 보고 싶을 땐 ‘왓챠’ 서비스를 애용하고, 연재 중인 만화를 다시 보고 싶을 땐 ‘라프텔’을 이용하고 있다.OTT 플랫폼인 ‘디즈니 플러스’는 최근 ‘그룹 스트리밍 서비스’를 공개했다. 그룹 스트리밍 서비스란 각기 다른 곳에 있는 이용자들이 같은 영상을 보며 실시간으로 댓글을 나눌 수 있는 서비스다. 가까운 지인이나 연인과 함께 장소나 시간의 구애 없이 영화와 TV쇼를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실제로 한 공간에서 수다를 떠는 듯 흥미롭고 생각보다 영화의 몰입도 또한 나쁘지 않다. 최대 7명까지 시청할 수 있으며 PC나 모바일, 스마트 TV에서 사용할 수 있고, 영화의 몰입감에 방해된다면 이모티콘을 사용해 감정을 표현할 수도 있다.‘넷플릭스’와 ‘왓챠’도 그룹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한다. ‘넷플릭스 파티’는 크롬 기반의 웹브라우저를 통해 URL을 생성하고, 공유 링크를 통해 이용자가 접속해 같은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다. 채팅방에 입장한 모든 이들이 동영상을 멈추거나 돌려볼 수 있으며 실시간 채팅도 가능하다. 각자의 공간에서 함께 보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 새롭고도 안정된 시청 환경을 느낄 수 있다.‘왓챠 파티’ 또한 공유 링크를 통해 이용자들이 입장할 수 있다. 왓챠에서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를 왓챠 파티로 감상할 수 있어 영화 감상 모임을 꾸리거나 아이돌 영상을 찾아보는 특정 팬덤이 만나 작은 콘서트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언택트 시대에 걸맞은 색다른 소통법이자 함께 콘텐츠를 공유하고 교감하며 늘 플랫폼으로 연결되어 있는 MZ세대의 소통법과도 무척 닮았다.그룹 스트리밍 서비스는 게임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인 ‘트위치’가 앞서 시작했다. 게이머는 스트리머(Streamer)로 불리며, 스트리머가 게임을 하면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은 댓글을 달며 소통에 참여한다. 게임을 이기는 조건으로 후원금을 걸거나 특정 행동을 주도하는 등 흥미 요소를 일으키고 분위기를 이끈다.댓글 달기는 혼자가 아니라 다 함께 즐기고 교류하며 MZ세대 사이에서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 콘텐츠를 그저 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댓글 문화의 영향력은 상상이상으로 크다. 가수 비는 지난 2017년 미니 앨범 ‘MY LIFE愛’의 타이틀 곡 ‘깡’을 발표했다. 음원을 발표한 당시 일관성 없는 가사와 독특한 안무로 혹평을 들으며 빠르게 묻혔지만 호박진서연이란 유튜버가 1일 1깡 챌린지(하루에 한 번씩 춤을 추는 )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이후에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다. 비의 춤을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우스꽝스럽게 춘 것인데 의외로 이 동영상에 많은 이들이 몰렸다.그들은 오히려 역대급 혹평에 관심을 가지며 댓글을 달았고, 댓글에 대댓글을 달아 동조하며 또 하나의 재미를 만들어 냈다.비의 노래 제목인 ‘깡’에 걸맞게 ‘깡’으로 끝나는 과자 제품 광고를 찍어야 한다는 댓글에는 실제로 의견이 반영되어 과자 회사의 마케팅으로 활용됐다. 가수 비에게 제2의 전성기라 불릴 만큼 새로운 밈(meme)을 일으켰다.MZ세대는 센스 있고 재미있는 댓글을 발견하는 ‘댓글 맛집’ 영상을 찾아다닌다.올해 초 ‘숨듣명’이라는 유행어를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숨듣명이란 ‘숨어 듣는 명곡’이라는 뜻으로 나에게는 명곡이지만 밖에 나가 듣기에는 꺼려지는 노래를 일컫는다.주로 2010년대 발표작이며 독특한 음과 난해하고 모순적인 가사로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노래가 주를 이룬다. 비의 ‘깡’을 시작으로 제국의 아이들의 ‘마젤토브’, 틴탑의 ‘향수 뿌리지마’, 유키스의 ‘만만하니’ 등 발표된 당시 잠잠했던 곡들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해당 영상뿐만 아니라 반응이 좋은 동영상의 댓글을 모은 ‘댓글 모음’ 콘텐츠는 현재까지도 성행하고 있다.숨듣명은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문명특급’은 숨듣명 콘텐츠로 MZ세대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2010년 전후 당시 괴작 취급을 받았던 가요를 재발굴해 새롭고도 신선한 콘텐츠를 이끌어 냈다는 평을 받았다.MZ세대는 2010년 전후에 즐겨 들었던 가요를 중심으로 추억 여행을 한다. 노래가 출시되었을 때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거나 노래 가사와 얽힌 웃긴 일화를 댓글로 공유한다.여기에 B급 정서의 노랫말과 일반인은 소화하지 못 할 가수의 의상, 한때 유행이었던 패션 소품을 보는 재미를 나눈다. 그간 완벽한 발라드곡에 지친 이들이 심플한 댄스곡이나 B급 감성이 느껴지는 단순한 곡을 선호하는 것 같다는 의견도 있다.그렇게 MZ세대는 콘텐츠를 소비하며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그들만의 ‘판’을 짠다. MBC ‘놀면 뭐하니?’의 회심작 그룹 ‘환불원정대’는 SNS의 댓글에서 시작되었다. 한 댓글인은 한 때 가요계를 대표했던 여성 가수와 현재 강한 인상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가수를 모아 환불원정대의 데뷔를 제안했다.댓글을 본 가수 이효리의 긍정적인 반응으로 인해 엄정화, 이효리, 제시, 화사 등 4명의 가수가 빠르게 모여 그룹이 탄생했다. 환불원정대는 데뷔 과정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이끌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의 관심과 주목 속에서 화려하게 데뷔했다.MZ세대는 어디에서나 그들만의 판을 다양한 콘텐츠로 이끌어 가고 있다. ‘에브리타임’은 전국 대학생의 휴대폰에 하나씩은 꼭 깔려 있는 애플리케이션이다. 대학교 시간표 스케줄을 보기 쉽게 정리할 수 있으며, 여기에 대학교 커뮤니티의 역할을 겸하고 있어 대학생들 사이에서 이용률이 매우 높다.앱을 사용하여 휴대폰 배경화면에 시간표를 띄울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학점 계산기, 강의평 열람도 가능하다. 주로 사용하는 건 커뮤니티인데 그들만의 강의 후기를 공유하거나 취업 이야기, 편입 상담, 스터디 모집, 중고 서적 거래, 드라마 추천, 물건 나눔 등 고루 이루어진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익명성이 보장되는 댓글 문화 덕분에 자신만의 경험이나 노하우 등을 빠르게 공유한다. 학교별 커뮤니티의 경우 이메일로 재학생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정보를 나누는 댓글은 신뢰도가 높다.콘텐츠를 소비하는 이들이 만드는 문화의 비중이 중요해졌다. 참신하고 독특한 문화의 새로운 방향성은 환영이지만 익명성에 기대어 차별과 혐오의 장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자신에게도 하지 못할 말은 아무에게도 아무 곳에서도 하지 말자.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가는 문화가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2020-10-27

담벼락

공간을 둘러막기 위해 흙이나 돌, 벽돌 등으로 쌓아 올린 것을 담이나 벽이라 한다. 영역을 보호하고 표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벽을 만들기도 하고 독립된 공간에서 외부와 단절의 안식을 갖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종종 아주 미련하여 어떤 사물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하여 담벼락이라 하기도 한다. 담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 꽉 막히고 답답하니 그렇게 비유된다. 이렇듯 담벼락은 자신을 보호하기도 하고 영역을 표시하기도 하지만 자의에 의한 단절과 고립의 용도이기도 하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본능을 최대한 잘 나타내는 것이 담벼락이라고 할 수 있다.현대의 담벼락은 다양한 형태로 변화되었다. 예전과 달라진 특징 중에 두드러지는 것은 소통을 배려한 형태의 담벼락이다. 수많은 정보와 간접 경험의 기회가 풍부해진 현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 조건 중의 하나가 소통이기 때문이다. 소통에 적극적이어야 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적절히 편승하는 것이며, 소통을 통해 신속하게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존재감과 사회적 위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인간은 소통과 자의적 고립의 양립 선상에서 숱한 고뇌와 번민에 빠지게 된다.나는 담벼락의 형상을 카메라에 담는 작업을 통해 소통과 자의적 고립 사이에서 고뇌하는 현대인의 다양한 본능을 탐색하고 기록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의 외적 형상이 무엇을 표현하려 하는지 무엇을 감추려 하는지 어렴풋이라도 알게 되리라 기대해본다. /박의희(사진작가)

2020-10-26

지는 노을 바라보며

얼마 전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남편과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멋진 노을을 보았다고. 그 자리에서 차를 세우고 노을을 보고 싶었지만, 배고픈 남편이 차를 세우지 않고 통과해버려 아름다운 노을을 놓치고 말았다고.문득 호주에서 살 때가 생각났다. 아침에는 학교에 다니느라 도시락 싸서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다녔었고, 주말에는 나를 먹여 살리느라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돌아왔다. 그래도 평일 오후에 집 근처 달링하버에서 산책을 할 때면 노을 지는 풍경을 가끔 바라보곤 했었다. 붉은 해가 뒷걸음칠 때면 그리운 가족들, 보고픈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울음을 삼키곤 했었다. 어린 마음에도 엉엉 우는 건 남들에게 보이고 싶진 않았던 거 같다. 주말마다 가족들과 통화를 할 때면 그저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했었다. 여행할 때마다 해넘이를 보며 넋을 놓았던 것도 그때의 어린 내가 생각나서였다.며칠 후, 아침부터 흐린 하늘이 나를 우울하고 멍하게 만들었다. 지인과 함께 노을을 보러 떠났다. 포항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칠포해수욕장 입구였다. 주말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나다니던 바닷가였는데, 지인의 놀라운 관찰력과 세심함에 한 번 더 놀랐다. 지나가던 나이든 남자도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역시 무덤덤한 아저씨조차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노을 명소 인가보다.칠포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강에 노을이 내려앉았다. 하루 일을 마치고 서산으로 귀가하는 태양의 모습만으로도 우리들의 발길을 사로잡고도 남는데, 그 모습이 강물에 반영돼 노을의 모습이 두 배가 되었으니 감동이 두 배였다. 바람 한 점 없어서 더 풍경이 아름다웠다. 강물이 바다에 진입하기 전에 또 하나의 임무를 완수하고서 강이라는 이름을 반납하고 바다가 되었다. 오랫동안 말없이 노을을 바라보았다. 20대의 내가 40대를 준비하는 나에게 그동안 잘살았노라고 붉을 노을로 토닥여주고 있었다./엄민재(포항시 북구 삼호로)

2020-10-26

꽃에게서 배운다

꽃을 키우다 보면 항상 먼저 꽃망울을 터트려 기쁨을 주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른 애들이 한창 필 때쯤엔 처음에 핀 꽃들은 시든다. 당연한 결과이리라. 처음 보여준 고마움에, 미련에 시들어 가는 꽃대를 그냥 두면 꽃나무도, 시든 꽃도 피우려고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도 모두 힘들어진다. 그래서 부지런히 시든 꽃을 잘라줘야 한다.사람 관계도 마찬가지이리라. 친구 H의 아들이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1년 넘게 슬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들은 나도 가슴 아픈데, 지켜보는 엄마는 얼마나 속이 시릴까?살다 보면 꽃 피지 못 하고 사그라든 인연도 많다. 한때 꽃 피웠으면 그걸로 됐다. 토닥토닥 시절 인연이 다 했으니 힘들어하는 그 인연을 놓아 줘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인연의 꽃이 필 테니.나의 말을 듣던 K가 새 인연을 위해 놓아주어야 한다는 그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며 자신의 꽃을 떠나보낸 마음을 털어놓았다. 꽃나무 드라코를 기르다 자신의 부주의 때문에 죽어버렸다고. 나는 꽃을 죽인 게 아니라 화훼 농가를 살린 거라고 위로했다. 화훼 농장하는 언니가 해준 말이었다. 많이 죽여봐야 그다음에 잘 키운다는 덕담도 해주었더니 경제적 마인드로 자신을 위로해줘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다.우리 집 옥상에 가을꽃이 한창이다. 소국이 퐁퐁 꽃을 피워 향기를 가득 내뿜고 키 낮은 채송화도 색색이 피어 존재감을 드러낸다. 힘든 일이 있으면 허리를 숙여 자신을 보고 웃으라는 듯 생글거린다. 이른 봄을 준비하는 동백은 몽오리를 한껏 만들고 있다. 백작약은 마른 잎을 더 말며 5월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인사를 한다. 목이 말라도 주인의 손길이 오기만 기다릴 뿐 생떼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말 없는 꽃을 기른다는 것은 쉬운 듯 보여도 언제 목이 마른 지 추위를 타는지 자주 들여다보는 관심이 있어야 한다고 온몸으로 알려준다. 말수 적은 꽃에게서 오늘도 배운다./이홍숙(경주시 안강읍 갑산2리)

2020-10-26

할머니의 숟가락 사과

아주 오래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이가 몇 개 없으셨다. 내 기억에 할머니는 입술 밖으로 살짝 튀어나온 아래 송곳니 하나와 그와 비껴 달려 있는 윗니 두 개가 잇몸에 남아 있으셨다. 그런데 나는 모든 이가 멀쩡한데도 애늙은이란 별명처럼 딱딱한 음식은 잘 씹지도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그런 내게 할머니는 사과를 깨끗하게 씻은 후 껍질째 사과를 반 쪼개서 할머니의 왼손바닥에 사과를 얹어 쥐시고는 밥숟가락으로 사과를 긁어주셨다.그렇게 숟가락으로 긁어주셨던 사과는 어찌나 달고 잘도 넘어가던지, 사과 반쪽이 순식간에 내 입속으로 꿀떡꿀떡 들어왔다. 과육이 숟가락에 반 정도 차면 입안에 침이 고이며 빨리 사과가 갈아지길 기다렸고, 그렇게 가운데 씨를 중심으로 사과는 위아래 꼭지를 빼고 껍질만 남아 그릇처럼 비워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쉬지 않고 사과를 갈아내셨던 할머니는 얼마나 손목이 아프셨을까 싶다. 그때의 내 모습은 마치 맛난 간식 앞에서 빨리 그걸 넘겨주길 바라는 댕댕이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할머니는 머리숱이 많이 남아 있지 않으셨는데도 정갈하게 쪽 머리를 하셨고 할머니의 물건 꾸러미에는 참빗이 있었다. 그리고 꽤나 오래 사용하신 듯한 낡은 은비녀를 쓰셨다.나는 아침에 할머니께서 쪽 머리를 하시기 전 풀어 내려진 할머니의 긴 머리 길이를 보고 놀랐고, 그 머리를 가지런히 참빗으로 빗으신 후 말아 올려 쪽지시는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봤었다. 우리와 늘 함께 사셨던 게 아니라 어쩌다 다니러 오시면 내게 사과를 갈아주셨던 할머니. 다 비워졌던 사과 껍질처럼 할머니의 몸무게가 가벼워지셨을 그 언젠가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가끔 사과를 보면 한번 숟가락으로 갈아 먹어볼까 하는 생각과 할머니께서 갈아주신 사과즙의 달콤함과 너무 어려서 뭔가 제대로 해드리지 못한 아릿함이 겹쳐진다./권현주(포항시 북구 장성동)

2020-10-26

내 삶에 의지와 모험을… 영주 희방사(喜方寺)

이른 아침 중앙고속도로는 안개로 자욱하고, 대형 전세버스들로 몸살을 앓았을 소백산 입구조차 한산하다. 붉게 물든 단풍과 상실의 눈물처럼 떨어지는 낙엽들, 소백산 가을잔치는 화려하고도 쓸쓸하다.희방사는 고운사의 말사로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두운이 창건하였다. 1850년 화재로 소실되어 강월이 중창하였으나 6·25전쟁으로 네 채의 당우와 보관되어 오던 월인석보 판목 등이 소실되었다. 다행히 주존불은 무사하여 두운이 기거하던 천연동굴 속에 보관하다가 1953년 중건한 뒤 대웅전에 봉안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희방사는 생각보다 작은 사찰이다. 보수 중인지 인부들이 자재를 옮기느라 경내는 분주하다. 일행은 여러 번 와본 절이라며 스치듯 등산로로 접어들고 나와 남편은 대웅전에 들러 삼배의 예를 갖춘다. 어수선한 절 분위기 때문인지 마음이 신산하다. 수런거리는 가을의 수다가 법당까지 흘러들어와 나를 유혹한다.서둘러 법당을 빠져나오는 발걸음이 편하지가 않다. 절 기행과 등산, 두 가지 목적을 이루기에 소백산은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다. 절 주변을 밝히는 단풍들과 시나브로 떨어지는 나뭇잎들이 자꾸 나를 돌아보게 한다.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들으며 붉은 슬픔이 차오르는 숲으로 흐느끼듯 걸어 들어간다.가을 숲과 음악이 있어 행복하다. 하지만 계절에 대한 감탄도 잠시, 하늘은 멀미가 일 듯 단풍으로 출렁이고 산길은 점점 더 가파르다. 얼마 오르지 않아 아픈 다리와 거친 호흡으로 걸을 수가 없다. 산을 잘 타는 남편이 앞에서 잡아주고 호흡법을 가르쳐 주며 격려하지만 몸은 등반에 대한 기억조차 가물거린다. 가슴이 죄어오고 두통까지 몰려온다.내 곁을 떠나지 못하는 남편과 기다리고 있을 일행이 점점 부담스럽다. 지켜보는 눈들이 산행을 더 힘들게 한다. 중간중간 이정표는 까마득히 남은 거리를 제시하며 낙오자 하나쯤 자랑스럽게 내걸고 싶어 하는 눈치다.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명산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작정 산을 오른다. 시야에서 벗어난 일행을 좇기 위해 산을 오르는 것도 같다.지금이라도 희방사로 내려가 스님을 뵙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그토록 황홀하던 단풍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나는 험난한 등산로 앞에서 괴로워하는 것이다. 무거운 짐을 싣고 사막을 달리는 낙타처럼 나 자신의 사막으로 달려가고 있다. 산을 오를수록 나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벤치가 있는 나무 아래에서 더 이상 일어서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나를 위로하는 남편의 주름진 얼굴 위로 선득한 바람이 분다. 젖은 옷 속으로 스며드는 한기보다 더한 서글픔이 밀려든다. 가는 세월 앞에서 나는 무엇으로 위안 받기를 원하는가.연화봉 정상에 설 기회는 다시 주어지지 않을지 모른다. 아름다운 시간은 덧없이 짧고 머지않아 닥칠 겨울은 길고 건조하리라. 무엇이 두려워 주어진 시간과 젊음을 포기하려고 하는가. 비록 정상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스스로를 극복하며 최선을 다하는 게 삶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든다.이른 점심을 챙겨 먹고 남편보다 먼저 폴대를 잡고 앞서 걷는다. 바닥을 보이던 체력은 놀랍게도 다시 힘이 난다. 일행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과 언젠가 다녀온 비로봉의 힘든 노정이 나를 옥죄었던 것일까. 몇 번의 난코스를 힘겹게 오르자 나는 지친 낙타에서 한 마리 사자로 변하고 있었다.육체적인 고통은 무감각해지고 길은 스승이 되어 나를 이끈다. 나와 길은 하나가 되기도 하고 때론 내가 길보다 앞서 걷는다. 거친 장벽과도 같던 산은 다양한 즐거움을 안겨주며 함께 걷는다. 고비를 극복하고 난 뒤에 안겨드는 희열이 좋다.“많이 힘들지요?” “힘내십시오.”마주치는 사람들이 건네 오는 격려에는 진심어린 온기가 담겨 있다. 정상을 밟고 내려오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이며, 같은 아픔을 맛본 자들만이 나눌 수 있는 믿음과 위로이다.연화봉은 아직 멀기만 한데 능선에서 바라본 희방사는 한참이나 아래에 있다. 절은 작지만 또렷한 상징물이 되어 나를 격려한다. 어수선하고 산만하던 절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머리를 맞댄 당우들이 자기를 낮춘 채 소백산 품에 안겨 있다. 어떤 확고함으로 중심을 지키고 서 있다.조낭희 수필가날이 밝기까지 고뇌하지 않은 어둠이 있을까. 묵묵히 이 길을 올랐을 사람들의 땀방울과 그들이 짊어졌을 무게를 생각한다. 고통의 밑바닥에서 쟁취한 자유는 더 깊고 클 수밖에 없다. 일행보다 한참 늦었지만 1,376m 연화봉에 서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고독한 낙타가 아니었다. 의지와 모험을 추구하며, 나 스스로를 극복해 나가는 한 마리 사자가 되어 있었다.내려오는 길에 들른 희방사는 그제야 속살을 드러내며 다가온다. 지장전 앞을 지키는 상록수는 흔들림이 없고 종소리가 은은하다는 동종도 함부로 울지 않았으며, 요사채 뜰 위에 검정 고무신 한 컬레가 좌선하듯 사색에 잠겨 있다.

2020-10-26

완급을 가진 리듬, 즐겁고 환상적인 영상

웨스 앤더슨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있다. 화면에 배치된 인물과 소품들, 그들의 동선에까지 경쾌한 리듬을 지닌다. 이 리듬은 완급의 조절과 멈춤에서 기인한다. 멀리 빠져 있던 카메라는 서서히 들어가는가 싶더니 과감하게 점핑해서 클로즈업하거나 더 들어가는가 싶더니 멈춘다.완급을 가진 리듬에 음악이 깔린다. 이 음악은 그의 영화를 이끄는 속도를 따라 혹은 사건을 따라 배경이 되어 영화 속으로 녹아들게 만든다. 끊임없이 분위기를 이끄는 음악과 완급을 가진 리듬에 대사는 넘치지 않는다. 절제된 대사는 이야기를 이끄는 필요한 만큼의 정보를 전달할뿐 구구절절하지 않다.이는 무성영화의 형식과 흡사하다. 모든 대사가 자막으로 전달되던 무성영화에서 대사는 함축적이며 간명했다. 그리고 시종일관 그 배경에 음악이 깔려 분위기를 전달하며 결말로 관객들을 이끌었다.편집은 완급을 가진 리듬에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과정을 나눠주고 있으며, 친절하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관객이 이야기 밖으로 이탈하지 않도록 돕는다. 영화 속 현재는 1980년대다. 그리고 1930년대와 1960년대 후반을 오간다. 이에 따라 화면 비율은 1.85:1, 2.40:1, 1.37:1을 오간다. 모두 해당 장면이 배경으로 하는 시대에 주로 쓰이던 영화 화면 비율이다. 화면 비율만으로도 우리는 어느 시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편집과 완급을 가진 영화의 속도와 경쾌한 음악으로 인해 영화가 시작되면 깔끔하게(?) 결말에 이른다. 깔끔하다는 것은 복잡한 전개구조와 갈등이 없으며, 복선과 암시로 인해 앞뒤의 사정을 되짚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모든 것들은 경쾌한 분위기를 살려주는 ‘스타카토’와 같다. ‘스타카토’는 음악의 형식을 나타내는 기호로 해당 음의 길이를 줄여 짧게 연주하라는 악상기호이다. ‘스타카토’로 인해 선율에 변화를 주거나 특정 부분을 강조할 수 있다. 자칫 복잡해 질 수 있는 영화의 구성에 과감한 생략을, 멈추고 달리는 전개에 ‘스타카토’선율처럼 속도에 변화를 부여한다.여기에 영화의 색감은 화려하고 선명하다. 세트와 등장인물의 의상, 소품까지 선명한 색감들을 가지고 있어 아기자기하게 표현되었다. 이러한 색감은 영화의 주요 무대가 되는 1930년대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호텔 외관과 몇몇 장면은 정교한 미니어처 세트를 만들어서 촬영했다. 이 영화는 허구이지만 1930년대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시대에 몰아쳤던 광풍이 영화의 미술과 형식에 의해 아기자기하면서도 동화같은 느낌을 갖는다.웨스 앤더슨 영화의 특징인 좌우대칭은 여기서도 등장하는데, 사물과 배경, 등장인물의 등장과 퇴장 등은 좌우대칭을 배경으로 들고난다. 이는 등장인물과 영화의 모든 미장센이 철저히 계산된 감독의 의도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이 모든 것들 속에서 기저를 이루는 정서는 과거에 대한 향수와 유머다. 영화에 등장하는 소품과 대사, 정서들은 모두 참혹한 전쟁과 함께 사라진 낭만과 예술에 대한 애수로 가득하다. 호텔의 품격을 위해 내려지는 일련의 지시와 주인공 구스타브가 유지하는 일련의 고집들에서 그것이 고스란히 드러난다.영화의 몇몇 장면들은 잔인하다. 그것이 다른 영화에서 행해졌다면 잔인함이 극대화되고 관객은 그 장면이 내내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는 잔인한 장면이 그냥 흘러가 버린다. 거기엔 화려한 동화같은 미장센과 리듬을 가진 속도와 속도를 가진 배경음악과 함께 유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유머에도 리듬과 속도가 있다. 심각한 상황에서 터져나오는 위트. 멈추어 숨을 고르고 이어지는 잔인한 장면이 아닌 적절한 속도를 가지고 행해지는 잔인한 장면 이후에 이어지는 흐름들이 완급을 조절한다.현재와 과거, 과거에서 다시 더 먼 과거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구조는 복잡해질 수 있지만 시대에 따른 화면구성과 톤, 이야기 전달을 위한 영상 구성의 면밀함이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되면 밝고 경쾌한 음악과 환상적인 동화같은 배경이 시작되고, 우리는 적절한 리듬과 속도를 지닌 열차를 타고 종착역까지 지루할 틈없이 달려갈 것이다./문화기획사 엔진42 대표

2020-10-26

화씨지벽(和氏之璧)의 교훈

강희룡 서예가사냥꾼은 좋은 사냥개를 얻으려 하고 말 타는 사람은 좋은 말만 얻으려 하지 그것이 어떤 새끼를 낳을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정치에 있어서도 위정자의 인물 됨됨이가 중요한 것이지 문벌은 그리 중요치 않다. 공자가 위나라 영공의 무도함을 힐난하자 강자가 물었다. ‘그러한데 그 나라는 어찌 망하지 않았습니까?’ 이에 공자가 답했다. ‘중숙어가 외교를 맡고, 축타가 종묘를 다스리고, 왕손가가 군사를 맡아 다스리니 어찌 망하리오!’ 이렇듯 비록 왕의 됨됨이가 비루하더라도 훌륭한 신하들이 그 임금을 보좌해 백성을 위해 국정을 돌본다면 그 나라는 굳건히 영속할 것임을 공자 또한 알고 있었다.기원전 770년부터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 춘추전국시대는 약 550년에 달하는 기간이다. 이 시기는 각자 지역에 근거한 집단이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문화적 풍토를 배경으로 나라를 세우고 왕을 세워 맹주를 다투던 시기였다. 주 왕조의 일방적인 천하지배 구조는 무너지고 지방정권들이 역사적, 지리적 환경에 근거해 자립하면서 초기에는 온건하게 연합과 합병을 거듭하다 재화와 자원, 인재와 기술을 두고 싸움이 시작되면서 철기의 출현은 치열한 경쟁을 더욱 부추겼다. 정치중심의 다극화는 사회불안을 초래했지만, 동시에 가치의 다양화를 낳았고, 대륙에는 옛 체제와 가치관의 붕괴가 진행되는 가운데 유례없는 창조가 태어나게 된다.국가와 정치, 산업과 인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대적 분위기가 키워낸 사상가와 명신들이 나타났으니, 이들이 바로 유가, 법가, 도가, 묵가, 병가 등으로 불리는 제자백가(諸子百家)들이다. 그들은 자신만의 학설을 내세워 문하생을 교육시키고 각국을 떠돌며 자신의 주장을 실제 정치에 반영시키려 했다.병가(兵家)의 손무, 완벽(完璧)의 인상여 등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대륙역사의 한 대목을 대변할 수 있을 정도의 수많은 현자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또한 옛 시대의 사상과 학문을 배우며 과거를 토대로 현재의 자신을 반성하며 교훈을 얻고 있다. 치열한 삶을 살았던 고대인들의 주옥같은 일화와 교훈은 수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은 물론 미래에서도 여전히 금과옥조 같이 여겨질 것이다. 초나라 사람 화씨가 다듬지 않은 옥돌을 구해 두 번이나 왕에게 바쳤을 때 옥을 감정하는 관리가 돌이라 결론짓자 왕을 속인 죄로 두 발이 차례로 잘려나갔다. 세 번째 왕이 즉위하자 화씨는 옥돌을 안고 궁문 앞에서 사흘 밤낮을 슬피 울었다.소문을 들은 왕이 이유를 묻자 화씨는 ‘보옥을 돌이라 하고 곧은 선비를 속임수 쓰는 자로 몰아 마구 베는 것이 슬프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왕이 화씨의 돌을 쪼개고 다듬으니 마침내 천하제일의 옥이 드러나자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했다. ‘한비자, 변화편(韓非子,卞和篇)’에 보인다. 화씨는 두 발꿈치를 잃고서야 다듬지 않은 돌을 천하의 옥으로 인정받았다. 지금 우리사회가 절차에 따라 돌을 쪼개 옥을 다듬는 것은 외면한 채 사람 다리 자르는 것은 쉽게 여기지 않는지 깊이 성찰해볼 문제이다.

2020-10-26

일·가정 양립하는 길로!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실장일·가정 양립지원정책은 남녀 근로자가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직장 그리고 가정생활의 충돌을 완화하고자 도입된 정책이다. 근로자의 임신, 출산, 자녀 양육기의 모성보호와 경력단절을 방지해 경제활동을 촉진하고 자녀 양육기의 가족생활을 보장하는데 정책의 초점을 두고 있다. 출산전후휴가제도, 육아휴직제도, 근로시간 유연화 관련 제도, 돌봄 정책을 포괄한다. 일·가정 양립지원정책은 2000년대 초반 양성평등, 2000년대 중반 저출산 현상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 단계에 접어든다. 제도의 기본 틀은 1953년 근로기준법과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에 반영되어 있었다. 출산전후휴가는 1953년 근로기준법에 유급제로 도입됐고, 육아휴직제도는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에 무급제로 도입됐고, 역시 2001년에 정액 20만원의 고용보험 급여가 신설됐다. 이로 인해 육아휴직제도와 출산전후휴가제도 활용은 증가했다.현재 일·가정 양립지원제도는 크게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으로 대변되는 부모휴가제도와 유연근무제로 구분할 수 있다. 부모휴가제도는 출산(전후)휴가제도, 육아휴직제도, 배우자출산휴가제도, 가족돌봄휴직제도 등이 있는데, 그 영향력과 제도적 개선 가능성을 육아휴직제도를 중심으로 검토되어 왔다. 일·가정양립지원을 위한 다양한 휴가·휴직제도 중 육아휴직이 제도적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그 보편성과 중요성은 물론, 출산휴가와 달리 근로자의 선택에 의하여 제도 활용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한편 최근에는 육아휴직으로 인한 근로관계 단절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유연근무제 활용성이 증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가정 양립을 위한 유연근무제는 사업장 단위에서 제도 도입과 운영에 있어서 많은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높다. 유연근무제를 규율하는 법률은 크게 ‘근로기준법’과 ‘가족친화 사회환경의 조성 촉진에 관한 법률’이 있다. 이를 기반으로 해 여성경제활동 활성화와 직장맘의 안정적인 고용유지, 경력단절 예방, 나아가 행복한 일과 가정의 균형 있는 삶을 위해서는 불평등하고 열악한 고용구조 개선과, 가사와 양육의 남녀 공동부담, 사회적 책임강화, 일생활 균형의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인식하는 종합적 접근이 모색되어야 한다. 공공기관, 기업, 가정 등 사회전반에 걸쳐 일·생활균형이라는 워라밸의 실천을 위한 인식과 실천 아젠다들이 발굴되는 분위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다양한 근무방식, 장시간 노동을 감축하거나 휴가 사용을 촉진하는 등 제도 도입 및 실천은 기업의 근무방식 개혁을 적극적으로 시도한다. 직장에 국한되지 않고, 자택과 오피스에서도 업무를 볼 수 있는 생산성이 높은 업무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코로나19를 겪으면서 새로운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는 신패러다임이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일·가정양립지원의 활성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때문에 일·가정양립형 지원 정책의 적극적 활용 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쳐 일과 삶에 관한 인식 개선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2020-10-26

정상과 병리 사이

유영희작가​​​​​​​·인문글쓰기 강사매스컴에서 듣던 조현병 환자의 이야기가 어느샌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내 주변에도 가족이 조현병을 앓고 있어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가족들조차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몰라서 우왕좌왕한다.그래서인지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라는 책에 유난히 관심이 갔다. 이 책은 가족이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알려주는 책이다.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실을 잘못 보는 환자와 논쟁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현실 인식이 부족하다. 현실을 왜곡해서 본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설득하려고 한다. 그건 A가 아니야, B야. 아무리 설명을 하고 납득을 시키려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때로는 정신질환이 아니더라도 큰 병을 앓다 보면 이상한 소리를 듣기도 한다. 5년 전 돌아가신 엄마는 파킨슨씨 병을 앓으면서 환청이 있으셨다. 내 신발에 도청장치가 있어, 사람들이 나와서 나한테 소리를 질러, 누가 죽었대 등등. 이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그렇지 않다고 설명해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책에서는 이런 환자들에게 설득하려 들지 말라고 조언해준다. 심하게 흥분했을 때는 잠시 거리를 두는 것이 좋고, 그 망상이 누군가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개입하지 말고 가볍게 흘려듣거나 슬며시 화제를 바꾸라고 한다. 논리적으로 반박하거나 논쟁하지 말고 대신 그 밑에 깔린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라고 한다.그런데 이런 조언은 정신질환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사회적 기능을 어느 정도 수행하는 사람들도 비현실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 경우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실증적인 증거를 들이대도 수용하지 않는다. 책의 조언을 적용하면, 이때 그런 생각과 논쟁하거나 교정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그 생각이 누구에게 해를 끼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면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설득은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때로는 비논리적인 사고로 남을 미워하거나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도 있다. 그런 감정이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한때 나는 실패한 사람이라는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 제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한 적이 있다. 상담사가 아무리 나의 성취한 부분을 말해주어도 부정하거나 폄하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럴 때 상담사가 논리적으로 내 생각을 반박하려 하지 말고, 그 생각 뒤에 숨은 감정을 알아주었으면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정신질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인정했을 때 오는 후폭풍, 예를 들어 자신의 현실을 직시했을 때 오는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대목 역시 정상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도 유효한 대목이다. 방귀 뀐 사람이 성낸다는 말이 있다. 그럴 때 논리적으로 그 사람의 감정과 행동을 반박하기보다 부끄러움이라는 속감정을 이해해주는 것이 그 사람과 같이 살기 위한 방법이다. 정상과 병리 사이는 멀고도 가깝다.

2020-10-26

코로나 위기 속 돋보인 성주 참외생산

올해는 성주참외 재배 50년 되는 해다. 전국 참외 생산량의 70%이상을 차지하는 성주참외는 50년의 재배기술 축적으로 이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주의 브랜드가 됐다,경북 성주군은 올 한해 지역의 참외 생산액이 5천19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성주참외 조수입 5천억원을 달성한 것이다. 성주참외는 1950년대부터 참외를 본격 재배하기 시작해 시설재배와 기술개발로 2003년에 생산액 2천억원을 달성했고, 작년에는 5천50억원으로 첫 5천억원을 돌파했다. 성주군에 의하면 올해 성주군의 참외재배 농가는 3천848가구로 재배면적이 3천422ha다. 생산량은 18만6천501t으로 전년보다 1천883t이 감소했으나 억대 수입농가는 1천230가구로 지난해보다 30가구가 더 늘었다.이병환 성주군수는 성주참외의 2년 연속 5천억원 돌파는 농가들의 재배기술 발전과 노력의 산물이라 말했다. 성주참외는 실제로 본격적인 시설재배를 시작한 이래 끊임없는 기술개발로 생산량을 늘려왔다. 그 노력의 결과 2006년 성주참외산업특구가 지정되고,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인정하는 성주참외지리적표시제에 등록을 할 수 있었다. 성주참외의 지리적 특성과 품질의 우수성을 공식 인정받은 것이다.최근에는 참외를 딸기처럼 편하게 서서 농사지을 수 있는 재배기술도 경북도농업기술원에 의해 개발돼 화제가 됐다. 이럴 경우 기존의 포복재배 때보다 수확량이 30%정도 는다고 하니 재배기술 발전의 중요함을 새삼 깨닫게 한다. 낙동강을 낀 성주참외 재배지는 가야산을 중심으로 겨울에는 북풍을 막아주고 일조량이 풍부한 동남쪽에 넓은 평지를 이룬 곳에 위치해 있다. 지리적으로도 유리한 입지에 있지만 재배기술 개발과 농업단체 등의 마케팅으로 성과를 더 올릴 수 있었다. 올해도 성주조합공동사업법인 및 지역농협 중심으로 통합마케팅 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특히 코로나로 대다수 업종이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성주참외는 이런 노력으로 택배물량이 전년보다 30%가 늘어났다는 것이다.성주참외는 수출에도 눈을 돌려 작년 한 해만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지에 500t을 수출했다. 모든 산업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참외농가가 보인 성과는 그래서 더 빛날 수밖에 없다.

2020-10-26

유전자가위

생명공학 분야에서 혁명적인 발견으로 불리는‘유전자 가위’는 특정유전자에만 결합하는 효소를 사용해 원하는 유전자를 잘라내는 기술을 말한다.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다우드나 교수와 샤르팡티에 교수가 2011년 3세대 유전자가위‘크리스피 캐스9’을 완성해 각광을 받았다.‘크리스피 캐스9’은 박테리아에서 발견되는 면역시스템인‘크리스퍼’에 마치 가위처럼 DNA 염기서열을 자를 수 있는 단백질‘캐스9’을 결합한 기술이다.박테리아는 자신에게 침입한 바이러스의 유전자 일부를 표식으로 보관하다가 나중에 같은 유전자를 가진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바로 효소 단백질로 잘라낸다. 이를 손상된 유전자를 교정하는 데 쓰는 게 바로 유전자가위다. 유전자 가위를 절단하고 싶은 DNA에 붙이면 DNA 이중나선이 풀리면서 가이드 RNA와 DNA가 결합한다. 이 과정에서 특정 DNA가 잘리거나 붙으면서 DNA 교정이 가능해진다. 3세대 유전자 가위를 활용하면 연구자들이 동식물과 미생물 DNA를 정확하게 수정할 수 있어서 암 치료를 위한 새 대안을 제시하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유전질환을 정복한다는 꿈을 달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를 모으고있다. 다만 유전체를 마음대로 편집할 수 있다는 말은 생명의 기본적인 설계도를 마치 신이 된것처럼 조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 윤리적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쥐라기 공원에 나오는 것처럼 멸종된 생물을 복원한다던가, 유전질환을 지닌 태아의 생명을 구하는 것처럼 기술적으로 난제에 봉착하던 난제들에 도전할 수 있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문명발전이 인간의 생명윤리 자체를 넘어설 경우 인류가 겪을 재앙이나 공포가 결코 녹록치 않다는 점을 꼭 명심해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0-26

이건희 별세…일부 정치권 또 ‘천박한’ 조의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25일 서울 삼성서울병원에서 투병 6년 만에 별세했다. 국가를 대표하는 글로벌기업의 총수라는 차원에서 이 회장의 서거는 큰 사건이다. 그런데 이 상사(喪事)에 일부 정치권이 조의를 표하면서 초를 치듯이 험담을 섞어내는 천박한 현상이 또다시 벌어졌다. 그가 이뤄놓은 경제적 업적을 진심으로 인정한다면 장례 기간만이라도 티 뜯기는 삼가는 것이 기본예의 아닌가. 참으로 한심한 풍경이다. 집권당을 대표하는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비판’으로 덧칠된 후렴에 더 의미를 두고 있는 듯한 이상한 조의문이 눈에 띈다. 그는 조의문에 “고인은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하고, 노조를 불인정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끼치셨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면서 “불투명한 지배구조, 조세포탈, 정경유착 같은 그늘도 남겼다”고 토를 달았다.민주당 허영 대변인은 “삼성은 초일류 기업을 표방했지만, 이를 위한 과정은 때때로 초법적이었다”는 촌평을 섞었고,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이 회장은 대한민국 사회에 어두운 역사를 남겼다”고 쪼았다. 같은 당 박용진 의원은 뜬금없이 이재용 부회장을 향해 “당당하게 법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의당은 조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굳이 밝혔다.근대화의 주역인 김종필 전 총리와 한국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의 사후 평가를 두고 벌어졌던 볼썽사나웠던 분란이 새삼 떠오른다.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인물의 사거(死去)에 즈음하여 그 삶에 대한 공과(功過) 평가는 얼마든지 엇갈릴 수 있다. 그러나 장례 기간도 못 참고 성급하게 무덤에 침을 뱉듯이 악담을 퍼붓는 저급한 문화는 진실로 부끄러운 참상이다.‘명복을 빈다’면서, 대답도 반박도 할 수 없는 망자를 향해 살아 있을 적의 일들을 시시콜콜 적시하며 굳이 강퍅한 주장을 펼치는 일은 추하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으뜸 기업이 된 ‘삼성’으로 인해 우리 국민 각자의 삶이 나아진 부분이 분명하게 있음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나. 고인의 어록처럼 아직도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야”할 숙제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2020-10-26

‘독도의 날’에

윤영대수필가10월 25일 어제는 ‘독도의 날’이다.1900년 고종황제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로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반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2000년에 독도수호대가 ‘독도의 날’로 지정한 것을 계기로 2010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주축이 되어 관련 단체 등과 공동으로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전국 단위로 선포했었다. 이것은 일본이 그동안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온 것에 대한 경고이자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알리고 우리의 강력한 독도수호 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가수 정광태가 부른 ‘독도는 우리 땅’은 포항에서 뱃길 258km,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섬이고, 동도와 서도로 이루어져 있는 작지만 소중한 우리의 영토이며 자산이다.영해와 영공을 결정짓는 지리적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 난류와 한류가 합치는 황금어장에 해양생태계의 보고이다. 여름철이면 오징어 떼가 넘쳐나고 겨울과 봄에는 명태가 몰려오며 꽁치, 대구들도 무리 지어 다니고 있다. 해저 암초에는 다시마, 미역 등이 숲을 이루어 해삼, 문어들이 풍성하고 이제는 멸종된 바다사자 강치의 기억을 더듬으며 바다제비, 괭이갈매기, 슴새 등 많은 철새들의 서식 낙원으로 천연기념물 336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바다 밑 울릉분지에는 천연가스 부존가능성이 있어 경제적 가치로도 동해의 보물이다.이러한 독도에 일본이 끊임없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옛날부터 근해에서 자기들이 고기잡이를 해왔고 1905년 시네마현 고시로 다케시마(竹島)라고 불렀으며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내용에서 빠졌다는 것을 핑계로 억지를 부리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세종실록지리지 등 우리의 고문서와 고종 칙령을 보더라도 얼토당토않는 행위인 것이다. 자기네들의 태정관 지시(1877년)에도 ‘죽도(울릉도) 외 1도(독도를 말함)는 일본과는 무관’함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1965년 한일협정에서 우리 측의 허술함도 있었겠지만 1994년 배타적 경제수역이 실시되면서 독도 주변이 공동 구역으로 정해졌었다. 사실 전 세계지도의 80% 이상이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다니 우리도 빨리 외교나 학술발표 등을 통해서 바로 잡아야 한다.역사를 보더라도 삼국사기에는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했었고 이조실록에도 수차례 사람을 보내 지키도록 했었으며 17세기 말 안용복은 일본에 건너가서 ‘독도는 조선 땅’이라는 것을 확인시키고 왔지 않은가. 이제 홍순칠 대장의 독도의용수비대를 이어받은 독도경비대가 주둔하고 독도 주민도 살고 있는데 아직도 일본은 영유권 고집을 피우고 있다.독도 문제는 일본과의 감정 대립을 넘어 그들의 전략과 속셈을 파악하고 명확한 역사적 자료와 폭넓은 외교력으로 일본의 영유권 야욕을 꺾는 힘을 길러 극일(克日)을 해 나가야 한다.입도신고제로 바뀐 후 매년 수만 명의 관광객이 들어온다고 하니 ‘독도의 날’을 맞아 해양환경도 지키며 우리의 영토 주권수호에 대한 의지도 길러야겠다.

2020-10-25

책 읽어 주기의 힘

김현욱 시인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뇌가 독서를 배우는 방법을 ‘고생스럽게 추가, 조립해야 하는 액세서리’라고 말했다. 소리에 관한 한 아이들의 선(線)운 이미 연결되어있지만, 문자는 고생스럽게 추가, 조립해야 하는 액세서리라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말은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지만 글은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다. 애초에 뇌는 독서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책을 읽는 행동은 인간에게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E. B 휴이는 “독서라는 과정은 문자를 단순히 시각적으로 읽는 행위만이 아니다. 독서는 인간의 행위 중에서도 가장 복잡다단한 활동 중의 하나.”라고 거들었고, 멀린 위트록은 “우리는 하나의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단어의 사전적 의미로 읽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 텍스트를 위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낸다. 텍스트를 읽으면서 자신의 지식, 경험에 얽힌 기억 글로 쓰인 문장, 절과 단락 사이의 관계를 구축해 가면서 의미를 만들어 낸다. 이처럼 독서는 뇌의 다양한 정보원 특히 시각과 청각 언어와 개념 영역을 기억의 감정 부분들과 연결하고 통합하는 매우 복잡한 과정이다. 그런데 이런 통합을 위해서는 뇌의 각 영역이 최소한의 성숙도를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그렇다면, ‘최소한의 성숙도’를 확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책 읽어주기다. 1979년 ‘하루 15분, 책 읽어 주기의 힘’을 출간한 짐 트렐리즈에게는 어린 시절 책을 읽어 준 아버지가 있었다. 그때의 느낌과 추억을 아련하게 간직하고 있던 그는 마찬가지로 아버지처럼 자녀에게 매일 밤 책을 읽어 주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많은 아이가 책 읽기를 즐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가 부모와 교사에게 있음을 깨달은 트렐리즈는 자비로 이 책을 냈다. 그 후 트렐리즈의 책은 스테디셀러에 올랐고, 전 세계의 교실 풍경까지 바꿔 놓았다. 특히, 일본에서는 지금도 2만여 개가 넘는 학교가 매일 아침을 책 읽기로 시작하고 있다.많은 부모가 자녀교육에 대해 노심초사하지만 어릴 때부터 침대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사실, 읽기는 모든 학습의 기초요 주춧돌이다. 책 읽기와 학업 성취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수많은 통계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읽기가 교육의 중심이고, 읽기가 최우선이다. 읽지 못하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아이의 읽기 능력을 키워줄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어릴 때부터 소리 내어 책을 꾸준히 읽어 주는 것이다. 트렐리즈는 요람에서 10대 중반까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핀란드 아이들은 여덟 살이 되어 글을 배우지만 읽기 능력과 학업성취도는 세계 최고이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핀란드의 많은 가정은 책을 읽는 분위기이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을 매우 강조한다.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학교에서 실천하고 있는 교사들의 역할도 막중하다. 좋은 책을 골라 아이들에게 열심히 읽어주자. 좋은 책과 책 읽어주는 당신의 목소리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줄 것이다.

2020-10-25

이제는 ‘저축’이 아닌 ‘금융’도 생각해보자

달력에는 공휴일이 아닌 법정기념일로서 뜻있는 ‘날’이 많다. 생소한 날도 적지 않은데 ‘금융의 날’도 그중 하나일 것 같다. 옛날 ‘저축의 날’이 개명한 것이다. 10월 마지막 화요일로 지정된 이 날의 유래는 196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73년 ‘증권의 날’과 ‘보험의 날’까지 흡수하면서 ‘저축의 날’이 되었다. 단순히 이름만 바뀐 것으로 보이지만 그 밑바닥에 깔린 ‘저축’과 ‘금융’이 의미하는 뜻은 크게 다르다. 지금도 신흥국들은 과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저축을 많이 하도록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국민 저축이 늘어나면 그 자금으로 산업을 육성할 수 있고 무엇보다 외국에 차관을 얻기 위해 고개를 숙이지 않고도 자율성장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도 예전에는 ‘저축은 국력’이라는 표어까지 내걸었다. 저축 유도를 위해 근로자 재산형성저축이나 주택마련 적금과 같은 상품도 있었다. 그때는 ‘저축’만으로 재산형성이나 주택마련이 불가능의 영역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저축’으로 내 집 마련은 꿈도 못 꾸는 시대가 되었다. ‘저축’이 아닌 ‘투자’라는 개념이 들어가는 ‘금융의 날’로 이름이 바뀐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주택, 아파트, 토지와 같은 ‘실물’자산에 대한 욕구가 높다. 가계의 자산구성도 예금, 보험, 증권과 같은 금융자산보다는 실물자산 비중이 훨씬 높다. 미국 등 선진국과는 정반대다. 문제는 아무리 실물자산을 원하더라도 옛날과는 여건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적어도 이 삼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축’과 ‘대출’을 끼면 내 집 마련의 ‘여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길이 끊어졌다. 더구나 ‘저축’에 상극인 ‘저금리’까지 함께 하고 있다. 지금의 시대를 특정하는 다양한 사회 용어 가운데 가슴 아프게도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N포세대’라는 말까지 유행하고 있다. ‘3포세대’라는 말이 연애, 결혼, 자녀를 의미한다고 할 때 만 하더라도 설마? 했었지만, 지금의 N포세대는 3포세대에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까지를 더한 7포 세대를 뛰어넘어 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이러한 현실에서 새삼 ‘금융의 날’이 달리 느껴진다. 청년들이 이렇게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돈’ 때문일 것이다. N포에서 7포로 5포로, 그리고 5포에서 3포로 줄여나가려면 역시 많은 ‘돈’이 필요하다. 물론 ‘돈’ 문제만도 아닐 것이겠지만. 그러한 의미에서 확률적으로 서민이든 N포세대든 돈을 모으는 ‘저축’이 이를 해결할 수 없다면 돈을 불리는 ‘금융’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최소한 희망이 있는 ‘금융’을 지금부터라도 눈여겨보고 쥐 꼬리 만한 ‘돈’이라도 불려 나간다면 각자가 생각하는 N포에서 ‘1포’를 조금씩 빼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덕담 중에서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말은 누가 말해도 누구에게 들어도 즐겁다. 그러나 실제 부자가 되는 사람은 매우 적다. 하늘이 점지한 사람만 부자가 된다고 믿는 선민의식에 빠진 부자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수 대에 걸쳐 내려온 부자 가문이 아닌 한 정답은 아니다. 부자가 되기 위한 지식, 그리고 열정, 끈기와 더불어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절제가 있다면 부자가 될 최소한의 ‘기회’는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마침 외국의 한 국제투자가가 세계의 부유층이 ‘금융’에 대한 투자나 매매에 활용하고 있는 공통분모를 책으로 펴냈다. 제목도 ‘세계의 부자가 실천하는 돈 늘리는 법’이다. 눈이 번쩍 뜨인다. 하지만 책의 줄거리는 그동안 국내에서 나온 금융투자와 관련한 책들이 이야기하는 ‘비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첫 번째 규칙은 최대한 정보를 모으라는 것이다. 증권이라는 금융상품을 예로 들어 보자. 주식이라는 것은 미래에 그 주식을 발행하고 있는 기업의 가치를 시장에서 예측하여 오를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사고, 떨어진다고 본 사람은 판다. 그 모든 판단은 결국 예측에서 나오며, 그 예측은 판단의 근거가 되는 지식이나 정보에서 나온다. 당연히 ‘금융’을 통해 자신의 돈을 불리려는 사람은 자신이 거래하려는 대상의 기업, 그 기업이 속한 업종, 그 업종이 속한 산업에 대해 전망, 세계적인 움직임을 공부하고 정보를 모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신문, 뉴스, 잡지의 경제면을 많이 읽자.두 번째 규칙은 절대 다른 사람 이야기만 듣고 결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거래의 당사자는 ‘자신’이다. 자기가 부자가 될지 말지를 결정할 중대한 판단을 누군가가 ‘하다더라’라는 말에만 따르는 것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어로 된 약자투성이의 금융상품이나 펀드를 설명하는 사람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그러한 금융투자상품들을 ‘전문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권유한다고 그저 믿고 ‘묻지마 투자’를 해서는 절대로 ‘돈’을 불릴 수는 없다.세 번째 규칙은 투자대상이나 상품을 선정할 때 단 하나에 ‘올인’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적은 돈인데 이것을 나누고 쪼개고 하는 ‘분산투자’가 가당키나 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그마저 줄어들게 만드는 ‘위험’만은 분산시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분산투자라는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위험분산’이기도 하다. 돌다리를 두드린다는 마음으로 자신이 공부하고 자기가 결정한 거래라도 ‘혹시’, ‘어쩌면’이라는 생각에서 두 개, 세 개로 나눈다면 ‘돈’을 많이 늘리지는 못해도 적어도 가진 ‘돈’을 단번에 잃어버리는 일만큼은 피할 수 있다.네 번째 규칙은 자신이 거래할 때는 납득할 만한 자신만의 이유, 원칙을 정해두고 지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주식을 산다면 어떻게 움직이면 팔겠다. 이 주식은 이런 이유로 가격이 오를 것이므로 산다는 ‘이유’를 적어두면, 자신의 판단이 틀린 것도 알고, 떨어졌을 때는 미리 정한 가격에 무조건 손해를 보더라도 팔 수 있게 된다. 그래야만 ‘어쩌면 금방 다시 오를 거야’라며 자기를 속이는 일도 없어지게 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법칙이다. 오랫동안 연구하고 공부하고 모은 정보를 기반으로 정한 ‘원칙’을 인공지능처럼 지켜서 거래하는 사람과 ‘혹시’라는 ‘기대’로 자신이 세운 원칙을 어기는 사람이 싸우는 ‘주식시장’이라는 전쟁터에서 누가 승리할지는 뻔하다. 이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부자나 돈을 불리겠다는 생각은 아예 포기해야 한다.마지막 다섯 번째 규칙은 사고팔 때 단번에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투자가의 ‘위험’을 줄이는 원칙이기도 하다. 자신이 모은 지식, 정보를 이용하여 정해둔 매입가격까지 많이 하락하여 매입 시점이 되었더라도 투자 금액의 3분의 1만큼만 사고 가진 모든 돈을 단번에 쓰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혹시라도 자신의 판단이 틀려 가격이 추가로 내려가더라도 가진 돈의 3분의 1을, 또 내려가면 나머지를 살 수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평균 매입 단가를 낮출 수도 있고, 여의치 않을 때는 추가 매입은 포기하고 최소한의 손해로 그칠 수 있게 된다. 이는 팔 때도 마찬가지다.쉽지는 않다. 하지만 ‘금융의 날’을 맞이하여 적어도 손에 든 ‘돈’을 ‘금융’으로 불리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였으면 한다. 여러분 부자 되세요.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10-25

‘더 좋은 세상으로(마포포럼)’의 역할 막중해졌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강석호 전 의원이 주축인 전·현직 의원들의 모임 ‘더 좋은 세상으로(마포포럼)’의 역할이 막중해졌다. 이렇다 할 대권 주자가 없는 국민의힘의 다급한 상황을 타개해줄 가장 종요로운 베이스캠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포포럼은 최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원희룡 제주지사·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을 초청해 강연을 들은 데 이어 다음 달 5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26일 유승민 전 의원 강연일정이 잡혀 있다. 김무성 전 대표는 연구단체 마포포럼을 출범시키면서 ‘킹 메이커’를 자청했다. 마포포럼은 10월 들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2일 마포포럼 초청 강연에서 “저를 포함해 원희룡·안철수·유승민·홍준표의 5인 원탁회의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김무성 전 대표는 “여기(마포포럼)를 무대로 잘 활용하면 좋겠다”고 동의했다. 야권 대권주자 중 하나인 홍준표 무소속 의원에 시선이 쏠린다. 마포포럼 관계자는 오 전 시장이 제안한 ‘원탁회의’와 관련해 “논의를 하고 있었다”며 “다만 홍 의원이 무소속이기 때문에 5인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홍 의원의 복당 문제는 간단치 않다. 홍 의원은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취임때부터 각을 세워왔다. 그의 합류에 대한 득실계산도 복잡하다.더불어민주당이 힘의 논리에만 빠져서 온갖 잡음을 일으키고 있는데도 제1야당 국민의힘이 도무지 그 반사이익마저 챙기지 못하고 있다. 23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는 민주당 35%, 국민의힘 17%로 나타났고, 무당층은 지난주보다 3%가 오른 34%로 지난 4월 총선 이후 최대치를 보였다. 집권당에 실망한 민심이 여전히 부동(浮動)하고 있다는 증거다.국민의힘은 작금의 불임정당 이미지를 더 이상 끌고 가서는 안 된다. 이대로 조금만 더 가면 민심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 수권 능력을 입증할 대권 잠룡들을 하루빨리 레이스에 올려야 한다. 그 막중한 책임이 마포포럼에 부여돼 있다. 분열이 아닌 통합의 기운으로 하루빨리 전열을 갖추는 일을 해내야 할 것이다. 많은 국민이 마포포럼의 역할을 주목하고 있다.

2020-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