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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노래의 추억과 한류의 빛

등록일 2021-10-19 19:43 게재일 2021-10-2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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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1920년 6월에 창간된 천도교 청년회의 기관지인 ‘개벽’ 1922년 1월호에 실린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의 전문이다. 단 4연으로 된 짧은 이 시는 처음에 작곡가 안성현에 의해 가곡풍의 노래로 만들어졌다. 안성현은 월북하여 북한의 공훈예술가 칭호까지 받았고 2006년 북한에서 세상을 떴다. 안성현의 곡으로 된 ‘엄마야 누나야’는 작곡가의 월북 탓인지 지금은 거의 불려지지 않는다.

이 시는 KBS의 초대 악단장이었던 바이올린 연주자 겸 작곡가인 김광수에 의해 다시 노래로 만들어졌다. 지금 불리는 노래는 거의 김광수 작곡의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작곡가의 영향이 컸던지 안성현 곡으로 알고 있는 이들도 꽤 많다. 김광수 작곡의 동요풍 노래인 ‘엄마야 누나야’는 성악가가 부르기도 하고 대중가수가 부르기도 했는데, 나에게는 도쿄국제가요제, 아테네국제가요제, 칠레가요제에서 상을 받은 국제적 가수 정훈희가 부른 대중가요로 기억되고 있다.

대중가요의 힘이 큰 때문일까? 서울 한강변의 작은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지금은 한강서 좀 떨어진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는 이따금씩 이 노래가 귓가에 맴돌곤 한다. 아들만 주르륵 넷인 집안의 셋째이기에 누나는커녕 누이동생도 없지만, 어린 시절 한강 백사장에서 모래를 만지며 놀던 기억 속에서 있지도 않은 어여쁜 누이가 늘 함께 하는 것은 이 노래 탓이리라.

이른바 ‘글로벌 슈퍼밴드’ 구성을 목표로 한 JTBC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2’가 지난 6월 21일에 시작해 지난 4일에 막을 내렸다. 아들 덕에 보게 된 이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나는 가끔씩 전율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이렇게 노래도 잘하고 연주도 멋들어지게 하는 젊은이들이 많은지. 혼신의 힘을 기울이기도 하고, 제 흥에 푹 빠져 즐겨가면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그 열정은 또 얼마나 대단하던지. 옥석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문외한의 눈과 귀여서 그랬나, 최종 수상자는 말할 것도 없고 초반에 탈락한 지원자들까지 기량이 떨어지는 이들을 찾기 힘들었다.

비틀즈의 노래를 즐겨들으며 자란 7080세대의 나는 BTS와 블랙핑크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을 보며 한국 가요, 한류의 힘에 새삼 놀라고 있다. 이들 아이돌그룹은 연예기획사의 치밀한 기획과 투자와 노력이 만들어낸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결과물, 최고의 상품(또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우리나라 가수가 부른 노래의 세계적 열풍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나라 구석구석에서 올라온 슈퍼밴드 출연자들의 면면에서 나는 그 열풍의 단초와 빛줄기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 겨레의 몸과 혼 속에 스며있는 음주가무의 전통이 한류의 빛의 시발점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그나저나 부동산업계에선 김소월을 두고 한강변 아파트의 폭등을 예견한 시인이라는 농담이 떠돈다는데, 젊은 시절에 대중가요만 듣고 있지 말고 일찌감치 한강변에 자그마한 아파트 하나를 마련했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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