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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들에게 서른 즈음은 없다

등록일 2022-11-08 19:49 게재일 2022-11-0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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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십대에는 / 서른이 두려웠다 / 서른이 되면 죽는 줄 알았다 / 이윽고 서른이 되었고 싱겁게 난 살아 있었다 / 마흔이 되니 /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박우현 시인의 시집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작은숲, 2014)에 수록된 같은 제목의 시 1연이다. 겪어보지 않은 앞날은 늘 두렵고 떨리지만 지나온 날들은 아름답게 기억되게 마련이다. 그때는 좋은 줄 몰랐어도, 어쩌면 힘들고 괴롭고 지워버리고 싶은 시간이었다고 해도 돌아보면 소중하고 아름다운 날들이 옛날의 그때 그 시간인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죽음 앞에서 / 모든 그때는 절정이다 /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 / 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라고 삶을 관조한다.

모든 날들이 절정이고 모든 나이가 아름답다고는 해도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 라 벨르 에포크(La Belle <00E9>poque)’는 역시 이삼십 대 아닐까? 삼사십 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 누구에게나 스무 살의 추억과 아프건 슬프건 스물을 건너간 흔적을 지니고 있다. 이십 대와 삼십 대를 거치지 않고는 그 누구도 마흔도 쉰도 예순도 될 수 없다. 나이가 들고 설령 치매가 와서 기억이 소멸해 간다 해도 젊은 날 그 시절은 가슴 속 어디엔가는 향기 짙은 꽃으로 피어 있을 것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브리핑에 따르면 11월 7일 기준으로 10·29참사 희생자는 외국인 26명을 포함하여 모두 156명이다.(나는 ‘이태원’이라는 땅이름보다 사고가 난 날짜를 쓰는 것이 더 낫고, 객관적인 용어라는 ‘사고’와 ‘사망자’보다 ‘참사’와 ‘희생자’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심정적으로도 그렇고, 사고의 상황과 언어적 맥락으로 보아도 그렇다.) 희생자 중 이십 대가 104명으로 정확히 2/3이다. 십 대 희생자 12명과 삼십 대 희생자 31명을 포함하면 그야말로 꽃다운 나이에, 그리고 꽃도 제대로 피워보지 못한 나이에 세상을 뜬 젊은이들이 희생자의 94%가 넘는다. 외국인 희생자 역시 대부분이 이삼십 대이다. 이들은 한국이 좋아 한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한국에서 일하다가 자신들이 좋아하던 이 땅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말았다.

음유시인으로 불리웠던 1964년 1월생 김광석은 갓 서른이 된 1994년 6월에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로 알았는데 멀어지고 잊혀지고 이별하는 젊음을 허탄해 하였다. 그리고는 서른 즈음 젊은 날을 얼마 살아보지도 못하고 1996년 1월에 세상을 떴다. 그런데, 젊음을 누리러 이태원에 갔던 우리의 어리고 젊은 벗 백여 명에게 서른 즈음이라는 시간은 영원히 없다. 다만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한 스물 즈음만이 버려진 가방과 신발로 남아 있을 뿐이다. 사십 대와 오십 대의 안타까운 희생자들에게도 이제 서른 즈음이 없기는 마찬가지. 살아 있어야 서른 즈음 젊었던 날을 돌아보고 때로는 후회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이들이 가져보지 못한 서른, 돌아보지 못할 서른을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은 채 대한민국은 스산한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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