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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보다도 간담 서늘한

등록일 2022-11-22 19:50 게재일 2022-11-2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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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맹호가 울 밑에서 으르렁대도 / 나는 코 골며 잠잘 수 있고 / 긴 뱀이 처마 끝에 걸려 있어도 / 누워서 꿈틀대는 꼴 볼 수 있지만 / 모기 한 마리 왱 하고 귓가에 들려오면 / 기가 질려 속이 타고 간담이 서늘하구나 / 부리 박아 피를 빨면 그것으로 족해야지 / 어이하여 뼈에까지 독기를 불어넣느냐”

조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문집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실려 있는 한시 ‘증문’(憎蚊, 얄미운 모기)의 첫 8행이다. 조선 시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73세라는 나이로 장수를 하기도 했지만, 조선 후기 유학의 한 학풍인 실학을 기반으로 하여 천문, 지리에서부터 수학, 의학, 동물학에까지 학문적 업적을 남기고 사회, 경제, 사상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친 500여 권이라는 엄청난 저서를 남긴 정약용은 2012년의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물론 이 시에서의 모기는 호랑이나 뱀과 같은 거대 권력 권력이 아닌 말단 관리의 횡포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는 하지만 위대한 학자인 정약용에게도 모기는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존재였음은 분명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3년째 겨울을 맞고 있다. 11월 22일 현재 전 세계의 확진자 수는 6억4천160여만 명에 사망자는 662만 명에 이르고, 한국 역시 인구 절반 가까운 2천658만여 명의 확진자에 사망자는 3만 명이 넘었다. 하도 코로나가 입에 오르내리다 보니 마치 코로나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발생시킨 전염병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그러나, 역사상 사람을 가장 많이 해친 전염병은 말라리아이다. 그리고 이 말라리아 전염병을 인간에게 퍼뜨린 것이 바로 모기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에서는 호박에 갇혀 화석이 된 모기가 빨아 먹은 공룡의 피에서 DNA를 복제하여 공룡을 부활시킨다. 이처럼 모기는 인류보다 훨씬 전에 지구상에 등장하였다고 한다. 그 생명의 연원이 오랜 만큼 모기는 지속적으로 인간을 괴롭혀 왔고 엄청난 해를 끼쳤다. 2019년에 한국에서 번역 출판된 티모시 C. 와인가드가 쓴 ‘모기 : 인류 역사를 결정지은 치명적인 살인자’라는 책에 따르면, 모기가 유발한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가 연간 100만 명에서 300만 명에 이르고,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약 20만 년 동안 존재했던 1천80억 명의 사람 중에서 약 520억 명의 목숨을 모기가 앗아갔다고 한다.

이쯤 되면 코로나는 별 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우리나라의 확진자 수는 아직도 매일 1만 명에서 5만 명대를 오르내리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제 그 숫자의 많고 적음에 그다지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나는 한국에서 돌고 있는 색깔 덧씌우기라는 전염병이 코로나보다도 모기를 매개로 한 전염병보다도 더 우려스럽다. 단순히 색깔 덧씌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색깔이 다르다고 생각되면 서로를 비난하고 그러다가 급기야는 상대를 향한 눈과 귀를 막고 문을 닫아 버리는 지금의 한국사회의 모습이 모기보다도 모질고 간담이 서늘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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