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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과감한 도전으로 ‘변화하는 예천’

김학동 예천군수자동차는 꾸준히 늘어나는 반면 주차장은 부족하다. 주차공간 확충은 군민의 생활불편 해소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선결과제라 본다. 이를 해소하고 침체된 지역상권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생활권인접 예천읍 중심가 주변에 20~30대정도 주차가능한 쌈지형 주차장을 만들고 있다.올해 원도심 상설시장과 맛고을길, 예천교육지원청 주변 총 5개소 174면을 조성하는데, 총사업비 85억 원 중 55억 원으로 부지를 매입하고 국비 16억 원을 확보해 군비 부담을 최소화하고 있다.주차여건을 개선하고 주차장 주변 맛고을 문화의 거리 및 전통시장 이용객의 접근성도 높여 지역경기 활성화의 해법도 풀어나가고자 한다.일방통행 교통체계는 주차여건을 개선하고 보행환경을 쾌적하게 하면서 침체된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편리하고 안전한 사람중심의 교통체계로 만들어 이를 통한 지역경제를 살리는 것이 핵심이다.예천읍 중심 도로망이 시장로와 효자로인데 서본리 굴머리에서 갈라져서 백전리 한전 앞에서 다시 합류하는데, 이 구조가 일방통행 체제로 바꾸기에 더없이 좋은 구조로 동서 간선가로축 2.8㎞ 전 구간을 일방통행으로 하고 기존 남북방향 간선도로는 현행대로 쌍방향으로 운행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현재 2차로를 1차로 일방통행으로 바꾸고 차도는 최소 4m~4.5m로 확보해 차량정차 시 소방차 등 대형차량이 통과할 수 있도록 하고 남는 부분에 보행로 폭을 최대 3m까지 확대해 쾌적한 보행 공간을 확보하면서 추가로 총 310여 면의 주차장도 생기게 된다.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최우선방법이 ‘교통 환경개선’으로 공영주차장 조성, 일방통행체계 구축, 전선지중화를 비롯한 도시재생사업 등으로 훨씬 더 활기찬 모습으로 바뀔 것으로 확신한다.전세계가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사회 전반에 새로운 트렌드를 낳는 신풍속도가 생기고 농업 분야도 소비 위축 등 비대면·비접촉 방식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어 이를 고려한 농산물 판매 활성화 방안이 필요한 실정이다.농축산업 현대화와 구조조정으로 소득향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지역농산물을 이용한 부가가치 창출과 기술혁신으로 농가소득증대 지원책과 유통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농업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겠다.중점 과제로 △시설원예 전략품목 현대화 △예천농산물 홍보관 운영 유통 활성화 △친환경 농업 지원 △한우브랜드화 사업 △농산물가공센터 건립 등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만들어 부자농촌의 모습을 만들어 갈 것이다.예천군은 원도심 공동화 현상을 극복하고 신도시와 상생 발전할 때 진정한 의미가 있기에 원도심의 기능을 되살리고 지역 내 유무형의 자원을 활용한 특색있고 경쟁력이 있는 도시로 변모를 위해 도시재생사업에 공모한다.도시재생 활성화계획은 역사·문화 전시관과 도시재생지원센터 설치, 남본시장진입로개설과 이용객 쉼터, 농산물 전시·판매시설을 마련하는 한편 상설시장 인근 공공임대상가와 복합공영주차장 등 지역특화 거점시설을 설치하고 장난감도서관 및 돌봄센터, 문화쉼터 등 부족한 생활SOC 시설을 확충하게 된다.‘스포츠마케팅이 곧 지역경제 활성화의 심장’이라는 각오로 공격적 스포츠마케팅에 행정력을 결집시켜 군민 자긍심 고취와 지역경기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강한 열정을 쏟은 결과 ‘2022년 U-20 아시아 주니어 육상경기선수권대회’ 개최지로 선정되는 쾌거를 거뒀다. 이 대회는 아시아 45개국이 22개 종목 1천500명이 참가하는 규모로 군 단위 최초로 대회를 개최한다는 점이 고무적이며, 예천군 브랜드 가치상승 기회와 스포츠도시 위상 제고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남은기간도 군민들에게 약속한 군민이 행정의 주체라는 ‘섬김 행정’, 소통만이 해법이라는 ‘소통 행정’을 바탕으로 역동적인 군정에 변함없는 관심과 참여를 당부하며 예천군 발전을 위한 도전은 오늘도 진행형이다.

2020-10-11

느티나무 가로수 길 끝에

낙동강이 만들어 준 습지는 예로부터 농사지을 넓은 들을 선물했다. 대로를 달려가다 구미 해평면 마을 길로 접어들면 갈냄새 풍기는 들판 사이로 ‘느티나무 숲 가로수 길’이란 이정표가 먼저 우릴 반긴다. 여기서부터 가을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하는 듯하다. 길 양옆으로 느티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려 터널을 만들었다. 터널 속으로 들어가니 나무줄기와 줄기 사이로 누런 들판이 언뜻언뜻 스쳐 지나서 더욱 낭만적인 풍경이 완성되었다. 3km 넘게 가로수가 이어져 있어 드라이브하기에 딱 좋은 길이다. 달리던 차의 속도를 늦추었다. 차창을 내려 심호흡을 하며 깊숙이 가을을 마셔 본다.‘용수골 못’을 지나자 느티나무 사이에 간간이 벚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눈에 띄기도 한다. 그러다 길이 가팔라지며 가로수의 수종이 소나무로 변했다. 창을 활짝 열고 이번엔 솔 향기를 맡으며 구불구불 한참을 더 오르면 길 끝에 냉산(冷山)이 품고 있는 고즈넉한 도리사(桃李寺)가 나타난다.고구려 아도화상이 신라에 와서 창건한 도리사, 신라 최초의 가람으로 알려져 있다. 아도화상이 서라벌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이르러 겨울인데도 복숭아꽃(桃)과 오얏꽃(李)이 만발해 있는 것을 보고 상서로운 곳이라 생각해 절을 지었다고 한다. 근처 도개면 신라불교초전지의 전시관에는 아도화상이 복숭아 꽃그늘 아래에서 참선하는 형상을 재현해 놓았다. 도리사는 법당인 적멸보궁에 불상이 없다. 자장율사가 당나라 구법 중 모셔온 부처님의 사리를 5곳에 나눠 봉안한 곳이 5대 적멸보궁으로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그리고 통도사가 있는데 최근에는 대구 용연사, 건봉사, 구미 도리사까지 합쳐서 8대 적멸보궁이라고 부른다. 불교의 성지로 인정되는 곳이다. 법당 뒤로 난 벽이 모두 유리로 되어있다. 뒤쪽에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을 조성해 법당 안에서 사리탑을 향해 예배를 올린다. 법당에서 10분도 안 되는 곳에 서대라는 전망대가 있다.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절 주변 소나무 숲에 벤치와 평상이 셀 수 없을 만치 보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사람들이 법당이 아니라 소나무 아래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마음을 풀어놓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뜻이라고 휴식처를 만들어 놓은 듯하다.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구포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은 장려하고 도리사에서 바라본 낙동강은 수려하다.”라고 했다. 서대에서 바라보는 낙동강 물이 수려하게 흐르고 구미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이곳에 올라 아도화상이 서쪽 황악산을 손으로 바로 가리켰다는 곳에 절을 세우면 불교가 흥할 것이라고 말한 곳이 ‘직지사’가 되었다. 12시 방향에 금오산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가산산성, 팔공산 자락이 있다.김순희수필가극락전 앞에 특이한 모양의 탑이 우리를 돌계단으로 안내한다. 내려가니 소나무숲에 둘러싸인 좌선대가 보였다. 아도화상이 널따란 바위에 앉은 모습을 상상하려는데 할머니가 손녀의 손을 잡고 오르락 내리락 하며 놀고 있었다. 그걸 웃으며 지켜보는 내외를 보며, 스님이 거기에 올라 참선을 한 곳인데 저렇게 함부로 오르내려도 되나 싶었다. 아이들이 그러하더라도 타일러야 할 것을 함께 웃고 즐기는 모습에 마음이 안 좋았다. 문화재를 대하는 마음 자세가 아쉽다.신라 최초의 가람이자 구미 시티투어버스 코스로 지정된 도리사. 일교차가 심한 요즘에는 산자락 밑으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도 볼 수 있다니 가을 가람이 중생들의 발길을 끌어당긴다. 늦가을에 향 축제를 연다는 도리사, 아도화상이 큰 병이 든 성국공주를 위해 기도를 올려 낫게 한 후로 집안에 환자가 있거든 아도화상에게 향을 피우면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향이 해평면 들에 퍼진 것인지 절의 일주문이 느티나무 숲 가로수길이 시작되는 곳에 있다. 신라 때부터 지금껏 한자리를 지켜온 도리사의 품이 온 들판을 감싸고도 남는 크기였다. 아기단풍의 색이 짙어질 무렵 한 번 더 찾아가 오랜 세월을 간직한 그 향을 음미해 보아야겠다.

2020-10-11

조혼 페스티벌

강길수수필가이곳저곳에서 결혼식 팡파르가 울린다. 노란 예복을 차려입은 민들레 아가씨들의 결혼식이다. 새로 태어난 지 한 달 남짓한데 벌써 결혼을 한다. 조혼(早婚)이라도 너무 이른 혼인이다.어디 그뿐이랴. 민들레 아가씨들에 뒤질세라 벌써 돌잔치를 푸짐하게 벌이는 강아지풀들이 도처에서 싱글벙글한다. 함께 어우렁더우렁 사는 풀들의 축복을 받으며 풋열매를 단 강아지풀 꼬리들이 바람에 살랑댄다. 한족에서는 참새 떼가 작은 바랭이 열매로 아침밥을 먹는다. 가까이 다가가자 우르르 밥상을 물리고 날아오른다. 참새들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바랭이들에게는 내가 고마운 과객이 아닐까.다른 곳은 외래종으로 보이는 풀들도 꽃을 피우고 있다. 한여름 천지개벽보다 더할, 몸이 댕강 잘려 나가는 고통을 당했던 풀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새봄의 작고 여린 자태를 여지없이 드러낸 풀들이다. 어떻게 저 어린 풀들이 그새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을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라면 아동기이지 않은가. 아동이 형편상 가장을 떠맡는 경우는 있어도 아동끼리 혼인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구월 중순. 아침저녁 지나다니는 한 학교의 녹지 이야기다. 가을 초입인데 녹지의 풀들은 봄날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지난 팔월 초, 뜨거운 날씨 아래 녹지의 풀들은 벌초를 당했었다. 풀들은 그 고통과 역경 속에서도 한 달여 만에 연록 초지를 만들어 냈다. 귀뚜라미 소리 청아해지자 녹지는 느닷없이 조혼의 열기로 가득 찼다. 조혼 페스티벌이 벌어진 것이다. 가을이 가면 세상에 태어난 본분(本分)을 다할 수 없기에 절박한 것인가. 어린 나이에도 풀들은 시시각각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있다.열흘 전쯤인가. 간밤에 비가 내린 아침 출근길이었다. 여린 풀잎들은 손에 손마다 빗물 이슬 머금고 오가는 이들에게 연록 생명의 빛을 선물하였다. 초가을에 초봄의 정서를 만끽하는 기쁨을 맛보고, 체험하는 귀한 복도 누렸다. 몸이 동강 난 끔찍한 상황에서도 매 순간 억척스레 살아내는 당찬 모습이, 내 기대를 채워주고도 남았다. 고통과 희생 뒤에 따라오는 삶이, 값지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또다시 일깨워주는 아침이기도 했다.생각해보면 나와 너, 지구촌 사람들이 이 녹지의 풀보다 더 급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다. 심각한 기후변화 하나만 보더라도 많은 이들이 피부로 느끼듯 지구촌은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각국 정부와 국민들은 당장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생존 문제 앞에 정치와 권력은 무엇이며, 국제 이해관계와 패권이 다 뭐란 말인가. 풀은 뿌리라도 있어 다시 살아나지만 사람은 그렇지 못하지 않은가. 풀들은 씨앗을 만방에 퍼뜨려 기후변화에 대응한다. 본래 생명에게 주어진 본분이 삶의 최우선이며 결국 그 전부가 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르는가. 알면서도 외면하는가.여러 문화권에서 인간은 대부분 자신의 이익, 위신, 체통, 권위, 권력 등을 얻기 위해 조혼을 해왔단다. 우리의 경우도 과거 ‘민며느리’나 ‘데릴사위’가 성행했었다. 자연히 조혼으로 인한 어린이들의 인권이 유린되거나 침해되고, 여러 비극도 불러왔었다. 반면, 풀들은 환경이나 상황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여 살아내고 있다. 벌초 당해 새로 태어난 지 한 달 남짓 시간 만에 혼인 하고, 열매를 맺으며, 조혼페스티벌을 벌이고 있는 이 녹지가 그 증거다.푸른 행성 지구촌에 생명은 왜 태어난 걸까. 자연은 예외 없는 인과법칙 안에 존재한다. 이로 미루어 보면 어떤 과학자가 주장하듯, 생명이 바다에서 우연히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을 설계하여 만들고, 관리하는 지성체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가 창조주든, 신(神)이든 생명에게 주는 본분이 있으리라. 본능을 뛰어넘는, 생명이 마땅히 해야 할 바 같은 것 말이다. 내 눈에는 이 녹지의 여린 풀들이 생명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 만일 우리 인간이 저 풀들처럼 살아왔다면 오늘날 환경문제와 기후변화의 소용돌이는 생기지 않았으리라.풀들의 조혼 페스티벌이 성스럽다.

2020-10-07

사랑은 순간

맘대로 되지 않는 감정 중 으뜸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어리석음이요, 유치함이요, 수치요, 절망이요, 나락입니다. 사랑을 일컬어 현명함이요, 세련됨이요, 자긍이요, 희망이요, 천국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사랑이란 감정을 초월했거나 겉보기 사랑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사랑이란 말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사랑은 어떻게 올까요. 대개 그것은 찰나의 순간과 맞닥뜨립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는 데는 첫 3초면 충분하답니다. 3초의 판단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 판단의 중심 감정 중 하나가 사랑입니다. 감성이 풍부할수록 첫 3초의 편견인 사랑의 마법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 짧은 시간에 상대의 마음을 사버린 것을 일컬어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계산이 들어찰 여유가 없고, 판단을 유보할 사유가 없는 시간이지요. 사랑을 하려고 작정한 게 아니라, 순식간에 사랑의 조명탄을 맞아버리는 일이니까요.봄물 오르는 캠퍼스 느티나무 그늘을 지나던 남학생. 잔디밭에 앉아 여흥을 즐기는 일군의 무리를 발견합니다. 같은 과 친구들인 그들은 한낮의 고스톱을 즐기는 중입니다. 그 중 고스톱 패를 돌리던 한 여학생에게 시쳇말로 필이 꽂힙니다. 모든 빛이 여자 주변만 비추는 듯합니다. 햇빛 받아 반짝이는 머릿결, 화투장을 내리찍는 여자의 긴 손가락 끝에도 햇살이 머뭅니다. 심장이 멎는 듯하고 구름 속을 헤매는 심정입니다. 붕 뜬 허공에서 지상에 발 디디게 해 줄 이는 저 여학생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난 내적 반응이지요.집에 돌아와도 알 수 없는 감정은 지속됩니다. 수줍은 듯 짓궂은 여학생의 표정, 화투장을 돌리던 희고 긴 손가락이 미끼처럼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덥석 물고 싶을 만큼 강렬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집니다. 봄풀처럼 해사한 얼굴도 아니고, 날렵한 몸매로 캠퍼스 이곳저곳을 누비던 여학생도 아닙니다. 어떤 이유도 조건도 없습니다. 그냥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의 상황 앞에 마음의 파고가 일렁인 것이라니까요. 굳이 말하자면 3초의 편견이 사랑의 마법이 되는 순간이랄까요.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하는 그 찰나를 흔히 운명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불교 용어 중에 돈오(頓悟)와 점오(漸悟)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행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단박에 깨치는 것이 돈오이고, 수행의 공을 쌓아 서서히 깨닫는 게 점오입니다. 딱 들어맞진 않지만 사랑에 그 말을 적용해 봅니다. 돈오의 사랑이야말로 순정한 사랑이라 할 만합니다. 점오의 그것은 타협과 조정의 의미가 깃들어 있기 때문에 그 시작이 돈오의 사랑만큼 순수하지는 않습니다. 흔히 나이 들도록 사랑 한 번 못해 봤다고 말했을 때, 이는 돈오의 사랑을 못해봤다는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타협이나 필요에 의한 사랑도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찰나적 사랑만큼 강렬하지는 않습니다.서서히 물드는 쪽이 아니라 찰나적 사랑이 그 염결성에 더 가깝습니다. 흐린 눈이나 달뜬 가슴으로 봐야 첫 3초의 마법에 걸릴 수 있습니다. 정돈된 상태의 이성적 머리가 세팅되는 순간 즉흥적인 순정이 들어찰 자리는 없는 거지요. 고요한 찻잔 속의 물이거나 흔들리지 않는 나무의 잎새라면 그건 사랑일 리 없습니다. 감출 수 없는 어리석은 낯빛과 가라앉힐 수 없는 활화산 같은 심박수 그것이 사랑이지요. 첫눈에 반했다는 말은 거짓일 수가 없지요.김살로메소설가사랑은 무모함입니다. 베이는 줄도 모르고 맨몸으로 칼끝을 향해 돌진하는 무지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실체였는지를 알 때까지 그 사랑은 지속됩니다. 하지만 사랑의 실체를, 그 속성을 자각하는 순간은 기어이 찾아오고 말테지요. 애석하게도 사랑의 환상이 부서지는 그 필패의 시간은 사랑의 덫에 걸린 속도에 반비례해 질척거립니다. 그래도 머잖아 마법은 풀리기 마련이고 칼날 스친 자리엔 아련한 상흔만이 남습니다. 회한조차 희미해질 때쯤이면 그 상처 몽돌이 되어 심지(心志) 하나 키웁니다. 무뎌진 그것은 칼날을 벼리지도 제 심장을 겨누지도 않습니다. 유유자적 세파에 씻기는 평온의 둥근 돌이 되어 가는 것이지요. 사랑에 빠질 리 없는, 지속 될 이 평화를 우리는 또 사랑이라 부른다지요.환희의 꽃밭인 줄 알았지만 소금밭을 헤매는 바람. 키질에 남는 열매보다 풍구에 날아가는 쭉정이라야 ‘찐’인 사랑. 오늘도 사랑 때문에 누군가는 핸드폰 문자를 수십 번 확인하고, 울리지 않는 현관 벨 소리에 귀를 당겨 세웁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속수무책이 아니면 사랑이 아니고 무너질 3초가 아니면 사랑이 아니니까요. 수천 번의 참사를 예감한대도 모순의 통점인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빠지는 것’이라야 유효하니까요.

2020-10-07

코로나19 덕에 배우는 게 다 있다

장규열한동대 교수미국이 혼돈을 겪는다. 대선을 코 앞에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 주말을 병원에서 지냈다지만, 완치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채로 백악관으로 돌아갔다. 국사가 중대하고 대선캠페인이 시급하다지만, 전 세계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따가울 수 밖에 없다. 팬데믹으로 알려진 대감염상황을 매우 대수롭지 않은 일로 규정한다거나 기본 방역수칙인 마스크착용 여부에 관해서도 그는 매우 부정적이다. 퇴원하여 관저 앞에 서서 그는 마스크를 ‘시원하게’ 벗는 상직적 제스추어를 연출하였다. 그래도 되는 것일까? 이런 모습들이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이성적으로 제시된다면 몰라도, 누가 보아도 정치적인 계산에 따른 행동이므로 시민들에게는 극심한 혼란만을 초래하는 일이다.코로나19는 물러갈 것인가. 2020년이 마비되었다. 세계적으로 3천500만 명을 감염시킨 이 바이러스는 100만이 넘는 사람들의 생명을 앗으면서도 여전히 기세가 등등하다. 미국뿐 아니라 지구상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다. 보건정책을 정치성향과 섞은 나머지, 정상적인 예방과 방역에마저 이념적인 프리즘을 들이대면서 편견과 주장을 하면 어떤 결과까지 맞을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도가 도를 넘어 국민 앞에 선 지도자가 저처럼 자극적이며 선동적인 행태를 반복하면 국민이 얼마나 불안할 것인지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저런 모습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지 않은 것으로 안심할 수 있을까. 엇비슷한 태도가 빌미가 되어 국민건강에 위기를 초래할 위험이 우리에게는 없는 것일까.코로나19로부터 의외로 많이 배운다. 민주시민이 정책과 집행에 대하여 얼마나 깨어있어야 하는지를 깨우치는 중이며, 정부는 국민의 반응에 어떤 진정성으로 답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중이다. 건강을 직접 위협하는 소재이다 보니 관심도 높고 반응도 빠르다. 그 영향에 있어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해당하는 일이라 온 국민이 이해당사자인 셈이다. 위기상황이 진행되는 가운데 해결책을 함께 모색해야 하므로 정치적인 계산이 끼어들 틈이 그리 없어 보인다. 진영의 논리로 편을 갈라칠 양이면, 자칫 코로나19 피해가 눈덩이가 되지 않겠나. 그런 위험을 미국의 모습에서 이미 보고있는 셈이다. 저들이 잘 극복하길 바라지만, 국민들 사이에 골이 저렇게 깊어서야 정치도 방역도 회복이 어렵지 싶다. 우리에겐 타산지석이 아닌가.코로나19가 가져온 뉴노멀에는 ‘표현방식’도 들어있다. 광화문과 서초동의 기억이 엊그제인데 어느 틈에 비대면과 언택트가 들어와 앉았다. 강의와 교육도 온라인과 디지털을 매개로 하는 바에야 집단의사의 표현방식도 달라져야 하지 않겠나.어려울 때 발전하였다. 성가셔야 뚫고 나간다. 코로나19로 힘들어진 세상에 편을 갈라 이길 방법이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남을 무찌르며 헤쳐갈 길이 아니다. 당략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라, 정책으로 이겨내야 한다. 오늘, 방역은 정치보다 중요하다. 홀로 영웅이 되기보다 함께 위기를 헤쳐가야 한다.

2020-10-07

무분별한 태양광 사업, 정비할 때다

50일이 넘는 긴 장마가 진행된 올여름 산림청은 전국 16개 시도에 처음으로 산사태 위기경보 중 가장 높은 수준인 ‘심각’ 단계를 발령했다. 전국 산지에 우후죽순 들어선 태양광 발전시설이 토사 등으로 무너져 내릴 우려가 있어 당국이 사전 조치에 나선 것이다. 7∼8월 전국에선 27건의 태양광 산사태가 발생했으며 경북에서도 고령군 등 5군데서 태양광 시설이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했다.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탈원전 정책으로 태양광 시설은 전국 곳곳에서 급증했다. 국민의 힘 탈원전 대책위 자료에 의하면 문 정부 첫해인 2017년 태양광 시설 신축규모는 전년 대비 271%가 증가하고, 이듬해도 170%가 늘었다. 2017년∼2019년 사이 산을 깎고 나무를 베어낸 면적이 여의도 면적의 15배에 이른다고 했다. 잘려나간 나무만 232만여 그루다. 태양광 설비의 급격한 증가로 그동안 산사태 위험, 농지잠식, 산림훼손, 주민갈등 등의 각종 문제가 우리사회에 노증됐다. 그러나 정부는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이번 국감자료에서 이러한 사실이 다시한번 입증됨으로써 태양광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통제나 정비가 정부차원에서 반드시 있어야 한다.국민의 힘 구자근 의원이 산림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재 태양광 발전시설 1만2천527곳 가운데 7.4%인 922곳이 산사태 위험지역인 1.2등급 지역에 설치됐다고 한다. 경북지역도 150곳이 산사태 위험지에 있다. 산사태 위험지란 상대적으로 산사태 발생 가능성이 높은 취약한 산지다. 주로 땅값이 싼 산비탈 등을 말하며 설치된 태양광 시설은 집중 호우를 만나면 지반약화로 시설이 무너져 내릴 우려가 높다. 인근마을 주민의 안전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당장의 안전조치가 필요하다.산림청은 지난 8월 자체조사를 통해 조사대상 2천180곳 중 18.1%인 394곳이 양호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태양광 시설의 안전에 관한 정밀조사와 보완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탈원전 정책의 보완으로 정부가 신재생 에너지를 권장하고 있지만 태양광 설비로 부족한 국가소요 전력을 커버할 수는 없다. 좀 더 정비하고 체계적 관리를 통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차제에 탈원전 정책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하다.

2020-10-07

공정경제 3법·노동개혁, ‘빅딜’ 못할 이유 없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공정경제 3법’처리 동의에 반색하던 더불어민주당이 ‘노동개혁법안’ 동시처리 제안에 펄쩍 뛰고 있다. 대주주의 과도한 경영권을 견제하고 기업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공정경제 3법’은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 분야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는 상황에서 노동 유연성의 필요성 또한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집권당이 정략에 갇혀서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 노동개혁 화두는 김종인 위원장이 “코로나19 이후 전 분야가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정경제 3법뿐 아니라 노사관계·노동법도 함께 개편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현안으로 떠올랐다. 노동개혁 과제는 큰 틀에서 ‘채용과 해고의 경직성’, ‘능력과 무관한 연공서열적 임금체계’, ‘대기업 노조 위주의 노사관계’ 등이 우선순위로 꼽힌다.문재인 정권 들어서 노동법은 성역(聖域)이 됐다. 정부의 일방적인 친노동 정책으로 노사관계는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바뀌어 있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의 평가에서 141개국 중 국가경쟁력 13위인 대한민국은 노사 협력은 130위에 머물렀고, 다른 노동 관련 지표들도 100위권 안팎에 그쳤다. 기업들은 경직된 제도와 강성 노조에 지쳐 해외로 줄줄이 빠져나가는 판이다.지금이 두 개의 고질병을 한꺼번에 수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2003년 ‘정치적 자살’이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독일 슈뢰더 총리가 관철한 노동개혁법 ‘하르츠법’ 덕분에 유럽 경제의 짐이던 나라가 다시 유럽 경제의 기관차로 우뚝 선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재계의 강력한 저항을 묵살하고 “기업의 건강성을 좋게 한다”며 ‘공정경제 3법’을 밀어붙이면서 ‘노동개혁’은“노동자에 너무도 가혹한 메시지”라며 거부감을 표시하는 편견은 치명적인 자기모순이다. 지금의 위기는 노동계만의 위기가 아니라, 경영계의 위기이기도 하다. 나라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얄팍한 정략적 계산법에 발목을 스스로 묶어서는 안 된다. ‘빅딜’을 회피할 이유란 전혀 없다.

2020-10-07

하르츠 개혁

하르츠 개혁은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때인 2002년 2월에 구성된 노동시장 개혁위원회가 제시한 4단계 노동시장 개혁 방안을 말한다. 설립 당시 폭스바겐의 담당 이사였던 피터 하르츠가 위원장을 맡아‘하르츠위원회’로 불리게 됐다. 하르츠위원회가 내놓은 4단계 노동시장 개혁 방안은 당시 독일 정부의 사회복지 및 노동 정책인 ‘어젠다 2010’의 하나로 2003년 1월부터 시행됐다. 주요 내용은 △노동시장 서비스와 노동정책의 능률 및 실효성 제고 △실업자들의 노동시장 재유입 유도 △노동시장 탈규제로 고용 수요 제고 등에 초점을 맞췄다. 슈뢰더 전 총리는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 임시직 고용을 늘리고, 저소득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식의 하르츠 개혁을 통해 독일을 성장 정체의 수렁에서 건져내고 경제 호황을 구가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다만 하르츠 개혁이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급여와 사회보장 및 복지를 대폭 축소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대중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최근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화두로 던진 노동법 개정이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염두에 둔 것이란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끌고있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노동개혁 카드를 제시한 것이 상법· 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등 공정경제 3법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즉, 재계와 국민의힘 내부에서 공정경제 3법에 불만을 나타내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서 공정경제 3법에 부정적인 재계를 다독이면서, 당내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의도라는 설명이다. 어쨌든 코로나19에다 경기침체로 쪼그라든 호주머니 사정에 시름만 깊어진 서민들은 나라살림을 살찌울 수 있는 혜안을 가진 지도자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0-07

트럼프 씨, 코로나에 걸렸다 살아나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 씨가 ‘드디어’ 코로나에 걸렸다 퇴원했다는 뉴스가 티비를 떠들썩하게 장식하고 있다.의료진은 그가 멀쩡하다고 했지만, 입원하기 전에 산소호흡기를 했다는 둥, 앞으로 48시간이 고비라는 둥 하는 얘기들도 있었으니 결코 안심할 수만은 없었던 모양이다.더구나 74세 고령에 비만도 있어 고위험군이라 하지 않았던가. 미국 국민이 백만 명 넘게 감염에 이십만 명 넘게 사망한 코로나가 그마저 덮쳤으니 예삿일은 아니었을 것이다.사실, 정치적인 ‘입장’ 같은 것을 따져 보면 트럼프 씨를 좋아할 일은 없을 것도 같다. 대통령 하기 전부터 유럽에서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미국도 지식인들은 많이들 한탄을 했다고 한다.그런데 미국 백인 남성들, 부유층은 그를 상당히 지지한다던가? 또 그가 코로나 걸렸다는 뉴스 전까지만 해도 이번 선거도 알 수 없다는 얘기들도 심심찮게 들렸다. 지금은 그가 재선되기는 쉽지 않은 모양새지만. 하건만,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어쩌면 그렇게 재미도 없어 보이는지. 일점 그에 대한 어떤 흥미도 안 생기는 것인지. 항간에는 그가 또 친중파라는 분류법을 구사하는 사람들도 많고.요즘 왜 그렇게 친중파니, 친북파니, 친미파니, 친일파니 하는 소리들이 많은지, 구한말 정국이 따로 없는 듯도 하고.코로나 걸리기 전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문제로 선거를 끌고 가려고 한 듯 했다. 화웨이가 어떻고, 틱톡이 어떻고, 대만이 어떻고, 바이든이 어떻고 하는 것이 다 그런 맥락이다.그런데 이 중국 문제가 간단치 않은 것이, 트럼프 씨가 이 이슈를 만들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람들은 중국의 힘에 전전긍긍해야 했다. 수출을 못할까, 남북 문제 헝클어질까, 동북공정에, 일대일로에, 중국의 힘은 무한정 뻗어나갈 것만 같고, 한국은 조공이라도 바쳐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런데 갑자기 다시 코로나로 돌아와 버렸다. 트럼프 씨의 발병은 그의 ‘생사’에, 그가 치료제로 무얼 쓰는지에, 미국 대선이 과연 무사히 치러질 것인지에, 사람들 촉각을 곤두세우게 했다. 코로나는 과연 무섭고 전파력 강하고 예측불가능한 질병이라는 것이다.그렇게 허풍선이 같은 데도 어째 밉지만은 않아 보이는 트럼프 씨가 과연 인생 최대의 위기를 넘기고 선거를 무사히 치를 수 있으련지? 바이든에는 관심이 안 가고 트럼프 씨 동정에만 눈과 귀를 기울이는 나는 과연 정치 의식 불분명, 불투명한 사람인 것일까?그런데 요즘 국제정치, 특히 미국의 세계전략, 그 역학이 간단치만은 않다. 각국에서 트럼프 씨를 향한 위로전문들을 선두 다툼 벌이듯 보냈던 것은 또 뭔가? 짙은 안개 속 같은 세상을 꿰뚫어 볼 혜안이 필요한 시대다. 트럼프 씨, 코로나에 걸렸다 살아돌아온 일, 강 건너 불구경하듯 ‘즐길’ 일만은 아니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10-07

어게인 없는 교육청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여러분, 우리는 지금 별의별 꼴을 다 보고 살고 있습니다.”이 말은 모 방송사에서 추석 특집 방송으로 제작한 언택트 공연에서 주연 가수가 한 말이다. 공연 이후 반응이 놀라워 필자는 스페셜 방송을 보았다. 공연 기술도 기술이지만 교육계에서는 안 된다고만 하는 비대면 시대에 언택트 문화를 선도하는 모습이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그리고 그 가수가 공연 사이 사이에 하는 말을 들을 때는 자리에 그냥 앉아 있을 수 없었다.대표적인 말이 첫 문장에 적은 말이다. 그 말을 하는 가수가 너무 멋있었다. 아니 너무 감사하고 고마웠다. 특히 대한국민을 외칠 때는 눈물이 났다. 무엇보다 국민이 “대한민국 어게인”을 외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준 것에 존경심이 우러났다.방송을 보는 내내 필자는 여러 가지를 메모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칠 수 없었고, 그의 말과 가사에 따라 저절로 일어나는 필자의 감정을 그냥 휘발되게 둘 수 없었다. 하지만 메모가 쌓이면서 메모 양은 급속도로 줄었다. 반면 복받쳐 오르는 감정은 마음을 넘쳤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의 감정이 전체 감정을 지배하였다. 그 마음은 다름 아닌 죄송함이었다. 필자의 메모는 결국 다음 이야기에서 멈췄다. 표준어로 잠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살다 보니 세월은 그냥 누가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이왕 세월이 가는 거 끌려가지 말고 세월의 모가지를 꼭 비틀어 끌고 가야 합니다. (….) 날마다 똑같은 일을 하면 세월한테 끌려가는 거고 (….) 안 하던 짓을 해야 (….) 세월의 모가지를 비틀어 끌고 갑니다.”그가 대한민국 어게인을 외치는 힘을 필자는 이 말에서 찾았다. 끌려가면 안 된다는 그의 문제 인식과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안 하던 짓을 해야 한다는 그만의 창의적 문제 해결 방법은 분명 별의별 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 나라를 다시 세우는 힘이 될 것이 확실했다.필자가 죄송한 이유는 다른 사회 분야는 그래도 이 힘을 가지고 세상을 개척해가고 있지만, 정녕 이 힘이 가장 필요한 교육계에는 이 힘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안 하던 짓을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용기와 도전정신을 가르쳐야 할 학교지만, 이것을 가르칠 교사가 없다.교사 편하자고 만들어 놓은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학생이 있으면 그 학생은 소위 말해 교사에게 찍힌다. 찍힌 학생의 학교생활이 어떨지는 설명을 안 해도 잘 알 것이다. 학생들은 찍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 틀에 자신을 가둔다. 그러면서 또 틀에 갇힌 어른이 된다.이는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필자가 교육청과 교육부에 전화할 때마다 듣는 소리가 있다.“다른 교육청도 안 하는데 우리가 왜 합니까? 우리도 바꿔야 하는 걸 잘 알지만, 교육부 지시라서 어쩔 수 없습니다. 안 해도 되는 걸 왜 굳이 하려고 합니까!”이것이 교육 당국의 별의별 꼴이며, 교육계가 교육 어게인을 절대 외칠 수 없는 이유다.

2020-10-07

나훈아 공연장의 정치적 메시지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가수 나훈아는 여전히 한국 가요사에 우뚝한 존재다. 그의 노래에 열광하는 팬들을 뒤로 두고 그는 방송매체에서 10여 년 간 사라져 버렸다.이번 추석 명절에 가황(歌皇) 칭호를 얻은 나훈아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그의 공연은 코로나 전염병으로 지쳐있는 우리 모두의 정서를 위로해 주었다. 공연 중간 중간의 그의 멘트는 시중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상당한 정치적 메시지로 읽혀지기도 한다.공연 중 나훈아는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자는 발언을 하는 도중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고 단언하였다. 상당히 공감하는 발언으로 들렸을 것이다.우리 역사에서 임진란이나 병자호란 등 수많은 외침 시 도망친 군주는 역사의 오점으로 기록됐다. 6·25 남침 시에도 이 대통령은 한강 다리를 끊고 서울을 떠나 남쪽으로 향했다. 나훈아의 말대로 국가적 위기 시 목숨 바쳐 백성을 구한 왕은 찾아볼 수 없어 민망할 뿐이다. 해방 후 이 나라에 십여 명의 대통령이 통치했지만 진정으로 범국민적으로 존경받는 대통령은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이 우리 정치의 최대 비극이다.나훈아의 말대로 위기 시 나라를 구하기 위한 백성은 수없이 많다. 일제 시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일제 시 대구 형무소에서는 176명의 애국지사들이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IMF 경제 위기 시에도 우리 국민들은 장롱의 금붙이로 나라를 구했다.나훈아는 국민의 힘이 (나쁜) 위정자를 물리친다는 주장도 하였다. 당명을 ‘국민의 힘’으로 바꾼 야당에서는 그의 발언을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민주 국가의 ‘국민의 힘’을 정파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나훈아는 그간 ‘고향 역’, ‘홍시’, ‘18세 순이’, ‘잡초’, ‘청춘을 돌려다오’ 등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발표하였다. 그가 직접 작사한 노랫말은 우리 민족의 이별과 슬픔, 눈물의 정서를 유감없이 잘 표출한다. 오직 평생을 대중가요에 헌신한 전문 음악인 나훈아는 훈장까지 거부했다. 그는 노태우 정권 시절 총선 출마를 권유받았지만 이마저 거부하였다. 그의 거부 이유는 자신의 ‘울긴 왜 울어’를 자신처럼 부를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 나라의 성공한 기업인, 유명 교수, 시민운동가, 언론인들이 몰려가는 정치판에서 새겨들을 이야기다.나훈아의 이번 공연은 이래저래 억눌린 우리의 응어리진 가슴을 풀어주었다. 그는 분명 자신의 노래에 자부심을 가진 전문 예술인이다. 천박한 상업주의에 빠져 돈과 인기에 목숨을 거는 연예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는 이 나라 최고 재벌 이건희 회장의 생일 초대 공연도 단호히 거부했다. 그는 일본의 초청 공연에서도 공연 말미에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후렴을 슬쩍 넣었다. 이번 KBS 주최 공연에서 “KBS가 국민의 방송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신곡 ‘테스 형’에서 ‘세상이 왜 이렇고, 세월이 또 왜 저런 지’를 겸손히 묻고 있다.

2020-10-07

새로운 秋캉스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명절맞이 풍속이 차츰 달라지고 있다. 민족의 대이동을 방불케 하던 추석연휴 귀성행렬이 줄어들고 관광지나 휴양지를 찾는 가족들이 늘어난 것이다. 전염병의 재확산을 우려한 정부 당국에서의 귀성 이동 자제 권유 등으로 예년에 비해 20% 정도 국민들의 전체 이동이 줄었다고 하지만, 갑갑해진 일상에서의 일탈 같은 마음으로 귀성 대신 기분전환 겸 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오히려 늘었다고 한다. 수개월째 이어지는 위축되고 침체되는 일상이 조금씩 바뀌더니 급기야 민족의 대명절인 한가위를 보내는 모습조차 이색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이른바 ‘추(秋)캉스’라는 신조어까지 나올 정도로 사람들은 추석연휴뿐만 아니라 가을날의 여유로운 시간에 언택트 여행이나 휴가(바캉스)를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다. 실제 지난 추석연휴 때의 숙박업소 예약률은 코로나의 와중에도 강원도가 95%, 제주도가 60%에 육박하는 등 많은 사람들이 성묘나 고향방문을 미루고 가족이나 친지들과 함께 명소를 찾아 명절을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난데없는 바이러스가 고유한 풍습마저 변모시키는 양상이다.미상불 필자도 가족과 함께 한가위 연휴를 제주도에서 보냈다. 봄날에 떠날 예정이었던 제주도 여행이 돌연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가을로 연기되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 3년 전부터 진행 중인 아들과의 자전거국토종주 장기계획에 따라 이틀은 해안으로 조성된 제주환상자전거길을 바다와 달빛을 벗삼아 달렸고, 나머지 이틀은 가족들과 섬 속의 섬 우도 일주 등의 일정으로 라이딩과 관광을 겸해 나름 뜻있고 유쾌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용두암에서 출발해 애월~대정~서귀포 쪽 반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 원점 회귀하는 라이딩 내내 아름다운 절경의 해안도로와 이국적인 분위기에 젖는 설레임으로 환상(環狀)자전거길은 그야말로 환상적(幻想的)으로 펼쳐지는 듯 했다. 또한 바퀴가 굴러가는 곳곳마다 올레길 트레킹과 캠핑, 카약과 낚시 등을 즐기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말 그대로 추캉스(추석 바캉스)가 실감날 정도였다. 특히 함덕해변에는 밤에도 투명한 에메랄드빛을 띄는 수면에 잔잔하게 어리는 보름달빛을 감상하거나 서늘한 밤바람을 쐬는 여행객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자연이나 세상은 시간과 환경이 바뀜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기 마련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생활방식이나 삶의 양태는 주변 여건에 유연하게 반응하고 익숙하게 대처해 나간다. 집콕족이니 비대면 온라인 성묘, 추캉스 등과 같은 생소한 명절 풍속도도 어쩌면 새로운 환경과 특이한 변화에 순응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다만, 그러한 변화나 낯선 환경에 직면해서 우리 고유의 관습이나 전통문화가 퇴색되거나 희석되지 않을까 우려스럽기만 하다. 변화하되 변하지 말아야 할 것과 적응하되 배제해서는 안 될 것들을 잘 판단하고 챙기는 추캉스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것은 곧 우리의 뿌리를 지키는 일이며 명절 퓨전문화를 현실에 맞게 가꾸고 보듬어 나가는 길이기도 하다.

2020-10-06

세계 한인의 날

김규종경북대 교수지난 10월 5일은 ‘세계 한인(韓人)의 날’이었다. ‘세계 한인의 날’은 거주국 내 재외동포의 권익신장과 역량강화, 한민족의 정체성과 자긍심 고양, 동포들의 화합 및 모국과 동포 사회의 호혜적 발전을 도모하고자 제정되었다. 세계 곳곳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한인 동포의 숫자는 700만 정도로 추산된다. 대구와 부산, 울산의 인구를 합친 정도의 한인들이 디아스포라를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오랜 세월 한반도를 거점으로 살아온 한국인은 특정한 시기와 인물을 제외하면 영토확장을 위한 정복 전쟁에 나서지 않았다. 전쟁은 숱한 인명 살상과 참화를 불러온다. 우리는 대륙(중국)과 해양(일본)으로부터 900여 차례 침략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대륙이나 해양으로 전쟁하러 나간 경우는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쓰시마 정벌과 나선정벌, ‘더러운 전쟁’이라 불리는 베트남전쟁 정도가 아닐까?!한인들의 외국 이주는 크게 네 시기로 나뉜다. 첫 번째 시기는 1860년대 이후부터 1910년 사이다. 조선왕조의 가혹한 수탈과 억압을 피해 노동자와 농민들이 중국과 러시아, 하와이, 멕시코, 쿠바 등지로 이주한다. 두 번째 시기는 일한합방으로 국권을 상실한 1910년부터 8·15해방에 이르는 1945년까지다. 일제의 수탈을 피해 농민과 노동자들은 만주와 일본으로, 독립지사들은 중국과 러시아, 미국 등지로 떠나갔다.세 번째 시기는 1950년대 초부터 1962년까지의 시기로 전쟁고아, 유학, 결혼 등의 이유로 대부분 미국과 캐나다로 이주했다. 네 번째 시기는 정부의 이민정책이 실행된 1962년부터 지금까지다. 대표적인 본보기가 분단 서도이칠란트로 간호사와 광부를 파견한 일이다. 1963년에서 1977년까지 파견된 광부가 7천936명, 간호사가 1만1천57명으로 2만에 이르는 젊은이들이 머나먼 이역(異域)으로 떠나갔다.쾰른과 베를린에서 공부하면서 한인 간호사와 광부들과 만나면서 디아스포라의 실체를 경험했다. 그중에서도 환갑나이에 보훔에서 현역으로 탄을 캐던 초로의 광부와 ‘장기수후원회’를 열정적으로 돕던 쾰른의 간호사가 기억에 남는다. 1997년 문민정부가 ‘재외동포재단’을 설립하고, 1999년 국민의 정부는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을 제정-공포하면서 재외 한인들의 지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이런 선행작업에 기초하여 참여정부는 2007년 5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10월 5일을 ‘세계 한인의 날’로 정하고 법정기념일로 제정한다. 아울러 10월 5일을 전후로 한 10월 3일 개천절과 10월 9일 한글날에 이르는 기간을 ‘재외동포주간’으로 설정-기념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 부는 케이팝, 케이방역, 영화와 드라마, 방탄소년단 등의 선도적인 수용자인 해외 한인들의 성실한 삶에 고개 숙인다.그러하되 ‘재외동포주간’ 첫날에 ‘개천절 집회’를 강행하는 자들과 경찰의 실랑이는 우울한 풍경이었다. 처참한 코로나19 상황에 정치적 목적을 탐하는 자들의 야욕이 아프게 다가온다.

2020-10-06

아, 훈아 형!

추석 전날 낮잠 늘어지게 자다가 해질 무렵에야 마스크 쓰고 집 앞 안양천을 산책했는데, 천천히 걷던 어르신들이 갑자기 경보선수마냥 빠른 걸음으로 나를 추월하시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일까? 다들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는 “나나”, “나오나” 중얼거렸다. 뭐라는 건지 궁금했는데, 가만 들으니 그 소리는 “나훈아”였다.어르신들은 텔레비전에서 방영해주는 나훈아 공연을 보려고 축지법까지 쓰면서 귀가를 서두른 것이었다. 아직 노래는 시작도 안 했는데, 어르신들에게 청춘을 돌려주는 나훈아의 위력에 감탄했다.나훈아 노래 한 곡 안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1966년 데뷔한 이후 60년 가까이 최정상 가수로 군림해온 ‘트로트의 전설’이다. 생긴 것도 꼭 시베리아 호랑이상이라서 ‘군림’이라는 말이 적확하다. 중학교 때부터 ‘잡초’, ‘건배’, ‘갈무리’ 같은 노래들을 따라 부르기도 했고, 짙은 눈썹, 부리부리한 눈, 큰 머리, 벌어진 어깨가 닮았다는 소리 꽤 들은 나 역시 팬의 한 사람으로서 막걸리 한 병과 동태전을 늘어놓고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공연을 보면서 후회했다. 나훈아 콘서트는 ‘모엣 샹동’ 같은 고급 샴페인을 마시며 봐야만 하는 것이었다. 현장 공연은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던데, 방구석 1열에서 즐기는 이 디너쇼는 어쩌면 코로나가 준 선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메뉴 구성에서 ‘가황(歌皇)’을 맞이할 준비가 다소 미흡했지만, 장면 하나 소리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했다.‘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공연 타이틀에서부터 급이 다른 위엄이 느껴졌다. ‘대한민국’과 자기 이름을 나란히 걸고 명절 지상파 방송에 공연을 송출할 수 있는 뮤지션은 나훈아와 조용필 둘 뿐이다. 스케일이 크고 무대연출이 화려한 나훈아의 공연은 올림픽 개회식 뺨친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시작부터 커다란 여객선을 몰고 등장했다. 이래저래 마음 헛헛한 추석 전야, 기차 경적소리와 함께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이 울려 퍼졌다. 고향 못 간 이들의 마음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사전 신청제로 모집된 국내외 1000명의 관객들이 스크린과 마이크를 통해 비대면 객석을 이루었다. 언택트(untact) 시대의 진풍경이었다.아직도 근육이 탄탄하게 박힌 구릿빛 몸에 주름 없이 팽팽한 이마, 찢어진 청바지와 하얀 셔츠는 칠십이 넘은 그의 나이를 의심케 했다.고음과 저음, 단음과 장음을 자유롭게 오가며 미세한 음 하나 하나에 감정과 서사를 싣는 특유의 가창력은 변함없었다. 아니 소리가 예전보다 더 짱짱한 느낌이었다. 노래 부르면서 춤도 추고 점프도 하고 기타도 치고 북도 때렸다. ‘고향역’, ‘물레방아 도는데’, ‘홍시’, ‘무시로’, ‘18세 순이’, ‘갈무리’, ‘영영’, ‘잡초’, ‘청춘을 돌려다오’, ‘번지 없는 주막’ 등 총 30곡을 세 시간 가까이 열창했다. 트로트를 헤비메탈, 펑크록, 댄스, 가스펠, 뮤지컬 등과 결합하여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훈아’라는 장르로 바꿔냈다. 대체 뭘 드시기에 저렇게 기운이 넘쳐날까, 궁금했다. 공연 끝나고 다시 안양천에 나가보니 낮에 그 아저씨 할아버지들이 모두 같은 마음으로 팔굽혀펴기와 맨손체조를 하는 것이었다.순간 최고 시청률 40퍼센트를 넘겼고, 포털 사이트 검색창과 뉴스란을 잠식했다.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공연 후 여기저기서 “테스 형!”(나훈아 신곡 ‘테스형’에서 ‘소크라테스’를 칭하는 가사)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무대에서 그가 한 발언들은 정치권의 화두가 되었다. “세월에 끌려가지 말자”, “안 해 본 일들에 도전하자”, “의료진들이 우리의 영웅이다”, “국민이 힘이 있으면 나쁜 위정자들이 생길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국민들이다” 한 사람의 대중음악가가 코로나로 지친 온 국민을 위로하고, 계층과 세대, 남녀노소, 지역, 종교, 이념을 모두 뛰어넘어 사회 전체에 울림 있는 메시지를 전했다. 나훈아 말고 누가 또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에게는 대체 대중을 휘어잡는 어떤 마력이 있는 걸까?‘나훈아’라는 신화를 떠받치는 부력은 그의 철저한 자기관리다. 몸매, 체력, 가창력, 젊은 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함께 그는 대중가수로서의 상품가치, 최고의 스타만이 갖는 희소성을 지키고자 구도자와 같은 삶을 살아 왔다. 재벌가로부터 내밀한 공연 요청을 받고는 “표 사서 봐라”라고 단칼에 거절했다는 일화는 ‘나훈아’의 값은 오직 그 자신 나훈아만이 매길 수 있다는 고고한 예술가적 자존, 대중을 위해서만 기꺼이 상품이 되겠다는 대중연예인으로서의 직업의식 등 그의 철학을 함축해 보여준다. 국가가 수여한 훈장을 거부하면서 “예술가는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했는데, 권력 언저리를 기웃거리는 문화예술인들이 들으면 부끄러울 것이다.‘신비주의’로 오해 받을 만큼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는 그는 스타는 밤하늘에 별로 떠 있을 때에만 존재가치가 있다는 평소 신념대로 예능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는 일이 없었다. 반세기 넘도록 대중과 친밀하게 호흡해온 ‘나훈아’는 오직 노래 안에, 무대 위에만 있다. 가수는 노래로 말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곡 작업을 위해 그가 두문불출할 때마다 흉측한 루머가 돌았다.그래도 그는 대응하지 않고 침묵했다. 일부 언론이 무책임하게 뜬구름을 부풀리는 사이 소문과 전혀 무관한 지중해 해변이나 중앙아시아 고원을 걸으며 낯선 풍경들로 묵은 감각과 상상력을 씻어내는 데만 몰두했다.문화예술계 거장이나 유력 정치인들이 스캔들로 평생 일궈온 명예와 경력을 잃는 일이 많은데, 온갖 루머와 “이제 끝났다”는 평가가 끈적끈적한 콜타르마냥 이름을 뒤덮을 때마다 나훈아는 극적으로, 자기를 불살라 다시 날아오르는 불새처럼 더 환한 빛과 뜨거운 열기를 뿜으며 돌아왔다. 그렇게 많은 루머로부터 공격 받았는데도 여전히 최정상에서 건재하다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기도 한다는 걸 이제는 세상이 좀 알아야 하지 않을까.이질적이고 낯선 것들을 향해 열린 태도는 그의 음악이 ‘뽕짝’에 머무르지 않고 락, 클래식, 댄스, 가스펠, 리듬앤블루스, 힙합, 뮤지컬, 국악, 마당놀이 등과 결합한 새로운 장르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타자성을 수용하는 열린 세계관은 단순히 음악적 시도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그의 예술가적 삶 전체를 관통하는 인식소가 되었는데, 영남을 대표하는 가수인 그가 5·18 광주를 추모하기 위해 지난 1987년 ‘엄니’라는 곡을 썼다가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탄압 받은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연, 학연, 계층이라는 울타리를 쌓아 기득권을 유지해온 정치 이기주의, 지역 및 집단 이기주의가 한국 근대사를 지배해왔다면, 나훈아의 노래는 도시빈민,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 이주노동자, 일용직 근로자, 샐러리맨, 농사꾼 등 시대의 ‘잡초’들 사이를 흐르면서도 부자, 권력자, 지도자, 교육자, 사상가라고 불리는 이들의 애창곡이 되었다. 음악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명제는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홍시’)는 노래가 서울 세종문화회관과 곡성 오일장에 두루 퍼질 때, 빈부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 입에서 흘러나오며 모성에 대한 그리움을 환기시킬 때 성립된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무대 연출, 장치, 소품, 컴퓨터 그래픽, 출연진의 동선까지 무대의 모든 부분에 직접 관여했을 것이다. 한 음절마다 감정과 표정을 싣는 연기력 또한 세밀하게 준비된 것이리라. 이러한 완벽주의는 ‘나훈아’라는 상품을 구매한 관객들에게 지금껏 단 한 번도 실망을 주지 않았다.이번 공연은 ‘다시보기’ 없이 오직 단 한 번만 방영되었다. 발터 벤야민은 “예술작품이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그것이 뿜어내는 일회적인 빛”을 아우라(aura)라고 불렀는데, 현장성이 아닌, 텔레비전 화면이라는 기술복제 안에서 뿜어지는 나훈아의 빛은 아우라 그 자체였다. 변화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변하지 않는 영원한 아름다움을 추출하는 것이 근대성이라던 보들레르의 말을 떠올리면, 나훈아는 근대 이후 대한민국 최고의 대중예술인이 틀림없다. 아우라, 가까이 있지만 멀리 있는 어떤 것의 영적인 광휘, 나훈아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 곁에 있지만 저 높이, 저 멀리 있다.

2020-10-06

훈아 형의 콘서트

이재현동덕여대 교수실은 나는 남진도 나훈아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때론 간드러지고 때론 끈적한, 늘어지고 휘감기고 꺾이는 트로트라는 장르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 트로트 붐이 다시 일고 있지만 내 음악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에 우연히 돌린 채널에서 나훈아의 노래를 들었을 때 심드렁할 수밖에.그런데, 다시보기 서비스조차 없다고 너스레를 떨던 방송국이 불과 사흘만에 급편성한 그의 공연 재방송에서 나는 그와 눈이 마주쳤고 그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세월의 곰팡이 앉은 된장 냄새가 꼬리꼬리해도 찌개를 끓였을 때 그 감칠 맛에 숟가락을 담그지 않을 수 없고, 시큼한 김치 냄새가 유쾌하지 못한 자극을 준다 해도 그 시원한 맛에 젓가락을 놓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어, 내가 어느새 늙어 버렸나?딸아이 말로는 BTS에 꽂혀 있는 20대 젊은 대학생들이 ‘테스형’을 부르고 있단다. 그것도 방송이 끝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다. ‘훈아 형’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테스형’의 노랫말에서 나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에 관한 그 어떤 울림도 느낄 수 없었다. 내 철학의 부재 또는 부족 탓일까? 그러니 해석은 유시민과 진중권 또는 언론에 말글을 펼쳐낼 그 많은 인플루 ‘언사(彦士·재능과 덕망이 뛰어난 선비)’들에게 맡기련다. 아무튼, 2500년 전 소크라테스를 2020년 코로나 시국에 형으로 소환했다는 사실만으로 생뚱맞은 나훈아를 다시 보게 되었다.이번 콘서트는 2020 트롯어워즈의 6관왕 임영웅도, 트롯 백년 가수상을 받은 장윤정도 하기 힘든, 연륜에서 우러나는 맛나고 다양한 포맷의 공연이었다. 이런 무대에서 노래한다는 걸 1년 전엔 생각조차 못했겠지만, 그는 언택트 공연의 힘을 보여주었다. 제주도민과 강원도민, LA 교민과 이름도 생소한 짐바브웨의 교포까지 한 자리에 모아 흥을 나눌 수 있게 한 것은 그가 펼친 랜선 콘서트의 힘이었다. 랜선을 빌려 나훈아는 움츠러든 남성의 기를 살려주려 했고 한반도를 훌쩍 뛰어넘어 세계에 흩어진 남녀노소 한국인들을 들었다놓았다 했다. 코로나는 처음에 기획했던 대규모 오프라인 공연을 접도록 했지만 오히려 성공적인 반전(反轉) 콘서트를 이루어냈다.콘서트 중간중간에 그가 했던 말에 대해 시끌시끌 말이 많다. 여도 야도 아전인수격으로 받아들이는데 제발 유치하게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뛰어난 예인이지만 보통 생각을 가진 그냥 보통 시민의 덕담 정도로 여기면 어떨까?세월의 무게도 무겁고 가수라는 직업의 무게도 엄청나게 무거운데 훈장을 달면 그 무게를 어떻게 견디냐며 훈장을 사양했다고 말하였지만 세 시간 동안 지치지 않고 노래를 펼쳐낸 모습을 보니 훈장을 주렁주렁 달아도 끄떡없을 것같다.힘들고 지친 사람들 마음속 색깔, 코로나 블루를 잠시 동안이었을지언정 이 가을 스카이블루로 바꿔주려 했던 ‘훈아 형’에게 훈장까지는 몰라도 박수를 한껏 쳐줄 만하지 않은가? 스스로를 흘러가는 유행가 가수라고 하면서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눌러 터뜨리고 희망의 빛, ‘대한민국어게인’을 끌어올리려 했다니 뭐 예술 훈장 하나쯤도 괜찮겠고.

2020-10-06

알권리

1971년의 일이다. 미 정부는 베트남전쟁 비밀문서를 폭로한 언론(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에 대해 게재 중지를 법원에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국민의 알권리라는 이유로 이를 기각했다. 뒷날 이 판결은 알권리의 사회적 권위를 확립시킨 결정적 판결로 평가를 받는다.이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2017년 ‘더 포스트’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는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자유로운 보도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켜내는지를 그렸다. 또 언론의 역할과 진정한 저널리즘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기도 했다.미국 신문사 경영자이며 퓰리처상을 만든 조셉 퓰리처(1847∼1911년)는 사실 보도에만 충실했던 당시의 뉴스 정형을 센세이셔널하게 바꾸면서 신문사 경영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인물이다. 상업성과 정론언론의 영역을 넘나든 경영은 그를 현대 저널리즘의 창시자라 부르게 했다. 그는 신문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르치는 도덕 교사라고 말할 만큼 언론은 부당함과 부패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한 인물이다. 그의 기금으로 만들어진 퓰리처상은 언론계의 노벨상이라 불릴 만큼 세계적 권위를 가지고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정부가 언론보도에 대해 징벌적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려고 하자 언론단체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헌법상 기본권인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본질적으로 침해한다는 것이 반발 이유다. 가짜뉴스나 악의적 보도를 막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징벌적 제도로 합리화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진실에 대한 접근은 언제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언론보도는 더욱 그러하다. 간과해선 안 될 부분이다. 이 제도가 악의적 보도 등에 대한 근절효과보다 언론의 활동을 위축 시키는 결과로 나타난다면 이를 발상한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10-06

혁신도시 인구유출, 공공기관 추가 이전이 대안

지역균형발전과 수도권 인구집중 해소를 위해 노무현 정부 당시에 추진했던 혁신도시 조성사업의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국감자료에서 밝혀졌다.더불어 민주당 김윤덕 의원이 국토부로부터 받은 전국 혁신도시 전출 및 전입 시도별 현황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수도권에서 혁신도시로 이동한 순이동자 수(전입자-전출자)는 -57명으로 나타났다. 전국의 혁신도시 전출자가 오히려 전입자 수를 넘어선 것으로 밝혀져 혁신도시 설립취지가 급격하게 퇴색하고 있다는 분석이다.대구혁신도시의 경우 수도권 순이동자 수가 2015년 525명이었으나 해마다 줄어들다가 2018년부터는 전출자가 더 많아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대구혁신도시의 수도권 인구 유입 비율은 전국 꼴찌인 1.3%다.경북 김천혁신도시도 마찬가지였다. 2015년 2천80명이던 수도권 인구 유입이 2018년부터 역전돼 올 7월 현재는 -169명으로 집계됐다. 반면에 전국 혁신도시는 그 지역 구도심 인구를 흡수하면서 구도심 공동화의 주범이 됐다는 지적도 받았다고 한다.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수도권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정책면에서 지방의 큰 박수를 받았다. 대규모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으로 수도권에 집중된 인구 분산효과도 있을 것이란 기대도 모았다. 수도권 인구가 단숨에 줄지는 않겠지만 점진적인 변화의 출발로 보았던 것이다.그러나 이번 국감자료를 보면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공공기관 이전은 취지가 무색해질 정도로 상황이 나빠졌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으로 지역으로 주민등록을 이전했던 수요가 2018년부터 슬그머니 다시 수도권으로 주소를 다시 옮긴 것으로 분석된다. 공공기관의 순이동자가 2018년부터 전입자보다 전출자가 더 많아진 것이 이를 증명한다.주거와 교통 등 정주여건이 개선되지 않은 것이 직접적 원인일 수 있으나 정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가 부족한 것도 이유가 된다.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의 인구는 작년말 기준으로 이미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 정부의 강력한 지방이전 드라이브 정책이 없으면 공들여 시작한 혁신도시 사업은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사업의 조속한 시행이 필요하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뒷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다.

2020-10-06

희생자 아들, 대통령에 편지… 답장이 궁금하다

북한군에 의해 무참히 사살되고 시신까지 훼손당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고등학교 2년 아들 이모 군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쓴 자필 편지가 민심을 울리고 있다. 희생자의 형 이래진 씨가 공개한 편지에서 이 군은 대통령을 향해 위기에 처한 아버지를 나라가 왜 구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섣불리 ‘월북자’라고 규정한 책임을 묻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이 처절한 편지에 어떤 답변을 내놓을 것인지가 관심사다. 편지에서 이 군은 “수영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는 저희 아빠가, 180cm의 키에 68kg밖에 되지 않는 마른 체격의 아빠가 38km의 거리를 그것도 조류를 거슬러 갔다는 것이 진정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다”고 썼다. 이어서 “(아버지는) 내가 다니는 학교에 와서 직업 소개를 하실 정도로 자부심이 높았다”면서 군 당국의 월북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어린 동생은 며칠 후 집에 가면 선물을 사준다고 하셨기에 아빠 오기만을 기다리며 매일 밤 아빠 사진을 꼭 쥐고 잠든다”는 대목은 가슴을 에게 한다. 이 군의 편지는 “총을 들고 있는 북한군이 이름과 고향 등의 인적사항을 묻는데 말을 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라는 의문도 표시하고 있다.이 군의 편지는 “시신조차 찾지 못하는 상황을 누가 만들었으며 아빠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할 때 이 나라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왜 아빠를 지키지 못했는지 묻고 싶다”며 “저와 엄마, 동생이 삶을 비관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아빠의 명예를 돌려달라”고 호소하고 있다.이 군의 편지는 정부 당국의 그 어떤 발표보다도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는 평가마저 나온다.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정권은 우리 국민을 구할 생각보다는 남북관계의 악화를 더 염려한 나머지 희생자를 ‘월북자’로 몰아가기로 짜 맞춘 듯하다는 것이 국민의 합리적인 의심이다. 소각돼 없어진 시신을 찾는다며 불가능한 남북 공동조사를 핑계로 시간만 끌고 있는 정부·여당의 행태가 가관이다. 무슨 죄로 저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아비를 잃고, ‘월북자’ 자식이라는 불명예 오명까지 뒤집어써야 하는지 참으로 갑갑한 노릇이다.

2020-10-06

부동(不動)의 바다가 그리운 날… 창녕 관룡사(觀龍寺)

가을이면 억새밭이 장관인 화왕산, 그 어디쯤에 관룡사라는 사찰이 있다. 정확하게는 화왕산 동쪽, 창녕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관룡산 품에 안겨 있다.옥천 저수지를 지나고 큰 벚나무 우거진 산길을 오르면 주차된 차들로 인기를 실감하게 된다. 가을이면 오르내리는 차들과 하산하는 사람들로 마음 비우는 과정을 생략한 채 관룡사를 맞아야 한다는 게 유일한 흠이다.작은 주차장 맞은편으로 돌계단이 있지만 사람들은 잘 닦여진 큰길을 따라 오르내린다. 돌계단 위에는 문 없는 돌담 출구 홀로 혼잡함에서 벗어나, 소박한 자태로 서 있다. 붉은 꽃무릇이 절정인, 이 운치 있는 산문이 일주문을 대신하는 것일까. 서서히 출구가 드러나면서 나는 관룡사를 사랑할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히고 말았다.낯설지 않은 속삭임들이 서성이는 대나무 숲길, 그 끝에는 꽃무릇이 환하게 햇살에 타오르고 있다. 저곳이 극락정토가 아니라면 무엇이랴. 더 이상 등산객들의 소란함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오로지 길에 빠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근거림으로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하지만 길은 경내가 아닌 또 다른 주차장과 화장실이 있는 절 바깥으로 이어져 있었다. 관룡사의 주된 진입로인 듯한 어수선한 공간 앞에 섰을 때야 걸어온 길을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었다.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오색연등이 터널을 이루는 계단길을 올라 천왕문으로 들어선다.관룡사는 신라 진평왕 5년(583년) 증법국사가 창건한 절이다. 신라 8대 사찰의 하나로 이름을 떨쳤으며, 원효대사가 제자 1천여 명을 데리고 화엄경을 설법한 곳이라고 한다. 증법국사가 절을 지을 때 화왕산 위에 있는 세 개 연못에서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관룡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적당한 크기의 전각들이 관룡산을 배경으로 흐트러짐 없이 조화롭다. 절의 기운은 깊고 안정적이다. 대충 둘러보기에는 아쉬울 만큼 정감가는 사찰이다. 뒷산의 웅장한 바위절벽과 절을 둘러싼 노송들, 짜임새 있게 배치된 전각과 이름표를 단 국화분 시주들, 절은 가을의 기도로 충만하다.웅장하지 않으면서 연륜 깊고 내실 있어 보이는 아름다운 절이다. 관광지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큰 사찰과 달리 안온한 정겨움이 흐른다. 사람 많은 대웅전을 피해 원음각 측면에 있는 약사전부터 향한다. 작은 전각에 어울리는 고려 양식의 아담한 삼층석탑이 국화분에 둘러싸여 약사전을 지키고 있다. 보물 제 146호 약사전은 관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법당 안에 모셔진 석조여래좌상도 보물 제 519호이다.법당 안에서 나올 줄 모르는 불자 한 분의 기도가 참으로 절절해 보인다. 언제나 약사전의 기도는 마음이 쓰이는 법이라 나도 바깥에서 합장만 한 후 대웅전으로 향한다. 결 고운 가을햇살이 배를 깔고 누운 대웅전 뜰과 앞마당에는 국화꽃들이 때를 기다리고 있다. 국화꽃이 일제히 개화를 하면 관룡사의 가을은 절정에 이르리라.보물 제 212호인 대웅전 안에도 보물 제 1730호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보물 제 1816호 관음보살 벽화가 봉안되어 있다는데 법당은 내부 수리 중이다. 지그시 아래로 눈을 내리뜬 삼존불이 제 자리를 잃고 측면에 앉아 계신다. 참배자들이 많아 나는 법당문 밖에서 작품 대하듯 부처님을 감상한다. 여느 부처님보다 더 과묵해 보이는 부처님 때문인지 절은 많은 보물과 사람들 속에서도 들뜸 없이 침착하다.남편과 나는 응진전에서 백팔배를 시작한다. 하나 뿐인 좌복을 남편이 내게 양보한 탓에, 딱딱한 마룻바닥에 스칠 남편의 무릎이 자꾸만 신경 쓰인다. 때문에 정성들여 백팔 배를 올리는 남편의 모습이 유난히 애틋하고 시리다. 하지만 백팔배를 하고나면 촉촉이 가슴 젖을 수 있는 것도 모두 부처님의 공덕이다.우리는 서둘러 용선대로 향한다. 전망 좋은 바위, 연꽃모양의 대좌 위에 보물 제 295호 석조여래좌상이 동쪽을 바라보고 계신다. 이곳에서도 어느 불자의 낮은 기도가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었다. 부처님의 시선 어느 즈음에, 소나무 숲에 싸인 관룡사가 보인다. 용선대 여래좌상이 절을 지켜주는, 든든하고 평화로운 보금자리임이 드러난다.조낭희수필가잠시 나무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감탄사를 뿜어내는 내 눈에 명상 중인 부부가 보인다. 남쪽으로 난 바위 절벽 위에서 두 눈을 감고 좌선 중이다. 당당히 햇살에 얼굴을 노출한 채 명상에 잠긴 두 사람의 모습이 서늘하도록 아름답다. 우주의 근원, 참된 자아를 찾고 있는 구릿빛 얼굴에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그들만의 자유가 어려 있다.서둘러 내려오는 발걸음에 무언가 허전함이 실린다. 척추를 꼿꼿이 세우고 좌선 중인 그들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고 함께 걷는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서 맛볼 수 없는 깊고 은밀한 침묵의 기쁨을 나누는 부부, 얼핏 약사전의 여래좌상을 닮은 것 같다.어둠 속에서도 목이 마르지 않는 지혜의 바다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손짓을 한다. 나는 다만 용기를 내지 못하거나 그 언저리를 서성대다 돌아서기를 반복한다. 부동의 자세로 떠 있는 바다, 그 바다가 그립다.

2020-10-05

인간과 비인간, 진실과 거짓의 경계

1982년 개봉 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에는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운 복제인간 리플리컨트가 등장한다. 영화 속 배경은 핵전쟁 이후 혼돈과 무질서로 휩싸인 2019년이다. 인간보다 뛰어난 신체적 특성과 인공지능을 탑재한 리플리컨트는 외형적으로 인간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우주식민지 개척을 위해 생산된 리플리컨트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지구에 잠입한다. 이들이 인간의 사회 속으로 스며들었을 때 이들을 색출해 제거하는 임무를 담당하는 직업이 바로 블레이드 러너다. 생물학적 외형과 인간과 같은 혹은 그 보다 우수한 지적 체계를 가진 이들을 구분하는 방법은 인류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 중 하나였던 고전적인 분류형태를 벗어난다.인간의 필요에 의해 인간보다 우수한 신체적 능력을 가지고 만들어진 이들을 분류할 수 있는 기준은 ‘기억’이다. 수명이 4년으로 제한된 이들에게 인간과 같은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식된 가짜 기억인가 아닌가를 통해 이들을 분류한다. 이 분류 방법을 통해 이들은 제거된다. 리플리컨트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였다. 그들의 짊어져야할 노동의 무게와 처우의 개선이 아니라 인간과 같은 수명을 보장받기 위해 식민지 전투를 이탈해 지구로 잠입한 것이다. 이들이 제거되는 기준은 인간의 도덕적 기준과 인류에 끼치는 해악에 기준한 것이 아니라 오직 ‘기억’의 유무에 의해 분류되고 제거된다.2017년 개봉 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2049’는 30년 후를 다룬다. 2019년 이후에도 새로운 버전의 순종적인 리플리컨트들이 제작되고, 구모델을 제거하기 위해 더 우수한 버전의 리플리컨트들이 블레이드 러너라는 이름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30년이 지난 시간 동안에도 인간은 더욱 더 인간적이며 순종적인 리플리컨트들을 생산하고 제거하는 분류작업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이때도 분류기준은 ‘기억’이다. 그것이 비록 생산단계에서부터 이식된 기억일지라도 블레이드 러너는 그 기억의 차이를 통해 리플리컨트를 구분해 낸다.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리플리컨트를 통해 인간의 기준은 무엇인가를 물었다. 이식된 기억과 체험에 의해 축적된 기억의 차이가 용도를 다한 가전제품을 수거하듯이 제거될 수 있느냐의 질문이었다.드니 빌뇌브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는 인간과 더욱 더 구분이 어려워진,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복제인간을 제거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그 와중에 여자 리플리컨트의 유골이 발견되고 출산의 흔적을 찾아낸다. 이제 리플리컨트는 인간에 의해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단계에서 스스로가 종족을 생산할 수 있는 단계로 진입한 것이다. 이 때에도 인간과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가 바로 ‘기억’이다. 이식된 기억인가 체험을 통해 축적된 기억인가.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는 리플리컨트가 가진 기억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 한 번 더 혼란스럽게 흔든다. 기억의 실체를 찾아 2019년 리플리컨트와 함께 사라졌던 블레이드 러너를 찾아 금단의 영역으로 들어선다.1982년 리들리 스콧 감독이 ‘블레이드 러너’에서 던지고 남겨 뒀던 질문을 드니 빌뇌브 감독이 유려하게 이었다. 잇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한 발 더 들어가서 그곳에서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질문은 확장되고 깊어져 인간이라는 존재의 경계를 흐린다. 1982년 영화에서 성취했던 질문과 화려한 영상이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에서 더욱 더 압도한다. ‘나는 누구인가’ 만들어진 인간과 태어난 인간에서 만들고 태어난 인간이 뒤섞인다. 가짜 기억과 진짜 기억으로 분류되던 체계 속에서 진짜 기억임에도 자신의 기억이 아닌 만들어진 인간과, 태어 났음에도 만들어진 인간의 아이가 뒤섞인다.30년을 지나 만들어진 속편의 영화가 전편과 유기적으로 잘 엮이며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더욱 더 깊어지고 무거워졌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기준은 희미해지고, 분류를 통해 제거할 것인가 조화롭게 살 것인가를 선택할 영화 속 미래가 기대와 함께 두려움으로 다가온다./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

2020-10-05

탱자나무

어릴 때 동네 어귀에 살던 새순 오빠네 집은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둘렀다. 오래전이라 동네 오빠 이름은 맞는지 확신이 없지만 탱자 울타리의 가시는 눈에 선하다. 집에서 초등학교까지 가려면 삼십여 분이 걸렸다. 옆집 미정이를 집 앞에서 먼저 만나고, 순연이 집 앞에 가서 학교 가자고 큰소리로 외치면 얼굴이 유난히 하얗던 순연이는 책보를 가녀린 허리에 매고 달려 나왔다. 우리 셋은 서너 번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에 살았기에 학교 가는 길도, 하교 후에 짜개놀이, 숨바꼭질 같은 놀이도 같이했다.순연이 집 근처가 마을 어귀였다. 그 옆집 울타리엔 이맘때쯤 노르스름해진 탱자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가시가 많은 담장이지만 개구멍 하나 정도는 꼭 있다. 그 집엔 아들만 셋인 것으로 기억한다. 개구진 사내아이들이 지나다닌 길이겠지. 막내아들이 나보다 몇 살 위라 그나마 초등학교를 잠깐 같이 공유했기에 희미한 기억이라도 있는 것이다. 먹을게 흔치 않던 우리는 시고 쓰고 아주 조금은 단맛이 있는 탱자가 노래지면 몰래 따 먹기도 했다. 따려고 손이 닿는 곳에 것은 동작 빠른 언니 오빠들 차지였고 우린 돌멩이를 던져서 떨어뜨리려고 했다. 그러다 보면 돌이 가시 사이에 껴 있어 탱자는 다 떨어지고 겨울이면 돌만 남아 있기도 했다. 사실 따서 먹기보단 공처럼 던지고 놀기도 하고 소꿉놀이에 반찬이 되기도 했기에 여러모로 쏠쏠한 놀이도구였다.이제껏 내가 본 탱자나무는 낮은 키에 울타리로 선 것뿐이었다. 그런데 포항 덕동마을 옆 법성리에서 홀로 우뚝 선 어여쁜 탱자나무를 봤다. 가까이 가서 노란 탱자를 확인하기 전까진 믿기 어려웠다. 보니 탱자다. 어떻게 저렇게 키웠을까? 보경사 장독대 앞에 400년 된 탱자나무가 앉아 있다. 앉아 있다고 한 건 법성리 나무처럼 줄기를 늘씬하게 뽑아 올리지 않았단 말이다. 그 나무는 경상북도 보호수이다. 법성리 탱자나무도 멋진 자태로 보호수란 이름을 달 때까지 견뎌주길 기도했다./최순자(포항시 북구 용흥동)

2020-10-05

충동구매

박완서 단편집.쇼핑을 즐긴다. 눈으로 즐기는 걸 더 좋아하지만, 가끔 보기에 좋으면 그냥 사버린다. 볼펜, 수첩, 티셔츠. 사놓고 한 번도 쓰지 않은 것들이 많다. 예뻐서 사고 특이해서 탐이 난다. 그래서 문구점에 가서 한나절을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자주 가는 편집숍에는 엔틱한 소품이 많아서 주인장과 그 사연에 대해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한아름 결재하는 나를 보기도 한다.하지만 코로나19가 찾아온 이후로는 현장에 가서 무엇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조심스러워서 망설여진다. 책은 온라인 숍에서, 옷은 홈쇼핑에서 읽어보지도 못하고 입어보지도 않은 채 사야 한다. 쇼핑의 재미가 반으로 줄었다.물건뿐만 아니라 책도 충동구매를 한다. 신문에 광고를 보고, 라디오나 텔레비전에 책 소개하는 걸 보고 덜렁 주문해버린다. 요즈음엔 작가별로 한정판이 자주 나온다. 김소월이나 윤동주의 첫 책이 그때의 판본 그대로 인쇄되어 경성 우체국의 직인을 찍어서 보내오는 이벤트도 있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게 아니니 또 산다. 또 좋아하는 작가가 신간을 냈다는 이유로 내용도 보지 않고 사버리기도 한다.박완서의 단편집이 그랬다. 가격도 만만찮았는데 지금 아니면 못 살 것 같아서 저질렀다. 한정판이라는데 하면서. 다른 물건도 그렇지만, 책은 절판되는 경우가 많아서 다음에 사야지 하다가 놓친 책이 여러 권이다. 그래서 눈에 들어올 때 사야 한다.문제는 다 읽지 않는다는 점. 단행본이면 그날로 보았을 것을 방학 때 읽어야지, 주말에 봐야지, 미루다 몇 년이 흘렀다. 저렇게 묶여 있으니 차일피일 미루다 아직 못 읽은 상태다. 책꽂이를 볼 때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을 느낀다. 다른 곳에 갔으면 사랑받으며 읽혔을 것을. 내 욕심에 갇혀 책꽂이에서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기지개 한번 켜지 못했다.서늘한 가을이다. 볕 좋은 베란다에 오늘 하루 내어놓아야 겠다./이진아(포항시 남구 중앙로)

2020-10-05

니가 왜 거기서 나와

김은희씨의 텃밭에서 나온 호박.남편이 퇴직한지 9개월째다. 우리는 작은 텃밭을 함께 가꾸며 지낸다. 의기투합할 때도 있지만 가끔씩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토닥토닥 다투기도 한다. 둘 다 농사에는 젬병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잦다. 기쁨도 주고 실망도 주던 그동안의 우여곡절을 열거하자면 웃픈 사연이 많다.지난봄에 수박 모종 몇 포기를 사서 심었다. 모종만 사다 심으면 저절로 크는 줄 알았지만 경험자들은 순지르기를 잘해줘야 한다고 했다. 실한 수박을 위하여 열다섯 번째의 아들 줄기 아래로 순 자르기도 했다. 길고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수박과는 다른 검은 달덩이 같은 수박 하나가 달렸다. 검은빛 수박은 크고 튼실해 보였다. 그러나 막상 쪼개보니 속이 노란 것이 덜 익은 것인지 맛이 무맛이었다. 아까워서 껍질을 벗기고 속을 발라 장아찌를 담아보니 상큼하니 맛있었다.다른 한 포기에서는 약간 다른 잎과 줄기가 튼튼하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급기야는 오이 줄기를 침범해서 처음부터 제집이었던 양 타고 올라갔다. 분명히 수박 모종을 심었는데 출신을 알 수 없는 한 포기의 수박(?)은 곱고 하얀 꽃을 피웠다. 꽃이 떨어지자 호박을 닮은 것도 같고, 토종 오이를 닮은 것 같기도 한 것이 달렸다. 궁금해하던 우리에게 이웃 텃밭 아주머니가 식용 박이라고 했다. 박나물을 해먹으면 맛있다고 덧붙였다. 제일 큰 녀석을 나누어 주었다. 다른 하나는 남편의 지인에게 나누어 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수확으로 여러 사람이 입 호강을 했다.10호 태풍 하이선이 달려오던 날이 엄마의 첫 제사였다. 엄마가 박나물 좋아하시던 생각이 나서 하나는 친정으로 가져갔다. 태풍 때문에 못 온다고 생각했던 우리가 도착하니 모두 놀랐다. 거의 제사장만이 끝나가던 시간인데 올케언니는 완성된 무나물을 빼고 엄마의 막내딸이 가져온 박나물을 해서 올렸다. 비록 수박 모종에서 엉뚱하게 나왔지만 생전에 엄마가 좋아하시던 박나물로 올렸으니 왠지 뿌듯했다. 엄마는 태풍을 뚫고 오셔서 박나물을 맛있게 드셨을까?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하고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곳에서 아버지랑 편안하시라고, 우리는 모두 잘 있다고.태풍이 지나간 늦은 밤, 엄마를 가랑비 오는 대문 밖까지 배웅하고 들어오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김은희(포항시 남구 대이로)

2020-10-05

존재와 부재에 대한 사유

어촌 마을의 한적한 골목길은 존재와 부재에 대한 사유의 장소로 내가 즐겨 찾는 곳이다. 간혹 마주치는 할머니께 인사를 건네면 사진은 왜 찍냐고 물으신다. 나는 습관처럼 “보려구요”라고 대답한다.대부분의 할머니는 못 알아들으셨는지 알아들으시고도 관심 없으신지 “뭐 찍을 거 있다고….”하시곤 가시던 길을 가신다. 할머니의 전부인 그 터전에서 보고 또 보고 사유하려는 나의 존재는 그 할머니에게 무엇이며 또 나에게는 무엇일까? 끊임없는 사유의 늪은 그렇게 깊어간다. 그렇게 보고 또 보고 사유하며 관계 맺음하고 있노라면 그 대상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 나를 느낀다. 나의 사진 작업은 그렇게 보고 또 보고 그리고 또 보는 것이다.영암리는 포항시 남구 장기면의 작지 않은 어촌마을이다. 여느 어촌마을과 다름없이 한적하고 기다림이 을씨년스러운 빈집들이 드물지 않게 보인다.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과 떠난 사람들의 사연들이 겹겹이 쌓이고 있는 빈집이 공존하며 존재와 부재의 증명이 뒤엉켜 있다. 어촌 마을의 현실은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을 더 깊이 되돌아보게 한다.존재한다는 것은 기다림이다. 그리고 부재도 기다림이 증명한다. 우체통마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 영암리 어느 빈집 앞에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이경진(사진작가)

2020-10-05

공직자의 공상허언증

강희룡서예가진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말하는 것을 거짓말이라 한다. 영국의 정치가며 작가였던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거짓말의 종류를 그럴듯한 거짓말과 빌어먹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고 정리했다. 거짓말은 그 정도가 심해지면 허언증이라는 정신병에 이르며, 사실을 왜곡해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이 진실이라고 믿는 심리적 장애를 ‘공상허언증’이라 한다. 이 증세는 주로 타인에게 주목받기를 좋아하며 지나치게 높은 이상을 가지고 있다. 이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뇌가 스스로 기억을 조작하면서 거짓말의 범위가 확대되고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특히 이들은 거짓말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불안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부끄러움 또한 없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처럼 거짓말을 재미로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거짓말은 정치인과 제일 가깝다. 그 유형을 보면 흔한 거짓말로는 첫째로 후보자 출마 시 무분별한 공약남발로 인해 선거공약을 다 지키지 못했을 경우이다. 둘째로는 국가나 사회 등 공공이익을 위해 진실을 숨기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처칠은 불리한 전황을 숨기고 호도한다는 이유로 언론으로부터 거짓말쟁이라는 비평을 받았다. 그때 처칠은 ‘진실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거짓말로 보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는 세기의 명언을 남기면서 오히려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고,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처칠의 해학과 진심이 담긴 명언과 연설은 후에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다. 셋째로 착한 거짓말 또는 선의의 거짓말이다. 이것은 정치인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특히 의사가 환자의 마음을 안심시키기 위해 상황을 유리하게 설명하는 경우이다.마지막으로 추한 거짓말 즉 빌어먹을 거짓말(새빨간 거짓말)이다. 정치인이 개인이나 가족의 과오를 숨기거나 은폐하기 위해서 하는 거짓말로써, 선진국가에서는 통상 정치생명을 위협 받는 치명적인 일이다. 자신을 잘 보이게 하려는 거짓말은 허세와 허영을 심리적 바탕으로 하지만, 상대를 속이는 악의적인 거짓말은 사기에 해당된다.추미애 법무장관이 언론과 국회에서 27번이나 거짓말을 하였다한다. 보좌관에게 지원장교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아들휴가 연장 건을 조치하라는 카톡내용이 드러났는데도 검찰의 불기소처분을 근거로, 야당과 보수언론의 거짓말이 명백히 밝혀졌다고 날을 세우고 있다. 또한 자신이 보좌관에게 아들 부대 지원 장교 연락처를 전달한 것은 지시라고 볼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상하리만치 한국은 공직자들의 거짓말 범죄가 많고, 그 수도 증가하는 추세이며 죄질에 부끄러움을 못 느끼는 공상허언증 환자가 많다는 것이다. ‘당신은 사람들을 계속 속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을 잠시 속일 수는 있을 것이나, 모든 사람들을 계속해서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다.’ 새겨야 할 에이브러햄 링컨의 명언이다.

2020-10-05

성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첫걸음

박은미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실장1919년 국제노동기구(ILO)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선언했고, 노동자들은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없이 동일가치노동에 동일보수를 받도록 규정했다. 성별 동등한 임금을 보장하고 남성보다 열악하지 않은 근로조건을 여성에게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 성별 임금격차는 2018년 37.1%, 2019년 34.1%로 약간씩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그 격차가 30.0% 이상 불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성별 임금격차는 오래전부터 두드러진 현상이며, 그 격차 수준도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경북지역은 2018년 임금근로자 중에서 여성 월평균 임금이 170만4천원으로 남성 월평균 임금 295만3천원의 57.7% 수준에 머물고 있다(통계청, 2018). 경북지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의하면,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이 53.0%, 남성경제활동참가율은 75.5%로 남성에 비해 여성이 22.5% 낮아 성별 격차가 큰 것으로 분석됐다(통계청, 2019).한편, 정부는 노동시장 내 성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여성노동정책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노동정책에서 제시한 부분은 저출생과 여성인력 활용을 위한 기반마련에만 머물고 있다. 2019년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촉진 계획에 의하면, 재직여성 등의 경력단절 예방, 경력단절여성 재취업 활성화, 보육·돌봄 인프라 강화, 일·가정 양립 환경 조성 및 협력체계 구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경력단절여성이 가질 수 있는 일자리가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로 양산되면서도 산업별, 직종별 등에 관한 차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성별 임금격차에 대한 보다 전반적이고 깊이 있는 이해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노동소득 양극화를 해소하고 저임금노동자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 ‘최저임금법’이 제정되고 ‘최저임금위원회’를 통해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성별 임금격차 해소에 관한 공감과 필요성을 제시하려면, 먼저 성평등 임금공시제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서울시의 경우 2019년에 국내 최초로 ‘성평등 임금공시제’를 시행해 임금격차 개선에 적극적으로 추진했다.투자 출연기관에서부터 시행해서 공공부문의 성별 임금격차를 개선하고, 성별에 따른 고용기회와 차별을 해결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해외 사례의 경우는 영국, 오스트리아, 호주 등에서 성별 임금격차 공시 및 임금 정보 결과를 논의했다.예를 들어, 영국 250명 이상 사업장은 ‘2010년 평등법’ 제78조 젠더 임금격차정보와 2017년 시행령 규정에 근거하여 젠더 임금격차가 공시되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2011년에 개정된 평등대우법제 11조에 따라 일정규모 이상의 근로자를 상시 고용하는 기업에게 2년마다 임금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이젠 성별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임금 공시제도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에 있으며, 구성항목, 공개방식, 적용대상, 공시 주기 및 시행시점 등에 관한 이해당사자 간의 합리적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2020-10-05

정의(正義) : 힘과 도덕의 불행한 관계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인류의 역사는 ‘정의를 둘러싼 갈등과 투쟁의 역사’이다. 이상주의자는 ‘정의가 힘’이라고 역설하지만 현실주의자는 ‘힘이 정의’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규범적 정의’와 현실에서 마주하는 ‘경험적 정의’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권력정치에서는 ‘힘을 가진 권력이 도덕을 외면’하거나, ‘권력이 발휘하는 힘을 정의로 포장’하기 때문이다.정의란 ‘힘으로 상징되는 권력’과 ‘도덕으로 대표되는 철학’이 대결한 결과의 산물이다. 파스칼(B. Pascal)은 힘과 정의의 관계에 대해서 “힘이 없는 정의는 무능이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따라서 정의와 힘은 함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권력의 획득·유지·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현실정치에서 ‘권력의 힘으로 정의(定義)하는 정의(正義)’는 누구나 공감하는 ‘보편적 정의’와는 다르다.그렇다면 문재인 정권이 추구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그들의 정의는 ‘힘과 진영논리를 앞세운 편의적·선택적 정의’이다. 국민을 편 가르고 권력의 힘으로 내편만 유리하게 적용하는 ‘외눈박이 정의’다.그들은 소피스트(sophist) 철학자 트라시마코스(Thrasymachus)의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궤변을 추종하고 있다. 약자를 외면하고 공정성을 상실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샌델(M. Sandel)의 지적처럼 “정의란 공동선의 추구”이며 “정의의 본질은 보편성과 공평무사(公平無私)”에 있다.문 정권이 ‘압도적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의의 ‘이중성과 폭력성’도 심각하다. 정의를 말하면서 불의를 자행하고, ‘을’의 편에 서겠다면서 ‘갑질’하는 이율배반이 ‘입진보’의 정의다.정의를 담당하는 정의부(법무부)장관들, 즉 조국 딸의 입시비리와 추미애 아들의 황제휴가, 그리고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등 권력의 특권과 반칙을 수사하던 검찰총장을 허수아비로 만든 사람들도 바로 그들이다.힘을 가진 정치권력이 도덕성을 상실하여 자신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고, 어용언론·어용교수들을 동원하여 불의를 정당화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정치적 폭력’이다.따라서 진보정권의 선택적·폭력적 정의는 보편성·공정성을 지닌 진정한 정의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정의에 대한 성찰이다. 대통령은 ‘진보의 정의’가 ‘보편적 정의’와 다름을 인정하고 독선과 아집을 버려야 한다. 하지만 권력의 속성상 ‘힘으로 정의를 포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의로운 힘’이 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결국 정의를 위한 ‘힘과 도덕의 동행’ 여부는 ‘깨어있는 시민들’에게 달려있다. 민주주의에서 정치권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가진 시민의 힘, 즉 여론이다. ‘정의의 심판자’로서 시민은 ‘도덕성을 상실한 권력’이 힘으로 정의를 훼손·변질시키려 할 때 결코 좌시해서는 안 된다. 시민은 ‘권력의 조작대상’이 아니라 ‘권력의 주체’임을 행동으로 증명함으로써 정의를 수호할 수 있다.

2020-10-05

대한제국 칙령 반포 120주년 맞는 독도

매년 10월 25일은 독도의 날이다. 독도가 우리 고유의 땅임을 만천하에 알리고 이를 기념하는 날이다. 특히 올해는 1900년 10월 25일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 칙령 41호를 통해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발표한 지 120주년 되는 해여서 독도의 날 의미가 더욱 돋보인다.10월 25일이 독도의 날인지는 대체로 알려져 있지만 10월이 독도의 달인지는 아직 모르는 사람이 많다. 2005년 6월 9일 경북도의회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맞서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리고자 10월을 독도의 달로 지정한 조례를 통과시켰다.이달만큼은 공무를 위한 일본 방문을 규제할 수 있도록 조례 내용도 고쳐 만들었다. 경북도의회는 조례 제정 다음해인 2006년 독도 현지에서 정례회를 개최해 독도가 행정구역상 대한민국 경상북도 땅임을 확인시키기도 했다.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해마다 되풀이 되고 있다. 시네마현은 2005년 3월 다케시마의 날로 정한 조례를 가결해 독도에 대한 영유권 야욕을 가속화했다. 일본 정부는 검정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영토라는 왜곡된 내용을 수록하고, 국가 홈페이지에도 독도 영유권 억지 주장을 게시했다.독도는 국제법상으로나 역사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우리의 영토다. 1145년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에 신라 지증왕 13년 이사부가 우산국(울릉도)을 점령한 역사적 기록이 있어 독도는 삼국시대로부터 우리의 역사로 시작한다. 1454년 세종실록에도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다.고종 황제 칙령 41호 발표는 독도가 우리의 영토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는 역사적 사실이다. 12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이런 역사적 사실 바탕 위에 역사적 인식의 폭을 더 넓혀가야 한다. 특히 학교 교육을 통해 학생에게 올바른 역사적 진실을 전달하고 이해시키며 대외적으로도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천명해나가야 할 것이다.경북도가 울릉군과 국립중앙도서관과 함께 디지털 독도 아카이브 협약식을 갖는 등 독도의 달을 맞아 각종 행사를 벌인다. 독도의 달을 맞아 경북도가 계획한 독도관련 세미나나 전시회 등이 열리는 곳을 한번쯤 찾아가 보는 것도 좋다. 독도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키워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2020-10-05

국민의힘, 국감서 수권(受權) 능력 입증해야

7일부터 시작되는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는 제1야당 국민의힘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시험대이자 기회다. 특히 올해 국감은 ‘코로나19 뉴노멀’ 시대에 맞춰 대폭 축소되고 감사장 풍경도 달라질 전망이다. 야당으로서는 집권당의 실정을 파헤치고 대안을 내놓기에 오히려 심각한 악조건이 형성된 셈이다. 내년 보궐선거와 내후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이 과연 수권(受權) 능력이 있는지를 입증할 마지막 기회다.이번 국감 정국을 관통할 대형이슈는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거짓말 논란, 공수처 등을 둘러싼 논쟁 등이다. 각 당의 정략을 중심으로 치열한 공방이 펼쳐질 전망이다. 정부·여당은 도심 한복판에 소위 ‘산성(山城)’으로 불리는 난공불락의 바리케이드를 치고 불심검문을 자행할 정도로 정치집회에 한껏 예민해진 상태다. 국감은 민심을 표출할 유일한 무대다.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문제는 정기국회의 판을 뒤흔들 메가톤급 뇌관이다. 민주당이 제1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하고 공수처 수사단을 이념 집단화할 목적으로 법 개정에 나선 상황에서 야당의 활약은 대단히 중요하다. 기획재정위원회에서는 4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과 국가부채 비율 등이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카톡 문자’로 촉발된 포털사이트 외압 논란이 주요 쟁점이다.그러나 국민의힘이 정부·여당의 실정(失政)에 대해 무분별한 폭로전에 함몰된 나머지 유권자의 감성만 자극하려고 한다면 집권 세력의 작전에 말려드는 것이다. 국민은 야권의 구태의연한 발목잡기, 티 뜯기식 야당 놀음에 질려 있다. 정권의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국정 운영에 넌더리를 내고 있기는 하지만 제1야당에서 신실한 대안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이렇다 할 대권후보조차 부상시키지 못하고 있는 국민의힘은 이번 국감이 수권정당으로서의 능력을 평가받는 마지막 기회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야권의 국정비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가슴속에 “그래서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하는 물음표를 달고 있는 민심을 잠시도 오독(誤讀)해선 안 된다.

2020-10-05

불법사금융 ‘대리입금’ 주의보

불법사금융이자 고금리불법사채의 한 형식인 대리입금은 콘서트 티켓이나 게임 비용 등이 필요한 청소년을 유인해 소액을 단기로 빌려준 뒤 고액 이자를 챙기는 방식이다. 대리입금 업자들은 SNS 등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접근해 1만~30만원 내외의 소액을 2~7일간 단기 대여해주는 방식으로 영업하고 있다.친근한 지인 간의 거래처럼 보이게 하려고‘이자’라는 말 대신 ‘수고비’나 ‘사례비’라는 용어를 쓰고, ‘연체료’라는 단어 대신 ‘지각비’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업자들은 수고비로 대출금의 20~50%를 요구하고, 약정기간을 넘기면 시간당 1천~1만원의 지각비를 부과한다.현재 대부업법과 이자제한법에는 법정 최고금리가 각각 연 27.9%, 연 25%로 명시돼 있지만, 시행령에서 최고금리가 모두 연 24%를 넘지 못하도록 돼 있어 법정 최고 이자율 상한은 연 24%이며, 이보다 높은 이자를 받으면 불법이다. 대리입금의 수고비와 지각비를 이자율로 계산했을 경우 약 20~50% 수준이며, 빌리는 돈이 소액이라 체감하기 어려울 뿐 실질적으로는 연 1천%에 달하는 곳도 있다.대리입금 피해 사례를 보면, 청소년 B군은 3일 동안 10만원을 빌리고 14만원을 상환했는데도 36시간 연체에 대한 지각비 5만원(시간당 1500원)을 내라는 협박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이들 업자들은 신분 확인을 빌미로 가족이나 친구의 연락처 등을 요구하고 있어 개인정보 유출, 불법 추심 등 2차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대리입금은 코로나19로 호주머니가 텅 빈 가정의 청소년들을 유혹해 경제파탄에 이르게 하는 색깔 고운 독버섯이니 절대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