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어지럽히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강력한 태풍 14호 ‘찬투’가 남해와 제주에 호우를 뿌리고 방향을 틀어 일본 쪽으로 가버린 덕분에 한가위를 맑은 얼굴로 맞이하게 된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기쁜 마음을 안고 고향을 찾은 추석 발길에 묻어난 것인지 코로나바이러스는 신규확진자를 하루 3천200명 이상으로 폭증시켜 최악 상태를 기록하고 그 ‘후폭풍’이 염려되어 우리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풍요로운 가을을 만끽하며 오랜만에 가족 친지 형제자매 모두 모여 맛있는 음식과 과일을 나눠 먹으며 정다운 얘기 나누며 서로의 정을 느끼고, 마을에서는 풍성한 잔치를 벌였던 우리 민족의 연중 으뜸 명절인 한가위가 이렇듯 의미를 잃고 아름다운 전통풍속을 퇴색시키는 것은 아닐까 염려된다.
비록 거리 두기가 4단계로 격상되었지만 추석 연휴기간 동안 경주 보문관광단지를 찾은 관광객이 7만 명을 넘었고 안동 문화단지도 약 5천 명이 찾았으며 제주는 25만 명이 북적였다고 한다. 호텔도 75%에 육박하는 숙박점유율을 보여 집안에서만 즐기던 추석 명절의 풍습이 관광으로 바뀌고 명절 대화에도 투자나 주식 얘기가 등장하고, 친척을 찾기보다는 재테크 기회로 활용하여 부동산 현장을 둘러보는 ‘임장(臨場)’을 다녀오기도 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우리의 추석 풍경도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추석 연휴 기간에 각 지자체의 5대 범죄 발생 건수가 많이 줄었고 교통사고도 대폭 감소하여 평온한 치안상태를 유지했다니 참으로 다행이다.
예년 이맘때쯤이면 씨름 대회와 동네 줄다리기 등 민속놀이로 흥청대었는데 올해는 충남 태안에서 열린 ‘추석 장사씨름대회’에서 여자장사 탄생 소식이 전해져올 뿐이다. 부녀자들이 함께 모여 벌이던 길쌈놀이도, 닭싸움도 소싸움도, 또 마을 공터와 학교 마당에서 즐기던 차전놀이와 흥겨운 강강술래도 기억 속에 아련하다. 이제는 거의 도심의 빌딩 숲속에서 살다 보니 이러한 옛 풍습이 사라지고 있음이 안타깝다. 영화 ‘미나리’가 133만명의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니 이번 추석에도 가족끼리의 만남으로 만족했나 보다.
올 추석은 또 ‘치매극복의 날’이었다. 연로한 부모님이 계시는 집안에는 자식들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해 드리고 외로우실 생활에 효도의 마음으로 찾아뵈었을 것이다. 다행히 요양병원·시설 등에 모셔두었을 경우 추석 기간 2주 동안은 거리 두기와는 무관하게 방문 면회를 허용하였고 예방접종 완료인 경우는 접촉 면회도 가능하도록 하였으니 웃는 얼굴에 따뜻한 마음으로 손도 잡아드리고 함께 할 수 있었다면 그것이 가족의 행복이며 진정한 추석 선물이다.
‘추석날 비 오면 흉년이 든다.’는 말이 있어 전국의 비 소식에 걱정이 되었지만 낮에 잠시 빗줄기가 보였을 뿐…. 보름달 맞으러 저녁에 영일대 바닷가로 나갔더니 수평선 구름 아래로 황금빛을 뿌리던 둥근 달이 이내 하늘 높이 떠올랐다. 우리 국민 모두 한가위 명절을 잘 쇠기를 바라며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풍요롭고 훈훈한 가족의 행복도 마음속으로 빌어보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를 되뇌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