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태평양 건너 어디선가 본 듯한

장규열 한동대 교수미국 대선이 막을 내렸다. 시민들은 선거로 참여하며 민주적 결정과정에 할 일을 다 하였다. 다만, 승자와 패자를 최종 가늠하기에 법적이며 정치적인 판단이 필요할 모양이다. 마지막 진통이 민주주의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미 가라앉는 듯한 미국의 국격에 또 한 차례 흠집을 내는 결과를 빚지 않기를 기대할 뿐이다. 험한 대선의 길목에서 주목받는 사람이 있다.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 여성이자 흑인이며 아시아와 아프리카 혈통을 가지고 있어 바뀌어 가는 미국의 저변 시민 인구층에 넓은 지지세와 소구력을 확장하였다. 마흔다섯 대통령을 배출해온 미국에서 최초로 그런 배경을 가진 부통령이 될 모양이다.미국에서 모든 여성이 투표에 참여하게 된 것은 놀랍게도 1965년이었다. 1920년에 여성참정권이 시행되었지만, 남부 흑인여성들에게는 거친 인종차별과 함께 참정권이 제한되었다. 해리스가 성적, 인종적, 문화적 차별의 벽을 딛고 오늘의 자리에 오른 일은 가히 역사적이다. 그가 ‘이것이 처음이지만 마지막은 아니어야 한다’고 말한 것도 미국이 나아가는 길에 주시해야 할 부분이다. 선거의 승리를 놓고 CNN 앵커 밴 존스(Van Jones)는 ‘이제야 아빠 노릇하는 게 쉬워졌다’며 눈물을 흘렸다. 백인경찰이 흑인남성의 목을 눌러 숨지게 했던 조지플로이드(George Floyd)사건이 있었다. 공분을 자아냈던 한마디 절규 ‘숨쉴 수 없다(I can’t breathe.)’는 그 뿐 아니라 모든 흑인들이 날마다 겪는 차별과 혐오였다며 이제야 벗어날 가능성이 보인다고 하였다.미국에서 아시안은 누구인가. 인도 출신 어머니를 둔 해리스 덕에 아시안아메리칸에 대한 관심도 높아갈 터이다. 아시안들은 상대적으로 명석하고 출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로 여겨진다. 미국 주류사회를 겨냥하며 살아가는 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우리정부는 해외교포 정책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가지고 교민들이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유지하며 일등시민으로 살아가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해리스가 말하는 ‘다음 기회’에는 한국 출신 누군가가 반드시 성공의 닻을 올릴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여야 한다.미국이 바뀌어 간다. 밖에서 보아도 부끄러울 만큼 분열과 단절의 벽을 쌓아 올리던 미국이 조금씩 변할 모양이다. 실제로 바뀌려면 이긴 사람들이 잘 해야 한다. 졌다는 일로만도 상처가 깊을 ‘절반의 미국’에게 상생과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바이든 당선자가 선언했듯이 ‘우리가 서로 반대편에 서 있었지만 한 번도 적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살려내야 한다.우리는 어떤가. 나라 안에 보이는 분열과 차별, 단절과 균열을 어찌해야 하는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한다 한들, 하나가 되지 못하는 국민은 좋은 나라를 만들 방법이 없다. 우리가 겪었던 유사한 경험을 태평양 건너에서 다시 목격하는 오늘, 우리는 우리의 다짐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

2020-11-11

국민의힘 공수처 대응, ‘중구난방’ 양상 한심

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을 위한 처장 후보 결정 과정이 가시화되고 있다. 후보 추천위원들은 10여 명의 공수처장 후보를 추천했다. 국민의힘 몫 추천위원들은 김경수·강찬우·석동현·손기호 변호사 검찰 출신 4명의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이 중 손기호 변호사가 돌연 사의를 밝혔고, 석동현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수처는 태어나선 안 될 괴물기관”이라고 밝혔다. 이런 중구난방식 대응은 여권의 일당 독주 명분만 보탤 뿐이다. 더불어민주당 몫 추천위원 2명은 판사 출신인 권동주·전종민 변호사를 추천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김진욱 헌재 선임연구관과 이건리 국민권익위 부패방지부위원장, 한명관 전 서울동부지검장 등을 추천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전현정 변호사,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최운식 변호사를 각각 추천했다.두말할 필요도 없이 공수처장 추천 및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중립성(中立性)이다. 추천된 후보들을 놓고 추천위원회는 물론, 정치권과 언론이 철두철미한 검증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진작부터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서로 의심을 덕지덕지 쌓아놓고 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대해 시간만 끌다가 공수처법을 유야무야 무효화시키려는 저의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그래서 11월 중이라는 시한을 제시하며 압박 전술을 휘두른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여차하면 단독으로 공수처를 무소불위의 대통령과 여당 친위대로 꾸미려고 한다고 의심한다. 실제로 그런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언질은 수두룩하다.여당은 공수처를 윤석열의 검찰을 무력화시키는 무기로, 문재인 정권의 안전핀으로 쓸 요량을 감추지 않는다. 어쨌든 국민의힘은 지난해 공수처법을 막지 못했다. 여당이 무리하게 법을 바꾸어서 야욕을 실현할 빌미를 국민의힘이 제공해서는 안 된다. 치밀한 전략과 합법적인 방법으로 흑심을 끝까지 저지하는 게 올바른 전략이다. 지금처럼 민주당이 단독으로 몰고 갈 환경을 제공하는 일체의 언행은 치명적인 패착이 될 수 있다. 내용을 세세히 모르는 국민을 선동하는 일에 누가 더 능한가. 슬기로운 대처가 절실한 시점이다. 명분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2020-11-11

하이퍼루프

하이퍼루프는 영화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로 유명한 엘론 머스크 테슬라 모터스 최고경영자가 2013년 여름에 공개한 초고속 진공튜브 캡슐열차를 말한다.하이퍼루프는 공기 마찰이 없는 진공튜브와 시속 1천300km로 달리는 캡슐형 열차로 구성된다. 열차는 가압과 공기역학적 양력이 작용하는 공기쿠션으로 유지되며, 열차는 튜브 안쪽을 미끄러지듯 달린다.하이퍼루프는 1천500km 정도 거리의 교통량이 많은 도시에 적합하다. 당시 앨런 머스크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30분이면 주파할 수 있다”며 초고속 진공열차 하이퍼루프 프로젝트 구현 계획을 발표했다. 구상안에 따르면 이 초고속 열차는 일종의 ‘열차 총(Rail Gun)’ 개념으로 진공상태와 다를 바 없는 튜브 속에서 열차를 한 량씩 발사하는 형식으로 가동한다. 거의 진공상태로 저항을 최소화해 최고 시속 약 1천220km까지 속도를 높여 달린다는 논리다. 이 열차가 현실화한다면 차로 최소 5시간 걸리는 서울-부산 구간 이동시간이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들어 불과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전국이 일일 통근권에 들게된다는 얘기다.꿈같은 최첨단 하이퍼루프 원천기술이 국내기술진에 의해 개발되고 있어 화제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11일 독자개발한 축소형 튜브 공력시험장치에서 하이퍼튜브 속도시험을 통해 진공상태에 가까운 0.001기압에서 시속 1천19km의 속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철도연은 지난 9월 아진공 상태에서 시속 714km의 속도를 기록한 바 있다. 거리제한으로 통근이나 통학할 수 없는 경계를 무너뜨릴 하이퍼루프 기술은 이 좁은 나라의 지역균형발전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1-11

이런 교사는 제발!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다른 학생에게 방해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잠이나 자!”어느 중학교 수업 시간에 교사가 학생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이 나오게 된 교실 상황이 어떨지는 어느 정도 그려진다. 그리고 오죽했으면 교사가 저런 말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 동시에 ‘무너진 교권 속 교사 명퇴자 증가’라는 기사가 오버랩되어 지나간다.최근 교육계 관련 뉴스 중 많이 나오는 내용 중 하나가 바로 교권(敎權) 이야기이다. 공통점은 교권 실추(붕괴, 추락)다. 안타깝게도 그 유형도 모욕, 명예훼손, 교육활동 부당 간섭, 상해, 폭행, 성추행, 성희롱 등 매우 다양하다. 우리 사회에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불변의 진리처럼 통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그래도 살맛 나는 세상이었다.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이상적인 내용이 아니었다. 작은 일에도 서로가 감사했으며, 그 감사함은 서로의 가슴에 더 큰 희망으로 자리했다. 희망은 불가능조차 가능으로 바꿔 놓았다. 신명 나는 세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임금 자리에는 권력형 대통령이, 스승 자리에는 생계형 교사가 자리했다. 그 결과 교육은 정치의 시녀가 되었으며, 우리 사회에는 희망이 사라졌다. 절망만 남은 교육은 출산 거부 운동을 불러일으켰다. 희망이 꺼지는 것에 비례하여 폐교 수도 늘고 있다.나라가 사라질 판인데도 정치인들은 상대 탓만 하고 있다. 낙하산 정치 교육 수장들은 교육을 더욱 정치에 굴복시키고 있지만, 교육 현장에 있는 그 누구도 교육 독립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대신 성과금과 교육 유공자 표창 이야기에 열을 올리기 바쁘다.지금 우리나라 교사들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분명 그들의 가슴에도 교사라는 사명감이 불타올랐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교사(敎師)! 비록 기간제 교사였지만, 필자는 필자의 이름에 처음으로 교사라는 호칭이 붙을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때의 기분은 법명이나 세례명을 받는 것보다 필자에겐 더 성스러웠다. 종교에서 새로운 이름을 받는 것은 지금까지의 잘못된 삶을 버리고 주어진 새 이름대로 새로운 삶을 살라는 뜻이다. 아직 턱없이 부족하지만, 필자도 필자의 스승께서 보여주시고 열어주신 교사다운 교사의 삶을 살기 위해 끝없이 노력 중이다. 한 나라의 미래를 창조하는 것은 교육이다. 그 교육을 책임질 사람은 바로 교사다. 교사가 바로 서야 교육도 바로 선다. 비록 암기 위주의 시험이지만, 교사라는 이름을 받을 사람을 뽑는 시험일이 다가오고 있다. 이번 시험부터라도 제발 교권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을 뽑기를 기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잠시 교권에 대한 의미를 인용한다.“넓은 의미의 교권은 (….) 교육권으로서의 교권에는 학생의 학습권, 학부모의 교육권, 교사의 교육권, 학교 설립자의 교육 관리권, 그리고 국가의 교육 감독권이 모두 포함된다.”그리고 “잠이나 자!”라고 말하는 이런 교사는 제발 뽑히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2020-11-11

전태일

김규종 경북대 교수“정말 하루하루가 못 견디게 괴로움의 연속이다. 아침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 하루 15시간을 칼질과 다리미질을 하며 지내야 하는 괴로움, 허리가 결리고 손바닥이 부르터 피가 나고, 손목과 다리가 조금도 쉬지 않고 아프니 정말 죽고 싶다.”1967년 3월 17일 전태일이 쓴 일기의 한 대목이다. 극심한 육체적 고통과 함께 그를 옥죈 것은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근로기준법과 업주들의 부당노동행위였다. 청계천에 있는 의류공장 보조 재단사와 재봉사로 일하던 전태일은 동료 여공들의 가혹한 노동조건과 부당해고에 맞선다. 그는 1969년 6월 평화시장에 노동운동조직 ‘바보회’를 결성한다. ‘바보회’는 1970년 9월 ‘삼동회’로 거듭나면서 노동운동의 거점이 된다.1970년 11월 13일 전태일과 ‘삼동회’ 회원들은 ‘근로기준법화형식’을 결행하려 한다. 평화시장 의료공장 업주들과 경찰이 이들의 시위를 저지하자 전태일은 온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지른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하는 구호를 외친 전태일은 병원으로 이송되나 끝내 절명한다. 그의 나이 스물두 살 때 일이다.전태일의 분신은 한국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일대 전환점이 되었으며, 노동자들의 실태를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부당하고 불의한 세상에 죽음으로 항거한 그의 투쟁은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1984)을 잉태하는 밑거름이 된다.“긴 공장의 밤, 시린 어깨 위로 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온다/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 시다의 언 손으로 장밋빛 헛된 꿈을 싹둑 잘라/ 미싱대에 올린다 끝도 없이 올린다/ 미싱을 타고 장군같이 미싱을 타고/ 갈라진 세상 하나로 연결하고 싶은 시다의 꿈”- ‘시다의 꿈’ 부분전태일이 분신한 지 15년 세월이 흘렀으되, 변하지 않는 노동조건과 생활고. 박노해는 “파리한 이마 위로 새벽별 빛난다”로 시를 맺으며 다가올 날들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는 신자유주의로 전환하여, 오늘날 상당수 노동자가 외주기업 하청 노동자로 전락한다. 그 결과 지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173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해마다 1천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죽음의 대열에 합류해야 하는 세상은 무너지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사람이 사람값을 온전하게 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재벌과 대기업을 위한 일회용품이 아니라, 세상을 구성하는 소중한 일원으로 수용될 때만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운 선진국 대열에 오를 것이다.전태일이 분신한 지 50년 세월이 흘렀다. 반세기 동안 우리가 이룩한 성취도 대단하지만, 그 뒤에서 소멸해간 숱한 생명과 인연과 관계를 생각할 때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 그것을 어린것들에게 넘겨주는 것이 우리의 시대적인 과제가 아닌가 한다.

2020-11-11

필요한 건 당신 근처에

빈티지 물건을 좋아한다. 공장에서 생산된 각 잡힌 새 상품보다 사람의 손을 타고 구겨진 것들에 더 매력을 느낀다. 연식이 오래된 물건을 만나면 너는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니, 하고 질문하고 싶어진다. 누군가 사용했던 물건이 시공간을 타고 이리저리 흘러 내 앞에 나타나는 일. 그건 일종의 운명적 만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스무 살 무렵에는 광장시장이며 동묘를 습관처럼 방문했고, 해외여행을 계획할 때면 벼룩시장에 들르는 코스도 빼놓지 않았다. 그곳에는 별별 것들이 다 있었다. 다양한 물건들은 편안하고 익숙한 감각과 함께 자신을 알아봐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멀쩡한 것들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 슬프기도 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이 태어나는 세계 속에서 오래된 물건만이 가지고 있는 분명한 매력이 있다고. 어쩌면 나 역시도 그런 존재가 아닐까 하는 감상에 빠지면서.중고물품을 피하는 사람 중에서는 모르는 이가 썼던 물건이라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게 만약 평생을 불운하게 살았던 사람의 접시면? 죽기 전에 입었던 코트면? 하지만 그런 것쯤은 내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인생에는 행운보다 불운이 더 자주 찾아오고 사람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니. 나는 중고서적을 자주 구입하는 편이다. 뻣뻣한 종이의 질감보다 누렇게 변색하여 버석버석한 느낌이 더 좋다. 떠오르는 생각을 적고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새 책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책을 읽다 문득 발견하게 되는 낙서도 어떤 설렘을 몰고 온다. 책장 귀퉁이의 고불고불한 글씨를 마주하며 손끝이 맞닿은 이의 막연한 얼굴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그런 내게 ‘당근마켓’의 등장은 정말이지 반가운 소식이었다. 매일같이 온라인으로 열리는 동네 벼룩시장이라니! 그야말로 인터넷 공화국다운 면모가 아닌가.다양한 중고거래 앱이 있지만, 그중에도 당근마켓은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으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낸다. 서비스 시작 5년 만에 월간 실 이용자 수 800만 명을 끌어모으며 현재 국내 중고거래 앱 중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의 이유로는 단연 거래의 편의성과 접근성을 들 수 있다.당근마켓은 ‘당신 근처의 마켓’을 줄인 말이다. 이용자가 사는 지역에서 앱을 접속해서 GPS 인증을 받으면 가까운 이웃과 소통할 수 있게끔 되어있다. 이들끼리 중고 물품을 사고팔 수 있으며 동네 생활에 대해 잡담을 나누고 숨은 맛집이나 편의시설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기능도 있다. 특히 당근마켓의 주목할 점은 거래의 지역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존의 온라인 중고 장터와의 확실한 차별성이 보인다. 집 근처의 이웃을 직접 만나서 거래하기 때문에 물건의 상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직거래 시스템은 중고 거래의 고질적 문제였던 사기 피해의 가능성을 현저히 낮췄다. 사용 방법도 간편하다. 가입하고 사진을 찍어서 올리면 끝이다. 그렇기에 뭐든 부담 없이 매물로 올릴 수 있다. 정말 이런 걸 산단 말이야? 하는 의구심이 들기 마련이지만, 정말 사는 사람이 있다. 그건 내가 보장할 수 있다.내가 처음으로 당근마켓에 판 물건은 머리핀이다.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나니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물건이었다. 평소였다면 어느 구석에 처박아놓거나 쓰레기장에 버렸을 것이다.나는 머리핀을 깨끗하게 닦은 뒤 사진을 찍어서 당근마켓에 올렸고 몇 시간 만에 거래하자는 연락이 왔다. 근처 지하철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잡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마스크로 가려진 얼굴 사이에서도 구매자의 모습은 한눈에 들어왔다.“저 혹시 당근…?” 쭈뼛쭈뼛 다가가니 “네. 당근….”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머리핀과 현금을 교환했다. 나는 그 돈으로 와인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 쓰지 않는 머리핀을 와인과 바꾸다니. 정말이지 만족스러운 교환의 경험이었다.과거의 나는 물건을 깨끗하게 쓰는 편이 아니었다. 어차피 소모품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질 좋고 튼튼한 상품을 사서 오랫동안 사용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절약이었다. 하지만 중고거래를 일상화하면서부터는 자연스럽게 내가 구입한 물건을 언젠가는 다른 누군가가 다시 쓸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내 습관에도 사소한 변화를 불러왔다. 내가 완전히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도 공유할 수 있다는 가치관이 정립되자 어떤 것이든 허투루 대하지 않게 되었다.누군가에겐 필요 없어진 것이 내겐 절실하게 필요할 때가 있다. 당근마켓은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기에도 좋다. 중고 상품의 메리트는 역시 저렴한 가격이다. 새 상품을 사는 것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필요한 것을 구입하는 이점을 누릴 수 있다. 이뿐 아니다. 거래를 하다 보면 이따금 사탕꾸러미나 ‘잘 사용하시길 바라요’ 하는 쪽지같이 달콤한 선물을 받기도 한다.그런 다정한 마음을 받으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다. 맞아, 우리는 근처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었지, 하는 당연한 사실이 떠오른다. 멀게만 느껴졌던 이들이 성큼 가깝게 다가오게 된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무엇보다 중고 거래는 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지속가능한 소비다. 우리는 현재 환경오염과 쓰레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다다르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환경문제는 실생활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창문을 열면 마주하는 미세먼지와 급격한 기후 변화는 인류가 지구에 발 디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경고문처럼 여겨진다. 미세플라스틱이 바다를 점령하고 해양생물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다큐멘터리를 보며 가슴 아파하는 와중에도 어디선가 쓰레기는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특히 SNS는 거대한 백화점이나 마찬가지다. 인스타그램에 전시된 인플루언서의 삶의 방식이나 유명 유튜버의 ‘쇼핑하울’은 매일같이 새로운 소비를 부추긴다. ‘이 물건이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카피는 우리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소비를 권장하는 사회는 소비 이후에 대해서는 절대 책임지지 않는다. 나를 설레게 했던 상품이 하루아침에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숨 쉬고 있다.실제로 당근마켓에서는 중고거래로 인해 누적 19만t에 달하는 온실가스 감소 효과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자원의 재순환으로 환경을 보호한 좋은 사례다. 서로가 서로의 주변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물건을 공유하는 것. 이런 행동은 이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타인이 사용했던 상품을 단순히 ‘헌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닌 ‘윤리적인 것’이라고 여기는 의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의 변화를 토대로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환경오염의 문제가 절실하게 다가오는 요즘, 우리는 우리의 일상적 소비에 관하여 골몰해 보아야 한다. 갈수록 소비는 편리해져 간다. 손가락 하나로도 값비싼 제품을 뚝딱 결제할 수 있다. 찰나의 순간에 내 몫의 거대한 물건을 떠안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늘 의식적으로 경계하며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의 틈새를 걸어가야 한다. 내가 행하는 소비가 합당한가. 이 욕망이 정말 내 것이 맞나. 날카롭게 질문을 던져보자. 필요한 건 항상 우리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2020-11-10

예술문화의 새로운 모색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 계절, 코로나19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게 물들어 갈까? 사회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침체된 나날 속에 몸과 마음의 푸른 멍처럼 여전히 침울의 일상을 허우적대고 있는 걸까? 아니면 환경이나 여건변화에 따른 이른바 ‘뉴노멀 시대’를 맞아 적응과 자구책으로 새로운 삶의 방편을 찾고 있다고나 해야 할까? 언제 끝날지도 모를 희대의 감염병에 노이로제처럼 시달리면서도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대응과 처세의 슬기를 발휘하는 듯하다.그 중 필자는 문화와 예술에 주목한다. 몸이 힘들고 지쳐가도 마음이 안정되고 평온해지면 평정심을 가질 수 있다. 불안과 조바심의 나날이지만, 정서적인 위안과 순화를 누릴 수 있는 문화생활을 통해 사람들은 적으나마 치유와 위무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시로 미술관을 찾거나 온라인 전시장엘 접속해 작품 감상과 해설을 들으며 어수선한 현실을 극복하는지도 모른다. 집중과 몰입의 시간 속에서 나름 잊을 건 잊고 살릴 건 살리는 성찰과 정리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그런 의미에서 지난 10월 말에 열린 다섯번째 ‘2020 포항호텔 아트페어’는 비교적 조용한 가운데 치뤄지면서 미약하나마 뉴노멀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으로 보여진다. 포항작가 뿐 아니라 타 지역 유수의 작가들이 참여해 코로나19 상황으로 종전의 호텔 객실을 갤러리로 활용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온·오프라인을 통해 작품과 시민들을 연결했다. 이러한 시도는 예기치 못한 난국을 마냥 피하고 포기하기 보다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과정을 만들어 나가는 현실적인 대안과 전환점으로 미술계를 지켜 나가려는 신선한 바람으로 여겨진다.정부의 방역 기준에 맞춰 작품들은 직접 보고 참여할 수 있어서 시민들의 전시, 문화향유 욕구에 숨통 같은 작용을 했다고나 할까? 겉모습만 보여주는 거울에 비해 속마음을 비춰주는 그림은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 미술을 가까이하고 문화예술을 누릴수록 여유로운 마음으로 윤택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예측불가한 미래와 비대면 시대에 직면해서 미술계도 새로운 변화와 지향점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미술작품도 IT기술을 접목해 아카이브적인 콘텐츠로 보급시켜 향수층을 늘리고 미술문화를 활성화시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전시장이나 작업실에서 기다리는 작품이 아닌, 새로운 차원의 콘텐츠를 스스로 기획, 생산하여 유투브나 전자게시판, SNS 등으로 전파, 활용하는 생활미술 작품으로 다변화시켜야 한다. 언택트 시대에 온택트(On Tact)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시민들에게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긍정적인 관점으로 예술작품의 융·복합을 통한 표현양식의 확장, 공동작업의 방향성, 탈모더니즘에 대한 해석의 다양화 등에 주안점을 두고 함께 느끼며 즐길 때 예술문화가 한결 활성화될 것이다. 예술이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때 보다 친근하고 향기로우며 따스한 사랑과 행복의 메시지가 전해질 것이다.

2020-11-10

‘눈치’ 보는 세상

서수백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과새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내 키만한 녹보수 한 그루를 거실 한편에 들여 놓았다. 그간 여러 사람들이 좋은 마음으로 나에게 주었던 그 많은 화초들을 살피지 못하고 말려 죽이고 말았던 무책임하고 게으른 내가 아니었던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또 다시 잎이 무성한 식물을 집에 들여 놓은 것은 실내 공기 정화의 효과도 있다고 하고, 녹음을 보면 쌓인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기분을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녹색을 많이 보는 것이 와병(臥病)을 줄인다는 어느 의학 프로그램에서 들은 이야기도 의식을 했던 듯싶다. 순전히 내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식물원 주인이 나에게 물은 자주 줄 필요는 없고 열흘에 한 번씩만 주면 된다고 했다. 수월하게 집안에서 녹음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한층 더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역시 나는 열흘에 한번 물 주기, 그 수월한 일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았다. 멀지도 않은 곳에 있는 한 그루 나무인데도 말이다. 어느 날 녹보수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무성한 잎들이 지칠 대로 지쳐 축 쳐져 있었다. 그제야 나는 얼른 물 한 바가지를 떠와 나무에 주었다. 더 놀란 것은 물을 준 지 불과 몇 분이 지나서 지친 잎들이 모두 힘 있게 일어나 푸르른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왜 그토록 감정이입이 되던지…. 식물도 생명이 있으니 당연한 현상인데 내가 너무 감상에 취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내가 ‘눈치’가 없었다. 누군가는 날더러 ‘눈치가 백단’이라고 하는데 왜 지쳐가는 나무에 대해 나는 눈치를 발휘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간의 내가 본 ‘눈치’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는 말을 흔히들 한다. 자존감을 불어 넣는 기분 좋은 격려다. 그런데 이 말이 문득 우리를 ‘자기중심주의’, ‘이기주의’로 더욱 빠지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로 우리의 생활 패턴이 바뀌면서 사람들은 더욱 예민해지는 듯하다. 그리고 자신에게 더욱 몰입되어서 심리적인 폐쇄성은 더욱 커져가는 듯하다. 모두가 눈치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눈치’는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내는 것’이다. 나 자신의 안위와 편리를 위한 눈치보다 힘겨움과 곤란함을 외치고 있는 주변에 눈치를 발휘해야 한다. 나한테 무익한 일이라고,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내 자신 내 가족이 더 중요하다고 외면하는 습관적 가치관이 우리의 지혜로운 눈치를 더욱 감소시킬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그 눈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더 가지는 노력을 하자. 정치인이, 공직자가, 교육자가, 부모가, 자식이, 청년이, 청소년이, 우리 각자가 이타적 눈치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그 가치 있는 눈치를 많은 사람들이 가질 때 우리 사회에 녹음의 빛이 골고루 퍼지고 날로 건강해지는 세상이 될 것이다. 이익과 성과의 중심을 ‘이타(利他)’에 두는 ‘눈치 있는 삶’, ‘눈치 보는 삶’의 시너지 효과가 얼마나 큰지 녹보수 한 그루에서 느꼈다.

2020-11-10

코로나發 기부한파… 온정의 손길에 동참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불경기까지 겹치자 기부와 봉사 활동이 크게 줄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곧 불어닥칠 겨울 한파를 생각하면 저소득 취약계층의 겨울나기가 벌써부터 걱정이 아닐 수 없다.포항지역 연탄은행에 따르면 예년이면 벌써 시작돼야 할 연탄기부 행렬이 올해는 매우 저조하다. 포항지역 기업과 사회단체로부터 전달된 포항지역의 기부연탄은 현재 4천250장에 불과하다. 작년 겨울동안 기부받은 연탄 10만장을 생각하면 올 겨울나기 까마득해 보인다. 이 같은 현상은 전국 연탄은행마다 비슷하다. 전국에 연탄을 땔감으로 쓰는 가구는 10만가구 정도이나 이 중 절반 정도가 해마다 자원봉사자에 의해 전달되었다. 그러나 올해는 실적이 저조해 연탄은행 관계자를 난감하게 하고 있다고 한다.포항의 경우 연탄사용 가구의 60∼70%가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소년소녀가정 등 저소득 취약계층이다. 이 가운데서도 절반 정도는 도움의 손길이 절박한 가구로 분류되고 있다고 한다. 연탄 1장 값이 800원이고 배달료를 포함하면 1천원은 줘야 구입할 수 있어 서민들의 겨울난방 비용으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을 우려해 연탄배달에 직접 나서 봉사활동을 했던 자원자의 발길도 끊어진 상태라 홀로 사는 노인 등 취약민의 겨울나기가 이래저래 걱정이 많다.이제 본격적인 추위가 닥치게 된다.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이웃에 대한 온정의 손길에 우리의 관심이 필요할 때다. 사랑의 온도탑 등 해마다 벌이는 이웃사랑 운동도 본격 전개될 예정이지만 코로나19가 몰고온 기부 한파 등으로 얼마나 성과가 있을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기부문화는 사회 공동체 정신이다.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많은 사람이 돕는다면 작은 기부일지라도 어려운 우리의 이웃을 얼마든지 도울 수 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올해일수록 불우한 이웃을 돕는데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가져야 한다.연탄은행에 불어 닥친 코로나발 한파가 연탄은행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지역사회가 어려운 이웃돕기에 발벗고 나선다면 우리사회는 따뜻하고 온정이 넘치는 도시가 될 것이다. 코로나19와 함께 불어닥친 지금의 시련을 극복하는 데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2020-11-10

조 바이든 당선인의 대북 정책 긴급 진단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미국의 대선은 바이든의 당선이 확정되었다. 박빙의 6개 경합지구 중 펜실베이니아와 네바다 선거인단을 확보하였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법적 소송으로 대응했지만 선거 결과를 뒤집기 어렵다. 6선의 상원 의원, 부통령 8년의 경력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은 가정적으로는 심각한 불행을 겪은 정치인이다.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었고, 아들마저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2번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하고 78세에 46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바이든의 대북 정책은 어떻게 펼쳐질까. 그의 대북 정책을 미리 진단해 본다.민주당 바이든의 대북 정책의 기조는 트럼프와는 분명히 다르다. 과거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철저히 무시하는 전략을 폈다.‘전략적 인내’라는 슬로건으로 북미 관계는 한 발짝도 진전될 수 없었고 남북관계마저 단절되었다. 바이든은 선거 유세 중 독재자 김정은에게 유화적인 트럼프의 대북 협상자세를 비난했다. 지난달 바이든 보좌관 출신 북한 전문가는 서울을 방문하여 당시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건과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태도가 북한에 대한 불개입, 무시 정책을 견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힌바 있다. 그러나 그의 대북 정책은 그대로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이다.바이든 당선인의 대북 접근 방식은 트럼프와는 다르다. 트럼프가 정상 간의 탑다운 방식을 선호했다면 그는 바텀 업(bottom up)방식을 채택할 것이다. 트럼프가 외교적으로 일을 저질러 놓고 수습했다면 그는 실무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중시할 것이다. 바이든은 선거 유세 중 북한이 핵 역량을 감소한다면 북미 정삼회담도 할 수 있다는 발언도 하였다. 그러므로 바이든은 북미간의 위로부터 일괄 타결보다는 아래로부터 단계론적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 역시 주고받기 식 단계론적 원칙을 선호하여 북미회담의 전망은 결코 어둡지 않다.바이든의 대한 정책은 남북관계뿐 아니라 북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트럼프는 그간 한국정부에 방위비 대폭 인상을 요구하여 우리를 압박하였다. 기업인 출신 트럼프 특유의 이익확보 협상 전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은 방위비 문제로 시간을 끌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한미 간 현안인 주한 미군 문제, 전작권 회수, 한미 합동 군사훈련 문제 등을 한미 동맹의 결속차원에서 해결할 것이다. 상원 외교 위원장 출신인 그는 최소한 트럼프 식 동맹국에 대한 ‘후려치기 식’협상은 지양할 것이 분명하다.그러나 바이든 당선인의 대북 정책은 상당한 준비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북한이 과거처럼 이 기간을 참지 못하고 핵이나 미사일 시험 발사를 강행한다면 북미관계는 다시 경색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핵문제에 관해 현 상태를 유지하고, 자제한다면 북미간의 협상은 재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도 힘을 실을 것이다. 다자주의를 강조하는 바이든의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와 다르지 않다. 문제는 임기 말의 문재인 정부는 시간이 부족하다. 46대 대통령 바이든의 대한반도 정책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2020-11-10

‘월성 원전’ 수사 방해… ‘무법천지’를 원하는가

검찰의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조작 의혹 수사에 대한 여권(與圈)의 막무가내식 중단압박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정치 수사로, 검찰권 남용이다. 검찰은 위험하고 무모한 폭주를 당장 멈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도 “검찰의 국정 흔들기”라고 규정했다. 국가의 공평무사한 검찰권이 백척간두에 오른 느낌이다. 온 나라를 무법천지로 만들 요량이 아니라면 여권은 일체의 겁박을 당장 거두는 것이 옳다. 대전지검은 감사원 감사결과 이첩과 고발장 접수에 따라 지난 5일과 6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 한국가스공사 등을 대대적으로 압수 수색했다. 검찰은 “감사원이 보내온 조사 자료는 조직적 문서 파기 등 피의사실과 증거가 자세히 적시된 고발장 수준의 자료”라고 수사 착수의 배경을 설명했다. 국감장에서 최재형 감사원장이 밝힌 공무원들에 의한 ‘수백 건의 자료 파기’ 진술 하나만으로도 발 빠른 검찰수사는 오히려 칭찬해주는 게 맞을 일이다.그러나 민주당은 “윤 총장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본인과 조직이 아닌 국민을 위해 써야 한다”며 총공세에 나섰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야당의 고발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각하감”이라고 해 ‘정치가 검찰을 덮었다’는 탄식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윤 총장의 특수활동비 사용내역 감찰 카드에 더해 법무부가 총장의 특활비 배정권을 아예 빼앗겠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검찰의 압수 수색은 어디까지나 법원이 수사의 근거를 인정하고 영장을 발부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수사를 뭉갰다면 오히려 명백하게 검찰의 직무유기가 될 것이다. 정권에 불리한 수사를 ‘검찰의 정치 행위’로 규정하고 난리를 치는 게 이제는 일상화된 느낌마저 든다.서울대·카이스트 등 18개 대학의 공학 전공 학생들로 구성된 녹색원자력학생연대는 “대자보 ‘현 정부의 월성 원전 기획 살인 사건’을 전국 107개 대학에 붙인다”고 밝혔다. 근본적으로는 섣부른 ‘탈원전’이 문제이지만, 무리한 정책을 위해 판단자료를 조작하고 파기한 공직자들의 범죄는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 된다. 나라의 기강이 참으로 위태롭다.

2020-11-10

노익장 대통령

유엔이 전 세계 인류의 평균 수명을 측정해 새로운 연령 분류표를 만든 적이 있다. 18∼65세까지를 청년, 66∼79세까지는 중년이다. 노년은 80∼99세며 100세 이후는 장수 노인이라 했다. 사람의 평균 수명과 체질, 건강상태 등을 고려해 정립한 새로운 연령 기준표라 하겠다.건강한 생활습관으로 사람의 수명이 많이 늘어났다. 이에 따라 노익장이라 부를 만큼 노년층의 활약이 사회 전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정치인과 기업인의 노익장이 유난히 돋보이는 시대다.미국의 46대 대통령 당선인인 조 바이든의 나이는 78세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최고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될 당시보다 8살이 더 많다. 43세로 최연소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던 케네디보다는 무려 35살이나 많은 나이다.정치 지도자의 나이는 한 국가의 국정을 이끈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평가 요소다. 나이가 많으면 체력과 판단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며 활동력도 감소하는 것이 보통의 일이다. 그러나 지금 지구상은 70대 지도자가 전성기를 맞고 있다.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72)나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75),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71), 아웅산 수지여사(75) 등 많은 지도자가 고령에도 맹활약을 한다. 가까이는 우리나라 국민의 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나이도 80세다.건강만 하다면 지도자의 나이는 문제가 될 것이 별로 없다. 산전수전을 경험한 노련함과 다양한 경험이 정치적 또는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된다.바이든은 고령에도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표를 획득한 대통령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기력이 좋아진다는 노익장(老益壯)이라는 말이 그에게는 아주 적합해 보인다./우정구(논설위원)

2020-11-10

원형(原型)의 울림

칼융의 심리학에 따르면, 무의식의 세계는 집단무의식, 즉 여러 원형(Archetype)들로 구성되어 있다. 원형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행동 유형이며, 신화와 종교의 원천이기도 하다. 여러 원형들 중에는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가 있다. 아니마는 남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여성적 요소이고, 아니무스는 여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남성적 요소이다.예를 들면, 남성의 마음에 ‘아니마’의 원형이 작용하는 경우, 그 남성은 꿈에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보거나 매혹되거나 한다. 혹은 여성의 사진이나 회화 또는 실재의 여성에게 갑자기 끌리는 마음이 일어난다. 이와 같이 ‘아니마’의 원형이 작용하면 여성의 상·이미지가 남성의 마음속에서 큰 의미를 가져 온다. 이러한 여성의 ‘이미지·상’을 ‘아니마의 상’이라고 부르며, 이러한 상·이미지를 ‘원형의 상’으로서 나타내 보인다. 물론 ‘원형의 상’은 인물의 상에 한정되지 않으며, 모든 사물에도 나타난다.이와 같이 원형이 마음에 작용하면 자주 패턴화 된 ‘이미지’ 또는 ‘상’이 인식되고, 마치 황홀경에 빠진 것처럼, 또한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해 사로잡혀 버린 것처럼 갑자기 특이한 해방감을 경험한다. 이런 순간, 개인이 아니라 대상에 종속이 되어 빠져들며, 모든 인간의 소리가 내면에서 울려퍼지는 것이다.(‘The Collected Works of C. G. Jung’ 부분인용) /강순원(사진작가)

2020-11-09

모르는 게 약

최경하씨퇴근길이었다. 감포 고갯길을 막 들어서는데 늙수레한 산골 아저씨가 팔을 흔들며 차를 세웠다. 가까이서 보니 늦가을 바람에 몸을 움츠렸다. 금방 날이 어두워지겠다 싶어 차 문을 열었다.그는 타자마자 무안할 정도로 굽실굽실 거리며 인사를 했다. 요 고갯길 너머 동네에 산다면서 들통 하나를 발 사이에 놓고 양발로 꽉 잡았다. 이곳에는 버스가 자주 없어서 가끔 지나가는 차를 세워서 신세를 진다고 했다. 만약에 타고 가다가 사고라도 나면 절대로 책임을 안 지게 한다며 묻지도 않은 일에 손사래를 치면서까지 설명했다. 나는 미소로 대답했다. 이제야 한숨을 돌렸는지 힐끔거리며 내 얼굴을 몇 번이고 쳐다봤다. 차분하게 운전하는 모습이 얼굴하고 꼭 닮았다며 농담인 듯, 진담인 듯 인사를 또 시작했다.듣는 순간 속이 뜨끔했다. 과속하다가 접촉 사고를 낸지 불과 며칠 사이였다.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를 출퇴근 하다 보니 자질구레한 자동차 문제가 가끔 발생했다. 출근시간을 간당간당 맞추며 다니는 습관 때문에 운전을 급하게 했다. 늘 혼자만 타고 다녀서 옆자리에 배려할 일이 없으므로 운전을 거칠게 하는 버릇도 있다. 그런데도 멋모르고 하는 칭찬을 들으니 속으로 우습기도 하고 그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고개를 넘어서자, 그는 서서히 내릴 준비를 했다. 똑바로 보이는 저 언덕위에서 잘생긴 소나무 앞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들통 뚜껑을 툭 치면서 한번 들썩거려 보더니 얼른 다시 닫았다. “이놈들이 벌써 겨울잠 자러 들어갔는지 없어서 늦도록 잡았네.” 라며 밑도 끝도 없는 혼잣말을 했다. 억지로 한통 채운다고 저녁까지 시간이 걸렸다는 둥, 뱀탕집에는 내일 아침에 넘겨야겠다는 둥, 중얼중얼 희귀한 말만 계속했다.그럼 저 들통 속에 뱀이 와글와글 하다는 말이 아닌가. 나는 하마터면 운전대를 놓칠 뻔했다. 말문은 이미 탁 막혔고, 불과 백 미터도 안 남은 거리를 두고 백리 길을 가는 듯 했다. 온몸이 오글거려서 도착하자마자 얼른 내리라며 다그쳤다. 그는 잘 타고 왔다는 인사말과 함께 혹시나 싶은지 내리던 발을 이쪽저쪽 들어보며 차 밑을 유심히 살폈다. 유유자적 걸어가는 뒷모습은 마치 뱀이나 산나물이나 똑같다고 여기는 사람 같았다.누군들 뱀을 좋아하랴. 산을 오르다 지나가는 뱀 꼬리만 봐도 간담이 서늘하거늘 한동안 기분이 언짢았다. 온갖 뱀이 생각났다. 어느 날 군견이 수색을 하다가 독사에게 물려 죽었다는 뉴스가 떠올라 다시 가슴이 내려앉았다. 뱀 그림이 있는 하얀색 셔츠를 입고 도마뱀에게 사랑스런 눈빛을 보내는 파충류 학자 얼굴도 생각나서 눈을 질끈 감았다. 좁은 차 안에서 바글거리는 뱀과 함께 드라이버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아는 게 병이 됐다.어느 군인의 입담이 떠올랐다. 동료 한 명과 야간 보초를 마치고 막사로 가는 길목에서 바닥에 떨어진 닭 한 마리를 발견했다. 달밤에 누가 볼세라 얼른 주워 막사 뒤로 가서 둘만의 비밀로 그것을 삶았다. 어찌나 구수하고 담백하던지 정신없이 뜯어 먹었다고 했다.다음 날 아침, 간밤에 먹었던 닭이 생각나서 뼈다귀라도 한 번 더 감상하려고 슬슬 가보았다. 그런데 뼈다귀 주변에 허연 밥풀이 눈송이처럼 흩어져 있어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불어터진 구더기였다. 닭 속에 가득 찬 구더기까지 뜯어먹으면서 툭툭 흘린 것이었다. 순간 군인은 심한 구토와 함께 그 후로는 닭고기를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모르는 게 약이었다.그나저나 고민이다. 앞으로 이 고갯길에서 사람을 태우나? 마나? / 최경하(경주시 현곡면)

2020-11-09

‘마음챙김의 시’

‘마음챙김의 시’표지.좋은 글이나 마음에 와 닿는 시를 공유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마음 따뜻한 오랜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 나는 류시화 작가가 최근 엮은 ‘마음챙김의 시’라는 책을 읽으며 어떤 시가 나에게 왜 와 닿는지를 이야기하였다. 친구는 중학생이 된 아들에게도 가장 마음에 드는 시를 선택해서 엄마에게 낭독을 해달라고 하였는데, 그 낭독한 음성파일을 내게 보내 왔다. 이제 막 변성기가 온 아이의 목소리에서 들리는 시는 ‘눈풀꽃’이라는 시였다. 겨울이 채 끝나기 전 이른 봄에 피는 수선화같은 흰색꽃이다.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하리라.’ 사춘기 아들과 친구의 지난 세월의 일상들이 한 순간에 눈앞에 떠올랐다.그런데 다음 날 아침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눈풀꽃’이라는 시를 쓴 시인이 202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한 시집은 단 한 권도 없고, 류시화 작가의 책에서 소개한 게 전부인 ‘루이스 글릭’이라는 여성시인에 대해 검색을 하고 친구와 카톡으로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예측불가능한 대위기의 시기에 고립, 단절, 불안, 고독 속에서도 소생하려는 생명의 의지를 잘 표현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삶의 고통과 죽음의 문제를 고민하고 시를 통해 이를 넘어서는 회복력으로 자연과 일상 속에서 녹아내는 글릭의 시가 나에게도 깨달음을 준다.류시화 작가의 글들을 너무 좋아하여 책이 닳도록 읽기를 반복했던 류시화 작가의 책이 마치 오래된 내 친구 같다. 마음 한 켠에 와 닿는 시 하나가 나에게 울림이 되고 위로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류시화 시인은 “시를 읽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고, 세상을 경이롭게 여기는 것이며, 여러 색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진실한 깨달음이 시의 문을 여는 순간이 있다!”라고 했다. 2005년도 출판된 류시화 작가의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을 아직도 꺼내 읽기를 반복한다. 15년이 지나도 진실한 깨달음의 순간이 계속 일어나기 때문이다. 책을 펼쳐 호시노 도미히로의 ‘일일초’를 읽었다.‘일일초’오늘도 한 가지슬픈 일이 있었다.오늘도 또 한 가지기쁜 일이 있었다.웃었다가 울었다가희망했다가 포기했다가미워했다가 사랑했다가그리고 이런 하나하나의 일들을부드럽게 감싸 주는헤아릴 수 없이 많은평범한 일들이 있었다.호시노 도미히로는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다. 체육 교사였던 그는 수업 중 학생들에게 기계체조를 가르치다 철봉에서 떨어져 전신마비로 장애라는 절망의 나락에서 평범함의 소중함을 깨닫고 ‘일일초’란 시를 썼다고 한다. 오늘도 나는 한 편의 시를 통해 오랜 친구와 진실한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삶의 평범함이 이토록 소중하게 느껴지는 하루를 보낸다. /김예원(경주시 양북면)

2020-11-09

시절인연(時節因緣)

떨켜를 준비하는 나무에 가을바람이 분다. 어쩔 수 없이 남은 잎을 떨구고 새잎을 준비하는 자연의 섭리란 우리의 인연들과도 닮아있는 것 같다. 지난 여름은 소란과 정적 속에서 한 시절이 갔다. 어찌 됐건 만인이 그리워하는 가을의 초입에서부터 나는 지금 추녀가 되고 싶어 설레고 있다. 어느 해 보다 길고도 지루한 여름날이었다. 그동안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했던 지난 계절의 꽃들과 사람들. 어쩌면 시절인연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존재를 기다리며 벌써부터 기쁨에 젖는다. 그들과의 해후는 설레면서도 얼마나 소망하고 갈망한 시간들이었나 생각해 본다. 평소에 너무 가까이 있어 느끼지 못했던 아쉬운 정도 그러하겠지만 아무튼 보고 싶은 마음이 호수만 한 것은 틀림이 없다.가만히 그동안 만나왔던 여러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만난 사람들, 또는 남편 회사와 관계된 만남도 있다. 세월이 흐르고 나니 어느 순간 떠나간 사람도 있고 까마득히 잊은 사람도 있고 그대로 인연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떠나갔지만 고마웠고 좋아서 생각나는 사람도 있다. 여러 동아리에서도 어쩌면 필요에 의해 만나고 스치고 지나간 인연도 많다. 그러나 필요에 의하지 않았어도 오래 함께한 사람도 있고, 어떤 이유에서건 떠났다가 다시 만난 사람도 있다. ‘가는 인연 잡지를 말고 오는 인연 막지를 말고’라는 시절인연 노랫말이 생각난다. 모든 사물의 현상이 시기가 돼야 일어난다는 말을 가리킨다. 즉 때가 되어야 인연이 합한다는 불교 용어로서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고 싶지 않아도 시절의 때를 만나면 기어코 만날 수밖에 없다는 그것을 시절인연이라고 한다.이번에 만날 사람들은 가을에 잎을 떨굴, 봄여름 수고한 나무들과 가을에 피어날 꽃들을 함께 기다리는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이다. 단풍과 무채색과 가을 하늘을 빛낼 하얀 억새까지. 그것은 멀리에 있어도 오래 소통하지 않았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을 우정과도 같은 것. 시절의 인연들은 나뭇잎 하나라도 다 쓸모 있을 거라는 믿음 하나로 요즘을 버티고 살아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또는 내가 응원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첫사랑이 떠나가는 것도, 좋은 관계였던 사람들이 떠나간 것도 슬퍼하거나 서운해하지 말일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야 할 인연들은 만날 것이고 굳이 붙잡지 않아도 떠나갈 인연은 떠나는 것이니 섭섭함에 울지도 말아야할 것이다. 우리에겐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다정한 시절인연이 다가 올테니…. /김은희(포항시 남구 대이로100)

2020-11-09

아주 작은 인연에도 부처님이… 보은 법주사 복천암(福泉庵)

속리산의 주말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법주사 선원에서 동안거에 들어가셨던 스님의 부름이 없었다면 감히 차로 들어설 엄두조차 내지 못할 곳이다.차로 옮길 짐이 있어 인파를 헤치며 들어서는 일은 쉽지 않다. 몇 번이나 검문 받듯 상황을 설명한 후에야 비상등을 켜고 나아갈 수 있었다. 법주사에 대한 기대감보다 특혜를 누리는 듯한 불편함이 무겁게 가슴을 누른다.법주사 뒤편에 자리한 선원에는 인적조차 없어 몸과 마음이 조심스럽다. 동안거가 끝났지만 여전히 선원을 지키며 수행하는 스님들이 계셔 외부인은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다. 먼 길 온 내게 법주사 공양을 대접하겠다는 스님의 말씀에서 가을 향기가 난다. 스님은 법주사에 처음 온 나를 배려해 지름길을 두고 천왕문 쪽으로 이끄신다.샛노랗게 물이 든 은행잎들의 황홀한 잔치판에 시린 눈을 뜰 수가 없는데 스님의 걸음은 무심하게도 빠르다. 카메라에 법주사의 가을을 마음껏 담고 싶다. 모처럼 서 보는 거대한 사천왕상 앞에서 잠시 세속의 때를 씻어내고 싶다. 국보급 문화재들도 둘러보고 싶은데 스님의 걸음은 흐트러짐이 없다.사진으로만 보던 팔상전을 몇 번이나 힐끔거리며 인파 속으로 사라져가는 스님을 놓칠 세라 종종걸음을 쳐야 했다. 공양간에는 사찰 일을 돕거나 스님을 친견하러 온 방문객들이 공양 중이다. 푸짐하고 정성들인 공양 앞에서 잊고 지내던 공양의 기도가 나를 위로 한다.보리수나무 두 그루가 지키는 대웅보전의 고색창연한 위엄 앞에서 잠시 숨 돌릴 여유를 찾는다. 중층으로 이루어진 법당 안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로 석가모니불과 노사나불이 봉안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삼존좌불, 그 인자하고 근엄한 눈빛이 나를 내려다보신다. 나는 무엇을 위해 스님의 부름을 받고 이곳까지 한걸음에 달려 왔는가. 화두처럼 와서 박힌다.인파에서 벗어나 고즈넉한 암자를 보고 싶다고 하자 스님이 산내 암자 중 가장 깊은 역사를 지닌 복천암을 소개해 주신다. 단풍과 등산객들로 활기가 넘치는 잘 닦여진 시멘트길이 우리를 안내한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길은 보이지 않는다. 거대한 출렁거림을 따라 사람들은 걷고 있다. 인적 없는 시간 이 길을 오르면 내가 가야할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사람들이 붐비는 세심정을 지나고 이 뭣고 다리 건너편 산비탈에 복천암이 보인다. 문장대로 향하는 거친 숨소리는 멀어져 가고,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느티나무 서너 그루가 처연한 자태로 복천암의 깊은 역사를 말해 준다. 이곳은 법주사의 암자로 신라 선덕여왕 때인 720년에 창건된 사찰이다.고려 공민왕이 극락보전에 무량수라는 편액을 친필로 썼으며, 세조는 이곳에서 신미 대사와 함께 3일 동안 기도드리고 목욕소에서 목욕을 하여 피부병이 낫자 절을 중수하도록 이르고 ‘만년보력(萬年寶曆)’이라 쓴 사각옥판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신미대사에게 왕사이자 혜각존자라는 호를 내리고 존경심을 표한 세조, 몸의 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까지 치유되었을 세조의 아름다운 인연을 복천암은 간직하고 있다.이곳은 속리산의 배꼽에 해당하는 명당자리다. ‘나랏말싸미’ 영화를 접한 적이 없는 내게 산중에 계시는 스님이 영화에 비친 신미대사 이야기를 풀어내신다. 수행뿐만 아니라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정세까지 두루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스님은 30년이 넘는 세월을 오로지 선방에서 수행만 하셨지만 어느 부분도 막힘이 없다.복천암은 여느 암자와는 달리 선원 뒤로 극락보전과 산신각이 숨어 있듯 앉아 있다. 절 이름과 관련 있는 복천수가 흐르는 바위 옆에 극락보전이 있다. 궁궐의 많은 어의들이 고치지 못한 세조의 병을 고친 복천암, 그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가을경치에 밀려 아미타삼존불이 쓸쓸히 법당을 지키고 있다.일반인에게는 출입이 금지된 나한전 쪽을 스님이 안내해 주신다. 산신각을 지나 모퉁이를 돌자 조실 스님이 머무는 요사채와 나한전이 후원처럼 아늑하다. 기와를 얹은 작은 문 안으로 숨이 멎을 것 같은 오랜 기다림 하나, 남들이 드나들지 않는 문을 통해 나를 기다리는 부처님이 보인다.조낭희 수필가조용히 합장한 채 문턱을 넘지 못하는 나와 달리 스님은 벌써 긴 계단을 올라 나한전 문 앞에서 예를 갖추신다. 홀로 돌아앉은 이 쓸쓸한 고립의 풍경이 주는 울림은 크다. 가슴이 먹먹하다. 나한전 뜰 앞에 앉아 하나의 계절로 나투시는 부처님을 오래도록 뵙고 싶은데 스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사라지셨다. 눈물이 날 것 같은 경이로운 만남, 그 여운은 길 것이다.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후원을 빠져 나오는데 뜰 위에 놓인 조실 스님의 털신 한 켤레가 마음을 붙든다. 외롭고 고독한 수행, 거기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운 세계 하나 머문다. 화두가 풀린다. 하마터면 드러나는 현상에 취해서 이 가을을 송두리째 놓칠 뻔했다. 올 가을은 유난히 갈증이 심했다.나태해지거나 흔들릴 때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나를 지켜 주시는 부처님, 비로소 스님의 부름 속에 깃든 참뜻을 알아차린다. 무시로 나를 성장시키는 소중한 인연들, 무심히 걸어가는 스님의 뒷모습이 가을보다 아름답다.

2020-11-09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서명한 불공정 계약서

다방면에 탁월한 학식을 겸비한 인물을 ‘만능인’이라 일컫는다. 특정 분야의 지식이나 기술에 편중되지 않고,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한 지성인, 요즘 말로 ‘통섭형 인간’을 가리킨다. 문화사적으로 볼 때 특히 15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 때 이런 유형의 천재들이 대거 출현했기 때문에 ‘르네상스형 인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많은 천재들이 피렌체에서 출몰했지만 르네상스의 만능인하면 곧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가 대표적이다.레오나르도는 1452년 공증인 세르 피에로의 사생아로 태어나 열 네 살 되던 해 피렌체에서 명망 높던 미술가 베로키오의 공방으로 보내져 십년 동안 도제생활을 했다. 레오나르도는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보티첼리, 훗날 미켈란젤로의 스승이 된 기를란다이요 그리고 라파엘로에게 그림을 가르친 페루지노 등 르네상스를 이끌어갈 가장 재능 있는 미술가 후보생들과 함께 도제 생활을 했다.스무 살 되던 1472년 레오나르도는 피렌체 미술가 조합에 이름을 올리며 본격적으로 화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출중한 그림 실력뿐만 아니라 명민함으로 인간과 자연을 통찰한 레오나르도였지만 직업의 세계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화가로서의 명성을 만방에 알릴 걸작은 고사하고 입에 풀칠하기에 급급한 궁핍함에 쪼들린 나날을 보냈다.그리고 꽤 시간이 흐른 1481년 산 도나토 수도원에서 제단화 한 점을 의뢰해 왔다. 그런데 작품 제작을 위해 수도원과 레오나르도가 맺은 계약 내용이 결코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계약서에는 미술가와 의뢰자의 책임과 의무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예컨대 작품 제작비용과 지불 방법 그리고 기한, 계약 파기 시 책임소재 등과 같은 내용이 계약서에 언급이 된다. 더불어 작품의 품질 보증에 대한 언급도 중요한 부분인데, 제작 공정에 대한 철저한 관리는 물론, 단가 절감을 위한 속임수를 막기 위해 엄선된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도 빠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도나토 수도원과 레오나르도 사이에 체결된 계약서에는 이 같은 일반적인 사항들이 언급되는 대신 미술가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들만 나열돼 있다.작품 대금을 현찰로 지급하는 대신 수도원이 소유한 땅의 일부분을 주겠다는 내용이나 30개월 내에 작품을 완성해야하며 이를 어길 경우 작품을 몰수하겠다는 등 화가의 책임과 의무만 기록돼 있다. 불공정 거래가 이뤄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는 것은 레오나르도의 형편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것과 제대로 된 작품을 그려보겠다는 의지가 절실했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수도원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계약 내용과는 별개로 나뭇단과 큰 장작 한 짐 그리고 밀가루 13ℓ와 적포도주 한 통이 화가에게 지급됐다. 레오나르도의 결벽증에 가까운 완벽주의는 이미 정평이 나 있던 터라, 또한 변덕스러운 성격 때문에 제단화 완성에 차질이 있을까 염려가 되었던지 수도원은 독려 차원에서 특별히 28피오리노를 입금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레오나르도의 제단화는 미완으로 남겨졌다. 이 작품이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이 소장한 미완의 걸작 ‘동방박사의 경배’이다.비록 미완으로 남긴 채 화가는 붓을 놓았지만 화가의 어느 작품 못지않은 탁월한 걸작 중에 걸작이다. 미술에 과학적 탐구 정신을 불어 넣은 레오나르도의 위대한 예술 정신이 전혀 부족함 없이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완성작 보다 미완의 작업에 다른 다원의 고양된 예술 혼이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완벽한 상(像)은 관념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완성된 어떤 작품도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품에 남겨진 미완의 흔적들은 감상자의 인식작용을 통해 보다 완벽에 가깝게 그려질 수 있다. 의도되었건 그렇지 않건 미술의 본질이 물질적 완성이 아니라, 완전한 아름다움에 다다르려는 예술정신에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김석모 미술사학자

2020-11-09

성선설(性善說)과 백당기(白堂記)

강희룡 서예가노자는 백색의 맑음을 알아야 흙색의 혼탁함을 지키며, 맑음을 지키면서 혼탁함을 조화시키는 것이 온전한 도리라고 했다. 이 흰색의 앎이 귀한 이유는 장차 그 앎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백색은 채색의 바탕이기에 백색이 아니면 채색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백색은 채색을 수용한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채색이 끝난 다음에도 백색이 아니면 다시 담박하고 꾸밈이 없는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문장이나 일을 꾸밀 때 ‘희게 하면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색깔로 보면 채색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으나 채색은 반드시 흰색을 바탕으로 시작하고 또한 마무리해야한다.구한말 독립운동가 수당 이남규 선생의 저서 수당집에 ‘백당기(白堂記)’가 수록돼 있다. 이 글은 윤장이 남산 밑에 집을 지어 서재로 삼고 그 처마에 ‘백당’이라는 편액을 달아 내걸면서 수당에게 백당에 대한 기(記)를 써달라고 부탁해 지은 글이다.“일반 사람들은 오로지 채색을 취하지 백색을 선택하지 않는데 그대는 오히려 채색을 버리고 백색을 취했다. 이것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다른 사람과 같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고상한 자질을 알고 숭상해 그 취할 것을 아는 군자라고 할 수 있다. 바라건대, 그 고상한 자질을 온전히 지켜서 백색을 취한 뜻을 잃지 말라. …. 이미 마음이 맑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이나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남들의 시기가 모여들 수 있다. 남들의 시기란 세상 바깥의 일이기에 실제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여 어찌 이것을 편안하게 여기고 방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한 다른 사람의 시기를 받고도 온전히 천성을 지킨다는 것은 성인의 지혜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다.”형산의 옥에 비유하면 바탕이 맑고 찬란해 진실로 천하의 백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박석(璞石·옥돌)에 싸여 땅속에 묻힌 채 세상에 나와도 한 번도 스스로를 드러내 뽐낸 적이 없기에 백색의 맑음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을 드러내고 형체를 노출시켜 스스로 백색의 맑음을 발했다면 거친 자갈과 돌들이 흠을 낼 텐데 어떻게 온전한 모습을 지킬 수 있겠는가. 흰색의 맑음을 지키면서 검정의 혼탁함을 조화시킨다면 그 모습을 온전히 지키는 도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인간의 성품이 본래부터 선한 것’이라고 기록된 맹자 등문공상(6ED5文公上)의 성선설을 근거로 볼 때, 천성(天性)의 맑고 깨끗함을 멀리하고 오욕의 혼탁함과 뒤섞여 살고자 한다면 스스로의 삶을 더럽혀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국민을 섬기는 공복(公僕)들은 마땅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위정자를 비롯한 공직자들은 그 속마음을 국민들에게 숨기지 말고 드러내야 하며, 자신의 뛰어난 재지(才智)와 공(功)은 박석같이 바위 속에 숨겨 국민들이 쉽게 알 수 없게 해야 한다.비리를 감추려는 어설픈 임기응변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위정자가 남은 올바른 삶의 시간을 고민한다면 흰색의 맑음의 유지는 반드시 새겨야 할 좌우명이다.

2020-11-09

체벌과 아동학대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최근 부모의 체벌로 아동이 사망에 이르는 사건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아동복지법에 의하면, 아동학대란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을 말한다.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의하면, 2019년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건 수는 3만45건이다. 학대행위자로는 부모가 2만2천700건(75.6%)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 중 친부가 1만2천371건(41.2%), 친모가 9천342건(31.1%), 계부가 557건(1.9%), 계모가 336건(1.1%)으로 나타났다.학대행위자의 연령은 40대가 1만3천186건(43.9%), 30대가 8천88건(26.9%), 50대가 4천630건(15.4%), 20대가 2천505건(8.3%) 순으로 많았다. 통계로 미루어 보건대, 영아기부터 성장기 자녀를 둔 부모에 의한 학대가 아동학대 대부분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2019년 아동학대로 인해 사망에 이른 사례는 총 43건이며 이 중 영아기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의 아동이 35명으로 절반 이상이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지능을 갖고 있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출생 직후에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양육자의 보살핌이 절대적일 수 밖에 없다. 성장기 동안 양육자로부터 분리된 자아의식이 생기고 독립에 대한 요구가 있더라도 여전히 양육자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데,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할 때 학대가 발생하는 것이다. 인권 의식의 부재, 훈육 방법에 대한 지식과 기술의 부재, 아동학대의 세대 간 되물림 등 아동학대의 원인을 다양하게 찾을 수 있겠으나 근본적으로 자녀가 부모의 소유물이라는 의식을 개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민법 915조에는 친권자가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는 규정이 있고 지금까지 대법원에서도 친권자의 징계권을 인정해 왔다. 하지만 훈육을 이유로 아동학대를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친권자의 징계권은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친권자의 징계권을 민법에서 삭제하는 개정안이 지난달 13일 국무회의를 통과했으며 조만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이다.경북도는 올해 포항과 경주, 구미 등 7개 시군에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18명을 우선 배치하고 내년에는 전 시군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한다.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체벌을 경험하며 성장한 세대는 체벌 없이도 자녀훈육이 가능할지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다. 그 의구심에 답하자면, “가능하다”이다(필자의 이전 칼럼 참조).힘에 대한 복종을 가르치는 체벌은 자녀가 책임감 있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데에 도움 되지 않는다. 학대의 범위는 시대나 문화마다 다양할 수 있지만 아동은 성인의 보살핌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약자라는 관점에서 학대의 범위를 보다 넓게 바라보고 이 문제에 민감할 필요가 있다. 성인이 아동에게 하는 언행이 적절한가는 역지사지해보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다.

2020-11-09

바이든 당선이 우리 정치에 던지는 교훈

우여곡절 끝에 미국 제46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조 바이든(Joe Biden)이 당선됐다. 바이든 시대의 개막으로 지구촌 최강국 미국의 정치는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난 문제점과 바이든의 승리는 우리 정치에도 많은 교훈을 던진다. 트럼프의 ‘분열정치’를 심판하고 바이든의 ‘통합의 정치’를 선호한 미국 국민의 선택은 우리 정치가 타산지석으로 삼을 대목이 적지 않다. 제대로 보고 올바로 받아들여야 한다. 세계를 미국과 비(非)미국으로 나누고 국민을 흑-백, 빈-부로 갈라치는 방식으로 지지자들을 규합해 권력을 잡고 유지하는 방식의 트럼프식 장사꾼 정치로 인한 폐해는 심대하다. 민주주의와는 동떨어진 철저한 톱다운(Top-down)방식의 의사결정이 남긴 부작용도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세계와의 동맹과 조약 관계도 장사꾼의 셈법으로 해석하고 접근해 갑질을 서슴지 않은 트럼프의 외교정책도 지구촌의 두통거리였던 게 사실이다.바이든 대통령 시대의 개막은 한마디로 ‘미국정치의 정상궤도 회복’을 기대하게 한다. 조 바이든 당선자의 승리 선언 연설의 핵심 메시지도 이 같은 목표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바이든은 연설 앞부분에서 “우리가 전 세계에서 다시 존경받는 국가가 되도록 만들겠다”고 확약해 트럼프의 가차 없는 ‘미국 우선주의’에 시달려온 세계에 청신호를 보냈다. 특히 “미국은 단순히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범을 보임으로써 세계를 이끌어갈 것”이라고 한 부분은 감동적이다.바이든이 연설에서 “나라를 분열이 아닌 단합시키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한 대목은 우리의 특별한 기억을 소환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언행은 물론 국가정책까지도 ‘국민 모두’가 아닌 ‘지지층’에 초점이 맞춰졌다. 온 나라가 이념과 세대, 빈부로 갈려 서로 대립하는 나라가 됐다. 바이든 당선인의 ‘화합’ 메시지에서 영감을 받아야 한다. 우리도 극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예측 가능한 정치’로 국민의 평화로운 삶을 보장하는 선진정치로 가야 한다.

2020-11-09

실격 당한 사람들의 존엄을 위한 변론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인간 실격’의 주인공은 자신을 인간으로서 자격을 잃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인간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한 것이지만, 사회로부터 인간 자격을 박탈당한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기에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김원영 변호사의 ‘실격당한 사람들을 위한 변론’에서 실격당한 사람은 장애인이다. 그 자신도 장애인이어서 그런지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그의 변론은 폐부를 찌른다. 그의 사유의 깊이는 그의 고통에 비례했음이 분명하다.장애인은 살아가는 데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산부인과 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이 있었다고 한다. 김원영 변호사는 장애인의 삶이 손해라고 생각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잘못된 삶은 아니라면서 여러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장애인도 자기 삶의 저자이다. 상처받지 않은 척 노련하게 남에게 ‘보여지는 나’를 연기하지만, 내가 나를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를 일치시키고 싶은 기본적 욕구를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혐오하지 않고 수용하기로 선택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도 가능하다. 사진 찍듯이 한순간에 포착되는 매력은 떨어지지만, 초상화를 그리듯이 천천히 바라보면 장애인도 아름답다. 장애인을 존중하기 위해 괴물 같은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이런 변론을 읽다 보니, 어렸을 때 뚱뚱하다고 놀림 받던 일이 생각난다. 장애인의 상황이 더 안 좋기는 하지만, 외모 차별, 능력 차별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 현상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상 체중인 적이 없는 나의 신체는 어린 시절에는 놀림거리였고, 커서는 매력과는 거리가 먼 존재였다. 중증 장애인과 나의 신체를 비교하는 것이 미안한 일이기는 하지만, 신체 때문에 놀림 한 번 받지 않은 독자들보다는 조금 더 이 변론에 공감할 수 있다.그러나 저자의 변론은 어느 정도 성찰하는 힘을 가진 일부의 장애인에게만 해당된다. 저자가 제시하는 근거가 없는 장애인들도 많다. 어떤 상황에서도 수용하기로 선택하기에는 버거운 장애를 가진 사람, 아무리 천천히 초상화를 그리려고 해도 보기가 저자 자신도 부담스러웠던 남윤광 같은 중증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는 적용하기 어렵다.그런 중증의 장애인들은 존엄하지 않은가? 이들을 위한 변론이 필요하다. 그 변론은 사진 찍듯이 한순간에 알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섬세한 손길로 초상화를 천천히 그려주기를 바라기 힘들기 때문이다.그들을 위해 장애인들도 행복과 고통을 느낄 줄 안다는 것으로 변론하고 싶다. 감정을 느끼는 것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부여돼 있다. 어떤 신체적, 정신적 조건을 가진 사람도 좋거나 싫은 감정은 느낀다. 행복과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는 그 하나만으로도, 장애인은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다. 장애인이든 아니든 똑같이 울고 웃는 존재이다. 감정 앞에서 모든 사람은 똑같이 존엄하다.

2020-11-09

동해안 횡단대교 건설, 정 총리가 희망을 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7일 포항을 방문한 자리에서 동해안 횡단대교 건설과 관련해 “국민들이 즐길 국내 관광명소 개발이 필요하다”며 “횡단대교는 그런 점에서 검토해 볼만 사업”이라 말했다. 또 “정부에 심도 있게 검토하도록 요청했다”며 적극 지원도 약속했다.포항지진 현장을 방문한 정 총리의 이번 발언은 10여 년 동안 줄기차게 정부 지원을 요청했던 경북도와 포항시로서는 매우 고무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오는 15일로 포항지진은 발생 3년을 맞는다. 그러나 아직도 지진의 상흔은 아물지 못하고 있다. 정 총리의 포항방문은 지진발생 3년을 맞는 포항시민을 위로하고 지역경제 회복을 돕기 위한 일종의 민생시찰이다.이런 점에서 정 총리의 이번 발언을 지역에서는 횡단대교 건설의 청신호로 해석한다. 지진발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포항경제 지원에 횡단대교 건설만 한 것이 없어 정 총리의 발언에 특별히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영일만 횡단대교에서 동해안 횡단대교로 명칭이 바뀐 이 사업은 경북 포항시 남구 동해면에서 북구 흥해읍까지 연결하는 바다를 건너는 해상교량이다. 총길이 9km로 사업비가 1조6천억원 가량 소요된다. 정부는 재정부담을 이유로 10년 이상 미뤄왔다.경북은 국토의 5분의 1 면적으로 전국에서 가장 넓다. 하지만 면적당 도로연장은 전국 꼴찌다. 전국에 35개의 해상교가 있으나 바다를 낀 지자체 중 유일하게 경북은 한 군데도 없다. 인천은 7개, 부산과 경남은 각 5개, 전남도 4군데가 있다.서해안은 벌써 끝난 고속도로가 동해안은 아직도 미완성 상태다. 동해안 횡단대교 건설은 국토균형개발 차원에서도 반드시 해야 할 사업이다. 경북 동해안권 발전의 핵심 기반시설이자 동해안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필수 사업인 것이다. 또 남북통일시대에 대비하는 국가의 주요 간선망이란 관점에서 지금부터 서둘러야 할 사업이다.정 총리의 발언을 계기로 동해안 횡단대교 건설 사업이 정부의 관심사업으로 떠오르길 바란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뉴딜사업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고 했다. 사업 자체의 후방효과가 그만큼 크다. 지진으로 상처를 입은 포항경제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정부의 예타면제 사업으로 속도감 있게 진행될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다.

2020-11-09

햇빛 알레르기

햇빛 알레르기는 태양광선에 장시간 노출된 피부에 두드러기, 발진, 수포 등의 증상이 생기는 피부질환으로 자외선에 의한 급성 피부변화를 일으킨다. 주원인이 태양 광선이지만, 유전적인 대사이상, 일부 항생제와 진통제 성분, 소독약 등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이 질환은 최근 세상을 떠난 개그우먼 박지선씨가 앓았다고 해 새삼 주목을 받고있다. 문제는 이 질환에 치료법이 없다는 데 있다. 햇빛 같은 경우 가시광선과 같은 장파장이기 때문에 자외선 차단제로도 막을 수 없고, 햇빛에 노출되지 않게 몸을 완전히 가리는 수밖에 없다는 것. 국내서는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매년 약 2만명이 이 질환에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서‘자외선에 의한 기타 급성 피부변화’를 앓는 환자는 1만7천280명으로 집계됐다. 2016년 2만1천83명에서 2017년 1만9천275명, 2018년 1만8천954명으로 줄어들어 3년째 감소하고 있지만, 꾸준히 환자가 발생 중이다. 성별로 보면 국내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전체 환자 1만7천820명 중 여성은 1만421명으로 58.48%를 차지했다. 2018년도 전체 1만8천954명 가운데 여성이 1만1천449명으로 60.40%였다.노출이 많은 의상을 입거나, 여성의 피부가 더 약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지만, 뚜렷한 원인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지난 2001년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의 부인 한나로네 여사가 햇빛 알레르기의 고통으로 극단적 선택을 할 만큼 정신적·육체적인 고통이 극심한 질환이어서 환자에 대한 따뜻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1-09

더 추운 겨울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

올해는 코로나19에 태풍까지 겹쳐 제조업부터 음식점, 호텔, 마트, 학원, 전통시장에 이르기까지 업태와 업종을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사업체가 여름인데도 추위를 느꼈다. 그러는 동안 절기도 겨울에 들어섰음을 알렸다. 포항을 비롯한 경북 동해안 어촌마을이 가장 활기를 띠는 계절은 겨울이다. 올여름 시내 상가들이 추위를 느꼈다면 어촌마을은 이번 겨울에 혹독한 추위를 맞이할지도 모르겠다. 막연히 겨울철 대목을 누리겠다는 느슨한 마음보다는 일단 이번 겨울 가장 피해를 덜 보고 넘기겠다는 다짐이 필요한 시점이다. 바닷가 마을에서야 늘 수산물이 생산되나 유독 겨울철에 들어서면 활기가 넘치고 돈을 번다는 기대감도 부풀어 오른다. 겨울만 영업하는 곳도 있을 정도다. 대게와 과메기의 계절인 때문이다. 문제는 지난해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겨울맞이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비대면, 비접촉이 대세를 이루는 지금도 그동안 지역 어촌에서 해왔던 방식이 그대로 통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모든 면에서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점검해야만 한다. 특히 과메기와 같은 수산 가공식품이라면 제조공정과 유통과정을 거쳐 다른 지역 소비자에게 택배로 배달되는 모든 단계에서 의심의 눈빛으로 살피는 소비자가 어떠한 불만도 내세울 틈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적어도 다음 몇 가지는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 하나라도 개선해 나갔으면 한다.첫째, 안전한 식품임을 고객의 눈으로 확신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몇 년 전 꽁치, 고등어와 같은 등 푸른 생선의 최고 어장이었던 동일본 앞바다에서 일어난 후쿠시마원전 방사능누출 사고 이후부터는 바다 생물을 먹었을 때 안전한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많이 높아졌다. 포항 구룡포에서 꽁치와 청어로 만든 과메기의 식품안전도 평가를 의식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다. 원재료인 꽁치, 청어가 어디서 잡혔는지, 수입한 것이면 대만산, 중국산과 같은 고기잡이배의 국적은 물론 어느 해역에서 잡은 것인지도 명확하게 밝히는 원산지표시 방법도 스스로 고안해낼 필요가 있다. 아예 원재료상태나 과메기 포장 직전 방사능 오염도를 측정하여 아예 포장지에 표시하는 것도 ‘구룡포과메기’라는 지역 브랜드를 전국구 명품으로 만드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노력은 앞으로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지역 특산물만이 가지는 큰 힘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몇 년 내 일본이 방사능 오염물질을 바다로 버리고 나면 먹을거리로서의 수산물에 대한 소비자 시각은 크게 달라지기 쉬워 이에 대한 사전 대응을 위해서도 신중하게 추진하였으면 한다.둘째, 지역 호텔, 전통시장, 동네 가게 모두 추운 여름을 보낸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로 자신의 집을 떠나 움직이는 유동인구가 준 탓이다. 당연히 이번 겨울도 예전처럼 관광방문객이 포항을 찾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구룡포는 더욱 특별한 지난해를 겪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특정 방송프로그램 덕분에 잠깐 생겼던 특수였음을 깨닫는다면 올해 구룡포 상권에 다가올 골은 더욱 깊어질 수도 있다. 생산부터 판매에 이르는 물량이라면 지난해가 아닌 지지난해 정도를 염두에 두면서 모든 일을 점검했으면 한다.셋째, 찾아오는 손님이 줄더라도 예년 수준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특별한 방법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전화로 주문하고, 카드결제나 계좌입금이 가능한 결제수단, 택배로 안전하게 과메기나 대게를 보낼 수 있는 배달 채널은 갖추어야만 한다. 문제는 전화로 주문할 정도로 충성도 높은 단골이 많으면 몰라도 지금까지 편안히 앉아서 어쩌다 찾는 손님들만 상대해온 음식점이나 판매점이라면 더욱 문제다. 자기 가게가 다루는 수산물이나 요리의 특징을 알리는 홈페이지, 블로그, 페이스북과 같은 많은 사이버 홍보에도 나설 필요가 있다.넷째, 지금 위기는 유독 포항을 비롯한 경북 동해안만 겪는 것이 아님을 생각해야만 한다. 더구나 포항 과메기와 구룡포, 영덕, 울진 등에서 잡히는 대게처럼 경북 동해안 지역은 다른 어촌 지역보다 겨울에 손님이 많았던 점을 생각하면 유독 이번 겨울이 더 추울 수도 있다는 각오를 다져야만 한다. 그러하기에 손님들이 안심하고 찾을 수 있는 시스템도 조금씩 갖출 필요가 있다. 당장이야 어렵겠지만 지금 일본 일부 지역에서 실시하고 있듯이 앞으로는 시외버스나 고속버스에 2인석 좌석에는 옆 사람과 부딪치지 않도록 좌석 사이에 칸막이를 설치하는 지자체가 나올지도 모른다. 포항 시내버스 가운데 구룡포행 버스만이라도 관광객을 위해 이러한 조치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처럼 경북 동해안 시, 군마다 비대면, 비접촉 시대에 어울리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지자체만이 아니라 관련 업종 관계자들이 모두 협력하여 이 지역을 찾는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대게, 과메기를 맛보기 위해 찾아오도록 유혹하는 정책들을 고안해 낼 필요가 있다.마지막으로 수산물은 업계 종사자조차 사진이나 영상만으로 품질과 상태를 알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해야만 한다. 손님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이상하다 여기더라도 대면, 접촉 상황에서는 간단한 설명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사진이나 영상만 보고 전화나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고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더구나 요즘은 온라인, 소셜미디어 시대다. 아주 작은 문제라도 고객들은 참지 않고 이러한 사실을 마음껏 유포한다. 지역 특산물의 평판이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앞으로 대게, 과메기와 같이 지역 이름을 내세운 특산물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과정에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관리체계와 식품인증을 받아 둠으로써 무조건 믿고 살 수 있는 지역 특산물이라는 평판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적어도 개인이 힘들면 조합이라도 과메기의 원재료 입수부터 제조, 포장과정, 대게의 손질과 상태, 요리과정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여주고 이왕이면 해설까지 붙여 고객의 신뢰를 높이는 방안들을 계속 궁리해야만 한다. 이왕이면 택배 유통과정에서도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특급배송 채널을 만드는 한편 압축 비닐 진공포장과 같은 수산물의 위생과 안전, 오염 방지를 위한 수단도 갖추어 나가야만 한다.앞서 언급한 내용은 다른 지역이나 식품업계가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것들도 많다. 코로나19에 따른 피해에서 완벽하게 벗어나긴 어려워도 피해를 줄일 수는 있다. 오히려 다가오는 이 겨울에 과메기의 고향, 대게의 산지라는 자부심으로 제조부터 유통,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는 전 과정에 걸쳐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는 최고의 안전한 수산 식품이라는 평판을 만드는 디딤돌로 삼았으면 한다. 언제나 믿고 전화로 주문만 하면 받을 수 있는 특산물.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느껴 전화하면 언제든지 반품을 받아주는 자신감 넘치는 지역 수산업체와 유통업계. 철저한 공정관리와 포장, 여러 인증마크와 수치가 포장지에 박힌 안전한 먹을거리로 증명된 식품.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아닌 소비자가 다른 이에게 말할 정도의 지역 특산물이 되었으면 한다. 분명 지금보다 더 추운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보다 더 철저하게 소비자의 눈으로 점검하는 꼼꼼함이야말로 이번 겨울 추위를 견디는 최고의 난방책일 것이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11-08

너는 특별하단다

김현욱 시인맥스 루케이도의 그림책 ‘너는 특별하단다’(고슴도치, 2002)를 딸에게 읽어주면서 신영복 선생의 ‘독버섯 이야기’가 떠올랐다.등산을 하던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다. 산길을 오르던 아버지는 버섯을 발견하고는 아들에게 말했다. “잘 봐. 이게 독버섯이야. 먹으면 큰 일 난다.” 아들이 그 얘기를 듣고, “아, 이게 독버섯이구나!”하고 지나갔다. 그 말을 듣고 버섯은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독버섯이구나. 누군가를 해치는 존재였구나!’ 버섯이 슬퍼할 때 옆에 있던 버섯이 친구를 다독이며 말했다. “아니야. 저건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런 거야. 넌 내게 좋은 친구야. 너는 사람들이 먹으라고 태어난 게 아니고 나와 친구가 되려고 태어난 거야.” 슬퍼하던 버섯은 기운을 차렸다. ‘그래, 나는 독버섯이 아니야. 그냥 있는 그대로 나일뿐이야.’그림책 ‘너는 특별하단다’에는 엘리 아저씨(목수)가 만든 웸믹이라는 나무 인형들이 나온다. 웸믹들은 언제부턴가 황금빛 별표와 잿빛 점표를 들고 다니며 만나는 웸믹들에게 별표나 점표를 붙이기 시작한다. 별표를 더 많이 받기 위해 웸믹들은 끊임없이 경쟁하고 점표를 받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주인공 펀치넬로는 잿빛 점표 투성이다. 점표는 점표를 부르고 별표는 별표를 부른다. 그런데, 루시는 별표에도 점표에도 관심이 없다. 누가 딱지를 붙여도 루시의 몸에서는 금방 떨어진다. 루시가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용기는 어디서 얻었을까? 루시는 펀치넬로에게 엘리 아저씨를 찾아가보라고 한다. 펀치넬로는 용기를 내어 엘리 아저씨를 만나고 별표와 점표의 비밀을 듣게 된다.동화 ‘못난이 옹기’에 나오는 꽃무늬 옹기는 통가마에서 불을 기다리며 특별한 옹기를 꿈꾼다. 하지만 꽃무늬 옹기는 그만 그릇벽이 무너지고 만다. 옹기장 할아버지의 입장에서 꽃무늬 옹기는 쓸모 없는 못난이 옹기가 된 것이다. 못 쓰게 된 옹기는 가마터 뒤편 대숲에 버려진다. 사람의 입장에서 못 쓰게 된 옹기지만 수많은 작은 생명이 어울려 사는 대숲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못난이 옹기가 아니라 꼭 필요한 옹기가 될 수도 있다.주둥이가 떨어져버린 약탕관은 작은 제비꽃을 기르며 행복을 느끼고 있다.행복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 남들이 붙이는 딱지를 붙어 있게 하는 건 사실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면 마음에 남아 있게 된다. 주류에 속하고 싶어 나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고 싶은 충동을 ‘커버링’이라고 한다. 주류에 편입되기 위한 ‘커버링’은 진정한 나 자신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그림책의 서문에 ‘너는 단지 너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하단다’라는 글이 있다. 너는 너인 채로, 나는 나인 채로, 우리 모두는, 있는 그대로,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이다. 꾸미거나 바꾸거나 덧칠할 필요 없이, 본래, 우리는 충만하고 온전하다.

2020-11-08

원자력 발전의 두 얼굴

윤영대수필가요즘 월성원전 1호기의 조기폐쇄 결정 타당성을 두고 감사원의 감사와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경제성 평가가 낮게 책정됐다는 말에 아마 진실 공방을 하는 모양이다.우리나라 원자력발전은 1955년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으면서 원전기술 연구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1978년 4월 고리원자력 1호기가 준공되어 원자력발전시대를 연 후, 부단한 연구와 노력 끝에 현재 총 24기 2천325만kW 설비용량을 갖추어 세계 6위 원자력 국가의 반열에 들었고 1993년 한국표준형 원전을 완성하여 기술 수준은 세계 3위에 올랐다.그동안 원자력발전은 우리나라 미래의 에너지를 책임질 발전방식으로 확장되어왔으나, 고리1호기는 사용 연한 40년이 지나 영구정지되었고 월성1호기는 작년 12월 폐쇄조치되었다. 그 외 8개 정도의 발전소가 건설 중단 및 백지화 추진 중이고 4기만 건설 중이다. 이렇듯 탈원전 정책이 나오는 것은 아마 우리의 뇌리에 세계적인 원자력발전소 사고의 악몽 몇 개가 맴도는 탓일까? 미국의 스리마일, 구 소련의 체르노빌에 이어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핵발전 사고’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공포감을 주고 있다.원자력발전량은 연간 약 15만GWh로 국내 발전량의 25% 정도를 생산하고 있다. kWh당 발전단가는 통계마다 다 다르지만 약 50원 미만이고 석탄 70원, 풍력 120원, 태양광 300원 선이라고 한다. 연료소비량을 비교해 보더라도 우라늄 1kg의 발전량은 석탄 3천톤에 해당하는 300만 배이고 석유는 200만 리터에 해당한다. 이렇듯 원자력 발전은 효율이 높다. 그러나 방사는 폐기물의 위험이 부각되면서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차세대 에너지원으로서 각광을 받고있는 것이다.설비면적을 비교해 보면 태양광 발전은 원자력보다 73배, 풍력은 200배 정도의 넓은 면적이 필요하다고 한다. 보통 가정용 태양광 시설 3kW짜리가 20제곱미터로 쉽게 말해 6평 정도, 즉 부대설비까지 합하면 1kW당 평균 2.5평 정도의 면적이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는 1기당 140~150만kW이니 이 정도를 태양광 시설로 한다면 100만kW에 250만 평, 실제 원전 부지의 20배가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1일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4~5시간이다. 이렇듯 태양광은 저효율이고 넓은 면적을 사용해야 하니 산과 호수 등 자연을 훼손할 우려도 많다.원자력 발전은 방사성 폐기물 처리가 어렵고 사고가 났을 경우 그 피해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오겠지만 현재와 같이 산업이 고도화되고 생활환경이 커지며 전력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마당에 효율 좋은 원자력 발전을 애써 외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럴 때 원전 비리 사건 등 인재(人災)를 막고 우리의 뛰어난 기술력과 끈질긴 연구력을 모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사고에 대한 철저한 방비로 시설을 안정화시켜 나가며 연관된 산업을 발전시켜 세계의 선도력을 갖추면 좋을 것이다.원자력은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등에 대한 걱정도 줄일 수 있으니 미래에 대한 깊은 통찰로써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 나갔으면 한다.

2020-11-08

미리 보는 ‘윤석열 축출’, 그 후

안재휘 논설위원우리에게 ‘판관 포청천(包淸天)’으로 잘 알려진 포증(包拯)은 중국 역사에서 청백리의 대명사로 불린다. 그는 북송 인종(仁宗) 천성 5년(1027) 진사 급제를 시작으로 1061년 추밀부사에 오른 인물이다. 포증은 송사를 처결할 때 명민하고 정직했다. 억울한 사람이 직접 찾아와 시비곡직을 따지도록 정문을 열어 놓아 간교한 아전들의 개입을 차단했다. 거무튀튀한 얼굴의 그가 “개작두를 대령하라!”고 호령하는 연속극 장면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포증이 송나라 수도를 책임지는 개봉(開封) 부윤으로 임명돼 귀척(貴戚·임금의 인척)과 환관들마저 덜덜 떨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한 인종의 결단이 있었다. 그는 1062년 5월 24일에 개봉에서 향년 6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항간에는 그를 꺼려한 자들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설이 돌기도 했다.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충돌 전선이 확대일로에 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에 이어 정세균 총리까지 ‘윤석열 찍어내기’에 합세한 형국이다. 민주당과 추 장관은 드디어 대검찰청의 특수활동비를 시비하기 시작했다. 야사(野史)에나 등장하는, 정적 제거용 ‘호주머니 뒤지기’에 돌입한 꼴인데, 구경하기조차 불편하다.윤석열 검찰총장의 직위 고수가 참으로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만약 여권의 ‘윤석열 찍어내기’ 자귀질이 성공할 경우 대한민국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친정부 성향 정치검사가 검찰총장 자리를 꿰어 찰 공산이 크다. 한차례 거센 인사 광풍 이후 검찰은 온전히 여당 정치권 손아귀로 들어가게 된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서는’ 검찰상이란 형해(形骸)도 없이 소멸할 것이다.조국 재판, 김경수 선거여론 조작 의혹 사건 등의 ‘물타기’ 공작이 분주해지고, 청와대의 울산 선거개입, 여권 인사들의 라임·옵티머스 사기사건 연루 의혹 따위는 흐지부지 사라질 개연성이 높다. 대통령·국회의원·법관·지방자치단체장·검사 등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의 비리를 수사·기소할 수 있는 공수처마저 정부·여당의 의도대로 편파적으로 꾸려질 경우, 명실공히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폐허만 남게 된다.집권세력은 전매특허인 ‘사정(査正)’ 드라이브를 새로 걸고, 야당 정치인들과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더 참혹한 ‘적폐청산’의 공동묘지로 갈지도 모른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걸핏하면 내지르던 ‘20년 집권, 50년 집권’ 시나리오가 드디어 그 실체를 드러낼 수도 있다.그러나 정말 그렇게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맥없이 무너지고 말 것인가.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에겐 어떤 사악한 바람에도 아주 쓰러지지 않고 끝내 일어서온 억센 민초(民草)의 정신이 있다. 광신적 확증편향주의 마약에 찌든, 오도된 악성 권력 바이러스를 일거에 제압할 계기가 어떻게든 만들어질 것이다. 나라를 좀먹는 거악(巨惡)들을 무릎 꿇리고 힘차게 “개작두를 대령하라!” 외치는 포청천은 살아 있어야 한다.

2020-11-08

포항 수성리 사격장 폐쇄 이전 검토돼야

포항시 남구 장기면 수성리 사격장을 둘러싼 국방부와 주민간 갈등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사격장 주변 주민의 반발이 단순히 헬기 사격훈련 중단을 넘어 이제는 사격장 폐쇄에 이르고 있다. 문제 해결의 접점 찾기가 쉽지 않다. 주민 반발의 빌미가 된 것은 지난 4월 경기도 포천 영평사격장에서 실시하던 주한미군의 아파치 헬기 사격훈련을 이곳으로 옮기면서부터다. 영평사격장은 그동안 훈련 중이던 헬기에서 날아온 실탄이 인근 마을의 주택담장이나 지붕을 뚫기도 하고 심지어 주민이 다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주민의 반발이 거세지자 국방부는 대체 사격장으로 수성리를 지목하고 4월부터 이곳에서 훈련을 해왔다. 주민과의 갈등 폭이 커진 것은 이처럼 국방부가 이전을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에서 비롯된다. 수성 사격장으로부터 60년 가까이 정신적 혹은 물질적으로 시달려온 주민의 입장을 조금도 고려치 않은 군 당국의 결정에 주민 반발심이 더 커졌다. 게다가 헬기 사격훈련 사실조차도 알려주지 않아 불신의 벽까지 높아진 상태다.영평사격장은 주민 반발에 폐쇄하고 수성리 사격장은 더 확대한다는 형평성 잃은 군 당국의 조치도 불만이다. 주민을 논리적으로 이해시켜야 할 군 당국이 그동안 몇 차례 현지 주민 방문 기회를 가졌지만 일방적으로 불가피성만 늘어놓아 주민과의 이해 폭을 넓히지 못했다. 주민들은 60년 가까이 군의 각종 사격훈련에 시달려 왔으면서도 남북이 대치한 우리 현실에 인내로 견뎠다. 어떠한 보상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왜 수성리 주민이 이런 부담을 져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경북도의회 이칠구 도의원(포항시)은 지난 6일 열린 도의회에서 “수성리 사격장의 폐쇄”를 촉구했다. “주민들은 수십년 동안 불발탄과 유탄사고 등에 시달렸다. DMZ의 철조망 철거와 더불어 휴전선 일대 사격장은 폐쇄 수순에 들어가면서 수성리 주민의 고통을 더 할 이번 결정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수성리 사격장 갈등과 관련, 국방부는 좀 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수성리 주민을 설득하거나 이해시킬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폐쇄 이전도 검토돼야 한다. 국방부가 안보를 명분으로 주민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모든 국민은 국가로부터 안전과 재산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2020-11-08

신토불이

신토불이(身土不二)가 마치 한의학 문헌에 나오는 내용인양 알려졌으나 그 근원이 한의에 근거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외국산 농산물의 범람에 대응하는 국산 농산물을 보호하기 위해 내건 슬로건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정설이다.“제 땅에서 산출된 것이 제 체질에 맞다”는 신토불이는 과학적 근거를 떠나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근본 취지가 호응을 얻으면서 지금도 소비자에게 잘 통하는 슬로건이다. 신토불이라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1970년대 농가소득 사업으로 일본 등지에서 수입한 황소개구리가 농가 소득은 커녕 왕성한 번식력으로 토종 물고기와 개구리를 잡아먹는 일이 벌어졌다. 개구리 등이 멸종할 거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당국이 황소개구리를 포획하는 일에 발벗고 나서기도 했다.늪너구리로 불리는 뉴트리아는 우리나라가 지정한 1종 생태계 교란종이다. 칠레 등 주로 남미에 서식하는 포유류인 뉴트리아는 잠시만 관리를 소홀하면 개체 수가 급격히 증가한다. 1년에 최대 200마리까지 새끼를 번식할 수 있다. 뉴트리아 1마리가 하루 동안 먹는 양이 자신의 체중 4분1 정도에 달한다고 한다. 뉴트리아가 돌아다닌 곳은 금방 쑥대밭이 된다. 우리나라는 생태계를 교란하는 뉴트리아, 황소개구리, 큰입배스 등 20여종을 생태 교란종으로 지정하고 있다. 미국 남동부지역에 자생하는 ‘핑크뮬리’가 국립환경원에 의해 생태계 위해성 식물로 지정됐다. 토종식물의 성장을 방해하고 우점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다. 2013년 한국에 첫 선보인 핑크뮬리는 특이한 색깔과 모양으로 한국인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경북도는 식재 자제를 권고하고 제주도는 이미 식재된 핑크뮬리를 갈아엎는다고 한다. 신토불이가 영 헛말은 아닌 모양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