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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 쓰고 나눠 쓰고

등록일 2021-09-08 20:00 게재일 2021-09-0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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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붕괴’ 표지.

아나바다 운동을 벌인 시절이 있었다. 아나바다는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받아 쓰고 다시 쓰자는 준말인데, 20세기 말,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하자 IMF 구제금융 사태를 이겨내려고 사람들이 펼친 운동이다. 사람들은 쓰지 않는 물건을 서로 바꾸고, 교복이나 교과서를 물려 주고 장난감과 동화책은 서로 나누었다.

구두쇠 - 돈이나 재물을 쓰는 데 몹시 인색한 사람.

노랑이 - 속이 좁고 인색한 사람을 비유로 일컫는 말.

자린고비 - 아니꼬울 정도로 인색한 사람을 앝잡아 이르는 말.

수전노(守錢奴) - 돈을 모을 줄만 알고 쓰려고는 하지 않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인색한(吝嗇漢) - 아까워서 나눔에 인색한 사람.

구두쇠는 ‘굳다’와 ‘쇠’가 결합한 말이다. ‘굳다’는 무엇을 헤프게 쓰지 않아 남는다는 뜻이며 ‘쇠’는 돌쇠나 마당쇠처럼 사람 이름에 붙는 접미어다. 굳은 땅에 물이 고인다는 격언처럼 함부로 돈을 낭비하지 않고 아껴 쓰는 사람이다. 벽쇠, 벽보 또는 구두배기라고도 한다. 세간에서 말하는, 구두 뒤축이 닳을까 봐 쇠를 박아 신었다는 데서 유래하지 않았다.

자린(<73BC>吝) - 고약하고 인색한 마음, ‘절인’이라는 말을 음만 따서 한자로 적은 말이다.

고비(考<59A3>) - 지방을 쓸 때 현고학생(顯考學生)과 현비유인(顯<59A3>孺人)을 쓰는데, 한 자씩 따서 돌아가신 부모를 가리키는 말로 쓴다.

자린고비의 어원에는 일화가 있다. 옛날 충주 땅에 부자가 살았는데 그는 제사를 지낼 때마다 지방(紙榜)을 새로 쓰지 않았다. 한 번 쓴 것을 기름에 절인 뒤 해마다 그것을 다시 썼다. 제사를 지내고 나면 지방은 불에 태워 없애는 것이 관례인데, 종이 조각을 아끼려고 기름에 절여 두고두고 쓰니 얼마나 짠돌이겠는가, 그 사람을 일컬어 ‘절인고비’라고 불렀는데, ‘절인’이 변하여 ‘자린’이 되고 사람들은 그를 ‘자린고비’라고 불렀다는 설이 전한다.

짠돌이, 짠순이, 짠지, 굳짜, 깍쟁이, 꽁생원, 좀팽이, 수전노(守錢奴), 인색한(吝嗇漢), 알뜰하다, 살뜰하다, 알토란 같다 같은, 아낌에 관한 낱말이 우리네 삶에 녹아 있는다.

연산군은 채홍사(採紅使)라는 관리를 두고 조선 팔도의 미녀들을 뽑아 기녀로 삼았다. 이들을 운평(運平)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의 수가 1천 명이 넘었다. 이들 가운데 인물이 빼어나고, 가무(歌舞)에 능한 운평을 뽑아 궁궐에 살게 했다. 이들이 흥청(興淸)으로, 흥청에게 녹봉과 몸종을 주었고, 그 가족에게 집과 땅을 주었다. 임금의 총애를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천과(天科)흥청, 반천과(半天科)흥청, 지과(地科)흥청으로 서열을 매겼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장녹수이다.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폐위되고 말았는데, 연산군이 쫓겨나며 생긴 말이 ‘흥청망청(興淸亡淸)’이라고 전한다.

지구에 닥친 기후위기가 심각하다. 곳곳에 지진, 해일, 폭우, 태풍 등 예전과 그 양상이 다르다. 인류는 그동안 지하에 묻힌 석탄, 가스, 석유 등을 뽑아 물 쓰듯 썼다. 화석연료에 불을 붙여 숱하게 태웠으니 지구의 기온이 오르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인류의 기술로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지구가 뜨거워지면 인류는 멸망한다. 물질문명이 주는 편리에 취해 흥청망청하는 사이에 벌어진 현상이다.

제레드 다이어몬드의 ‘문명의 붕괴’는 문명의 붕괴와 그 원인을 탐색한 책이다. 문명의 붕괴를 초래하는 요인은 환경파괴, 기후변화, 적대적인 이웃, 우호적인 이웃과의 교역, 이런 문제를 대하는 자세이다. 이 다섯 가지는 복합적으로 작용해 문명의 붕괴를 가속한다. 저자는 환경 파괴 문제를 가장 위협적으로 보았고, 그중에서 산림 파괴를 가장 중대한 원인으로 꼽았다.

지구의 나이는 45.5억년이다. 뜨거운 혼돈의 시간을 지나 대지와 대기가 안정을 찾고 이후 생명이 탄생해 번성과 멸종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지구 곳곳에 멸종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로 추리해 보면 그동안 현재의 인류와 비슷한 문명이 번성하다가 붕괴했다고 상상할 수 있다. 문명을 이룬 생명체가 멸종하면 빌딩이나 다리 같은 문명의 흔적은 대략 백만 년이면 완전히 지워진다고 한다.

한 번 무너진 지구의 균형이 다시 안정되려면 몇백 또는 몇천 만년이 지나야 한다. 지각이 몇 번 뒤집히고 지구가 리셋(reset)되면 다시 생명체가 태어난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인류문명 같은 문명이 몇 회나 흥청(興淸)했다가 망청(亡淸)했을까.

/수필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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