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이다. 개도국의 산업화와 국제무역 참여증진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유엔 산하 정부 간 기구인 UNCTAD는 지난 7월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열린 제68차 무역개발이사회 마지막 날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우리나라의 선진국지위를 인정했다. UNCTAD가 1964년 설립된 이래 개도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가 바뀐 국가는 우리나라가 최초라고 한다. 국제사회에서 개방과 자유무역에 기반 한 다자체제에 대한 일관된 정책과 행동이 유엔 회원국들을 통해 인정받은 것이다. 그런데 “아, 우리도 드디어 선진국이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선진국? 우리가? 왜?”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뭘까? 우리가 의도하여 주도적으로 준비한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선진국 당했다!’는 표현이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우리가 그동안 먹고 살기위해서 키워온 능력이 ‘따라 하기’가 아닌가. 그런데 어느 날 우리가 깃발을 들고 맨 앞에 서야 한다니 그게 가능할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러던 어느 날 “CJ ENM, ‘인터스텔라’ 프로듀서와 손 잡고 케이팝 영화 제작”이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케이팝을 소재로 한 영화 ‘K-Pop: Lost in America’(가제)를 만드는데 연출은 윤제균 감독이, 린다 옵스트가 프로듀서로 참여한다는 기사였다. 그 외에도 소니픽처스가 케이팝 걸그룹을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 데몬 헌터스’를, 배우 레벨 윌슨이 감독 데뷔작인 할리우드 영화 ‘서울 걸즈’를 제작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세계문화를 주도하던 미국이 스스로 케이팝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좁은 국내음악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벗어나 음악활동의 새로운 영역을 찾기 위해 글로벌시장진출을 시도했던 BTS. 이 한국의 아이돌그룹은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었다. 만들어진 가수, 립싱크, 음악성보다는 잘생긴 외모와 춤 잘 추는 청년들의 모임정도로만 생각했던 편견을 깼다. 그리고 많은 세계인들이 관심을 갖고 열광하는 문화의 진원지가 된 것이다. 미국인들은 그것을 노래와 춤, 외모와 비주얼, 오디오적인 매력을 두루 갖춘 퍼포밍 아티스트가 만드는 예술로 ‘케이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견고한 자신들만의 기준이 존재하는 음악생태계에 변종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기록소년단’은 각종기록들을 갈아치우며 새로운 큰 흐름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주류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케이팝이 어떻게 주류가 될 수 있었는가. 음악평론가 김영대는 케이팝의 성공요인을 “우리음악이 아니었기에 어떤 제약 없이 자유롭게 멋있고, 트랜디 하고, 힙한 좋은 메시지를 담은 좋은 음악만을 추구한 것, 한계가 존재하지 않아 다양성을 가질 수 있는 매력에 빠진 외국 작곡가들과의 협업으로 미국대중에게 독특하고 재밌는 새로운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노래를 창작한 것”이라고 말한다.
BTS는 한국시장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많은 플레이어들과의 경쟁을 통해 ‘한국만의 정교함’을 완성할 수 있었고 세계시장에 맞는 현지화전략으로 보편적이고 세련된 한국만의 팝음악을 탄생시켰다. 영미권산업이 직접 만들지 않은 최초의 글로벌 팝 슈퍼스타의 탄생이다. 독특하고 강렬한 퍼포먼스를 동반한 최신의 멋진 음악이라는 기존미국대중음악에는 없던 음악, 케이팝의 매력이 지금 세계대중음악을 선도적으로 끌고 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케이팝의 발전경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 이유를 말해주는 가장 확실한 근거 중 하나인 셈이다.
백범 김구선생은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이전까지의 것들과는 다른 새로운 ‘장르’를 시작한 케이팝 보유국은 선진국이다. 선진국 당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노력으로 선진국이 되었다는 근거 하나를 찾은 셈이다. 그러고 보니 드라이브 스루, 검진키트와 함께 세계의 모범이라는 케이방역, 케이드라마, 많은 영역에서 케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우리가 선도적으로 주도하는 것들의 목록이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선진국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시대를 지나는 지금, 우리가 선진국의 국민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할까? BTS처럼 ‘기존의 시스템에서 일등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류’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는 일과 소비에 탕진하던 삶을 생태적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자만으로 가득했던 ‘호모사피엔스’에서 지구의 모든 생물들과 공생하는 ‘호모 심비우스-공생인(共生人)’으로 진화하는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다가도 “어, 우린 시원한데 저기 밖에 있는 길짐승들은 어쩌지?”라며 에어컨을 끌 수 있을까? 쾌락과 중독에서 지성과 영성으로 우리 ‘욕망의 거리두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불금의 저녁, 치맥 대신 책읽기와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우리 삶의 리듬이 그렇게 바뀌기 전까지는 우리가 ‘선진국 당했다!’는 느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