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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능소화는 피었는데

등록일 2021-09-07 19:41 게재일 2021-09-0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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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락기 시조시인 · 칼럼리스트
김락기시조시인 · 칼럼리스트

능소화는 야릇하다. 재택생활에서 바깥나들이를 할 때면 머나 가까우나 강렬한 다홍빛 원색으로 메며든다. 도색적·뇌쇄적 매혹을 풍긴다. 지금 하추교역기 꽃들이 사방에서 피고진다. 나라가 온통 꽃 세상천지다. 세계 10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우리는 사계절 내내 꽃들을 볼 수 있다. 겨울에도 집 발코니에는 제라늄꽃이 핀다. 몇 달 전 수십 년 만에 한강 유람선을 탄 적이 있다. 강변에 펼쳐지는 야경은 장관이었다. 저녁이 이슥하자 빌딩 숲에 켜지는 청사초롱 꽃들이 뭇별처럼 반짝이며 이내 속가슴을 후벼들었다. 밤낮없이 피는 꽃들 가운데 능소화는 이즈음 어디서나 쉬이 볼 수 있다.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시로 읊거나 필묵으로 치는 제재다. 1930년대에는 ‘서울에서 사직동 덕흥대원군 사당 담장에서만 볼 수 있는 희한한 꽃이었다.’고 문일평의 ‘화하만필’은 이른다. 꽃말 ‘명예’나 별명 ‘양반꽃’이 어울리는 까닭이다. 나는 한때 이를 문인화로 치면서, 담장을 낀 길녘이 능소화와 잘 어울림을 느꼈다.

“능소화 드리우고 호박넝쿨 덮이어도/토석담 그 골목이 왜 그리도 무료한지/담벼락/기대고 서서/꿈 그리던 몽상들∥성벽 담이 높다 해도 단풍 들고 눈 내리면/묻어두던 정감들이 서럽도록 그리워서/예서 또/거닐어보는/그때 여느 발자취.” 내 졸음 ‘돌담길’ 부분이다. 10여 년 전 군위 팔공산 자락 한밤마을을 지날 때 감회다. 어떤 블로그에는 능소화가 피어 있는 고향마을 돌담길에 남아 있는 유년시절, 서럽도록 그리운 한 폭의 풍경화라고 평했다. 담벼락이나 큰키나무 가지들을 된통 휘감고 어우러진 모습은 화려하고 장대하다. 치렁치렁한 원추꽃차례-청록색 이파리와 주황 또는 선홍빛 꽃떨기가 보색 대비되어 인상 깊게 여운이 밴다.

지금까지 오늘날 우리나라의 겉쪽 풍경이었다면, 나라 안쪽 모습은 어떤지 보자. 작년 4·15 총선거에 대한 무효소송 재검표 현황을 예로 든다. 인천 연수을·경남 양산을·서울 영등포을 지역구 등이 진행되었다. 국민이 믿는 최후의 보루는 대법원의 공정한 재판이다.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며, 선거소송은 180일 이내에 처리토록 되어 있다. 이와 달리, 주심 대법관의 얄궂은 행태에 민심의 꽃들이 분노로 시들고 있다. 공병호 박사 같은 분들이 피를 토하듯 부정선거라고 열변한다. 이상하리만큼 주류언론은 침묵한다. 4·15부정선거국민투쟁본부는 지난 8월 24일 ‘자유민주주의 근간, 헌법의 기초를 지키려는 국민들의 열망과 각오는 임계점을 지나고 있다.’고 성명을 냈다. 국민의 3대 주권 중 투표권이 유명무실화된다면 저항권을 넘어 혁명권이 실행될지 모른다. 시들다 지친 꽃들이 태풍처럼 돌변할 수 있다. ‘능소화’가 이름 그대로 하늘을 원망만 하랴. 싱싱한 채로 떨어지는 꽃을 문일평은 주목했다. 시조 올린다.

 

‘꽃 같은 세상’

꽃네는 애시당초/꽃 세상을 꿈꿨거늘//행여나 아니어라/속내 몰래 저어하면//떨어진/저, 저 꽃잎들/핏빛으로 물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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