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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여남포구

수평선에 공장의 불빛들이 스며든다. 이곳은 어촌풍경과 도시의 풍경들을 사진에 담을 수 있어서 자주 찾게 된다. 포항시 북구 여남포구는 바다 끝에 산이 있고 산 끝에 바다가 맞닿아 있다. 방파제 등대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집들이 위치한 산의 모양은 꼭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는 듯하다. 해질녘 불이 켜지면 옹기종기 앉아 있는 불빛들이 물고기 비늘같이 반짝인다. 밤이 깊어지면 산도 헤엄쳐 바다로 가는 꿈을 꾸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해본다.포구에는 풍랑을 피해온 배들이 정박해 있다. 파도와 맞서고 삐걱거렸을 배들은 포구에 안긴 듯 편안해 보인다. 선착장 타이어를 배게 삼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들이 어머니의 품에 안긴 아기의 모습 같다. 포구는 옷고름을 풀고 젖을 물리고 있는 듯하다. 포구로 돌아온 배들은 다음 출항 때까지 망중한에 들 것이다. 포구는 요람이요, 피난처이며 휴식 공간이다.잠시 몽환적 상상을 해보다 눈을 감고 파도소리를 듣는다. 바다가 들려주는 파도소리에 아득하니 심장이 뛴다. 금어기가 풀리면 포구에 정박했던 배가 산소통을 싣고 엔진소리를 내면서 포구를 떠날 것이다.오늘도 여남포구에는 만선의 꿈들이 헤엄친다. 쉼 없이 파도가 밀려와 바위에 닿았다 다시 떠나간다. /김주영(사진작가)

2020-09-21

이름표를 붙여 내 가슴에

코로나로 일이 없는 날이 많다. 마음은 편하지 않지만 몸은 편하니 산책을 가기로 했다. 친구에게 수목원으로 소풍을 가자고 했다. 사람이 많은 커피숍보다는 낫겠지 하며 간식을 싸서 나섰다. 주왕산에 숲속 도서관이 생겼다고 반가워하는 나에게, 누군가 포항 연일중명자연생태공원에도 도서관이 있다고 했다. 그럼 오늘 오후 산책은 거기로.갈 때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는 산, 길도 더 넓어지고 꽃의 키도 식구 수도 늘어났다. 한참 숲을 둘러보아도 도서관은 못 찾았다. 하지만 오늘 또 달라진 것 발견. 이름표를 새로 만들어 달았다. 내가 퀴즈마니아인줄 어찌 알고 “나의 이름은 뭘까요?” 한다. 감나무 뽕나무 정도만 구별 가능한 나에게 어려운 퀴즈이다.내 실력을 알았다는 듯이 주위에 여러 나무 중에 어떤 나무의 이름인지 눈치채라고 앞판에 나뭇잎과 꽃과 열매를 새겨 놓았다. 그 정도 힌트로 맞힐 내가 아니다. 처음부터 알려주면 재미없다. 너무 쉬워 보일까 봐 뚜껑을 살짝 넘기란다. 손으로 들추니 이름이 나오고 어디에서 온 것인지, 어느 시기에 꽃을 피우는지 꽃의 이모저모를 적어 놓았다. 나무나 꽃이나 사람이나 쪼는 맛이 있어야 한다.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니 야생화 관찰원, 약용 식물원, 암석원, 야생화원 등 다양한 생태 학습장이 있었다. 곳곳에 설치된 소리 채집기에 귀를 기울이면 물소리 바람 소리가 또 다르게 들린다. 오르면서 보니 계곡 여기저기에 동물 모형이 있어서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한쪽에 놓은 정자에 앉아서 가져간 간식으로 갈증을 달랬다. 산을 따라 올라가면 옥녀봉에 전망대도 있다. 오늘은 산책만 하기로 했으니 전망대까지 가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뤘다.집에 돌아와 연일중명자연생태공원 홈페이지에 방문했다. 요런 재미난 생각은 누가 어찌하였는지, 다음번에 가면 또 다른 무언가를 내게 보여줄 건지 물어보고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어야겠다. 참 잘했어요, 도장도 찍어주고./이지헌(구미시 양호동)

2020-09-21

국제 항만도시 포항의 우선 과제

이제야 포항이 국제 항만도시라고 하는 말에 조금은 고개를 끄덕일 만 해졌다. 한 나라나 지역이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이려면 반드시 출입구를 가져야만 한다. 하늘길을 이용하는 공항이든, 육로를 이용하는 국경이든 내국인과 외국인이 접점을 가지고 드나들 수 있는 곳 말이다. 이처럼 다른 나라와 물리적으로 연결되는 창구를 가지지 못하면 그 나라나 지역이 국제사회에서 이름을 알리거나 경제활동을 활발하게 하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나라는 북한을 마주하고 있어 여느 내륙 국가처럼 국경을 접점으로 하는 국제관문은 사실상 막혀있다. 지금 외국과 국제무역을 활발하게 하거나 내국인의 해외여행과 외국인의 국내 관광이 가능한 것은 국제공항과 국제항만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항은 국제항만을 가지고 있다. 3개 항으로 이루어진 포항항 가운데 신항은 국제벌크항만, 영일만항은 국제컨테이너항만이다. 이번에 완공된 국제 크루즈 여객부두로 인해 포항항은 국제 벌크화물과 국제 컨테이너 화물 그리고 국제여객 모두 다루는 완전체의 국제항만으로 재탄생하였다. 명실공히 국제 항만도시 포항이라는 자격증이 이제야 완비된 셈이다. 여기에 하늘길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필요하다면 특별전세기를 통해 세계 어디라도 움직일 수 있다. 실제 외국을 오간 사례도 있다. 이번에 포항을 모항으로 삼고 러시아와 일본 서해안지역을 오가는 국제 카페리호가 취항하였다고 한다. 앞으로 이를 통해 포항의 국제화물과 국제여객이 넘나들며 항만물류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세계 경제가 동시 부진에 빠지면서 국제물동량도 자연 격감하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그동안 높은 성장세를 보여왔던 국제크루즈산업의 피해는 매우 컸다. 국제해운업계가 이처럼 심각한 불경기를 맞이하면서 상위권의 국제여객선사들까지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중고여객선의 가격은 종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최악의 상황에서 포항의 국제 크루즈 여객부두가 완공된 것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어려운 상황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앞으로는 전망이 밝다고 단언할 만한 확신도 없다. 주식투자가라면 누구나 발가락 끝에서 사서 머리카락 끝에서 팔아 최고의 수익을 올리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워낙 시장 상황이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현명한 투자가들은 무릎에서 사고 어깨에서 팔라고 조언한다. 국제정치, 국제경제의 역학관계도 주식시장만큼이나 한 치 앞을 모를 정도로 빠르게 변화한다. 국제 해운업계가 지금 불황인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언제 회복세를 보여 급반등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계 무역이 차단되어 국제물동량이 바닥을 보이고 국제해운업계가 불황의 늪에 빠진 상태에서 국제 카페리 노선을 새로 시작하는 것은 어쩌면 모험이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러시아와 일본을 오가는 여객과 화물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카페리의 유용성을 고려하면 지금이 무릎 단계인 최적의 타이밍일 수도 있다. 국제 해운업계가 어려운 만큼 포항발 국제카페리 노선의 시장진입 허들은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일반적으로 항만, 공항, 철도 등 인프라 투자는 불경기에 추진할수록 비용 대비 성과가 높아진다는 특징을 지닌다. 불황기에 각국이 인프라 투자에 나서는 것도 그 때문이다.포항항이 국제 항만도시에 어울리는 적합한 기능을 발휘하여 도시 성장의 한 축을 담당하려면 선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2개의 교육기반만은 서둘렀으면 한다.첫 번째 과제는 포항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기반하여 주변 국가와의 경제적 문제를 전략적으로 접근 가능한 지경학(地經學·geoeconomics) 지식을 갖춘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이다. 국제관계는 과거와 달리 정치, 경제, 외교 등 어느 특정 분야만 다루지 않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외교부를 외교통상부로 개편한 것도 이와 같은 지경학에 기반한 국가전략의 흐름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분쟁을 군사 행동이라는 물리적 수단으로 해결하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정치적 문제나 전략을 기반으로 경제적 수단을 이용하는 국가전략이 일반화되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다양한 경제적 제재 수단을 이용하는 것도 지경학적 전략에 기반한 것이다. 이처럼 경제학, 정치학, 지리학이 통합된 학문인 지경학은 그동안 경제외교를 지탱해왔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경제적 수단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로 지경학인 셈이다. 포항이 앞으로 국제 항만도시로서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생존하려면 폭넓은 시야와 통찰력을 갖출 수 있는 지경학적 소양을 지닌 젊은 인재들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아닌 포항지역에 특화된 지경학적 지식을 갖춘 인재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포항의 대학 내에 지경학과를 신설하거나 단일 교양과목의 형태라도 개설하여 국제정치 경제적 감각이 배인 청년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반을 서둘러 구축해 나갈 필요가 있다.두 번째 과제는 국제 항만도시 포항의 주요 분야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다국어가 가능한 외국 청년인재의 유인과 수용을 위한 기반 마련이다. 일종의 교육프로그램이라 해도 무방하다. 포항항이 환동해 거점항만으로 지정된 것은 포항이 지닌 지정학적 위상 때문이다. 포항은 국제컨테이너부두, 국제벌크화물부두, 국제여객부두 모두를 갖춘 동해안 유일의 국제항만도시다. 바다를 격해 중국만 상대하는 서해안의 국제항만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포항은 울릉도 독도라는 동해안 최동단의 국경 도서를 끌어안으면서 위로는 북한, 중국의 동북 3성, 러시아 극동연방 관구를 두고 있다. 우로는 일본의 서해안지역을 상대하며 남으로는 미국, 동남아까지 연결된다. 환동해 내지 환울릉지역을 아우르는 포항은 태생부터 다국적을 상대하는 국제 항만도시인 셈이다. 이러한 전략적 위상을 지닌 항만도시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포항시가 어떠한 전략을 가지고 움직이는가에 따라 포항이 지닌 지정학적 장점을 살려 경제적으로도 유의미한 파급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가 결정된다. 이 문제는 누구도 대신 해결해줄 수 없다. 포항 스스로 환동해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활용할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어야만 한다. 러시아, 일본, 중국에서 한국어가 가능한 교포 2세들을 선점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이를 위해 포항국제아카데미(가칭)와 같은 교육프로그램의 개설을 제안한다. 학력 인정까지는 불필요하다. 그저 우수한 청년 교포들을 끌어들여 포항에 정착시키고 해양으로 나아갈 포항에 필요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기만 하면 된다.포항은 앞으로 포항항을 거점으로 러시아, 중국, 일본 등 환동해권으로 경제영토를 확장해 나가야만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지금 당장 포항에 필요한 교육기반은 앞서 언급한 딱 2개의 교육기반뿐이다. 국제적 감각을 지니면서 포항의 미래전략을 세울 청년 인재의 양성, 즉시 활용 가능한 환동해권 4개국 언어에 능통한 외국 국적 청년 교포를 산업인력으로 유인, 수용할 그릇이다. 포항의 인재는 자체적으로 수급해야만 한다. 다가올 환동해경제권 시대에 포항을 거점으로 삼으면서 포항을 등에 지고 활약할 청년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의 구상은 단지 졸업 후 포항을 떠날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한 국제학교의 설립 문제보다 더 시급한 최우선 과제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9-20

추석 앞에 깜깜이 속출… 방역 긴장감 높일 때

추석을 앞두고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깜깜이 환자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지난 주말 기준 전국적으로 37일째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세자릿수를 유지한 가운데 깜깜이 환자의 비중증가는 추석연휴 방역관리에 최대 복병이 된다. 19일 현재 깜깜이 환자 비중은 28.1%다. 중순 이후 연일 기록 갱신행진을 하고 있다. 보건당국은 “폭발적인 증가를 억제하는 데는 일단 성공했지만 최근 2주간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환자 비중이 크게 높아진 것은 매우 우려된다”고 했다. 정부와 보건당국은 이번 추석연휴를 하반기 코로나 방역의 최대 위험시기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이 기간 동안 국민에게 이동을 최대한 억제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러나 연휴를 틈탄 관광지에는 벌써 숙박시설의 예약이 꽉 찼다고 한다. 다중이용시설에 대중이 몰리면 감염병 전파위험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추석연휴 방역관리가 비상이 아닐 수 없다.전국적 상황과 마찬가지로 추석을 열흘 앞둔 대구와 경북지역에서도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발생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대구에서는 19일 승객으로부터 감염됐을 것으로 보이는 70대 택시기사와 그 배우자의 감염이 확인됨에 따라 100여명 승객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대구시는 계도기간이 끝난 마스크 착용의무화의 행정처분을 21일부터 본격 시행한다. 또 시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치도 1주일 더 연장키로 했다.경북 포항은 일주일새 9명, 경주는 사흘새 10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새로 발생했다. 게다가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환자까지 이어져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포항 세명기독병원은 입원환자 사이에 코로나19 전파 사례가 확인돼 병원 1개층이 코호트 격리 조치됐다. 포항시는 18일 마스크 착용의무화 긴급명령을 발동했다. 20일 전국적으로 신규 확진자가 38일 만에 100명 아래로 떨어졌으나 곳곳에서 산발 감염은 여전하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감염규모가 커질 수 있다. 특히 깜깜이 환자 비중이 높아 추석을 고비로 우려했던 가을철 대유행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름휴가 등 연휴이후 어김없이 늘어났던 코로나 환자수를 우리는 기억한다. 추석명절 이동을 줄이고 외출자제와 마스크 착용 등 개인수칙 준수로 대응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책이다.

2020-09-20

親정권 인사에 거액 ‘편법 월급’… 전수조사 필요

감사원이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등에 명확한 지급 기준도 없이 매월 정액의 고정급을 지급해온 사실을 적발했다. 정권 창출에 기여한 공로로 논공행상하듯이 자리를 나눠 주고,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단지 출근하고 있다는 이유로 국민 혈세를 함부로 주는 편법이 사용됐다는 것이다. 전수조사를 통해 유사실태를 모두 찾아내어 바로잡아야 한다는 여론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 문재인 대선 캠프 자문기구에서 활동하다 국가균형발전위원장으로 위촉됐던 송재호 민주당 국회의원은 매달 400만 원씩 총 5천200만 원을 받았다. 민주당 선대위 노동위원장을 지낸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은 2년 10개월 동안 총 2억1천759만 원을 급여 성격의 고정급으로 받았다. 또 이목희 전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도 같은 편법으로 1년 11개월 동안 총 1억4천99만 원을 수령한 것으로 드러났다.현행 법령상 비상임인 이들에게는 회의 참석 외에 자료 수집, 현지조사 등 별도의 용역을 명백하게 제공한 경우에만 각각의 활동마다 정해진 기준에 따라 사례금을 줄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런데도 명확한 지급 기준도 없이 사실상 상근하고 있다는 이유로 사례금을 정액으로 월급처럼 줬다는 것이다.감사원이 적발한 것은 이뿐이 아니다. 대통령실에서 어린이날 기념영상을 제작하면서 국가계약법에 정해진 절차를 건너뛰어 대금을 먼저 지급하고 사후 계약을 체결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이번에 감사원이 혈세 낭비 적발은 행정기관과 공무원의 직무 감찰을 통해 국가 기강을 세우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서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정치적 의도 운운하며 폄훼해서는 안 된다. 권력기관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다면 감사원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이번 감사원의 감사 결과로 볼 때 유사한 사례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짐작은 합리적인 의심이다. 차제에 비슷한 기관단체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세금이 줄줄 새는 비정상들을 모두 찾아내야 옳다. 나랏돈을 주인 없는 곶감처럼 여기고 마구 빼먹는 편법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발본색원돼야 한다.

2020-09-20

퍼펙션 포인트

남자 100m 달리기 경기에서 10초의 벽이 깨진 것은 1968년 멕시코 올림픽 경기 때다. 미국의 짐 하인즈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100m를 9초95로 돌파했다. 이후 9초86(칼 루이스), 9초74(포웰)로 신기록이 갱신되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경기에 와서는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에 의해 9초7의 벽이 깨진다.0.1초의 벽을 깨기 위한 스포츠계의 도전은 늘 흥밋거리다. 인간의 한계가 만들어내는 최고의 기록을 ‘퍼펙션 포인트’라 한다. 인간이 넘어설 수 없지만 끈질기게 도전하고 가까이 갈 수 있는 최고의 기록을 말한다. 이런 기록에 대한 도전과 좌절은 스포츠를 관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흥미와 매력을 선물한다.1982년 조난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미국 MIT공대 휴허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로봇의족을 차고 71m 암벽등반에 성공한다. 일반인으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한계에 대한 도전이다.히말라야 8천m급 16좌를 세계 최초로 완등한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지난해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으로 선정됐다. 대한체육회는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의 인생철학이 국민 모두에게 희망을 준 점 등이 스포츠 영웅 선정 이유라 했다.이처럼 인간은 한계를 알면서도 한계에 도전한다. 그들의 도전이 비록 0.1초의 한계 극복에 그칠지라도 인류가 함께 느끼는 한계 극복의 통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스웨덴의 아르망 뒤플랑티스가 18일 이탈리아서 열린 세계대회에서 남자 장대높이뛰기 결선에서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외신에 따르면 그가 세운 기록은 종전보다 1cm가 더 높은 6m15다. 1cm의 한계를 뛰어넘는데 무려 26년의 세월이 걸렸다. 인간의 도전정신에서 묻어나는 신선함이 느껴진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9-20

‘법꾸라지’ 공화국

안재휘논설위원공자는 도(道)를 일러 ‘솔선해서 행하는 것’이라 했고, 정(政)은 곧 ‘법제와 금령’을 뜻한다고 했다. 또 형벌을 주어서 균일하게 만드는 제(齊)에 치중하면 백성들이 형벌을 면하려고만 하고 부끄러움이 없어진다(齊之以刑 民免而無恥)고 경계했다. 법(法)은 야만의 시대, 무질서를 극복하는 데 있어서 인류에게 가장 유용한 도구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말처럼, 법이 과잉지배하는 사회가 되면서 무치(無恥)한 인간들이 양산되고 있다.지난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조국 사태의 논란들이 최근 들어 본격적으로 법정에서 다뤄지기 시작하면서 뜻밖으로 ‘법꾸라지’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조 전 법무장관의 아들 가짜 인턴증명서 발급 혐의를 받는 최강욱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경심 교수 모자가 200회에 이르는 모든 질문에 증언을 거부했다. 앞서 조국 장관 자신도 정 교수 재판에서 303차례나 형사소송법 148조 근친자의 증언 거부권을 들어 증언을 거부했었다.해석은 의외로 쉽다. 형사재판은 기준이 엄격해서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아무리 혐의가 짙어도 무죄가 나올 수 있다. ‘참말을 할 수도 없고, 위증의 죄를 무릅쓰고 거짓을 말할 수도 없어 최상의 선택을 한 것’이라는 풀이가 정확할 것이다.조국 일가의 ‘법꾸라지’ 행태는 일반 국민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몰라서 못 하고, 무서워서도 못한다. 수많은 피고인이 질문에 답변을 거부했다가 판사로부터 ‘개전(改悛)의 정이 없다’는 질책과 함께 괘씸죄까지 보탠 중형을 선고받고 있다.조국 일가는 도대체 무얼 믿고 이렇게 하는 걸까. 자기들 세상에 새로 판이 짜진 법원의 판결을 믿기 때문이다. 야릇한 일은 벌써 시작됐다. ‘우리법 연구회’ 출신인 서울중앙지법 김미리 재판장은 조국의 동생 조권 씨에게 웅동학원 교사 채용시험지 유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일은 정말 중요한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는 사실이다.조 씨 혐의의 핵심은 거짓 공사대금 채권 확보 명목으로 가족끼리 짜고 치기 소송을 벌여 웅동학원에 115억 원 손해를 끼쳤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교사 채용 지원자 두 명에게 시험지를 빼주고 뒷돈 1억4천700만 원을 받은 것도 시험지 유출만 유죄고 뒷돈은 무죄라고 판시했다. 돈 심부름한 사람은 징역 1년 6개월을 받았는데, 시키고 돈 받은 사람은 무죄라니 참으로 해괴한 판결이다. 이제 어떤 가당찮은 일들이 펼쳐질지 충분히 예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지난해 조국 사태나, 최근의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논란을 보면서 이 나라가 여전히 초엘리트를 자처하는 성층권 ‘법 기술자’들이 지배하는 ‘법꾸라지’ 공화국임을 새삼 절감한다. ‘불공정’에 눈물짓는 민심은 아랑곳없이 ‘불법’만 아니면 된다며 뻗대는 지도층 위정자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한 행태에 넌더리가 난다.

2020-09-20

지방의회 제멋대로 의정, 부끄럽지도 않은가?

손경찬전 경북도의회 의원·칼럼니스트지역의 지방의회가 후반기 의장단과 위원장을 새로이 선출하고 후반기 의정을 이끌어가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말들이 많다. 포항시의회가 후반기에 들어서자마자 원(院)구성으로 몸살을 앓았고, 최근 상주시의회에서는 의장불신임 의결이 기화가 돼 법정 문제로까지 번졌다. 지방의회 의원들이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밥그릇싸움인 것이다.포항시의회의 의원수는 총 32명으로 이중에서 국민의힘 19명, 더불어민주당 10명, 무소속 3명이다. 굳이 세(勢)로 따지자면 국민의힘과 민주당·무소속이 6대 4인데, 민주당에서는 후반기 상임위원장 배분에서 40% 정도는 민주당·무소속에게 배분돼야한다며 밀어붙였고, 뜻대로 안 되자 의장불신임안을 불쑥 제출했던 것이다.과거 60년간 전혀 볼 수 없었던 의장불신임 건이 작년부터 전국 지방의회에서 곧잘 등장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대구동구의회에서 의장불신임이 의결되자 해임당한 의장이 소송을 걸어 그 직을 되찾은 사례가 있다.지방자치법 제55조 제1항을 보면 ‘지방의회의 의장이나 부의장이 법령을 위반하거나 정당한 사유없이 직무를 수행하지 아니하면 지방의회는 불신임을 의결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지방의회의 의장이 법적으로 잘못하면 그에 맞게 제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상주시의회에서 의장불신임 발의사유 가운데 첫째가 ‘의장이 의회의 위상과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것인데, 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이 두루뭉술하게 헐뜯기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두 번째와 세번째 발의 사유는 지방자치법상의 불신임사유에 전혀 맞지 않는 내용인즉, 전반기 의장 선거와 후반기 의장선거에서 당론을 무시하고 정당내 의장 내정자가 있었음에도 따로 나가서 당선됐다는 게 사유였다. 기가 찰 노릇이다. 설령 정당내에서 그렇게 정했더라도 그것이 지방자치법상에서 의장을 불신임할 수 있는 사유는 되지 않음이 분명한데 강행한 것이다.그러면서 의안처리과정에서 표결하기 전에 당사자에게 소명기회를 줘야함에도 신상발언을 봉쇄했고, 회의규칙상 질의와 토론을 거쳐야 함에도 생략하고 표결하는 등 위법을 저질렀다. 그랬으니 해임된 의장이 상주시의회의 위법 행위에 대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은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지방의회는 헌법기관이다. 헌법과 법률 및 의회 의사규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운영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위법하면 안 될 일일 터, 지방의회가 중앙정치를 닮아 정쟁 일쑤고, 적당한 구실을 붙여 인민재판식으로 몰아붙여 의장의 자리를 박탈하는 것은 반(反)의회적이다. 상주시 기초의원들이 중앙정치의 폐습을 풀뿌리민주주의 현장에 옮기려는 처사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의장이 법령 위반과 직무 태만이 없음에도 해당되지도 않는 불신임사유를 갖다 붙여 발의하고는 의원 표결권, 의회의 자율권을 앞세워 마치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두르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된다. 기초의원과 도의원을 지낸 필자가 보기에도 지난 8일 발생한 상주시의회의 의장불신임 과정에서 보인 제멋대로 의정은 문제가 있다. 시민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2020-09-20

동의합니까?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지난 여름 땡볕더위와 태풍에 지친 나뭇잎들이 쉴 곳을 찾아 거리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걸 보노라면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소슬바람에 코트 깃을 살짝 치켜세우고 사랑하는 연인과 팔짱을 끼고 고궁돌담길을 걸었으면 하는 기분이다. 말라비틀어져 가는 중년 사내의 심장 한 구석으로 촉촉한 물기가 스며든다. 왁자지껄하던 사회적 모임이 코로나로 잠시 정지되니 사람 만나는 일이 뜸하다. 의도하지 않게 사회분위기가 고독의 계절 가을에 어울리게 되었다. 그동안 너무 뒤섞여 지낸 탓에 소홀했던 자신을 돌아보고 조금 느리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가을빛이 높은 요즘, 은근히 쓴 커피향이 제 몸뚱이에서 풍겼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고독을 좀 폼 나게 즐겨보고 싶어 집을 나선다. 고독을 즐기는 것은 아무래도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 잔을 들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맞은편에 아리따운 여인이 앉아 조곤조곤 말상대를 해주는 것도 괜찮겠지만 고독한 분위기는 앞자리가 비어 있는 게 좋다. 평소 잘 들리던 커피전문점으로 발길을 옮겨본다. 출입문에 붙은 코로나 방역 경구가 눈에 확 들어온다. ‘마스크 미착용 출입불가’, ‘손 세척’,‘테이크아웃만 가능’ 등등. 고독한 분위기를 즐기려던 마음은 사치다. 죽음과 맞선 인간의 처절한 투쟁으로 여겨졌다면 너무 과한 생각인가? 카페 안으로 들어간다. 탁자와 의자는 패잔병처럼 한쪽 구석에 쌓여있다. 객장 안에서 음료는 안 된다는 무언의 시위다. ‘주문한 커피를 가지고 냉큼 나가야겠다’고 느끼는 순간, 부동산 계약서 같은 종이뭉치가 들이닥친다. ‘발열여부, 출입시간, 이름, 전화번호, 개인정보동의….’ 횡으로 뻗어나가는 칸들이 죄수를 기다리는 독방 같다. 국가적인 재난상황에 대응하는 착한 시민의 책임을 다해야 된다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꼼꼼히 적어나간다. 잘 적어나가던 펜이 ‘개인정보 동의’,‘개인정보 제3자에 제공 동의’란에 이르게 되니 주춤하게 된다. 개인정보가 볼모로 잡힌다. 코로나로 영업장을 출입하는 모든 사람들이 기재하도록 행정명령이 발동된 것이다. 영업을 하는 곳에서 기록물을 잘 보관했다가 행정기관에 제출할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 혹시 원본은 제출하고 복사본을 업소에서 가지게 되면 어쩌나하는 생각에 이르자 덜컹 걱정이 된다. 너무 무분별하게 개인정보가 나돌아 다니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개인정보보호에 관한 엄격한 법이 정착되어 개인이든 기관이든 함부로 사용치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잊을 만하면 개인정보를 팔고 사는 사건이 생긴다. 사생활 보장은 민주주의의 근본이다.세상이 디지털화되면서 사생활 노출이 언제 어디서든 가능한 세상이다. 집을 나서면 하루 동안의 내 동선은 온통 폐쇄회로 천국에 갇힌다. 스마트폰은 실시간 위치추적기다. 신용카드는 내 생활패턴의 징표다. 오로지 무인도에서 고립된 자만이 사생활 비밀이 유지될까? 그도 드론의 고공접근을 막을 도리는 없을 것이다. 수집된 방대한 데이터의 최종 보관자는 누구인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악령은 법과 도덕을 이기곤 했다.

2020-09-20

U자형 칠곡관광벨트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한다

백선기 칠곡군수위기는 기회의 또 다른 이름이다. 기존 방식으로 위기를 넘기고자 했던 기업과 국가는 역사의 이름으로 사라졌지만 시대 흐름을 명확히 읽고 위기 이후의 시대를 준비한 국가와 기업은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이했다.현대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위기인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고 최악의 위기 상황에 놓인 것이 바로 관광산업이다.관광산업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피해를 보면서도 복구는 가장 늦다. 비단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코로나19로 위기에 빠진 관광산업도 생존을 위해 급변하고 있다.언택트 시대에 걸맞은 비대면 소비와 안전한 여행이 키워드가 되고 있고, 여행 유형의 개별화와 소규모화, 위생과 거리 두기가 장소 선택의 결정적 요인으로 떠올랐다.특히, 칠곡보생태공원 등과 같이 확 트인 야외 공간과 자연 친화적인 곳은 선호도가 급상승하고 있으며 관광버스를 이용한 단체관광 보다 개인 자동차로 떠나는 가족 단위의 소규모 개별관광이 대세로 자리 잡으며 가족 단위의 체험형 관광이 주목받고 있다.이로 인해 해외가 아닌 국내로 발길을 돌리는 관광객이 급증하며 국내 관광지의 가치가 상승하며 재조명받고 있다.앞으로 당분간 코로나19와 함께하면서 코로나 이후를 준비하는 것이 현실적인 자세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관광산업의 재개와 정상화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이에 칠곡군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해 관광산업 활성화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낙동강을 중심으로 좌우 강변으로 이어지는 ‘U자형칠곡관광벨트’ 막바지 마무리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U자형칠곡관광벨트는 2012년부터 9년에 걸쳐 이어온 역점 사업이다.2022년 완공을 목표로 자연과 생태, 호국과 평화, 역사와 문화, 예술 관람과 체험을 한 곳에서 할 수 있는 매머드급 복합관광 단지로 전체 면적은 약 3㎢로 총사업비는 2천억 원가량 투입되는 대규모다.무엇보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광활하게 형성된 확 트인 공간에 조성되어 사회적 거리 두기가 쉬워 비대면 관광지로서도 손색이 없다. 또 대구, 구미, 김천 사이에 있는 지리적 장점과 가족 단위의 체험 관광에 특화되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큰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U자형칠곡관광벨트가 완성되면 호국 평화를 테마로 한 맞춤형 체험 관광산업을 통해 지역 정체성 확보와 경제 활성화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U자형칠곡관광벨트에는 △칠곡보생태공원 △관호산성 둘레길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칠곡보오토캠핑장 △칠곡보야외물놀이장 △꿀벌나라 테마공원 △향사아트센터 △음악분수 △사계절썰매장 등이 들어섰다. 이어 △호국문화체험테마공원 △애국동산 다목적광장 △공예테마공원 등의 사업은 2022년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지난달 14일 개장한 100m의 레인을 갖춘 칠곡보 사계절썰매장은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슬라이드에 3번의 굴곡이 있어 경사면을 타고 미끄러지듯 바람을 가르며 내려오면서 짜릿한 하강체험을 할 수 있다.전동카트 체험장, VR 체험장, 어린이 놀이터 등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코스가 마련돼 있다. 코로나19로 강화된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제한적으로 운영했음에도 입소문을 타며 인근 도시에서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몰려오는 등 큰 인기를 끌도 있다.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다. 지금의 이 시기는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렵지만 어둠이 짙을수록 새로운 태양이 뜨는 아침이 멀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역사는 새벽과 새로운 아침을 준비하는 자의 몫이었다.위기를 넘기면 희망이 온다는 운외창천(雲外蒼天)의 격언처럼 코로나 먹구름 속에서도 우리의 계획을 차분히 실현해 칠곡의 희망찬 미래를 그려나가겠다.U자형칠곡관광벨트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힘차게 열어갈 것이다. 국민의 관심과 성원을 당부한다.

2020-09-20

초록등대

등대 여권을 받았다. 조카와 군산의 근대역사박물관에 들어가니 입구에 3층 높이의 하얀 등대가 버티고 섰다. 파란 지붕을 얹은 것이 그리스의 어느 섬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박물관에 어떤 것이 있는지 동선을 보려고 팸플릿을 받으러 갔다. 안내데스크에서 초록색 표지의 딱딱한 여권 모양의 수첩도 손에 쥐어 주었다. 펴보니 전국에 있는 등대 지도와 그중에 어떤 곳엔 도장을 찍을 수 있고 완성하면 기념품도 주는 이벤트였다.포항에는 오래된 대보등대와 국립등대박물관이 있으니 집에 돌아가면 얼른 달려가 여권에 확인도장을 두 개나 받아야지, 방학을 이용해 남해의 섬에 홀로선 등대도 접수하리라 다짐을 했다. 하지만 삶이 언제나 계획대로 되던가. 호미곶 해맞이광장에 자리 잡은 등대박물관을 오늘에야 찾았다. 구룡포 읍내를 지나서 가야 하는데,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효과인지 신항만 도로에서 내려서자 막히기 시작한 길은 읍내 전체가 주차장으로 만들었다. 항구를 빠져나오니 새로 난 길은 한산하게 뚫려 달리기 좋았다. 파란 하늘이 손에 닿을 듯 다가오고 옆으로 바다가 내내 같이 달렸다.해맞이광장도 주말이라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하지만 국립등대박물관은 관람객이 거의 없어 우리 차지였다. 체온 측정 후 방문자 명단을 작성하고 유물관에 입장하니 입구에 엽서를 만드는 코너를 따로 마련해두었다. 등대박물관 스탬프 15가지와 항로 표지 스탬프 10개로 하얀 엽서에 나만의 무늬를 그려 넣을 수 있었다. 인어공주, 조가비, 물고기 한 마리, 대보등대, 상생의 손을 찍어 내 엽서를 완성했다. 그 외에도 아이들이 좋아할 등대 모양 접기, 등대 탁본 등 체험거리도 다양했다. 등대 학교입학이라는 팸플릿을 들고 더 안으로 들어갔다.세계 최초의 등대인 파로스 등대는 BC 280년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항구에 세워졌고 우리나라 역사서에 등대가 처음 등장한 것은 삼국유사였다. 아유타국 지금의 인도에서 온 신부를 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이 맞이하는 장면이다. 횃불로 배를 안내했다고 하니 등대의 옛 모습이다.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등대를 구성하는 것들이 전시돼 있다. 우리나라 곳곳의 등대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이 이제는 제 역할을 다하고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오래전 바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등대에 오르내린 대원의 등대일지도 보이고, 그때 받은 월급 명세서도 있었다. 손으로 쓴 월급 명세서 여백에 받은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 항목을 조목조목 적어놨다. 중학등록금 8000원, 주식, 부식, 병원. 몇 가지 되지도 않았는데 곗돈 380원이 모자란다고 적혀있다. 등대원의 힘겨운 삶이 고스란히 보인다. 등대지기란 노래를 들으면 아련해지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유물관을 나오니 오래되고 소박한 옛 박물관이 역사관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옆에 호랑이 형상이 늠름하게 앉았고 하얀 등대가 점잖게 섰다. 1903년에 지은 대보 등대이다. 100년 넘은 역사를 간직한 지금은 호미곶등대로 부른다. 오래전 이곳에 와서 달팽이 모양의 계단을 밟고 올라봤던 기억이 있다. 박물관의 여러 곳이 닫힌 상태고 체험관은 공사 중이라 들어갈 수없었지만 홈페이지를 보니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또 한 번 와봐야지 했다.김순희 수필가등대박물관 앞바다에 초록 등대가 있다. 우현 표지인 빨간색과 좌현 표지인 흰색은 어느 항구에서나 자주 보지만 초록은 드물다. 근처에 암초가 많으니 조심하라는 신호이다. 신호등에 초록 불이 켜지면 사람이든 차든 길이 열린다는 뜻인데 바다에서는 조심조심해서 가라는 당부를 초록 등대로 말해준다.초록 등대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복잡한 구룡포 읍내 쪽이 아닌 임곡 방향으로 잡았다. 동해라 일몰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해질녘의 바다의 노을은 구름과 함께 나름의 시를 써서 보여주었다. 구불구불한 길을 돌아오며 나는 바다만큼 아름다운 글을 쓰지 못하리란 걸 알았다. 겸손한 마음으로 그 순간을 사진으로 저장했다.

2020-09-20

‘서일병 구하기’공방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21대 국회 첫 대정부질문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서모씨 군휴가 특혜의혹 공방전으로 도배되고 있다.야권의 공격이 거세지자 여당 지도부가 총출동해 지난 해 조국 장관 사수에 나섰던 당시와 비슷하게 온갖 수사(修辭)를 동원해 추 장관 비호에 나서는 모양새다.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원내대변인이 “(서씨는)‘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말을 몸소 실천한 것”이라고 논평했다가 야권의 반발을 샀다.국민의힘 김은혜 대변인은 “반칙과 특권에 왜 난데없는 안중근 의사를 끌어들이나, 민주당은 대한민국 독립의 역사를 오염시키지 말라”고 질타했다. 논란이 커지자 민주당은 논평에서 관련 부분을 삭제하고 박 원내대변인이 사과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야권에선 민주당의 ‘서 일병 구하기’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무리한 논평이 나온 것 자체가 민주당 전체가 추미애 감싸기, 서 일병 구하기에 매몰돼 있다는 방증”이라 했다.문제는 여당 의원들의 지원사격이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켜 사과와 수습의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데 있다. 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카투사 자체가 편한 군대”라고 했다가 사과했고, 황희 의원은 서씨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당시 당직사병에게 “단독범”이라고 했다가 역풍을 맞았으며, 김태년 원내대표의 ‘카톡 휴가신청’, 정청래 의원의 ‘김치찌개 독촉’발언도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했다.무엇보다 왜 진작에 추 장관이 솔직히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았을까 의문이다. 추 장관 아들은 ‘엄마 찬스’로 군대를 면제받은 게 아니라 군생활중 병가혜택에 절차적 편의를 본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처럼 온나라가 시끄러운 것은 추 장관이 전혀 잘못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인 듯 싶다. 무엇보다 국민들은 더이상 국회가 생산적이지 않은 주제로 말싸움만 일삼는 걸 보고싶어 하지 않는다. 국회가 코로나19로 인해 큰 타격을 입은 영세소상인을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 것인지를 연구해, 새로운 지원책을 마련해 주기를 기대한다. 또 추석명절을 앞두고 지원될 긴급재난지원금 등이 포함된 4차 추가경정예산을 꼼꼼히 심의해주기를 바란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국민들의 바람과 희망을 아는지 모르는 지 눈살 찌푸리게 하는 공방만을 무한반복하고 있다. 국민들은 그저 정치권의 이같은 움직임을 차가운 눈으로 지켜볼 뿐이다.추 장관이 한때 글을 인용하곤 했던 ‘잡보장경’이란 불경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은 어느 때나 분노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이라서 욕을 먹으면 그것이 사실이니 성낼 것이 없고, 진실이 아닌데도 욕을 먹으면 욕을 하는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것에 불과한 것 아닌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울 것이 없다면 그걸로 족하다하면 될 뿐인데, 다들 왜 이러는 지 모르겠다.

2020-09-17

軍의 명예

명예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만은 특별히 명예를 소중히 하는 집단을 손꼽으라 하면 군인 집단만 한 데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군인의 임무는 전시와 평시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전시에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고, 평시에는 전쟁을 억제하고 전쟁에 대비하여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다. 이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재산을 보호하는 군의 임무와 직결되는 역할이라 하겠다.그래서 보통 군인 정신에는 애국심, 충성심, 희생정신, 임전무퇴의 기상 등과 같은 온갖 성스럽고 거룩한 요소들이 많이 포함된다고 한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언제든지 목숨을 내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군의 기본정신이다.목숨을 건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존엄한 명예를 지키는 것과 같다. 서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출발은 귀족층의 희생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로마시대 귀족층이 서민층보다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솔선수범한 전쟁참여 정신에 있다.남보다 먼저 내 목숨을 내놓겠다는 프랑스 칼레시의 시민정신도 남을 위한 나의 희생에 있었고, 영국 이튼칼리지가 귀족학교지만 일반시민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학교가 솔선해 보인 희생정신 때문이다. 이튼칼리지의 학생들은 1, 2차 세계대전에 자발적 참여로 2천명이 넘는 이가 목숨을 잃었다.군은 명예를 잃으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내던질 목숨이 없는 것과 같다. 추미애 법무부장관 아들 특혜와 관련해 여당 정치인이 추 장관을 감싸기 위해 군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경솔한 발언을 일삼아 걱정스럽다. 국가를 위해 정치적으로 목숨을 한번이라도 내던져 본적이 없는 정치인이 목숨과 같은 군의 명예를 짓밟을까 두렵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9-17

엎친 데 덮친 추석물가 비상

지긋지긋한 코로나 사태 속에 사상 유례 없는 긴 장마와 태풍 등의 영향으로 추석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특히 8월부터 껑충 뛰기 시작한 배추, 무 등 일부 채소류 가격은 전년보다 두 배 가까이 올랐으며, 추석 성수품인 사과 값 등 과일류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한국농수산 식품유통공사는 오랜 장마와 태풍으로 농작물의 산지 반입이 줄면서 채소류 등의 가격이 크게 올랐다고 했다. 제수용 수요가 늘어날 추석 명절을 앞두고 있어 앞으로 채소류, 과일 등의 가격은 당분간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덩달아 추석명절 제수비용도 크게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 조사에 따르면 올해 제수비용은 4인 기준으로 작년 동기간보다 5.3%가 오른 27만4천768원으로 나타났다. 송편의 경우 1kg 가격이 1만5천13원으로 전년보다 26.9%나 상승했다.채소류 등 재료가격 상승의 영향으로 일부음식점에서는 이를 반영해 가격을 올리는 곳도 나타나고 있다. 추석물가가 곳곳에서 이상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대구시는 16일 유통기관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민관 물가안정특별대책회의를 열고 추석물가 수급관리에 나서기로 했다. 시군별 물가대책종합상황실을 별도로 운영하고 농수산물과 개인서비스요금 등 33개 품목을 중점관리 대상으로 지정했다.일단 농수산식품 유통공사를 통해 비축 농산물을 대폭 늘려 공급하고, 농협 임시판매장 17곳에서 농·특산물과 추석 성수품을 저렴하게 판매할 계획이라고 시는 밝혔다.그러나 당국의 물가관리 시점은 다소 실기한 느낌이 없지않다. 좀 더 빨랐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이미 상당 부분은 물가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물가는 한번 올라가면 좀처럼 내리기가 쉽지 않다. 지금부터라도 수급물량을 늘리고 가격관리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명절 때마다 오름세를 보이는 시중의 유통구조도 획기적인 수급책을 마련, 개선책을 찾아보는 것도 이제부터 검토할 일이다.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시중 경기가 유난히 나쁘다. 물가상승은 서민가계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물가가 오른다고 농산물 생산자가 일방적으로는 덕을 보는 것도 아니다. 체계적 관리를 통해 소비자와 생산자가 상생하는 구조를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다.

2020-09-17

탈원전의 저주… 3년간 태양광 벌목 250만 그루

최근 5년간 산지(山地) 태양광 시설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307만여 그루의 나무가 벌채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태양광 벌목이 가장 극심했던 곳은 경북으로 5년간 79만7천512 그루(전체의 26%)였다. 문재인 정부의 무리한 탈원전 정책이 문제의 근원이다. 태양광 명목으로 마구 파괴된 산림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와 정밀감사, 생태계 및 환경파괴 영향 분석이 절실한 시점이다.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이 산림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 26만586그루, 2016년 31만4천528그루였던 ‘태양광 벌목’은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엔 114% 늘어난 67만4천676그루로 급증했다. 이어서 2018년 벌목량은 133만8천291그루로 2배가 폭증했다. 산림청이 뒤늦게 제동을 걸면서 지난해에야 48만319그루로 줄었다.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태양광 설치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잘려나간 나무는 모두 307만8천400그루, 2017년 이후 3년간만 무려 249만3천189만 그루다. 태양광 벌목 면적은 여의도 면적의 21배에 해당하는 6천65ha이고, 이 중 약 82.7%인 5천14ha가 현 정부가 출범한 이래 허가된 것으로 드러났다. ‘탈원전’의 저주가 산림자원 붕괴로 나타난 것이다.그러나 여당의 주장은 다르다. 민주당 그린뉴딜 분과위원장인 김성환 의원은 “2019년까지의 산지 태양광 전용허가 건수 1만491개 중 51%(5천357곳)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에 전용허가를 받은 것”이라고 강변했다. 어찌 됐건 정권의 성급한 선택 하나로 국토의 산림면적이 큰 폭으로 줄어들고, 기하급수의 나무가 사라진 현상은 참담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이러고서야, 정부와 환경 단체들이 태양광을 ‘친환경’이라고 우기는 주장이 말이 되나. 태양광을 할 조건이 안 되는 나라에서 과속으로 밀어붙이니 국익과 자연에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안긴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태양광은 ‘절대 선’으로 미화하고 원전은 ‘절대 악’인 것처럼 공격하는 탈원전 주창자들의 형편없는 단견 하나가 나라의 미래를 좀먹고 있다.

2020-09-17

기로에 선 대한민국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문재인 정권이 지향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일까? 현 정부와 여권의 요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운동권’이었다가 전향한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그 분들이 폭로하기 전에는‘민주화운동’으로 포장된 반체제 투쟁의 실상과 내막을 대다수 국민들은 모르고 있었다. 학생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좌경이념으로 무장한 소위 ‘종북주사파’들이 주축이 되어 이끌었다는 것이 공통된 주장이었다.우리나라의 학생운동은 일제 식민지 시대의 항일운동과 브나로드운동(계몽운동)을 시작으로 광복 후에는 4·19혁명, 6·3항쟁, 부마항쟁 등 독재에 저항하는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1980년대부터는 좌경이념이 학생운동의 중심축이 되면서 그 전 시기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상당히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념학습과 현장 활동을 통한 사회변혁을 기도하는 운동으로 변모했다. 노동계와 교육계, 종교계 등에 침투하여 대중적 기반과 영향력을 넓혀가다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정계에도 대거 진출을 했다.저들이 ‘촛불혁명’으로 일컫는 2016년 10월의 대규모 촛불시위를 계기로 정권을 장악한 좌파 운동권 세력은 마침내 그들이 꿈꾸던 세상을 실현할 호기를 잡게 되었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그들의 이념에 의거하면,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적 기반을 다진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다. 자유민주주의도 자본주의 시장경제도 그들의 이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래서 애국가도 태극기도 못마땅하고 헌법 조문에서도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란 말을 빼려고 한다. 아무튼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나라는 지금까지의 대한민국과는 다른 체제의 나라임이 분명한 것 같다.그들을 지지하는 국민들 중에 아직도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사람들은 아마도 지금 도처에서 불거져 나오는 그들의 민낯이 적이 당혹스러울 것이다. 백보를 양보해서 사회주의 체제를 인정한다고 치더라도 그들이 말하는 식으로는 안 된다. 위선과 파렴치가 상식이 되고 프로파간다와 포퓰리즘이 기본 정책이 되는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련을 위시한 공산권의 몰락이 그랬고 베네수엘라 같은 좌파정권 국가가 그래서 패망의 길을 걷고 있다.대한민국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전복하려는 기득권 세력에 동조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올바른 선택을 하려면 우선 실상을 알아야 한다. ‘민주화’니 ‘진보’니 하는 가면 뒤에 숨겨진 민낯도 볼 줄 알아야 하고, ‘개혁’이란 말로 포장된 불순한 야욕과 음모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내막을 아는 사람들의 증언과 폭로에 귀를 기울이는 국민들이 많아야 하고, 분별력을 가진 식자층의 사람들도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좌경이념에 영혼을 판 자들과 권력에 빌붙어 곡학아세하는 비열한 기회주자들은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좌파이념에 물이 덜 든 중도층을 일깨우는 운동이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래야 희망이 있다.

2020-09-17

선심 정치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선심정치는 정치권의 단골 메뉴이다. 전 국민에게 통신비 2만원을 주자는 정치권의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인구 5천만이면 총 비용은 1조원이다.1조원을 이렇게 쓰는 게 최선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간다. 선심정치는 금년 봄 선거에서도 큰 이슈였다.당시 야당이 모든 대학생과 대학원생에게 1인당 100만원의 ‘특별재난장학금’을 주자고 제안했을 때 명분은 코로나19 위기로 국민 모두가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생이라고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뜻은 좋아 보였다. 그러나 여당은 야당이 젊은 층의 지지를 받기 위한 선심정치를 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야당이 젊은 층 지지에 목말라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런 여당도 마찬가지였다. 당정이 긴급재난지원금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총선 전에 성사되어야 한다는 내부 전략을 만들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당초 재난지원금을 일부 저소득층 가구에 지급하겠다고 해놓고 여당이 전 국민 지급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선거를 앞둔 포퓰리즘이란 강한 비판을 받았었다. 결국, 여당이건 야당이건 재난지원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전략과 이를 통한 선심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은 똑같다 할 것이다.전 국민에게 통신비 2만원 정책도 흐트러진 민심과 추락하는 여당 지지율을 생각한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이 보다는 먼저 과연 그러한 정책이 다른 정책보다 우선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통신비 2만원이 개인에게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겠지만 1조원을 투입해야 할 현재 당면한 문제들이 너무 많다.필자는 30대 후반 포스텍 기숙사 사감으로 있던 시절 기숙사에서 학생이 큰 부상을 당한 일이 있어 들추어 업고 병원을 전전한 일이 있다. 결국 대구까지 가서 수술을 받았지만 당시 지역 간의 의료시설의 차이를 느꼈다.정년 퇴임 후 대구 현풍으로 오게 되었는데 대구까지가 가까운 거리는 아니기에 의료시설이 여전히 문제가 된다는 걸 느꼈다. 대구의 종합대 병원까지 가는 길은 결코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이제는 수원으로 와있는데 좀 더 편한 것을 느끼지만 여전히 서울의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오늘날 의료는 의사뿐만이 아니라 첨단 진료, 치료 시설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지역의 환자가 지역 중심도시로 그리고 다시 서울로 빠져나간다. 이제는 환자가 부족해서 지역 병원을 제대로 운영할 수가 없다는 불평도 나온다. 이러한 문제는 첨단 시설 투자가 대도시부터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데에서 비롯됐다.그렇다면 지금 1조원을 지역의 의료시설 강화에 투자하면 어떨까? 지역 의료시설도 좋아지고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의대정원 확대 등의 이슈를 둘러싼 갈등도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의료시설의 확대와 강화는 의대정원 확대를 위한 전제조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0-09-17

의식보다 기질!

세월이 흘러갈수록 대전에 오가는 횟수가 빈번해진다.어머니, 아버지 만나 뵙고 점심이나 저녁 식사라도 같이 해보자는 것이다. 1, 2주일에 한 번 이렇게라도 하고 나면 그 사이에 장남 된 마음이 한결 안정되는 느낌이다.그런데 이렇게 자주 대전에 가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사실, 대전 집에 들어서자마자 내 마음은 벌써 고등학교 동창생 병수나 또 승진 같은 친구들한테 가 있기 일쑤다.-논산에서 서대전역까지 얼마나 걸려? 오늘 한 번 대전 나들이 할 수 있어?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기 전에 나는 얼마 전에 논산으로 이사 간 승진을 호출한다. 오랜만에 한 번 대전 나들이를 해보라는 것이다. 혼자 살 집을 찾아 논산으로 내려간 지 하마 1년은 족히 넘은 것 같다.흔쾌히 동의해 오는 승진을 대전 옛날 중구청 거리 옆에 진로집으로 오라 하고 이번에는 친애하는 병수를 찾는다.-승진이도 온다구? 그려, 알았어.병수하고는 매일같이 전화통 붙들고 삼십 분씩 떠들어 대는 사이, 오늘 비도 오는데 승진까지 합류한 게 차라리 이색적이다.비 오는 진로집에 모여 앉은 세 사람, 둘은 아직까지 홀아비 신세, 오징어두부 두루치기에 보문산 막걸리 놓고 앉아 우리 셋만 있는 듯 떠들어댄다.승진한테 병수는 꽃씨를 좀 달라 했던 모양이다. 승진은 이 나라 산이란 산은 안 다녀본 데 없는데, 논산 집 마당에 채송화, 백일홍, 해바라기에 사루비아까지 심었는데, 깨며 상추는 또 얼마나 생명력이 드센지 뜯어도 뜯어도 끝없이 솟는단다. 홀어머니 모시고 혼자 사는 병수네 집도 마당 있는 집, 가시오가피 나무가 멋지게 자랐다. 뒷곁으로, 담벼락 밑으로 밭을 일궜는데, 뭐든 병수 손에 걸리면 제대로 안 자라는 것들이 없다.셋이 모여 떠들다 보니 화제가 어느새 정치 쪽으로 향하는데, 승진은 박 전 대통령을 어찌나 좋아 하는지 기가 막힐 지경이고, 병수는 또 현 대통령을 은근히 쎄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또 나대로 생각 없는 건 아니고.밖에서는 휴일의 비가 내리는데, 우리는 갑론을박을 하다 말고 막걸리를 부딪치며 서로 웃는다. 사실 우리 사이에서는 그 견해차이라는 것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다. 우리한테는 그렇게 해서 생기는 별다른 이해관계가 없으니 말이다.나이가 들면서 의식보다는 기질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을 믿는다. 우리는 의식을 넘어 친구로 남을 수 있다.이런 날, 비가 내리니, 참 좋다. 이 비는 꼭 옛날 우리가 어렸을 때 맞으며 낄낄거리던 그 비인 것만 같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9-16

책장 정리 단상

책장 정리를 합니다. 될 수 있으면 많은 책을 지니지 않으려고 합니다. 주어진 책꽂이 안에서만 책이 놀게 하고 덤으로 쌓이지 않게 신경 씁니다.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간엔 인터넷 서점을 통해 책을 사서만 읽었습니다. 집안은 온통 책 세상 같았습니다. 덜어내는 연습을 하면서 책 사는 습관도 줄었습니다. 불어난 신간은 중고서점에 팔거나 이웃에 나눔을 합니다. 그래도 책꽂이는 떠나보내기 힘든 책들로 무질서하기만 합니다.오래된 책 한 권에 눈길이 갑니다. ‘도덕교육의 파시즘’. 교육방송에서 그 책에 대해 토론한 걸 시청한 적이 있었지요. 패널이자 저자인 김상봉 교수의 애정 어린 비판. 그는 한국 사회의 일보전진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 중의 하나로 도덕교육을 꼽았습니다. 우리의 중고교 도덕 교과서는 낡은 노예적 가치관을 주입하는 선봉장 역할을 한다고 했습니다. 참된 자유인을 양성하는 게 아니라, 위계적 노예를 학습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개인의 자발성을 묶어놓은 채, 획일화된 질서의 옷자락을 부여잡으려 하는 면이 없진 않았지요. 테크놀러지의 첨단을 향유하는 21세기 현대인을 교육하는 방법으론 어울리지 않습니다.저자에 의하면 우리의 예절교육은 약자가 강자에게 바치는 일방적인 헌사를 의미한답니다. 그러고 보니 예절에 관한한 강자의 그 어떤 역할도 약자만큼 구체성과 강제성을 띠지는 않습니다. 공자가 강조하는 예의 본질이 인간 심성의 참된 교류에 있지 결코 위계의 선후를 따지는 치졸함에 있지는 않을 터인데 말입니다. 국가가 관장하는 이러한 지속적이고도 뭉근한 교육 덕(?)에 약자들은 근거 없는 주눅과 스트레스를 원치 않는 선물로 떠안았습니다. 유교문화와 일제 강점기도 모자라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이러한 노예도덕은 더 깊은 뿌리를 내렸지요.우리 유가 사상의 최대 목표는 체제 유지였습니다. 그 정당성을 부여 받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덕목이 충효일 수밖에 없었지요. 자연스레 높은 자를 위한 헌사로써 예의와 도덕은 필요했습니다. 충효의 보조 항목으로서 이 두 덕목이 따라붙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구요. 원래 예절이란, 마음의 진정성이 형식으로 표현되는 것을 말하지 않았던가요. 갑의 위치라 해서 진정성과 형식에 예외가 있진 않을 테지요. ‘인사에 선후 없다’라는 말이 예절의 본류였을 터인데, 실제 상황에서는 그것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지요. 체제 유지 하에서는 낮은 자를 위한 배려로써의 예의와 도덕은 언제나 묻히기 일쑤였지요. 그리하여 예절은 그저 강자 앞에서 표하는 약자의 리액션에 머물고 말았습니다.김살로메 소설가예절에서만큼은 지금도 인간 동격 개념을 적용하기엔 무리인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체제 유지에 원활한 시민을 기르는 게 우리 도덕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이 되어버렸다고 김상봉 교수는 우려합니다. 자유와 개인적 가치는 국가와 위계질서 앞에서는 언제나 나쁜 것이 되거나 하위인 개념으로 간주됩니다. 이때 종속의 마땅한 액션으로 예의와 도덕이란 덕목을 활용하는 것이지요. 도덕 교육이야말로 권력자와 집단 -그것이 아무리 부당한 존재라 할지라도- 이 약자와 개인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해 줬지요. 물론 무서운 것은, 약자이고 피해자였던 시민들이 집단이 될 때는 어느새 권력자의 위치로 가 있게 된다는 것이겠지만요.도덕 교과서의 이러한 파시즘적인 이데올로기는 여성을 보는 시각에서도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가혹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한데도 가부장적인 질서에 익숙해진 우리 여성들 스스로 그 노예교육의 전면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조차 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십여 년 전 딸이 중학생이었던 시절, 도덕 교과서 예절 편의 서술 방식이 떠오릅니다. 결혼 제도 하의 여성을 대하는 시각이 너무 전근대적으로 묘사된 것에 충격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기혼 여성이 시댁 식구들을 칭하는 모습을 예로 들까요. 아가씨, 도련님, 서방님 등과 같이 불러야 한다고 교과서에 명시 되어 있었습니다. 문득 아직도 그런가 싶어 도덕 선생님인 친구에게 물어 봤습니다. 다행히 호칭과 관련된 부분은 2015년 개정교육과정이 시작되면서 없어졌다고 합니다. 요즘은 양성 평등 부분을 강조하고, 가족 간의 질서보다는 갈등 해소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바뀌었다네요. 뒷북이지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도덕 교과서가 점점 진화되고 있으니 ‘도덕교육의 파시즘’도 개정판이 나올 때가 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새 책이 나오면 주저 없이 달려가 앞줄 서는 독자가 되겠습니다. 물론 그 책은 중고책으로 팔리기보단 오래오래 책꽂이에 꽂힐 확률도 높겠지요.

2020-09-16

품앗이

정미영수필가논두렁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높고 푸르다. 새떼들이 구름 사이로 미끌어지듯 날아가고, 건너편 대숲은 바람 따라 초록 물결을 일으킨다. 논 가장자리에는 백로가 부리에 미꾸라지를 문 채 한가로이 걸음을 옮기고 있다. 농촌이 빚어내는 정겨운 풍경을 정독하며 리듬감 있게 걷는 내 마음이 흐뭇하게 젖어든다.큰형님이 조카 결혼식을 앞두고 기별을 했다. 잔칫집에 미리 와서 음식 장만을 돕고, 하룻밤 자며 동서지간에 정도 나누자고 했다. 흔쾌히 가겠다고 했지만, 뒤돌아서니 걱정이 되었다. 동작이 굼뜨고 일머리를 모르는 내가 큰일 치르는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짐이 되면 어쩌나 신경이 쓰였다.명절 때 큰집에 가면 차례 상에 음식 가짓수가 많다. 내가 시집와서 처음 추석을 맞이했을 때 제수거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차례 지내고 동네 분들과 경로당에서 음식을 나눠먹는 인심이 온전히 남아 있다고 했다. 이번에도 결혼식을 앞두고 다양한 음식을 장만하리라.햇살이 투명하게 일렁이는 고샅에 들어선다. 고양이가 사뿐 걸음으로 걸어 다니고 닭이 홰치는 소리도 들린다. 담장마다 능소화가 웃음 짓고 호박이 줄기에 의지해 졸고 있다. 여유로운 정경이다.그런데 큰집 가까이 다가가니 마음이 바빠진다. 고소한 냄새가 내 얼굴에 훅 끼쳐든 까닭이다. 새벽부터 서둘러 왔건만, 혼자서 음식 만들기를 시작하셨는가 싶어 조바심이 인다. 안마당에 들어서니 몇몇 아주머니가 전을 부친다. 인사를 하고 집안으로 들어서니, 그 곳에도 재빠른 손놀림으로 한쪽에서는 나물을 다듬고 다른 쪽에서는 생선을 손질한다. 그들 사이에서 형님을 찾아 인사드린다.“동서야, 멀리서 오느라 고생했데이.”형님 친구 분들이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 음식 만들기를 시작했단다. 내 집에서부터 음식 장만할 걱정을 잔뜩 이고 왔는데, 살며시 웃음이 난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한쪽으로 비켜나 심부름거리를 찾았으나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 한참을 기다려도 내 몫의 일은 나타나지 않는다. 형님네 마을에서는 품앗이가 남아 있어 보기 좋다.시골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주택이나 길이 여기저기 헐리고 새로 고쳐졌다. 젊은이들 또한 학교나 직장을 찾아 고향을 떠나는 등속이 늘었다. 농사나 관혼상제에서도 노동을 노동으로 갚는 대신 돈을 지불하는 곳이 많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이 마을에서는 도움이 필요하다 싶으면 스스럼없이 품앗이를 한다. 서로 형님 동생하며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도와준다.누구네 집에 경조사가 있거나 환자가 생기면 이웃사촌들이 더 잘 알아서 챙긴다. 옛정을 그대로 체득할 수 있는 품앗이 전통이 명맥을 이어가니 반갑다.한 편으로는 부럽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이웃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아 서로 소원하다.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없어 왕래할 틈이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공지사항은 관리실에서 방송을 하거나, 게시판에 붙여놓는다. 이런 연유로 사람살이의 살가운 정을 품앗이에서 느낄 수 있어 고맙다.편의와 실리를 쫓아가는 세상이다. 나에게 손해가 되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고, 이익이 되면 두 발자국 앞서려는 경향이 늘었다. 그러나 품앗이는 동네 대소사를 제 일처럼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익을 바라거나 욕심을 부리면 불협화음만 이어질 뿐이다. 자칫 생산성은 줄어들고 이웃 간에 믿음마저 깨질 수 있는 것이 공동체에서 마음 맞추는 일이다. 오늘 형님네서 음식 준비에 손을 보탠 분들도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배추전이나 부추전을 서너 장씩 챙겨가는 것이 전부다.어우렁더우렁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들의 땀 흘린 얼굴이 힘들기는 해도 편안해 보인다. 도린곁에서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이웃과 어깨를 겯고 곰살궂게 마음을 나누며 사는 것도 삶의 재미이리라. 정신적으로 충만해 보이는 품앗이꾼들 앞에서 내 가슴이 푸근해진다. 마음에 환한 등불 하나 내걸린다.

2020-09-16

특별재난지역 추가 선포와 복구도 신속히

정부가 영덕, 울진, 울릉군 등 경북도내 3개 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제9호 태풍 ‘마이삭’과 제10호 태풍 ‘하이선’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이들 지역이 신속히 복구에 나서 피해 주민의 일상이 하루빨리 원상회복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특히 코로나19로 재정 사정이 악화된 해당 시군은 특별재난지역 선포로 복구 비용의 최대 80%까지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게 돼 피해복구에 대한 부담을 크게 들 수 있게 돼 큰 다행이다.정부는 종전과는 달리 지난 두 차례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의 신속한 복구지원을 위해 긴급 사전피해 조사를 벌였고, 특별재난지역 선포에 소요되는 조사기간도 대폭 단축했다. 기존보다 신속한 특별재난지역 선포로 피해주민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더 덜어주겠다는 의도다.그러나 태풍 피해가 컸던 경북 경주시와 포항시, 청송군, 영양군 등은 이번에 특별재난지역 지정에서 빠졌다. 경북도 관계자는 경주시(141억원), 포항시(95억원), 청송군(66억원) 등은 특별재난지역 지정 요건이 충족돼 추가 지정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영양군(36억원)도 우심지역으로 지정, 피해 보상이 일부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이번 특별재난지역 선포가 주민들 아픔과 함께하겠다는 정부 의지의 반영이라면 나머지 지역에 대해서도 서둘러 특별재난지역 지정을 하는 것이 옳다. 이들 지역의 신고 피해액이 이미 지정 요건을 충족했다. 이왕이면 정부 실사를 서둘러 추석 전 선포로 이들의 아픔을 달래주어야 한다.추석이 이제 10여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병 충격 속에 태풍 피해까지 입은 농민들의 허탈하고 막막한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주는 배려가 필요하다.한해 동안 정성들여 키워온 농산물이 일시에 쑥대밭이 됐으니 그들의 생계도 걱정이다. 경북도와 일선시군이 사과, 배, 포도 등 낙과 피해를 입은 농작물을 긴급 수매하고 있으나 상처 입은 농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다.수확기인 지금 농가는 일손마저 부족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피해복구와 수확을 동시에 하기가 여의치 않다고 한다. 정부의 특별재난지구 추가 지정과 조속한 피해 복구에 정부의 관심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2020-09-16

지역화폐 논란

지역화폐는 특정 지역에서 자체 발행해 특정 지역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화폐로, 일명 ‘고향사랑 상품권’으로도 불린다. 형태에 따라 지류형(종이상품권)·모바일형(QR코드 결제 방식)·카드형(선불·충전형)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때 30여개의 지역화폐가 도입됐다. 지역화폐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보통 시·군별로 백화점,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SSM)과 사행성 업소를 제외한 전통시장이나 영세상점 등으로 사용처가 제한된다. 올해는 서울·경기·세종 등 229개 지자체가 서울사랑상품권, 경기지역화폐, 인천e음, 여민전 등으로 연간 9조원 규모로 발행하고 있다. 소비자는 10% 할인된 금액으로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를 구입하고, 8%는 중앙정부 국고보조금으로, 나머지 2%는 지자체 예산으로 지원하고 있다.지역화폐의 유효성 논란은 최근 정부 산하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이 “지역화폐 발행으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관측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연구보고서로 촉발됐다. 연구진은 통계청 통계빅데이터센터(SBDC)를 통해 2010~2018년 3천200만개 전국 사업체의 전수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역내총생산(GRDP) 1% 규모로 지역화폐를 발행할 경우 동네마트·식료품점 매출만 기존 매출 대비 15% 증가했을 뿐 나머지 업종의 매출 증가는 0%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권유력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자신이 지역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도입해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지역화폐에 대한 평가절하라며 발끈했다. 이걸 계기로 지역화폐 정책이 힘겨운 서민의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명명백백히 밝혀지길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9-16

조국 일가의 ‘법꾸라지’ 행태, 도리 아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 혐의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경심 동양대 교수 모자가 모든 증언을 거부했다. 앞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정 교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303차례의 검찰 질문에 근친자의 증언 거부권을 명시한 “형사소송법 148조에 따르겠다”고 대답하며 증언을 거부했었다. 법무부 수장을 지낸 조국 일가의 소위 ‘법꾸라지’ 행태에 여론의 분노지수가 높아지고 있다. 1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 심리로 열린 최 대표의 ‘허위 인턴증명서’ 작성 혐의 공판에 정 교수 모자는 증인으로 출석했다. 최 대표는 지난 2017년 정 교수의 부탁을 받고 아들 조 씨의 허위 인턴 증명서를 발급해준 혐의로 기소됐다. 정 교수는 증인 선서를 마친 후 재판부에 ‘전면적으로 증언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후 정 교수는 140여 회, 아들 조 씨는 약 60회 증언을 거부하면서 총 200회 답변을 거부했다.검찰은 이날 신문 필요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법무법인 청맥에서 했다는 2011년과 2014년도 인턴도 허위”라는 새로운 주장도 펼쳤다. 검찰은 정 교수를 향해 “법무법인 청맥의 회신자료에 의하면 조 씨는 2014년 3월부터 2016년 8월까지 방학 중에만 4차례 인턴 활동을 한 것으로 돼 있는데, 당시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 재학 중일 때인데 방학에 한국에 와서 인턴을 했다는 뜻이냐”고 묻기도 했다.조국흑서로 불리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필진 권경애 변호사는 “수사 중에는 재판을 통해 밝히겠다고 진술 거부하고, 재판에서는 증언 거부”라며 조 전 장관을 “형사사법 역사에 길이 남을 법꾸라지”라고 비판했다.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조국 일가의 증언 거부에 대해 “참말을 할 수도 없고, 위증의 죄를 무릅쓰고 거짓을 말할 수도 없어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조국 씨와 그 일가의 유례를 찾기 힘든 집단 증언 거부 행태는 참담한 추태다. 평생 공부한 법 지식을 고작 이렇게 초라하게 써먹느냐는 항간이 비아냥을 부끄럽게 여겨야 마땅할 일이다.

2020-09-16

지금처럼 해서는 내일이 없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물고 뜯고 할퀴고 상처낸다. 싸우기를 좋아하는 백성인가. 대유행 감염병의 와중에도 다툼에 그침이 없다. 서로를 향한 삿대짓과 욕사발에 지치지도 않는 것일까. 상식과 이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어른이든 아이든 너는 누구편이냐는 눈치부터 살핀다. 편에 따라 모든 게 다 틀리든가 무조건 다 맞는다. 절반이 절반을 포기하는 사회. 주장과 고집만 무성한 사이에 사람들 심성만 고약해져 간다. 어른이 사라졌을까. 모두 한 쪽으로만 치우쳤을까. 경제도 나아지려면 한참 멀었지만 살림이 나아진다고 주변이 고요해질 턱이 없어 보인다. 코로나19도 끝내 물러가겠지만 분위기가 흉흉하긴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디서부터 병들었을까. 어떻게 고쳐볼 수 있을까.의인은 없다.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 이미 이천 년 전 성경이 고백한 바가 아닌가. 날마다 누군가를 콕 집어 나쁜 놈을 만들고 싶지만 돌아보면 나 자신도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마다 상대방 탓을 해 보지만 같은 숙제로 속을 끓였던 건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편을 갈라 열심히 싸워보지만 홀로 반추하면 내 그림자도 만만치 않다. 상대방의 구석진 모습을 밝혀내고 싶었지만 내 속의 어두움이 내내 뒷꼭지를 어지럽힌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오늘 모두의 모습이 아닌가. 이건 ‘신이 세상을 벌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벌하는’ 중이 아닐까. 모두의 문제를 상대의 문제로만 주장하는 못된 버릇을 이제는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나쁜 버릇은 편을 가르지 않는다. 누구도 그 버릇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세상천지에 의인 열 명만 있어도 세상을 구해보겠다던 하나님의 음성이 신음처럼 들린다.나라가 조용해질 방법은 없는가. 국민이 편안해질 방법은 없는가. 오늘을 하염없이 탓하기보다 내일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스웨덴의 10대소녀 그레타툰베리(Greta Thunberg)는 인류가 초래한 기후변화가 내일을 살아야 하는 미래세대에게 끼칠 악영향을 짚어내며 오늘 기성정치인들의 나태함과 안일함을 꼬집고 있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만 몰두하는 어른들의 게으름을 지적하였다. 내일을 생각하는 책임이 모두에게 있음도 짚어내었다. 한 사람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지구일병구하기’를 진행 중이다. 어른보다 아이가 나아보인다. 세상을 구할 힌트는 오늘보다 내일에서 찾아야 한다. 편갈라 싸우는 오늘보다 힘모아 건져낼 내일이 참으로 무겁다.오늘의 다툼도 내일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당장의 이익에 집착하는 동안 내일을 향한 방법을 찾을 길이 없다. 속시원하게 한 방 먹이는 집요함으로는 세상이 한 발짝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 어떤 문제도 우리 모두의 문제다. 남의 편만 틀린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 나만 맞는 일거리도 천지에 없다. 조금씩 더 겸허해지고 조금씩 더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하다. 어려울 때마다 끝내 구해내었던 보통사람들의 국난극복유전자에 다시 기대를 건다. 이대로는 안 된다. 지금처럼 해서 내일을 구할 방법은 없다. 우리의 내일은 모두에게 달렸다. 한 사람도 예외는 없다.

2020-09-16

누가 변화를 두려워하랴?!

김규종 경북대 교수언젠가 솔깃한 말을 듣고 실천에 옮긴 적 있다. 바라는 소원이 있으면, 마음속에 가두지 말고 날마다 글로 쓰라는 것이다. 간절한 소원을 위해 뛰어내리는 ‘와호장룡’과 달리. 혼잣말로 소원하는 것보다 소원을 글로 쓰면 손과 눈과 마음이 함께 움직여서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소원을 쓰려고 만년필도 사고, 공책도 준비했다. 그날부터 최소 3년 동안 날마다 소원을 썼다. 드물게나마 잊어버린 날이 있지만, 꾸준하고 진지하게 소원을 쓰고 또 썼다.소원은 소박한 것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문필가!’ 고작 12글자로 이루어진 소원을 가졌던 날들을 돌이켜본다. 20대 청춘의 나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내가 부둥켜안을 때….”로 시작하는 노래를 즐겨 부르곤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다시 거침없이 흘러도 검은 머리에 백발 돋아나도 사람 사는 세상은 오지 않았다. 그저 돈 많은 사람 숫자만 늘었을 뿐.그러던 어느 날, 소원 쓰기를 그만두었다. 그것은 도달할 수 없이 아스라한 저 너머의 신기루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려면 세상이 변해야 한다. 그런 세상은 어느 한두 사람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왜냐면 변화가 어렵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치가들은 언제나 변화와 개혁을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진 적은 없다.변화를 말하는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이율배반이다. 나이 먹으면서 깨닫게 된 대목이다. 세상을 향한 손가락질과 비난의 눈길과 매서운 말길을 거두어야 한다는 것! 이토록 자명하고 단순한 이치를 깨우치지 못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사람을 한탄하고 시대를 나무랐던 자신에게 되묻는다. “너는 변하고 있는가?!” 고개를 흔들면서 자탄(自嘆)한다.자신의 정의를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당성을 믿는 사람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거처(居處)하는 세상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은 돌처럼 굳건하다. 지금과 여기에 만족하는 사람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항상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가진 것, 지킬 것, 누릴 것 많은 사람은 변화를 싫어한다. 그래서 보수와 수구(守舊)는 변화와 거리를 둔다. 변화는 진보와 혁명의 편에 선 자의 전유물이다.세상과 다중(多衆)에게 향했던 손가락으로 내 가슴과 머리를 가리키면서 중얼거린다. ‘너는 결코 세상을 바꿀 수 없어!’ 이유는 너무 자명하다. 나는 하나의 타자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고유한 사고방식과 습관과 가치관, 역사의식과 행동방식이 있다. 그것은 석영이나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게 흉중에 자리한다.어떻게 바꾸겠는가?! 그것을 바꾼다 해서 전혀 다른 꿈같은 세상이 열리기라도 한단 말인가?!세상을 바꾸려 했던 시절을 보내니 남은 명제는 단출하다. “그래도 나는 변할 것이다!” 변화를 향한 더운 열망이 오늘도 나를 재촉한다. 벌개미취가 봄처럼 환한 아침나절 지나간다!

2020-09-16

교육 싱크홀? 온라인 수업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선생님은 시간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학생이 교무실로 오더니 다짜고짜 물었다. 당황스러웠지만, 흥미로웠다. 학교가 질문 사각지대가 되면서부터 필자 질문도 말라버렸기 때문에 질문을 받는다는 것은 즐겁다. 학생 말이다.“‘시간을 파는 상점’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거기에 나오는 내용 중에 시간은 금이다는 말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좋은 말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 말이 때론 사람들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어요.”학생들과 시간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학생들은 물리적 시간, 심리적 시간 등과 같은 시간의 종류에 대해 흥미로워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을 꼭 금처럼만 사용하라는 것은 어른들의 일방적인 강요 같아요. 시간을 금처럼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다르게 사용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학생들의 말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기에 필자는 학생들을 응원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기성세대와는 다른 학생들만의 시간 사용법이 있다는 것을 필자는 확신한다. 그리고 그 방법을 필자는 정말 배우고 싶다. 학생들은 환한 웃음을 남기고 총총걸음으로 교실로 향했다.학생들이 나가고 필자는 시간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딸아이 말이 생각났다. 올해 중학교 1학년인 아이는 중학교 입학 전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중학교 입학 후 학교생활에 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온라인 수업의 과제 이야기뿐이다.“아빠, 우리 3주 동안 또 학교 안 간다. 이제는 학교 가는 게 이상해. 과제나 해야겠다.”온라인 수업은 학교의 많은 질서를 무너뜨렸다. 물론 코로나19 예방이라는 국가 방역 차원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그 방법은 분명 크게 잘 못 되었다. 오류의 시작은 교육부가 콘텐츠 활용 중심 수업, 과제 수행 중심 수업을 무리하게 온라인 수업 유형으로 제시하면서부터다. 이 두 유형은 결코 학교 수업이 아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교육 관료들은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였다. 그 결과 전국의 95%가 넘는 교사들이 쌍방향 수업을 포기했다.그런데 그 포기가 학생과 수업 포기라는 것을 교육부는 알까! 학교와 교사가 포기하지 않아도 학생과 학부모가 학교 교육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어느 뉴스 제목이다.“학습지 교사도 이렇겐 안 해, 학부모들 원격 수업이 아니라 방치”지금의 원격 수업은 공교육 붕괴 주범이다. 말도 안 되는 원격 수업으로 학생들은 학교 수업 시간에 대한 감을 잊었다. 교사는 설명 대신 벌점으로 엄포를 놓기 바쁘다. 온라인 수업이 만든 교육 싱크홀에 이 나라 교육이 침몰 중이다. 교육이 완파되기 전에 교사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실시간 쌍방향 수업 플랫폼을 교육부 차원에서 꼭 만들기를 제안한다. 교육부(청)에 묻는다, 당신이 학생이면 지금의 온라인 수업을 들을 것인지!

2020-09-16

우리 안의 인종차별

요즘 미국에서는 프로농구 리그인 NBA 플레이오프 경기가 한창이다. 그런데 경기에 출전해 저마다의 기량을 뽐내는 선수들의 유니폼 등판에 이름과 백넘버가 아닌 구호들이 적혀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적혀있는 글들은 ‘Black lives matter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Equality (평등)’, ‘Vote(투표하라)’등으로, 모두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구호들이다. 선수들 대다수가 흑인이거나 흑인 혼혈로 구성된 NBA 리그이기에 선수들이 직접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움직임의 발단은 올해 5월에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었다.편의점에서 20달러짜리 위조지폐를 사용했다는 혐의로 백인 경찰관은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하려 하였다. 플로이드가 저항을 하자 경찰관은 그를 바닥에 눕히고 무릎으로 목을 짓눌렀다. 목이 졸린 플로이드는 숨을 쉴 수 없다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결국 그는 현장에서 의식을 잃었고 그날 밤 병원에서 사망했다. 경찰의 과잉진압 과정은 현장을 지나가던 행인에 의해 고스란히 촬영되었고 플로이드가 격렬한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상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이러한 사건은 미국 전역에서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었던 흑인들의 전국적 시위의 방아쇠가 되었다. 시위에 참여한 이들은 해당 경찰관에 대한 처벌 뿐 만 아니라 미국 사회에 만연해 있던 흑인에 대한 차별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것을 요구하였다. NBA선수들은 이러한 시위에 대한 지지의 의미로 시위대의 구호를 유니폼에 새긴 것이다.이런 인종차별 이슈는 단일민족국가라는 환상에 젖어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곤 한다. 우리나라가 정말 단일민족국가인가는 논의가 필요한 이야기이지만 그렇다 치고, 그로 인해 인종차별 이슈가 적을 수밖에 없는 국가이기에 그것에 대한 심각성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이러한 무지로 인해 최근 필리핀 누리꾼 사이에서는 #CancelKorea(한국을 취소하라) 라는 해시태그를 다는 움직임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한국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 위한 구호인데, 이것은 필리핀계 미국인 스타인 벨라 포치가 올린 한 영상이 발단이 되었다. 그가 공유한 영상 속 그의 팔에는 욱일기를 연상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한국인들은 댓글을 통해 그 문양이 역사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이에 포치는 한국인들을 향해 사과문을 올렸다.사과문의 내용은 “한국인들에게 6개월전에 새긴 붉은 태양과 16개의 광선 문신에 대해 사과한다. 그때는 내가 역사에 대해 무지했다. 그러나 내가 깨닫자마자 즉시 나는 이것을 가렸고, 이것을 제거하기 위한 일정을 잡았다. 나의 행동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며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내용이었다.그런데 이러한 충분한 사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누리꾼들은 해서는 안 될 이야기를 쏟아내고 말았다.포치의 출신 국가인 필리핀에 대해 “못 배워먹고 키 작은 사람들”, “가난한 나라”, “못생긴 민족”이라는 식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내고 만 것이다.이에 항의하기 위해 필리핀 누리꾼들이 #CancelKorea(한국을 취소하라) #ApologizeToFilipinos(필리핀 사람들에게 사과하라) #Apologizekorea(한국은 사과하라)와 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있는 것이다.포치 역시 “나를 공격하는 것은 괜찮지만 필리핀에 대한 공격과 비난은 참을 수 없다”며 항의의 뜻을 내비쳤다. 이에 뒤늦게 일부 네티즌들이 #SorryToFilipinos(필리핀 분들에게 사과한다)라는 해시태그를 달며 수습을 하고 있지만 한국인들은 이미 국제사회에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고 말았다.인종차별적인 시각은 앞으로 더 큰 문제들을 야기할 수 있다. 대한민국 사회는 더 이상 ‘한민족’이라 불리는 단일민족만이 존재하는 사회가 아니다. 이미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과 이주결혼여성들이 우리 곁에서 생계를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다문화 가정의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 ‘완득이’라는 소설이 나온 것이 벌써 12년 전이다. 수많은 완득이들이 이미 대한민국의 사회구성원이 되어 우리 주변에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인종차별적 시각을 거두지 않는다면 언젠가 대한민국에서도 인종차별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미국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행동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우리 안의 인종차별의 씨앗은 아주 사소한 태도로부터 싹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다른 국가 출신의 사람이나 다른 인종의 사람을 만났을 때 개인으로서의 그 사람보다 그의 국가와 인종에 먼저 집중하는 습관이다.학부시절 교양수업을 같이 듣던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저한테 궁금한 게 중국 얘기 밖에 없어요?” 그는 중국에서 온 유학생이었다. 나는 술자리에서 한참동안 그와 대화를 나눴는데, 대화의 대부분이 “중국은 어때?” “중국 사람들도 그래?”같은 식이었다.그는 내게 고민을 토로했다. 사실 그는 중국인이기 이전에 스물한 살, 내 또래의 여자애였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애나 진로에 대한 고민들을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그런 고민들을 나누며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는데, 사람들이 자신에게만은 오로지 중국 이야기만 묻는 것이 불만이라고 했다. 자기는 중국 국가대표로 여기에 온 것이 아니고, 그냥 나와 같은 학교 학생일 뿐이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 느꼈던 그 부끄러움은 외국에서 온 친구들을 대할 때 나의 태도의 기준점이 되었다.지금 내게는 두 명의 절친한 외국인 친구가 있다. 한 명은 우크라이나에서 왔고, 한 명은 영국 맨체스터에서 왔다. 그 둘 모두 내게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우크라이나에서 온 친구는 그놈의 ‘김태희가 밭 가는 나라’라거나 ‘장모님의 나라’와 같은 이야기를(이 얼마나 부끄러운 차별 발언인가), 영국에서 온 친구는 ‘두 유 노우 박지성?’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다는 것이었다.그들은 나와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내가 그들의 나라에 대해 묻기보다 그들 자신을 궁금해 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다가왔다는 이야기를 한다. 내게 그들은 ‘어디서 온 누구’가 아니고, 그저 ‘내 친구’일 뿐이다. 외국인 친구와 마음 터놓고 지내는 비결은 다름 아닌 그들이 외국인임을 잊는 것이다. 그들과 나의 피부색이나, 성장 배경 같은 차이에 집중하기 보다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느끼는 동질감에 집중하는 것이다. 차별은 차이에 집중하는 태도로부터 출발한다. 차이에 집중하지 않으면 차별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우리가 받아온 차별을 생각해보자. 일제강점기 내내 ‘조센징’이라는 이유로 억압받고, 아직도 못 배워 먹은 일부 서양인들은 우리를 향해 눈을 양쪽으로 찢는 액션을 보이며 조롱한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느낀다면 우리부터 우리와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 우리와 이 넓은 지구를 나눠 쓰고 있는 이들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을 거두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 글을 통해 한국전쟁 당시 우리와 함께 싸워준 국가 필리핀 국민들에게 #SorryToFilipinos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강백수싱어송라이터·시인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2020-09-15

형산강 하류에서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태풍으로 큰물이 지고 난 형산강 하류를 찾았다. 둔치나 다리 주위 곳곳에는 온갖 쓰레기며 쓸려온 풀과 나뭇가지더미가 잔뜩 쌓여져 있었지만, 하늘엔 언제 그랬냐는 듯 간간이 불어오는 산들바람 결에 조각구름만 한가로이 떠다닐 뿐이다.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서 한, 두 차례의 태풍이 일진광풍처럼 휘몰아쳤으니, 온 나라가 바싹 긴장과 우려, 안도의 시간을 보냈으리라 여겨진다.유난히 자연재난이 심했던 지난 여름날, 장마와 폭염, 연이은 태풍 등으로 막대한 피해와 손실을 가져왔다. 예기치 못한 기상이변의 정도가 컷을 테지만, 무방비와 난개발, 상황 오판에 따른 인재(人災)도 상당 부분 기인했음을 누구도 부인하진 못하리라. 해마다 되풀이되는 풍수해에 철저한 대비와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긴 하지만, 보다 근원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우지 않고서는 공염불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다.형산강 하류지역은 많은 것들을 품고 있다. 멈춘 듯 흐르는 물결 따라 다수의 동, 생물과 90여종의 조류 등의 생태자원이 있고 둔치에는 갈대나 억새 등의 갖가지 식물과 수목이 자라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산업화의 산실이 우뚝하게 서 있는 가운데 산책이나 해양레저로 사람들을 끌어안으며 너른 강폭만큼 친숙함을 더해가고 있다. 특히 경주를 거쳐 포항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와 문화를 품고 관광, 산업 등 다양한 자원을 활용해서 지역 상생발전의 성장동력으로 추진 중인 ‘형산강 프로젝트’는, 다소 난관도 있지만 환경복원과 도시재생을 통해 시민들의 여망를 담은 친수 여가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5년째 공사를 벌이고 있다.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했던가. 시민들의 쉼과 생태체험 교육장인 형산강전망대, 수상레저타운 물빛마루, 수변 테마꽃밭 형산강장미원, 강둑으로 조성된 상생로드 자전거길과 둔치의 황토길, 에코생태 탐방로, 신부조장터 보부상길 등 시민들이 즐겨 찾고 이용하며 긍정적이고 공감하는 부분도 많지만, 지난 달 초 우여곡절 끝에 개장한 ‘형산강 야외물놀이장’은 장마와 태풍으로 벌써 두번씩이나 물에 잠겨 그야말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렸다.형산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60억원을 들여 조성한 야외물놀이장의 침수는 이미 예상됐었다. 직접 가서 보니 침수로 인해 5개의 대형풀장과 부대시설 주위엔 많은 양의 토사와 쓰레기더미가 쌓여 물놀이장의 형태마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15년여 형산강변에 살아본 필자로서는 홍수가 나면 침수피해에 시달려 2006년 오천으로 이전하기 전의 포항운전면허시험장 그 자리에 하필이면 왜 물놀이장이 들어섰을까 반문해본다. 타지역의 운영사례를 접목했다 하지만, 과연 누구와 무엇을 위한 행정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근시안적인 정책과 지엽적인 입안으로 인해 애꿎은 시민의 혈세만 낭비하는 꼴이 돼버리는 건 아닌지 씁쓸하게 여겨짐은 나만의 기우일까. 그래도 한창 공사 중인 형산강 상생인도교나 신부조장터공원, 뱃길복원사업 등을 보다 신중하고 면밀하게 검토, 보완하여 수변 친수 위락시설 이용객들의 몸과 마음이 치유되고 시민들이 행복한 도시를 만들어갔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2020-09-15

트럼프의 ‘자아도취형’ 정치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밥 우드워드의 저서 ‘분노(Rage)’가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폭로로 일약 유명해졌으며 현 워싱턴 포스트 부편집인이다. 그는 언론의 노벨상격인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그가 트럼프와의 인터뷰를 통해 발간할 이 책은 대통령 트럼프의 내면을 볼 수 있어 더욱 흥미를 끈다. 트럼프는 왜 이 유명 언론인과 18회나 만나 자신의 입장을 그대로 표출했을까. 11월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발간된 이 책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이 책의 내용 중 우선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코로나 사태에 대한 트럼프의 이중적 모습이다. 코로나 발단 초기 금년 1월 말과 2월 초 트럼프는 코로나의 심각성을 인식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밥 우드워드는 트럼프의 ‘코로나는 독감의 5배나 위험하여 치명적’이라는 발언을 그대로 소개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골프를 치고 마스크까지 착용하지 않았으며 3월 17일 ‘코로나는 별것이 아니다’고 폄하하였다. 이는 트럼프의 코로나 위험성에 대한 오판일까 아니면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계산된 언행일까. 결국 미국의 코로나 확진자는 663만 명을 넘었고 사망자가 19만7천명에 이르렀다.또한 김정은의 친서 27통도 이 책을 통해 공개되었다. 밥 우드워드는 친서의 내용을 녹취하여 비공개된 친서까지 공개해 버렸다. 김정은의 편지에는 트럼프에게 ‘각하’(your excellency)라는 최 존칭어를 사용하고, ‘존경심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아첨하고 있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빈손으로 돌아간 김정은은 트럼프와의 만남이 ‘영광의 순간’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정상 간의 친서가 양국의 합의 없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은 외교 관례에 크게 어긋난다. 친서 폭로는 트럼프의 자기 과시욕의 발로이겠지만, 김정은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트럼프 대통령은 대담에서 자신이 ‘위대한 대통령’으로 각인되기를 희망하였다. 트럼프도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루즈벨트, 링컨처럼 러치모어산 화강암 20m 크기의 큰 바위 얼굴로 기억되길 바랐다. 4명의 대통령은 모두 미국인들의 인권과 자유를 위해 가장 헌신한 대통령이다. 트럼프는 인종 차별, 이란과의 핵 협정 파기, 해외 미군 주둔 비의 턱없는 인상 등 패권주의적 정책을 구사하였다. 그의 부동산 흥정하듯 후려치고 합의하는 협상정책은 앞의 4명의 대통령상과는 부합되지 않는다. 이 욕구 역시 트럼프 특유의 자기 과시용이며 과대 망상적인 발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이 책에는 트럼프가 워터게이트 사건의 닉슨 대통령을 자신의 롤 모델로 삼는다는 주장도 있다. 닉슨은 미중 관계를 전격 개선하여 국교를 수립하였다. 그는 루터 킹 목사 암살 상황에서 미국 백인 중산층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 닉슨을 벤치마킹하려는 것이다. 미국의 국내외적 위기를 미국 우선주의로 극복하려는 그의 정치적 야망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코로나와 미국의 경제적 위기 앞에서 또 다시 백인 중산층의 지지방책을 구사할 것이다. 정치지도자로서 트럼프의 신뢰 위기를 미국 유권자들은 어떻게 판단할까.

2020-09-15

예, 저는 개독교인입니다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쫓아오든 햇빛인데 / 지금 敎會堂 꼭대기 / 十字架에 걸리였습니다.”윤동주가 원고지에 쓴 그대로 ‘십자가’ 한 소절을 옮겨봅니다. 오늘은 맞춤법을 따르기보다 시인의 마음을 좇아, 참회의 그 심정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며 노래합니다.예, 저는 개독교인입니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을 경멸하며 비하해 부르는 그 ‘개독교인’ 맞습니다. 열정에 가득찬 누군가에 이끌려 교인이 된 게 아닙니다. 제 의지로 교회를 찾아가 교인이 된 것도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개독교인,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 ‘못해신앙인’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모태신앙인입니다. 감성적이기도 하지만 나름 논리와 합리성을 따지는 저는 부모님으로부터의 신앙 유전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은 개독교인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모태신앙을 감사하며 이때껏 살아왔습니다. 비기독교인들이 장로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사람을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호감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기독교 친화적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권사님이라고 하면 왠지 믿음이 가고 어머님같고 친할머니같은 포근한 느낌을 보통 사람들이 가졌던 적도 있었습니다.구한말 백척간두의 위기 속에서 미몽에 갇혀있던 우리 민족을 깨우쳐 근대화를 이루게 하고, 일제하 독립운동에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이 기독교였습니다. 독수리 날갯짓과 같은 믿음으로 ‘약한 자 힘주시고, 강한 자 바르게, 추한 자 정케함이 주님의 뜻’이라고 외치며 “해 아래 압박 있는 곳 주 거기 계셔서 그 팔로 막아주시어 정의가 사나니”라는 찬송을 부르며 독재의 군화와 최루탄에 당당히 맞서 민주화를 이뤄낸 선배 기독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사랑과 정의의 빛이 점점 흐려지고 부정적 인식은 점점 커져 개독교라고 불리는 데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극우 집단이 태극기부대라는 이름으로 소동을 부린다 해도 태극기를 부끄러워할 수는 없듯이, 일부 극우 기독교 세력의 과격 언사와 행동으로 인해 사람들이 기독교를 싸잡아 욕한다고 해도 저는 개독교인임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한편 저 또한 기독교를 ‘개독교’로 부르게 만든 원인 제공자임을 자백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보다는 욕망을 좇고 욕정에 뒤엉켜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기독교가 개독교로 불리는 데에 가톨릭교인들은 불편해 하기도 합니다. 가톨릭은 개신교에 비해 사회적 이미지가 좋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은 지금으로부터 30년전인 1990년 9월 말 ‘내탓이오’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한국 사회의 타락을 ‘나’부터 반성하며 일으킨 사회 개혁 운동입니다. ‘내탓이오’는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는 회개와 성찰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잘못까지도 끌어안는 사랑과 포용의 자세입니다. 이 자세를 배우려 합니다.저는 개독교인입니다. 가톨릭이 아닌 ‘개(신 기)독교인’입니다. 하여 이제 ‘다시 새로워’지겠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는 날 새벽, 교회당으로 가겠습니다. 예배실 한 귀퉁이에 조용히 앉자 두 손을 모으고 머리 숙여 기도할 것입니다. 교회당 꼭대기가 아니라 제 마음 한가운데 십자가를 가만히 걸어두겠습니다.

2020-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