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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與圈인사들 폭언시리즈 가관… 권력의 ‘방자’ 심각

여권(與圈) 고위 인사들의 사나운 막말·폭언·갑질 ‘퍼레이드’가 가관이다. 그 수준이 차마 귀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거칠어서 도대체 왜 이렇게 험구를 남발해야 하는지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그들의 오만불손한 흥분 뒤편에 균형감각을 무너뜨리는 모종의 ‘불안’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짐작마저 든다. 정치 수준을 끌어내리는 위정자들의 방자한 행태는 조속히 청산돼야 한다.지난주 청와대·정부·민주당 고위 인사들의 막말이 잇달아 뉴스를 장식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4일 국회 운영위 청와대 국감에서 국민을 향해 ‘살인자!’라고 두 차례나 고함쳤다.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이 8.15 광화문 집회 사진을 들고 “경찰이 버스로 국민을 코로나 소굴에 가뒀고 문재인 대통령은 경찰을 치하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노 실장은 “광화문 집회에서만 확진자가 600명 이상이 나왔다”면서 “살인자다, 살인자. 이 집회 주동자들은”이라고 고함쳤다. 논란이 일자 노 실장은 뒤늦게 집회 주동자들에 한정한 발언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집회 주동자들은 국민도 아니라는 말이냐는 또 다른 반발을 샀다. 그 이튿날인 지난 5일에는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사고를 쳤다. 이 장관은 국회 예결위에 참석해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두고 “국민 전체가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 집단학습을 할 기회”라고 답변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범죄 피해자는 “그럼 나는 학습교재냐?”며 비판했다. 같은 날 법사위에서는 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대법관인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을 향해 “‘의원님들, (예산을) 한번 살려주십시오’ 한번 하세요”라고 거듭 강권해 논란이 됐다. 6일에는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 직후 가덕도 신공항 예산과 관련해 “X자식들, 국토부 2차관 들어오라고 해”라고 말하는 모습이 기자들에게 포착됐다.어쩌다가 노출된 게 이 정도라면 여권 인사들의 권력에 만취한 내부 정서가 어떤 수준인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말은 생각의 발로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국민을 하찮은 졸(卒)로 여기는 그 오만한 인식은 하루빨리 뿌리뽑혀야 할 것이다.

2020-11-08

김천상무 프로축구단과 스포노믹스

김충섭김천시장스포츠가 경제를 견인하는 스포노믹스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스포노믹스(Sponomics)는 스포츠(Sports)와 경제(Economics)의 합성어로 ‘스포츠산업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뜻으로 최근 스포츠가 이벤트, 관광, 엔테테이먼트, 정보통신기술(ICT)등과 결합해 산업경제적 가치가 커지면서 생겨났다.영국의 대표적 철강도시 셰필드는 1990년대 초 철강산업의 급격한 하락으로 하루 아침에 일자리가 사라지고 젊은 인재들이 도시를 떠나면서 비전을 찾지 못하던 애물단지 도시였다. 25여년 전 셰필드시는 유럽연합(EU)의 도시재생펀드를 유치해 각종 경기장과 생활체육단지 등을 건립했다. 그 결과 셰필드는 오늘날 관광과 스포테인먼트(스포츠엔터테인먼트)가 어우러진 영국의 대표적인 ‘스포츠시티’로 자리잡았다.프리미어리그 3부, 2부 리그에 머물다가 19-20 시즌에 프리미어리그(EPL)에 승격한 셰필드 유나이티드는 성적은 하위지만 홈경기마다 전석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팬들의 충성도가 높다. 지역 밀착 마케팅 덕분이다. 셰필드는 스포츠를 공연, 이벤트, 관광 등과 연계해 경기장 활용도를 크게 높였고 이를 통해 관련 산업을 동반 성장하게 했다.김천시는 종합스포츠타운의 우수한 체육인프라와 사통팔달 교통의 중심지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매년 60여개 이상의 국제대회 및 전국단위대회를 개최하고 35만 여명의 스포츠 선수와 임원들이 찾는 스포츠 중심도시다.김천시가 이러한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스포츠를 매개로한 김천의 도시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상무프로 축구단을 유치했다.김천시는 상무프로축구단 유치에 앞서 전문학술 용역기관에 유치 타당성 검토를 실시하고, 지난 6월 2일에는 시민공청회를 거쳐 다양한 의견도 수렴했다. 용역결과 상무프로축구단 유치로 842억원의 경제파급효과와 2,700여명의 고용창출이 기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시는 유치타당성 용역결과를 비롯한 찬성과 반대에 대한 의견을 적극 수렴하는 한편, 시민들이 우려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심도 있게 검토하고 반영해서 시민들의 적극적인 환영을 받는 가운데 상무프로축구단이 출범하기를 바라고 있다.지난 7월 10일 김천시와 국군체육부대는 연고지 협약식을 갖고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이 날 협약식은 “2021년부터 상무프로축구단이 김천을 연고지로 하여 김천시의 문화체육 발전과 체육진흥을 위해 다함께 노력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협약서에 공동서명 했다.또한 상무프로축구단 사단법인 설립을 위한 발기인대회 및 창립총회를 가졌고, 향후 한국프로축구연맹 클럽 가입절차를 거쳐서 2021년 김천상무프로축구단을 정식 출범하게 된다.내년도 시즌이 시작되면 이에 따른 관중확보 및 스포터즈 운영, 효율적인 사무국 운영, 안정적인 수익성 확보 등 풀어야할 과제도 많다. 상무축구단과 김천시와의 만남이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상무프로축구단이 내년 시즌부터 홈 경기장으로 사용할 김천종합운동장 시설을 프로축구 시설 규정에 맞게 정비하여 선수들이 최상의 경기를 펼칠 수 있도록 경기장 내·외부 시설 개·보수를 추진하고 있으며, 프로축구단 산하 유소년팀(U-15, U-18)을 창단하여 지역 유소년 축구 인재육성을 위한 준비도 해 나가고 있다.김천시는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최초로 축구와 배구 2개의 프로구단을 운영하는 이례적인 지방자치단체가 되는 만큼 스포츠 특화도시로서 김천 시민들이 가지는 자부심을 한층 더 높이고, 지역축구 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2020-11-08

한옥교회에 노닐다

어릴 적 예배당은 최고의 놀이터였다. 동네에서 가장 신식 건물이었고 피아노는 구경도 못 해본 우리에게 오르간을 쳐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문이 항상 열려있어서 방과 후에 들러 언니들에게서 배운 젓가락 행진곡의 앞부분을 눌러보곤 했다. 심지어 교육관에 탁구대가 펼쳐져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도시에서 이사 오신 목사님은 내 또래의 딸이 있어서 뒤로 둘러맨 가방이나 정갈하게 깎은 연필이 가지런히 들어간 자석필통은 우리의 부러움을 샀다.밤하늘의 별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영천 보현산 천문대의 자락에는 그 시절 예배당보다 더 오래된 교회가 있다. 한옥으로 지은 자천교회이다. 내가 다닌 예배당은 오른쪽은 남자들이 왼쪽은 여자들이 앉았다. 어른들이 그렇게 나눠 앉았기에 이름표가 없어도 그렇게 앉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자천교회는 중간에 가림막이 있어서 서로 보이지 않는 상태로 예배를 드린다. 하지만 앞에 선 목사님 자리에서 보면 가림막이 느껴지지 않고 양쪽의 성도들이 다 보이니 건물을 지은 사람의 지혜가 돋보이는 설계이다. 뒤쪽에 온돌방이 있어서 아기와 함께 온 사람이나 의자가 불편하고 연세가 많으신 분들을 따뜻하게 해 준다.암울한 시기였던 1904년, 영천에 희망을 만들어 낸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권헌중 훈장이다. 경북 경주에서 서당 훈장을 하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자 일제의 만행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일본에 항거하였으며, 이 일로 인하여 일경의 눈을 피해 경주를 벗어나 청송으로 피신하기에 이른다. 이후 1898년 대구로 내려가기 위해 노귀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 외국인 선교사 제임스 아담스를 만난다.그는 대구로 내려가지 않고 이곳 영천에서 초가를 구매한 뒤 정착했다. 초가를 서당 겸 예배당으로 활용하며 지내던 중 교인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예배당을 신축하기로 계획한다. 그래서 건축된 것이 1904년에 지어진 16칸 한옥교회 자천교회이다. 그러나 예배당 건축이 쉬운 것만 아니었다. 유교 사회인 이곳에서 반대가 심하게 일어나 교회건축은 중단되었고 이에 권헌중은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지어주기로 하고 예배당 건축에 대한 동의를 받아낸다.김순희수필가영천의 한옥 기술자는 아이디어를 내어 2면 8간의 한옥 2채를 붙이는 방식으로 예배당을 건축한다. 그래서 이 건물은 좌우가 서로 거울에 반사된 모습을 하게 됐다. 건물 4면 모두 지붕을 가지고 있으며 높아진 지붕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하여 실내에는 4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다.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 쳐다보노라면 아늑함이 할머니네 아랫목과 같다. 1913년 권헌중 장로는 근대식 교육기관인 신성학원을 설립한다. 지금은 자천교회의 교육관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한옥교회와 한옥 교육관이 있는 곳은 이곳 영천뿐이라고 한다. 신성 학교는 요즘 처치스테이(Church Stay)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잔디가 깔린 마당은 야외결혼식장으로도 활용할 것이라 한다.자천교회 예배당의 일화가 하나 있는데, 6·25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영천에 주둔한 북한군에게 폭격을 시도할 때 성도들이 지붕에 올라가 ‘CHURCH’ 라는 글을 새겨 예배당은 폭격을 피했다고 한다. 예배당 온돌방 옆에 있는 굴뚝이 나지막한 것은 굴뚝에서 나는 밥 짓는 연기에 마음 아파할 가난한 이웃들을 위한 배려라고 한다.학당 건물 벽에는 태극기가 걸렸는데 실제로 3·1 운동 때 사용한 것이라 한다. 그 옆에 교회 설립에 참여한 분들의 부조가 있는데 동산병원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이 만들어 기증했다고 한다. 태극기 옆에 십자가가 섰다. 휘어진 나무로 된 모습이 십자가에 예수님의 형상이 없는데도 그 모양 자체가 구부러진 게 예수님의 모습 같아 마음이 아릿하다. 한옥교회에서 풍기는 온화함과 참 잘 어울리는 십자가이다. 그 십자가 앞에서, 댓돌 위에 신발을 벗어 두고 함께 들어가 남녀가 따로 앉아 드리는 예배. 100년을 간직한 전통을 1천년이 지나도록 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

2020-11-08

대도무문의 정치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진나라 시황제를 섬기던 조고란 환관이 시황제가 죽자 유조를 위조해 태자 부소를 죽이고, 나이 어리고 어리석은 호해를 황제로 옹립했다. 조고는 호해를 온갖 환락 속에 빠뜨려 정신을 못 차리게 한 다음 교묘한 술책으로 승상 이사를 비롯한 원로 중신들을 처치하고 자기가 승상이 되어 조정을 한 손에 틀어쥐었다. 어느날 조고는 중신들 가운데 자기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자를 가리기 위해 술책을 썼다. 사슴 한 마리를 어전에 끌어다 놓고 호해한테 말했다. “폐하, 저것은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폐하를 위해 구했습니다.” “승상은 농담도 심하시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니 무슨 소리요?” “아닙니다. 말이 틀림없습니다.” 조고가 짐짓 우기자, 호해는 중신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아니, 여러분들 보기에는 저게 뭐 같소? 말이오, 아니면 사슴이오?” 그러자 대부분의 신하들은 조고가 두려워 “말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나마 바른 말을 할 의지가 있는 사람은 “사슴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조고는 사슴이라고 대답한 사람을 똑똑히 기억해 두었다가 엉뚱한 죄를 뒤집어 씌워 죽여 버렸다. 그러고 나니 그 이후에는 누구도 감히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자가 없게 됐다. 지록위마(指鹿爲馬)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해도 바른말을 못할 정도로 권세를 휘두르는 경우를 말한다.더불어민주당이 성추행 사건으로 유고가 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민주당 후보를 공천하기 위해 전당원 투표를 실시, 고작 26% 당원이 투표에 참여해 80%를 상회하는 지지율을 보였다는 이유로 당헌을 바꿨다. 심지어 ‘전체 3분의 1 이상 투표와 과반 찬성’ 이라고 규정된 당규가 당헌 개정에 걸림돌이 되자 ‘전당원 투표’ 라기보다 ‘의견수렴절차’ 라고 얼버무린 채 당헌을 바꾸고 말았다. 현대판 ‘지록위마’다. 민주당 내 입바른 소리를 내던 금태섭 전 의원이 탈당한 이유가 짐작되는 대목이다.2015년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가 ‘재보선에 귀책사유 있는 정당은 후보를 내지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우자 ‘정의로운 결단’이라 열광했던 민주당원들이 5년 만에 이를 번복·폐기하는 투표에 압도적인 찬성을 했다니 쉽게 믿어지지 않는 얘기다. 무엇보다 기존 민주당 대권주자들에 비해 비교적 온건한 정치 행보로 중도보수층의 지지도 적지않게 받아온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이번 사태에 앞장서 총대를 멨다는 게 실망스럽다. 대통령 선거에 나설 인사가 정략적인 결정을 위해 꼼수같은 전당원 투표로 당헌을 뜯어고쳐 귀책사유 있는 선거에 후보를 공천키로 한 것은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결정이다.국민의힘 김예령 대변인은 “민주당의 꼼수 정치, 배반의 정치를 국민은 용서하지 않을 것” 이라고 비판했다. ‘원조 친노’(친노무현) 인사로 꼽히는 유인태 전 의원도 “지금의 정치 세태가 명분을 앞세우기보다 탐욕스러워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정치는 ‘대도무문’ 이라 했다.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나 정도를 지키면 숨기거나 잔재주를 부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대도무문의 정치다.

2020-11-05

백의의 천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1820∼1910)은 영국의 간호사이자 사회 개혁가다. 우리나라에서는 ‘백의의 천사’로 훨씬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영국에서는 의료체계를 획기적으로 개혁한 사회 개혁가로 유명하다.특히 크림전쟁 때는 38명의 성공회 수녀와 함께 이스탄불로 건너가 야전병원장이 되어 최악의 상황이던 의료체계를 대폭 바꾸어 환자들의 사망률을 42%에서 2%로 낮추는 큰 공로를 세웠다.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간호사를 천직으로 알았다. 전쟁 후 나이팅게일 간호학교를 설립해 현대적 간호교육의 기틀도 마련했다.의사에게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있다면 간호사에게는 나이팅게일 선서가 있다. 간호사로서 지켜야 할 윤리와 원칙을 담은 선서다. 1893년 미국 디트로이트시 하퍼병원 간호학교 졸업식에서 처음 사용됐다고 한다. 우리나라 간호사도 학교 졸업식 때 이를 선서용으로 사용한다.1920년 국제 적십자사는 나이팅게일상을 제정해 매년 각국의 우수한 간호사에게 표창을 전하고 있다. 그녀의 생일인 5월 12일은 세계 간호사의 날로 지정돼 있다. 나이팅게일의 숭고한 정신은 지금도 그녀의 명성만큼이나 여러 모습으로 계승되고 있다.영남대병원 연구팀 조사에 의하면 의료계 종사자의 30% 정도가 우울·불안 증세를 느끼고 있으며 그 가운데 간호직 종사자의 우울·불안 지수가 가장 높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일반인보다 무려 3∼6배가 높은 수준이라 한다.창궐하던 코로나와 사투를 벌였던 우리 지역 의료인의 용기와 헌신 뒤에는 코로나 블루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뒤따라 왔음을 짐작게 하는 연구결과다. 코로나 환자의 치료를 위해 온몸을 던졌던 간호사 등 지역 의료인의 헌신적 모습이 바로 백의의 천사라 하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0-11-05

이낙연, TK·PK 찾아 ‘선심’ 폭탄…믿을 수 있나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4일 당 대표 취임 후 처음으로 ‘선심 공약’ 꿀단지를 들고 대구·경북(TK)과 부산·울산·경남(PK)을 차례로 방문했다. 대구를 방문한 이 대표는 달빛내륙철도 건설과 감염병 전문병원 추가 설치 등 공약을 펼쳤다. 부산을 방문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약속했다. 대국민 공약을 잘 지키지 않는 사례가 쌓이고 있는 민주당의 약속이 또 다시 공약(空約)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이낙연 대표는 이날 오전 대구 호텔인터불고엑스코에서 열린 지역상생을 위한 지역균형뉴딜 대구·경북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달빛고속도로, KTX로 연결하는 달빛내륙철도, 대구 지상열차 구간 등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가 잘 나오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또 감염병 전문병원 대구·경북 추가 설치, 낙동강 수질 개선 문제 등을 언급하며 관심과 지원을 약속했다. 발언 중 “민주당 의원이 없거나 적은 지역의 지역위원회에 사업 예산 애로를 책임지고 협력할 의원을 할당하겠다”고 강조한 대목이 관심사다.이 대표는 이어 오후 부산항 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부·울·경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가덕도 신공항과 관련 “부산·울산·경남(PK)의 희망 고문을 빨리 끝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이 대표의 영남행과 장밋빛 약속 소나기는 우선 최근 당헌을 뒤집어 내년 4월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게 만든 일 때문일 것이다. TK 민심이 민주당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현상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주마가편(走馬加鞭) 행보로도 읽힌다. 한국갤럽의 지난 달 27~29일 조사에서 TK의 민주당 지지율은 34%로 국민의힘 30%보다 높게 나왔다.국민을 속이는 정치에 대한 비판적인 민심이 사납다. 아쉬울 적마다 공약 꿀단지를 들고 다니며 유권자를 현혹하고, 시간이 지나면 ‘상황변경 논리’의 궤변으로 뒤집는 정치에 번번이 미혹되는 유권자 수준으로는 나라의 미래가 없다. 이제 곧 선거국면이다. 유권자의 냉정한 판단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아침에 한 말을 저녁에 바꾸는 정치에 이렇게 무력하게 끌려가서는 안 된다.

2020-11-05

포항의 배터리산업 기업 유치로 이어져야

포항시가 배터리산업 선도도시 육성을 위해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고 한다.포항에는 세계적 배터리 양극제 생산기술을 보유한 에코프로가 이차전지 양극제 공장을 이달 중 착공하는 등 2025년까지 1조원 규모의 배터리 양극제 생산공장 건립이 추진될 예정에 있다.포스코 케미칼과 GS건설 등 배터리 분야 빅3사 등 대기업들의 포항공장 건립도 활발히 전개될 것으로 보여 철강산업 중심의 포항 경제에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포항시는 지난 7월 전국 처음으로 영일만산단과 블루밸리 국가산단 92만6천㎡ 면적을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지역으로 지정해 대한민국 최고의 배터리산업 선도도시로서 자리를 굳히고 있다.배터리산업은 반도체를 이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주목받는 분야다. 특히 친환경자동차 개발이 대세인 미래 자동차 산업에서 배터리산업이 차지할 산업적 입지는 막강하다 할 것이다. 전기자동차에는 반드시 들어가야 할 필수핵심 부품이다.세계 자동차업계는 전기차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친환경자동차 개발에 얼마나 근접하느냐가 향후 자동차 메이커의 생존을 가늠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친환경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배터리산업의 성장성은 무한하다.철강산업 중심의 포항경제에 만약 배터리산업이 추가된다면 포항의 경제기반은 한층 더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 포항시가 배터리산업 선도도시로 달려가는 이유가 이런 데 있다.지난 해 전세계 전기자동차 누적판매는 717만대로 전년보다 40%가 증가했다. 한국의 전기차 배터리는 연평균 12.8%의 성장세를 보여 현재 세계시장 점유비가 34.5%에 달한다.배터리산업은 한국과 일본, 중국 등 3개국이 국제시장에서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향후 2∼3년간 기술력과 인프라 구축, 산업혁신 등을 통해 치열한 경쟁이 가속화 될 것으로 보인다.포항의 배터리산업은 자동차메이커의 친환경자동차 개발과 성장 속도를 같이 한다고 봐야 한다. 다른 지역보다 발빠른 인프라를 구축한 포항에 더 많은 관련기업이 유치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다. 자동차산업으로 울산시가 성장한 것과 같이 포항도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2020-11-05

이명박 씨?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한 TV 언론사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호칭을 “이명박 씨”로 부르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법원 17년형 확정 판결을 계기로 ‘이명박 씨’라고 호칭하겠다는 방송을 내보내면서 이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정권이 바뀐 뒤에 전직 대통령이 과거의 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씨’라고 부르는게 맞는 것일까?야당 정치인들은 “해당 언론사는 앞으로 범죄혐의가 유죄확정된 수많은 분들 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사유로 법원의 재판을 받지 않은 분들도 호칭의 일관성을 유지하시길 기대한다”고 격한 감정을 토로했다. 이미 유죄 판결을 받은 여권 인사들에 대해서는 왜 ‘~씨’라고 부르지 않았느냐는 반박이다. 여권인사 안희정, 한명숙 이런 분들도 씨를 붙여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주장이다.박근혜 전 대통령의 호칭을 ‘박근혜 씨’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도 있다. 탄핵으로 전직 대통령 예우를 상실한 만큼 ‘전 대통령’으로 불리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탄핵당한 대통령은 경호 및 경비 지원 외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어떠한 예우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호칭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 법조계에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보고 있다. “호칭에 예우를 담아서 쓰는 경우라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한 때 대통령으로 재직한 전 대통령으로 부르는 것은 문제가 없다”며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가타부타 말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대통령으로 불러 주는 것은 좋은 관습이다. 대학총장이나 장관은 퇴임 후에도 아무개 총장, 아무개 장관으로 부르는 관습이 있다. 학교교장, 교수나 의사들도 퇴임 이후에도 교장, 교수, 닥터로 불러주고 변호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시장, 군수들도 퇴임 후도 그렇게 불러준다. 이는 사회와 국가에 공헌하고 봉사한 분들에 대한 예의 차원의 호칭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전직에 대한 예우 차원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경우는 특히 예우차원에서 아무개 대통령이라 부르는 게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에서는 보편화 되어 있다.심지어 미국은 전임 대통령에 대하여 한국처럼 전 대통령(former president)이라고 하지 않고 전임 대통령도 프레지던트 카터(President Carter), 프레지던트 레이건(President Reagan) 이런 식으로 “전임”자를 제외하고 바로 “대통령”으로 부르는 게 일반적인 관행이다. 워터게이트로 물러난 닉슨도 프레지던트 닉슨(President Nixon)으로 불러준다.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대통령이 통치행위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하여 사법적 판단은 정치적 판단일 수도 있기에 여전히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부르는 호칭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이명박 대통령을 이명박 씨라고 부르는 건 너무 정치적이라고 본다. 좀더 우리는 아량을 갖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정치적인 판단보다 사회적인 관습이 더 앞서야 하지 않을까?

2020-11-05

자유에 대하여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추수가 끝난 들판은 한가롭다. 사람들의 용도를 벗어나 차분한 휴식에 들어간 모습이다. 빈 들길을 걷는 발걸음은 자유롭다. 마주치는 사람도 없고 피하거나 둘러가야 할 방해물도 없는 들길의 자유가 참 정갈하고 소중하다. 사람에게 의식주(衣食住) 다음으로 중요한 게 무어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부와 권세와 명예 같은 세속적인 명리를 꼽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신앙이나 사랑, 예술 같은 본질적이고 심미적인 것을 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이든 자유가 없고서야 어찌 제 구실을 하겠는가.‘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함’이 자유에 대한 사전적 풀이다. 말은 쉽지만 그런 자유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자연환경이나 사회적 조건 등 외적인 제약이 많은 데다 남의 자유와 상충이 되기 일쑤 때문이다. 자유란 말에는 피가 묻어 있다거나, 인류의 역사란 자유의 신장(伸張)을 위한 투쟁의 역사란 말이 있을 정도로 그저 주어지지는 않는 것이 자유다. 자유에는 법률로 규정한 언론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재산 처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거주지선택의 자유 같은 개인의 사회적 권리로서의 자유도 있지만 영혼의 구원이나 해탈과 같은 궁극적인 자유도 있다.고대로부터 자유의 개념이 없었던 건 아니나 개인의 당연한 권리로 실현된 것은 종교개혁과 시민혁명이 성공한 다음부터였다. 오랜 세월 서양의 종교를 독점해온 가톨릭 교단에 반대하여 일어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백년이 넘은 종교전쟁 끝에야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종교개혁으로 가톨릭의 종교독재를 무너뜨리고 신앙의 자유를 획득한 부르주아들은 네덜란드와 영국에 이어 미국과 프랑스가 시민혁명에 성공하여 전제군주제와 신분차별제도의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의회민주주의를 이룩하였다.21세기에 들어선 지금은 많은 나라들이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국민 각자의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을 국가성립의 바탕으로 삼는다는 의미다. 분단된 반쪽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도 헌법에 명시된 민주공화국이다. 일제의 지배를 벗어나서 대한민국을 수립하면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한 것이다. 하지만 전혀 경험이 없고 준비가 안 된 상태인데다 워낙에 열악하고 피폐한 경제사정으로 시행착오가 많았다. 그런데도 불과 70여 년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여 오늘에 이른 것은 실로 세계가 놀랄만한 성과였다.경제적 기반이 없는 자유와 민주는 허상이다. 인권의 최우선 과제는 굶지 않는 것이다. 아프리카 빈국들을 보라. 기아로 죽어 가는데 민주가 어디 있고 인권이 다 뭔가. 대한민국은 지금 소위 민주화세력들이 정권을 잡고 있다. 민주주의가 이만큼 신장하기까지 그들의 공로가 적지 않았다는 걸 인정해야겠지만, 산업화를 이룩한 공로는 그 이상이라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민주화든 산업화든 그 과정에는 다 공과가 있을진대, 저들의 공만 내세우고 반대편은 모조리 적폐로 모는 정권에 나라를 맡겨서는 장래가 없다.

2020-11-05

매흙질

정미영수필가지난 주말, 고향집을 찾아갔다. 바람벽을 보니 마른 논바닥처럼 여기저기 갈라져 틈이 많았다. 고르지 못한 벽을 손으로 훑으며, 찬바람이 불기 전에 매흙질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매흙질은 벽이나 부뚜막, 안마당에 매흙을 바르는 일을 말한다. 산비탈에서 퍼온 백토를 커다란 대야에 담고 물을 부어 흙탕물을 만든다. 그 물을 다른 그릇에 담고 하루를 재우면 앙금이 되어 가라앉는데, 마치 흐트러진 상념이 가슴 밑바닥에 침잠하듯이 내려앉는다.오늘은 매흙을 미리 만들어 놓았기에, 귀얄로 바르면 된다. 일을 하는 틈틈이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다른 집에 비해 자주 매흙질을 했다. 매흙질을 거치고 나면 흙벽은 매끄러웠다. 시커멓게 그을음 묻은 부뚜막도 화장을 한 새색시처럼 새 단장을 했다.아버지는 내 할아버지에게서 처음 맥질하는 법을 배웠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뒤였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아버지였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었지만, 친구들에게 크든 작든 보증서는 일을 도맡아 했다. 그로 인해 몇 번의 경제적 손실을 겪었지만, 누군가 부탁을 하면 쉽게 거절을 못했다.어느 해 칠월이었다. 아버지는 어릴 적 친구를 위해 또 보증을 섰다. 신발 가게를 몇 군데나 크게 하던 소꿉친구였지만, 그는 끝내 부도를 내고 소식도 없이 사라졌다. 가족들을 건사하기 위해 옷에 소금꽃이 필 정도로 열심히 살았던 아버지였다.믿었던 사람으로부터 생긴 속상함이 아버지를 병들게 했다. 가장의 책임감으로 참아오고 지탱했던 삶의 무게가 한순간 무너졌던 것이리라. 아버지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자책하며 가슴에 생채기를 냈다. 슬픔의 무게가 묵중할수록 하루하루가 고단했기에 몸이 견디지 못했다.한참을 앓고 난 그 해 가을,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아버지를 할아버지가 시골집으로 부르셨다. 아버지는 명절을 앞두고 매흙질하는 법을 익혔다. 처음에는 귀얄을 잡은 손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차츰 손에 익었다.매흙질은 아버지에게 상처를 치유하는 작업이었다. 일에 집중하는 동안 상념을 잊었다고 했다. 시커먼 부뚜막이 마치 아버지의 상처 난 마음인 듯 여러 겹 두껍게 덮었다. 허물어진 벽이 마치 아버지의 어지러운 생활을 닮은 듯 거침없이 덧칠했다. 어쩌면 가족의 건강과 새로운 삶의 희망을 덧입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우리네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성싶다. 빛바래고 한 쪽 귀퉁이 떨어진 삶이라도 매흙질하듯 정성을 다한다면 언젠가는 매끄러운 모습으로 되돌아오겠지. 예전에 아버지의 손길이 지나다녔던 자리를 더듬어 찾듯 찬찬히 맥질한다. 갈라진 틈을 메우면서 나도 아버지처럼 내 생활의 고단함을 꼼꼼히 부려놓는다. 직장일과 집안일, 어린 삼 남매 키우는 것이 힘에 부칠 때가 많았다. 여러 해 동안 몸과 마음이 시달린 연유로 내 마음 벽에는 끊임없이 거칠고 뾰족한 선들이 돋아났다.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자를 대고 줄을 그어 매끄러운 선을 만들어 놓아도 수시로 삐뚤어지고 굽었다.고향집 구석구석을 매흙질한다. 튀어나온 직선과 끊어진 사선 같은 내 마음을 달래고 보듬으니 축 처져 있던 어깨가 곧게 펴진다. 기진맥진한 내 생활의 흔적에도 그늘이 걷히고 햇살이 드리워지는 것 같아 귀얄 잡은 손놀림이 가볍다. 덧칠을 반복하는 동안, 앞으로 펼쳐질 내 삶도 단장한 바람벽처럼 모난 데 없기를 기원한다.매흙질한 집은 아버지에게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처소였으리라. 흙마당 귀퉁이 장독대에 어깨를 겯고 있는 옹기들이 늘어서 있고, 처마 끝에 곶감을 만들기 위해 대글대글한 감을 꼬챙이에 꿰어 늘어뜨린 풍경이 있어 더욱 정겨운 곳이었을 것이다.바람이 불어온다. 매흙질한 자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려주겠지. 아버지가 매흙질을 마친 뒤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운 추억들이 고향집 언저리를 맴돌다가, 서서히 내 마음자락을 물들인다.

2020-11-04

청관스러움에 대하여

냉정하면 거리감이 생기고 오지랖이 너무 넓으면 성가십니다. 인간사 적당한 게 좋습니다. 하지만 적당하기가 어디 말처럼 쉬운가요. 넘치는 상황끼리 상충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패키지여행 팀에 지인 없이 합류했습니다.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그 어떤 것의 영향도 받지 않고 될 수 있으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팀원 중 선희 씨도 혼자였습니다. 수수한 차림만큼이나 털털해 보이는 그녀와 자연스레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고향도 같고 나이도 같았습니다. 통성명이 끝나자마자 선희 씨가 제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말 놓고 편하게 지내자. 우린 친구니까! 움찔 놀란 저는 슬며시 손을 뺐습니다. 만난 지 삼십 분도 되지 않았는데 동향에 동년배라는 이유만으로 친구가 될 이유는 없었습니다. 여행 콘셉트인 무심함의 미덕이 방해 받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습니다.다정다감한 선희 씨는 가는 곳마다 제 손을 잡았습니다. 뭉툭하고 못 생긴 손을 누군가에게 내맡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핑계였을 거예요. 혼자가 편했던 저는 에돌려 선희 씨에게 말했습니다. 손잡는 것 대신 팔짱 끼면 안 될까요? 선희 씨는 친구끼리 땀 좀 섞이면 어떻노? 하면서 손 깎지를 풀어 순순히 제 팔짱을 꼈습니다. 어색한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타인과의 이상적인 거리는 육십 센티라는 말을 믿고 싶을 정도로, 대책 없이 밀착해오는 그녀가 불편했습니다.선희 씨는 배려와 관심이 넘쳤습니다. 사진 같이 찍자, 저건 저렇고 이건 이렇지, 화장실 가지 않을래, 등등의 말로 친화력을 자랑했습니다. 악의 같은 건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그럴 수 있었습니다. 받아들이는 제가 불편하다는 게 문제였지요. 언덕마다 오밀조밀하게 내려앉은 집, 이국의 골목에서 풍겨 나오는 야릇한 냄새와 좁은 베란다 밖으로 너울거리는 빨래,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애련한 가락들, 이런 호사의 순간을 선희 씨가 방해하는 것만 같았습니다.참을만한 친절함이었지만 저는 어느 순간부터 차단막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나 홀로 힐링’을 구하려는 자와 ‘더불어 힐링’을 외치는 자 사이에 작은 균열이 일었습니다. 물론 그런 예민한 저항감은 저만의 것이었습니다. 사람 좋은 선희 씨는 그럴 기미조차 없어보였습니다. 선희 씨 입장에서 보면 운이 없는 거였지요.여행 막바지쯤 선희 씨가 말했습니다. “자기는 너무 청관스러운 것 같아. 같은 고향이니 청관스럽다는 말은 들어봤겠지?”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그 말뜻을 유추하느라 남은 일정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마음으로 선희 씨를 거부한 짓이 있으니, 제 풀에 ‘까다롭다’는 의미로 쓰였을 거라 짐작만 했습니다. 인정머리 없는 속내가 들킨 것 같아 당황스러웠습니다.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언니에게 문자를 넣었습니다. 저보다는 고향에 오래 살았기에 언니는 ‘청관스럽다’는 말을 알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예상대로였습니다. 언니는 옛날을 더듬어 그 말의 쓰임새까지 친절하게 예로 들어줬습니다. 어릴 때, 밥술을 겨우 뜨는 형편의 서촌댁이 마실을 나오고, 밥 같이 먹자고 엄마가 숟가락을 건네면 방금 먹고 와서 배부르다며 도리질을 한 채 배를 쓰다듬곤 했습니다. 그럴 때 엄마는 “에구, 청관스럽기는!”하고 말했답니다. 또한 오일장 나들이에 나선 방산 할배가 빳빳하게 풀 먹인 모시적삼 차림으로 미루나무 신작로를 꼿꼿이 지나갈 때 “그 어른, 참 청관스럽다.”라고 했다나요.짐작하건대 청관스럽다는 말은 타인이 주는 물질적·정신적 호의를 사양하거나, 정갈한 품새로 흐트러짐이 없을 때를 표현하는 말 같았습니다. 경북 북부지방에 널리 퍼진 행동 양식인 ‘염치’ 개념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염치인데, 그곳 사람들에게 염치는 곧 자존감을 의미했습니다. 선희 씨의 오지랖이 넓을수록 저는 그녀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다지 순수한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피해를 주지 않겠으니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일종의 개인주의적 자기방어였지요.남에게 구하려 하지 않는 자는 남을 들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염치와 분수를 차린다는 명분 뒤에 숨은 제 거북한 마음을 그녀는 읽었던 것이지요. 그걸 청관스럽다는 말로 좋게 포장해준 것 같았습니다.청관스러움도 지나치면 청맹과니가 됩니다. 털털하고 담백할 때 세상도 그렇게 보입니다. 마음이란 건 덥석 주고받아도 오줄없지만 넌지시 거절하는 건 더 상그럽습니다. 남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제 편하자고 남의 호의를 들이지 않는 건 소견이 좁은 짓이지요. 움찔 밀어내고 슬쩍 털어내는 건 청관스러움과는 거리가 멉니다. 훼방꾼은 타인이 아니라 언제나 제 안에 있습니다. 인정에 호소하지 않는 염치가 무슨 소용이며,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청관스러움이 어디에 쓰일 것인지요.

2020-11-04

고단한 삶은 축제를 꿈꾼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세상이 힘들다. 삶이 버겁다. 어렵고 고단한 날들이 이어지면, 나만 생각하게 된다. 난관과 질곡에서 탈출할 생각에 붙들리면, 함께 사는 이웃을 잊어버린다. 친구와 가족마저 서서히 남이 되고만다. 급기야 나만의 감옥에 갇히게 되면 살아 버티는 일조차 고난이 된다. 인류가 살아온 자취가 길고 다양하지만, 개인의 삶이 언젠들 즐겁기만 하였을까. 사람 인(人)에 보이듯 사람은 서로 기대어 살아야 한다. 내가 오늘 지나며 누리는 일상의 자락들 가운데 나 혼자 만든 일은 하나도 없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야 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동체를 확인해야 한다. 똑똑한 인류는 묘수를 발견하였다. 공동체를 다시 확인하고 즐거움을 함께 경험할 기회를 찾아내었다. 축제.축제는 혹 낭비가 아닐까. 이렇게 어려운데 막대한 예산까지 사용하는 축제는 시간과 돈과 노력을 헛되이 쓰는 게 아닐까. 축제의 의미를 오해하면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뜻을 잘못 세우고 운영에 미숙하여 실수가 있을 수는 있어도, 우리네 삶에 축제는 필요하다. 누구든 살아가는 가운데 축제의 순간을 맛보아야 한다. 개인의 삶에도 늘 힘들기만 하면 어찌할 것인가. 이따금씩 숨구멍이 생기고 먹구름이 걷혀야 살아갈 힘과 용기를 경험하는 게 아닌가. 잿빛 하늘이 파란 창공으로 변하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 자신만 탓하며 늪처럼 가라앉던 나날에도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있었음이 보일 때면 공감과 배려가 피어오른다. 공동체는 부활하고 개인은 다시 시작할 용기를 추스른다.지역 축제는 소중하다. 다만 코로나19 상황과 미래사회를 내다보며 축제의 접근방식과 운영형태가 바뀌어야 한다. 비대면을 강조하면서도 시민의 참여를 유지하는 새로운 시도가 있어야 한다. 최근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에서 ‘스틸아트투어앱’을 적용하여 흥미를 가진 개인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일상 속의 축제로 만든 일은 주목할 만하다. 디지털 뉴미디어 환경에서 온라인과 비대면이 일상의 요소가 된 이상, 축제도 예외일 수 없다. 포항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단계적으로 시도하여 하이브리드 축제를 실현한 일도 앞서가는 시도로 평가되어야 한다.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활용하여 문화민주주의에도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들이는 노력과 수고가 보다 강화된 홍보와 마케팅으로 더욱 발전해 가기를 기대한다.축제도 변해야 한다. 관객관람형에서 시민참여형으로 진화해야 하며 아날로그 일변도에서 디지털을 강화한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발전해야 한다. 축제의 결실은 모두 참여하는 시민이 누려야 한다. 고단한 일상에 숨통을 틔우는 정점이 되어야 하고 도시가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예전처럼 축제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는 축제기획팀장의 고백은 시민을 위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겠다는 다짐으로 들린다.무료하고 힘들던 일상이 축제 덕에 확 바뀌었으면 한다. 힘든 세상에 다리가 되는 축제를 만나고 싶다. 축제가 살아나면 지역이 솟아오른다.

2020-11-04

‘검찰 개혁’, 윤석열 총장 말에 더 공감하는 이유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불협화음이 갈수록 태산이다. 윤 총장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작심 발언을 펼친 이후 ‘마이웨이’를 시작한 모습이고 추 장관은 윤 총장을 콕 집어 저격했다. 양보 없는 한판 정면승부가 시작된 가운데 두 사람 다 ‘검찰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일단 추 장관의 남용에 가까운 권력 행태에 맞서는 윤 총장의 ‘검찰독립’ 소신에 공감이 더 간다. 추 장관의 ‘말 따로 행동 따로’ 행태의 불공정 사례는 차고 넘친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지난달 29일 대전고검·지검을 방문한 데 이어 3일에도 지방 나들이를 했다. 이날 윤 총장은 신임 부장검사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기 위해 충북 진천에 있는 법무연수원을 찾았다.공교롭게도 같은 날 추 장관은 법무부 공식 알림을 통해 “(윤석열) 검찰총장의 언행과 행보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고 국민적 신뢰를 추락시키고 있다”고 대놓고 비난했다. 그러나 검찰 내부의 반응은 차갑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장관이 왜 계속 남 탓만 하며 정치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하고 “법무부라는 공적 자원을 왜 개인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적으로 이용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윤 총장은 이날 강의에서 “검찰 개혁은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를 눈치 보지 않고 공정하게 수사하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검찰을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어디로 보아도 그른 말이 아니다.정치적 음모의 소산이 분명한 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을 빌미로 한동훈 검사장을 즉각 업무에서 배제한 추 장관이 독직 폭행으로 소란을 일으킨 정진웅 부장검사를 차장으로 승진시켰다. 나아가 정식 기소가 됐는데도 업무배제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검찰 공무원으로서 해서는 안 될 언행을 지속하는 진혜원 검사는 서울로 발령내주고, 계속되는 하극상 소란에도 그렇게 좋아하는 감찰 지시조차 내리지 않고 있다. 아무리 보아도 검찰을 망치고 있는 건 원칙론으로 검찰독립을 천명하는 윤 총장보다 정치 권력을 휘둘러 ‘선택적 정의’를 무기로 분열 책동에 혈안이 된 추 장관이다. 우리는 지금 ‘적반하장’의 극치를 목도하고 있다.

2020-11-04

‘행정통합’ 넓은 공감대 확보가 성공 지름길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대구경북 행정통합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지난 3일 한 지역중견 언론인 모임에 참석한 두 사람은 대구경북 통합에 대해 일부의 반대 여론은 있지만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통합의 길로 갈 것을 천명했다.대구와 경북의 행정통합은 지금보다 더 나은 시도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지역산업 동향 추세라면 대구와 경북은 낙후도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대구경북 행정통합 움직임에 자극을 받아 지금은 부산, 울산, 경남이 메가시티를 구상하고, 전남과 광주가 통합에 매진키로 합의했다. 도시 통합을 통한 메가시티는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이자 세계적 추세다.포럼에 참석한 권 시장은 “내년이면 대구와 경북이 분리된 지 40년 되는 해지만 두 지역이 대구직할시 승격 이전보다 위상이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인구면에서 당시 전국 점유비가 13.1%이던 것이 지금은 9.8%로 떨어졌다. 전국 3대 도시 위상이 지금은 인천에 자리를 내주고 대전·충청권에 밀리고 있다. 총생산도 전국이 평균 20배 늘었으나 대구는 15배에 그쳤다.이 지사는 “곧 우리가 맞이할 AI시대 환경에서 우리가 대응할 방법은 도시 통합을 통한 시너지를 키우는 것”이라 했다. 지금 상태라면 성장은 느리고 추락은 빨라지는 현상이 가속화된다며 통합을 통한 도시경쟁력 확보에 선도적으로 나아가자고 했다.그러나 행정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권 시장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두려움 △지역적 이해관계 △재정·인사·조직 변화에 대한 불안감 등을 3대 장벽이라 했다. 장벽이라고 하지만 통합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이 드러나면 장벽은 더 커지고 더 격렬해질 수 있다. 비록 통합의 길이 가시밭길이지만 우리의 미래를 위한 길이라면 반드시 가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시도민의 일치된 합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통합공항 문제를 풀듯 지역의 단합된 힘이 필요하다. 행정통합 시도민 추진위와 공론화위도 이젠 출범했다. 통합의 절박성을 알리고 지역민의 폭넓은 이해를 구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중앙의 지원과 절차적 정당성도 잘 확보해야 한다. 쉽지가 않다. 절체절명의 각오가 필요하다.

2020-11-04

달아오르는 간편결제시장

네이버가 삼성페이·카카오페이가 주도하고 있는 오프라인 간편결제시장에 새롭게 진출하기로 해 관심을 끌고있다.네이버측은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비씨카드와 제휴, 오프라인 결제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이로써 네이버페이 이용자들은 지에스25·씨유를 포함한 5대 편의점과 대형마트(롯데마트·하나로마트·지에스슈퍼), 커피전문점(이디야·탐앤탐스·카페베네), 주유소(지에스칼텍스) 등 전국 7만여개 오프라인 가맹점에서 네이버페이 포인트로 결제를 할 수 있게된다.포인트는 그동안 네이버페이를 쓰면서 적립한 것이나 네이버페이와 연동해놓은 계좌에서 충전한 것을 사용할 수 있다. 이번 결정으로 오프라인 결제시장에서 삼성·카카오·네이버가 정면으로 맞붙게 됐다. 간편결제서비스는 공인인증서 없이 비밀번호를 이용해 결제하는 금융서비스다. 네이버는 네이버 쇼핑을 통해 쇼핑하고 결제하면 고객들에게 포인트를 몰아주는 방식으로 신규고객을 유치하고,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아울러 기존 확보한 고객들은 쉽게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락인(잠금)효과’를 노린다는 전략이다. 네이버는 올해 4분기 오프라인에서 이용가능한 포인트 QR결제 서비스를 동시에 선보인다. 네어버나 네이버 페이 애플리케이션(앱)에서 2차원 형태의 바코드인 QR코드를 생성해 영업점 포스기에 인식하면 결제되는 방식이다. 네이버는 올해까지 금융계좌를 연결한 선불충전 방식의 오프라인 QR결제 서비스를 먼저 선보인 다음 카드 연동결제방식은 내년에 도입할 예정이다. 핀테크의 발달이 생활속 소비자들의 생활방식마저 바꿀 날이 멀지 않았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1-04

중국 유학생을 만나다

요즘 학생들을 대면으로 만나지 못하다 보니 선생 역할 제대로 못한다는 느낌이 부쩍 강해졌다. 지난 번에는 학년별 학생들도 만나고 동아리 관계 있는 학생들도 만났는데, 다행스럽다, 아직 학생들 살아 있구나 하는 느낌이 좋았다.내친 김에 오랫동안 방치해 두다시피 한 유학생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먼저 중국에서 온 대학원생들 만나고 다음에는 다른 지역에서 온 학생들도 만날 계획이다.코로나19 때문에 방학 중 건너갔다 돌아오는데 어려움 겪은 학생들이 많았고, 어떤 학생들은 고향에 돌아가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무사한 게 다행스럽다. 한국이 낯설지만 견딜만 하기 바라고, BTS 같은 일들로 마음에 부담을 짊어지지 않기 바란다. 어디들 공부는 어떻게들 하시나? 하면 일제시대 여성 작가 이선희를 어렵게 쓰는 학생도 있고, ‘겨울여자’, ‘아메리카’의 작가 조해일을 읽은 학생도 있다. 강석경을 죄다 읽고 분석한 논문을 쓴 후 박사과정에서 이번에는 박경리에 도전장을 내민 학생, 아직 공부 주제를 잡기에는 학기가 안 찬 학생, 중국의 지도교수가 내 학생이었기도 한, 2대째 내게 지도를 받는 학생도 있다.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나의 얘기는 어느새 1996년 가을 혼자 인천에서 배를 타고 엔진으로 건너가던 과거의 일로 들어간다. 그때 나는 인생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느낄 만큼 괴로웠고 어떻게든 한국어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미리 비자를 받아두지 않고도 당장 외국으로 떠날 수 있는 방법은 그때 서울 신사동에 있던 진천 페리호 사무실에서 배의 티켓을 사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중국은 나의 첫 외국여행지였다. 엔진에서 베이징으로 들어간 다음다음날 천안문 앞 맥도날드 체인점에 들어가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외국인들에 둘러싸인, 한국어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 자유를 맛보았다.맥도날드에서 나오니 날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졌다. 그냥 하릴없이 거리를 걷는데 바로 라오사 차점이라는 상호가 보였다. 중국 작가 ‘노사’를 기념하는 찻집, 차만 팔지는 않고 다른 음식도 팔고 전통 민속 공연 프로그램도 펼치는 곳. 당시 돈 50위안을 내고 홀 맨 뒷자리 테이블에 앉아 사람들 머리 사이로 중국 노래와 연기와 묘기를 보는데, 낯선 타향에서 홀로 만끽하는 외로움은 그후에 어디에서도 비할 바가 없었다. 우리 중국 유학생들도 한 사람 한 사람 외롭고 어렵지 않은 학생들이 없으리라.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조그만 공부거리라도 가지고 얼굴 한 번 더 보는 일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코로나는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래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11-04

고독사

김규종경북대 교수코로나19가 계속되면서 고독사(孤獨死) 문제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는 전갈이 들린다. 고독사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자택에서 사망한 사람이 상당한 시일이 지나서 발견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가족이나 친구는 물론, 이웃과도 왕래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홀로 임종을 맞이하고, 그 시신마저 뒤늦게 발견되는 고독사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해마다 약 3만 명이 고독사한다고 알려져 있다.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정부 차원에서 고독사 숫자를 집계하지 않는다.고독사 통계 대신 무연고(無緣故) 사망자 집계를 내고 있으며, 지자체가 지역의 고독사를 관리하는 형편이다. 2012년 749명의 무연고 사망자가 2018년에는 2천549명으로 늘어났다. 이런 추세는 코로나19로 나빠진 경제상황과 맞물리면서 증가추세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일본에서도 이른바 ‘잃어버린 20년’ 이후에 가족해체와 무연고자, 비혼자와 독신자가 급증하면서 고독사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역시 비혼자와 미혼자, 저출산과 고령화 그리고 가족해체 등이 급속하게 진행됨으로써 고독사 숫자의 증가는 불가피한 사회현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일본의 20대 여성 고지마 미유가 펴낸 서책 ‘시간이 멈춘 방’을 읽으면서 만감이 교차함을 느꼈다. 만22세에 유품정리와 특수청소 업무를 시작한 작가는 고독사한 사람들이 남긴 물건을 본떠 미니어처를 제작하여 고독사의 실체를 알리기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고독사 가능성은 열려 있고, 죽음은 불가항력의 자연현상임에 주목한 것이다.젊은 나이에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성숙한 자세에 감동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낀다.미니어처 제작을 언제까지 할 것인지, 하는 질문에 대한 지은이의 답변이 인상적이다. “모든 이가 고독사와 자기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이 되면 그만두지 않을까 싶다.” 고독사가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현실임을 모두가 인식하게 될 때까지 고독사 관련 미니어처 제작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지난 10월에 문재인 대통령은 “기초 생활 수급자가 고독사의 절반을 넘고 있으며, 실태를 더 면밀하게 살피고 필요한 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고독사 문제를 제기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 소외되고 억압받는 최하위계층 사람들을 따사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제도개선을 통한 원조방책을 세우는 일은 위정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본분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2020년 3월 국회는 ‘고독사 예방과 관리에 관한 법률’을 마련했다. 이 법률은 사회문제로 대두된 고독사의 개념 정리와 실태 조사, 그리고 고독사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위한 제도 기반을 준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독사가 바다 건너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우리 앞에 제기된 시급한 사회문제라는 엄중한 상황인식을 공유함으로써 적극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고독한 죽음이 하루빨리 해결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20-11-04

교사 취업 시험과 어느 교사의 기도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교사 임용 시즌이다. 이미 공사립 학교 교사 임용후보자 선정 경쟁시험 접수가 마감됐다. 과목별 편차가 있지만, 경북 공립의 경우 역사 과목이 16.1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걸 보면 교사를 하고 싶은 사람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여기서 사람들은 왜 교사를 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정말 왜 교사를 하고 싶은 것일까?필자도 교원임용시험을 준비한 적이 있다. 그때 외운 내용 중에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성직, 전문직, 노동직’이라는 교직관이다. 특히 ‘성직관’을 공부하면서 가슴에 피가 끓던 때가 기억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교직관이 있기나 할까?시대가 변했으니 교직관도 변했지만, 필자가 보기에 지금은 교직관 같은 것은 없어 보인다. 대신 오로지 직업관만 있을 뿐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사도 이젠 생계형 근로자다. 교사 임용 시험도 여타 취업 시험과 다르지 않다. 앞으로는 시험 명칭도 “교사 취업 시험”이라고 바꾸어야 할 것이다. 취업자의 첫 번째 목적은 임금이다. 물론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노동을 했으면, 그만큼의 대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그 대가가 때론 사람을 춤추게 하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한때 교사에게는 임금보다 더 큰 가치가 있었다.‘교육백년대계(敎育百年大計)’는 그 가치를 입증하는 절대 논거였다. 교육은 곧 그 나라의 미래였다. 그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교육이었고, 교사는 교육의 중심에 있었다. 필자의 은사님이 그러했듯이 그때 교사에게는 사명감이 있었다. 그 사명감 안에는 제자를 위한 무한 사랑과 희생, 그리고 헌신이 있었다. 그 헌신에 사회는 존경으로 답하였다.교사의 헌신은 교육 기적을 낳았다. 그 기적으로 지금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산다. 하지만 지금은? 다음은 어느 젊은 교사와의 대화에서 나온 말이다. “요즘 교사들에게 희생과 헌신을 요구했다가는 아마 신고당할 겁니다.” 교육 현장에서 사명감이 사라진 것은 분명하다.“교육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라는 말을 잘 알 것이다. 여기서 교사의 수준이란 교사 중심 주입식 교육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인성을 포함 교사의 자질 등을 말한다. 교사에 맞는 자질이 결코 따라 있을 수는 없다. 그래도 최소한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 앞에 서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필자는 언행불일치의 파렴치범이 되지 않기 위해 다음과 같이 필자에게 약속하였다.“저의 얇은 과거 안에/학생들의 원대한 미래를/가두지 않게 하소서….(중략) 제가 하는 말이/절대라고 생각하는 오만함에/사로잡히지 않게 하소서…. 제가 앞장서서 할 수 없는 일을/학생들에게 강요하는/뻔뻔함의 죄를 짓지 않게 하소서(….)” (졸시 ‘교사의 기도 1’)교사 취업 시험 응시생에게 묻는다. 당신은 왜, 그리고 어떤 교사가 되고자 하는가!

2020-11-04

아이린, 이미지의 왕국에서 추방되다

아이돌그룹 레드벨벳의 멤버인 아이린(배주현)이 한 잡지사 에디터에게 폭언과 삿대질 등 ‘갑질’을 해 화제가 됐다. 갑질을 폭로한 에디터의 SNS 글이 삽시간에 퍼지며 파장을 일으켰는데, 그 글에 다른 에디터들과 스타일리스트, 백댄서 등 업계 종사자들이 ‘좋아요’를 눌러 공감을 표시했다. “나도 당했다”는 댓글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그동안 업계에서 쉬쉬해온 게 이번에 제대로 터진 모양이다. 아이린은 사실을 인정하고 “어리석은 태도와 경솔한 언행으로 마음의 상처를 드려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사과문을 올렸다. 갑질 피해자인 에디터를 찾아가 직접 사과도 했다. 그럼에도 아이린을 향한 대중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티브이 화면에서는 청순하고 선한 이미지였는데 실제로는 인성이 나쁘다는 이유다.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는 실재 사물의 세계가 아니라 자본주의 상품과 욕망이 만들어낸 가상성, 즉 시뮬라시옹의 세계라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현대인들은 이미지를 소비하며 살아간다. 벤츠를 타고 싶어 하는 것은 주행 성능과 승차감 때문이 아니라 ‘벤츠’라는 이미지를 갖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경기도 안양의 호화 아파트보다 서울 강남의 낡은 아파트에 살고자 한다. 집의 주거환경이라는 실체를 떠나 ‘강남’이라는 이미지가 ‘안양’을 압도하는 까닭이다. 이 가상성의 세계에서 대중들은 그동안 ‘아이돌 걸그룹계의 얼굴천재 여신 아이린’이라는 이미지만을 볼 수 있었는데, 어쩌다 이미지 뒤편에 가려진 실체를 확인하게 되면서 실망하고 분노했다. 반성하고 또 자숙하고,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면서 성숙한 인격으로 거듭난다 하더라도 한 번 깨진 환상은 복원되기 힘들다.연예인은 사진 속 인물이다. 사진이 구겨지면 아무리 펴도 자국이 남기 마련이다. 이미지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아이린이 다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는 가상성, 아니 환상성의 세계로 복귀할 수 있을까?아이린의 행동은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미성숙한 인격 문제가 오직 그녀 개인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마음으로는 안타깝기도 하다. 아이돌 업계라는 쇼윈도의 왕국에서 ‘걸그룹계 여신’이라는 이미지를 아이린에게 입히기 위해 ‘이미지 메이킹’을 해 온 연예기획사와 방송제작자들에게 따져 묻고 싶다. 아이돌 가수들에게 춤과 노래와 외국어와 예능감을 열심히 가르치면서 이미지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그것이 얼마나 쉽게 부서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왜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스캔들에 의한 상품성 파손 주의’는 강조하면서 왜 ‘미성숙한 인격이 초래할 인생 파손 주의’는 경고하지 않았느냐고. 화면에 비치는 ‘아이린’의 매력 발산보다 화면 뒤의 인간 ‘배주현’의 내적 성숙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왜 일러주지 않았느냐고.대부분 아이돌 가수들은 10대 때 기획사에 캐스팅되어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다. 회사 내 숙소에서 엄격한 감시와 통제 아래 마치 군인처럼, 운동부 선수들처럼 합숙 훈련을 받는다. 그때부터 철저히 ‘상품’으로 준비된다. 춤, 노래, 랩, 화술, 패션, 외국어를 배우고, 인터뷰 요령과 스캔들 대처법, 팬서비스 등도 연습한다.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 이상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기획사 안에서 보낸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학교나 사회보다 연습실이 더 익숙하고, 평범한 또래집단 친구들보다 ‘업계’ 관계자들과의 소통과 교류가 훨씬 잦다. 자아를 탐색하며 사회화 과정으로 나아가야할 청소년기에 아이돌 연습생들은 진짜 자기 대신 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나’, 이미지에 불과한 시뮬라크르 복제품을 자기존재로 받아들인다.아이린도 그랬을 것이다. 무수한 유리들이 빛을 난반사하는 이미지의 궁전 속에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 진짜 자신인 줄 알았을 것이다. 기획사도, 방송국도 최고의 상품인 ‘걸그룹계 여신’을 계속 판매하기 위해 금지옥엽 다루듯 했을 게 뻔하다. 행여나 깨질까봐 조심조심, 방송을 앞두고 혹시라도 심기가 불편해보이면 이리저리 어르고 달래면서. 그러니 매니저도, 코디네이터도, 백댄서도, 스타일리스트도, 에디터도 다 알아서 기었을 테고, 아이린은 그들의 굴종이 자신이 마땅히 누릴 권리인 줄 착각했을 것이다. 현장 스태프들 사이에서 ‘인간’ 배주현이 어떤 평판을 얻고 있는지 모르는 채, 화면에 비친 ‘여신’ 아이린에 열광하는 팬들의 사랑이 자신을 대하는 타인들의 공통된 태도라고 오해했을 것이다.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가상 상황이라도 깊이 몰입하면 그것이 실제 상황인 줄 혼동한다.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이나 스탠퍼드대학교 감옥 실험 등이 이를 증명한다. 역할극에 집중하다가 극 속의 세계에 갇혀버리는 어린아이처럼, 어떤 아이돌 가수들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는 그들만의 세계에 갇힌 채 ‘진짜 세상’으로 나오는 법을 잊어버린다. 도박, 탈세, 원정 성매매 의혹 등으로 얼룩진 빅뱅의 승리가 그렇다. 마약 투여 혐의를 받은 탑, 지드래곤, 비아이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처럼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사회적인 물의를 빚은 연예인들도 있지만, 언론의 자극적 보도와 네티즌들의 악플로 인해 생을 저버린 설리, 구하라 같이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유리로 지은 궁전이 깨졌을 때, 날카로운 조각들이 마음을 찔러 얼마나 아팠을까. 부서진 유리의 성에서 무사히 빠져나오는 방법을 정녕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걸까. 그들을 키워낸 기획사와 방송국의 어른들은 ‘양육’을 끝까지 책임지지 않은 채 새로운 ‘상품’을 발굴해 대중을 매혹시킬 이미지를 입히는 데만 몰두했을 것이다.하긴 누가 누구를 훈육하겠는가. 지금 기획사 대표와 임원들 중에는 1990년대 1세대 아이돌, 2000년대 2세대 아이돌 출신들이 많은데, 그들 중 상당수가 과거 부끄러운 사건 및 사고로 사회에 파장을 일으킨 자들이다. 과거를 청산하고 성숙한 인격으로 거듭나면 좋으련만 여전히 범죄에 연루되거나 소속 가수와 직원들에게 갑질을 하는 등 그들만의 작은 왕국에 갇혀 철없는 행동을 반복한다. 그쪽 업계에는 어째선지 제대로 된 어른이 없다.방송제작자들도 마찬가지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순위를 조작해 연습생들의 꿈과 희망을 짓밟는다. ‘악마의 편집’으로 자극적인 영상만 송출해 시청률을 올리고 어린 가수들이 받을 상처는 나 몰라라 한다. 오직 잘 팔리는 이미지만을 만들어내는 데 여념 없다.이병철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아이돌 가수들이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자기 소속사 대표 성대모사 하는 것 좀 그만 보고 싶다. 그게 자기들한테나 재밌지, 도무지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그들이 모사할 만한 모델이라고 해봤자 기껏 소속사 대표인 것이다. 하나도 재미없는데 방송 진행자, 패널들이 웃어주니까 그 웃음이 정말 자신을 향해 지어주는 천사의 미소인 줄 안다. 그토록 순진하다. 하루가 영원인 줄 알고는 부지런히 날갯짓하다 가는 하루살이처럼, 그렇게 한철 춤추다 이미지가 다 소비되면 진짜 세상으로도, ‘이미지의 왕국’으로도 가지 못한 채 허깨비처럼 과거의 환상 언저리만을 배회한다.공정함과 평등, 정치적 올바름, 공인의 성숙한 사회인식에 대한 기준이 높은 요즘 젊은 세대가 아이돌 가수의 팬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단순히 음악만 잘한다고, 연기만 잘한다고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던 시대는 지났다. 팬들이 아이돌의 이미지를 소비하며 내는 비용 안에는 그들이 인격적으로 성숙하리라는 기댓값도 포함되어 있다.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여신’ 아이린이 ‘조현아’와 연관 검색어로 묶일 줄이야. 한 번 망가진 이미지는 회복하기 쉽지 않겠지만, 그녀가 진정성 있는 반성을 거쳐 다시 복귀를 희망할 때, 팬들이 너그러이 받아주는 것 역시 아이돌 음악 산업이라는 고립된 왕국이 현실 세계에서 괴리되지 않게 하는 소중한 노력이 될 것이다.

2020-11-03

中 어선 불법조업, 당국의 실효적 제재 있어야

매년 되풀이되는 중국어선의 북한 수역 내 어업 행위가 근절은커녕 우리 어민의 생계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한다. 한국과 중국이 어업질서 확립을 위해 지난 2001년 한중어업협정을 체결했지만 여전히 양국 간에는 어업 분쟁이 지속 발생하는 상황이다. 물론 어업수역의 구분과 허용어선 수의 제한 및 어획량 설정, 어업자원 보호 등 협정 체결로 인한 긍정적 효과도 상당하다.그러나 중국어선의 북한수역 입어 문제는 어민들의 생계를 위협할 만큼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 이젠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이 문제에 관한 정부 대응이 연례적이고 소극적이어서 어민들의 우려를 키우는 모양이다.알다시피 국내의 어업 환경은 날로 피폐해지고 있다. 지금 상태로 간다면 머지않은 시기에 수입 수산물을 먹어야 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한일어업협정은 양국간 불편해진 관계로 4년째 미타결 상태다. 해양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한일어업협정의 미타결로 우리 어민이 받는 어업피해 규모가 연간 700억원을 넘는다고 한다.게다가 중국어선의 북한수역 어업으로 동해안 지역의 회유성 어종은 씨가 마르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연근해 오징어 어획량은 2014년 16만t에 달했으나 2018년에 와서는 5만t으로 급감했다. 반면에 중국 어선의 북한수역 입어 척수는 2014년 144척에서 2018년에는 2천161척으로 급증했다. 동해안 지역의 오징어 어획량이 줄어든 것이 우연이 아님을 입증했다.이런 사정으로 국내 어선들이 러시아 수역까지 진출하고 있지만 입어 허가를 받은 근해 채낚기 어선의 어획량은 쿼터의 10%를 겨우 채울 정도라 한다.전국 21개 수협과 6개 어업인 단체가 설립한 우리바다살리기 중국어선 대책위원회가 또다시 중국어선 북한수역 입어를 규탄하는 결의대회를 포항에서 가졌다. 이미 수차례 대책을 촉구한 문제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 정부 당국의 각성을 재차 촉구한 것이다. 마침 한중어업공동위원회가 2일부터 열려 이 문제에 대한 개선책이 있었으면 한다. 중국어선의 북한수역 입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위배한 사안이다. 정부의 역할에 따라 실효적 제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당국의 의지가 굳건해야 한다.

2020-11-03

덕장(德將)

손자병법에 장수는 세가지 부류로 나눈다. 맹장(猛將)과 지장(智將) 덕장(德將) 등이 그것이다.맹장은 전투에서 군사를 진두지휘하는 용맹함과 뛰어난 전투력을 갖춘 인물을 일컫는다. 대표적 인물로 삼국지의 장비를 들 수 있다.지장은 뛰어난 지략과 견문을 갖춘 전략가형 장수다.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하고 날카로운 예지력과 통찰력으로 부하를 지휘하는 능력의 소유자다. 삼국지 등장인물 가운데는 조조나 제갈량 등이 이에 해당한다.덕장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부하를 통솔하는 솔선수범형 장수다. 제갈량을 찾아가 삼고초려 했던 유비와 같은 인물을 덕장이라 부른다.장수 간의 우월을 가려본 사례는 없지만 보통 “맹장은 지장을 이기지 못하고 지장은 덕장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을 잘 쓴다. 부하를 통솔하는 데는 뛰어난 지략과 용감한 전투력도 필수지만 부하의 마음을 사로잡을 인간적인 면모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덕장의 덕(德)은 동양사상에서 지도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인 인격적 능력을 말한다. 덕이란 공정하고 남을 넓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인데 전장에 나선 장수도 힘과 기술보다는 덕성을 중시하라는 뜻이다.흔히 듣는 ‘부덕의 소치’말은 본인이 덕이 없어 생겼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나라에 큰 재해가 덮치면 임금이 나서서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 이 말을 썼다고 한다. 자산과 상관이 없는 일인데도 스스로 덕이 없다고 함으로써 윗사람의 넓은 아량을 보여준 것이다.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독주에 대한 검사들의 집단 반발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추 장관의 이후 대응이 주목된다. 추 장관이 지장이 될지 맹장 혹은 덕장이 될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11-03

지방 부동산 몰락…고래 싸움에 ‘새우’들만 날벼락

서울 집값만 시비하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결국 지방 부동산을 초토화하는 뒤탈을 낳고 있다.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로 ‘똘똘한 한 채’만 남기고 처분하려는 심리가 폭발하면서 빚어낸 현상이다. 결국, 서울 부동산 ’고래’들의 투기 현상은 제대로 잡지도 못하면서 애먼 지방 ‘새우’들만 등이 터지게 된 형국이다. 강남 부동산 잡기에만 혈안에 된 치자들에겐 지방의 실정이 그렇게도 안중에 없나. 지난 7~9월 지방 중소도시의 아파트값은 전남 무안(-1.62%) 경북 김천(-1.39%) 경남 사천(-0.97%) 등 1% 안팎 폭락했다. 잡겠다던 서울 집값이 같은 기간 1.97% 오른 것과 대조적이다. 수요억제 위주 부동산 정책의 모순이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지방 청약 시장에도 찬바람이 돈다. 올해 7~10월 지방 중소도시 청약 단지 33개 가운데 70%인 23곳이 1순위에서 미달했다. 지난 9월 전국 미분양 가구 중 70%가 서울·수도권·광역시를 뺀 지방에 있다. 서울에서 분양시장에서는 평균 청약경쟁률이 올해 들어 68대1에 이를 정도로 치열한 것과 확연히 대조된다.모든 부작용은 문제를 시장원리로 풀지 않고 서울과 지방, 1주택자와 다주택자, 집주인과 세입자 식으로 편을 갈라 정치적으로 접근한 게 원인이다. 실거주 요건 강화, 다주택자 보유·양도세 인상, 임대차법 등 쏟아진 정책이 전·월세 공급을 낮추고 ‘똘똘한 한 채’에 수요자가 몰리게 한 것이다. 그 부실한 정책의 유탄이 지방 부동산과 전국의 전세 시장을 때리고 있다.정부의 규제가 투기·실거주 목적을 가리지 않다 보니 당국이 기대한 효과 대신 지방 매물만 쏟아진다. 한국감정원 통계를 보면 지방 중소도시 아파트를 외지인이 사들인 비율은 올해 6월 35.6%에서 9월에는 18.4%로 뚝 떨어졌다. 서울에 고가주택을 1채 가진 것보다 지방 아파트 2채를 보유할 때 세 부담이 더 높아지는 구조가 문제다. 서울·수도권과 지방 간 균형을 위해 다주택 수에 포함하지 않는 지방 주택 범위를 확대하거나 쇠퇴 위기에 처한 지방 중소도시 주택 관리 방안을 별도로 찾아야 할 것이다.

2020-11-03

이상한 대구 부동산 시장

김영태대구취재본부 부장(부국장 대우)대구 부동산 시장이 이상하다. 특히 수성구의 아파트 가격이 급상승하면서 ‘미쳤다’라는 표현이 적절할 만큼의 장세를 이어가고 있다.한국감정원이 지난 2일 발표한 ‘10월 전국주택가격 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구의 주택매매 가격은 지난달에 비해 0.75% 상승했다.대구 부동산의 상승폭은 세종(1.43%), 대전(0.81%)에 이어 전국 17개 시·도 중 세번째이고 전국 평균 상승률 0.32%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더욱이 대구 수성구는 1.91%가 올라 전국 지자체 중 상승폭 1위를 기록하는 등 정부의 부동산 규제 후 특정지역으로의 쏠림 현상을 여실히 드러냈다.심지어 ‘학세권’과 ‘초품아’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수성구 중 이른바 ‘범4만3(범어4동, 만촌3동)’의 집값은 호가와 실거래가 모두 고공행진에 접어들었다. 지난 8월 ‘빌리브 범어’ 84㎡형이 15억3천만원에 거래돼 비수도권 최초로 15억원을 돌파했고 준공된 지 40년을 앞둔 범어4동 한 아파트 84㎡ 매물의 호가는 이미 지난달 18억원을 넘어 얼마까지 오를지 짐작할 수 없다.대구 수성구는 부동산 매매는 물론이고 전세마저도 거의 자취를 감췄고 품귀 현상마저 빚어지고 있다. 가끔 등장하는 급매물도 내놓기가 무섭게 소진되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대구지역 실수요자들을 중심으로 이른바 ‘똘똘한 한채’를 보유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지며 이런 기현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새임대차법 시행이후 대구지역 집값 상승의 기대가 오히려 더 팽배해졌고 전월세 물량 급감과 함께 주택가격 상승을 견인한 것으로 분석된다.대구 일부 아파트 단지의 경우에는 허위매물처럼 호가보다 낮은 가격을 표시하는 부동산 중개인과의 거래하지 말자는 내용의 현수막까지 내붙는 진풍경마저 벌어졌다. 실제로 대구 동구, 수성구, 달서구 등지에는 ‘허위부동산 매물 퇴출, 저가매매 유도 아웃’이라는 현수막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이유다. 현재 대구의 모 아파트의 경우에는 단지 입주자 대표와 부동산 중개인 간 소송으로 번지는 극한 대립 양상마저 보이며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이런 상황은 정부의 부동산규제 발표가 있을 때마다 지역 부동산 전문가들은 수성구 쏠림현상과 가격 폭등 등을 지적했고 그 결과가 그대로 재현되는 상황이다. 또 대구지역 부동산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견해를 보이며 정부의 실질적인 정책이 발표되길 바란다고 했지만, 도외시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정부 정책이 서울 강남3구의 집값을 잡기 위해 집중되다보니 지방에서는 특정지역의 부동산 가격만 오히려 상승시키는 역효과를 낳았다. 결국 현재의 대구 부동산 시장의 이상 현상은 정부의 각종 규제가 성장세를 키운 셈이며 앞으로의 정책이 또 어떻게 전개될지에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정부의 부동산 억제 정책이 더 이상 지역의 부동산 가격을 오히려 인상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기를 기대하면 무리일까.

2020-11-03

중국의 ‘항미원조’ 전쟁의 발언 배경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많은 수난과 고통을 겪었다. 한반도는 중국으로부터 수차례 침범을 받았다. 수·당 시절부터 중국의 침범은 명장 을지문덕과 강감찬이 있어 막을 수 있었다. 임란 시에는 명의 이여송이 조선에 파견되었다. 정묘호란 기에는 청의 홍타이지가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인조가 무릎을 꿇게 하였다. 조선왕조는 중국 명황제의 숭정연호까지 사용하기도 했다.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탐욕은 그 역사가 오래고 이번 ‘항미원조(抗美媛朝)’ 발언도 그와 맥을 같이 한다.1950년 6·25 전쟁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김일성 정권을 위기에서 구출해 주었다. 6·25 전쟁은 김일성의 남침 전쟁임이 판명된 지 오래다. 미국의 부루스 컴잉(Bruce Cumming)은 한때 북의 남침 설을 인정치 않았으나 후일 이를 수정했다. 중국은 최근 6·25 전쟁을 한반도 내전인데 미제가 침범하여 이를 물리친 정의의 전쟁이라고 선포하였다. G2로 성장한 중국은 6·25 전쟁마저 대미항전이라는 도구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이번 정의의 전쟁 발언은 중국의 단순한 실수도 아니고 그들의 오래된 역사 인식에 기인한다. 여러해 전 중국 여행 시 압록강 철교 끝 단둥에 설치된 중조우의(中朝友誼) 비를 본 적이 있다. 동북 3성의 마을 입구에는 의례 그들의 6·25 참전 기념비가 서있다. 전쟁에서 희생된 의용군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물론 중국의 항일 혁명 시 희생된 영웅들의 기념비도 여러 곳에 서 있다. 여기에는 중국 팔로군을 도운 조선족 영웅들의 모습도 더러 눈에 보인다. 중국이 6·25 전쟁을 미제 침략에 반대한 정의의 전쟁으로 미화한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중국은 겉으로 한반도 국가의 주권 존중을 강조하지만 내심으로는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는 한반도 국가 건설을 구상하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 보다는 분단된 현실을 선호하는 입장이다. 중국은 중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정권 창출을 갈망하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한반도를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로 인식하여 북한을 두둔하려 한다. 중국 중앙 정부가 공들인 동북공정(東北工程)도 그들의 국가 헤게모니 확대 전략의 일환이다. 중국은 우리의 발해사까지 자신들의 지방사에 편입시켜 버렸다. 북한정권이 붕괴되면 중국이 동북 4성에 편입할 것으로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미국은 이를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대중정책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한미동맹을 중시하면서도 교역의 가장 큰 파트너인 중국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어정쩡한 입장을 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은 그간 미국의 사드 배치를 강력히 항의했으며 우리 경제에도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중국은 ‘일대일로’ 원칙을 고집하면서 미국의 인도 태평양 방위전략을 극력 반대한다. 중국은 한미 동맹의 강화를 반대하고 대한 외교적 압력은 가중시킬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중미 양다리 외교의 조화는 가능할 것인가. 우리 외교의 최대 딜레마이다.

2020-11-03

광화문, 빛들문, 門化光

이재현동덕여대 교수“볼수록 아름다운 스물넉 자는 / 그 속에 모든 이치 갖추어 있고 / 누구나 쉬 배우며 쓰기 편하니 / 세계의 글자 중에 으뜸이도다 / 한글은 우리 자랑 민주의 근본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외솔 최현배가 작사한 한글날 노래 2절 가사이다. 세종대왕의 과학·철학·애민의 탁월한 정신이 오롯이 담긴 세계 최고의 글자, 쓰기 쉬우면서도 모양 또한 아름다운 글자가 한글이다. 유네스코는 문맹퇴치에 공이 큰 단체나 개인에게 주는 상으로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을 1989년에 제정하였다. 인도네시아의 글자가 없었던 부족인 찌아찌아족은 2009년부터 그들의 말을 적는 글자로 한글을 가져다 쓰고 있다. 한글의 과학성, 우수성을 보여주는 두 장면이라 하겠다.서울 한복판 세종로에 광화문이 서 있다. 경복궁으로 들어가는 정문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소이다. 대한민국의 얼굴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1395년 왕궁이 처음 지어지던 때의 이름은 ‘오문(午門)’이었는데, 세종대왕이 집현전에 왕명을 내려 새로 만든 이름이 ‘광화문(光化門)’이다.광화문은 우리 역사와 길을 같이 걷는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함께 소실되었다가 조선 후기 고종 때에 궁을 중건하면서 문도 재건되었다. 경복궁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은 일제에 의해 광화문은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 자리로 옮겨졌다가 1968년, 2010년 두 차례의 재건축 과정을 거쳐 원래 자리인 지금 위치로 돌아왔다.광화문의 현판은 광복 이후 3번 교체되었다. 고종 때 경복궁의 중건 책임을 맡은 훈련대장 임태영이 쓴 한자 ‘門化光’으로 현판이 걸렸다가, 1968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 ‘광화문’으로 현판이 바뀌었고, 2010년 복원된 광화문에 임태영의 글씨를 복원한 한자 현판 ‘門化光’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2010년 복원 당시 고증의 오류와 현재 현판의 균열로 인해 문화재청은 현판을 다시 제작하기로 결정하였다.2011년 문화재청이 5천 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판 글씨로 한글(58.7%)을 한자(41.3%)보다 선호한다는 답을 얻었다. 하지만 문화재 전문가들의 공청회와 토론회에서는 한자 현판이 우세했고, 임태영의 한자 현판으로 최종 결정이 났다. 광복 이후 4번째 광화문 현판은 올해 걸기로 예정되어 있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지난 5월 ‘광화문 현판 훈민정음체로 시민모임’(공동대표 강병인·한재준)이 만들어졌다. 나는 광화문 현판을 글자체가 우아하고 아름다운 훈민정음체로 하자는 이 모임을 지지한다.우리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얼굴이라 할 광화문의 현판을 한자로 적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문화재는 옛것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타당할지 모르겠으나, 문화는 옛것의 답습으로는 발전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문화의 대표성을 생각할 때 한자 현판 ‘門化光’보다 ‘광화문’이 훨씬 더 어울리지 않을까? 세종대왕이 지은 이름 ‘광화문’을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체로 쓰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마음 같아서는 한자 뜻을 확 풀어 아예 ‘빛들문’으로 바꾸자고 하고 싶지만 말이다.

2020-11-03

책의 묶인 끈을 풀며

집에, 연구실에 그야말로 산처럼 쌓여가는 책들을 보면서 한숨이 나오는 하루하루다. 책의 자리가 점점 넓어져 옴짝달싹 못하게 되는 것은 책을 좋아하여 그것을 매개로 사유하고, 소통했던 모든 이들이 겪었을 고충이니, 특별히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책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줄여 나의 자리를 넓힐 궁리를 해본다. 별 뾰족한 수는 없다. 책을 주변에 나눠주면 좋겠지만, 그 책을 받고 난감해할 사람의 표정을 상상하면, 그것도 민폐가 아닌가. 요즘에는 책이 차지하는 공간을 줄이려 책을 묶어둔 제본 부분을 자르고, 스캔을 해두는 것도 많이들 하고 있다지만, 그것만큼은 왠지 저어된다. 사실, 많은 자료를 인터넷으로 보고 있는 셈이니, 그리 거리낄 이유도 없지만, 책을 찢는 것은 무언가 내 속에 담겨 있는 문학과 예술에 대한 감각을 건드린다. 디지털과 네트워크가 기본이 되는 시대, 그것은 내게 남은 한 줌의 ‘예술’에 대한 감각일지도 모르겠다.생각하면, 본래 종이의 한 쪽 끝을 묶었던 것을 푸는 것에 불과하니, 그리 신경을 쓰는 것은 과민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책을 찢는 일은 단지 그 묶었던 끈을 푸는 것만이 아니라, 책이 담고 있던 내 손끝에 닿아 명징했던 총제적인 예술의 감각을 훼손하는 일인 것만 같다.지금 시대는 분명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지 않은 예술을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지금도 네트워크를 떠돌고 있는 유튜브의 영상들이 그러하고, 그 주변에 모여 분명 ‘예술적인 감흥’을 얻고 있을 사람들의 존재가 그러하다. 고작 ‘사진’에 의해 복제된 예술품의 가치 유무를 논하며, ‘아우라’라는 현실적인 낭만성의 기호로 그를 지칭하고자 했던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고민은 이 시대에 닿으면, 사실 하찮은 것이 되고 만다. 그림 속에 찍힌 점과 점 사이에 존재하는 무한한 점들까지 디지털 신호로 바뀌어 어디로든 전송될 수 있다.분명 벤야민의 시대에는 예술이 갖고 있는 수많은 가치들을, 그것에 새롭게 붙은 화폐 가치가 밀어내고 소외시켰던 것이 예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중요한 고민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런 시대에는 정치나 시장이 예술을 잠식한다. 하지만, 이제는 예술작품과 그것을 ‘재현’하는 길고 긴 디지털의 코드더미들이 실제로 같은 것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더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것이 된다. 이제는 본래적인 것과 찰나적인 것을, 그 선후를 구분할 수 없게 된 시대이기 때문이다.이런 시대에 ‘문학’이 질식할 수밖에 없는 전망을 갖는 것도 당연하다. 애초에 문장에 붙어 있는 문장 이상의 의미들과 그것이 우리 마음에 일으키는 파문이 갖는 신비가 바로 ‘문학’이 본령이 아니었는가. 어떤 문장을 읽고 그것을 더 확실한 무엇으로 치환해버리는 시대에야 ‘문학’의 자리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아니, 그것이야말로 문학의 가능성을 ‘책’이라는 매체에 가두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문장 한 줄은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어 네트워크를 타고 흐르다가 누군가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 누군가의 길고도 깊은 사유의 원형이 담겨 전달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나 향유의 양상이 찰나적이 되고만 것은 여러 번 생각해도 아쉬운 일이지만, 인간이 언어를 쓰고, 그것을 가지고 타인에게 무언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만큼은 시대가 지나도 변화하지 않을 것 아닌가.책의 묶인 끈을 풀어 헤쳐 둘지 고민하다 결국 풀어내지 못하고 어딘가에 쌓아둔다. 아직 나는 책의 시대에 남아 있으므로, 그것을 헤쳐 새로운 ‘문학’을 만드는 것은 누군가에게 맡겨 둔다. 책의 시대는 어쩌면 이제는 골동의 영역에 남겨질지도 모르겠지만, 시대는 계속해서 흐르고 있고, 인간이 영위하는 문학만큼은 날로 새로운 것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홍익대 교수

2020-11-02

이 가을, 마음을 헹구며… 청도 북대암(北臺庵)

북대암을 처음 찾은 것은 수십 년 전 시를 쓰는 친구와 함께였었다. 고즈넉한 절간의 정취도 좋았지만 선한 미소로 반겨주시던 치자향 닮은 스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때 마침 제를 지낸 뒤 우리 앞에 차려진 푸짐한 공양상과 친절함은 감동적이었다. 봄기운 가득한 북대암의 첫 이미지는 두고두고 나를 미소 짓게 했다.북대암은 창건연대가 확실치 않고 창건자도 신승 혹은 보양국사라는 설이 전해진다. 네 개 암자 중 가장 먼저 세워졌으며 운문사 북쪽에 제비집처럼 높은 곳에 지어져 북대암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우연찮게 오늘은 동화 작가와 함께 북대암을 찾아간다. 작가의 신도증으로 매표소 앞을 무사통과하는 것도, 전설 같은 옛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도 흔치 않은 행운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송진 체취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노송들, 그 상흔의 그림자를 밟으며 사색하던 길을 오늘은 문우들과 한껏 들떠서 지나간다.어릴 적부터 어머니 손을 잡고 북대암을 오르내렸다는 동화작가가 그 옛날의 암자와 스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간으로 다져진 인연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다. 존경과 신뢰로 엮여진 오랜 인연을 부러워하면서 나는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왔는지 반문할 수밖에 없다.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의 일상들이 푸석거리며 먼지를 일으키는데, 그녀의 추억담은 가을 햇살에 녹아들어 가파른 포장길을 운치 있게 만든다. 소통이 된다는 것은 정신적인 안온함을 나누는 일인데 오늘은 햇살조차 곱다.불현듯 장르가 다른 문인들이 북대암을 찾기로 한 건 파장이 통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아직은 서로의 깊이를 잘 모르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걷는 자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즐거움은 크다.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제 영역을 확고히 지키며 살아가는 문우들을 바라보며 나는 청명한 하늘이었다가 거침없는 바람이기도 하고 속으로 흐느끼는 억새가 되기도 하며 비탈길을 오른다.벼랑에 둥지를 튼 제비집 같은 정겨운 북대암, 작은 마당에 배를 깔고 누운 가을 햇살을 깨우며 동화작가가 익숙하게 대웅전을 향하고 우리는 그녀를 따른다. 준비해 온 떡을 다소곳이 제단에 올리는 시조 시인, 가톨릭 신도인 문우도 자기를 낮추고 절간의 법도를 따라 절을 한다. 예수님과 부처님이 손을 잡는 훈훈한 시간이다.가파른 계단 위 작은 전각에는 독성각과 산신각 현판이 나란히 붙어 있다. 뒤로는 거대한 바위 봉우리가 신비로움을 더하고, 법당은 햇살의 품에 안겨 잠든 듯 고요하다. 북대암에서 가장 기돗발이 영험하다는 독성각의 동자승 앞에서 또 나란히 기도한다. 함께 한 문우들의 건강과 문운을 기도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참으로 감사하다.숨어 있듯 열려 있는 산길을 따라 바위 앞에 이르면 운문사와 북대암이 한 눈에 보인다. 거대한 바위 어딘가에 스님과 보살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수행을 열심히 하신 스님이 열반에 들면서 사리가 나오면 북대암 뒤 바위에 안치하라는 유언에 따라 모셔진 것이다. 그리고 아랫마을 노보살이 평생을 눕지 않고 염불하여 생시에 치아에서 사리가 나와 이곳에 봉안되었다고 하니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다.정갈한 나무데크에 앉아 내려다 본 운문사는 한 송이 연꽃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운문사, 그 청렴한 정수리가 향기롭게 빛난다. 노송 아래에서 좌선하듯 앉아 홀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숱한 잡념들은 솔바람에 씻겨 나가고 온몸에 나무향이 배일 것만 같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서로의 눈빛에 젖어들고 싶은데 쉽지 않다. 뒤에 오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다.구절초가 한들거리는 볕 좋은 산기슭을 따라 내려오는데 앞서 간 동화작가의 나지막한 소리가 들린다. “스님, 스님.” 요사채 방문 앞에서 노스님을 부르는 그녀의 자태가 가을 들꽃을 닮았다. 굳게 닫힌 방문은 끝내 기척이 없다. 어떤 상황에서나 사람을 먼저 섬길 줄 아는 배포 크신 노스님, 법춘 스님을 뵙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크다.들어올 때 공양주 보살이 내다준 홍시가 여태 평상 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인심 좋은 북대암이다. 노스님의 안부를 여쭙자 보현사로 감을 따러 가셨다며 특별히 떡까지 내어오신다. 평상에 앉아 홍시와 떡을 먹는다. 물 귀한 북대암에 감로수 대신 글귀 하나가 마음을 헹구라고 자꾸만 눈빛을 빛낸다.조낭희 수필가“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내가 나를 바꾸는 것이고,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것 또한 내가 나를 바꾸는 것이다.”대화를 나누면서도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는 글귀에 붙잡혀 꼼짝을 못한다. 스스로의 단점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만 연거푸 좌절감만 맛본 나에게는 멀고도 난해한 글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어느 스님은 카르마라는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길은 부단한 수행뿐이라고 하셨다.귀한 오늘, 되담을 수 없는 숱한 말을 뱉어낸 벌로 북대암이 안겨 준 숙제 하나 무겁다. 돌아오는 발길에는 가는 계절이 채여 비틀거리며 쓰러지고 문우들에게서는 잘 익은 시향(詩香)이 난다. 특별했던 가을날의 하루가 추억 속에 또 둥지를 튼다.

2020-11-02

독서에 대한 잡스런 기억들

허명화씨의 책들.누군가 내게 언제부터 독서에 대한 취미를 붙였느냐고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이러하다.먼저 독서는 나에게 취미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독서 감상문을 써오기 위한 책 읽기였으니 말이다. 매번 검사 받아야 하는 숙제라 여기니 재미있다거나 신나는 일은 더욱 아니었다.생각해보면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엄마가 자주 쓰시던 부모님전상서를 의미도 모르면서 읽은 것이 그 시작이었을 거라고 얼버무리고 말 성싶다.분명한 것은 이런 일들이 학기 초 교과서 읽기로 이어졌다. 이렇게 책을 가까이 하며 사십이 넘은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만은 부정할 수가 없다.지난 주말 찾았던 고향집 거실 책장에는 중·고등학교 다닐 시절 사 놓은 시집이나 소설책, 잡지, 또 열기도 겁나 보이는 두꺼운 전공서적들이 여전히 촘촘히 꽂혀 있다. 볼 때 마다 내 인생의 한 단편을 보는 것 같아서 아련해진다.내가 살았던 시골은 책 한권 사볼 서점이 마땅치 않았다. 당연히 학교도서관은 책을 볼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게 만난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새끼’는 나의 첫 책이었다. 그 후로 계속 읽게 된 안데르센 동화들. 여름날 더위 날리기에 안성맞춤이었던 ‘셜록 홈즈’ 시리즈. 내가 생각한 그 범인이 맞는지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중학교 때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된 여자의 일생, 언젠가 독일에도 가보고 싶게 만든 내가 좋아하는 작가 헤르만 헤세의 소설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는 목련꽃 아래에도 서 보았다. 4월에 아파트 화단에 목련꽃이 피면 넌지시 눈길을 건네곤 한다.한 동안 온몸으로 생각했고 ‘내가 아큐 형 인간은 아닌가 ’ 했던 노신의 ‘아큐정전’, 부끄러움의 시인 윤동주, 현진건, 이효석의 소설들. 러시아 소설 속 등장인물들 이름은 왜 이렇게 길고 어려운지 입에서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부활’의 남자 주인공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네흘류돌프는 메모를 해가며 외운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가 ‘나’였다고나 할까.자취를 했던 고등학교 때 토요일 오후가 되면 내 발걸음은 서점으로 향했다. 진열된 책의 제목에 마음이 꽂혀 책장을 들추게 되고 우연히 펼친 페이지에 잠시 몰입하는 기쁨은 도둑의 긴장감처럼 황홀했다. 이렇게 구입한 책은 친구들과 함께 했던 독서동아리 책이 되었다. 스스로 만든 동아리라 진실은 독서보다는 모여서 수다 떨기로 더 바쁜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먼지 앉은 책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때론 소중하기도 하다.나는 식자(識者)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자타가 공인하는 ‘독서광’은 아니다. 그러나 다독가이고는 싶다.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주마간산으로 훑은 책을 다시 보고자 했다. 하지만 한갓지게 독서한 기억이 없다.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기웃기웃한다. 여행이 아쉬운 지금 앞선 작가들의 여행기를 덥석 빼 든다. 오늘은 산티아고를 넘어 남미여행기에 푹 빠진다. 독서의 즐거움에 여행의 기쁨도 더해진다.책과 함께하는 일상이 오롯하다./허명화(포항시 북구 아치로)

2020-11-02

나의 직업

전효선씨.나는 요양병원 간호사입니다.코로나 시대에 항상 감염의 중심에 서 있는 것같이 방송에 나오는 위험지역에 근무합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요양병원은 청정지역입니다.갇혀있는 섬이라고 할까?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된 곳으로 직원이 바깥에서 옮겨오지 않으면 절대 코로나가 발생할 수 없는 곳입니다.그러나 외부에서 잘못 옮겨온 병원균으로 인해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그래서 직원들은 더 조심하고 경계하고 통제합니다.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육체적으로 심적으로 극한 직업입니다.아니 정말 힘든 사람은 요양병원 환자일지도 모릅니다.입으로 먹지도 못하고 “춥다, 덥다”말도 못하고 심지어 자식도 몰라보고 자신의 세월도 잊어버린 채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침대에 누워 지내는 분들도 있습니다.‘내손으로 수저질하다. 반찬 올려 보조하여 먹다가 남은 음식 일부 떠 먹여 식사량 유지함. 전적으로 떠 먹여줌’. 이것이 요양병원 환자분의 식사하기 일상 활동의 기록입니다.전적으로 떠 먹여도 치매로 삼키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연하곤란으로 삼키지 못하면 경관식이를 합니다. 일명 ‘코줄’을 꽂아서 튜브를 통해 생명을 이어갑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하지 않으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그러나 그렇게라도 살아있는 것이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고 믿고 싶습니다.삶의 의미는 우리가 부여할 수 없는 존엄한 것이기에 오늘도 일방적인 질문과 답을 하면서 그분들과 말을 이어갑니다. 오래 입원하고 계신 분들 중에는 가족들이 띄엄띄엄 찾아오다가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통제 되면서 비대면으로 영상 통화만 가능합니다. 저는 여기서 3년 조금 넘게 근무했습니다. 몇 년을 같이 지내다 보면 정말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서 마지막 가실 때는 내 가족 같아서 마음이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로 인해 사직하는 간호사들도 있습니다.방송에서 요양병원에서 환자를 학대하고 인권이 없는 곳이라고 일부의 잘못을 가지고 모든 곳에 적용시키는 것을 보면 속상해서 화가 나기도 합니다.하지만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환자분들이 계시고 간호사들이 해야 될 일이고 해내야 되기 때문에 오늘도 힘을 내 봅니다. /전효선(포항시 북구 흥해읍)

2020-11-02

모국어가 그리울 때

우리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동네 체육관이 있다. 이름하여 Mitchell Field Community Center이다. 오후 5시경, 걷기 운동을 하러 갔다. 초가을답지 않은 차가운 기온이라 실내에서 걷기로 하고 체육관에 간 것이다. 아래층 농구 코트에서는 고등학생 정도의 학생들이 무리 지어 농구 연습을 하고 있었다. 2층 워킹트렉에는 열심히 돌고 있는 여인들 대여섯 명이 보였다. 남자는 나 혼자였다. 전광판의 시계를 확인하고 걷기 시작했다.나보다 빨리 걷는 이들도 있고 나와 비슷한 속도로 걷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유독 나이 많은 서양 할머니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내가 걷는 속도의 반도 안 되는 속도로 걷고 있었다. 몸이 무거워 걷기가 무척 힘들어 보였다. 살이 좀 많이 찐 편이었다.걷다가 운동기구의 의자에 앉아 쉬었다. 그 표정을 보니 삶에 지친 모습이 역력하였다. 팔순이 넘어 보였다. 그 나이쯤 살았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다. 그때 걷던 젊은 여자가 쉬고 있는 그 할머니와 한참이나 말을 하였다. 아마 모녀지간인 것 같았다. 젊은 여인 역시 몸이 꽤 살이 찌고 무거워 보였다. 그래도 나보다 더 빨리 열심히 걸었다.얼마 걷다 보니 거의 다 나가고 그 육중한 체구의 할머니와 나만 남았다. 할머니는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천천히 걷는다. 나는 그렇게 사십여 분을 걸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와 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 그때 그 할머니도 내려와 내가 앉은 의자 끝에 앉았다. 말을 걸어 볼까 하다가 말았다.40여 년을 토론토에 살았어도 영어로 하는 대화는 항상 긴장을 좀 해야 하기 때문이다. 늘 눈인사로 대신한다. 모국어를 사용한 시간보다 더 오래 외국살이를 했지만 나이 들어서 배운 언어는 늘 입안에서만 맴돈다. 잠시 후 젊은 여자가 와서 할머니를 모시고 밖으로 나간다. 그의 등에 대고 see you again 하고 눈으로만 인사를 했다./김용출(캐나다 토론토)

2020-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