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자리를 옮겼다. 나는 한 곳에 자리를 잡으면 좀처럼 거처를 옮기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살던 집이 하천 확장 공사로 잠기게 되어 어쩔 수 없었다. 주변에 살던 친구들과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같은 동네로 함께 가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조용한 시골 동네에 살다가 도시로 나왔다. 이사 할 집의 위치가 기찻길 옆이란 소문을 듣고 왔는데, 와보니 숲이었다. 도시숲이라 산속 깊은 곳처럼 새소리 물소리 가득한 곳은 아니지만, 가까운 산에서 산비둘기가 날아와 가지에 앉아 울어 주니 조금은 위로받는다.
새로 자리 잡은 동네는 나루끝이다. 포항여고 입구이며 수도산으로 가려고 길을 건너기 위해 기다리는 신호등이 내 발치에 있다. 새벽엔 아침잠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느린 걸음으로 지나가고, 해가 뜨기 시작하면 머리도 덜 마른 여고생들이 조잘거리며 발걸음을 서두른다. 이 길로 걸어서 출근하는 부지런한 직장인들의 바쁜 걸음걸이와 달리 포항초등학교로 향하는 아이들은 발밑에 개미집을 보느라 느즈락 거리다 신호가 바뀌려 하면 후다닥 뛰어간다. 조용한 시골의 아침보다는 시끄럽지만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해서 시간이 잘 간다는 장점도 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동빈내항 근처의 학산역까지 철로가 놓여 있어서 기적 소리로 아침을 시작한 곳이다. 북쪽으로는 우현동에 유류 저장고가 있어서 포항역을 지나서도 철도가 이어져 있다가 걷어내고 그 부지에 숲이 만들어졌다. 유성여고 앞까지 이어진 산책로 곳곳에 마련한 벤치는 사람들이 시간의 여유를 부리는 곳이다. 수런거리는 입김이 내가 선 자리까지 달려와 내 겨드랑이에 쉬던 매미가 떨림을 멈추기도 한다.
포항시가 노선폐지로 없어진 철도 구간을 걷기 좋은 숲 공간으로 만든 것은 2009년부터라 한다. 우현동 유류 저장고에서 서산터널을 지나 신흥동 안포 건널목까지 나무를 심고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를 만들었다. 그 길가에 나도 한 자리 꿰찼다. 특히 옛날 우현동 철길 일대는 연탄공장까지 있어 도시의 후미진 곳이었는데, 우리 친구 스물일곱 그루가 철길숲에 이사 오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그리고 2015년 KTX 신역사로 포항역을 이전해 기존의 포항역에서 효자역까지도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도가 되니, 이 구간에서 역시 레일을 걷어내 장미를 심고 조형물을 설치해, 기차가 걷던 길이 시민들이 산책하는 숲이 됐다.
나와 친구들이 나루끝으로 이사 하는데 힘을 보태 준 이들은 기계면 봉계1리 선래 마을 사람들이다. 그 동네 입구에서 300년이나 마을 지킴이를 했던 내 경력을 인정해서 하천 확장 공사에 휩쓸려 가는 것을 안타까이 여겼다. 내 어깨에 올라 미끄럼을 타며 어른이 되고, 여름이면 내 그늘에 와서 더위를 잊던 어르신들이 앞장서서 살려냈다. 이 뜻깊은 사연을 내 발 앞에 동그란 비석에 새겨넣었다. 지나는 사람들이 키 큰 우리가 언제 불쑥 솟아난 것인지 궁금하지 않도록 말이다.
2010년 5월 3일 이사를 왔으니 벌써 십 년이 훅 지났다. 친구들도 근처에 띄엄띄엄 자리를 잡아 뿌리를 내렸다. 십 년이란 시간 동안 메타세쿼이아 친구들이 수북하니 이사와 줄지어 서 있어 열병식하는 군인들처럼 늠름하다. 덕분에 동네가 든든하다. 안심하고 노랗게 둘레에 금계국이 피었다. 데크에는 수로가 있고 사이사이 둥그런 연못도 있어서 연꽃 화분이 차지하고 앉았다. 언제 피었다 지는지 보려고 길게 그림자를 그쪽으로 드리운다.
남한에는 1천년 이상 살아있는 화석인 노거수가 64그루 있다고 한다. 그중 25그루가 나와 같은 이름을 가졌다. 그중 13건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삼척 도계읍에는 1천년을 사신 할아버지가 살고, 괴산군 장연면 오가리에는 800살인 당숙이 사신다. 모든 노거수 어르신들이 내가 살았던 기계면처럼 시골에 사신다. 멀리서도 그 풍채를 알아볼 수 있게 품이 넓다. 그 모습만으로 이 동네가 유서 깊은 곳이라는 설명을 대신하는 안내장이다.
나는 나루끝 도시숲의 팸플릿인 느티나무다. /김순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