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이 지나버린 상비약, 개봉하고 투약했다가 남은 연고 및 안약, 증상이 호전되어 남은 약 등 다양한 이유로 가정에서 약이 방치되어 있는 것을 대부분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그때마다 폐의약품 처리방법을 알고 올바르게 배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2018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병·의원에서 의약품을 처방받아 구입한 경험이 있는 만 19세 이상 성인 1천48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와 청구 자료를 종합해 산출한 추정치에 따르면 버려진 의약품 규모가 2천180억원에 달했다. 또한 55.2%가 쓰레기통·하수구·변기통에 처리한다고 답했으며 심지어 36.1%는 그냥 보관하고 있다고 답했다. 올바르게 약국·의사·보건소에 반환한다는 답변은 고작 8.0%에 불과했다. 사실상 90%가 버려진다고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분별하게 폐의약품이 버려지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 미국, 벨기에 등의 국가들은 폐의약품 처리에 관한 법령 및 기준을 마련하고 중앙정부에서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17년 관할 지자체에 처리의무를 부여하고 있어 자체적으로 처리계획을 수립·수거·처리 하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폐의약품은 현행 ‘폐기물관리법’ 제14조 4에 따라 생활폐기물 중 질병 유발 및 신체 손상 등 인간의 건강과 주변 환경에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폐기물로 정의 된다. 각 지자체에서는 의약품의 안전한 사용 환경조성과 지역주민의 건강보호 및 환경보호를 위해 조례를 마련하고 있지만 현재 228개 지자체 중 83개(36.4%)만이 조례를 제정한 상태이다.
폐의약품은 다양한 문제를 야기 시킨다. 가정에서 하수구를 통해 버려진 폐의약품은 수중 생태계에 쉽게 노출되며 종량제 봉투로 배출된 폐의약품의 일부는 매립되어 유해성분이 침출수를 통해 토양으로 직접 유입되거나 지하수를 통해 하천으로 유입된다.
우리가 흔히 산업단지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이 상당 부분 차지 할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현실은 하천오염물질 중 50%가 의약 물질이다. 항생제는 해조류의 군락구조와 먹이사슬에 변화를 줄 수 있고 기형 어류의 원인이 되며,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의 확산을 초래할 수 있다. 또 에스트로겐과 같은 내분비계 물질은 어류의 성을 바뀌게 하여 번식능력을 잃게 한다. 소염진통제인 디클로페낙은 무척추동물과 해조류에 독성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프랑스 베르툴레 지역에서는 2012년에 스테로이드 생산 공장에서 나온 약물로 인해 주변 하류의 물고기 60%가 중성으로 변한 사례가 있다. 우리나라 하천에서도 아스피린으로 불리는 아세틸살리실산과 진통해열제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 소염진통제로 쓰이는 나프록센, 디클로페낙이 높은 농도로 검출되었다. 또 낙동강 상류 안동호에서 하류 물금·매리취수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22개 지점에서 뇌졸증 치료제 주성분인 가바펜틴이 광범위하게 검출되었으며 의약품이 수처리 과정에서 변질될 수 있어 먹는 물에 영향을 충분히 미칠 수 있다.
환경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약물 오남용의 위험도 매우 크다. 향정신성 의약품인 큐시미아·디에타민 등 일부 마약류는 버려지지 않고 식욕억제제 등 다른 용도로 온라인 중고사이트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불법유통까지 조장되고 있다.
그러니 국민들은 올바른 폐의약품 배출방법을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물약, 시럽형으로된 액체류는 한 병에 모아 새지 않도록 뚜껑을 꼭 잠그고 알약은 포장된 종이, 비닐은 따로 분리해서 알약만 한곳으로 모아 수거함에 버려야 한다. 가루약의 경우 공기 중으로 퍼질 수 있으니 봉투에 담긴 그대로 버리면 되고 연고, 안약, 코스프레이 등 특수용기에 보관된 약은 무리하게 내용물 비우지 말고 그대로 수거함에 버리면 된다.
지자체별로 폐의약품 수거방식이 다 달라 주민들에게 혼란을 주고 폐의약품 처리에 큰 어려움을 주고 있다. 또한 아직까지 수거 처리체계가 미비하고 홍보도 부족하다. 또한 올바른 폐의약품 수거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다반사이며 알더라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시민단체인 대구경북녹색연합은 라디오캠페인을 통해 가정 내 폐의약품 안전수거를 알리는 캠페인을 가져 시민들에게 알렸고 아파트에도 폐의약품수거함을 비치해 효과를 보았다. 또 대구시 약사회와는 시범약국(60개소) 운영하며 가정 내 폐의약품 안전수거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환경부와 보건복지부가 서로 책임소재를 떠넘기고 있고 지자체에서는 환경관련과(자원순환과, 청소과)와 보건과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정부와 지자체가 더 이상 손 놓고만 있지 말고 하루빨리 관련 법을 개정해 이 문제를 개선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