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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과 빨치산, 같은 점과 다른 점

등록일 2021-09-01 19:48 게재일 2021-09-0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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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미군이 철수한 뒤 4개월 후 탈레반은 수도 카불을 점령하였다. 카불 공항에는 아프칸의 정부군이나 미군, 여러 외국기관에 협력했던 아프칸인들의 탈출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탈레반 정권의 무자비한 학살 장면을 떠올리며 필사적인 탈출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미군 비행기 바퀴라도 잡고 탈출하려던 난민 행렬 앞에 눈앞이 멍멍해졌다. 이러한 환란 중 IS의 자살폭탄에 의해 미군을 포함한 9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 백명이 부상당했다. 아프칸 탈레반의 비극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을 듯하다.

탈레반은 1994년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에서 결성된 이슬람 수니파 무장 반군 조직이다. 아프칸에는 같은 이슬람이지만 성격이 다른 여러 반군 조직이 혼재한다. 이번 정권을 장악한 탈레반은 2001년 실권한 후 20여 년간 미군과 정부군에 대항해온 반군조직이다. 이들 탈레반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신봉하지만 겉으로 온건 노선을 표방한다. 이에 비해 알카에다 반군은 지도자 빈 라덴 사망 후 세력이 약화되었지만 국제 연대를 주장하는 조직이다. 이번 폭탄 테러를 자행한 IS는 자폭, 참수 등 가장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하는 조직이다. 이처럼 모두 같은 이슬람 반군이지만 전략전술의 차이가 커 하나로 통일하기는 어렵다.

아프칸의 탈레반 정권은 6·25 전후이 땅의 빨치산을 회상케 한다. 빨치산은 친공 성향의 소수 게릴라 무장조직이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우리도 8·15 해방공간과 6·25 전쟁 시 소수의 젊은이들이 빨치산 활동에 가담하였다. 남쪽의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등 험악한 산악은 이들의 활동 거점이 되었다. 6·25 전후 빨치산은 정부군과 경찰에 대항하여 산악 전투를 전개하였다, 일제의 식민지배 시기에도 이 땅에는 항일 독립운동 무장 조직이 많았다. 국내의 무장단체 광복회는 친일 세력을 처단하였고, 만주의 의열단과 상해의 한인애국단은 국내외를 넘나들며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좌우익을 가릴 것 없이 일제에서 해방하려는 민족주의라는 공통점을 가졌다. 일제는 이들을 반군으로 간주하였다. 6·25 전후 한반도의 빨치산은 공산주의적 무장 조직이다.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이태의 ‘남부군’은 당시 빨치산의 실상을 그리고 있으며 차범석의 ‘산불’은 빨치산의 비극을 극화한 우수한 작품이다.

우리 주변에는 아프칸 탈레반의 참극을 보면서 우리의 안보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나라가 극도로 혼란하며 아프칸의 비극이 우리에게도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베트남의 빨치산 격인 베트콩은 월맹군과 합세하여 베트남을 공산화 시켰다. 다행히 우리는 6·25 전후의 빨치산은 소탕했다. 탈레반, 빨치산, 베트콩의 공통점은 외세의 지배, 정치적 혼란과 부정부패의 공간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아프칸의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차량 4대에 실은 돈과 함께 국외로 탈출해 버렸다. 핵심 지도층의 비리가 반정부 세력의 온상이 된 것이다. 우리의 정치 경제의 발전 수준은 이제 탈레반 같은 무장 세력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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