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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긷는 소리

등록일 2021-10-17 18:23 게재일 2021-10-1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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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야성초등학교의 2014년 운동회.

시끌벅적한 소리가 사라졌다.

20년 넘게 초등학교 옆에 살았다. 아이들이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에 학교가 있다는 것에 무조건 이사를 결정했었다. 부엌으로 난 작은 창문을 열어두면 쉬는 시간 아이들의 뜀박질 소리가 그 문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이맘때 들려오던 운동회 소리가 코로나 때문에 끊겨버렸다. 날이 정해지면 한동안 운동장에서 매스게임 연습하느라 선생님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날아오고, 행진곡이 배경음악으로 쉴 새 없이 동네를 들썩거렸었다. 그런 소리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마스크에 묻혔는지 초등학교 옆이란 게 느껴지지 않는 요즘이다.

이십 대인 아들 둘이 졸업한 초등학교이다. 저 학교에서 큰아이는 봄가을로 여섯 번이 넘는 운동회를 경험했다. 일기장을 뒤적이니 2005년 9월 29일의 운동회 장면이 만국기를 흔들며 나타났다. 둘째가 1학년에 입학해서 5학년인 형과 함께 체육복 차림으로 신나게 학교로 향했다. 내 어릴 적 같으면 운동장에 만국기 날리고 장사꾼들이 먼저 와 자리를 잡고 그 틈새에 할머니가 밤 삶고, 떡 싸서 큰 나무 아래에 전을 폈을 것이다.

도시에 사는 우리 아이들의 운동회는 심심하다. 그저 맨손 달리기 한 번이면 끝이다. 남편과 나의 운동신경을 닮아 재바르지 못한 두 아들은 늘 꼴찌를 못 면한다. 학교 가기 전 아이들에게 남편이 부탁한다. “일등 하면 안 된다. 꼴찌로 달려라, 천천히. 너같이 잘 생긴 사람은 팬서비스 차원에서 천천히 달려줘야 해. 알았냐?” 말도 안 된다고 킥킥거리며 현관을 나선다. 저녁에 야영 간 남편이 전화했다. 3등, 4등을 했다니까 5학년은 세 명씩 달리고 1학년은 4명 달렸나 한다. 보물찾기나 장애물경기처럼 여러 변수가 없는 맨손 달리기는 어차피 다섯 명 달리면 5등, 여섯 명 달리면 6등 하는 아이들이라 위로할 방법으로 뒤로 처질수록 용돈을 더 주겠노라 약속했었던 거다. 그 후로 아이들이 맨손 달리기를 즐겼다.

다음 해 가을, 두 아이의 학교 운동회날이 돌아왔다. 늘 간단하게 오전에만 하던 소운동회를 올해엔 학부모님들 다 모시고 거창하게 한다고 초대장을 들고 왔다. 수업 시간 쪼개서 달려가니 2학년 둘째의 달리기 순서였다. 달려가다가 훌라후프 다섯 번 넘고 또 달려가기였다. 신발 맞는 거 신으랬더니 또 형 신발을 신고 달려가느라 낑낑거리는 게 안타까워 목청껏 그냥 뛰라고 응원을 보냈다. 안 그래도 겨우 4등으로 달리다가 드디어 신발이 벗겨졌다. 엄마의 바람은 뒤로하고 우리 둘째 되돌아와서 천천히 신발을 다시 껴 신는다. 그동안 다른 애들 다 뛰어가 버리고 없다. 그래도 5등으로 웃으며 뛰어간다.

6학년 큰애는 ‘손님 찾기’라고 쪽지에 적힌 대로 한 다음 달려가는 건데 4-4반 선생님을 찾으라는 쪽지를 잡았나 보다. 다른 선생님들 다 나와서 누구 찾냐고 물어보시는데 하얀 바지 입으신 4반 남자 선생님이 맨 꼴찌로 나와서는 아들더러 이왕 꼴찌인 거 아이 혼자 뛰어가게 했다. 헐! 성질 더러운 나는 화가 치밀었다. 초등학생 담임이 운동회를 뭐로 보는 거지? 아이들이 최선을 다하는 걸 배우도록 하는 게 운동회인데 꼴찌라고 그냥 혼자 뛰어가게 한다고? 안 그래도 부끄럼 많은 아들은 뻘쭘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얼굴에 쓰였다. 끝까지 손잡고 뛰어줘야지 선생님아. ‘님’자도 붙이기 싫었다.

그 와중에 교감 선생님, 맨 나중에 단상에서 내려와 옆에 다른 아이 손 잡고 꼴등으로 달리던 아이를 거의 끌다시피 데리고 날아가서 3등으로 골인했다. 역시 교감 선생님 짱이다. 어른이라면 그 정도 모범은 보여야 하는 거 아닌지.

콩주머니로 박을 터뜨려야 점심을 먹을 수 있었고, 마지막 청군 백군 학년 대표들이 나와 이어달리기를 하며 전교생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한 다음에야 운동장이 조용해지던 기억 속의 운동회, 일기장 속에서 길어 올린 아이들의 운동회로 허전한 가을의 쓸쓸함을 달랬다. /김순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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