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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지랑 곱창골목

여행이 관광산업으로 발전한 것은 19세기 무렵 유럽에서다. 교통수단의 획기적 발달이 관광산업을 선도했다. 그 이전에는 돈 많은 왕족이나 귀족의 전유물 정도로 일반인에겐 관광이란 상상하기 힘든 개념이었다.여행을 뜻하는 영어의 Travel은 고통과 고난의 뜻인 Travail에서 유래됐다는 것은 여행 자체가 힘든 고난의 길임을 말해주고 있다.생활이 윤택해진 요즘은 해외여행이 보편화 되고 여행 자체가 삶의 일부이자 휴식이 되고 있다. 여행을 통해 생활의 즐거움을 느끼고 내 삶도 재충전한다.먹는다는 것은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그 지역 그 나라의 대표적 음식을 찾아 맛을 보며 문화와 생활방식을 이해할 때 우리는 여행의 특별한 의미를 느낀다. 미국에 가면 우리의 주먹보다 더 큰 햄버거를 먹고 프랑스에서는 달팽이 요리, 이탈리아에서는 스파게티, 체코의 족발요리 같은 것을 먹어 보면 진정으로 그 나라의 문화를 실감할 수 있다.IMF 이후 대구시 남구 앞산 안지랑 골짜기에 하나둘 생겨났던 곱창전문식당가가 합쳐져 형성된 안지랑 곱창골목이 농림축산부가 선정한 올해의 최고 외식거리로 선정됐다고 한다. 이곳은 과거 전국 5대 음식 테마거리로 뽑힌 바 있고, 한국관광 100선에도 선정되는 등 짧은 시간에 제법 유명세를 탄 먹거리 동네다.이곳에서 취급되는 막창구이는 대구 10미(味)의 하나로 전국 어디서도 구경하기 힘든 대구만의 특화 요리다. 1970년 초부터 대구에서 유행한 막창구이는 소주와 잘 어울리는 안주로 젊은이에게 인기가 높다. 특별히 제조된 된장 소스와 마늘과 쪽파를 곁들여 먹는 맛은 별미라 하겠다.전국 최고의 외식거리로 선정된 안지랑 곱창골목이 바로 우리 고장의 자랑거리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12-01

으악새와 만반잘부

이재현동덕여대 교수“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 아- 뜸북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가수 고복수의 노래 ‘짝사랑’ 1절과 2절 첫 소절을 되뇌어 본다. 어느새 으악새와 뜸북새가 슬피 우는 가을이 가버렸다. 이렇게 슬프고 힘들게 2020년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으악새’는 어떤 새일까, 2절의 ‘뜸북새’가 새 이름이니 1절의 ‘으악새’도 조류의 한 종류로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손목인의 가요인생’이라는 책에는 ‘짝사랑’의 가사에 나오는 으악새가 무슨 새냐고 작사가인 박영호에게 직접 물었을 때 “고향 뒷산에서 ‘으악, 으악’하고 우는 새 울음소리가 들려 그냥 ‘으악새’로 했다.”라고 심드렁하니 대답했다는 기록이 있다. 새의 이름이라기보다는 새 우는 소리를 듣고 그냥 갖다 붙인 것이라는 말이다. 한때는 ‘으악새’에 대해 다른 설이 있었다. 으악새는 새가 아니라 풀 이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으악새는 갈대와 비슷한 억새풀의 경기도 방언이다. 가을 바람이 불 때쯤 억새풀이 바람에 흔들리며 소리를 내는 것을 시적으로 표현했을 것이라는 설이었다. 그런데 노랫말을 쓴 장본인이 새라고 했으니 더 이상 논란의 여지는 사라진 셈인데, 아직도 이런 이야기가 여전히 떠돌아 다닌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곧,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이름을 작사가가 자기 마음대로 갖다붙였으니 나름 개연성 있는 다른 설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제법 그럴싸하다. 작사가가 침묵하고 있었다면 ‘으악새 슬피 우니’라는 구절은 ‘으악으악’하고 우는 괴기스럽기까지 한 새의 소리로 이해하기보다 ‘억새’풀의 흔들리는 소리로 풀어내는 것이 짝사랑의 심경을 노래하는 데에는 더 잘 어울렸으리라.듣는 이와 말하는 이, 쓰는 이와 읽는 이 사이의 언어적 약속이 잘 맺어지고 그 약속이 지켜져야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진다. 으악새를 새의 한 종류로 받아들이기 껄끄러운 까닭은 언어대중 사이의 사회적 약속으로써가 아니라 개인이 임의로 만들어 썼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노래로 불리고 있기에 으악새는 공공의 언어 마당에서 새의 이름이라는 지위를 그나마 확보할 수 있었을는지 모르겠다.그런데, ‘슬세권’을 아는가? ‘보배’는 들어 봤는지? ‘슬세권’은 ‘슬리퍼를 신고 편한 차림으로 다닐 수 있는 역세권’이라는 말이고, ‘보배’는 ‘보조 배터리’를 줄인 말이다. 스마트폰과 좀비를 합쳐 줄여 만든 ‘스몸비’(Smombie)라는 영어식 신조어도 있다. 이런 새말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지금도 어디선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가히 줄임말 신조어가 홍수처럼 밀려드는 시대가 도래했다. 인터넷 공간을 박차고 나와 젊은이들에게 많이 사용되고 있는 줄임말 신조어들은 세대 간의 소통 부재 현상을 점점 키워가고 있다. 이러한 말들로 세대 간뿐만 아니라 같은 세대 안에서 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생기기까지 한다.‘만반잘부’(“만나서 반가워 잘 부탁해.”)라고 하며 줄임말 앞에 억지로 머리 조아리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가뜩이나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에서 소통의 어려움까지 겹쳐 무지근해지는 12월이다.

2020-12-01

길과 인생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서양에서는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고 동양에서는 인생을 길을 가는 나그네로 비유한다. 이백은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세월은 백대의 과객이라”하면서 인생을 여행길에 비유했다. 동양적 사고에서 길은 단순히 교통수단을 말하지 않고 사람이 마땅히 취해야 할 마음가짐이나 행위를 의미한다.길에는 바른 길로 지칭되는 큰 길과 바르지 않은 길로 지칭되는 갓 길이 있다. “군자대로행”이라는 말에서 대로는 바른 길을 의미한다. 어떤 길이 바른 길이고 어떤 길이 바르지 않은 길일까? 또 그 길을 누가 만들었을까?루쉰은 “본래 땅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고 했다. 지금 내가 편히 가고 있는 길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누군가 돌과 바위를 치우고, 가시덤불을 헤치며,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만든 길이며, 그 거친 길을 뒤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다듬어 지고, 그 길을 여러 사람이 함께 감으로 넓어져 비로소 길이 된 것이다. 그렇게 생긴 길을 사람들은 제 길 인양 걷는다. 길이 손상 되었거나 불편하다고 여겨지면 왜 길을 보수하지 않고 만들지 않느냐고 불평한다. 만들어진 길을 가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모든 길은 누군가가 없던 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생긴 것인데 이에 대해 고마움과 감사를 잊은 듯하다. 그렇게 보면 세상에는 만들어진 길을 가는 사람과 없던 길을 만드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없던 길을 만든 사람을 우리는 선구자라 하고 성인이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길들을 만들었지만 그 길이 가치를 상실하여 사람들이 그 길을 가지 않게 되고 그래서 대부분 소멸된다. 소수의 길만이 남아 지금도 사람들이 따르는 길이 된다.길은 고전과도 같다. 고전은 지역과 시대를 불문하여 과거에 지닌 가치가 현재에도 남아 그 가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길이 고전과 같은 길일까? 그 길은 과거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영원토록 변치 않는 진리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죽임의 길이 아니라 우주만물에 생명을 공급하는 살림의 길이 되어야 한다.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다. 내가 가는 길은 지역과 시대를 초월하여 변함이 없는 진리의 길이고 우주만물에 생명을 공급하는 살 길이라는 것이다. 그 길을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갔기 때문에 오늘의 길이 되었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간다.지금 내가 가는 길은 어떤 길일까?나는 만들어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일까? 없던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일까? 나는 뭔가를 받기만 하는 수혜적 사람일까, 뭔가를 주려고 하는 호혜적 사람일까? 길은 만든 사람이 없이는 길이 있을 수가 없고, 그 길을 함께 가며 다듬은 사람이 없이는 길이 될 수 없다. 나는 누구에겐가 단 한번이라도 그 길을 만들어 주었거나 그 길이 되어 준 적이 있었을까?

2020-12-01

덮으려는 자 밝히려는 자

강희룡 서예가2009년 10월 MBC ‘PD수첩’은 ‘한 해군장교의 양심선언’이라는 제목으로 해군 납품 비리 의혹을 고발했다. 계급이 소령인 한 현역 해군장교가 방송에 모자이크 처리 없이 출연해 육해공군 통합기지인 계룡대 근무지원단 간부들이 최소 9억이 넘는 돈을 빼돌린 정황을 군 수사기관에 신고했으나 ‘혐의 없음’이라는 답변만 들었고 관련자들을 징계하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방송 이후 재수사로 해군 간부 등 현역과 군무원 등 31명이 사법처리 된 방산비리 사건이다. 이 소령은 배신자로 낙인 찍혀 한직을 전전하고 음해로 인해 뇌물공여죄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2011년 권익위에서 주요 부패 신고자로 선정돼 훈장까지 받았지만 스스로 전역을 택했다. 2018년 1월 ‘1급기밀’이라는 영화가 개봉됐다. 이 영화는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외압설 폭로와 2009년 방산비리를 폭로한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으로 국가라는 이름으로 봉인된 내부자들의 은밀한 거래를 폭로하는 범죄 실화극이다.내용은 독도 인근 해상에서 비행훈련 중이던 우리 공군 전투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런 경우 블랙박스와 기체를 수거해 추락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하지만 군에서는 정부와 고위 장성까지 얽혀있는 사건이기에 조종사의 음주비행의 과실을 사건의 원인으로 몰아가며 마무리하려고 한다. 하지만 한 장교에 의해 이 사건과 관련해 군과 미국의 전투기 부품업체 더 나아가 국방부와 미국 펜타곤 사이에 모종의 커넥션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방송기자와 함께 언론에 폭로하면서 그들이 감추려 했던 국민 모두가 알아야 하는 엄청난 방산비리사건이 천하에 드러난 것이다.이 영화는 국익이라는 미명으로 군복 뒤에 숨어 사건을 은폐하려는 집단에 맞서는 용기 있고 정직한 인물이 부조리를 저격하고 적폐청산을 그려낸 작품이라고 보겠다. 생명과 직결된 방위산업비리는 대한민국 군내에 만연한 고질적인 문제이다. 총알 뚫는 방탄복, 휴전선에 군(軍)이 도입한 중국산 CCTV 등 모든 비리 중에서도 방산비리가 더욱 위험한 것은 단순히 금전적인 문제를 떠나 누군가의 자식이자 연인인 수많은 젊은이들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으며, 나아가 국가의 안녕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국가 안보의 적이라는 결론에까지 도달하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를 시작으로 울산시장 선거개입, 라임 옵티머스 사태, 월성원전 등 현 정권의 굵직한 권력형 비리수사를 더 이상 밝히지 못하게 덮으려는 추미애 법무장관은 급기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모호한 이유를 들어 징계청구, 직무배제 명령을 내렸고, 윤 총장 역시 집행정지 신청과 취소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러한 권력형 대형비리는 패거리의 음모가 그 계략의 얼개를 형성하고 있기에 진실을 밝히려는 자에 대한 임명권자의 최종적인 결정을 보면 그 정부의 특징을 알 수 있다. 진실을 덮으려는 발상인 공수처 설치나 검찰개혁보다 국민들의 시대적 요구는 권력형 비리나 고위직 부패는 반드시 척결해서 반칙과 불공정이라는 신적폐를 청산해 진정한 민주주의의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것이다. 진실은 감추려 할수록 더욱 드러난다는 것은 진리이다.

2020-11-30

덕실(德室)마을

김유복전 포항뿌리회 회장지난 주말 한나절은 산행으로 풀고 돌아오는 길에 흥해 덕실마을로 오래 못 본 선배도 뵐 겸 발걸음을 옮겼다.덕이 있는 사람들의 마을이라 하여 ‘덕실(德室)’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마을로 형성된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조선 초기(1492년경) 경주 김씨가 입향(立鄕) 하였다는 설명으로 봐서 500년은 족히 넘은 유서 깊은 고장으로 현재는 3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논과 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마을에는 경주 이씨 입향조를 기리는 재실인 이상재(履霜齋)가 있고 지방 문인들이 시회(詩會)를 하던 담화정(湛和亭)이 있는 기품(氣品)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이 마을은 2007년 12월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이 마을 출신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우리 지역으로서는 대통령을 배출한 영광에 엄청난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끼게 만든 곳으로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일국의 대통령까지 된 포항 출신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갖가지 공(功)과 과(過)는 있겠지만, 그 공과는 역사가들이 평가할 문제로 차치하고 그 당시 지역 출신의 입신양명(立身揚名)에 열광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가난과 어머니가 나의 스승이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고 꿈을 키우기 위한 도전과 용기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인생역정만큼은 본받을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이명박 대통령 기념 전시관으로 만들어진 덕실관을 둘러봤다. 지상 2층으로 지어진 현대식 건물에 그 간 꿈을 키우며 살아온 일대기와 대통령으로서의 삶에 대한 기록물이 전시되어 있고 2층 영상관에서는 대선 후보 당시 홍보물과 포항과 덕실마을을 소개하는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다. 덕실관 뒤에는 누런 초가지붕의 생가를 복원한 건물이 가을볕을 받으며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주말이라 더러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있긴 하지만 요즈음은 코로나 감염증 등으로 현저히 줄어든 모양새다. 최근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에서 덕실관 운영에 관한 비판의 소견을 내놓은 뉴스를 접하고 착잡한 심정으로 찾아본 덕실마을은 늦은 가을의 뒤끝처럼 조용했다.한때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곳이었지만 세월이 지나고 평가가 엇갈리면서 열기가 식은 것 같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은 우리 지역 출신 인사가 제17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는 역사는 지울 수가 없고 포항 사람으로서는 잊을 수 없는 영광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지역을 위해 해놓은 게 별로 없다는 게 지역 민심(?)이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비록 법의 심판을 받아 영어(囹圄)의 몸이 된 그것 또한 역사에 기록되겠지만 잘못된 역사 때문에 지역의 자부심마저 상실될 수가 없는 노릇이다.부끄러운 역사를 기억하고 잘난 역사는 이어가는 게 미래를 위한 바람직함이 아닐까. 포항의 자랑거리는 시민 모두의 것이며 후대를 위해 길이 보존되어야 할 것이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충절의 고장에 사는 마을 분들과 선배가 건강하고 밝은 얼굴로 살아가기를 기대하며 덕실마을을 떠나왔다.

2020-11-30

길 위에 서다

걸음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참 많이도 걸어왔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길이었고 순식간에 지나간 찰나였다. 세상은 헤쳐 나아가야만 하는 거친 정글이라는 생각으로 앞만 보고 걷기만 했던 지난날이었다. 혈기 왕성한 젊은 자신감이었다. 이제와 잠시 내려놓고 뒤돌아보니 참으로 만만치 않았던 길이었다. 길의 마디마디를 넘을 때마다 어김없이 치열하고 비장한 전투였다. 죽기 살기로 덤비고 이기려 안간힘을 다 쏟았었다. 그렇게 힘겹게 마디마디를 넘길 때면 한 단계 성숙해졌다고 위안 삼았고 자신을 대견해하며 칭찬하고 위로했었다. 매 순간 임전무퇴의 각오로 전투에 임하듯 비장했었고 필승의 각오로 임했다. 치열한 전투가 끝나고 나면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음 전투를 준비해야 하는 긴장감으로 곳곳에 난 상처가 아물 겨를도 없었다. 상처를 치유하고 나를 뒤돌아보며 나를 쉬게 할 여유를 나 스스로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이 세상을 잘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만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그 순간에도 소중함이 내 안에 담아지기 때문이다. 걷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며 주변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옹이 없는 나무 없듯이 돌부리 없는 길 없으니 넘어지지 않고 상처가 남겨지지 않게 쉬어가며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 /유병재(사진작가)

2020-11-30

토마토와 시금치

평상시 꼭 챙겨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닌데도 값이 뛰면 괜히 더 먹고 싶어지고 생각나는 건 나만 그런 걸까?몇 년 전 수박값이 폭등했을 때 그랬고, 올해 긴 장마와 잦은 태풍으로 토마토 공급이 어려워, 패스트푸드 햄버거 매장에서도 토마토는 넣어 드릴 수 없다는 사과문까지 나온 요즘, 왜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토마토가 들어간 샐러드, 파스타가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샌드위치에도 구운 토마토를 넣고 싶다는 생각이 영락없는 청개구리 같다.잘 익은 방울토마토를 낮은 온도의 오븐에 구워(꽤 긴 시간 공을 들여)낸 구운 토마토의 달달함은, 당류가 들어간 음식의 스윗함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 난다. 마트에서 소포장으로 토마토나 방울토마토를 사다 먹다가, 결국 꽤 센 가격표가 부착된 방울토마토를 상자째 사 와서, 물에 씻고 식초 탄 물에 담가두었다 다시 헹구고 오븐 예열을 시작했다. 오븐 팬에 유산지를 깔고 반쪽 낸 토마토를 조심스레 가지런히 놓고선 오븐에 넣어 굽기 시작했다. 구워지는 동안 샐러드로 먹을 어린잎 시금치도 씻고,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썰었다. 이탈리아 국기 색을 나타낸다는 마르게리타 피자에서의 녹색 담당 루꼴라처럼 오늘 여린 시금치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며칠 전 코로나로 집밥의 횟수가 늘며 자칫 빠지기 쉬운 영양소를 보충하기 위해 먹으면 좋은 식재료들을, 다섯 가지 영양소로 구분해서 설명해 놓은 잡지 기사를 봤는데, 시금치에 네 개 부분의 영양소가 모두 들어있었다. 비타민A와 C, 칼륨, 엽산이 풍부하다는 기사를 보면서, 아주 예전에 뽀빠이라는 만화영화에서 시금치만 먹으면 팔뚝 근육이 순간 솟아나는 뽀빠이가 떠올랐다. 아이들이 먹기 싫어하는 채소를 먹이기 위한 전략만 들어있는 것이 아닌, 이유 있는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잘 구워진 토마토를 옮겨 식힌 후, 시금치를 깔아둔 접시에 담고 발사믹 시초와 올리브유를 섞어 두른 한 끼 샐러드가 완성됐다. 시금치를 먹기 꺼렸던 아들도 두 손 엄지 척이다./권현주(포항시 북구 장성동)

2020-11-30

융통성 있는 여자

라넌큘러스의 계절이다. 개구리 왕자처럼 볼품없는 미나리 같은 줄기에서 장미처럼 화려한 꽃이 피는 식물이 있다. 바로 라넌큘러스. 이름도 개구리를 뜻하는 라틴어 ‘라이나’에서 유래했는데, 주로 연못이나 습지에서 자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300장이 넘는 하늘하늘한 꽃잎이 둥글게 포개져 있어 얼핏 보면 장미로 착각하기 쉬운데, 겉모습은 습지가 아니라 볕이 잘 드는 정원에 피어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생김새만큼이나 다루기 어려운 꽃이라 습도가 맞지 않으면 쉽게 잎이 마르거나 시들어 버린다. 게다가 두꺼워 보이는 줄기는 속이 텅 비어 있어 꺾어지기 쉬우므로 살살 다뤄야 한다.꽃병 속 꽃을 오래가게 하려면 아스피린을 넣어주라는 기사를 어제 봤다. 집에 아스피린은 없고, 타이레놀이 있길래 넣어주고는 걱정이 되어 밤에 약사인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타이레놀도 괜찮지? 하고 물었더니 아침에 연락이 왔다. 아스피린은 산성이라 오래가게 할 수 있는데, 타이레놀은 아니란다. 이런!아침에 약물 오남용으로 축 처진 라넌큘러스 버터를 보니 미안하다. 그래서 얼른 줄기도 자르고 물도 갈아줬다. 약에 대해 잘 모르면서 적극적인 융통성을 발휘하는 건 위험하니 특히나 조심해야겠다. 융통성 발휘의 나쁜 예다.약이라고 하니 생각나는 게 있다. 까스명수이다. 어릴 적 배앓이 할 때마다 엄마가 사주신 약이다. 그 맛이 어찌나 맛난지 먹고 싶을 때마다 융통성을 발휘해 배가 아픈 척을 했다. 엄마는 장에 넣어두었던 한 병을 꺼내서 따 주셨다. 아 감질나는 양이었다.어른이 된 지금은 소화 안 될 때 내 몸무게를 생각해 꼭 두 병씩 먹는다. 한 병은 성에 차지 않아서이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건만 병의 크기는 왜 아직 그대로인지. 요구르트도 대용량이 나왔는데 까스명수는 왜 큰 병을 안 만드는 걸까.장식장 위의 라넌큘러스가 물끄러미 이런 나를 본다. /이홍숙(경주시 안강읍)

2020-11-30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수첩을 선물 받았다. 초록색 표지의 스프링 형식이었다. 손바닥만 한 공책을 보니 또 다른 공책이 떠올랐다.남편과 연애 시절이었다. 삐삐로 소식을 전하던 시절이었지만 내겐 그런 거 하나 가질만한 경제력이 없었다. 그래서 매일 보는 사람이었지만 편지를 썼다. 하지만 보내면 늘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저 스프링 공책이었다.내가 먼저 마음을 적어 주고 다음 만날 때 써서 가지고 오라고 했다. 안 썼다면 나오지 말라는 반협박을 얹어 주었다. 1년 동안 연애하며 그렇게 손바닥만한 공책 한 권을 주고받았다.세월이 지난 어느 날, 아들과 책꽂이를 정리하다 그 스프링 달린 공책을 보게 되었다. 이게 뭐지 하며 들쳐 본 아들이 큰소리로 읽어주기 시작했다. “H에게” 아들이 첫 구절을 읽으며 닭살 돋는다며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웃는다. 가로등을 배추꽃으로 표현한 남편의 편지, 글씨도 궁서체로 반듯하게 썼다.아들도 오래도록 ‘모태 솔로’이더니 군대를 다녀와서 연애를 시작했다. 과 후배와 캠퍼스 커플로 한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20대를 데이트도 하며 좋은 사람도 만나 편지도 보내라고 등을 떠밀었다.아들의 눈에 나이 든 엄마와 아빠가 닭살 돋는 편지를 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가 보다. 또 휴대전화를 몸에 붙이고 다니며 카톡으로 빠르게 마음을 전하는 시대이니 이렇게 종이에 글을 써서 주고받는 연애가 신기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라떼는 말이야, 꼰대처럼 우리 때는 단짝 친구와도 비밀노트를 주고받았고, 위문편지도 쓰고, 일기장에 자물쇠도 달아놓고 썼다는 ‘썰’을 풀었다. 이런 게 진짜 연애지 하며 뻐겼다. 아들은 아버지의 연애편지와 아버지 얼굴을 번갈아 보며 키득거렸다. 그런 아들을 향해 묵묵히 책 정리만 하던 남편이 한마디 던졌다.“나도 내 손을 찍고 싶다.”/이규헌(포항시 북구 장성동)

2020-11-30

지혜의 등불을 찾아… 경남 합천 해인사 원당암(願堂庵)

해인사의 중후한 품격은 변함이 없다. 열세 개의 해인사 부속 암자들까지 모여 있는 가야산, 매표소를 지나면서부터 불국토에 들어선 듯 무심(無心)이 된다. 사람들이 몰리는 해인사를 지나쳐 무생교 너머 외길 끝에 앉아 있는 암자로 향한다. 해인사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원당암(願堂庵)이다.계곡 옆 푸른 이끼를 두른 거대한 바위는 인파당 스님의 자연석 사리탑이다. 백련암에 주석하던 인파당 스님은 살아생전 고매한 인품과 학문에 능하여 많은 분들로부터 무위자연의 도인이라 칭송받았다. 1846년 열반에 드시자 기대했던 사리가 나오지 않아 허탈감에 빠진 제자들이 나름의 견해들로 큰스님을 평하기 시작했다. 밤이 되자 다비식이 있던 마당에 오색 빛이 나타나 사라지는 곳으로 따라와 보니 바위 위에 스님의 사리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그제야 어리석은 분별심을 깨우쳐 주고 죽음 후에 자연으로 돌아가 바람처럼 묻히기를 원했던 스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 바위 위에 구멍을 파서 스승의 사리를 모시게 된 것이다. 초겨울의 문턱에서도 굴하지 않는 푸른 이끼 때문일까. 바위는 어디에도 물들지 않고 진리를 찾아 정진하는 선승처럼 범상치 않아 보인다.신라 애장왕 3년(802년), 부처님의 가호로 공주의 난치병이 낫게 되자, 순응과 이정 두 대사의 발원으로 해인사가 창건되었다. 당시 왕은 서라벌을 떠나 원당암에서 불사를 독려하면서 국정을 보았으며, 이로 인해 원당암을 ‘수도 서라벌의 북쪽에 위치한 궁궐’이라는 의미에서 북궁(北宮)이라 불렀다.창건 당시에는 이곳의 산 모양이 봉황이 날아가는 모습을 한 비봉산(飛鳳山) 기슭에 위치해 봉서사(鳳棲寺)라 이름하였고 진성여왕 때부터 본격적인 신라 왕실의 원찰(願刹) 역할을 하여 원당암이라 불렀다. 또한 1887년 전후에는 원당정토사(願堂淨土寺)라 칭해 중창불사와 함께 염화만일회를 결사해 국난극복을 발원했다.아름드리 팽나무와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은 전나무가 산문을 대신하고, 이내 크고 작은 전각들이 청정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린다. 묵언수행 하듯 서 있는 고목들이 암자의 규모와 역사를 말해 주는데 절은 조용하다. 묵직한 고요가 나를 긴장시킬 때, 까마귀 울음이 정적을 깨며 숲을 흔든다.지혜의 칼을 찾는 집, 심검당(尋劍堂) 뒤쪽에 중심 전각인 듯한 보광전이 숨어서 기다린다. 고요 속에서 빛나는 아름다움이 보인다. 작은 법당의 꽃문살이 애써 쓸쓸함을 들키지 않으려 유난히 화려하다. 매화와 목단, 소나무, 학 들이 펼치는 무한 긍정의 세계는 추운 날이 와도 흔들림이 없으리라.법당 안에는 목조 아미타 삼존불과 해인사에서 주석한 아홉 분의 고승진영이 모셔져 있다. 누군가 피워놓은 향이 법당 안을 경건하게 밝히고 나는 남편과 나란히 백팔 배를 시작한다. 향 내음이 게으름으로 괴로워하는 세포들을 깨운다.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살다간 선사들의 향기를 더듬는 동안 내 기도는 싸늘하게 식어가도 좋다.보광전 앞을 지키는 보물 제 518호인 점판석 다층탑과 석등은 단아하면서 공예적 수법이 뛰어난다. 벼루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점판암을 화강암 위에 탑신으로 세운 다층석탑은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감로수 떨어지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석탑과 석등, 지난했던 시간들이 응축되어 빛난다.미소굴이 있다는 안내판을 따라 계단을 오른다. ‘공부하다 죽어라’는 혜암 큰스님의 사자후가 죽비가 되어 내려친다. 평생을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와 하루 한 끼만 공양하며 용맹정진하신 큰스님의 서늘한 기운을 미소굴은 흐트러짐 없이 간직하고 있다.비상하는 봉황의 모습으로 가야산의 정기를 받아들인다는 최고의 전망대 운봉교에 서자 법보종찰 해인사가 손닿을 듯 가깝다. 오랜 세월, 수많은 선지식들이 하나의 화두를 붙잡고 머물다 간 신성스러운 수행도량, 그 엄숙한 눈빛과 마주한다. 가야산을 감고 있는 상서로운 기운들이 잡힐 것만 같아 오래도록 자리를 뜰 수가 없다.조낭희 수필가그런 나를 달마선원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 생전에 큰스님이 재가불자들에게 참선을 가르치던 시민선방, 그 침묵 앞에서 나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지혜의 빛을 찾아 먼 길을 달려 왔을 사람들, 봄날이 오면 저 선방의 댓돌 위에 내 신발 한 켤레도 안부를 여쭐 수 있다면 좋겠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지 좀 더 뚜렷하게 보인다. 요즘 의도치 않게 당면하는 문제들과 우연히 만나지는 선지식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지 모른다. 아무리 힘들고 캄캄해도 변하지 않을, 그런 당신 내 안에 함께 하라고 이곳으로 이끈 이는 누구일까?청량한 바람이 인다. ‘공부하라’는 거룩한 말씀 하나 품고 무생교를 건너는데 어떤 부부가 말을 걸어온다. “원당암에도 볼거리가 있던가요?” 선뜻 답을 할 수가 없다. 그들이 찾는 것은 무엇일까? 나란히 암자로 향하는 사람들, 그들의 돌아 나오는 발걸음에도 지혜의 등불 하나 켜질 수 있다면 좋겠다.

2020-11-30

가장 모범적인 미술사 교과서 ‘서양미술사’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서양미술사 입문서로 미술사의 흐름을 가장 교과서적으로 서술한 책은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1909∼2001)의 ‘서양미술사’이다. 1950년 파이돈 출판사가 소개한 이 책은 지금까지 한국어를 포함해 25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700만부 이상 판매된 미술사 관련 서적으로는 단연 독보적인 스테디셀러이다. 그런데 정작 책을 쓴 저자에 대해서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아 곰브리치에 대해 소개할까 한다.곰브리치는 1909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태어났다. 일반적으로 그의 이름은 영어식으로 곰브리치라고 발음되지만 독일어식 발음으로하면 ‘곰브리히’가 맞다. 곰브리치는 교육수준이 높은 오스트리아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변호사로 활동했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곰브리치는 1928년 빈 대학에 진학해 미술사를 전공한다. 당시 빈 대학은 ‘빈 학파’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미술사의 학문적 전통을 세운 주요 인물들이 교수로 활동하고 있었다. 미술사학은 이제 막 주요 대학들에서 학과로 설치되기 시작한 신생학문이었기 때문에 연구방법에 대한 학문적 토대가 조금씩 정립되어 가던 상황이었다.빈 대학 재학 중 곰브리치는 하인리히 뵐플린(1864∼1945)의 강의를 듣기 위해 잠시 빈을 떠나 독일 베를린에서 시간을 보냈다. 뵐플린은 ‘미술사 기초개념’이라는 저서를 남긴 미술사학인데, 미술작품의 형식 분석적 연구방법 발달에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두 대의 디아프로젝터를 이용해 두 점의 미술작품을 나란히 투사해 비교하는 강의 방식을 처음으로 선보인 사람이 뵐플린이다.곰브리치는 1933년 이탈리아 만토바에 자리한 줄리오 로마노의 팔라초 델 테를 연구해 빈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35년 청소년을 위한 짧은 세계사를 출판했고, 이듬해인 1936년 런던으로 건너갔다. 1944년부터 런던의 바부르크 연구소에서 일하게 되는데, 바부르크 연구소는 서양미술사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한 곳으로 그 역사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바부르크 연구소를 설립한 것은 독일 함부르크 출신의 유대계 독일인 아비 바부르크(1866∼1929)이다. 바부르크 가문은 함부르크에서 은행을 운영하던 대부호였고, 아비 바부르크는 가문의 장남으로 가업을 이어받아야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업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고전 문헌과 역사 그리고 미술사 연구에 심취해 있었다. 아비 바부르크는 동생에게 가업을 양보하는 대신 평생 원하는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지원해 줄 것을 약속받았다.그 후 동생의 경제적 지원으로 방대한 자료들을 수집했고, 체계적인 연구를 위해 함부르크에 미술사 연구소를 설립한다. 하지만 나치의 등장으로 연구소를 안전한 런던으로 옮기기로 결정한다.편집증적인 성격의 아비 바부르크가 발전시킨 미술사 연구 분야는 도상학이다. 도상학은 작품이 담고 있는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밝혀내는 미술사 연구 분야로 하나의 작품을 역사, 문화, 정치, 사회적 관점 등을 통하여 다층적으로 해석한다. 바부르크와 함께 도상학 연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미술사학자로는 에르빈 파노프스키(1892∼1963)가 있다.곰브리치는 1944년부터 바부르크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고, 1950년 시대를 초월한 미술사 스테디셀러 ‘서양미술사’를 세상에 선보였다. 곰브리치는 1959년 연구소장으로 임명되어 1976년 까지 직책을 이어갔으며, 1970년 바부르크의 일생과 연구 업적을 집대성한 전기를 출판했다. 지금도 런던에는 바부르크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바부르크 연구소와 도서관이 운영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서양미술사 연구소로 학문적 성과를 이루어내고 있다./미술사학자

2020-11-30

민주 시민(市民)인가, 팬덤 신민(臣民)인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이다.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해야 할 ‘이성적 시민’이 팬덤(fandom)정치의 광풍(狂風)으로 ‘감성적 신민’으로 전락했다. 이른바 ‘문빠’나 ‘대깨문’처럼 정치권력에 예속된 신민들의 광신도적 행태가 한국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있다.물론 정치팬덤은 ‘빛과 그림자’가 있지만, 이들의 공통적 특성은 매우 감성적이고 편향적이며 과격하다. 대통령이나 정권의 실세가 좌표를 찍으면 ‘신민이 된 팬덤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신상털이·악플·문자폭탄·협박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벌떼처럼 달려든다. 같은 진영이라도 금태섭 의원의 경우처럼 ‘원팀(one team)’에서 이탈하거나 주군(主君)을 따르지 않으면 응징대상이 된다.‘문빠’에게 있어서 문재인 대통령은 절대군주나 다름없다. 그는 ‘무류(無謬)의 신(神)’이기 때문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신도가 된 팬덤들은 ‘최고 존엄(?)’을 위해 자신들이 기꺼이 ‘개싸움’을 하겠다고 나선다. 문 대통령을 지켜줄 테니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하라”고 한다.뉴욕 타임스퀘어(Times Square) 전광판에 “당신을 지켜드리기로 맹세합니다. 우리를 믿으세요.”라는 생일축하 광고까지 낸 사람들이다. 그들은 민주 시민의 자유의지를 스스로 포기하고 ‘예종의 길’을 가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른다.에리히 프롬(E. Fromm)이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갈파했던 것처럼, 자유를 포기한 신민들의 도피처가 바로 ‘파시즘’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유를 버리고 복종을 선택’하며, ‘듣기 싫은 사실’보다 ‘듣기 좋은 거짓’을 원한다. ‘자유라는 소중하지만 무거운 짐’을 감당하기 싫어서 스스로 권력의 노예가 되어버린 신민들 때문에 한국 민주주의가 중병을 앓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반지성적 광신도들에 의존하는 대통령의 팬덤정치는 국론 분열과 대립을 극대화시킴으로써 나라는 완전히 두 동강 나버렸다.‘이성적 시민의 감성적 신민화’는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의미한다. ‘시민은 권력의 주체’이지만 ‘신민은 통치의 대상’일 뿐이다. 스나이더(T. Snyder)가 “이성이 감성으로 대체되고, 논리가 마비된 반지성주의는 가짜 민주주의를 부른다.”고 경고했던 것처럼, 사실에 대해 무관심하고 이성보다는 감성에 의존하는 정치팬덤들의 행태는 반민주적이다.이성적·균형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한 신민들’이기 때문에 그의 잘못을 비판할 수 없다. 외눈박이 광신도가 된 팬덤들은 대통령이 이용하기 좋은 ‘중우정치(衆愚政治)’의 대상일 뿐이다.민주공화국의 시민은 ‘자유롭고 자율적인 개인’이다. 시민은 정치권력에 예속되어 자율성을 상실한 신민과는 다르다. 따라서 시민은 ‘신민이 된 팬덤들’의 무지와 반지성주의, 광신과 선동에 단호히 맞서 싸워야 한다. 이것은 정치적 광신도들이 판치는 ‘광란의 시대’를 살고 있는 민주시민의 사명이다.

2020-11-30

태양광발전의 진화

친환경·신재생에너지로 정부에서 권장하고 있는 태양광발전이 진화하고 있다.그동안 태양광발전을 위해 산과 들을 온통 파헤쳤다가 홍수로 인한 산사태로 인명피해를 입는 낭패도 적지않았다. 면적대비 발전효율이 낮다는 점도 약점이다.하지만 태양광발전 분야에도 혁명적 진화가 일어나고 있다. 과거 태양광 발전의 형태처럼 별도의 공간에 일률적으로 설치된 태양광 패널을 통해 에너지를 집합하던 형식에서 벗어나, 별도의 공간이 필요 없이 건축자재로 패널이 설치되며, 아름다운 외관을 위해 다양한 색상의 태양전지 패널이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일명‘건물 일체형 태양광 발전(BIPV·Building Integrated Photovoltaic System)’시스템이다. 이는 태양광 모듈을 건물의 외벽, 지붕, 창호, 발코니, 차양 시설 등 건축자재로 활용해 태양광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2000년대 이후 전력수요의 증가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에 따라 녹색 건축물의 건설이 요구되면서 최근 지어지고 있는 건축물에는 건물 일체형 태양광 발전시스템이 많이 적용되고 있다.국내에서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코오롱글로벌, 에이비엠과 건물 일체형 태양광 모듈인 솔라스킨을 활용한 플러스 에너지 플랫폼 구축 업무협약을 체결한 신성이엔지가 ‘솔라스킨’을 개발, 이 분야의 선두주자로 나섰다. 솔라스킨은 태양광 모듈에 다양한 색상을 적용한 제품으로 외관에서는 태양전지가 전혀 보이지 않아 일반 건축 외장재와 구분이 거의 불가능하고, 무광으로 만들어져 빛 반사를 최소화한 것도 특징이다.특히 건물 외벽과 조화를 이뤄 고급 건축 외장재로 활용할 수 있다니 태양광발전이 우리 생활주변에 깊숙이 자리잡을 때가 머지않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1-30

선상 시위에 등장한 동해안 횡단대교

동해안 횡단대교(영일만 횡단구간) 건설사업은 2008년 정부의 광역경제권 발전 30대선도 프로젝트에 선정된 사업이다. 2011년 국토부의 타당성 조사로 동해안 고속도로 영일만 횡단이 최적안으로 도출된 지 10년 가까이 흘렀으나 예산 문제로 지금까지 미뤄져 오고 있다. 올해 경북도가 2021년도 국가 예산안에 영일만을 횡단하는 고속도로 건설을 위한 설계비로 200억원을 요청했으나 국토부 예산안에는 또다시 반영되지 않았다.작년 1월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예타면제 사업에서도 탈락한 동해안 횡단대교는 동해안 고속도로 완성을 위한 마지막 퍼즐 부분에 해당하는 구간이다. 2015년 포항-울산 구간이 개통되고 2023년 포항-영덕구간이 개통될 예정이나 영일만 횡단구간이 완성되지 않으면 동해안 고속도로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지역민은 포항지진 특별법에 동해안 횡단대교 건설을 연계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정부측은 대답이 없다. 1조6천억원에 이르는 동해안 횡단대교 사업은 포항지진으로 침체에 빠진 포항의 경제를 견인하는 사업으로 적합하다는 것이 특별법 연계 이유다.동해안 횡단대교가 조속히 건설돼야 하는 이유는 많다. 국가의 지역균형발전이란 측면에서 반드시 실현돼야 할 사업이다. 전국에는 35개 해상교가 있으나 바다를 낀 지자체 중 유일하게 경북은 해상교가 없다. 인천은 7개, 부산과 경남은 각 5개, 전남도 4개가 있다. 국토면적의 20%로 전국에서 가장 큰 면적의 경북이지만 면적당 도로연장은 전국에서 꼴찌다.영일만항을 중심으로 한 환동해권 산업벨트 구축과 동해권 관광레저의 거점으로서 횡단대교 건설은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지난 11월 8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포항을 방문한 자리에서 “국민이 즐길 국내 관광명소 개발이 필요한 점에서 검토해 볼만한 사업”이라 한 것이 그나마 희망적이다. 그러나 내년 예산에 관련 내용이 반영되지 않으면 또다시 허송세월을 보내야 한다.이강덕 포항시장과 지역 국회의원 등이 동해안 대교 건설을 촉구하는 해상 퍼레이드를 펼쳤다. 말이 퍼레이드지 해상시위나 다름없다. 10조원이 넘는 가덕도 공항건설에 특별법 발의까지 해놓은 여당이 동해안 대교 건설에는 무심하다면 이보다 심한 역차별은 없다.

2020-11-30

AI가 온다…코로나에 겹친 비보, 무조건 막아야

2년 8개월 만에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해 전국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27일 전북 정읍 육용오리 농장에서 고병원성 AI 확진 판정이 나오자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AI 위기 경보 단계를 ‘심각’으로 상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발견된 바이러스 유형은 유럽이나 일본 등에서 발생하고 있는 ‘H5N8형’이다. 이번 AI는 세계적인 확산세와 맞물려 있어 더 심각하다. 무조건 막아야 한다. 야생조류에서 고병원성 AI 항원은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검출되는 상황이다. 지난 10월 21일 천안 봉강천을 시작으로 같은 지역 병천천(11월 10일), 경기 용인 청미천(10월 28일, 11월 25일), 이천 복하천(11월 14, 19일), 제주 하도리(11월 22일), 강원 양양 남대천(11월 28일) 등에서 총 8건의 고병원성 AI에 감염된 야생조류가 확인됐다. 정부는 시베리아 등 북쪽에서 유입된 철새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우리나라 가금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건 2018년 3월 이래 처음이다. 정부는 정읍농장 오리 1만 9천 마리를 살처분했고, 반경 3㎞ 내 농장 6곳의 닭과 오리 39만 2천 마리에 대해서도 예방적 살처분을 진행 중이다. 반경 10㎞를 방역대로 설정해 30일간 이동제한 조치를 내리고 정밀검사를 벌이고 있다.유럽에서는 올해 349건의 AI가 발생해 지난해보다 30배 넘게 늘었다. 일본에서도 2018년 1월 이후 처음으로 AI가 나왔다. 이달 초에는 일본 산란계 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확인돼 일본산 닭고기·계란 등의 수입이 금지되기도 했다.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는 원인 바이러스가 심각하게 변이를 일으켜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현재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 전파된 적은 없다. 그러나 2014년 중국, 라오스 및 홍콩 등 아시아 지역에서 유행한 H5N6형 AI의 경우, 올해 11월 기준 중국에서 16명이 감염되고 그중 10명이 사망했다.코로나19 창궐로 가뜩이나 시름이 깊은 국민에게 AI경보는 공포마저 불러오는 비보다. 최고의 강력방역체계를 가동해야 한다. 어떻게든 막아내야 한다.

2020-11-30

더불어 함께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가을과 겨울 사이, 형산강 둔치를 찾았다. 떠나가는 가을을 아쉬워 함인지, 다가오는 겨울을 반기는 것인지, 스쳐가는 바람 결에 핑크뮬리가 물결처럼 일렁이고 깃털 같은 억새가 긴 목을 뽑아 흔들리고 있었다. 수확의 늦가을은 미련으로 주위를 서성이고 저만치 초겨울은 주춤대며 손짓하니, 아직은 좀 더 누리고 즐기라는(?) 전갈처럼 여겨졌다. 포항운하관에서 송도 끝자락까지 1km 정도에 이르는 형산강 둔치의 풍경이다. 포항제철소와 해도동, 송도동 사이에서 강물인 듯 바다인 듯 유유히 흐르다가 멈추고 멈춘 듯 흐르는 형산강의 종착지, 그 너른 품새의 언저리에는 산책로와 지압로, 운동시설과 쉼터, 파크골프장과 테마 꽃밭, 자전거길 등이 곳곳에 조성돼 있다. 그곳에서 시민들은 강과 바다를 접하며 가벼운 운동과 소요를 즐기며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필자는 주로 강둑으로 이어진 자전거길을 때때로 두 바퀴로 달리며 스치듯 지나가곤 한다. 하지만 근자에는 보다 느긋하게 강변을 거닐다가 색다른 풍경에 사로잡혀 한동안 발길을 멈추게 됐다. 바람의 몸짓으로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풀밭과 하얗게 나부끼는 억새의 손짓을 본 것이다. 육중한 제철소 설비를 배경으로 강물과 억새, 연갈색 풀밭의 조화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정경이 아닐 수 없었다. 자연스레 발걸음이 닿아 풍경 속에 빠져 들었다.‘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전문세상에 어여쁘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가까이에서 살피면 보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맡으며 자세히 느낄 수 있다. 멀리서 보니 억새처럼 여겨졌는데 가까이서 보니 억새도 갈대도 아닌 생소한 외래종 억새였다.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로 팜파스글라스(Pampas-grass)라 불리우는 멕시코억새는 여러해살이풀로, 팜파스는 중남미 초원지대를 가르킨다고 한다. 거기에 핑크뮬리 그라스라고 불리는 벼과의 외떡잎식물인 하느작거리는 풀과 깃털 같은 억새가 어울려 둔치의 수수하고 이국적인 풍경을 드러내고 있었다. 토종을 위협하는 외래종 식물이 일각에서는 유해하고 심각하다고들 한다. 70, 80년대 수산자원 조성용으로 들여온 베스 물고기나 황소개구리 등이 생태계를 교란하고 파괴한다고 해서 퇴치에 나서기도 했었다. 그러나 세상은 지구촌 한마당이라는 말처럼 소통과 왕래가 활발해진지 한참이나 됐다. 다문화나 다원화가 낯설지 않은 요즘이라 자연환경의 변모도 시류에 따라 조금씩 수반되는 것이리라 본다. 세상은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다. 자연의 생태계도 자세히 보면 순리와 질서 속에서 대순환 하듯이, 인간사회도 상생과 협력 속에 공존하고 공생하는 것이다. 배타적이고 이기적이기 보다는 이타심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서로 나누며 살아갈 때 세상은 더욱 밝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점차 추워지는 날씨와 코로나로 인해 난세 같은 연말이 다가오는 때, 이웃과 사회를 위해 나눔과 베풂으로 마음의 온기를 전해주면 어떨까? 주위를 눈여겨 살펴보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아직은 많다. 스산함이 더해가는 계절에 부디 안녕하고 무사하라고 강변의 억새와 핑크뮬리가 온몸으로 흔들어대며 손짓하는 듯했다.

2020-11-29

시끄러운 대화방

윤영대수필가대화방은 말 그대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담스러운 공간이다. 예전엔 집에도 사랑방이 있었지만 아파트 문화와 개인주의가 팽배한 지금 가족이나 친구들이 오붓이 모여 얘기를 즐길 수 있는 친숙한 공간은 사라졌다.마을엔 다방이 있었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커피나 차를 마시며 또 음악을 즐기며 도란도란 애인이나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던 곳인데 그나마 카페, 커피숍이라는 이름으로 젊은이들이 씨끌벅적 웃음을 날리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유럽의 대화방 역사는 고대 그리스 ‘아고라’와 로마 시대의 목욕탕 겸 휴식공간이 있던 ‘큐비쿨룸’이라고 할 수 있지만 16세기 프랑스로 시집온 메디치 가문의 캐더린 왕비가 이탈리아 귀족저택의 응접실이었던 ‘살로네’를 소개했고, 그 후 랑부이에 후작부인이 귀족들을 초대하며 처음으로 열었던 살롱(salon)이 인기를 얻었다. 주로 정치인, 예술인들이 초대된 대화와 토론의 사교 공간이었고 주인은 여성으로 살로니에르라 했다. 친절과 예의 그리고 정직을 규범으로 했으며, 문학의 보금자리였고 혁명과 근대화 사상을 태동시켰다고 한다.이러한 풍물이 우리에게 전해지면서 다방, 바, 카페 등으로 번져나갔고 급기야 인터넷 강국인 우리나라는 21세기 살롱이라 할 수 있는 카톡, 페이스북, 트위터 등 보이지 않는 SNS 대화방이 우리의 일상 속에 넓게 자리하고 있는 현실이다. 모이지 않고도 여럿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 서로의 표정을 살피지 않고도 아이콘으로 말뜻을 짐작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손안에 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보면 거의 모두가 휴대폰에 머리를 박고 무언가 열심히 손가락을 놀리며 혼자 히죽 웃기도 한다. 소리 없는 대화다.비대면 대화인 ‘채팅’이라는 수단이 우리의 인간관계를 더 가깝게 하고있는 것일까? 단체 대화방인 ‘단톡방’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와 단독으로 하는 것으로 잘못 듣기도 했었다. 이제 나의 휴대폰에도 많은 단톡방이 생겼다. 물론 내가 만든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초대돼 들어간 곳이다. 가족이나 형제들, 그리고 절친 몇 명과의 채팅은 참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좋은 시간이다. 그런데 수십 명 심지어는 수백 명이 들어와 있는 거대한 대화방에서는 다 읽을 수도 없고 또 일일이 대답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귀찮아서 나가면 또 불러들이기 때문에 그냥 두어버린다. 새벽에 카톡거리는 소리에 깨곤 했지만 이제는 그 소리는 막아뒀다. 또 정신없이 카톡을 하다 보면 다른 방에 들어가 엉뚱한 실수도 하게 된다. 남의 험담이나 비밀스러운 내용들이 순식간에 알려지게 되는데 지워버려도 상대방의 화면에는 남아있을 테니 난감하리라.아침에 눈 뜨면 폰부터 찾는 게 버릇이다. 그리고 카톡이라는 노란 단추를 누르고 열어보면 수십 개의 방에서 빨간 숫자가 뜬다. 어떤 곳은 열 개가 넘는 대화가 왔다고 치근댄다. 열어보면 반가운 인사말과 짧은 얘기들, 예쁜 사진도 있지만 쓸모없는 정치 이야기랑 사회문제를 막무가내기로 퍼나르고 듣기 싫은 어휘로 두들겨 보낸 것들도 많아 소리 없는 아우성에 정신이 시끄럽다.복잡한 현대생활과 인간관계 속에서 슬기로운 모바일 라이프를 살아가야겠다.

2020-11-29

야만(野蠻)의 ‘풍문 탄핵’

안재휘 논설위원성종 때 대간 박효원(朴孝元)은 승정원 회의 때 도승지 현석규(玄碩圭)가 삿대질을 일삼는 등 다른 승지들에게 무례를 범했다면서 탄핵했다. 그런데 그 내용은 대간 혼자서 도저히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왕이 출처를 엄히 추궁한 결과, 승지 임사홍(任士洪) 등이 현석규를 쳐내기 위해 정보를 흘렸고, 박효원이 공개적으로 현석규를 탄핵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간 제도를 사적으로 오용한 자들은 엄한 처벌을 받았다.조선 시대 풍문탄핵(風聞彈劾)은 어두운 시대에 공론만으로도 문제를 삼도록 해 고관대작의 도덕성을 높이는 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당쟁이 심화하면서 이 제도는 폐해를 양산했다. 순수한 ‘공론’은 사라지고 더러운 ‘당론(黨論)’만이 무성해졌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인류가 발전시킨 민주주의는 그런 참담을 방지하고자 법치(法治)를 대원칙으로 삼는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중시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윤석열 검찰총장을 한사코 찍어내려는 여권(與圈)의 몰매질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판사 불법사찰’이라는, 어마어마한 범죄 프레임을 들고나와서 검찰총장직은 물론 아예 감옥에 보내겠다’는 악심까지 드러낸다. 그러나 들고나온 혐의도 허술하거니와, 1년 가까이 지난 일을 새삼 끄집어낸 저의가 온당치 않으니 토사구팽(兎死狗烹)의 명분치고는 참으로 유치하다.검찰 내부에서 난리가 났다. 법치의 일선 전문가 집단인 검찰 구성원들 거의 모두가 반기를 들었는데, 이 정권은 눈도 하나 깜짝 안 한다. 조국 전 장관의 말처럼 “검사들 모두 사표 받고 검사보라도 하고 싶어 하는 로스쿨 출신들로 다 채우는” 사변이 정말 일어나는 건가.재판을 위해 판사의 성향과 이력을 관행적으로 알아본 것을 중죄(重罪)로 뒤집어씌우려는 행동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한 지청장은 “코치가 심판의 경력과 경기 운영방식, 스트라이크 존 인정 성향, 선수들 세평 등을 분석해서 감독과 선수들이 공유하면 불법사찰이냐”라고 비꼬았다는데, 공감이 간다.지난 2012년 조국 전 장관이 SNS에 작성한 개념이 또다시 소환됐다. 그는 “대상이 민간인이거나 영장 없는 도청, 이메일 수색, 편지 개봉, 예금계좌 뒤지기 등등”을 하는 게 불법사찰이라고 주장했다.채동욱과 윤석열을 찍어냈다고 정홍원 전 총리를 몰아세웠던 7년 전 추미애의 동영상도 다시 돌아간다.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은 손자병법의 진수다. 그런데 상대를 알기 위해서 인터넷을 뒤지는 것도 중범죄가 된다고 욱대기고 있으니, 참으로 난감한 노릇이다.옛날 순 엉터리였던 풍문탄핵도 제3의 사찰 기관에서 탄핵 내용을 정밀조사하는 ‘추고(推考)’ 과정을 거치고, 사실이 아닐 때는 탄핵을 주장한 대간이 물러나야 했다. 대간들 전원이 한꺼번에 직책을 내려놓는 일도 있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일어나고 있는 이 야만(野蠻)의 풍문탄핵의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될까.

2020-11-29

가덕도 특별법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

더불어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26일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발의했다.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가 김해공항 뒤집기 발표 이후 8일 만이다. 이에 앞서 국민의 힘 부산시당 소속 의원들도 가덕도 신공항 관련 특별법을 미리 발의해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처리가 속전속결 양상이다.특히 더불어 민주당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첫 삽을 뜨자는 구상까지 하는 듯해 10조원 가량의 국가 예산이 투입될 국책사업을 이렇게해도 되는 것인지 놀랍다. 더불어 민주당이 발의한 특별법에는 신공항 부지 선정 절차없이 입법으로 아예 가덕도를 정했다. 가덕도가 동남권 신공항 부지로 안정성, 확장성, 접근성 등에 있어 가장 적합하다는 자의적 판단을 법률에 명시한 것이다. 향후 경제성 등의 입지문제가 재론될 소지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도다.영남권 신공항으로 4년 전 대구와 경북을 포함한 영남권 5개 시도가 합의했던 김해신공항안은 구체적 해명도 절차적 진행도 없이 깡그리 무시되고 있다. 마치 가덕도 신공항만 건설되면 동남권지역의 경제문제가 모두 해결될 듯이 특별법에 명시했다. 대구와 경북의 입장은 애초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다. 국가재정법에 300억원 이상이 소요되는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라는 절차를 거치도록 돼 있으나 가덕도 신공항은 이런 절차조차 생략했다. 가덕도 신공항을 운영할 공사설립과 가덕도와 관련한 도로 및 철도, 신도시 조성에 대한 지원과 세제혜택 등도 명시했다.여당은 예비타당성 면제에 대한 비판 여론에 대해서는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적극 행정의 필요성이 있다고 대답했다. 부산 가덕도 신공항만 건설되면 국가의 균형발전은 저절로 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구와 경북의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정치권의 대응이 없다는 것도 답답한 노릇이다. 대구경북 정치인들의 역량 부족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대구시민과 경북도민이 가질 허탈감과 상실감을 생각하면 가슴이 시리지 않을 수 없다.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은 누가봐도 입법 폭거다. 내년에 치러질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법이다. 지역정치권의 실효적인 대응이 없으면 대구경북 통합 신공항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질 것은 뻔한 사실이다.

2020-11-29

중용의 교훈

유학은 공자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하지만 그 본질은 인간의 존재론적 가치에 대한 탐구다. 인간은 무엇으로 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인간다움을 가르쳐주는 사상이다.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도덕적 덕목을 중시하고 한국인의 사상 체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학문이다. 특히 유교적 사상은 사회관계를 중시하는 학문으로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친구 간의 행동양식에 있어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를 가르치고 있다. 대표적인 가르침의 하나가 중용(中庸)의 도리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지거나 기울어짐이 없는 상태를 이른다. 공자는 이를 “때에 맞춰 처리하는 성인의 지혜”라고 말했다.내가 베푸는 말과 행동 그리고 감정적 표현이 상대에게 부족함이 없는지를 살피는 것으로 사람의 됨됨이를 말할 때 기준이 되는 잣대다. 편파적이거나 자기주장에 쏠려 남의 생각이나 주장을 듣지 않을 때 우리는 “중용의 도를 잃었다”고 말한다. 공자가 지적한 과유불급(過猶不及)도 중용의 도를 견지하라는 의미와 같다.중국 제나라 환공은 자신의 넘침을 경계하고자 계영배(戒盈杯)라는 잔을 늘 곁에 두고 자신의 권력적 과욕을 경계하였다고 전한다. 계영배는 밑에 구멍이 뚫려 있는 잔으로 물이나 술을 부어도 새지 않다가 7할 이상 채워지면 밑으로 새어 나오는 잔이다.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이 계영배를 옆에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며 재산을 모았다는 일화가 있다.온 나라를 시끄럽게 한 검찰총장 직무정지를 둘러싼 정치적 파장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정치가 적어도 중용의 교훈을 알고 있는지에 대해 의심을 해 본다. 정치가 중용을 잃으면 민심을 잃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11-29

中·日, 원전 활성화… ‘탈원전’은 웃음거리

정부가 건설 중단 상태인 신한울 원전 3·4호기를 전력 공급원(源)에서 배제하는 대못 박기를 감행했다. 현재 가동 중인 24기의 원전 중 11기를 2034년까지 폐쇄하는 내용의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을 확정했다. 일본은 원전을 재가동하고, 중국은 원전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판에 우리의 섣부른 ‘탈원전’은 세계적 웃음거리가 되게 생겼다. 현 정부 임기 내에선 마지막인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는 연내에 최종확정해 공포될 예정이다.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2034년까지 현재 가동 중인 원전 24기 중 설계 수명이 만료되는 월성 2·3·4호기, 한울 1·2호기 등 11기를 폐쇄하겠다고 명시했다. 세계적으로 원전 가동 수명을 80년까지 연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 거꾸로 가는 희한한 일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최후의 원전인 신한울 3·4호기가 내년 2월 26일까지 계획 인가를 받지 못해 건설 취소가 확정되면 고사(枯死) 상태에 놓인 한국 원전산업 생태계도 회복 불가 상태로 가게 된다. 일본이 2011년 후쿠시마원전 폭발사고 이후 10년 만에 잇따라 원전 재가동에 나섰다. 후쿠이현 다카하마초 의회가 며칠 전 간사이전력 다카하마 원전 1·2호기 재가동에 동의했다. 재생에너지만으론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0)’ 목표를 달성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중국은 아예 원전을 국가 주력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원전굴기(起)’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48기 원전을 가동 중인 중국은 12기를 건설하고 있고, 40기를 추가로 지을 예정이다. 2030년까지 전체 발전량의 11%를 원전으로 채워 2060년에는 ‘탄소 중립’을 실현한다는 전략이다.중국·일본 등 경쟁국이 원전을 늘리는 와중에 우리만 원전을 없애면서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건 한 발을 묶고 경주에 뛰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코로나19 재앙 속에 온 세계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이 시점에 ‘원전산업’ 국익을 털어먹고 있는 이 정권의 어리석은 ‘탈원전’ 정책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지금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2020-11-29

포항 이민자를 반갑게 맞이하자

사람의 국제 이동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유엔 국제이주기구(IOM·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Migration)는 ‘이민’을 ‘자발적으로 본래의 거주지를 벗어나 국경을 넘거나 한 국내에서 이주하는 모든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같은 이민이라도 분쟁, 박해와 같은 비자발적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자기 나라를 떠나 이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따로 ‘난민’이라 부르기도 한다. 3년 전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위험지역에서 벗어나 체육관으로 주거를 이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도 일종의 ‘난민’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국내 피난민’이었다고 할 수 있다.1990년 이후 지금까지 30년간 전 세계에서 자발적으로 살아왔던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국적을 바꾸며 이동한 국제 이민은 약 1.78배 늘어났다. 1990년 시점에 세계 147개국에 걸쳐 이민한 사람은 모두 1억5천199만5천30명이었지만 2019년 기준으로는 199개국으로 이민한 사람이 무려 2억7천22만4천650명까지 부풀었다. 세계에서 이민자를 가장 많이 받는 국가순위에서 우리나라는 1990년 시점에 4만3천250명의 이민을 받아들여 197개국 가운데 하위권인 137위에 그쳤다.하지만 2000년에는 83위, 최근 2019년 시점에는 45위까지 국가순위가 올라갔고 이민자도 116만3천660명으로 100만 명 시대를 맞이하였다. 국제 이민 국가순위에서 미국은 지난 30년간 한 번도 세계 1위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2019년 현재 미국 이민자는 5천66만1천150명이다. 2020년 현재 통계청이 추계한 우리나라 인구가 약 5천178만 명이니까 거의 우리나라 총인구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세계 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셈이다.국제이주기구의 이민에 대한 정의를 따른다면 우리나라 국내 지역 간 이주도 이민에 해당하는데, 과연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지역에서 어느 지역으로 이민이 일어나고 있을까.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이민자가 늘어나는 현상은 점차 가속화되는 실정이다. 주민등록 기준 서울특별시 인구는 2018년 10월 978만4천112명에서 2020년 10월까지 9만4천953명이 줄었지만, 경기도 인구는 같은 기간 중 35만5천392명이 늘어나 2020년 10월 현재 1천340만615명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 거의 절반 가까운 인구가 서울과 경기로 몰려들고 있다.모든 것이 수도권 쏠림 현상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포항시 인구도 과거 100만 명까지 늘어날 것이라던 환상은 사라지고 이제는 지방소멸이라는 단어가 시민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다른 지방들도 비슷한 처지라고 해서 안심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동안 살고 있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민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자녀의 학업을 위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얻어서, 은퇴한 이후 지금까지 고생했던 지역을 아예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은퇴 생활을 즐기기 위해서…. 수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게다가 포항에서는 ‘지진’이라는 재해를 겪었기에 아무리 ‘인재’였다고 해도 극심한 트라우마로 인해 아예 주거지 자체를 옮기겠다고 결심한 사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지난 2년간 과연 포항에는 어떠한 인구변화가 있었을까. 좀 더 상세한 분석을 위해 읍면동별 주민등록 인구변화를 살펴보았다. 포항시 총인구는 2018년 10월 51만401명에서 2020년 10월 50만3천456명으로 6천945명이 줄었다.하지만 남구와 북구로 나누어 보니 지난 2년간 남구는 8천676명이 줄어든 반면 북구는 1천731명이 늘어났다. 포항시 인구의 순 유출이 남구에서 일어났다는 이야기다.더 자세하게 살펴보니 남구의 동(洞) 지역에서는 지난 2년간 3천893명이 줄었고, 읍면(邑面) 지역에서는 4천783명이 줄었다. 인구가 늘어난 북구는 마찬가지로 동 지역에서는 4천356명이 줄었으나 읍면 지역에서는 6천87명이 늘었다. 인구가 증가한 북구의 경우 동 지역에서는 우창동과 두호동 두 곳만이 각각 563명, 1천237명이 늘어났고, 읍면 지역에서는 오직 흥해읍만 인구가 무려 7천2명이 늘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남구에서 줄고 북구에서 늘어난 최대의 원인은 초곡지구 등 흥해읍을 중심으로 조성된 신규 아파트단지 때문으로 남구의 읍면지역과 동 지역에서 시민들이 활발하게 지역 내 이주를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인구가 줄어든 남구에서 가장 많은 인구감소를 보인 곳은 연일읍으로 1천958명이 줄었고, 동 지역에서는 상대동으로 1천 615명이 줄었다. 이는 단순히 총 주민등록 인구수의 절대적인 수치 변화만 본 결과기 때문에 절대적인 읍면동별 인구변화 증감률을 살펴보면 상황은 다르게 나타남을 알 수 있다.남구에서 가장 많은 인구감소율을 보인 곳은 청림동인데 지난 10월 인구에서 2년 전인 2018년 10월과 대비하면 무려 12.5%가 줄었다. 다음이 제철동으로 이와 비슷한 수준인 11.4%의 감소율을 보였다. 남구에서 인구변화 비율이 가장 낮았던 곳은 동해면으로 2년간 불과 6명만 감소하였다. 인구가 늘어난 북구 흥해읍의 경우에는 2년 전보다 20.8%나 늘어났다. 마찬가지로 북구에서 가장 인구이동이 없었던 곳은 장량동으로 총 7만2천 명이 넘는 인구 가운데 감소한 인구는 151명에 그쳤다.이와 같은 결과로 볼 때 결국 포항시 인구가 감소한 최대의 원인은 지역 전체로 정년은퇴가 계속되는 가운데 철강산업의 장기 침체로 실직한 산업인력들이 주로 거주하던 청림동과 제철동 지역의 주민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국내 다른 지역으로 이민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포항지역 내 이주가 활발해진 최대 원인은 흥해지역의 지진복구와 도시재개발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감, 새로운 아파트단지 조성에 따른 읍면 지역에서 도심에 근접성이 좋은 외곽 지역으로 주거를 이전하는 수요가 일어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이처럼 국내 지역 간 이민이 활발하다는 것은 달리 말한다면 포항시 인구가 일시 늘어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자녀 교육하기 좋은 교육도시, 일자리가 넘쳐나는 활발한 산업도시, 은퇴해서 생활하기에는 최고인 정주 여건을 가진 도시와 같은 수많은 인구 유인을 계속 제공하지 못하는 순간 포항을 떠나는 이민 수요는 언제든지 있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이는 포항시가 인구 유인 정책, 유출 억제 정책을 세우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입소문은 정책을 능가하는 최고의 광고다. 그리고 최고의 정주 여건이란 달리 있지 않다. 얼마나 빨리,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곳에 먼저 살고 있던 사람들이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그들과 섞일 수 있는가로 결정된다. 포항은 여타 대도시보다는 상대적으로 지역색이 강한 편이다. 지역색에는 장단점이 같이 있다. 목표 달성을 위해 합칠 때는 큰 힘을 발휘하지만, 고향을 떠나 들어오게 된 이민자의 두려운 눈으로 보면 너무 높은 진입장벽으로 여기는 약점일 수도 있다. 포항이 새로 유입되는 주민들만 붙잡아도 모든 문제는 해소된다. 포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 입에서 살기 좋은 동네, 새로운 주민을 아주 편하게 받아들이는 곳, 여기 출신이 아니라도 쉽게 주민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곳이라는 말이 넘쳐난다면, 인구감소 시대, 지방소멸 시대와 같은 말은 포항과는 전혀 무관한 말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11-29

국민체육센터 개관…생활체육 메카 기대

엄태항봉화군수봉화군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이자 지역 생활체육활동의 산실이 될 봉화국민체육센터 개관식이 지난 23일 기관단체장과 체육인, 주민 등 4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그동안 봉화군은 체육시설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부족해 매년 증가하는 여가체육활동 인구에 충분히 대처하지 못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국민체육센터가 개관함으로써 다양한 체육시설 수요에 대응하고 생활체육 거점시설로 거듭나게 됐다.봉화국민체육센터 건립사업은 2015년 당시 부지 해결이 어려워 답보 상태였지만 공설운동장 옆 부지를 확보하면서부터 국민체육센터 건립의 본격적인 행보를 이어갈 수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를 방문해 침체한 농촌지역에 활력을 불어 넣고 생활스포츠 복지 구현을 위해 국민체육센터 건립 사업의 당위성을 피력하며 국가예산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다.그 결과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모한 ‘국민체육센터 건립 지원 공모사업’에 봉화국민체육센터가 선정됐으며, 2018년 6월 착공해 올해 5월 봉화읍 해저리 일원에 준공됐다. 총 120여억원의 예산이 소요됐으며, 건물면적 4천934㎡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조성됐다.지하 1층에는 볼링장(12레인)이, 지상 1층에는 수영장(6레인), 실내체육관(농구, 배구)이 지상 2층에는 다양한 운동기구(22종 32대)를 갖춘 헬스장과, 탁구장(4대)을 설치해 각종 대회 및 생활체육교실에 활용할 수 있도록 복합형 체육관으로 조성됐다.특히, 실내수영장과 국제규격을 갖춘 볼링장은 전 세대가 이용할 수 있는 체육시설로서 세대별 주민 수요와 노인인구 증가에 따른 어르신들의 건강한 삶과 여가활동을 책임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한 공공체육시설의 사용제한 조치로 개관을 미뤄오다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 방역수칙을 준수해 지난 16일부터 볼링장, 헬스장, 탁구장, 실내체육관을 사전예약제로 2주간 시범운영 중에 있다.현재 매일 80여명이 무료 강습과 시설을 이용하고 있으며 체육시설과 운영시스템 등의 미비점을 보완·개선해 12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주민들을 맞을 예정이다.시설 대관 방법, 강습 종목과 운영시간, 사용료 등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www.bonghwa.go.kr)에서 확인하거나 전화(054-674-7900)로 문의하면 된다.아울러 봉화복합스포츠단지조성은 봉화국민체육센터 건립사업과 연계해 추진하는 사업으로 전체 부지면적 7만22㎡에 국민체육진흥기금 33억원과 특교세 10억원 등 총사업비 295억원으로 농구장, 축구장, 풋살장(2면), 테니스장(4면), 정구장(2면), 씨름장을 포함한 다양한 야외 체육시설을 갖춘 종합 스포츠단지로 건립 중에 있으며 올 연말까지 완공할 예정이다.봉화복합스포츠단지와 국민체육센터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군민과 공무원 모두의 노력으로 건립 될 수 있었다. 새로운 체육 인프라 시설을 통해 이제 체육동호인과 군민들이 다양한 종목의 체육활동을 좋은 여건에서 즐길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됐으며, 향후 우수한 시설을 바탕으로 전국·도 단위 실내·외 스포츠대회 유치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이제는 ‘누구나 운동할 수 있는 봉화’를 넘어 ‘누구나 안전하게 운동을 즐길 수 있는 봉화’를 만들 방안을 고민할 때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발맞춰 세대·종목별 수요에 맞는 생활 밀착형 체육시설 조성으로 건강도시 기반을 지속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군민들의 체력 향상과 건강한 여가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앞으로 물야면 주민종합체육센터 건립을 비롯해 읍면에 체육시설을 더욱 확충하고, 기존 공공체육시설인 공설운동장, 게이트볼장, 그라운드 골프장, 궁도 연습장의 시설 정비와 안전관리에도 만전을 기하고, 주민과 체육인들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소외 계층을 비롯한 보다 많은 주민들이 복합스포츠단지와 국민체육센터를 안전하고 편리하게 즐길 수 있도록 운영해 나갈 예정이다. 봉화복합스포츠단지와 국민체육센터를 시발점으로 지역에 보다 많은 문화관광 자원과 체육시설이 확충되어 건강하고 희망이 넘치는 명품 스포츠 도시 봉화군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2020-11-29

하하와 베케

베란다를 트지 않기로 했다. 20년 된 아파트를 고치기로 하고 어디까지 손을 봐야 할까. 처음 시작은 싱크대였다. 오래 사용하다 보니 서랍에 손잡이가 빠져버렸고, 필름지도 벗겨져 원래 요리를 즐기지 않던 내가 더 부엌에 들어가기 싫어졌다. 또 책꽂이가 방마다 있으면서도 더이상 꽂을 자리가 없어서 서재도 새로 꾸미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해 도배와 장판, 화장실도 새로 하기로 하니 주위에서 시작한 김에 베란다도 확장하라고 부추겼다.남편은 일어나자마자 베란다로 나간다. 꽃밭을 보러 가는 것이다. 아파트에 꽃밭이라니 거창하지만 거실에서 베란다로 나가면 화분이 쪼로롬이 반긴다. 봄 가을로 피는 재스민, 신혼 초부터 들여와 팔뚝만 해진 알로에, 100년에 한 번 꽃이 핀다는 소철이 천정까지 키를 높였고, 올망졸망 서로 키재기 하는 다육이와 난(蘭) 화분이 꽃 없이 잎만 올리고 있다. 그 옆에 봄에 새로 들여놓은 커피나무가 귀티나게 앉았다. 이 녀석들과 하나씩 눈인사를 하며 물을 주는 일이 남편의 첫 일과이다. 마당쇠가 마당 쓸듯이.작은 공간이지만 아파트에도 마당이 필요하다는 게 우리 부부의 결론이었다. 트는 대신에 베란다로 나가는 새시를 새로 하는 걸로 갈무리했다. 커튼은 레이스로 달아 커피나무와 재스민이 어른어른 비쳐서 정원이 거실까지 확장된 기분이 들게 했다. 작은 정원이 주는 위안이다.영국인들은 정원을 가꾸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자기가 꾸민 정원에서 마시는 오후의 홍차, 삶의 여유이다. 런던근교에 라우샴가든이라는 300년 전에 만든 풍경식 정원이 있다. 수목이 가진 고유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최소한으로 관리해 나가는 것이 풍경식 정원이라고 한다. 산책로를 따라가며 나무와 어울리는 조각이 군데군데 놓였고, 키가 큰 나무가 햇살에 그늘을 길게 늘일 때 반려견과 함께 거닐며 위로받는 곳이다. 그 정원을 둘러싼 담장이 하하(Haha)이다. 이름이 독특해서 자꾸 불러보게 된다. 부를 때마다 웃게 되는 힘이 있다. 정원을 가꾸며 나온 돌을 쌓아 만든 돌담이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울타리가 풍경 속에 묻혀서 멀리서 보면 담장이 보이지 않아 담장 밖의 소들이 풀을 뜯는 게 정원의 일부분처럼 보이기도 한다.제주에 하하와 비슷한 담이 있다. 베케이다. 쟁기질하거나 밭을 매다가 돌이 나오면 하나둘씩 쌓다 보니 담장이 된, 할머니의 할머니들이 만들어 놓은 농사의 일부분이고 문화이다. 돌에 이끼가 가득 피어서 푸른색이었다. 돌 틈 사이에 풍란이 비집고 들어가 앉았고 넝쿨 식물이 담을 넘나들었다. 그 담을 따라 길에서 집까지 연결된 아주 좁은 골목 비슷한 길을 올레라고 한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그 길로 봄꽃도 오고 갈바람도 들어온다. 서귀포에 베케라는 정원식 카페가 있다. 조금은 허물어진 베케를 향해 통창이 있어 손님들이 마주 앉기보다 베케를 향해 앉는다. 제주 습지에 잘 자라는 풀과 꽃을 심고 가꾸어 커피를 들고 나가 산책을 즐길 수도 있다. 아버지가 감귤밭으로 일궈 농사짓던 곳이라 창고였던 건물도 다 허물지 않고 산책로에 남겨놓아 그곳을 지날 때마다 아버지의 흔적을 느낀다고 한다.김순희수필가도시에서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의 언어를 듣다 보면 이웃이란 낱말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정원을 꾸미는 일이 나 자신뿐 아니라 이웃과 공유하게 된다는 뜻이다.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 실린 거인의 정원이 떠올랐다. 담을 높이 쌓고 혼자만 아름다운 정원을 즐기려고 하자 그 정원은 1년 내내 겨울만 계속되었다는. 허물어진 틈 사이로 아이들의 발길이 닿자마자 정원에 새가 돌아오고 꽃이 가득 피어났다는 해피엔딩의 이야기였다.우리 집 베란다가 하하와 베케이다. 봄부터 키운 땡초 세 그루가 가을걷이를 하려는 듯 잎끝을 말고 있다. 여름부터 가을 내내 혀끝이 알싸한 맛이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따 먹고, 한두 개는 빨갛게 익혀서 꽃처럼 바라보기도 했더랬다. 화분으로 둘러싼 우리 집 담장, 사계절이 들고나는 베란다를 허물지 않고 놔두길 참 잘했다.

2020-11-29

반간계(反間計)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춘추시대 손무가 쓴 손자병법에는 36계가 있다. 이중 반간계는 33번째 계책으로, 적의 첩자를 역이용해 적을 속이는 기만전술 가운데 으뜸으로 친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서 주유가 펼친 반간계다. 조조는 오나라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주유의 친구이자 자신의 참모인 장간을 주유에게 보냈다. 주유는 장간과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해 자는 척하며 채모와 장윤이 보낸 것처럼 꾸민 편지를 흘렸다. 여기에다 황개를 고육계로 활용해 조조로 하여금 채모와 장윤을 오나라의 첩자로 오판하게 했다. 결국 반간계에 넘어간 조조는 수전에 강한 장수인 그들의 목을 쳤고, 그 결과 적벽대전에서 조조는 참패를 당했다.우리 역사에도 ‘요시라의 반간계’가 등장한다. 정유재란이 일어났던 1597년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는 첩자 요시라를 경상좌병사 김응서에게 보내 자신의 라이벌인 가토 키요마사가 어느 날 부산포를 거쳐 일본으로 가는데 조선 수군이 지키고 있다가 공격하면 그를 잡아 죽일 수 있다고 알려줬다. 김응서는 도원수 권율에게 보고했고, 권율이 이를 조정에 보고하자, 조정은 이순신에게 전함을 이끌고 나가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적의 계략이란 것을 간파한 이순신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선조는 왕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이순신을 서울로 압송했고, 원균이 수군을 지휘하게 됐다. 원균은 칠천량 전투에서 왜군에 대패해 12척의 전함만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다. 이 전투로 조선수군은 괴멸상태에 빠졌고, 조선의 유능한 수군 장수들이 대부분 전사했다. 이처럼 반간계는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기만술이다.홍준표 무소속 의원이 최근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놓고 있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극한대립을 반간계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고있다. 홍 의원은 윤석열 검사를 앞세워 소위 국정 농단 수사로 보수와 우파 진영을 궤멸시켜 놓고, 추미애-윤석열 갈등을 만들어 윤 총장을 반대 진영의 주자로 세우도록 야권 분열을 작업한 후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것 아니냐고 했다. 3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태 역시 진보진영 정당의 33계 반간계에 걸린 결과로 보고있는 보수지지층에겐 매우 흥미로운 해석으로 읽힐 듯 싶다.어쨌든 추 장관이 윤 총장 직무정지 조처를 한 데 대해 검찰과 국민여론이 들끓고 있다. 26일 오전 조상철 서울고검장 등 전국 고검장 6명이 성명서를 통해 징계 청구와 직무정지 명령을 재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앞서 대검 중간 간부 27명도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와 직무배제는 위법 부당하다”고 했고, 전국 10여 곳의 검찰청에서는 평검사 회의 개최 여부를 논의 중이어서 자칫 ‘검란’으로 치달을 태세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추 장관의 윤 총장 직무정지 조처가‘잘못된 일’이라고 답했다.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는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맞대결이 이 나라를 우스운 꼴로 만들고 있다. 국민들은 말 그대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참아내야 할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2020-11-26

‘해양생물종복원센터’ 영덕이 적지다

경북도가 ‘해양생물종복원센터’의 경북 영덕 유치에 발벗고 나섰다. 해양생물종복원센터는 해양생물의 종 증식과 복원을 중심으로 해양생물 구조치료 및 해양생태계 보전과 관리를 전담하는 국가 컨트롤타워다. 이곳에서는 해양생물의 종 증식, 복원연구 외에도 좌초하거나 혼획된 해양생물에 대한 구조·치료, 유해교란 해양생물 연구, 서식지 보호, 대국민 전시·교육홍보 등의 기능도 맡는다.해양수산부는 작년 1월 해양생물 보호를 위해 제2차 해양생태계 보전·관리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해양생물종복원센터 건립 추진을 밝힌 바 있다.이에 따라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 위치한 충남 서천군이 해양생물 종복원센터 유치를 위한 용역에 들어가는 등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북도가 지난 5월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영덕군과 함께 해양생물 다양성 보전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해양생물 종복원센터 유치를 위한 행보를 서둘고 있으나 경쟁자가 있는 한 그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다. 유치의 필요성이나 타당한 이유 등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근거자료를 들고 정부를 이해시켜가야 한다.경북도는 영덕에 해양생물종복원센터가 들어서면 2018년 경북 영양에 설립된 국립생태원 멸종위기 종복원센터와 더불어 국내 최고 생태계 복원의 중심지로서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특히 영덕지역은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해역을 끼고 있어 해양생물의 다양성이 높은 곳이다. 또 해양생물의 혼획과 좌초가 자주 발생하는 곳이어서 해양생물 연구에 적합한 곳으로 평가된다. 종복원센터 유치의 당위성 등은 충분하나 지자체의 노력이 얼마나 보태질지는 알 수 없다.경북은 그동안 원자력해체연구소 등 국립기관 유치에 여러 차례 실패를 했다.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도 해양생물종복원센터와 같은 국립기관의 경북지역 설립이 절실하다. 지역정치권과 함께 해양생물종복원센터의 영덕 유치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우리나라 해역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해역표층 수온의 상승이 전세계에서 가장 높다. 해양생물종복원센터의 설치 운영이 서둘러져야 할 시점이다. 정부는 종복원센터 설립 목적의 효율성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관점에 적지를 판단해야 한다. 동해안을 끼고 있는 영덕군은 그런 면에 적지라 할 수 있다.

2020-11-26

與,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 독주…괜찮나

더불어민주당은 ‘대공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하는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을 국회 정보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단독으로 처리했다. 야당 의원들이 법안 처리에 반대하며 회의장을 나간 뒤, 여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이 개정안은 27일 본회의 강행 처리도 예고돼 있다. 과거 국정원의 횡포와 허물을 두둔할 이유는 없지만, 순기능은 무시하고 역기능만 보고 칼질을 해대는 이 정권의 ‘국가안보역량 해체·훼손’ 독주는 정말 괜찮은 것일까. 문재인 정부의 ‘권력기관 개편안’에 입각해 민주당은 지난 8월 이낙연 대표와 전해철 정보위원장 등 50명이 참여해 개정안을 발의했다. 소위를 통과한 개정안은 ‘대공·대정부 전복 등 국내 보안 정보 수집·작성·배포를 국정원 직무 범위에서 제외하고, 국정원이 가진 일체의 수사권을 폐지하되 수사권 폐지를 3년 유예’하는 게 골자다.국정원을 권력 남용과 정치적 일탈을 반복하는 조직으로 규정하고, 아예 힘을 쓰지 못하는 조직으로 주저앉히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명칭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꾸자고 했었다. 그러나 정보위 소위에서 명칭 변경은 없던 일이 됐다.대공수사권의 경찰 이양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국정원과 경찰 안팎에서도 나온다. 전직 국정원 직원들이 지난 23일 토론회를 열고 깊은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대공 수사는 축적된 역량에 더해 국내·해외·과학·사이버 등 모든 정보가 유기적으로 융합된 분야인데 해외에 조직과 정보망이 없고 수사 자체가 금지된 경찰이 수행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이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심장 수술을 일반외과 의사에게 맡기는 꼴이라는 비유도 있다.국가기밀 사항인 국정원의 조직·소재지·정원 등에 대해서 정보위 위원 3분의 2 이상이 요구할 경우 공개토록 하는 내용도 이상하다. 유예기간 3년 만에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쇠뿔 바로잡으려다가 소까지 죽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북한이 대남적화통일 야욕을 버렸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는데, 이렇게 ‘안보 자해(自害)’ 도박을 마구 저질러도 되나.

2020-11-26

우주탐사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충격적 사건을 손꼽으라 하면 인류의 달 착륙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늘을 나는 플라잉카가 상용화되거나 드론택시가 우리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이것 또한 혁명적 사건이다.중국이 지난 24일 무인 달 탐사선인 창어 5호를 쏘아 올렸다. 이번에는 달의 표면에 도착해 약 2kg의 샘플을 수집해 오는 것을 임무로 삼았다. 이미 중국은 작년 1월 창어 4호 무인 탐사선을 발사해 달의 북서부 뒷면에 착륙시킨 바 있다. 세계 각국은 중국의 우주개발 사업이 앞으로 얼마나 발전할지 주목하고 있다. 올 7월 중국은 자국 최초의 화성탐사선도 발사했다. 만약 이것이 성공한다면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화성 착륙에 성공한 나라가 된다.미국은 1969년 7월 20일 미국 우주인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탄 아폴로 11호를 달 착륙에 성공시켜 전 세계를 흥분시켰다. 인류가 달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51년 전 일이다. 그 후 달에 대한 각국의 관심은 점차 옅어졌으나 최근 중국의 우주탐사선 발사를 계기로 조용하던 우주개발이 또다시 뜨거워지는 느낌이다.중국의 우주개발은 자국의 과학적 능력을 대외에 과시하고 미국에 맞선 중국의 우주굴기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중국은 2025년까지 유인 달 탐사선을 발사할 계획이다. 미국도 2024년까지 유인 달 탐사선을 진행한다는 계획 아래 본격적인 우주개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미지 세계에 대힌 인류의 호기심과 도전은 달 착륙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만들어 냈다. 한국도 2030년에는 달 착륙선과 탐사 로봇을 발사할 계획이라 한다. 우주를 향한 인류의 도전은 또다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낼 지 궁금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0-11-26

대학동창과 소백산 기행

대학 친구는 오래 가기 어렵다고들 한다. 철들고 보탬 되고 안 되고를 다 아는 때 만나니까. 그래도 안 그렇다고 생각될 때가 많다.언론사에서 일하는 K가 소백산에를 가자고 한 게 벌써 두어달 전이다. 약속은 시원스럽게 잡았지만 막상 날이 닥치니 앞뒤로 일정이 꽉 차 버렸다. 그래도 이번만은 가야겠다고, 아닌 말로 이를 악문다.풍기 소백산 산속에 대학 동창 하나가 굴을 파고 앉았다. 쑥마늘 먹고 사람 되겠다는 단군신화도 아니고, ‘논어’며 ‘예기’며 하는 한문 고전 공부에 어언 24년 세월이 흘렀다. 나나 K와는 학번은 같은데 나이는 물경 13년이나 많은, 시청 공무원 하다 늦깎이로 대학 들어왔던 형님.옛날엔 참 가난하기도 했다. 나도 보증금 50에 월 5만원 월셋집에 자취까지 했지만 이 형님은 더 가난해서 남들 대학 갈 때 엄두도 못 냈었다 했다. 대학 다닐 때도 남 모르게 용산역 앞에서 감자를 팔았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내 기억에 희미하게 남아 있다.지금 아파트 단지들에 재개발이 거의 다 된 봉천동, 신림동, 노량진 일대에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산윗집은 물을 대려면 펌프질을 하고 ‘푸세식’ 변소가 일반인 시절이었다.그렇게 가난했는데도 그는 학교 다닐 때부터 공부를 즐겼다. 남들 놀고 데모할 때 그는 공부가 목말라 늦게 대학 온 사람답게 강의를 듣고 레포트를 길게 내는 버릇을 들였다.그래도 졸업 하고는 사회로 나가야 했다. 곧 학원 강사가 벌이가 되는 시절이 닥쳤고 그에게도 ‘황금기’가 펼쳐졌다. 대학 시절 ‘말년’에 결혼을 한 그에게는 부양해야 할 식구들이 있었다. 그때쯤에야 먹고 살 수 있었건만 그는 오히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사무실을 얻어 서당을 열었다. 스스로 한문을 공부하며 돈을 받지 않고 가르치기 시작한 것.K는 풍기 소수서원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안동이 고향인 그는 처음엔 공대에 들어갔다 다시 시험을 보고 국문과로 들어왔다. 집에서는 외무고시를 본다 하고 학교 앞에 방을 하나 얻었지만 고시는 고사하고 밤낮으로 나같은 한량들에게 시달리기 일쑤였다. 나보다 한두 살 많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해 주던 그는 아버님을 일찍 여위었는데도 낙천가의 기질을 잃어버리지 않았다.소백산 산중에서는 이날 밤 사내 셋이서 밤하늘 별을 헤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형님의 백구 네 마리가 옆에 다가와 앉아 산속의 웃음소리에 귀를 있었다.속세를 떠나 이렇게 깊은 산속에서 홀로 공부를 계속하는 형님과 나를 여기로까지 이끌고 온 K. 우리는 이날 밤 세월을 잊어버린 옛날 사람들, 친구들이었다.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불역낙호아(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11-25

떠나보내기

강길수수필가늦가을….보도의 벚나무가 벌거숭이가 되어간다. 어떤 나무는 아직 절반 정도의 옷을 입고 있으나, 어느 나무는 팔 할 이상을 벗었다. 전체적으로 대강 삼분지 이 정도는 옷을 벗어 보인다.가슴이 움찔움찔하는 것만 같다. 사제나 주송자(主誦者)가 고인의 세례명을 넣어 기도하거나, 말할 때마다 그랬다. 꼭, 내가 저 관 안에 누워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강론 시간에 사제는 친절하게도, 고인의 세례명을 뜻풀이까지 하면서 여러 번 부르며 애도하였다. ‘이 미사에서, 입관 체험교육 이상으로 삶과 죽음을 체험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젊은 날부터 장례미사에 많이 참례(參禮)해 왔다. 하지만, 오늘 같은 느낌은 처음이다. 고인의 세례명이 나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같은 세례명의 고인을 위한 장례미사는 오늘이 처음이다. 다른 장례미사에서도 고인의 세례명이 호명되었는데, 왜 오늘만 다를까. 고유명사 하나의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은 미처 몰랐다.올 가을, 오랜 지인(知人) 두 사람을 졸지에 잃었다. 아니, 갑자기 떠나갔다. 한 사람은 초가을에, 또 한 사람은 늦가을에 아주 떠났다. 떠난 의학적 이유도 둘이 같다. 심장 쪽 잘못이다. 출신 지역도 같다. 나라가 철강업을 주력산업으로 새로 힘차게 일으키는 시기에, 두 사람 다 총각으로 이곳에 왔다. 바닷가 모래밭에 세워진 철강 제조 현장에서, 각자의 일생을 오롯이 바친 이들이다. 나는 그들과 직장은 같았지만, 부서가 달라 성당에서 만났다. 함께 활동하며, 깊은 신앙공동체 체험을 나눈 이들이다.하늘의 섭리는 내가, 두 사람을 떠나보내라고 강요하고 있다. 젊은 날 상가에 가면, 압도되며 느끼던 진한 감정들도 많이 사라졌다. 죽음이란 현실에 대한 슬픔, 고통, 거부감 같은 느낌들과 삶에 대한 부조리, 연민, 허무감 등등의 감정들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자의 회한인지, 넋두리인지 모를 감정의 너울이 가슴을 움찔거리게 하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래서 세상은 살아보아야 아는 것인가 보다.장례미사 마치고, 자전거 타고 돌아오는 보도에 벚나무낙엽이 흩날렸다. 한 줄기 갈바람에, 우수수 떨어진 낙엽이 이리저리 구석으로 내몰렸다. 세상 떠난 그들은 어떤 낙엽을 닮았을까. 또, 어느 낙엽처럼 떨어져 갔을까. 미사에서 두 고인이 같이 생각났었다. 그들과 함께했던 지난날들이 파노라마 되며 지나갔다. 저 낙엽들은 나무가 밀어낸 것일까. 스스로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것인가. 생은, 시간이란 외줄을 타고 가는 여정이다. 죽음은, 어느 순간 외줄에서 힘에 부쳐 떨어지는 걸까, 놓아버리는 걸까.마음 한쪽에서, ‘떠나보내야 한다. 이젠….’하고 말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건 아니지….’라고 한다. 지난주일, 세례명이 같아 친밀감으로 지내던 고인을 만났었다. 고향 친구 잃은 슬픔을 위로한다고, “상실감이 크지요?”라고 했었다. 내 말을 듣던 그의 차분한 표정이 떠오른다. 또 코로나로 반년 동안 얼굴한 번 못 본체, 초가을에 먼저 떠난 고인도 생각난다. 갑자기 가장을 잃은 두 가정의 가족들 얼굴도 아른거린다.자기도 언젠가 이승을 떠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세상에 없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가 경고한 대로 ‘깨어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세례명이 같은 지인의 장례미사가, 가슴 움찔거리게 한 이 가을의 화두는 ‘떠나보내기’다. 부조리하고 억울하더라도, 떠나는 이는 떠나가고야 마는 법이 자연이 마련한 불변의 길이므로…. 하여, 깨어있는 사람이 늘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은 ‘떠나보내기’가 아닐까.문제는 떠나보내야 하는 방법론이다. 떠나보내지 않아도, 떠나고야 마는 하늘의 섭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신해야 할까. 답이 낙엽에 있다 싶다. 낙엽은 나무에 밀려나 덜어졌든, 스스로 떨어졌든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떠나가는 낙엽이나, 떠나보내는 나무나 담담하다. 낙엽은 바람과 중력에 자신을 맡기고 매 순간 유유자적(悠悠自適)한다. 가을 낙엽이 아름다운 것은 하늘 섭리를 말없이 받아들이는 데 있으리라.이 가을, 황망히 떠난 두 고인을 고운 낙엽처럼 떠나보내련다.

2020-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