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초·중·고교 개학, 학교방역과 수업에 만전을

오늘부터 초중고교가 일제히 개학을 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있다지만 아직은 하루 300∼400명대 신규확진자가 줄곧 발생하고 있어 학교 개학으로 인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분위기다. 학부모 사이에서도 학생들의 전면 등교를 두고 찬반 논란도 있으나 교육당국은 2일부터 등교 연기없이 전면 개학을 실시했다.대구시교육청은 대구지역 학교의 등교수업을 지난해보다 확대했다. 유치원과 초등1·2학년, 중3, 고3, 특수학교는 원칙적으로 매일 등교를 결정했다. 또 전교생의 매일 등교가 가능한 학교도 작년 300명에서 올해는 400명으로 확대했다.경북도교육청도 전체 초중고 가운데 72%가 전교생 등교가 가능하다고 했다. 유치원과 특수학교는 100% 등교했다.대구와 경북 교육당국은 안전한 등교를 위해 학교방역을 강화하고 교직원의 업무 경감을 위해 방역 전담인력도 대폭 확대했다. 또 감염병 전파 우려가 있는 과밀학급에 대한 후속 조치도 마련했다.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유지되는 가운데 학생들의 등교와 수업은 코로나 감염병 전파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그렇다고 등교를 무작정 미룰 수도 없다. 학교당국의 대응에 학부모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감염병을 예방하는 동시에 공교육 정상화도 달성하도록 모두가 희망하고 있다.지난해는 코로나 사태로 세 차례 개학이 연기되면서 불가피하게 온라인 개학을 했다. 그러나 수능시험 연기 등 학생들의 학사 일정이 줄줄이 차질을 빚었다. 처음으로 실시한 온라인 수업으로 학생과 학부모, 교사 모두가 대혼란을 겪었다. 학습공백과 학력저하 문제도 곳곳에서 불거졌다. 학부모의 절반 이상이 코로나 사태가 교육격차를 더 벌렸다고 생각했다. 또 맞벌이 부부 자녀의 돌봄 문제 등 코로나로 인한 교육환경 변화가 공교육의 기반을 크게 흔들기도 했다.3월 신학기 개학은 이런 점에서 매우 조심스럽고 엄중하다. 아직은 하루 수백명의 코로나 신규확진자가 발생하는 위중한 상황이어서 집단 활동이 불가피한 학생들의 등교에 대해 불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다. 학교방역에 빈틈이 있어서는 안 된다. 또 방역을 이유로 공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방역과 학력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교육당국의 역량이 발휘돼야 할 때다.

2021-03-01

코로나 졸업 시즌

지금은 바야흐로 겨울 졸업 시즌이다. 학교를 오가다 보면 학생들이 일주일 내내 졸업 가운을 입고 ‘삼삼사사’ 모여 사진들 찍은 풍경을 본다. 다섯 명 이상은 아직 모일 수 없으니 삼삼오오오가 될 수 없는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김없이 2월의 졸업 시즌은 닥쳤다. 대학 전체 차원이나 단과대학 차원에서 정식으로 졸업식을 가질 수 없는 코로나 시절이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축하해 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아하, 이게 좋겠구나 했다.학과 홈페이지에 졸업생 명단을 띄워올리고 “여러분의 뜻 깊은 졸업을 축하합니다!” 문구 정도로 분위기를 살리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조교 선생님도 이야기를 듣고는 그거 좋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다음날이다. 학과에서 만난 조교 선생님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졸업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학생들도 있을 수 있어, 자칫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오는 느낌이었다. 졸업생 이름을 다른 곳도 아니고 학과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을 꺼려 하는 학생도 있을 수 있을까?그러나 이때는 물러서는 것이 좋다. 개인의 인격권과 프라이버시가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강조되는 요즘 졸업도 ‘개인정보’라는 인식에 맞서 좋을 것이 없다. 또 엄밀히 말하면 확실히 개인정보인 것은 맞으니까. 다시 또 생각한 것은 학과로 통하는 외벽에 졸업 축하 플래카드를 써붙여 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도 꺼내지 못했다. 요즘 학교 전체적으로 플래카드 ‘단속’이 여간 심한 게 아니어서 일일이 허락받아야 할 뿐더러 부착 지점도 까다롭게 제한되어 있는 까닭이다. 이렇게 해서, 코로나 ‘시즌’의 졸업생들을 축하해 주려던 아이디어들은 무위로 돌아갔다. ‘축하의 말’이나 ‘달랑’ 올려 드리고 기념품을 준비하는 것으로 졸업 시즌을 때우는 셈이 되었다. 옛날에는 사회가 이런데 졸업식이 무엇이냐고 졸업식 거부까지 했건만, 이제 그런 인식은 아예 사라졌다. 학교 학생들은 학교 마크가 찍힌 옷을 자랑스럽게 입고 다니고 졸업식은 거의 모든 학생들이 참석하는 중요 행사가 되었다. 코로나 시절은 이렇게 ‘정상’으로 되돌아온 졸업식이 없는 졸업 시즌을 만든다. 그래도 교문을 들어오고 나가면서 보는 졸업생들의 표정은 밝다.내가 혹시 졸업식 축하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글쎄, 혹시 대학 시절 이후로 코스모스 졸업밖에는 하지 못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대학원까지 세 번 졸업을 했지만 매번 가을에만 학업을 끝낼 수 있었다. 그때마다 졸업 가운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어서 코로나 염병이 물러나야겠다. 학생들이 학업 마치는 보람을 한껏 누릴 수 있는 그날을 위해./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21-02-25

TK의 수모

국회상임위에서 부산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은 통과되고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은 보류되는 순간을 지켜본 대구·경북이 자괴감에 빠졌다.집권세력은 물론 야당 국회의원들로부터도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은 외면을 당했으니 시·도민 모두가 왕따를 당한 기분이다. 지역민들이 이처럼 수모를 당하는데도 뒷북만 치는 TK 정치권 모습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문재인 정부는 내년 대선에 대비해 수도권과 호남, 충청권, 부산·경남권에 국가자산을 집중배분하고 있다. 5년마다 수도권 규제를 풀 수 있도록 법률을 바꿔 대부분 업종의 기업이 비수도권에서 경기도로 이전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세종시에 행정수도가 둥지를 틀고 있는데도 인근 대전시에 혁신도시가 들어설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전남 나주에는 한전공대를 세우고, 목포에는 의과대학 설립을 약속했다. 적법성 문제가 제기되는 가덕도 특별법도 일사천리로 진행하고 있다.대구·경북은 이제 정치적인 현실을 직시할 때도 됐다.지난해 4·15 총선에서 야당에 몰표를 몰아주면서 얻은 것이 무엇인지 반성해 봐야 한다. 자신을 당선시켜준 지역민들의 분노도 대변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노골적인 지역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상대진영과 싸워 지역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것인가.곧 심각한 경제 위기가 닥쳐올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지금 분명한 것은 대구·경북은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이나 기득권을 가진 이너서클 구성원들의 의도대로 배타성과 폐쇄성을 고집할 경우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처한 위기상황을 돌파할 수 없다. 특히 서민들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부존자원이 없는 도시는 국내든 국외든 열려 있어야 살길이 생긴다./심충택(논설위원)

2021-02-25

정치과잉 대한민국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이명박 정부 때 영남권 민심을 두 쪽으로 갈라놓았던 가덕도 신공항이 또다시 논란이다.4월 7일 치러질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겨냥한 여야후보가 모두 가덕도 신공항이 건설돼야 한다고 목청높여 외친다. 영남권 신공항은 2016년 파리공항공단(ADPi) 검증 결과 1위를 차지한 김해공항 확장안에 5개 시도가 합의한 바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이 또 다시 가덕도 신공항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뭘까.보궐선거와 내년 대선에서 부산 지역의 민심을 움직일 ‘필승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포석 때문이다. 무리수 놓는 여당은 그렇다 치자. 야당 역시 부산지역 민심을 거스르는,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다. 이러니 국회 역시‘못먹어도 고’형국이다.국회는 이 법안을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26일 본회의를 통과시킬 전망이다. 문제는 가덕도 신공항은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가 안정성과 시공성, 운영성, 접근성 등 공항입지검토에 필요한 거의 대부분의 항목에서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사안이라는 데 있다. 따라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돼도 건립은 순탄치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국토교통부가 이달 초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의원들에게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막아달라고 설득 작업에 나섰던 사실만 봐도 그렇다. 국토교통부가 대외비로 국회 국토교통위에 제출한 자료를 한번 훑어보면 가덕도 신공항은 사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기 어렵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돈 문제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 소요 예산은 부산시가 주장하는 7조5천억원이 아니라 28조6천억원에 달한다.현재 가덕도 신공항 사업비로 언급되는 부산시안은 국제선만 개항하고 국내선은 기존 김해공항을 이용하는 것으로, 현실성이 떨어진다. 관문공항을 만들기 위해서는 군시설을 포함한 국제선과 국내선 신공항을 건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 28조6천억원의 사업비가 소요된다는 게 국토부 추산이다. 최소 3천500m 활주로 2본을 활용하는 국제선과 국내선을 설치한다 해도 15조8천억원이 든다. 또 해상공항 건립을 위해서는 산을 깎아서 바다를 메꿔야 하는 데, 이는 엄청난 환경훼손을 수반한다. 남해는 대륙붕을 지나면 수심이 급격히 깊어져 현재 기술로는 시공 자체도 어렵다. 바다를 매립해 건설한 일본 간사이 공항은 약 13m 침하로 10조원의 유지비를 써야 했다. 어렵게 완공해도 지반 침하로 천문학적인 규모의 유지비가 드는, 애물단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막무가내다. 이러면 법안통과 이후부터가 문제다. 선거가 끝나고 예산초과 등 여러 문제들이 불거지면 사전타당성 조사에서 좌초될 게 뻔하다. 그제서야 국민들은 정치권의 공수표에 농락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듯 싶다.마냥 지켜보기만 하기에는 남의 일 같지 않다. 공항과 같은 SOC투자가 전문가들의 검토결과와 달리 여론재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정치과잉 대한민국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2021-02-25

가덕도특별법, ‘부처들 반대·TK 분노’ 다 뭉개나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여야 정당들이 코가 꿴 듯이 꼼짝 못하고 몰아가고 있는 이 법은 그러나 안팎에서 심각한 모순과 문제점들을 지적받고 있다. ‘이륙은 몰라도 착륙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비관마저 나돈다. 국토·기재·법무부 등 관련 정부 부처들의 반기와 대구·경북(TK)의 성난 민심을 끝내 뭉개고 가려는 정치권의 막무가내는 결코 옳지 않다. 국토부가 이달 초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가덕도 사업비가 부산시가 계산한 7조5천억원이 아닌 28조6천억원에 이를 수 있다는 추산이 담겼다. 또 안전성·시공성·운영성·환경성·경제성·접근성·항공수요 등 7개 부문에서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설명도 들어있다. 기획재정부도 “입지 등 사전타당성 검토를 거친 뒤 예타 검증도 받아야 한다”고 했고, 법무부 역시 “특별법이 위헌은 아니지만 적법 절차와 평등 원칙에 위배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국토위 소위 회의에서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우리 동네 하천 정비할 때도 그렇게 안 하는 것 같다”고 맹비판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어마어마하게 재원이 들어가는 국책사업을 비용 추계 한번 없이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무엇보다도 정치권이 TK 지역민들의 현안사업인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을 외면하는 것은 낯두꺼운 횡포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 장상수 대구시의회 의장, 고우현 경북도의회 의장이 국회에서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는 등 TK 지역민심의 반발이 확산일로다. ‘가덕도 신공항’은 그 자체로도 흠결이 많은 사업이다. 국익이나 균형발전 차원에서 보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이 훨씬 더 시급하고 중요한 사업이다. 정치권이 절차적 정당성도 이성적 형평성도 모조리 무시한 과속 입법 추진을 탐닉하는 모순은 시정돼야 한다. 해당 정부 부처 공무원들의 반발이 사후 법적 책임을 의식한 행동이라는 분석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모조리 묵살하는 난폭 질주에 따르는 후환 후폭풍이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2021-02-25

백신 첫 접종, 코로나 극복의 전환점 되길

코로나19 종식을 위한 백신 접종이 오늘부터 본격 시작된다. 24일 안동 SK바이오사이언스 공장에서 첫 출하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은 1차분 15만 명분을 시작으로 28일까지 모두 75만7천 명분이 출하된다. 출하된 물량은 경기도에 있는 물류센터로 이송돼 다시 전국의 보건소와 요양병원 등지로 옮겨지고 26일 오전 9시부터 접종을 시작한다. 코로나19가 국내에서 발생한 지 1년 1개월만에 시작되는 백신 접종이어서 국민적 기대도 크다. 정세균 국무총리의 말처럼 일상회복으로의 첫걸음이자 코로나 극복 희망의 씨앗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이번에 공급된 AZ백신은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만65세 미만 입소자·입원자·종사자가 대상이다. 현재까지 대상자의 93.6%가 백신 접종을 희망해 백신에 대한 불신이 우려보다 적어 다행이다.전문가들은 백신 접종이 만능은 아니지만 지금으로서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 말한다. 코로나 환자의 중증화를 막고 바이러스 전파력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미 먼저 접종을 시작한 나라에서는 백신 접종의 효력이 나타나고 있다. 국민의 70%가 접종을 한 이스라엘에서는 2차 접종까지 마친 60세 이상 고령자에서 신규 환자는 53%, 중증질환은 31%가 감소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가장 먼저 도입한 우리나라는 AZ백신 사용을 신중히 하라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권고에 따라 65세이상 고령자 접종을 2분기로 미루는 바람에 백신 불신의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 있다.정치권에서 첫 접종자를 누구로 하느냐는 논란도 백신 신뢰를 낮추는 불필요한 논란이다. 국민이 안심하고 백신 접종에 호응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다. 신속한 접종으로 사회경제적 손실을 줄이고 정부가 예상한 11월 집단면역 형성에 성공해야 한다.65세 이상 고령자에 대한 백신 접종이 미뤄진 것은 아쉬운 점이나 보건당국은 지금부터 총력을 쏟아야 한다. 코로나 사망자의 80% 이상이 고령자인 점을 고려하면 고령자 우선 접종의 원칙이 지금이라도 개선돼야 한다. 백신의 보관과 유통, 접종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관리도 필요하다. 1년여 동안 국민이 겪은 온갖 고통을 생각하면 이번 백신 접종이 코로나 극복의 획기적 전환점이 되길 간절히 희망한다.

2021-02-25

독락(獨樂)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포항에서 가까운 옥산서원 근처에 회재 이언적이 기거했던 독락당이 있다. 이언적이 당파싸움의 정치적 분쟁 속에서 파면당해 귀향하면서 옥산의 독락당으로 갔다. 그가 본가가 있는 양동으로 가지 않고 독락당으로 가서 살았던 것은 정파적으로 죽고 죽이는 사람들이 싫어졌기 때문이다. 넓은 반석 위로 흐르는 자계천과 계곡, 숲과 나무와 개울이 변치 않는 벗이 될 수 있는 생각에 청산유수의 옥산으로 가게 했던 것이다. 이언적은 ‘무위’라는 시의 마지막에 “장대청산불부시(長對靑山不賦詩)”라고 읊었는데 의역하자면 “이제껏 세상일에 쫒기다 보니 좋은 청산 옆에 두고 시 한번 못 읊었소”이다. 이제라도 이 좋은 청산이 주는 낙을 홀로 누리며 살자는 뜻에서 자신이 기거하는 집을 ‘독락당’이라 이름 하였다.최근에 여기저기서 독락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독신과 졸혼도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코로나 이전부터 부쩍 늘어난 남의 간섭을 피해 홀로 낙을 누리는 나홀로 족들을 일본에서는 소확행족, 스웨덴에서는 ‘라곰’, 덴마크에서는 ‘휘게’, 프랑스에서는 ‘오캄’이라 하고 이를 통틀어서 ‘라운징족’이라 부른다. 이런 나홀로 독락을 추구하는 라운징족의 증가는 이웃과의 관계를 끊고 이웃의 삶을 외면하면서 혼자만의 낙을 즐기는 비사회적 삶을 유발한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그래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 독락이 확산되고 보편화가 되어 버린다면 사회적 큰 문제가 되므로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해서 세상일을 내려놓고 이제 자신의 삶을 즐기며 독락을 권유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그렇다면 청산을 옆에 두고 홀로 즐기려 했던 이언적의 독락은 무엇이었을까? 이언적의 독락은 세상을 외면하고 피하여 홀로 즐기려고 했던 독락이 아니다. “닫히면 홀로 마음을 세정하고 열리면 세상을 세정한다”는 맹자의 글을 좋아한 이언적의 독락은 더러워진 세상을 피하여 홀로 낙을 누리기 위한 독락이 아니라 지금은 귀향 온 닫힌 세상이니 어쩔 수 없이 홀로 마음을 세정하는데 힘써야 한다는 독락이었다. 언젠가 길이 열리면 세상을 세정하는 일을 위하여 자기 삶을 완성해 가는 독락인 셈이다. 놀이에 道(도)를 더함이 풍류도가 되듯이 이언적은 독락을 풍류도로 승화시켰다.나이가 들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이제 하고 싶은 일하면서 독락을 누려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 독락이 단순히 나홀로 즐기는 독락이라면 어쩌면 솔로몬이 허망한 것이라고 했던 오락에 불과할지 모른다. 진정한 독락은 길이 열리면 온 세상을 즐겁게 할 독락이 되어야 하고 이언적의 독락은 바로 그런 독락이었다.

2021-02-24

길을 떠나도 여전히 길

요즘 ‘꽃길만 가자’는 말이 유행이다. 인생길을 가면서 숱한 길을 다 겪는다. 그 고난이 어떤지 다들 알기에 건네는 덕담인데, 인생길이 맑고 평평하면 삶이 재미있을까. 아름답고 향기로운 길만 있다면 삶이 맛있을까.사는 재미는 희로애락에 있다. 사는 맛은 달고 쓰고 맵고 시고 짠 데 있다. 맵디매운 시련을 이겨내고 성취했다는 기쁨과 쓰디쓴 좌절을 딛고 일어섰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길을 가다가 건지는 개똥철학 같은 깨달음도 있어야 인생의 진정한 맛을 알 수 있다. 사는 재미와 사는 맛 모두 길을 가면서 얻는 것이다.벼룻길 : 아래쪽이 강가나 바닷가로 통한 벼랑길.외통길 : 한 곳으로만 난 길.에움길 : 에워서 빙 둘러 가는 길.거님길 : 산책길의 옛말.두멧길 : 두메 산골에 난 길.뒤안길 : 뒤꼍으로 난 길.발구길 : 마소에 메워 물건을 실어 나르는 썰매가 다닐 수 있는 길.푸서릿길 : 풀이 자란 정리 안 된 길.눈석잇길 :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길.돌서덜길 : 냇가나 강가에 돌이 많이 깔린 길.자드락길 :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에 있는 좁은 길.길은 원래 있던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간 발자국이 모여 길이 되었다. 짐승을 잡으러 가면 사냥길, 나무하러 가면 나뭇길, 시장에 가면 시장길, 물건 팔러 가면 장삿길, 놀러 가면 나들잇길, 과거 보러 가면 과거길, 벼슬하러 가면 벼슬길, 죄를 짓고 쫓겨나면 귀양길, 몰래 가면 잠행길, 밥 얻으러 가면 동냥길, 처음 가면 첫길, 누군가와 함께 가면 동행길, 산소에 가면 성묫길, 임금이 가면 거둥길, 길은 목적이나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목적에 따라 : 마중길, 배웅길, 과거길성질에 따라 : 비탈길, 가시밭길, 오르막길일기에 따라 : 빗길, 눈길, 밤길, 새벽길재질에 따라 : 황톳길, 자갈길, 돌서덜길거리에 따라 : 지름길, 하룻길, 에움길장소에 따라 : 오솔길, 숲길, 산길, 둑길, 고갯길, 논두렁길, 밭두렁길모양에 따라 : 꼬부랑길, 곧은길이뿐일까. 사람이 가는 곳은 다 길이다. 길이 없어도 내가 가면 길이고 누군가가 갔으면 그 또한 길이다. 산, 들, 바다, 하늘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속에도 길이 있다.첫길, 꽃길, 둑길, 샛길, 잿길, 논길, 산길, 빗길, 눈길, 돌길, 숲길, 큰길, 갓길, 밤길, 곁길, 외길, 촌길, 물길, 하늘길, 진창길, 갈림길, 흙탕길, 지름길, 자갈길, 비탈길, 벼랑길, 황천길, 모랫길, 바른길, 에움길, 돌림길, 고샅길, 언덕길, 외딴길, 나뭇길, 덤불길, 두렁길, 황톳길, 오름길, 내림길, 비탈길, 오르막길, 내리막길, 가시밭길, 돌너덜길우리네 길은 잘 빠지고 평평하고 반듯하지 않다. 가파르고 질척하고 거칠다. 아슬아슬하고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하다. 이는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다. 살다 보면, 진창길을 만나 바짓가랑이에 흙탕물이 튀고 비탈길 오르느라 숨을 헐떡이고 벼랑길 지나느라 다리가 후들거린다. 길을 잘못 들어 한동안 헤매기도 한다.그래도 우리는 늘 길을 떠난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하러, 때로는 무작정 길을 떠난다. 길을 떠났으면 길이 아닌 곳에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돌아봐도 여전히 길 위에 있다. 왜 그럴까. 여자의 길, 배움의 길, 출세의 길, 고행의 길, 설욕의 길, 재기의 길, 군인의 길, 영광의 길, 임금의 길, 신하의 길, 군자의 길, 인생 그 자체가 길이기 때문이다.길에는 나름의 맛이 있다. 오솔길은 호젓한 사색에 드는 맛이 있다. 갈림길 앞에서는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망설이다 하나를 선택하는 맛이 있고 나중에 후회하는 맛도 있다. 외통길은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이겨내야 하는 맛이 있다. 꽃길은 화려하고 향기로운 맛이 있고 뒤안길은 쓸쓸한 맛이 있다.먼저 닿기 위해 길을 가면 길을 알지 못한다. 산길을 발밤발밤 노래하는 사람은 산꽃이 차례대로 피고 지는 까닭을 알게 되고, 들길을 거니는 사람은 알곡이 도담도담 여무는 속도를 보게 된다. 다람쥐며 산새며 송사리며 풀꽃이며, 길섶에 있는 것들은 느릿하게 눈을 맞추는 영혼에게 말을 걸어오므로.진달래, 찔레꽃, 산딸기가 줄지어 피는 산모롱이 길은 통째로 먹어도 맛있다. 짤랑짤랑 가위소리가 먼저 뛰어오는 길은 엿가락처럼 몇 토막 뚝 잘라 먹어도 좋다. 바깥에만 두기 아까워 내 안으로도 내고 싶은 길을 찾아 나는 또 길을 떠난다.(길 위의 명상/김이랑/일부 발췌)살아봐야 인생을 알 듯, 길을 걸어야 길을 알고 길가의 것들과 눈을 맞추어야 길맛을 안다. 만약 당신이 빨리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린다면 그것은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속도(速度) 위에 있다. /문학평론가 김이랑

2021-02-24

매화등(梅花凳)

정미영수필가매화 꽃바람 소리의 여리고 긴 여음을 쫓아 도산서원으로 향했다. 오늘 문득 이성부 시인의 ‘봄’ 시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기다리지 않아도 오고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시인은 민주화에 대한 자유를 열망했는데, 나는 코로나19로 평범한 일상을 조심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을 시에 투영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혹독한 바이러스도 시간이 지나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희망의 ‘봄’을 마중하러 길을 나섰다.산책로에 홀로 서있는 매화나무가 나를 반겼다. 꽃봉오리가 터지는 그 절정의 순간을 돕기 위해 햇살과 바람이 연이어 두드렸다. 나는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시간을 가만히 숨죽이며 지켜보았다.매화원으로 들어섰다. 퇴계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매화였다. 도산매는 지금도 뜰에서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매화의 매력은 맑고 그윽한 꽃향기다. 암향(暗香)으로 불리는 향기는 ‘귀로 듣는 향기’라고도 부른다. 어디선가 떨어지는 바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고요해야만 비로소 향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매화나무 앞에 섰을 때, 나는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퇴계의 매화 사랑은 유명했다. “매화분에 물을 주어라.”라고 제자에게 말한 뒤, 임종하셨다는 일화는 세상에 많이 회자되고 있다. 방 안에서 매화를 마주보고 앉아 매형(梅兄)이라 부르며 밤새 잔을 주고받고, 취기에 젖어 많은 시를 읊기도 했다. 퇴계가 거닐었던 발자취를 가늠해 보며 나도 매화나무 언저리를 서성였다.전사청을 지나 선생의 유품을 보관하고 있는 옥진각(玉振閣)에 들렀다. 유물관에서 매화를 투각한 청자 의자 ‘매화등’을 보았다. 청자로 빚은 의자의 둥근 몸체에 당초무늬와 연꽃무늬가 정교하고 화려하게 새겨져 있었다. 청자 의자가 뜻밖이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도산’이란 지명 유래가 떠올랐다. 옛날에 도산서원이 있던 이 곳에 옹기를 굽던 가마가 있었다. 옹기 굽는 산이라 해서 질그릇 도(陶)자, 뫼(山)자를 써서 도산이라 부르는데. 혹시 그 가마에서 매화등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혼자 상상해 보았다.매화등을 바라보다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의자들을 떠올려 보았다. 의자라는 이름으로 엮이지만 모양과 쓰임새가 다르다. 식탁 의자는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도록 식탁 아래에 넣을 수 있게 만들고, 피아노 의자는 몸을 움직이면서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등받이나 팔걸이가 없다.우리네 사람과 닮았다. 의자마다 색깔이나 폭신한 정도가 다른 것처럼 사람 또한 생김새나 개성이 저마다 다르다. 의자가 제 몫의 맞춤자리에 놓여 쓰임새에 알맞게 지내는 것처럼, 우리도 자기 역량에 알맞은 자리를 찾아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즘 청년 실업자가 늘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직장을 갖지 못해 지치고 힘들어 한다. 젊은이들이 자기 몫의 인생을 살고 싶어도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해 번민과 고뇌로 하얗게 밤을 지새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분명 저마다 쓰임새가 있다. 시간이 더디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자신의 적성에 맞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맞춤자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저마다 각자 자리에서 빛나 보이고, 나와 다른 삶의 존재 방식을 존중받을 수 있으리라.매화등은 퇴계가 거처했던 방인 완락재(玩樂齋)에서 제 몫을 다했다. 선생이 매화를 감상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해 만든 것으로 날씨가 추울 때에는 의자 밑에 불을 피웠다. 매화등이 따뜻해지면 그 위에 앉아 매화를 바라봤단다. 매화등이 빛나 보이는 것은 매화를 사랑했던 퇴계 선생의 내력을 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매화등처럼 나도 내 몫의 자리에서 빛나고 싶다.

2021-02-24

교육 지우기 1 - 인성교육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뭉쳐야 시리즈를 알게 된 것은 큰 행운이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마음이 환해지기는 처음이었다.‘뭉쳐야 찬다’와 ‘뭉쳐야 쏜다’이들 프로그램을 보면서, 코로나 시대에는 맞지 않지만, 역시 사람은 뭉쳐야지만 큰 벽을 허물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운동 종목에는 종목마다 넘사벽 같은 자존심이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선수들은 평생을 바친다. 우리는 그런 선수를 전설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전설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사람들은 너무도 잘 알기에 그들에게 존경과 갈채를 보낸다.운동의 다른 말은 목표와 노력, 그리고 도전과 인정이다.목표를 정했으면, 선수들은 어떤 시련과 역경을 마주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나 목표를 향해 끝없이 도전한다. 그 모습이 바로 스포츠 정신이다.간혹 목표의 목전에서 안타깝게 좌절하기도 하지만, 진정한 스포츠 전설들은 절대 변명 따위는 하지 않는다. 변명 대신 그들은 그 상황을 인정한다. 그 인정함이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 결국 목표를 이루게 하는 백절불굴(百折不屈)의 힘이다.인정(認定)! 어떻게 보면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어렵고 부족한 것이 인정이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면 모두가 행복한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다.그 모습을 뭉쳐야 시리즈에서 전설들이 보여주었다. 전설들은 벽을 허물었다. 그들은 평생을 바쳐 자신과 동일시 한 자신의 운동 종목을 내려놓고, 다른 종목을 받아들였다. 비록 처음 접하는 종목이지만, 그들은 전설답게 상대 종목을 이해하기 위해 예의를 갖춰 최선을 다했다.반면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억지를 부리고 위선을 떤다. 그러면서 진짜 자신의 모습을 잃고 타인으로 산다. 타인의 삶이 결코 행복할 수는 없다. 참 자아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공통점은 극도의 불안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결국 불안을 없애기 위해 자신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괴물이 된다.우리 사회는 오래전에 괴물 공화국으로 변했다. 매일 같이 뉴스들은 정치계, 교육계, 스포츠계, 경제계 등 사회 전 분야에서 벌어지는 괴물 이야기를 생방송하고 있다. 괴물 이야기에 절어서인지 뉴스도 괴물이 됐다. 괴물 뉴스가 보여주는 괴물들의 잔인한 이야기는 공포 영화를 넘어섰다. 공포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분명 우리에게도 한때 괴물을 막는 장치가 있었다. 그것은 교육이었다.교육계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고,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을 갖춘 국민을 육성하는 “인성교육진흥법”까지 있다.하지만 교육은 이성을 잃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먼저 괴물이 된 곳이 교육계인지도 모른다. 교육, 특히 인성교육을 강조할수록 인간다운 삶과 멀어지는 것이 지금 교육이다.교육과 인간의 재건을 위해 형식뿐인 인성교육을 학교에서 지우기를 긴급 제안한다.

2021-02-24

안철수 이번 선거에는 성공할까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안철수가 또다시 서울 시장선거에 도전했다. 그는 2011년 서울 시장 보선에서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서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했다. 2012년 대선에서는 유력한 대선 후보였지만 문재인 후보에게 막판 양보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안철수는 결정적인 시기에 후보직을 왜 사퇴할까. 지난 2017년 대선에서 그는 제3당의 후보로 끝까지 완주했지만 3위에 그치고 말았다. 지난 총선에서는 그의 국민의당은 정의당에도 밀리는 군소 정당으로 전락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제일 먼저 서울 시장선거 입후보를 선언했다.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 어느 선거에서나 조직, 인물, 구도가 선거의 승패를 결정한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그는 야권 어느 후보보다 지지율에서 앞서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도 그에게는 어려운 장애물이 산적해 있다. 우선 그는 선거의 지지기반인 정당의 뒷받침이 너무 약하다. 그는 대선 실패 후 해외에 너무 오래 체류하면서 당 조직을 관리하지 못했다. 지난 총선에서 그의 국민의당은 지역후보를 공천치 못하고 비례 대표 3석을 건졌을 뿐이다. 총선 시기 그는 선거 전술로 장거리 마라톤에 몰두하였다. 정당의 뒷받침이 부족한 상태에서 그의 승리는 보장할 수 없다.선거의 주요 변수인 인물과 정책 면에서 안철수는 이제 참신성이 보이지 않는다. 의사 출신의 성공한 벤처기업인, 컴퓨터 백신의 전문가, 대학교수, 당 대표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는 경력이 없다. 과거 한 때 극한적 여야 대결 정치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이 안철수의 제3의 생활 정치를 선호한 적이 있다. 그런 그는 결정적인 순간 후보직을 사퇴하였다. 안철수는 이번 선거에서도 여러 공약을 발표했지만 참신성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과거의 ‘안철수 신드롬’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그는 ‘철새 정치인’으로 비판받고 있다.선거의 구도는 선거 승리의 주요 변수이다. 안철수는 제1야당 국민의힘과 야권 후보 단일화를 제안하고 김종인 위원장은 이를 수락했다. 그러나 선거 두 달을 앞둔 시점이지만 그가 야권 단일 후보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금태섭 전 의원과 후보 단일화 문제는 유권자의 관심 밖이다.그는 제1야당 후보 나경원이나 오세훈과 최종 경선을 거쳐야 한다. 설령 그가 최종 야권 후보 단일화가 되더라도 국민의힘이 그를 적극적으로 밀지도 의문이다. 야권 단일화의 전제인 그의 입당문제와 정책연합이나 지방연립정부 문제가 그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안철수는 결국 조직, 인물과 정책, 선거의 구도 면에서 유리한 측면이 보이지 않는다. 최종 결선에서 안철수와 박영선이 만나는 가상 대결구도에서는 오차 범위 내에서 박영선이 앞선다는 조사도 있다. 3자 대결 구도가 된다면 그의 승리는 물 건너가 버린다. 어느 보결선거에서나 투표율이 낮은데 이도 그에게 유리하지 않다. 코로나 장기화와 집권 여당의 선거 이슈 선점과 결속력도 ‘문재인 정권 심판론’을 희석시키는 형국이다. 정책 토론에서 실수를 자주하는 안철수가 이번에는 어떤 선거 전략을 펼칠 지 주시할 뿐이다.

2021-02-24

생활임금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기본소득제를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생활임금제가 관심을 끌고있다.생활임금은 임금 노동자의 실질적 생활이 가능하도록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법정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지급을 강제하기 위해 법적으로 규정한다.즉, 근로자들의 주거비, 교육비, 문화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수준으로 노동자의 생계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는 정책적 대안이다. 생활임금 제도는 1994년 미국 볼티모어 시에서 관련 조례가 제정되면서 시작됐는데, 이는 당시 볼티모어의 ‘빌드(BUILD)’라는 단체가 최대 공무원노조인 AFSCME와 연대해 벌인 생활임금운동의 결실이었다. 2014년 현재 140개 도시에서 관련 조례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으며, 영국의 경우 2012년 런던 올림픽 관련 노동자들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 성북구, 노원구가 2013년, 경기 부천시가 2014년 생활임금을 도입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서울과 인천, 대전, 경기 지역 일선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다. 2021년‘서울형 생활임금’은 시간당 1만 702원으로 확정됐다. 이는 지난해 생활임금 1만523원보다 1.7%(179원) 상승한 수준으로, 정부가 지난해 8월 고시한 2021년도 최저임금 8천720원 보다 1천982원이 더 많다. ‘서울형 생활임금’은 노동자가 일을 해서 번 소득으로 주거비, 교육비, 문화생활비 등을 보장받으며 가족과 함께 서울에서 실제로 생활할 수 있는 임금 수준이다. 최근에는 울산시도 뒤늦게 생활임금제를 도입했다니 하루빨리 전국의 모든 도시 노동자들이 생활임금을 보장받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2-24

정부의 탈원전 정책 기조 바꿀 때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선언한 탈원전 정책은 부작용 투성이다. 대체 에너지로 제시한 태양광 등의 사업은 심각한 산림훼손과 더불어 재난사고로 이어지고 있으며 에너지 효율면에서도 저평가 받고 있다.국민의 64%가 반대하는 탈원전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세계 최고의 우리나라 원전기술이 사장될 지경에 이르렀다. 원전 생태계가 존립 위기에 처했고 우수한 인재들은 해외로 빠져나갔다. 관련 산업계는 도산 직전에 몰렸으며 원전 소재지역들의 경제가 고사상태에 직면해 있다.경북도는 최근 산자부의 신한울 원전 3·4호기의 공사계획 인가 연장 조치와 관련해 정부가 조속히 공사를 재개하도록 해줄 것과 이미 완공이 임박한 1·2호기의 운영허가도 조속히 풀어줄 것을 정부 측에 강력히 요구키로 했다. 또 백지화 수순을 밟고 있는 영덕 천지원전 사업에 대해서도 정부가 주민 피해 등을 먼저 조사해 보상해 줄 것을 요구키로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원전의 절반이 있는 경북지역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최대 피해자다. 국가 시책에 순응해 원전 유치를 감수했던 주민들로서는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빚어지는 각종 경제적 불이익을 감내하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국가 정책이 거꾸로 가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주민 반발은 당연한 일이다.산자부가 신한울 3·4호기 공사기간을 연장했지만 사업 재개를 위한 것이 아니고 “사업 취소 시 발생할 한수원의 불이익 방지와 원만한 사업 종결을 위한 한시적 조치”라고 밝혔다. 결국 탈원전 정책에 대한 정책기조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뜻이다.그러나 야당 등에서 지적했듯이 정부의 이번 결정은 신한울 원전에 대한 무리수로 뒷감당이 어려워 그 부담을 차기 정부로 떠넘긴 꼼수라는 데 공감이 간다. 7천900억원의 예산이 이미 집행되면서 법적 소송 등의 문제에 당면한 정부가 책임 회피성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정부 정책 판단이 반드시 옳을 수는 없다. 잘못되면 실책을 인정하고 바르게 가는 것이 순리적 절차다.지금 전 세계가 공해 없는 전력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원전에 관심을 두고 있다. 한국이 여기에서 이탈할 이유가 없다. 신한울 3·4호기의 기한연장 결정에 맞춰 탈원전 정책의 기조를 과감히 바꾸는 정부의 용단이 필요하다.

2021-02-24

불가능한 꿈

장규열한동대 교수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특히 미국은 힘든 상황을 지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수가 오십만을 넘었다. 백신접종과 치료제개발이 희망을 준다지만, 일 년 넘게 경제, 사회, 문화의 틀을 바꿔 놓은 감염병의 여파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인류를 힘들게 할 터이다. 나라 간 경제적 질서와 힘의 균형에도 영향을 미치며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에도 미항공우주국(NASA)가 우주탐사선 퍼시비어런스(Perseverance)호를 성공적으로 화성에 착륙시켰다. 미국인들은 코로나19의 역경을 잠시 잊고 열광하였으며 이를 새로운 개척의 역사로 바라보는 듯하다. 땅 위에서 겪는 난관의 틈바구니에서 신선한 희망을 찾으려는 미국인들의 노력이 아닌가.화성. 태양계에서 지구 다음 네 번째 행성. 지름이 지구의 절반 정도 되는 작은 행성으로 희박한 대기는 거의 이산화탄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물의 존재는 확인되었지만 생명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평균 대기온도가 영하 23도라 사계절은 있으되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그럼에도, 미국은 인간의 다음 체류지로 화성을 주목한다. 테슬라(Tesla)의 일란머스크(Elon Musk)는 우주개발을 위한 사기업 스페이스엑스(SpaceX)를 설립하여 수년 내에 인간을 화성에 보내고 인간의 생존이 가능한 환경으로 바꾸어 낼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화성에서 인간이 편안하게 살 수 있기까지 줄잡아 ‘천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는 강연을 태연하게 들으며 미국인들은 기대를 한층 높이 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개척정신. 도전정신. 탐험정신. 불굴의 의지. 오늘 그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역경을 헤쳐가면서 동시에 미래를 향한 구상과 기획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다짐이 아닐까. 코로나19의 혼란 속에서도 탐사선이 보내오는 화성의 찬란한 밤하늘 사진과 화성의 바람소리 한 자락에 흥분하는 그들에게 개척정신이 보이지 않는가. ‘코스모스(Cosmos)’와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을 저술한 칼세이건(Carl Sagan)은 우주사진에서 작은 점 지구를 주목하면서 ‘정착할 수 있는 행성이 아직은 없다. 좋든 싫든 인류는 당분간 지구에서 버텨야 한다’고 적었지만, 미국인들은 그 ‘당분간’을 또다시 앞당기려 하는 게 아닌가. 그것도 코로나19의 와중에. 쿠바의 혁명가 체게바라(Che Guevara)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고 하였다.불가능한 무엇에 도전하지 않고는 의미있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가능한 일만 반복해서는 뛰어난 도약을 거둘 수 없다. 지난 세월, 대한민국은 수많은 불가능을 뚫고 오늘에 도달하였다. 오늘에 만족하며 멈추는 일은 없어야 한다. 벌어지는 일에만 주목하면 새로운 내일을 기약하지 못한다. 현재 문제를 해결하면서, 미래(未來)를 준비해야만 나라다운 나라가 선다. 보이지 않는 승부처가 어디인지 끊임없이 모색하는 오늘이어야 한다. 오늘에 붙들리지 않고 내일을 바라보는 세대를 길러야 한다.

2021-02-24

또 ‘軍 경계실패’ 확인…변명마저 수치스러워

‘작전은 실패해도 경계에 실패하면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은 군문(軍門)의 고전이다. 지난 16일 새벽 강원 고성 지역으로 북한 주민이 헤엄쳐 내려온 이른바 ‘잠수복 월남’ 사건도 조사결과 또다시 우리 군의 경계태세 실패의 산물임이 밝혀졌다. 우리 군이 언제까지 ‘노크 귀순’·‘산책 귀순’·‘헤엄 귀순’ 조롱을 들어야 하나. 이제는 국방부가 늘어놓는 고주알미주알 변명마저도 부끄러울 지경이다.23일 합참이 설명한 현장조사 결과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월남한 북한 주민이 모두 10차례나 군 감시장비에 포착됐지만, 8차례를 아무 조처 없이 무시됐다. 경보음이 2번이나 울렸는데도 경계 조치조차 없었고, 귀순자 이동 행적이 군 감시장비에 그대로 찍혔음에도 매뉴얼에 따른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저 무방비 상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해안 철책 배수로 관리도 엉망이었다. 해당 부대는 심각하게 훼손된 이 배수로가 있는지조차 몰랐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합참은 경계작전 수행 요원의 기강을 확립하겠다는 앵무새 대책을 내놨다. 2019년 북한 목선 삼척항 입항, 지난해 7월 강화도 탈북민 월북 때도 같은 대책을 내놓았지만 그저 말뿐이었다. 경계에서 번번이 실패하는 한심한 우리 군을 어찌해야 하나.상황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경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장병들만 탓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에 따르면 해당 지역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는 바람이 불 때면 소초당 경보음이 하루에 7천여 회나 오작동해 울렸다고 한다. 하 의원의 말마따나 문자 그대로 그 CCTV는 ‘양치기 소년’에 불과했던 셈이다. 수천억 원의 예산을 들인 군의 전자감시장비가 오히려 국방을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일제 점검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군 당국은 급기야 해안경계 임무를 해경에 넘기기 위한 세부 계획을 올해 안에 수립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안경계 인공지능(AI) 통합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과학화 경계체계를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방부는 원점에서부터 전면적인 진단을 통해서 더는 경계실패가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2021-02-24

매년 되풀이되는 대형 산불, 막을 수 없나

장유수경북부안동시에서 또다시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지난해 발생했던 화마의 아픔이 가기도 전에 또다시 대형 산불의 상처를 입었다.23일 경북도와 산림청 등에 따르면 지난 21일 오후 3시 20분께 안동시 임동면 망천리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해 21시간만에 진화됐다. 이 산불로 임야 250ha, 축구장 350여개의 면적을 태웠다.안동에서는 지난 2020년 4월에도 발생했다. 당시 산불은 임야 800㏊(800만㎡)를 태우고 사흘만에 진화됐다.매년 봄이면 ‘산불 조심’을 외치고 있지만 해마다 대형 산불은 재발하고 있다. 안동시를 비롯한 경북북부지역의 해마다 반복되는 산불로 고통을 겪는데도 여전히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것은 문제다.원인 규명에서부터 재발방지를 위한 시스템 구축까지 근본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이번 안동산불의 원인으로 쓰레기 소각이 의심되고 있다.최근 산림청 통계를 살펴보면 2011년∼2020년까지 연평균 산불발생횟수는 473.7회이며 그 중 부주의로 인한 화재발생은 248건 52.3%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렇듯 산불은 대표적인 인재(人災)다.자연적 요인은 지리적, 환경적인 요인으로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부주의로 인한 산불은 예방이 충분히 가능하다. 사람의 실수로 인한 인위적인 산불이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우선 산림의 가치와 산불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산불 예방에 대한 국민의 적극적인 협조와 의식 전환이 중요하다. 또한 유관기관들은 지속적인 산불예방 캠페인과 봄철 불법소각 집중단속 등 유기적이고 효율적인 산불 예방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당장 강풍에도 정상 운영할 수 있는 대형 헬기와 소방 장비 등 산불 방재 체계를 재점검해 장비와 인력도 더 갖춰야 할 것이다.예고된 재난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다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산불로 피해 입은 산림은 본모습을 찾는데 100년이 걸린다고 한다. 후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산림 자원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2021-02-23

걸핏하면 ‘파업’ 운운… 醫協의 전략 미스

더불어민주당과 대한의사협회(의협)가 또 한판 붙었다. 금고 이상의 범죄를 저지른 의사들의 면허를 제한하려는 의료법 개정안이 불씨다. 코로나19 전쟁터 한복판에서 시나브로 장수들의 등을 칼로 찌르는 여권의 속셈은 알 길이 없다. 민심 거울을 살피지 않고 번번이 ‘파업’을 으르는 의사협회의 단세포적 대응은 더 문제다. 집권당이든 의사단체든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감정싸움은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의료법 개정에 맞서서 의료계가 ‘총파업’ 카드까지 꺼내 들자 여권에선 ‘집단 이기주의’라며 맹비난을 쏟아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성공적인 백신 접종을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 며칠 전 의사협회가 국회의 의료법 개정 논의에 반발해 총파업 가능성까지 표명하면서 많은 국민들께서 우려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여당 의원들이 차례로 나서서 다연장포를 쏘아대고 있는 가운데 벌어진 김남국 민주당 의원과 최대집 의협회장과의 설전은 거의 막장 수준이다. 김 의원은 페이스북에 최 회장을 국민의힘과 한통속으로 몰면서 “의사가 백신 접종으로 협박하면 그게 깡패지 의사냐”고 반문했다. 최 회장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페이스북에 “국회의원이 입법권을 가지고 보복성 면허강탈법을 만들면 그것이 조폭, 날강도지 국회의원인가”라고 되받아쳤다.지난해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문제로 극심한 갈등을 겪었던 양측이 이번에 의사면허 취소법을 두고 또다시 묵은 앙금을 표출하는 양상이다. 금고 이상의 형에 대해 면허를 취소하고, 5년 동안 재교부 금지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원칙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의협의 이의제기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걸핏하면 ‘파업’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리는 의협의 습관적 강경 대응은 노련한 여당 정치권의 먹잇감이 될 따름이다. 의료인들을 ‘선민의식의 노예’로 몰아 때리는 정치고수들의 선동술을 아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지 번번이 참패의 자충수를 거듭하는 의협의 전략 미스 행태가 참으로 딱하다. 다수 국민이 공감할 새로운 투쟁방식, 소통 수단을 창출해낼 것을 권한다.

2021-02-23

연탄보릿고개 넘어가기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 삶이란 / 나 아닌 그 누구에게 /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많은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시 ‘너에게 묻는다’)라는 구절로 유명한 ‘연탄시인’ 안도현은 또 다른 시 ‘연탄 한 장’에서 특정한 사람을 지칭함이 없이 사람의 삶 자체를 누구에겐가 연탄 한 장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사람은 나남 없이 그 어떤 이에게는 따스한 존재이고 존재이어야만 한다.그런데, 코로나는 사람 사이의 거리를 강제로 벌려 놓았고, 온기를 나누기 어렵게 만들었다. 우리는 계절 감각조차 심드렁하게 두 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다. 머잖아 코로나 이후 두 번째 봄이 다시 찾아 올 것이고 꽃샘추위도 한바탕 위세를 부릴 것이다. 점쟁이는 아니지만 웬만큼 나이가 들다 보니 어느 시기가 되면 또 어떤 고만고만한 소식이 있겠다고 얼추 짐작하게 된다. 꽃샘추위도 지나고 봄이 무르익는 5월쯤이면 슬금슬금 ‘보릿고개’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그러나 다들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하게 된 지금, 꽃샘추위는 여상히 찾아오는데도 보릿고개, 춘궁기는 우리 머릿속에서 점차 뒷방늙은이처럼 물러나 앉는 듯하다.11월 말이나 12월 초에 김장을 담그고, 광에 연탄 2~3백 장을 들여 놓으면 그 해 겨울나기 채비는 다 끝났다고 했다. 겨울나기가 지쳐갈 무렵인 2월 말쯤 되어 김장 김치가 슬슬 시어질 때가 되면 쌓아 놓은 연탄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형편 넉넉한 집에서는 참기름 들기름에 봄나물 무치고 생김치 버무려 먹고, 꽉 채워 더 이상 들일 수 없었던 연탄을 겨우내 비워냈던 광안에 다시 채워놓으면 별 문제 없이 이 계절을 느끼고 즐기며 지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여유 있는 집이 또 얼마나 되었을까, 다들 어렵게 살았으니 그냥저냥 아쉬운 대로 자족하며 넘어갈 수밖에.이런 이야기들이 모두 지난 날의 ‘이바구’, 추억 속의 광경이 됐는가 했는데 보릿고개, 춘궁기라는 단어를 나는 서울 변두리 동네 언덕길에서 다시 듣는다. 연탄이라는 모자를 쓴 ‘연탄보릿고개, 연탄춘궁기’라는 단어로 말이다. 이 겨울의 언저리에서 힘들어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지난해 12월 현재의 조사에 따르면 연탄을 난방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가구가 15만여 호 정도 된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전체 세대 수 약 2천260여만 가구(2020년 4월, 행정안전부의 통계 자료)에 비하면 0.7%도 안 되는 숫자이지만, 사람 수가 아닌 세대 수로만 본다면 구미시보다는 2만여 호 적고 경주시보다는 3만여 호 많은, 무시 못할 수의 집들이 아직도 연탄에 의지하여 겨울을 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연탄을 때며 산다는 건 연탄가스 마신 것처럼 삶이 위태롭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삶 팍팍한 어르신들이 연탄보릿고개를 잘 넘어가시도록 나는 이번 주말에 연탄으로 검은 화장을 하러 갈 예정이다. 연탄 지고 언덕을 오르내리지 않더라도 함께 따스한 연탄 시선으로 주변을 돌아봄이 어떨지.

2021-02-23

‘포항의 딸’ 전유진

매주 목요일 TV조선에서 방영되는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 2’를 보기위해 자정 넘어서까지 TV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국민들이 많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시청자 투표 연속 1위를 기록하며 대중적 인기를 모아가는 포항 동해중학교 2학년 전유진의 감성 넘치는 노래를 듣는 것은 큰 행복이었다. 그러다가 전유진이 준결승에서 탈락한 이후에는 우리 가족 모두 이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 석연치 않은 전유진의 탈락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혹시 이 정부 들어 확산되고 있는 지역주의가 ‘전유진 배제’의 원인이 아닌가 싶어 심사위원들의 프로필까지 분석해 보다가 와이프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다.포항시가 최근 전유진을 홍보대사로 위촉한 것은 허탈감에 빠져있는 전유진 팬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다.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세계적인 가수로 무럭무럭 클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전유진과 가족은 “탈락은 아쉽지만 어린 나이에 소중한 경험을 했고 이번 오디션을 통해 얻은 팬들의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훌륭한 트롯 가수가 되겠다”고 말했다.현재 포항시는 다양한 사회·정치적인 요인들로 인해 ‘한국 근대화의 산실’이라는 자존심에 많은 상처를 입고 있다. 포항시민들이 앞으로 ‘전유진 대사’로 인해 과거의 활력적인 에너지를 찾길 기대한다.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3월 영남대생 이찬원이 TV조선 미스터트롯 결승발표 생방송에서 “대구·경북에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데 힘내시고 희망을 되찾으시길 바란다”며 짧게 인사말을 한 것이 대구·경북 지역민들에게 큰 위로가 된 적이 있었다. /심충택 (논설위원)

2021-02-23

반복되는 봄철 산불, 선제 대응책 있어야

지난 주말 전국 5곳에서 산불이 동시다발로 발생했다. 경북 안동과 예천 그리고 충북 영동, 충남 논산, 경남 하동 등지 야산에서 발생한 이날 산불로 모두 300ha의 산림이 황폐화됐다.21일 오후 안동시 임동면 망천리 야산에서 시작한 산불은 중평리까지 번져 다음날 낮 12시 20분께 불길이 잡혔다. 또 같은 날 예천군 감천면 증거리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은 영주시 장수면 갈산리 일대까지 옮겨가 18시간이 지난 뒤에야 겨우 큰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소방헬기 70여대가 동원되고 인력 3천여명이 투입됐다. 인명 피해는 없지만, 일부 주민이 대피하는 소동도 있었다. 경북도는 이날 두 곳에서 발생한 산불로 255ha(축구장 357개 면적)의 산림이 잿더미로 변했다고 밝혔다.해마다 3월이면 찾아오는 산불이 올해는 한 달이 빠른 2월부터 시작돼 산림 및 소방관계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올 2월에는 지난 18일과 20일에도 강원도 양양군과 정선군에서도 산불이 발생했다. 봄철이 되면 건조한 날씨와 바람으로 대형산불 발생의 위험이 커진다. 대기의 건조도를 표시하는 실효습도가 30% 이하면 자연발생적으로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하니 너나없이 화재에 대한 주의가 필요한 때다.소방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불 가운데 65.7%가 봄철에 발생했다. 올해는 유독 건조한 날씨가 연일 이어지고 있어 걱정이 많이 된다. 건조한 날씨 속에 화재가 발생하면 바싹 마른 나무가 강풍에 빠르게 타들어가기 때문에 진화도 쉽지가 않다. 산불 발생의 원인은 대부분 인재다. 입산객의 실화나 담뱃불, 쓰레기 소각, 논밭두렁 태우다 발생하는 것 등이다. 날씨가 풀리면 이제 곧 등산 시즌을 맞는다. 등산객이나 주민 등 각자가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올해는 본격적인 봄철이 오기 전부터 전국적으로 100여건의 산불이 발생했다고 하니 더욱 긴장감을 갖고 산불 예방에 나서야겠다. 특히 산불은 발생후 진화가 쉽지 않아 선제적 대응이 더 효과적이다. 초대형 소방헬기 도입 등 첨단 장비도입은 물론이요 사전예방을 위한 재난방지 시스템 개선책도 모색해야 한다. 해마다 수많은 산림이 산불로 황폐화되는 반복적 재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2021-02-23

라떼는?!

김규종 경북대 교수한국인은 언어유희에 능하다. 머리가 좋기도 하지만, 한국어에 동음이의어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수의 언어유희가 동음이의어에 기초한 말장난에서 출발하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예컨대 내 작은 아이 이름이 ‘우연’이다. 사람들이 “우연이 어떻게 지내요?” 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우연(佑鍊)이요, 우연(偶然)히 잘 있어요!” 우연이가 두 번 겹치면서 듣는 사람의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런 본보기는 끝이 없다.요즘에는 외국어까지 언어유희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세계화의 물결이 우리 언어생활까지 넘보고 있는 셈이다. 그 가운데 으뜸은 ‘라떼는’이 아닐까?! ‘카페라테’에서 추출된 용어일 텐데, 하루에도 몇 번씩 ‘라떼는 말이야’ 하는 말을 듣게 된다. 대개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갑질의 하나로 쓰이고 있다. 나이 든 축이 예전 경험담을 일반화하면서 젊은 친구들을 훈계할 때 나오는 말이 ‘나 때는 말이야~’ 하는 어구다.나는 ‘라떼는’에 유감이 많은 사람이다. 염량세태가 변했다 해도 인간의 삶은 근본적으로 대물림에 기초한다. 아버지 세대에서 아들 세대로, 아들 세대에서 다시 손자 세대로 무수한 대물림이 21세기 21년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오죽하면 구약의 ‘전도서’ 1장에는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구절이 나오겠는가?! 발명이 아니라, 오직 발견밖에 없다는 확신은 창조주를 가리키지만, 나는 대물림으로 수용한다.대물림의 정점에 자리하는 것이 교육이다. 교육은 새로움을 추구하지만, 출발점은 언제나 지금과 여기다. 지금과 여기는 과거의 시공간과 경험 그리고 인과율과 결합한다. 그래서다! 2천500년 전에 공자가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를 설파한 까닭은 이유가 있다.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 선생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교육자의 첫 번째 조건을 옛것을 익히는 것에 둔 공자. 따라서 새것은 옛것을 바탕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요즘 젊은이들은 나이 먹은 사람들의 경험이나 방법론을 잔소리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거야 옛날얘기고, 모든 것이 나날이 바뀌는데, 너무 낡고 고리타분한 것이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그와 같은 생각의 바탕에는 옛것은 모두 케케묵은 것이고 시대착오적이기에 서둘러 내버려야 한다는 강박증이 자리한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은 터무니없이 어리석은 것이라는 자명한 사실이 드러난다. 20대 청년을 존립하게 하는 것은 ‘지나간’ 20년 남짓한 세월의 삶과 경험에 근거한 과거에 있다. 우리 모두의 지금과 여기는 하나의 예외도 없이 ‘지나간 것’에 터를 두고 있다. 과거의 유용한 누적을 기억과 경험 속에 축적한 사람을 우리는 현인이나 원로라고 부른다. 모든 늙은이가 현명하거나 원로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들이 경험한 시공간과 인과율의 깊이와 너비 그리고 목표지점이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누군가 ‘라떼는’ 하고 말하면, 잠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싶다. 누구나 ‘조르바’의 경험을 할 수는 없지만, 그의 인생에서 배울 것은 있기 때문이다.

2021-02-23

졸업식의 명연설을 듣고 싶다

박문하전 포항시의회 의장얼마전 경남 김해의 화훼농가에서 각종 축하 화환용 꽃으로 사용되는 거베라 1만 송이를 불태우는 일이 있었다. 땀흘려 정성스럽게 키운 꽃들을 불태우면서 한결같이 ‘코로나19는 언제 끝나느냐’고 한숨지으며 여러 행사와 축제, 특히 졸업식이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졸업식이 없어진 것에 대한 화훼 농민들의 아쉬움도 적지는 않겠지만 더불어 졸업식장의 명연설을 들을 수 없는 많은 소시민들의 아쉬움 역시 없지는 않을 듯하다. 무엇보다 사회 초년생이 되어 새 출발하는 졸업생들에게 들려주는 축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몇 년 전 미국의 시사잡지 ‘타임’은 전 인류를 감동시킨 졸업식 명연설 ‘베스트 10’을 선정한 바 있다.여기에는 우리의 심금을 울렸던 불멸의 축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대표적인 하나가 2005년 6월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애플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가 행한 명연설이다.입양과 대학중퇴, 실패와 배고픔에 대한 자신의 삶을 담담히 들려주며 삶을 낭비하지 말고 자신의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라는 말로 끝을 맺는 14분 동안의 명연설은 당해년도 모든 대학생들이 뽑은 최고의 축사로 남아 있다.또 다른 하나는 말더듬이 학습장애인으로 학교에서 꼴찌를 한 세계 제2차 대전의 영웅이자 영국의 위대한 정치인 윈스턴 처칠의 1941년 런던의 헤로스쿨에서 행한 축사이다.‘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절대, 절대로. 대단한 일이건 아니건 명예로움과 분별에 확신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역설하여 졸업생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흑인여성들에게 존경의 표상인 오프라 윈프리는 ‘실패했을 때 자신에게 질문하세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아닌, 이것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가’라는 말을 남겼다.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살찐 돼지보다 야윈 소크라테스가 되라’와 노벨상의 산실이자 자유로운 학풍의 상징인 교토대의 ‘공술을 먹지말라’는 명연설도 유명하다.재작년 서울대 졸업식에서 방탄소년단의 아버지로 불리는 방시혁 빅히트 대표는 ‘너무 큰 그림을 그리지 말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인상적인 축사를 한 바 있다.그러나 모든 졸업식마다 명연설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는 졸업생 앞에서 ‘명문대학에 가야하고 대기업에 취직하지 못하면 실패’라는 식의 시대착오적인 축사를 하여 빈축을 산 경우도 없지는 않다.인생의 교훈이 담긴 졸업식의 명연설은 인생의 백신과도 같아서 비단 졸업생이 아닌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깊은 의미를 지닌 말들이라 항상 감동으로 다가온다.고개 숙인 졸업생들의 어깨를 감싸주면서 작은 실패에도 좌절하기 쉬운 졸업생들에게 ‘결코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하라’는 용기를 북돋워주는 명연설을 듣고 싶다. 그 안에 양념같이 따뜻한 사랑이 곁들여 지고 열정과 희망이 포함된다면 더욱 멋진 축사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그런 졸업식의 명연설을 꼭 한번 들어보고 싶다.

2021-02-23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빈센트 반 고흐

세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미술가 빈센트 반 고흐. 그의 그림들이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감성을 자극하는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빈센트 반 고흐 그림의 어떤 요소들이 우리를 매료 시키는 것일까?첫째 시각적 촉각을 자극하는 강렬하고 두터운 색채를 들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는 빨갛고, 노랗고, 파란 강렬한 색을 즐겨 사용한다. 색을 캔버스 위에 얇고 매끄럽게 칠하는 것이 아니라 두께감과 질감이 느껴지도록 두텁게 발랐다. 이 같은 화법은 시각적 촉각을 자극할 정도로 거친 질감을 만들어 내고 색채의 강렬함을 한층 더해준다.빈센트의 그림이 감상자를 매료 시키는 두 번째 이유는 작품의 소재이다. 화가는 그리는 방법에서도 그렇지만 작품에 담길 소재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미술의 전통과 규범에 얽매이지 않았다. 신화나 성서 등 수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읽을 수 있는 회화작품들과는 달리 빈센트의 그림들은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듯 그저 바라만 보아도 충분히 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우리를 매료 시키는 세 번째 이유는 정서적 교감이다. 빈센트와 동생 테오의 애틋한 관계는 이미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빈센트 보다 4살 어린 동생 테오는 형의 유일한 후원자이자 지지자였다. 형에 대한 동생의 헌신이 없었더라면 미술사는 빈센트 반 고흐라는 화가를 만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이러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빈센트 반 고흐는 세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가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유명세가 화가의 그림을 보는데 반드시 긍정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빈센트의 그림에서 큰 감동을 느끼지만, 정작 화가로서의 미술사적 가치는 그냥 지나치기 때문이다.빈센트가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당시 파리에서는 진보적인 미술가들이 고전미술의 규범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쿠르베는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현실을 그렸고, 마네가 그린 몇몇 작품들은 프랑스 사회에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빛을 그리려고 했던 모네의 그림은 평론가들의 조롱거리였다. 이들 미술가들은 전통미술의 규범과 결별을 선언하고 본다는 행위 그 자체, 그린다는 행위 그 자체에서 미술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목적을 찾았다.서양미술사에서 가장 혼란했던 하지만 가장 흥미진진했던 시대에 미술의 세계에 뛰어든 빈센트. 그의 초기 작품에서도 저항정신이 발견된다. 1885년경에 그려진 ‘감자먹는 사람들’에서는 사실주의 화가 빈센트를 만날 수 있다. 가난에 찌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좁고 어두운 방, 고된 일과를 마치고 피곤에 찌든 모습으로 저녁 식탁에 앉아 있다.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은 후기 인상주의로 분류된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 중에는 폴 시냑과 조르주 쇠라처럼 점을 찍어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 있다. 이들은 물감을 섞어 원하는 색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작은 색점들을 서로 병치시켜 시각적으로 색이 혼합되는 효과를 만들어 낸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에서도 이러한 점묘법이 시도되었다.19세기 유럽에서는 자포니즘이라고 해서 일본풍의 그림들이 유행했다. 빈센트 또한 일본의 목판화가 보여주는 풍부한 표현력과 직접적인 전달력을 시도를 한다. 그의 작품들 중에서는 일본과 직접 관련된 소재가 나타나고, 인물이나 대상의 윤곽선이 유난히 또렷하게 그려진 것들이 있는데 자포니즘의 영향 때문이다.빈센트가 남긴 대표작들은 정제되고 응축된 예술적 고뇌의 결정체이다. 그가 사용하고 있는 색채가 감상자들의 심상을 자극하는 것은 수많은 시행착오의 결과이다. 그가 그어 놓은 선들이 숨을 쉬고 있는 듯 생생함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고통스러운 고민의 결과이다. 이러한 것들을 함께 볼 수 있다면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이 얼마나 더 감동적이겠는가?/미술사학자

2021-02-22

신라, 적석목곽묘를 쌓다

경주에 한번 쯤 와 본 사람이라면 시내 곳곳에 있는 집채만 한 무덤들을 보았을 것이다.이것들은 신라시대의 무덤들로 기원후 5~6세기대인 지금으로부터 약 1600년 전쯤 만들어진 ‘적석목곽묘(積石木槨墓)’라는 무덤이다. 돌을 쌓아 만든 나무 덧널무덤이라는 뜻으로 ‘돌무지 덧널무덤’이라고도 불린다.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가야에서는 볼 수 없는 신라 특유의 무덤 양식이다.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를 중심으로 가장 많이 축조됐고, 경주 주변지역에서도 일부 확인되고 있다.현재 경주시내에는 대략 50기 정도의 무덤이 있다. 하지만 원래 수 천기 이상의 무덤이 있었으며, 당시의 왕인 마립간(麻立干)과 친족, 귀족들이 묻힌 공간이었기에 오늘날로 보면 현충원과 같은 대규모 공동묘지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신라시대 사람들이 살던 지표면이 현재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표면보다 대략 1.5~2m 가량 낮기 때문에 대부분의 무덤은 봉분이 거의 파괴되었어도 부장품과 무덤 주인공이 묻힌 부분은 지하에 온전히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대릉원 주변 일대의 주택이나 도로 밑에서는 지금도 문화재조사를 통해 많은 무덤들이 확인되고 있다.적석목곽묘는 무덤 주인공과 부장품을 넣는 목곽(木槨·나무 덧널)이 있고 그 주변으로 적석(積石·돌무지)을 한 다음, 다시 그 위를 흙으로 덮어 봉분을 만든 구조이다. 봉분의 가장자리에는 돌담처럼 쌓아 만든 호석(護石·둘레돌)도 설치돼 있다. 이러한 적석목곽묘는 봉분의 규모에 따라 지름이 10m정도의 소형에서부터 약80m에 이르는 초대형 무덤도 있다.특히 봉황대(鳳凰臺)라는 무덤은 현재의 규모가 지름 약80m, 높이 약20m정도로 한국에서 단일 고분으로는 가장 크다.적석목곽묘는 규모에 따라 내부구조가 조금씩 다르지만 축조방법과 순서는 일정하다. 먼저, 묘광(墓壙·무덤 구덩이)을 파고 그 안을 강돌과 자갈로 채운다. 그 위에 목곽(木槨·시신과 부장품을 안치하는 공간)을 설치하는데, 무덤의 규모가 커지면 목곽을 이중(二重)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런 다음 목곽 주변으로 사람 머리 크기의 강돌로 쌓아 적석부(積石部)를 만든다. 이때 사용된 돌은 평균적으로 7~8kg 정도이며, 사용된 돌의 개수는 무덤 크기에 따라 수천 개에서 수십만 개에 이른다.봉분 지름이 30m 이상인 중대형급 무덤들은 적석을 쌓기 전에 목조가구시설(木造架構施設)을 설치한다. 바닥에 일정한 간격으로 통나무기둥을 세우고 가로로도 통나무를 연결해 만든 구조물이다. 마치 어린이 놀이기구인 정글짐과 같은 형태인데, 적석이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뼈대시설이다. 이렇게 적석과 목곽을 설치하고 나면 목곽 안에 주인공과 함께 부장유물을 넣는다. 유물은 토기(土器), 마구(馬具·말을 부리거나 장식하기 위한 물건), 무기(武器), 농공구(農工具), 장신구(裝身具) 등 다양하게 들어간다.처음에는 무덤 주인공이 들어가는 주곽(主槨) 외에 주인공의 발쪽에도 별도 부곽(副槨)을 만들어 유물을 따로 부장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부곽은 사라지고 주곽 내에만 유물을 부장하게 된다.주인공은 주곽 한 가운데에 동서방향으로 안치하는데, 머리 방향을 동쪽으로 두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이다. 주인공을 안치할 때는 목관(木棺)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관 없이 그대로 안치한 경우도 있다.이렇게 매장이 완전히 완료되면 목곽 뚜껑을 닫고 그 위로 다시 얇게 강돌을 깐다. 그런 다음 점토(粘土)를 덮어 목곽 상부를 완전히 밀봉한다. 마지막으로는 목곽과 적석 위로 봉긋한 봉토를 쌓아 올려 무덤 축조를 완료한다. 이때, 봉분의 지름과 높이의 비율은 4:1정도가 되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적석목곽묘를 위에서보면 원형처럼 보이지만, 정확히는 모두 타원형으로 만들어진 무덤이다. 타원형은 원형과 달리 초점(焦點)이라고 하는 2개의 점을 이용하여 그려진다. 적석목곽묘에서는 무덤 구덩이(墓壙)의 동서방향(긴 방향) 양 끝점이나 적석부의 양 끝점을 초점으로 하여 타원형인 봉분을 설계했다.이렇게 정밀하게 계산된 방식으로 무덤을 만들다 보니 목곽과 봉분의 긴 축 방향이 완전히 일치하게 되고, 이를 이용하면 봉분의 호석만 있더라도 목곽의 크기와 위치를 추정할 수도 있다.심현철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이러한 봉분 설계방식 역시 신라 적석목곽묘 특유의 것이다. 기하학이 발달되지 않았던 고대에 신라인들이 타원이나 이와 관련된 수학 이론을 완벽히 습득하고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다만, 동아시아에서도 수학의 역사가 가장 오래된 중국에서 조차 타원과 같은 기하학이 알려진 시점은 중세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전래된 이후이기 때문에 신라고분에 반영된 이 같은 내용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고고학 연구자들에 의해 신라 고유 무덤인 적석목곽묘의 구조와 축조방법, 축조기술 등에 대한 많은 내용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무덤에 사용된 수많은 돌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운반해왔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돼 어떤 방식으로 쌓고 유지했는지 다 알아내지 못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 미래의 고고학자가 나타나 적석목곽묘가 가지고 있는 많은 미스터리를 풀어줬으면 한다.

2021-02-22

지식과 지혜 사이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물이 흘러 강이 되고 사람이 다녀 길이 된다.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막히면 돌아가고 패인 곳을 채운 뒤에 흘러가는 물은, 기꺼이 낮은 곳이나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물다가 가득 차면 넘쳐 흐른다. 작은 하천의 물이나 큰 강물은 모두 바다로 모이면서(百川歸海) 만물을 이롭게 한다. 가리지도 다투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물(水)이 흘러(去) 법(法)이 되었듯이 물은 순리이고 이치이며 공평이고 포용이다.길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걷고 다니며 바퀴가 굴러서 만들어진 길은 고래(古來)로 문명의 발상을 일으켰고 문화의 요람을 닦았다. 사람과 사람을 잇고 마을과 도시를 연결시켜 발전과 변화를 거듭해온 길은 현재를 살아가는 양상이자 미래와 희망을 제시하는 안내이고 지침이다. 어떤 길을 걸음으로써 비로소 일이 시작되고 어디론가 떠날 수 있으며 새로운 발돋음을 할 수 있기에 길은 소통이고 시도이고 역사이기도 하다.이처럼 물과 길은 자연현상과 인간생활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조건이자 요소이다. 예로부터 치산치수(治山治水)는 나라 통치의 근본으로 작용했듯이, 물길을 트고 도로를 내는 것은 존속과 번영의 관건이었다. 그래서 요즘도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필요와 여건에 따라 산을 만나면 길을 열고(逢山開道)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遇水架橋) 것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난제를 타개하며 진보와 변혁의 방향으로 필요충분조건을 갖춰나가는 것이라고나 할까? 이렇듯이 물과 길은 함부로 막을 수도 저버릴 수도 없는 자연과 인간의 동반이며 도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물길이 틀어지고 다니던 길이 막혀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하루 아침에 세상이 바뀐 것도 아닌데 설사 그러한 일들이 좀체 일어나기는 어렵겠지만, 실제 그러한 조짐이 보이는 것 같아서 의아스럽고 안타깝기만 하다. 어느 지역 모 기업체에서 소위 작업장 내의 이동통로인 도로에서 사고가 빈발하다 보니 자전거를 포함한 이륜차의 통행을 전면 금지한다는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그것도 일방적인 통보 내지는 제지(?)였다가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려가는 반발이나 여론의 추이에 따라 유예나 보류를 하고 있다 하니 웃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모름지기 불경일사 부장일지(不經一事 不長一智·한 가지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한 가지의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라 했다. 과연 길을 막고 출입을 통제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얼마든지 적절한 대책을 강구하고 매듭을 풀 수 있는 일들을 긁어 부스럼 만들 듯이 비화시키고 있다. 50년 이상 한결같이 회사가 터 준 길을 드나들며 생계를 유지해가는 일부 근로자들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천 가지의 지식은 한 가지의 지혜 보다 못하다고 한다. 지식은 학습을 통해 얻지만 지혜는 경험으로 자란다. 누구나 지식을 습득하기는 쉬워도 지혜를 터득하기는 만만치 않다. 능률과 효율이 중시되는 사회에 과연 지식과 지혜 사이의 효능적인 지능과 현명한 사고(思考)를 기대할 수는 없는 걸까?

2021-02-22

코로나19와 우리의 삶

권윤구포항 중앙고 교사현재 우리나라 코로나19 확진 환자는 8만7천324명 일일 확진자수는 332명, 사망자 1천562명(2월 21일 기준)으로 상당히 많은 수이다. 이렇게 코로나 환자수가 줄어들지 않고 급속도로 늘어나는 이유는 코로나 자체의 감염 위험성도 크지만 시민들의 의식과 참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지게 되면서 우리의 삶은 혼돈으로 바뀌었다. 마스크 착용은 외출을 위한 필수품이 되었고 공공장소·버스·지하철 등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은 큰 비난을 받는다. 마스크착용은 행정명령으로 미착용시 벌금을 부과는 강력한 행정명령 통제가 실시되었다. 여행하고 식사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금지된 일상이다.코로나19는 우리들의 회식 문화인 모임 자제를 5명 이상은 만날 수 없는 새로운 문화로 바꾸어 개인위생과 생활 속 거리두기 실천으로 가족과 이웃, 세대간 소통을 무너뜨렸다. 또한 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날, 가족이 함께 만나지 않는 것이 효도라는 희귀한 문화가 만들어지고 여기에 필자도 이번 설에 부모님을 찾아보지 못한 한 사람이다. 우리 남매는 설 이후에 일주일 간격을 두고 고향 부모님을 만나기로 하는 설 풍경을 만들었다. 필자는 효자인가 불효자인가?학생들은 코로나19로 수업권이 박탈 되어 학교에 등교를 할 수 없고 학년 전체가 등교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한 학년이 등교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줌, 동영상, EBS 수업으로 바뀌고 학부모사이에서는 돌밥돌밥(돌아서면 밥)이 유행을 했을 정도이다. 또한 특히 개학 후 학교 단위로 특별모니터링 기간을 운영하고, 학생들의 방과 후 생활지도를 통해 다중이용시설 및 모임 활동을 집중 점검하는 하교 후 안전강화에 힘을 기울였다.코로나19 여파로 영세 상인들은 소득이 줄고 부채가 늘었다. 전 국민에게 지급한 재난지원금과 소상공업자에게 지원하는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지역 식당과 카페 그리고 자영업 등등 줄줄이 도산 되는 형편이다. 전국 각 도시의 비활성화가 되는 죽음의 도시가 점점 늘어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상인들은 누가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가? 하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다. 개인의 건강에 대한 문제가 최고의 관심으로 부각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문화 활동 참여는 줄었지만 개인들의 규칙적인 운동은 늘어났다. 실내 공간 감염사태가 잇따르며 헬스장, 탁구장 등 실내시설 보다는 공원과 숲 등을 찾아 운동하는 시간이 늘었다.코로나19로 여러 가지로 위기의 힘든 시기이다. 이럴 때일수록 마스크착용과 개인방역,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더 노력을 해 주어야만 지금의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와 힘을 가질 수 있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시민들의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고 대한민국 국민이 2002년 월드컵 신화처럼 대동단결하면 코로나19를 잘 극복 할 수 있다고 본다.코로나19가 극복되고 치매·아동학대·임신·출산·육아·교육이 걱정 없이 함께 누리는 행복한 생활을 보장하는 평범한 일상을 찾아가는 삶을 기대 해본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2021-02-22

누가 해이한가?

2001년 미국 HBO에서 방영된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는 세계 2차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수행한 연합군 ‘이지(Easy)’ 중대의 처절한 전투기를 생생하게 그려냈다.실제 작전에 참여한 생존 노병들의 인터뷰와 각종 사료(史料)들을 바탕으로 1940년대 전쟁을 거의 논픽션처럼 담아낸 이 드라마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쟁 서사물 가운데 불후의 명작으로 회자된다.이지 중대를 이끄는 중대장 소블 대위는 무능하기 짝이 없다. 보병장교임에도 군사지도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모의훈련 때마다 어이없는 작전 지시로 부대원들을 위기에 몰아넣는다. 실전에서 도무지 믿고 따를 수 없을 만큼 지휘 능력이 떨어짐에도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개선의 노력을 하기는커녕 부하들 탓만 한다. 부당한 지시를 내려 부대원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외출을 금지하고, 주말에 구보를 시키고, 자신보다 훨씬 유능한 부하 장교 윈터스 중위에게 온갖 허드렛일을 맡긴다. 가혹행위라 할 만한 ‘갑질’, 원칙도 없이 기분 내키는 대로 내던지는 황당한 지시, 게다가 결과가 잘못되면 부하 탓까지 하는 최악의 리더인 것이다.2014년부터 2017년까지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은 슈틸리케 감독이 꼭 소블 대위 같았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이란과의 경기에서 졸전 끝에 0대 1로 패한 후 자신의 전술적 패착을 돌아보는 대신 선수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경기에서 질 때마다 선수 탓부터 하던 슈틸리케는 결국 경질됐고, 이후 부임한 중국프로리그 팀에서도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한 채 지금은 현장을 떠나 있다. 반면 2002 월드컵의 영웅 히딩크는 단 한 번도 선수 탓을 한 적이 없다. 평가전에서 상대에게 대패하며 ‘오대영’이라는 굴욕적인 별명이 붙었을 때도, 체력 훈련만 시키자 전문가들이 “기술 훈련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비난했을 때도 그는 묵묵히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과 팀 운영 원칙을 가지고 선수들을 지도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질 테니 믿고 따라올 것을 주문했다. 그 결과 국가대표팀은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를 썼다.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히딩크는 세계무대에서 유능한 감독으로 각광받고 있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며칠 전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다시 600명대로 올라섰다. 이에 정세균 국무총리는 “방역 의식이 해이해졌다”며 국민들을 탓했다. 뉴스를 보다가 눈을 의심했다. 저게 이 나라 행정부의 2인자 입에서 나올 소리인가 싶었다. “긴장이나 규율 따위가 풀려 마음이 느슨하다”는 뜻의 ‘해이’라는 말을 참 오랜만에 들었다. ‘기강 해이’ 같은 고압적인 표현은 군대에서나 접하던 것이다. 단순히 부적절한 어휘를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코로나 확산의 책임을 국민들에게 돌리는 뻔뻔함에 화가 났다.지난 1년 여 동안 우리 국민들만큼 방역 수칙을 잘 지킨 사례가 세계 어느 나라에 또 있던가? 통계청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시민들의 이동량은 오히려 줄었다. 귀뚜라미보일러 아산공장과 종교시설의 집단감염으로 인해 확진자 수가 늘어난 것이지 국민들은 명절에도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져 마스크 쓰고 손 씻고 가게 문을 내리는 등 방역수칙을 철저히 따랐다.국민들을 탓하기 전에 정부는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원칙도 없이 고무줄처럼 줄였다 늘이는 거리두기 단계 조정으로 국민들에게 혼란과 불편을 준 것을 사과해야 한다. 전체주의 국가가 아닌 이상 사회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일부 유흥업소의 돌출적 감염 사례를 침소봉대해선 그간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며 방역수칙을 지켜온 대다수 국민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국민들과 의료진의 희생을 빼면 ‘K-방역’은 한낱 우스운 흰소리, 텅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백신 접종이 본격화되면서 전 세계 코로나 일일 확진자수가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OECD 37개 국가 중 백신 확보도 가장 늦고 접종 시작도 꼴찌다. 소블과 슈틸리케가 떠오르는 이유다. 해이한 것은 국민이 아니라 정부다.

2021-02-22

클럽하우스의 두 가지 얼굴

최근 많은 이들의 관심사인 클럽하우스를 사용해 보았다. 클럽하우스는 음성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오직 실시간 음성으로만 소통할 수 있다. 클럽하우스 내에서는 어떤 문자도, 사진도, 동영상도 공유할 수 없다. 오로지 실명성을 기반으로 자신의 목소리로만 대화를 주고받는다.클럽하우스는 앱이 개발된 미국을 시작으로 중국, 일본, 브라질, 터키 등 전 세계를 아우르며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대화방에서 가상화폐 비트코인에 대해 발언을 하며 화제로 떠올랐다. 여기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설립자, 오프라 윈프리 등 해외 유명인이 앱을 사용하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국내에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토스 창업자 이승건 대표,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유명인사와 각 분야의 전문가, 정·재계 인사들이 가입했다. 지난해 연말에는 60만 명 수준이었지만 올해 1월에는 200만을 넘겼다.많은 이들이 클럽하우스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클럽하우스는 유명 연예인부터 정치인, 인플루언서, 창업가, 전문가 등 영향력을 가진 인물과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방의 성격 또한 다양하다. 백색소음 방, 마피아 게임 방, 성대모사를 뽐내는 성대모사 방,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는 노래방도 있다. 원하는 주제를 다양한 깊이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클럽하우스는 코로나19로 인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끊임없는 소통하려는 욕구가 발현된 장소라고 볼 수 있다.클럽하우스를 가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준비물이 필요하다. 하나는 클럽하우스 가입자로부터 받는 초대장과 또 다른 하나는 아이폰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지만 클럽하우스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클럽하우스 가입자로부터 초대장을 받아야만 입장 할 수 있다. 클럽하우스는 아직 베타버전이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아이폰 유저만 사용 가능하다.클럽하우스에 초대를 받아 가입하게 되면 관심사를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진다. 관심 있는 분야를 고르고 나면 본격적으로 클럽하우스에 접속하게 된다. 여느 SNS와 다를 것 없이 관심사와 팔로우에 기반을 둔 대화방 목록이 뜬다. 호기심이 이는 방에 들어가면 동그란 모양의 프로필을 가진 이들이 상하로 나누어져 위치해 있다. 한순간 휴대폰 안에서 여러 명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쏟아져 나온다.클럽하우스의 방을 살펴보자면 방을 만든 사람이자 대화의 흐름을 이끄는 모더레이터, 방장이 선택하여 말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스피커, 말을 할 수 없고 듣는 권한만 가진 리스너로 나누어져 있다. 모더레이터와 스피커는 최상단에 위치해 있고, 말을 듣는 리스너는 그 아래 목록에 자리한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클럽하우스의 방은 빠르게 생기고 사라진다. 전체적인 방 분위기는 활발하고 부드러운 생기가 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피력한다. 목소리를 직접 듣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고 호감도도 빠르게 생긴다. 강연장이나 모임에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질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있고, 불필요한 화장이나 옷차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거리두기로 인한 이동 제한이 있다면 온라인에서는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로부터 안전하다.그렇지만 서둘러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클럽하우스를 쓰지 않으려 한다. 무엇보다 나의 성격과는 맞지 않는다. 앱을 처음 사용하려는 이들에게 진입장벽이 있다는 것에도 거부감이 느껴진다. 마치 초대장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유행과 무리에 뒤처져 소외되거나 도태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클럽하우스에 소속되어 가입된 것만으로도 어떤 권력을 얻은 것처럼 기세등등해 보이는 아이러니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초대장이나 아이폰이 있더라도 청각장애인은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과 사용자의 연락처와 정보를 수집하여 어느 곳에 활용되는지 불투명하다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게다가 클럽하우스는 방 내에 발언권이 있는 사람만 말할 수 있다. 방을 관리하고 이끄는 모더레이터가 말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권력화되어 있고 위계질서 또한 잡혀 있다. 실제 모더레이터가 되는 사람은 현실에서 힘을 가진 사람이나 많이 알려진 사람이 계속 연장해서 권력을 쥐는 구조다.그럼에도 클럽하우스는 우리에게 어떤 경험과 문화를 가져다줄 것인지 기대되는 것은 분명하다. 전문가들은 아직 베타 버전인 클럽하우스를 두고 비즈니스 모델 설정에 따라 광고물이나 입장료, 구독제 등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일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많은 이들을 유치하고 지속하기 위해 어떤 진화를 택할지, 클럽하우스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2021-02-22

북한의 전술핵, 그 대책은 무엇인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8차 당대회에서 36차례나 핵을 언급하면서 “핵기술을 고도화하고 전술핵무기를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핵전략의 중대한 변화이다. 전쟁에서 사용하기 어려운 ‘절대무기’인 ‘전략핵’에 비해서 ‘전술핵’은 실제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안보전략이 근본적으로 수정되어야 하는 이유이다.전술핵의 표적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다. 북한은 당대회 보고에서 “15,000km 사정권 안의 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핵 선제 및 보복 타격 능력의 고도화 목표가 제시되었다”고 함으로써 핵 선제공격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북한의 전술핵이 초대형 방사포나 KN23 미사일에 탑재된다면 한국안보에 치명적이다. 게다가 한반도 유사시 수도권에 대한 전술핵의 선제공격 가능성은 한미연합군의 대응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북한이 전술핵을 개발하면 한국과 일본을 인질로 해서 미국에 INF조약 체결을 제의하고 핵군축협상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주된 관심은 북한의 전략핵과 장거리미사일이지만, 한국은 단거리미사일이나 방사포에 전술핵이 탑재되는 상황이 더욱 두렵다. 이러한 사실은 북한이 한미동맹에 내재하는 이해관계의 차이를 핵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북한은 비핵화가 아니라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것이다.북한의 전술핵 개발은 한국의 미국에 대한 안보의존성을 더욱 심화시키게 될 것이다. 전술핵은 실제 전쟁에서 사용될 수 있고, 북한은 한국에 대해 선제공격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핵무기는 전쟁의 양상을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이다. 우리가 아무리 최첨단 재래식 무기를 증강하더라도 북한의 새로운 핵능력에 맞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그렇다면 우리의 대책은 무엇인가? 그것은 강온 양면전략, 즉 한편으로는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해 북미협상을 지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전술핵 공격에 대비하여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것이다. 평화적 협상과 무력적 억제의 병행이다. 평화적으로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대화·협상·제재가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그동안 북미대화가 전혀 진전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제는 협상보다 제재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는 한 평화적 접근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결국 ‘핵에는 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같은 민족에게는 핵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6·25 남침을 잊어버린 치매자의 어리석음이다. 평화를 말한다고 평화가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핵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중국 칭화대의 자오퉁(趙通)은 “북한이 전략핵으로 미국의 간섭을 막고, 전술핵으로 한국을 압박하여 한반도 통일을 시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핵이 없는 한국이 북한의 핵공격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강력한 한미동맹에 의해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과 확장억제력(extended deterrence)’밖에 없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2021-02-22

비트코인 광풍

비트코인 가격이 최고 5만8천달러까지 올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비트코인은 이미 지난 해 4배 폭등했으며, 올해 들어 상승폭이 100%가량 올랐다.비트코인(bitcoin)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온라인 암호화폐다. 2008년 10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을 쓰는 프로그래머가 개발, 2009년 1월 프로그램 소스를 배포했다. 비트코인은 최대 2천100만개까지만 발행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중앙은행이 없이 전 세계적 범위에서 P2P 방식으로 개인들 간에 자유롭게 송금 등의 금융거래를 할 수 있게 설계돼 있다. 거래장부는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여러 사용자들의 서버에 분산해 저장하기 때문에 해킹이 불가능하다. 비트코인 이후에 이더리움, 이더리움 클래식, 리플, 라이트코인, 에이코인, 대시, 모네로, 제트캐시, 퀀텀 등 다양한 암호화폐인 알트코인들이 생겨났고, 비트코인은 일종의 기축통화 역할을 하고 있다.비트코인은 인플레이션 헷지를 위한 자산으로 각광받고있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와 간편결제서비스 페이팔, 신용카드사 업체 마스타카드가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인정했고,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이자 최대자산관리은행인 뉴욕멜론은행이 비트코인을 구입하겠다고 발표했다.캐나다 증권당국도 비트코인 ETF를 사상최초로 승인했고, 세계최대자산관리사인 블랙록도‘투자적격’자산에 비트코인을 추가했다. 한국에서도 국내 통화로 환전할 수 있는 비트코인 거래소인 코빗(Korbit), 코인플러그(Coinplug), 코인피아(COINPIA), 야피존(Yapizon), 빗썸(Bithumb), 코인원(Coinone)이 설립돼 관심이 뜨겁다. 암호화폐를 대변하는 비트코인의 대중화가 성큼 다가오는 듯 하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