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나름으로 내세울 만한 게 몇 있었다. 첫째로 공부, 나는 그 별난 서울의 일류학교에서도 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었다. 또 나는 그림 솜씨는 서울시 규모의 대회에서 몇 번의 특선은 따낼 만했다. 내 아버지는 그 작은 읍으로 봐서는 몇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직급 높은 공무원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담임과 급우들은 이런 것들에 관심이 없었다. ‘한병태랬지? 이리 와봐.’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았으나 나는 하마터면 일어날 뻔했다. 그만큼 그의 눈빛은 이상한 힘으로 나를 이끌었다. 처음에는 엄석대의 힘에 저항했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그에게 다가갔다. 엄석대는 내가 물어봐주기를 바랐던 서울 학교의 성적, 아버지의 직업 등을 물었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시작 일부분을 조금 요약한 것이다. 1959년으로 추정되는 시기, 한병태는 5학년으로 올라가며 시골로 전학 와서 자기의 서울 성적과 집안에 대한 우월감을 뽐내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러나 엄석대를 중심으로 학급의 분위기가 힘의 논리로 운영되는 데 대해서는 불합리와 폭력이라며 끔찍해하며 저항한다. 자신의 우월함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시골 학교를 지배하고 싶은 욕망이다. 그렇기에 엄석대의 권력에 더욱 저항했을 것이다.
엄석대에게 무너지고 2인자의 자리가 확보되자 병태는 그 누구보다 엄석대에 기생하며 권력의 달콤함을 누린다. 그렇다고 1인자가 되려는 욕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2인자가 된 후에도 엄석대가 시험답안지를 바꿔치기해서 전교 1등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담임에게 알리려고 한다. 이런 한병태는 분명히 반 아이들과 구별된다. 반 아이들은 석대에게 바로 복종하거나 석대 무리에 끼기 위해 애쓰는 반면, 한병태는 자유와 합리라는 이름으로 저항했다. 권력에 한없이 무기력한 반 아이들이 소시민이라면, 자유와 합리를 추구하며 저항했던 한병태는 시민에 가깝다. 그런데 한병태의 시민 정신의 뒤에는 자신이 1인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2인자가 된 후에도 엄석대의 몰락을 꿈꾸기 때문이다.
26년이 지나 사업 실패로 실업자가 되었을 때는 가혹한 왕국에 내던져졌다고 세상을 탓하며 병태는 석대의 질서를 그리워한다. 6학년 담임이 엄석대의 비리를 캐물을 때 모른다고 회피하고 오히려 석대를 그렇게 만든 것은 아이들이라며 탓하기까지 했던 병태였다. 당시로서는 최고급 승용차였던 그라나다를 엄석대가 타고 다니자 고향 아이들은 경멸의 눈초리를 보냈을 때도 병태는 석대가 그 이상의 영웅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자기가 잘 나갈 때는 자유와 합리를 주장하면서 형편이 어려워지면 영웅을 기다리는 병태의 굴절된 의식은 엄석대 체포 후 극에 도달한다. 석대의 몰락은 영웅을 기대하던 병태에게 분명히 새로운 비관이었을 텐데도 세상에 대한 안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진짜 문제는 이 작품이 나온 1987년에서 3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여기저기에 ‘한병태들’이 있을 가능성이다. 조금이라도 자유와 합리를 추구한다면 ‘한병태들’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