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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항 이민자를 반갑게 맞이하자

사람의 국제 이동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유엔 국제이주기구(IOM·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Migration)는 ‘이민’을 ‘자발적으로 본래의 거주지를 벗어나 국경을 넘거나 한 국내에서 이주하는 모든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같은 이민이라도 분쟁, 박해와 같은 비자발적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자기 나라를 떠나 이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따로 ‘난민’이라 부르기도 한다. 3년 전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위험지역에서 벗어나 체육관으로 주거를 이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도 일종의 ‘난민’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국내 피난민’이었다고 할 수 있다.1990년 이후 지금까지 30년간 전 세계에서 자발적으로 살아왔던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국적을 바꾸며 이동한 국제 이민은 약 1.78배 늘어났다. 1990년 시점에 세계 147개국에 걸쳐 이민한 사람은 모두 1억5천199만5천30명이었지만 2019년 기준으로는 199개국으로 이민한 사람이 무려 2억7천22만4천650명까지 부풀었다. 세계에서 이민자를 가장 많이 받는 국가순위에서 우리나라는 1990년 시점에 4만3천250명의 이민을 받아들여 197개국 가운데 하위권인 137위에 그쳤다.하지만 2000년에는 83위, 최근 2019년 시점에는 45위까지 국가순위가 올라갔고 이민자도 116만3천660명으로 100만 명 시대를 맞이하였다. 국제 이민 국가순위에서 미국은 지난 30년간 한 번도 세계 1위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2019년 현재 미국 이민자는 5천66만1천150명이다. 2020년 현재 통계청이 추계한 우리나라 인구가 약 5천178만 명이니까 거의 우리나라 총인구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세계 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셈이다.국제이주기구의 이민에 대한 정의를 따른다면 우리나라 국내 지역 간 이주도 이민에 해당하는데, 과연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지역에서 어느 지역으로 이민이 일어나고 있을까.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이민자가 늘어나는 현상은 점차 가속화되는 실정이다. 주민등록 기준 서울특별시 인구는 2018년 10월 978만4천112명에서 2020년 10월까지 9만4천953명이 줄었지만, 경기도 인구는 같은 기간 중 35만5천392명이 늘어나 2020년 10월 현재 1천340만615명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 거의 절반 가까운 인구가 서울과 경기로 몰려들고 있다.모든 것이 수도권 쏠림 현상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포항시 인구도 과거 100만 명까지 늘어날 것이라던 환상은 사라지고 이제는 지방소멸이라는 단어가 시민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다른 지방들도 비슷한 처지라고 해서 안심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동안 살고 있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민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자녀의 학업을 위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얻어서, 은퇴한 이후 지금까지 고생했던 지역을 아예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은퇴 생활을 즐기기 위해서…. 수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게다가 포항에서는 ‘지진’이라는 재해를 겪었기에 아무리 ‘인재’였다고 해도 극심한 트라우마로 인해 아예 주거지 자체를 옮기겠다고 결심한 사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지난 2년간 과연 포항에는 어떠한 인구변화가 있었을까. 좀 더 상세한 분석을 위해 읍면동별 주민등록 인구변화를 살펴보았다. 포항시 총인구는 2018년 10월 51만401명에서 2020년 10월 50만3천456명으로 6천945명이 줄었다.하지만 남구와 북구로 나누어 보니 지난 2년간 남구는 8천676명이 줄어든 반면 북구는 1천731명이 늘어났다. 포항시 인구의 순 유출이 남구에서 일어났다는 이야기다.더 자세하게 살펴보니 남구의 동(洞) 지역에서는 지난 2년간 3천893명이 줄었고, 읍면(邑面) 지역에서는 4천783명이 줄었다. 인구가 늘어난 북구는 마찬가지로 동 지역에서는 4천356명이 줄었으나 읍면 지역에서는 6천87명이 늘었다. 인구가 증가한 북구의 경우 동 지역에서는 우창동과 두호동 두 곳만이 각각 563명, 1천237명이 늘어났고, 읍면 지역에서는 오직 흥해읍만 인구가 무려 7천2명이 늘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남구에서 줄고 북구에서 늘어난 최대의 원인은 초곡지구 등 흥해읍을 중심으로 조성된 신규 아파트단지 때문으로 남구의 읍면지역과 동 지역에서 시민들이 활발하게 지역 내 이주를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인구가 줄어든 남구에서 가장 많은 인구감소를 보인 곳은 연일읍으로 1천958명이 줄었고, 동 지역에서는 상대동으로 1천 615명이 줄었다. 이는 단순히 총 주민등록 인구수의 절대적인 수치 변화만 본 결과기 때문에 절대적인 읍면동별 인구변화 증감률을 살펴보면 상황은 다르게 나타남을 알 수 있다.남구에서 가장 많은 인구감소율을 보인 곳은 청림동인데 지난 10월 인구에서 2년 전인 2018년 10월과 대비하면 무려 12.5%가 줄었다. 다음이 제철동으로 이와 비슷한 수준인 11.4%의 감소율을 보였다. 남구에서 인구변화 비율이 가장 낮았던 곳은 동해면으로 2년간 불과 6명만 감소하였다. 인구가 늘어난 북구 흥해읍의 경우에는 2년 전보다 20.8%나 늘어났다. 마찬가지로 북구에서 가장 인구이동이 없었던 곳은 장량동으로 총 7만2천 명이 넘는 인구 가운데 감소한 인구는 151명에 그쳤다.이와 같은 결과로 볼 때 결국 포항시 인구가 감소한 최대의 원인은 지역 전체로 정년은퇴가 계속되는 가운데 철강산업의 장기 침체로 실직한 산업인력들이 주로 거주하던 청림동과 제철동 지역의 주민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국내 다른 지역으로 이민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포항지역 내 이주가 활발해진 최대 원인은 흥해지역의 지진복구와 도시재개발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감, 새로운 아파트단지 조성에 따른 읍면 지역에서 도심에 근접성이 좋은 외곽 지역으로 주거를 이전하는 수요가 일어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이처럼 국내 지역 간 이민이 활발하다는 것은 달리 말한다면 포항시 인구가 일시 늘어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자녀 교육하기 좋은 교육도시, 일자리가 넘쳐나는 활발한 산업도시, 은퇴해서 생활하기에는 최고인 정주 여건을 가진 도시와 같은 수많은 인구 유인을 계속 제공하지 못하는 순간 포항을 떠나는 이민 수요는 언제든지 있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이는 포항시가 인구 유인 정책, 유출 억제 정책을 세우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입소문은 정책을 능가하는 최고의 광고다. 그리고 최고의 정주 여건이란 달리 있지 않다. 얼마나 빨리,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곳에 먼저 살고 있던 사람들이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그들과 섞일 수 있는가로 결정된다. 포항은 여타 대도시보다는 상대적으로 지역색이 강한 편이다. 지역색에는 장단점이 같이 있다. 목표 달성을 위해 합칠 때는 큰 힘을 발휘하지만, 고향을 떠나 들어오게 된 이민자의 두려운 눈으로 보면 너무 높은 진입장벽으로 여기는 약점일 수도 있다. 포항이 새로 유입되는 주민들만 붙잡아도 모든 문제는 해소된다. 포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 입에서 살기 좋은 동네, 새로운 주민을 아주 편하게 받아들이는 곳, 여기 출신이 아니라도 쉽게 주민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곳이라는 말이 넘쳐난다면, 인구감소 시대, 지방소멸 시대와 같은 말은 포항과는 전혀 무관한 말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11-29

국민체육센터 개관…생활체육 메카 기대

엄태항봉화군수봉화군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이자 지역 생활체육활동의 산실이 될 봉화국민체육센터 개관식이 지난 23일 기관단체장과 체육인, 주민 등 4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그동안 봉화군은 체육시설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부족해 매년 증가하는 여가체육활동 인구에 충분히 대처하지 못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국민체육센터가 개관함으로써 다양한 체육시설 수요에 대응하고 생활체육 거점시설로 거듭나게 됐다.봉화국민체육센터 건립사업은 2015년 당시 부지 해결이 어려워 답보 상태였지만 공설운동장 옆 부지를 확보하면서부터 국민체육센터 건립의 본격적인 행보를 이어갈 수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를 방문해 침체한 농촌지역에 활력을 불어 넣고 생활스포츠 복지 구현을 위해 국민체육센터 건립 사업의 당위성을 피력하며 국가예산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다.그 결과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모한 ‘국민체육센터 건립 지원 공모사업’에 봉화국민체육센터가 선정됐으며, 2018년 6월 착공해 올해 5월 봉화읍 해저리 일원에 준공됐다. 총 120여억원의 예산이 소요됐으며, 건물면적 4천934㎡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조성됐다.지하 1층에는 볼링장(12레인)이, 지상 1층에는 수영장(6레인), 실내체육관(농구, 배구)이 지상 2층에는 다양한 운동기구(22종 32대)를 갖춘 헬스장과, 탁구장(4대)을 설치해 각종 대회 및 생활체육교실에 활용할 수 있도록 복합형 체육관으로 조성됐다.특히, 실내수영장과 국제규격을 갖춘 볼링장은 전 세대가 이용할 수 있는 체육시설로서 세대별 주민 수요와 노인인구 증가에 따른 어르신들의 건강한 삶과 여가활동을 책임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한 공공체육시설의 사용제한 조치로 개관을 미뤄오다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 방역수칙을 준수해 지난 16일부터 볼링장, 헬스장, 탁구장, 실내체육관을 사전예약제로 2주간 시범운영 중에 있다.현재 매일 80여명이 무료 강습과 시설을 이용하고 있으며 체육시설과 운영시스템 등의 미비점을 보완·개선해 12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주민들을 맞을 예정이다.시설 대관 방법, 강습 종목과 운영시간, 사용료 등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www.bonghwa.go.kr)에서 확인하거나 전화(054-674-7900)로 문의하면 된다.아울러 봉화복합스포츠단지조성은 봉화국민체육센터 건립사업과 연계해 추진하는 사업으로 전체 부지면적 7만22㎡에 국민체육진흥기금 33억원과 특교세 10억원 등 총사업비 295억원으로 농구장, 축구장, 풋살장(2면), 테니스장(4면), 정구장(2면), 씨름장을 포함한 다양한 야외 체육시설을 갖춘 종합 스포츠단지로 건립 중에 있으며 올 연말까지 완공할 예정이다.봉화복합스포츠단지와 국민체육센터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군민과 공무원 모두의 노력으로 건립 될 수 있었다. 새로운 체육 인프라 시설을 통해 이제 체육동호인과 군민들이 다양한 종목의 체육활동을 좋은 여건에서 즐길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됐으며, 향후 우수한 시설을 바탕으로 전국·도 단위 실내·외 스포츠대회 유치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이제는 ‘누구나 운동할 수 있는 봉화’를 넘어 ‘누구나 안전하게 운동을 즐길 수 있는 봉화’를 만들 방안을 고민할 때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발맞춰 세대·종목별 수요에 맞는 생활 밀착형 체육시설 조성으로 건강도시 기반을 지속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군민들의 체력 향상과 건강한 여가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앞으로 물야면 주민종합체육센터 건립을 비롯해 읍면에 체육시설을 더욱 확충하고, 기존 공공체육시설인 공설운동장, 게이트볼장, 그라운드 골프장, 궁도 연습장의 시설 정비와 안전관리에도 만전을 기하고, 주민과 체육인들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소외 계층을 비롯한 보다 많은 주민들이 복합스포츠단지와 국민체육센터를 안전하고 편리하게 즐길 수 있도록 운영해 나갈 예정이다. 봉화복합스포츠단지와 국민체육센터를 시발점으로 지역에 보다 많은 문화관광 자원과 체육시설이 확충되어 건강하고 희망이 넘치는 명품 스포츠 도시 봉화군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2020-11-29

하하와 베케

베란다를 트지 않기로 했다. 20년 된 아파트를 고치기로 하고 어디까지 손을 봐야 할까. 처음 시작은 싱크대였다. 오래 사용하다 보니 서랍에 손잡이가 빠져버렸고, 필름지도 벗겨져 원래 요리를 즐기지 않던 내가 더 부엌에 들어가기 싫어졌다. 또 책꽂이가 방마다 있으면서도 더이상 꽂을 자리가 없어서 서재도 새로 꾸미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해 도배와 장판, 화장실도 새로 하기로 하니 주위에서 시작한 김에 베란다도 확장하라고 부추겼다.남편은 일어나자마자 베란다로 나간다. 꽃밭을 보러 가는 것이다. 아파트에 꽃밭이라니 거창하지만 거실에서 베란다로 나가면 화분이 쪼로롬이 반긴다. 봄 가을로 피는 재스민, 신혼 초부터 들여와 팔뚝만 해진 알로에, 100년에 한 번 꽃이 핀다는 소철이 천정까지 키를 높였고, 올망졸망 서로 키재기 하는 다육이와 난(蘭) 화분이 꽃 없이 잎만 올리고 있다. 그 옆에 봄에 새로 들여놓은 커피나무가 귀티나게 앉았다. 이 녀석들과 하나씩 눈인사를 하며 물을 주는 일이 남편의 첫 일과이다. 마당쇠가 마당 쓸듯이.작은 공간이지만 아파트에도 마당이 필요하다는 게 우리 부부의 결론이었다. 트는 대신에 베란다로 나가는 새시를 새로 하는 걸로 갈무리했다. 커튼은 레이스로 달아 커피나무와 재스민이 어른어른 비쳐서 정원이 거실까지 확장된 기분이 들게 했다. 작은 정원이 주는 위안이다.영국인들은 정원을 가꾸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자기가 꾸민 정원에서 마시는 오후의 홍차, 삶의 여유이다. 런던근교에 라우샴가든이라는 300년 전에 만든 풍경식 정원이 있다. 수목이 가진 고유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최소한으로 관리해 나가는 것이 풍경식 정원이라고 한다. 산책로를 따라가며 나무와 어울리는 조각이 군데군데 놓였고, 키가 큰 나무가 햇살에 그늘을 길게 늘일 때 반려견과 함께 거닐며 위로받는 곳이다. 그 정원을 둘러싼 담장이 하하(Haha)이다. 이름이 독특해서 자꾸 불러보게 된다. 부를 때마다 웃게 되는 힘이 있다. 정원을 가꾸며 나온 돌을 쌓아 만든 돌담이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울타리가 풍경 속에 묻혀서 멀리서 보면 담장이 보이지 않아 담장 밖의 소들이 풀을 뜯는 게 정원의 일부분처럼 보이기도 한다.제주에 하하와 비슷한 담이 있다. 베케이다. 쟁기질하거나 밭을 매다가 돌이 나오면 하나둘씩 쌓다 보니 담장이 된, 할머니의 할머니들이 만들어 놓은 농사의 일부분이고 문화이다. 돌에 이끼가 가득 피어서 푸른색이었다. 돌 틈 사이에 풍란이 비집고 들어가 앉았고 넝쿨 식물이 담을 넘나들었다. 그 담을 따라 길에서 집까지 연결된 아주 좁은 골목 비슷한 길을 올레라고 한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그 길로 봄꽃도 오고 갈바람도 들어온다. 서귀포에 베케라는 정원식 카페가 있다. 조금은 허물어진 베케를 향해 통창이 있어 손님들이 마주 앉기보다 베케를 향해 앉는다. 제주 습지에 잘 자라는 풀과 꽃을 심고 가꾸어 커피를 들고 나가 산책을 즐길 수도 있다. 아버지가 감귤밭으로 일궈 농사짓던 곳이라 창고였던 건물도 다 허물지 않고 산책로에 남겨놓아 그곳을 지날 때마다 아버지의 흔적을 느낀다고 한다.김순희수필가도시에서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의 언어를 듣다 보면 이웃이란 낱말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정원을 꾸미는 일이 나 자신뿐 아니라 이웃과 공유하게 된다는 뜻이다.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 실린 거인의 정원이 떠올랐다. 담을 높이 쌓고 혼자만 아름다운 정원을 즐기려고 하자 그 정원은 1년 내내 겨울만 계속되었다는. 허물어진 틈 사이로 아이들의 발길이 닿자마자 정원에 새가 돌아오고 꽃이 가득 피어났다는 해피엔딩의 이야기였다.우리 집 베란다가 하하와 베케이다. 봄부터 키운 땡초 세 그루가 가을걷이를 하려는 듯 잎끝을 말고 있다. 여름부터 가을 내내 혀끝이 알싸한 맛이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따 먹고, 한두 개는 빨갛게 익혀서 꽃처럼 바라보기도 했더랬다. 화분으로 둘러싼 우리 집 담장, 사계절이 들고나는 베란다를 허물지 않고 놔두길 참 잘했다.

2020-11-29

반간계(反間計)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춘추시대 손무가 쓴 손자병법에는 36계가 있다. 이중 반간계는 33번째 계책으로, 적의 첩자를 역이용해 적을 속이는 기만전술 가운데 으뜸으로 친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서 주유가 펼친 반간계다. 조조는 오나라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주유의 친구이자 자신의 참모인 장간을 주유에게 보냈다. 주유는 장간과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해 자는 척하며 채모와 장윤이 보낸 것처럼 꾸민 편지를 흘렸다. 여기에다 황개를 고육계로 활용해 조조로 하여금 채모와 장윤을 오나라의 첩자로 오판하게 했다. 결국 반간계에 넘어간 조조는 수전에 강한 장수인 그들의 목을 쳤고, 그 결과 적벽대전에서 조조는 참패를 당했다.우리 역사에도 ‘요시라의 반간계’가 등장한다. 정유재란이 일어났던 1597년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는 첩자 요시라를 경상좌병사 김응서에게 보내 자신의 라이벌인 가토 키요마사가 어느 날 부산포를 거쳐 일본으로 가는데 조선 수군이 지키고 있다가 공격하면 그를 잡아 죽일 수 있다고 알려줬다. 김응서는 도원수 권율에게 보고했고, 권율이 이를 조정에 보고하자, 조정은 이순신에게 전함을 이끌고 나가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적의 계략이란 것을 간파한 이순신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선조는 왕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이순신을 서울로 압송했고, 원균이 수군을 지휘하게 됐다. 원균은 칠천량 전투에서 왜군에 대패해 12척의 전함만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다. 이 전투로 조선수군은 괴멸상태에 빠졌고, 조선의 유능한 수군 장수들이 대부분 전사했다. 이처럼 반간계는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기만술이다.홍준표 무소속 의원이 최근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놓고 있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극한대립을 반간계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고있다. 홍 의원은 윤석열 검사를 앞세워 소위 국정 농단 수사로 보수와 우파 진영을 궤멸시켜 놓고, 추미애-윤석열 갈등을 만들어 윤 총장을 반대 진영의 주자로 세우도록 야권 분열을 작업한 후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것 아니냐고 했다. 3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태 역시 진보진영 정당의 33계 반간계에 걸린 결과로 보고있는 보수지지층에겐 매우 흥미로운 해석으로 읽힐 듯 싶다.어쨌든 추 장관이 윤 총장 직무정지 조처를 한 데 대해 검찰과 국민여론이 들끓고 있다. 26일 오전 조상철 서울고검장 등 전국 고검장 6명이 성명서를 통해 징계 청구와 직무정지 명령을 재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앞서 대검 중간 간부 27명도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와 직무배제는 위법 부당하다”고 했고, 전국 10여 곳의 검찰청에서는 평검사 회의 개최 여부를 논의 중이어서 자칫 ‘검란’으로 치달을 태세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추 장관의 윤 총장 직무정지 조처가‘잘못된 일’이라고 답했다.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는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맞대결이 이 나라를 우스운 꼴로 만들고 있다. 국민들은 말 그대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참아내야 할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2020-11-26

‘해양생물종복원센터’ 영덕이 적지다

경북도가 ‘해양생물종복원센터’의 경북 영덕 유치에 발벗고 나섰다. 해양생물종복원센터는 해양생물의 종 증식과 복원을 중심으로 해양생물 구조치료 및 해양생태계 보전과 관리를 전담하는 국가 컨트롤타워다. 이곳에서는 해양생물의 종 증식, 복원연구 외에도 좌초하거나 혼획된 해양생물에 대한 구조·치료, 유해교란 해양생물 연구, 서식지 보호, 대국민 전시·교육홍보 등의 기능도 맡는다.해양수산부는 작년 1월 해양생물 보호를 위해 제2차 해양생태계 보전·관리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해양생물종복원센터 건립 추진을 밝힌 바 있다.이에 따라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 위치한 충남 서천군이 해양생물 종복원센터 유치를 위한 용역에 들어가는 등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북도가 지난 5월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영덕군과 함께 해양생물 다양성 보전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해양생물 종복원센터 유치를 위한 행보를 서둘고 있으나 경쟁자가 있는 한 그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다. 유치의 필요성이나 타당한 이유 등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근거자료를 들고 정부를 이해시켜가야 한다.경북도는 영덕에 해양생물종복원센터가 들어서면 2018년 경북 영양에 설립된 국립생태원 멸종위기 종복원센터와 더불어 국내 최고 생태계 복원의 중심지로서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특히 영덕지역은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해역을 끼고 있어 해양생물의 다양성이 높은 곳이다. 또 해양생물의 혼획과 좌초가 자주 발생하는 곳이어서 해양생물 연구에 적합한 곳으로 평가된다. 종복원센터 유치의 당위성 등은 충분하나 지자체의 노력이 얼마나 보태질지는 알 수 없다.경북은 그동안 원자력해체연구소 등 국립기관 유치에 여러 차례 실패를 했다.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도 해양생물종복원센터와 같은 국립기관의 경북지역 설립이 절실하다. 지역정치권과 함께 해양생물종복원센터의 영덕 유치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우리나라 해역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해역표층 수온의 상승이 전세계에서 가장 높다. 해양생물종복원센터의 설치 운영이 서둘러져야 할 시점이다. 정부는 종복원센터 설립 목적의 효율성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관점에 적지를 판단해야 한다. 동해안을 끼고 있는 영덕군은 그런 면에 적지라 할 수 있다.

2020-11-26

與,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 독주…괜찮나

더불어민주당은 ‘대공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하는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을 국회 정보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단독으로 처리했다. 야당 의원들이 법안 처리에 반대하며 회의장을 나간 뒤, 여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이 개정안은 27일 본회의 강행 처리도 예고돼 있다. 과거 국정원의 횡포와 허물을 두둔할 이유는 없지만, 순기능은 무시하고 역기능만 보고 칼질을 해대는 이 정권의 ‘국가안보역량 해체·훼손’ 독주는 정말 괜찮은 것일까. 문재인 정부의 ‘권력기관 개편안’에 입각해 민주당은 지난 8월 이낙연 대표와 전해철 정보위원장 등 50명이 참여해 개정안을 발의했다. 소위를 통과한 개정안은 ‘대공·대정부 전복 등 국내 보안 정보 수집·작성·배포를 국정원 직무 범위에서 제외하고, 국정원이 가진 일체의 수사권을 폐지하되 수사권 폐지를 3년 유예’하는 게 골자다.국정원을 권력 남용과 정치적 일탈을 반복하는 조직으로 규정하고, 아예 힘을 쓰지 못하는 조직으로 주저앉히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명칭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꾸자고 했었다. 그러나 정보위 소위에서 명칭 변경은 없던 일이 됐다.대공수사권의 경찰 이양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국정원과 경찰 안팎에서도 나온다. 전직 국정원 직원들이 지난 23일 토론회를 열고 깊은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대공 수사는 축적된 역량에 더해 국내·해외·과학·사이버 등 모든 정보가 유기적으로 융합된 분야인데 해외에 조직과 정보망이 없고 수사 자체가 금지된 경찰이 수행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이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심장 수술을 일반외과 의사에게 맡기는 꼴이라는 비유도 있다.국가기밀 사항인 국정원의 조직·소재지·정원 등에 대해서 정보위 위원 3분의 2 이상이 요구할 경우 공개토록 하는 내용도 이상하다. 유예기간 3년 만에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쇠뿔 바로잡으려다가 소까지 죽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북한이 대남적화통일 야욕을 버렸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는데, 이렇게 ‘안보 자해(自害)’ 도박을 마구 저질러도 되나.

2020-11-26

우주탐사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충격적 사건을 손꼽으라 하면 인류의 달 착륙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늘을 나는 플라잉카가 상용화되거나 드론택시가 우리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이것 또한 혁명적 사건이다.중국이 지난 24일 무인 달 탐사선인 창어 5호를 쏘아 올렸다. 이번에는 달의 표면에 도착해 약 2kg의 샘플을 수집해 오는 것을 임무로 삼았다. 이미 중국은 작년 1월 창어 4호 무인 탐사선을 발사해 달의 북서부 뒷면에 착륙시킨 바 있다. 세계 각국은 중국의 우주개발 사업이 앞으로 얼마나 발전할지 주목하고 있다. 올 7월 중국은 자국 최초의 화성탐사선도 발사했다. 만약 이것이 성공한다면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화성 착륙에 성공한 나라가 된다.미국은 1969년 7월 20일 미국 우주인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탄 아폴로 11호를 달 착륙에 성공시켜 전 세계를 흥분시켰다. 인류가 달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51년 전 일이다. 그 후 달에 대한 각국의 관심은 점차 옅어졌으나 최근 중국의 우주탐사선 발사를 계기로 조용하던 우주개발이 또다시 뜨거워지는 느낌이다.중국의 우주개발은 자국의 과학적 능력을 대외에 과시하고 미국에 맞선 중국의 우주굴기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중국은 2025년까지 유인 달 탐사선을 발사할 계획이다. 미국도 2024년까지 유인 달 탐사선을 진행한다는 계획 아래 본격적인 우주개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미지 세계에 대힌 인류의 호기심과 도전은 달 착륙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만들어 냈다. 한국도 2030년에는 달 착륙선과 탐사 로봇을 발사할 계획이라 한다. 우주를 향한 인류의 도전은 또다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낼 지 궁금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0-11-26

대학동창과 소백산 기행

대학 친구는 오래 가기 어렵다고들 한다. 철들고 보탬 되고 안 되고를 다 아는 때 만나니까. 그래도 안 그렇다고 생각될 때가 많다.언론사에서 일하는 K가 소백산에를 가자고 한 게 벌써 두어달 전이다. 약속은 시원스럽게 잡았지만 막상 날이 닥치니 앞뒤로 일정이 꽉 차 버렸다. 그래도 이번만은 가야겠다고, 아닌 말로 이를 악문다.풍기 소백산 산속에 대학 동창 하나가 굴을 파고 앉았다. 쑥마늘 먹고 사람 되겠다는 단군신화도 아니고, ‘논어’며 ‘예기’며 하는 한문 고전 공부에 어언 24년 세월이 흘렀다. 나나 K와는 학번은 같은데 나이는 물경 13년이나 많은, 시청 공무원 하다 늦깎이로 대학 들어왔던 형님.옛날엔 참 가난하기도 했다. 나도 보증금 50에 월 5만원 월셋집에 자취까지 했지만 이 형님은 더 가난해서 남들 대학 갈 때 엄두도 못 냈었다 했다. 대학 다닐 때도 남 모르게 용산역 앞에서 감자를 팔았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내 기억에 희미하게 남아 있다.지금 아파트 단지들에 재개발이 거의 다 된 봉천동, 신림동, 노량진 일대에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산윗집은 물을 대려면 펌프질을 하고 ‘푸세식’ 변소가 일반인 시절이었다.그렇게 가난했는데도 그는 학교 다닐 때부터 공부를 즐겼다. 남들 놀고 데모할 때 그는 공부가 목말라 늦게 대학 온 사람답게 강의를 듣고 레포트를 길게 내는 버릇을 들였다.그래도 졸업 하고는 사회로 나가야 했다. 곧 학원 강사가 벌이가 되는 시절이 닥쳤고 그에게도 ‘황금기’가 펼쳐졌다. 대학 시절 ‘말년’에 결혼을 한 그에게는 부양해야 할 식구들이 있었다. 그때쯤에야 먹고 살 수 있었건만 그는 오히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사무실을 얻어 서당을 열었다. 스스로 한문을 공부하며 돈을 받지 않고 가르치기 시작한 것.K는 풍기 소수서원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안동이 고향인 그는 처음엔 공대에 들어갔다 다시 시험을 보고 국문과로 들어왔다. 집에서는 외무고시를 본다 하고 학교 앞에 방을 하나 얻었지만 고시는 고사하고 밤낮으로 나같은 한량들에게 시달리기 일쑤였다. 나보다 한두 살 많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해 주던 그는 아버님을 일찍 여위었는데도 낙천가의 기질을 잃어버리지 않았다.소백산 산중에서는 이날 밤 사내 셋이서 밤하늘 별을 헤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형님의 백구 네 마리가 옆에 다가와 앉아 산속의 웃음소리에 귀를 있었다.속세를 떠나 이렇게 깊은 산속에서 홀로 공부를 계속하는 형님과 나를 여기로까지 이끌고 온 K. 우리는 이날 밤 세월을 잊어버린 옛날 사람들, 친구들이었다.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불역낙호아(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11-25

떠나보내기

강길수수필가늦가을….보도의 벚나무가 벌거숭이가 되어간다. 어떤 나무는 아직 절반 정도의 옷을 입고 있으나, 어느 나무는 팔 할 이상을 벗었다. 전체적으로 대강 삼분지 이 정도는 옷을 벗어 보인다.가슴이 움찔움찔하는 것만 같다. 사제나 주송자(主誦者)가 고인의 세례명을 넣어 기도하거나, 말할 때마다 그랬다. 꼭, 내가 저 관 안에 누워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강론 시간에 사제는 친절하게도, 고인의 세례명을 뜻풀이까지 하면서 여러 번 부르며 애도하였다. ‘이 미사에서, 입관 체험교육 이상으로 삶과 죽음을 체험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젊은 날부터 장례미사에 많이 참례(參禮)해 왔다. 하지만, 오늘 같은 느낌은 처음이다. 고인의 세례명이 나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같은 세례명의 고인을 위한 장례미사는 오늘이 처음이다. 다른 장례미사에서도 고인의 세례명이 호명되었는데, 왜 오늘만 다를까. 고유명사 하나의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은 미처 몰랐다.올 가을, 오랜 지인(知人) 두 사람을 졸지에 잃었다. 아니, 갑자기 떠나갔다. 한 사람은 초가을에, 또 한 사람은 늦가을에 아주 떠났다. 떠난 의학적 이유도 둘이 같다. 심장 쪽 잘못이다. 출신 지역도 같다. 나라가 철강업을 주력산업으로 새로 힘차게 일으키는 시기에, 두 사람 다 총각으로 이곳에 왔다. 바닷가 모래밭에 세워진 철강 제조 현장에서, 각자의 일생을 오롯이 바친 이들이다. 나는 그들과 직장은 같았지만, 부서가 달라 성당에서 만났다. 함께 활동하며, 깊은 신앙공동체 체험을 나눈 이들이다.하늘의 섭리는 내가, 두 사람을 떠나보내라고 강요하고 있다. 젊은 날 상가에 가면, 압도되며 느끼던 진한 감정들도 많이 사라졌다. 죽음이란 현실에 대한 슬픔, 고통, 거부감 같은 느낌들과 삶에 대한 부조리, 연민, 허무감 등등의 감정들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자의 회한인지, 넋두리인지 모를 감정의 너울이 가슴을 움찔거리게 하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래서 세상은 살아보아야 아는 것인가 보다.장례미사 마치고, 자전거 타고 돌아오는 보도에 벚나무낙엽이 흩날렸다. 한 줄기 갈바람에, 우수수 떨어진 낙엽이 이리저리 구석으로 내몰렸다. 세상 떠난 그들은 어떤 낙엽을 닮았을까. 또, 어느 낙엽처럼 떨어져 갔을까. 미사에서 두 고인이 같이 생각났었다. 그들과 함께했던 지난날들이 파노라마 되며 지나갔다. 저 낙엽들은 나무가 밀어낸 것일까. 스스로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것인가. 생은, 시간이란 외줄을 타고 가는 여정이다. 죽음은, 어느 순간 외줄에서 힘에 부쳐 떨어지는 걸까, 놓아버리는 걸까.마음 한쪽에서, ‘떠나보내야 한다. 이젠….’하고 말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건 아니지….’라고 한다. 지난주일, 세례명이 같아 친밀감으로 지내던 고인을 만났었다. 고향 친구 잃은 슬픔을 위로한다고, “상실감이 크지요?”라고 했었다. 내 말을 듣던 그의 차분한 표정이 떠오른다. 또 코로나로 반년 동안 얼굴한 번 못 본체, 초가을에 먼저 떠난 고인도 생각난다. 갑자기 가장을 잃은 두 가정의 가족들 얼굴도 아른거린다.자기도 언젠가 이승을 떠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세상에 없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가 경고한 대로 ‘깨어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세례명이 같은 지인의 장례미사가, 가슴 움찔거리게 한 이 가을의 화두는 ‘떠나보내기’다. 부조리하고 억울하더라도, 떠나는 이는 떠나가고야 마는 법이 자연이 마련한 불변의 길이므로…. 하여, 깨어있는 사람이 늘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은 ‘떠나보내기’가 아닐까.문제는 떠나보내야 하는 방법론이다. 떠나보내지 않아도, 떠나고야 마는 하늘의 섭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신해야 할까. 답이 낙엽에 있다 싶다. 낙엽은 나무에 밀려나 덜어졌든, 스스로 떨어졌든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떠나가는 낙엽이나, 떠나보내는 나무나 담담하다. 낙엽은 바람과 중력에 자신을 맡기고 매 순간 유유자적(悠悠自適)한다. 가을 낙엽이 아름다운 것은 하늘 섭리를 말없이 받아들이는 데 있으리라.이 가을, 황망히 떠난 두 고인을 고운 낙엽처럼 떠나보내련다.

2020-11-25

함께 가는 발

무좀이 도졌습니다. 엄지와 검지발가락 사이가 찢어져 따끔거립니다. 오래 전부터 각질이 벗겨지는 정도의 무좀증세가 있긴 했지만 온 여름내 멀쩡하던 발이었습니다. 맨발에다 샌들을 신던 여름에는 통풍이 잘 되어 무좀균이 숨어 있었는데, 간절기를 맞아 양말을 신는데다 신발마저 부츠로 바뀌니 그렇게 된 모양입니다. 제 역할을 잊고 있던 무좀균이 환경이 조성되자 저 좋다고 활개를 친 것이지요.무좀만이 발에게 성가신 게 아닙니다. 날씨가 서늘해지니 뒤꿈치까지 말썽입니다. 여름이 지나면서 서서히 갈라지다 골이 점점 깊어집니다. 물기 부족한 뒤꿈치는 잎맥처럼 잔금이 서리고 부스스한 가루마저 날립니다. 심한 곳은 골이 푹 파이기도 합니다. 심해져 허벅지나 다른 살에 스치기라도 하면 날카로운 송곳이 지나간 듯 상처가 돋고 각질까지 묻어납니다. 쌀쌀한 날씨가 돌아오면 생기는 불청 현상이지요. 제때 각질을 밀어주고 연화용 화장품만 발라주면 되는데 귀찮다고 방치하면 금세 그렇게 됩니다.젊은 날, 겨울에 대중탕에 가면 둥근 돌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원래 있었는지 개인이 준비해왔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중년의 엄마들은 물에 불린 뒤꿈치의 각질을 면도칼로 도려낸 뒤 그 돌에다 대고 문질렀습니다. 그라인더 역할을 하는 돌 위에서 뒤꿈치를 갈고 나면 일주일은 개운할 것이겠지요. 그렇다고 각질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번 목욕탕에 갔을 때는 전보다 더한 강도로 뒤꿈치를 문질러대는 분들을 만나곤 했으니까요. 그렇게 악순환이 이어졌지요. 매일매일 각질을 관리하지 않으면 하지 않은 만 못한 것이지요.젊었을 때는 그런 풍경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건강한 청춘의 뒤꿈치에는 각질이 생기지도, 골이 패지도 않았으니까요. 해서 생업에 전력투구하는 엄마들의 고단한 땀이 모여 당신들 발을 거칠게 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노동하지 않고 가만있어도 뒤꿈치가 망가지는 나이가 되고 보니, 이건 열심히 산 흔적이 아니라 단순한 노화 현상 중의 하나라는 걸 알겠습니다.며칠 무좀약을 바르고 연화제를 문지릅니다. 무좀균은 박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친구 삼아도 좋을 위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네 소소한 일상 자체가 무좀 앓는 발이요, 각질 쌓이는 뒤꿈치 아니던가요.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시련은 무좀 앓는 발에 비유할 수 없겠지만 웃고, 울고, 떠들고, 마시는 가운데 생겨난, 감당할 만한 모든 고충을 무좀균에 비유하고 싶습니다.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비의는 가지고 삽니다. 아픔이나 상처의 옷을 입은 그것은 평소에는 비활성화 되어 있다가 어떤 계기가 있으면 표면으로 드러나지요. 통풍에 문제가 없을 땐 잠잠하던 무좀균은 바람 쐬어 주지 않고 꼭꼭 싸맬 때 스멀스멀 피어나 발가락 사이를 갉습니다.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에 무좀균이 생깁니다. 그때 위로라는 약을 발라 상처를 달래는데, 금세 낫긴 합니다. 그렇다고 무좀균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딘가에 숨어들었을 뿐인 이때의 무좀균은 발이 발로 단련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경고 장치로 기능합니다. 박멸하지 못할 바에는 그대로 두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그 어떤 약점에도 노출되지 않는 삶이란 없습니다. 산다는 건 환희라는 날개옷을 걸칠 때보다 고통이라는 갑옷을 두를 때가 더 많습니다. 수고로운 갑옷의 시간을 무좀 앓는 발이라 쳐둡시다.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날들을 각질 쌓이고 골이 패는 뒤꿈치라 여깁시다. 성가신 쓰라림이 가슴 한쪽을 지나겠지만 그건 모두 견뎌낼 만한 고민이자, 건널 만한 고충이지요. 따라서 그것들을 야멸차게 박멸할 필요까진 없을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완전히 없애버린 평범한 상처 그 자리에, 감당하지 못할 고통이나 번민이 들어찬다면 그보다 낭패스런 일도 없을 테니까요. 함께 가는 무좀과 같이 하는 각질이 있기에 더한 고통이 들어찰 기회가 없다고 위안해 봅니다.김살로메소설가모든 살아있는 것은 점점 생기를 잃습니다. 푸석해지고 거칠어진 흔적이 내 것이 아닌 건 아닙니다. 그러니 그것들을 애써 없애려 하는 것보다 달래서 함께 가는 게 더 합리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려내고 문지르고 바르고 말린다고 근본적으로 내 삶의 군것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가렵거나 따끔거리거나 까칠하지 않는 삶이 어디 있을까요. 찾아오는 그것들을 지우려할수록 더 두꺼운 이물감이 내 안에 자리 잡을 수도 있습니다.발가락 사이마다 무좀약을 바르고, 양 뒤꿈치에는 보습제를 문지릅니다. 발가락이 시원해지고 뒤꿈치는 한결 부들부들해졌습니다. 삶의 자잘한 각질과 균은 잘라내고 없애야 할 쓰레기가 아니라 부드럽게 달래 함께 가야할 동반자라는 것을 두 발이 말해줍니다.

2020-11-25

뉴노멀은 비정상일까

장규열 한동대 교수코로나19의 기세가 다시 거세다. 겨울로 들어서며 멈추지 않는 환란의 물결에 세계가 얼어붙었다. ‘이 또한 지나갈’ 터이지만 그런 다음 우리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비대면과 마스크는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손씻기와 거리두기는 비정상인가 정상인가. 정상과 비정상을 견주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우리는 뉴노멀에 익숙해져 버렸다. 코로나19가 물러간 다음에도 관성처럼 우리에게 머물게 될 낯선 환경이 보이기 시작한다.비대면 온라인 수업에 익숙한 대학생들은 대면 오프라인 강의를 열어도 강의실로 돌아오지 않는다. 듣자 하니, 학생들은 기숙사와 인근 마을에 거의 돌아왔다는데 대면과 비대면 중에서 선택권을 가진 학생들은 비대면 강의를 선호한다. 수십 명이 등록한 강의를 비대면으로 제공하면 겨우 두세 사람이 강의실에 들어온다. 강의를 진행하는 교수도 이내 기운이 빠져 비대면으로 돌아가기 일쑤라 대학공동체는 서로 만나지 않는 온라인소통으로 돌아가고 만다.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아니면 뉴노멀인가. 넓은 교정의 건물들과 건물들을 가득 채운 강의실들은 이제 그 역할을 다한 것일까. 무릎을 맞대고 지혜를 모으며 담론과 토론을 이어가던 대학의 모습은 수명을 다한 것일까. 이를 비정상으로 여겨, 코비드19 이후에 이전으로 돌아갈 기대를 아직도 한다면 그거야말로 착각과 환상이 아닐까.‘비대면 온라인’은 방역의 필요를 넘어 여러 영역에서 ‘삶의 조건’이 되어버렸다. 대학만 그런 것도 아니다. 재택근무는 정상 근무형태로 자리를 잡았으며 작업공간에 대한 이해도 변모하였다. 다국적기업에만 해당되던 글로벌인력 아웃소싱은 누구에게나 새로운 기회로 다가오는 중이다. 과거에 묶여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고, 변화를 바로 읽어 역동적인 미래를 열어갈 수도 있다. 변화를 거꾸로 읽으면 또 다른 실패에 이를 뿐이다. 만나지 않는 사이버교회 개념을 당겨 수용하여 더 많은 이들을 끌어모으는 사람들이 있다. 디지털환경이 제공하는 초연결사회는 이전보다 확장된 영역을 불러다 준다. 모든 존재가 지역적이었던 이전에 비하여 하찮은 존재도 글로벌이 되는 지평이 열린 게 아닌가. 뉴노멀도 극복할 것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활용할 것으로 볼 것인지는 당신에게 달렸다.교육의 지평은 언제나 넓다. 다음 세대는 배움의 마당에 항상 넘친다. 바뀐 환경이 더 나은 교육을 돌려줄 것인지도 대학과 교수, 학교와 교사에게 달리지 않았을까. 낯선 환경을 익숙한 토대로 바꾸는 비결도 선생님들 손에 들려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교육과 연구, 봉사와 소통에 씨줄과 날줄로 어우러지도록 만들어내는 일에 우리 교육은 운명을 걸어야 한다. 다가온 뉴노멀을 비정상으로 여겨 코로나19가 지나기만 기다리는 오류는 없어야 한다.세상이 바뀌면 교육도 바뀐다. 학생도 바뀌고 학교도 바뀌며 배우고 가르치는 일상이 바뀐다. 교육이 세상을 앞질러 바꾸기를 기대한다.

2020-11-25

구글갑질 방지법

구글갑질 방지법은 구글의 강제적 인앱 결제정책에 제동을 거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가리킨다. 이 법안은 구글이 오는 2021년부터 구글플레이에서 유통하는 모든 콘텐츠 앱에 구글의 결제방식을 강제하기로 하면서 시작했다.기존에는 게임 앱에만 수수료 30%를 강제했다. 그러던 것을 구글이 지난 9월‘신규 앱은 내년 1월20일, 기존 앱은 내년 9월말부터 구글플레이 인앱결제를 의무 적용해야한다’고 발표했다. ‘구글의 갑질이다’ ‘통행세다’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일각에선 업체들이 수수료를 소비자에게 전가해 유료 앱 등의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네이버·카카오를 비롯한 국내 중소 IT업계도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결국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서 여야가 앞다퉈 구글갑질방지법을 발의하고 인앱결제 강제를 막겠다고 나섰다. 게다가 애플이 지난 18일 중소 개발사에는 수수료를 30%(현재)에서 절반 수준으로 낮추기로 해 구글도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결국 구글은 지난 23일 신규출시 앱에 대해서도 인앱결제 강제와 수수료 30% 인상안을 기존 1월에서 9개월 연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는 9개월 연기했을 뿐이니 미봉책이다.국내 1천500여개 스타트업 연합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은 “국내 스타트업과 콘텐츠산업의 미래가 달린 구글·애플의 인앱결제 강제정책에 반대한다”면서 구글갑질 방지법 통과를 주문하고 나섰다. 인앱결제 강제정책은 스타트업을 넘어 수많은 콘텐츠산업 종사자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콘텐츠 스타트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국내시장을 생각하면 지금 상황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국내 스타트업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라도 ‘구글갑질 방지법’ 제정이 시급하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1-25

독립유공자 후손 돌보는 ‘희망 집짓기’

경북도는 광복 75주년을 맞아 지난 8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독립유공자 후손 돕기 주거개선 사업을 시작했다. 할아버지 등 윗대 어른이 독립유공자임에도 가정 형편이 어려운 후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독립운동가의 애국애족 정신을 되새겨 보자는 취지의 사업이다.사실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면서 어려운 살림을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난 8월 첫 사업으로 방문한 안동시 임하면 임윤익 선생의 후손 집만 해도 낡고 오래돼 주택으로서 기능이 부실했다. 독립유공자 후손의 상당수가 이와 유사한 형편에 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경북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고장이다. 전국 독립유공 포상자 1만3천여 명의 15%가 경북 출신이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들의 정신과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는 경북의 자랑스러운 전통이자 우리 모두의 자부심이다.지금도 500여 명의 유공자 후손이 경북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일부는 고령에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고도 한다. 경북도가 그런 그들의 살림을 걱정하고 주택개선 등의 후원 사업에 나선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우리 지역 조상의 애국정신을 새기고 그 후손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것은 자치단체와 지역사회가 할 일”이라면서 지속적 지원을 약속했다.경북도의 제안으로 민간단체로 사랑의 집짓기를 실천하는 한국 해비타트가 독립유공자 후손의 집수리 사업에 참여키로 했으며 경북청년봉사단 등 도내 민간단체의 자발적 참여도 있다고 한다.예산 문제가 있으나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직접 나서 모금을 벌이기로 했고 일부 기업에서 적지 않은 돈을 희사했다고 하니 사업추진에 조금이라도 도움됐으면 한다.경북도는 올해 중 6채의 독립유공자 후손 주거개선 사업을 더 벌인다고 한다. 아직까지 후손을 위한 후원의 손길이 더 필요하다.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상부상조 정신이 강한 나라다. 지금과 같은 나라의 번영과 성장이 있기까지 독립운동가와 같은 우리 선대들이 보였던 희생정신을 잊어서는 결코 안 된다. 독립유공자 후손을 돕는 일에 경북도민 모두의 관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2020-11-25

추미애를 ‘막가파’로 내모는 與圈의 두려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핍박하는 이유는 집권당의 실정을 막기 위한 교란작전이라는 해석이 있었다. 정권 핵심이 추 장관을 사석(死石)으로 놓고 연일 싸우도록 내몲으로 인해서 경제 실정, 부동산정책 실패 같은 치명적 약점에 대한 민심이반을 막아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닌 것 같다. 윤 총장에 대한 사상 초유의 직무배제 조치를 보면 여권이 정말 두려워하는 게 뭔지 확실히 보인다. 추 장관은 24일 “심각하고 중대한 비위 혐의를 다수 확인했다”며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와 더불어 직무를 배제했다. 추 장관은 이날 처분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추 장관이 밝힌 여섯가지 검찰총장 직무배제 사유는 하나같이 법률 위반 사실이 명확하지 않은 일방적인 의혹 제기에 불과하다. 윤 총장이 “위법·부당한 처분에 끝까지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했으니 사법부 판단을 기다려볼 일이지만 이런 난투극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의 심정은 착잡할 따름이다.정치가 온전히 덮어버린 이 나라 검찰권은 백척간두에 섰다. 여차하면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공정한 수사’는커녕 권력의 삽살개로 전락할 위기에 직면한 셈이다. 이 정권은 윤 총장에 대해 두 가지 감정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조국 전 장관 사법처리에 대한 가없는 ‘복수심’과 청와대의 울산시장선거 개입 혐의, 여권 인사들의 펀드 사기 연루혐의 수사 등에 대한 ‘두려움’이 그것이다.권력 핵심과 연결된 이 혐의들은 만약에 유죄로 밝혀지면 정권의 존폐를 좌우할 만큼 중대한 범죄다. 이번 조치로 청와대의 의중은 분명해졌다. 수단과 방법을 가릴 여유도 없이 검찰의 창을 당장 부러뜨리지 않으면 안 되게 생겼다는 위기의식이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추미애를 막가파로 내몰아 윤석열을 광화문 네거리에 끌어내어 능지처참한들 의혹들이 말끔히 지워질까.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며,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주인인 국민이 목불인견의 현 사태를 엄정한 눈으로 낱낱이 지켜보고 있다.

2020-11-25

가덕도 선심정치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가덕도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천가동에 속한 작은 섬이다. 울릉도의 1/3의 넓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섬에서 더덕이 많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갑자기 가덕도가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떠오르고 있다. 조그만 섬 가덕도.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선심정치는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그저 표가 생긴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게 정치인들의 모습이다. 그들에게는 국가 발전보다 표를 모으는 게 더 중요하다.지난 20년간 정치권의 민감한 이슈였던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전 정부에서 밀양, 가덕도, 김해 확장의 3파전에서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이 났었다. 2016년 ADPi(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 타당성 평가 당시 김해신공항 안이 1위, 밀양이 2위, 가덕도가 3위였다.경제성 등 평가에서 꼴찌를 했던 가덕도가 왜 갑자기 대안으로 떠오른 것일까? 그건 당연히 내년도에 있을 부산시장 보궐선거용이라는 건 누가 봐도 확연해 보인다. 그들에게는 가덕도는 그저 표일 뿐이다. 여당이 이런 실정인데도 야당인 국민의 힘도 선심정치 쫓기는 마찬가지이다.현재 국민의 힘은 ‘가덕도 특별법’을 밀어부치려는 부산 출신 의원과 이를 반대하는 대구 출신 의원들의 의견이 분열되면서 당론이 분열되고 있다. 당론에 철학도 없고 그저 표가 중요한 건 여당이나 야당이나 마찬가지이다.과거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선거철 토목공약”이라고 강력한 비판적 입장을 냈던 여러 정치인들이 “생각이 바뀌었다”라며 입장을 내며 가덕도 신공항 찬성으로 돌아섰다. 그저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이다. 그저 표를 얻을 수 있다면 무슨 말이든 할 수 있고 어떤 신념이든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선심정치는 정치권의 단골 메뉴이다. 선심정치는 금년 봄 선거에서도 큰 이슈였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재난지원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전략과 이를 통한 선심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은 똑같았다. 재난 지원금이 어떻게 힘들어하는 국민을 돕느냐 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배분해야 표를 얻을 수 있느냐에만 집중했다.드디어 야당인 국민의힘이 김해신공항 확장안 백지화에 따른 출구 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무조건 반대하기엔 부산권 의원들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가덕도 신공항을 무조건 반대하는 대신 대구 통합공항 이전과 함께 타당성을 검토해보자는 신중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고 한다. 국민의힘이 가덕도 신공항을 무조건 불가에서 검토 쪽으로 변화하는 분위기로 흐르자 부산·경남지역에서 당 지지율이 상승하는 현상을 보였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나라가 네꺼냐”는 구호가 태극기 부대의 단골 메뉴였다면 아마도 지금 우리가 표만 쫓는 정치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이것일 것이다.나라가 정치인들의 것인가? 나라가 진정 그들의 표를 얻는 도구일 뿐인가. 왜 소신 있는 철학과 발언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말만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이라고 국민을 생각하는 척만 하지 말고 진정 국민의 편에 서서 국가의 이익만을 위해서 당당히 소신을 펼치는 그러한 선량을 보는 것은 한낮 꿈일까?

2020-11-25

마음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마음이 없는 사람은 없다. 의식이 전혀 없는 식물인간이라면 몰라도 살아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마음이다. 비정상적인 사람인 미치광이나 사이코패스도 나름의 생각이나 감정, 욕망, 의지 따위가 있을진대 그것이 그들의 마음인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마음이고 너무나 흔하게 쓰는 말이지만 막상 마음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막연해진다. ‘사람의 내면에서 성품·감정·의사·의지를 포함하는 주체’ 라는 것이 ‘마음’이란 낱말에 대한 대한민국문화대백과사전의 풀이다. ‘마음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생각, 인지, 기억, 감정, 의지, 그리고 상상력의 복합체로 드러나는 지능과 의식의 단면을 가리킨다.’는 영국 옥스퍼드사전의 정의도 다르지 않다. 그런 풀이나 정의로 미루어 볼 때 사람의 마음을 형성하는 요소 중 일부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후천적인 교육이나 경험을 통해 갖게 된다는 걸 알 수 있다.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말이 있다. 불교 ‘화엄경’의 ‘보살설게품’에 나오는 말로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는 뜻인데, 원효대사의 설화와 함께 널리 알려진 말이다. ‘원효가 불법(佛法)을 공부하기 위해 당(唐)나라로 유학을 가는 길에 날이 저물어 잠자리를 찾던 중 어느 동굴을 발견했다. 그 동굴에서 자다가 목이 말라 잠결에 물을 찾아 마셨는데, 다음날 일어나보니 그곳은 동굴이 아니라 무덤이었고, 잠결에 달게 마셨던 물은 그 무덤의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는 구역질을 했는데, 그 순간 원효는 크게 깨닫고 당나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렸다’는 이야기다.같은 물이라도 그것을 인식하는 마음에 따라 깨끗하고 시원한 물도 되고 더럽고 구역질나는 물도 된다는 것이다. 그렇듯 생각과 감정과 오감의 작용에 따라 변화무쌍한 것이 마음이지만, 그 내면 깊숙한 곳엔 영구불변의 청정무구한 본성(本性)이 있다는 것이 마음공부 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인 것 같다. 그것을 참나(眞我)라고도 하고 불교에선 불성(佛性)이라고도 하는데, 더럽혀진 마음을 끊어버리고 청정심(淸淨心)으로 돌아가는 것이 해탈이고 열반이라는 것이다.그 ‘참나’에 닿아있는 마음을 양심이라고 한다. 참나는 온 우주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양심의 소리란 바로 그 참나의 소리요 우주의 소리라는 것이다. 종교인이라면 하느님의 말씀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사람이 몸을 함부로 굴리거나 방치하면 병들고 망가지는 것처럼 마음도 제대로 관리를 안 하면 오염되어 병들거나 왜곡되기 마련이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온갖 불화와 비리와 참상들은 참나와 단절되고 양심에서 멀어진 마음이 불러오는 것들이다. 가장 비양심적인 집단이 정치집단이라는 말이 있다. 정치도 양심에 근거하지 않아서는 결코 바람직한 결과를 기대할 수가 없다.비록 위정자들이 모두 양심에 털 난 자들일지라도 국민들이 잘 감시하고 감독해 함부로 양심에 어긋난 짓을 못하도록 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 지금 대한민국은 양심과는 옹벽을 쌓은 자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도 오히려 그들을 비호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

2020-11-25

가을 상념(想念)

탄탄 스님포항 운제산자장암 감원중앙승가대 강사하루하루가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아니한, 무료하고 지루한 삶을 견뎌내며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게 우리네 인생사다. 가끔은 짜증나고 속상하고 우울하고 또 극도의 분노스러운 일도 있지만, 때로는 그리운 사람도 있었고 만나면 반갑고 다정한 그 누구도 있기 마련이다.어느덧 세월을 무심히 살아가노라면 가끔은 뿌듯했고 따듯했으며 마음을 녹여준 사람도 있었다. 또 어떤 날은 입을 내밀며 화를 내고 지껄이며 남의 흉을 보기도 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떨 때는 일상에서 생기는 평범한 일들을 겸허히 잔잔하게 바라보게도 되고 패배적이고 비관적인 삶도 누군가의 응원에 힘입어 용기백배하여 다시 용을 써보기도 했다.인간 군상들의 사는 모습은 다 오십보백보라지만 희망조차 없다면, 꿈이 없다면, 더욱 팍팍하고 건조한 삶이리라. 더구나 요즈음처럼 팬데믹 시대에 우리네 삶의 미래는 현재보다 나아질 거라는 자기 암시나, 현재의 고달픔도 잠시라며 스스로 위안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최선책이 아닐 수 없다.차분하게 저물어 가는 이 가을에 이 세상 어떠한 것이든 견고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체험한다. 모든 것은 허물어지기 마련이듯이 인생의 아름다운 청춘의 날도 덧없이 흘러가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일 뿐이며 인생에서 열렬히 추구했던 그 어떠한 것도 결국 영원한 것은 없다.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이 우주도 언제인가는 허물어지는데, 고작 백 년도 살 수 없는 인생에서 그 무엇이 영원할 텐가.과학적 사고에 의하면 우주는 빅뱅으로 이루어져 우주 성립 초기에는 시계 제로의 혼돈 그 자체였다. 빅뱅이 시작되고 우주가 생긴 지 1초쯤 지나 우주의 모든 별과 공간은 작은 땅콩 크기로 집결되어 있었지만, 폭발에 이어 팽창은 계속되었다.음양 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팽창하고 그 힘은 양이며 양이란 끊임없이 팽창하는 존재이다. 반대급부로 끊임없이 축소해지는 것은 음이라 할 수 있다. 고대의 그리스 철학자들이 우주의 초기 상태를 카오스(혼돈)라고 했다. 우주는 혼돈에서 시작된 것이다. 모든 존재가 혼돈 속에서 정리된다. 세상은 갈수록 혼돈스러운 상황이다. 더욱 불투명해진 미래는 암울하고 예측 불가능하지만 어두움 속에서 밝은 미래를 개척하고자 고군분투해야 하는 것이 인생의 단계다.몇 철이 지나도록 창궐하는 코로나19 전염병 속에서 모든 인류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 중이다. 오직 백신의 출현만을 학수고대할 뿐이다. 나날이 감염병 확진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니 인간이 인간을 접촉하지 못하는 비대면의 시대가 되어 고독감과 외로움 그리고 불투명한 내일은 혼돈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반드시 헤쳐나가 동트는 신 새벽의 붉은 태양의 장엄한 일출을 마주해야 하리라.

2020-11-24

시조와 하이쿠

김규종 경북대 교수하버드 대학교 한국학과에 재직하는 푸른 눈의 교수 말이 가끔 떠오른다. 하버드 한국학과 학생들의 시조 생산량이 한국의 모든 시조 시인의 생산량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시조를 짓는 일은 학생들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어휘 운용능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단시조(평시조)는 3장 6구 45자 내외의 정형화된 형식을 가진다. 단시조의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 다소 길어진 형식이 장시조(사설시조)다.현대시조로 오면 이런 틀이 작동하지 않는다. 1968년 발표된 이호우의 ‘개화’ 같은 작품이 좋은 본보기다. 이런 방식으로 문학 장르는 탄생과 변화-발전 및 쇠퇴와 소멸을 거듭한다. 세상만사 모든 것은 태어남과 사멸을 운명으로 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북아 세 나라의 정형화된 시가형식은 각기 다른 양상을 가진다. 5언절구(고시)나 7언절구(고시)의 한시(漢詩)와 우리의 시조, 그리고 일본의 하이쿠(俳句)를 비교해보는 일도 흥미롭다.고려 후기에서 조선전기에 형식이 마련된 시조는 적어도 600년의 역사를 가진다. 일본의 하이쿠는 마쓰오 바쇼(1644∼1694)가 기틀을 세웠으니, 350년 정도의 연륜을 가진다. 5-7-5 17음절을 바탕으로 창작되는 하이쿠에는 계절을 나타내는 어휘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예컨대 “두견새 운다 지금은 시인이 없는 세상”이라는 바쇼의 하이쿠에서 우리는 봄이라는 계절을 읽는다, 두견새(접동새, 자규)가 주로 우는 시절이 5-6월 봄철이기 때문이다.일본에서 하이쿠를 짓는 사람은 적어도 700만 이상이다. 세계적으로도 하이쿠는 널리 알려진 단시(短詩) 형식이다. 예전에는 하버드에서도 하이쿠를 많이 가르쳤는데, 요새는 한류의 영향으로 시조를 배우는 학생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시조의 본고장인 한국에서 시조를 즐겨 쓰는 사람들 숫자는 많지 않다. 시조를 쓰는 일이 대단히 어렵거나 불가능한 작업이 아님에도, 사람들은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 생각한다.시를 짓는 일은 나와 자연과 인연과 시공간을 생각하는 것이다. 나의 삶이 맞닥뜨린 지금과 여기를 생각하며, 주변의 자연과 관계와 인생 전반을 통찰하는 행위가 시를 짓는 일과 결부된다. 제한된 시공간에서 아웅다웅하면서 살아가는 눈물겨운 일상의 연속선에 인생은 자리한다. 그런 장구한 세월이나 한 대목이 툭, 소리 내며 끊어지는 관계와 사건을 맑은 눈으로 들여다보는 일이 시를 창작하는 행위에 내포돼있는 것이다.요즘처럼 세상 사는 일이 만만찮고 번거로우며 고달픈 시점에는 이런 작업이 여타의 수동적인 행위보다 유용하다.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텔레비전의 수용자가 되는 일보다 연필 한 자루 들고, 종이에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정갈하게 표출하는 행위는 내면의 평정하고 안온한 세계와 만나게 한다. 번다한 일상의 소용돌이를 잠시 피해서 자신의 세계로 침잠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를 일이다.누구나 한때는 시인이었고, 누구라도 시인이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오늘 밤에는 하늘의 별과 달을 올려다보며 시상(詩想)에 문득 젖어보는 일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2020-11-24

부디 시인의 말처럼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나태주 시인의 ‘멀리서 빈다’라는 시이다. 이 시에서 필자의 마음에 오래, 또 간절히 머물러 있는 말은 “부디 아프지 마라”이다. 특히 “부디”라는 말의 울림이 너무 크게 다가온다. 그 어느 해보다 길고 긴, 그리고 더 힘든 2020년도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정말 부디 마지막 남은 12월만큼이라도 세상 모든 사람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인의 뜻에 더 간절한 마음을 보탠다. 그래서 “부디 아프지 마세요!”라는 말을 주문처럼 왼다.필자는 평소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말을 진리(眞理)처럼 믿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할 때면 꼭 이 말을 크게 적어 둔다. 하지만 절대 진리가 사라진 지금엔 이 말 또한 경우의 수에 지나지 않는 말이 되어버렸다. 절대 진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코로나 19와 같은 불가항력 상황이 자리하였다. 그런 상황에서는 죽을 만큼의 간절함도 소용없다.우리 사회는 오래전부터 기적(奇蹟)조차 바랄 수 없는 상황으로 변했다. 시의 내용처럼 나와 너 한 사람으로 인해 아침과 저녁이 오는 아름다운 세상 이야기는 이제 전설에나 나오는 이야기가 되었다. 희망조차 고문이 된 지금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살아야 할까! 암흑천지도 이런 암흑천지는 없다.“노량진 확진자 67명 임용고시 못 봤다” 너무도 가슴 아픈 뉴스 제목이다. 시험 볼 기회조차 빼앗겨 버린 이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전투구를 멈추고 정부는 이들을 위한 특별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그리고 더이상 이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선제 대응을 해야 한다. 이제 곧 우리나라의 가장 큰 시험인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치러진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수험생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금 수험생이 느끼는 제일 큰 압박감은 시험이 아니라,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이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정부의 모습은 수험생들에게 큰 위로를 주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우리는 심리적 방역이라는 말을 만들 정도로 방역 시스템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심리적 방역에만 맡길 수는 없다. 그래서 수험생 부모로서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 시험에 응시하는 모든 수험생과 감독관 등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의무적으로 실시할 것을 제안한다. 수능 관계자 모두가 코로나 19로부터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면 수험생들은 불안감을 떨치고 더 최선을 다해 시험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필자는 지난주부터 수능 수험생을 위해 위의 시를 매일 필사하고 있다. 필사할 때마다 “부디 아프지 마라”라는 부문을 더 힘주어 적는다.

2020-11-24

가덕도 과속 스캔들… ‘특별법 망국병’ 창궐하나

민주당의 ‘가덕도 신공항’ 건설 과속 스캔들이 거의 광풍 수준이다. 김해신공항 검증위가 ‘백지화’라고도 안 했고 가덕도의 ‘가’자도 안 꺼냈는데, 민주당은 동남권 신공항의 입지를 가덕도로 정하고,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도 면제하는 내용의 특별법을 이번 주 발의하기로 했다. 타지역 반발을 의식한 여권은 호남의 서남권신공항과 대구경북(TK)신공항 모두를 특별법으로 처리하는 방안을 끄집어냈다. ‘특별법 망국병’ 창궐로 미구에 나라가 거덜나게 생겼다.김해신공항 검증위 발표 이후 정치권 안팎에서는 ‘고추’ ‘멸치’ 논쟁이 흐드러졌다. 국민의힘 경제혁신위원장인 윤희숙 의원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 논란 관련 “활주로에서 고추를 말릴 수도 있다”며 항공산업 추이 등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이명박 정부에서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도 가덕도 신공항 비판대열에 가세했다. 그는 SNS에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을 공동 발의한 부산시 야당 의원들이 정말 실망스럽다”며 “국내선과 국제선 수요가 지금처럼 계속 없으면 멸치 말리는 공항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조국 전 법무장관은 “고추건 멸치건 활주로에서 말리면 공항시설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고 비아냥댔다.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홍준표 의원의 ‘4대공항 개발론’에 힌트를 얻었는지 “대구 신공항 특별법, 광주 신공항 이전 특별법에 대해서도 여야가 조속히 협의 처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건듯하면 ‘특별법’을 들고나오는 정계 안팎의 고질병이 도지기 시작했다는 느낌이다.‘나라는 망해도 민심을 훔쳐 권력이나 잡자’는 심산이 만연하는 나라 꼴이 한심하다. 나랏돈을 마치 마음대로 나눠 돌려도 되는 공짜 떡보따리로나 여기지 않고서야 어째 이럴 수 있나. 군사정권에서도 보기 힘들던 ‘절차적 민주주의 실종’사태가 만연하고 있다. “부산시민들도 가덕도 신공항을 만병통치약인 듯 떠드는 정치인들의 요설을 경계하는 안목을 가져야 부산이 살 수 있다”는 천영우 이사장의 충고가 귀에 쏙 들어온다. “손바닥만 한 나라에 웬 공항건설 경쟁이냐”던 한 미국 공항전문가의 비웃음이 생각난다.

2020-11-24

백두혈통의 장손 김한솔의 운명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2017년 2월 말레이시아공항에서 김정남은 독침에 의해 사망하였다. 북한 공작원 소행이 분명하지만 사건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며칠 전 미국 시사 주간지 뉴요커에는 그간 궁금했던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에 관한 기사가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김한솔은 마카오에 살면서 프랑스 국제학교에 유학할 정도로 형편이 좋았다. 갑작스런 김정남 사망 후 그에 대한 소재는 오리무중이었다. 이번 ‘자유 조선’ 대표 에이드리언 홍창(36)의 증언으로 그의 최후 행적이 드러났다. 북한 백두혈통의 장손 김한솔은 유랑자 신세가 되어 있었다.북한 세습체제에서 권력보위에 방해되는 사람은 누구나 처벌된다. 집권 초기 2012년 12월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은 공개적으로 처형되었다. 북한 언론은 장성택이 반혁명 부패분자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였다. 장성택의 딸 장금송은 파리에서 자살했고, 고모 김경희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행적이 수상했던 이복형 김정남도 결국 말레이시아공항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김정은의 이복 삼촌 김평일은 외국 대사직을 하면서 떠돌다 평양으로 복귀하였다. 평양의 친형 김정철은 소식이 없고 여동생 김여정은 김정은 권력의 최측근이 되었다.이번 뉴요커지는 김한솔의 마지막 행적을 상세히 보도하였다. 미국 시민권자 홍창은 예일대 시절부터 북한 인권문제의 해결책으로 반북단체인 ‘천리마 민방위’를 조직하였다. 미 해병대 출신 한국계 크리스 안이 이 조직을 돕고 있다. 이 조직이 미 CIA에 연관된다는 추측은 분분하나 확인할 길은 없다. 홍이 이끄는 이 단체는 ‘자유조선’으로 개명하고 지난해 스페인의 북한 대사관도 습격하였다. 2017년 2월 김정남 사망 후 김한솔은 파리 유학 시부터 알고 지내던 홍창에게 긴급 구호를 요청했다. 홍창은 김한솔을 타이페이공항으로 탈출시키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공항으로 이동시키는 수속을 도와주었다.이번 기사에 김한솔의 소재는 분명치 않지만 그가 건재한 것만은 확실하다. 미 CIA가 그를 보호하고 그가 북유럽 아니면 미국에 거주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백두 혈통 김한솔이 매우 불편한 존재일 것이다. 홍창은 공항에서 본 김한솔은 178cm 키에 잘 생긴 외모였으며, 미모의 어머니와 영어를 잘하고 쾌활한 여동생과 함께 있었다고 증언했다. 김한솔은 아버지 김정남의 유산으로 많은 현금을 가졌으며, 북한에서 할아버지 김정일과 낚시하던 일도 토로했다고 한다.북한의 탈북자는 현재 3만5천명을 넘고 있다. 탈북민 중에는 서유럽에 정착한 사람도 더러 있다. 최고 통치자 김정은의 조카 김한솔도 이제 탈북자 신세가 되었다. 그가 남한 행을 택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마카오 국제학교와 파리에서 유학한 그는 안전을 보장 받는 서방 어디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언론에 보도된 그의 모습은 과거의 해맑은 소년의 모습은 사라지고 핸섬한 청년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김한솔의 운명에서 또 다시 분단의 비극을 실감한다. 김일성 가계의 장손 김한솔이 과연 언제쯤 북한 땅을 밟을 수 있을까.

2020-11-24

해넘이 전망대

일몰(日沒)이란 해가 지평선 아래로 완전히 지는 순간의 시각을 뜻한다. 우리 말로는 해넘이라 부른다.보통 일몰이 아름답다고 하는 까닭은 일몰 순간에 나타나는 저녁노을이 있기 때문이다. 서쪽 지평선 부근을 빨갛게 물들이는 저녁노을은 보는 이에게 감동과 낭만을 주기에 족하다. 특히 주변의 자연경관이 아름답다면 그 광경은 황홀경 이상으로 깊은 감명과 추억을 안겨 준다.일몰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세계 3대 일몰이란 이름이 붙여진 곳이 있다.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와 그리스 산토리니섬 그리고 남태평양 피지섬이다. 이곳은 신비로운 석양의 모습 하나로 세계적 관광명소로 소문난 곳이다.산토리니 해안은 하얀색 벽과 파란색 지붕 그리고 석양이 쏟아내는 붉은색이 함께 어울어지면 거의 환상적 경관을 연출한다. 보랏빛 석양으로 유명한 피지섬은 우리나라 젊은이가 즐겨 찾는 낭만의 신혼여행지다.저녁노을은 태양광선이 지평선 가까이 통과하는 동안 파장이 짧은 푸른색의 빛은 미립자에 의해 흩어지고 파장이 긴 붉은색만 관측자가 있는 곳까지 도달하면서 보이는 현상이다. 그래서 저녁노을이 나타나는 다음날은 대체로 날씨가 좋다는 속설이 있다.포르투갈의 까보다로까는 유럽 대륙의 서쪽 땅끝마을이라는 이유 하나로 세계적 관광지가 됐다. 천혜의 자연과 위치를 배경으로 뜨고 있는 핫플레이스는 국내외 얼마든지 많다.지난 8월 대구 남구 앞산 빨래터 인근에 조성된 높이 13m의 해넘이 전망대가 새로운 명소로 인기를 모은다는 소식이다.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사람들로 붐빈다. 전망대서 바라본 대구의 일몰이 새로운 구경거리가 된 모양이다. 이것이 바로 핫플레이스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11-24

수능 일주일… 모임·방문 자제로 위기 넘자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일주일 앞둔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요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 한다. 학생들 사이에는 올 수능을 코로나 수능이라 부른다. 올 수능시험은 코로나와 겹쳐 그들의 불안감은 예년의 두배다.이런 가운데 수도권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어제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로 격상했다. 서울시는 연말까지 ‘천만시민 긴급 멈춤기간’도 선포했다.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세를 잡기 위한 긴급 조치들이 자치단체별로 잇따라 발표되고 있으나 확산세가 얼마나 잡힐지는 의문이다. 일부에서는 지금 상태라면 하루 확진자수가 1천명에 육박할 것이란 비관적 전망도 내놓는다. 이미 3차 유행에 접어든 것으로 방역당국은 보고 있어 전국이 일촉즉발의 위기라 하겠다.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이 아직 보급되지 않은 가운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은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다. 마스크 착용의 효용성은 의학적으로 이미 입증됐다. 마스크 착용이 생활화되지 않은 미국·유럽 등지에서 늘어나는 신규 확진자 수를 보면 이를 짐작할 수 있다.사회적 거리두기도 기준을 잘 지켜준다면 코로나 감염을 최소화할 수 있다. 문제는 연말연시 모임과 행사가 지금부터 본격화될 거란 점이다. 또 수도권에 집중 발생하고 있는 코로나 19의 역내 유입을 잘 막아내는 것도 당면한 과제다.지금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다. 연말연시 모임이나 행사를 시민 스스로가 자제하고 수도권으로의 방문도 가급적 자발적으로 줄여야 한다. 친인척·지인 등의 지역 방문도 최소화해 지역 내 전파를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할 때다.대구와 경북의 코로나 감염 상황은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하다. 수도권이 최근 일주일 하루 평균 확진자 수가 200명에 이르나 대구경북은 하루 10명 미만이다. 전국에서 가장 낮은 발병률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대구에서 발생한 신규 확진자는 대부분이 수도권 등 외부 유입 사례다.수능이 이제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코로나 위기 속에 전국적으로 49만명이 모이는 가장 리스크 큰 행사가 치러진다. 멈출 수도 없다. 수험생의 안전한 시험을 위해 국민 각자가 방역수칙을 지키고 모임·방문 등을 자제해야 한다. 코로나 1차 대유행을 경험한 우리 지역은 지금도 그 악몽을 잊을 수가 없다.

2020-11-24

스마트폰 없는 주말

현대인들은 하루 중 어떤 물건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까?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스마트폰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일단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한다. 밤새 확인하지 못 한 문자나 메일을 보며 답장을 한 뒤, 포털 사이트 어플에 들어가 실시간 검색어를 클릭한다. 이동하거나 짬짬이 시간이 날 땐 습관적으로 SNS에 들어간다. 지인의 사진에 ‘좋아요’를 클릭하고 인기 게시글을 빠르게 훑는다. 어느 때엔 이미 본 것이라도 또 본다.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엔 독서등 하나만 켜둔 채 침대에서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추천으로 보기 시작한 드라마가 취향에 맞지 않을 때나 삼십 분이나 걸려 클릭한 영상이 오 분도 못 가서 종료 버튼을 누르고 마는 순간엔 길을 잃은 사람처럼 난감하다. ‘내 황금 같은 쉬는 시간을 삼십 분이나 소비했는데! 어서 더 재미있는 걸 보여줘!’ 답답한 마음에 아무거나 눌러보지만 어느 것 하나 만족하지 못 하고 힘만 빠지게 된다.인터넷 세계는 한 번도 가보지 못 한 이국적인 거리를 보여주고 다양한 언어를 들려준다. 손가락 터치 몇 번만으로도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아이디어를 얻는다.문제는 많은 이들이 스마트폰이 없을 때 불안을 느끼는 ‘스마트폰 중독’에 걸린다는 것이다. 디지털 세계에 중독되어 지나친 시간을 소비하는 탓에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는 경우가 크다. 기억력과 집중력 저하, 거북목, 손목 통증 등 다양한 몸의 문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한국과학기술개발원에서 진행한 설문 결과 우리나라에서 스마트폰 중독군에 속하는 사람은 39.8%, 위험군에 속한 사람은 19.5%로 상당수가 이미 스마트폰 중독에 해당한다고 한다.그러나 자신이 중독인지 아닌지 묻는 문항에서는 단 1퍼센트만이 스스로를 스마트폰 중독이라고 답했다. 이처럼 스마트폰 중독은 자신이 중독인지 의식조차 할 수 없다는 문제점도 있다.나 또한 중독을 안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되자 디지털 디톡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디지털 디톡스란 디지털(digital)과 ‘독을 해소하다’라는 뜻을 가진 디톡스(detox)를 결합한 용어로, 디지털 기기 사용을 잠시 중단하고 휴식을 통해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디지털 디톡스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가장 쉽게 해볼 수 있는 건 휴대폰 사용 시간을 정하는 것이다. 주 업무 외에 인터넷 서핑 시간을 제한하여 정하거나, 자기 전 휴대폰을 침대에 가지고 가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해볼 수 있다. 정기적으로 계속 울리는 어플의 각종 알람을 끄거나 필요 없는 어플을 삭제하는 방법도 있다.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시간에는 집중력을 요구하지 않는 멍 때리기나 단순 취미 활동, 산책을 통해 질 좋은 휴식을 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디지털 디톡스를 돕는 각종 어플도 있다. ‘스테이프리(StayFree)’는 원하는 시간만큼 핸드폰 사용을 제한하고 사용 시간과 사용 빈도를 상세히 알려준다. ‘타임스프레드’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15분마다 1캐시씩 적립된다. 캐시를 모아 아이스크림이나 음료 등 원하는 물건으로 교환할 수 있다.‘스라밸’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스마트폰의 사용 시간을 제한하도록 돕는다. 스마트폰 잠금 뿐만 아니라, 자녀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공유하고, 데이터 사용량을 확인할 수도 있다.‘Forest: 집중하기’는 숲에 씨앗 하나를 심는 것으로 시작한다. 스마트폰을 쓰지 않을 때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된다.하루에 한 그루씩 나무를 만들어 숲이 되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으며 전 세계 사용자와 자신의 숲을 공유할 수도 있다. 프리미엄 버전을 따로 구매했을 때 아프리카에 실제 나무를 한 그루씩 심을 수도 있다.디지털을 사용할 수 없는 새로운 여행지도 주목받고 있다. 강원도 홍천의 ‘힐리언스선마을’은 휴대폰 통신망이 잡히지 않는 곳에 위치해, 마을에 들어섬과 동시에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수 없다. 잣나무 숲길 걷기와 명상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고, 이곳에서 제공되는 모든 음식이 저염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신체 디톡스 또한 진행할 수 있다.경상북도 영주에 위치한 ‘국립산림치유원’은 숲의 다양한 환경요소를 활용하여 인체의 면역력을 높이고 신체와 정신 건강을 회복시키는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이곳은 TV가 설치되어 있지 않고 와이파이 또한 쓸 수 없다. 디지털과 단절된 채 오롯이 홀로 숲속을 걷거나 휴식하며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회복한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사실 장시간 손에 쥐고 있었던 스마트폰을 갑자기 내려놓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자주 사용하던 앱을 화면 안에서 따로 분리하여 정리한 뒤, 하루에 십 분에서 십오 분씩만 사용할 수 있도록 스스로 제한했다. 종이책을 읽는 것과 종이에 메모를 하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했고,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시간에는 집안일이나 취미 같은 단순하고 가벼운 일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면서 혼자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간 일과를 파악하기 위해서 휴대폰 속 달력과 메모장을 번갈아 열어 보았다면, 이제는 멍하니 생각하는 시간 속에서 일과나 약속을 정리한다.그러면서 어린아이와 눈이 마주칠 때에는 용기 내어 손을 흔들어 보기도 하고, 노선을 묻는 이에겐 길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어르신께 지하철 자리를 내어드리면 내 짐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두겠다는 고마운 말도 받는다. 평소엔 스마트폰만 붙잡고 있을 두 손이 조금 쓸모 있게 부지런해졌다.가을이 지나간다. 지금 사는 집은 창이 무척 커서 울긋불긋 물든 나무를 내려다보는 일이 즐겁다. 스마트폰이 없는 주말엔 창문에 붙어서 글도 쓰고, 일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그간 미뤄두었던 고민도 한다. 좋아하는 길을 산책할 땐 가을이 끝나간다는 아쉬움 때문인지 눈으로 천천히 풍경을 뜯어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계절의 냄새도 맡아본다. 카메라를 꺼내는 대신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이 좋은 순간을 기억하려고 “또 오자”는 말을 또박또박 건넨다.디지털을 스스로 제한했을 때, 그렇게 스스로 필요한 때에 맞춰 조절할 수 있을 때에 자신이 일과 쉼의 경계 중 어느 부분에 위치해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스스로 일상의 균형을 재어보며 정작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인지, 내게 현재 어떤 게 중요한 지 정리해 볼 수도 있다. 비록 스마트폰이 없는 일상은 고요하고 심심하지만 잔잔히 오래 이어지는 소소한 기쁨은 무척 크다. 주말 하루 만큼은 스마트폰을 멀리 두면서, 올해의 가을을 천천히 잘 보내줄 것이다.

2020-11-24

국수 언제 먹여줄거야

나는 국수를 싫어했다. 첫애를 갖기 전까지 그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임신을 하자 국수가 자꾸만 먹고 싶었다. 국숫집 순례를 다녔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동빈동에 있는 여러 색깔의 면을 파는 칼국수 집이 단골이었다. 그걸로 부족해 남편이 퇴근길에 한일 냉면에 들러 매콤한 비빔냉면을 포장해온 것만도 여러 번이었다.남편 말로는 돌아가신 시할머니가 하루 두 끼 정도 면을 드셨다 한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이 라면이라고 할 정도로. 배 속에 아이가 할머니 식성을 닮았던가 보다. 그 아이가 지금 청년이 되었고 면을 여전히 즐긴다. 나는 임신했을 때 입맛을 기억하는지 싫어하진 않게 되었다. 아들이 스마트폰까지 이용해서 끓여주는 늦은 밤의 라면이 몸매를 두껍게 만들고 있다.남편이 잘하는 음식 중 하나가 잔치 국수이다. 일단 국물부터 기가 막히게 만든다. 고명까지 부엌에서 콩콩콩 만들어서 양념장까지 곁들여주니 밤 열 시라도 한 젓가락은 먹게 된다. 이 또한 나를 살찌게 하는 이유다.구룡포 시장 국숫집에 갔다. 이번 방문이 몇 번째인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KTX매거진에 소개될 정도로 이 집이 요즘 인기이다. 처음 갔을 때는 쌓아 놓은 면발만 보고 돌아왔다. 이번엔 마침 말린 면발을 자르고 포장하는 것까지 볼 수 있었다.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들을 한 곳에 담아 놓으셨다. 무엇에 쓰냐고 물으니 다 쓸데가 있단다. 애교 섞인 웃음으로 가르쳐 달라니 따로 사가는 이가 있단다. 가져가서 무얼 하는지 모르시냐고 꼬치꼬치 물으니 국수를 살 거냐고 한다. 네, 팔아드릴게요 하며 또 여쭈었다. 새도 먹고 짐승도 먹는단다. 아하! 할머니 혼자서 사람 먹이고 짐승도 먹이고 새도 먹인다. 거룩한 직업이다. 집에 도착하니 부엌에 일찍 귀가한 우렁각시가 물을 끓이고 있다. 내가 국수 사 올 걸 알기나 한 것처럼. 저녁으로 따끈한 잔치 국수 한 그릇 먹었다. 뭐니 뭐니 해도 내 손 안 가고 얻어먹는 음식이 제일 맛있는 법이다./이진아(포항시 남구 중앙로)

2020-11-23

조바심내다

할머니가 조를 추수하고 있다. 창 넓은 밀짚모자를 쓰시고 동그마니 앉아서 조 이삭을 말려 두드리고 있다. 가까이 가 보니 손에 든 것은 법주 빈 병이다. 그 모습이 재밌어 옆에 앉아 이것저것 여쭈었다. 이거 떨어서 뭐 하실 건지, 자식들 오면 준다기에 자식은 몇이나 되는지, 얼마나 자주 오는지 묻자, 좋은 회사에 다닌다며 자랑도 하셨다.친구 아들이 주말에 에버랜드를 다녀왔단다. 사진을 보니 신난 표정이다. 그런데 돌아다니다 용돈을 잃어버렸단다. 에고, 아까운 거, 얼마나 속상했을까. 내 어릴 적 그날이 떠오른다. 할아버지 삼촌이 집에 다녀가시면서 주신 용돈을 모으고 모아 운동회날에 군것질하려고 들고 갔다. 체육복 주머니가 얕아 어디서 흘린 건지 솜사탕 하나 겨우 사 먹고 하늘로 날아간 내 용돈. 학교 운동장 가의 나무 밑에서 기다리던 할머니와 가족들에게 달려갔다. 잃어버린 돈 때문에 속이 상한다고 울먹거리자 삼촌이 잃어버린 니가 죄 많다고 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발길질을 하며 울어버렸다. 그걸 위로라고 하는 말인가. 지금 생각해도 서럽다.오래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상처를 줬다. 가슴이 너무너무 아파서 놀러 온 친구에게 넋두리했다. 그럼 그 사람이랑 다신 보지 말면 되겠네 한다. 그걸 위로라고. 내 마음을 알아 달라는 거지. 누가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했나.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는 거지. 어줍잖은 충고를 하라고 했나. 속상하겠다 하며 밥이라도 먹든지 소주 한 잔이라도 따라주면 그만인 것을. 나도 남자지만 남자들은 위로하는 방법을 모른다. 운전면허처럼 위로면허도 따도록 법으로 정하면 좀 나아지려나.타작한다는 말을 옛날에는 ‘바심’이라고 했다. 조를 추수하면 그것을 비벼서 좁쌀을 만들어야 하는데 쉽게 비벼지지 않는다. 그래서 방망이로 두드려서 떨어낸다. 쪼그린 할머니 옆에 앉아 법주 한 병 나발불고 해질 때까지 조바심이나 내야겠다./이지헌(구미시 양호동)

2020-11-23

동서뎐

현관문 앞에 동서가 귤 한 봉지를 두고 갔다.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덤으로 얻은 것. 시월드이다. 그중에 제일 고마운 존재가 동서이다. 내가 시집가서 십 년이 지나도록 시동생이 독신이어서 동서 구경을 못 하다가 뒤늦게 맞은 식구이다.나와 나이 차가 많이 난다. 그런데도 내게 잘 맞춰주며 시댁에 적응을 잘해주었다. 그래도 신세대답게 내가 바꾸지 못하던 것들도 웃으며 자연스럽게 만들어버렸다. 아버님 앞에서 눕는다던가 바닷가 시댁에선 먹지 않던 배추전과 솎아낸 푸성귀로 만든 겉절이도 슬쩍 밥상에 올려놓았다. 나는 조심스러워 어머님이 하라는 음식만 했었는데 지금은 모두 동서의 음식을 좋아한다.똑순이라 물건도 잘 고른다. 시댁에 냉장고나 세탁기를 바꿔드려야 할 때도 전자매장에 가서 장단점을 잘 따져 묻는 걸 보면 매의 눈을 가졌다. 여기저기 인터넷에 가격도 찾아서 비교하고 찬찬히 살핀다. 나처럼 대충 가격 보고 사는 그런 엉터리 주부와는 차원이 다르다.나와 닮은 점이 하나 있다. 건망증이 심하다. 그것도 아주 심하다. 어느 정도냐면 시댁에서 출발해서 집에 도착하니 자기 부츠 대신 어머님 슬리퍼를 신고 있던 일, 조카가 아기일 때 아기 짐을 몽땅 현관에 두고 가기도 해서 어머님을 놀래켰다. 그래도 ‘얼라’를 놓고 간 게 아니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어머님은 내 건망증을 보고 걱정했는데 더한 아래 동서를 보더니 두 손 다 들었다 하셨다며 웃으셨다. 젊디젊은 나이부터 그러면 나이 들어서 어쩌려고 그러냐고 한걱정이 늘어지셨다.그런 동서가 자꾸만 헛갈리는 일이 있다. 남편과 시동생이다. 얼마 전에도 호박잎을 따다가 저기 고추밭에서 오이고추를 따는 남편 뒷모습에다 “여보”를 외치며 찾았다. 남편이 고개를 들자 “엄마야” 하며 방으로 뛰어들어 간다. 자주 그런다. 난 분명 잘 생긴 시동생과 조금 더 잘생긴 우리 남편이 구별되는데 말이다. 동서 덕분에 또 한 번 웃고 간다./최순자(포항시 북구 용흥동)

2020-11-23

골목길 소경

오래된 동네의 골목길은 내가 즐겨 찾는 사색의 장소이다. 지치고 힘이 들거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면 안식을 위해 고향을 찾듯 발길이 가는 곳이다. 그 골목길들은 대부분, 숨을 몰아쉬어야 할 만큼 가파르고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그 언저리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사람들의 굴곡진 삶을 고스란히 닮았다. 겹겹이 모여 서로의 어깨를 기대고 있는 투박한 지붕 아래로 몸 하나 겨우 들어갈 만한 대문이 나 있고 그 대문 앞에는 자그마한 콘크리트 계단이 한두 칸씩 디딤돌처럼 자리하고 있다. 좁고 작은 부족함이 일상이 되어있는 미니멀 라이프의 공간이다. 풍족함의 정도가 과해서 불필요함이 넘치는 지금의 미니멀 라이프가 태초부터 다른 이유로 존재했었던 그곳이다. 가난이라는 불편함으로 힘에 겨워 한숨지으며 벗어나려 애썼던 미니멀 라이프였을 것이다. 나는 내가 찾는 동네에 대한 객관적 정보와 기존의 주관적 관점에 대한 지향을 배제하고 사진 작업에 임한다. 오롯이 나만의 시공간 속에서 본능적인 심미적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가에 집중한다. 이러한 나의 작업은 19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생겨난 예술사조인 미니멀리즘에 근거한다. 대상으로의 접근에 있어 추론적인 접근을 피하고 꾸밈과 표현을 자제하여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형태와 색상을 통해 나의 내적 지향성에 충실해지려 한다.오래된 골목길은 나에게 그리움의 고향이 되기도 하고, 편안한 친구가 되어 주기도 하며, 가슴 설레는 연인이 되어 있기도 하다. /박숙희(사진작가)

2020-11-23

이 계절도 기러기 날아가듯… 울산 석남사(石南寺)

떠나는 가을이 아쉽다. 일주문 안에는 늦가을 풍경이 전하지 못한 인사를 부여잡은 채 우리를 기다린다. 초췌한 계절의 끝자락과 잔뜩 흐린 하늘, 사람들의 발걸음에는 약간의 고독과 우수가 실려 있다.유모차를 탄 손녀의 손에 들려진 나뭇잎 하나, 돌 지난 아이가 한참을 들여다보고 코로 가져가 냄새도 맡는다. 그리고는 손에서 놓지 않는다. 이 작고 아름다운 교감을 바라보며 모든 생명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대화를 나누다 수시로 찾아드는 적적함에 가끔은 까칠한 허공을 응시할 수 있어서 좋다.곧게 뻗은 700m의 거리가 지겹지 않다. 누구나 자연 속에 서면 몸과 마음은 넉넉해지고 상대의 마음을 살필 줄 아는 배려심도 생긴다. 몸살과 감기 기운으로 힘든 몸을 추스르고 나온 나도 자연의 섭리 앞에서는 겸허해진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계절을 즐기며 반야교를 건넌다.석남사는 통도사의 말사로 헌덕왕 16년(824년), 최초로 우리나라에 선을 도입한 도의 선사가 호국기도도량으로 창건한 선찰(禪刹)이다. 창건 당시 화관보탑(華觀寶塔)의 빼어남과 각로자탑(覺路慈塔)의 아름다움이 영남 제일이라고 하여 석남사(碩南寺)라 하였다고 한다. 가지산의 별명이 석안산(碩眼山)이기 때문에 석안사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하지만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뒤 몇 번의 중수를 거치고, 6.25전쟁 이후에 폐허가 되었던 절을 1957년 비구니 인홍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크게 증축하여 비구니 수도처로서 각광 받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최대 규모의 비구니 종립특별선원으로 정수원, 금당, 심금당 등 세 곳의 선방에서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고 있다. 정수원은 여느 선방처럼 동안거와 하안거 결제, 해제를 지키지만 금당은 해제가 따로 없이 수좌 스님들이 모여 정진하고 있으며 심검당은 노스님들이 자유롭게 수행한다고 한다.누하진입식으로 침계루를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석가탑을 닮은 삼층 석가사리탑이 크지 않은 마당을 지키며 우뚝하다. 스리랑카 스님이 가져온 사리를 모셔놓은 대석탑이다. 대의 선사가 세웠다는 소석탑은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인 극락전 쪽으로 돌아가면 만날 수 있다. 연륜이 쌓인 탑은 뒤로 보이는 선방 때문인지 정숙한 여인과도 같은 품격이 흐른다.작지 않은 사찰이지만 전각의 위치나 정원의 짜임이 빈틈없이 아름답다. 영남 알프스라 불리는 영남 9봉 중 가장 높다는 가지산이 넉넉하게 절을 품어 주어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아늑하고 평화롭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지만 절은 한 순간도 흐트러짐 없이 조용하다.대웅전 뒤로 난 계단을 따라 오르면 도의국사의 사리탑이라고 전해지는 보물 제 369호 승탑이 나온다. 정갈하게 비질이 된 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모든 번뇌가 사라진다. 스님 한 분이 정원에서 풀을 뽑으며 통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멀리 사는 스님과 안부 인사를 나누는 흔하디흔한 대화가 마음을 아리게 한다. 육신을 절집에 가두고 사는 스님들의 절제된 삶 속에 녹아든 각별한 동료애가 유난히 애틋하다.삶은 인연의 늪이며, 대부분의 인연은 그리움을 동반한다. 마음속에 달처럼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이 가을 마음껏 그리움에 젖어들고 싶다. 젊은 날, 친구와 둘이서 탑돌이를 하던 승탑이 변함없이 거기 그 자리에 서 있다. 그 때는 재미삼아 해보던 탑돌이였다. 문득 내 생활 반경에서 사라진 친구의 소식이 궁금하다.나이가 들수록 만남이 조심스럽다. 친한 벗을 잃고부터는, 남은 인연조차 이별의 무게로 클로즈업 될 때가 있다. 삶의 터전이 바뀌면서 새로운 범주의 사람들을 알게 되고 친분 있게 지내던 사람들과는 소원해졌다. 소식이 뜸하거나 끊어진 인연들도 나뭇잎 지고 새잎 돋듯 무탈하게 지내기를 기도한다.두 손을 모으고 마음도 모아 탑돌이를 한다. 하나씩 떠오르는 인연들, 그들과 가장 아름다웠던 한 때를 떠올리고 싶은데 서둘러 꿰맨 상처자국처럼 기억하고 싶지 않은 흔적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좀 더 사랑하고 배려하지 못했던 시간들도 보인다. 젊은 날엔 인연의 귀함을 몰랐다. 아둔했던 나에게 지혜의 눈은 언제나 한발 늦게 찾아오는 모양이다.조낭희 수필가사색에 잠겨 승탑을 돌고 있는데 딸이 손녀를 안은 채 내 뒤를 따른다. 성큼성큼 따라오는 딸의 건강한 발길에 묻어나는 소원들, 해맑게 웃는 손녀의 하얀 앞니에 머무는 계절은 얼마나 눈부신가. 소소하고 작은 것들이 아름다운 날, 나를 성장시켜 준 모든 인연에 감사하며 탑돌이를 마친다.반야교를 건너 내려오는데 계곡에 홀로 앉아 있는 한 남자가 쏠리듯 눈에 들어온다. 남자의 가슴 속으로 하염없이 가을이 쌓인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하얀 수첩이 눈길을 끈다. 그는 분명 시인이거나 시를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계절의 품에 영혼을 맡기고 앉아 있는 그에게 훌륭한 시적 영감이 내려앉기를 기도한다.남과 나를 향해 마음이 모아지는 계절, 가을은 무언지 모를 허전함을 남긴 채 기러기 날아가듯 또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2020-11-23

고양이의 눈에 비친 기묘한 세상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그다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라도 당연스레 알고 있을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1867~1916)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1905년 1월 하이쿠 잡지인 ‘호토토기스’에 그저 장난처럼 실은 이 소설로 소세키는 일약 일본의 국민작가가 될 수 있었다. 도쿄제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이곳저곳의 중, 고등학교에서 교사나 대학의 강사를 하고 있던 소세키는 대학 친구인 하이쿠 시인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1867~1902)를 따라 하이쿠를 짓거나 하면서 문학 창작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별로 대단한 시인은 못됐던 소세키는 시키가 만든 하이쿠 잡지에 예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게재했고, 그로부터 메이지 말년에 가장 유명한 작가가 됐다. 고양이의 눈으로 비친 성격이 고약한 서생에 불과한 소세키 자신과 그가 바라보고 있는 이기적인 인간에 대한 풍자가 당시의 독자들에게 흥미를 줬을 것이 틀림 없다. 여전히 이 소설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우리에게 흥미를 주는 존재이다.사실, 고양이의 눈을 통해서 자신을 바라본다고 하는 시선이나 상상이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어차피 고양이의 마음속에 들어가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작가가 제멋대로 보고 싶은 대로 떠올린 것뿐이다. 고양이 같은 동물이 인간과 비슷한 방식으로 사고하고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인간의 사고를 동물에게 투영하는 인간주의의 기운이 이 소설의 한켠을 붙들고 있다. 하지만, 저만치서 나를 응시하면서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기묘한 자기 논리를 갖고 있는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왠지 그 속에 인간이나 할 법한 생각들을 하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것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의 눈이 주는 응시의 힘이다. 이 소설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를 떠올리며, 그에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을 투영하는 사고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고양이가 바라보고 있는 인간 세계가 바로 작가인 소세키 자신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어쩌면 이 작품의 진정한 재미는 여기에서 나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는 선생 노릇을 고달파하면서 친구들이 올 때마다 불평을 늘어놓고 있거나 서재에서 낮잠을 자면서 펼쳐 놓은 책에 침을 흘리거나 엄청난 양의 대식을 하면서 신경성 위장병을 앓고 있는 소세키의 민낯이 고양이의 눈을 통해 가장 투명하게 그려지고 있다. 이 소설 이후, ‘마쓰야마’에 내려가 교사를 하던 시기를 다루고 있는 소설 ‘도련님’에서 인간의 삶 속에 들어 있는 맹목적 허위의식에 대한 극도의 혐오를 보여줬던 소세키는 여기에서도 다름 아니라 고양이의 눈을 통해 자기 모멸에 가까운 자신의 모습을 재미있게 담아내고 있다.손에 쥐고 있던 동전이 땅에 떨어지면, 그 순간 왠지 그 동전이 내 것이 아니었던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드는 것처럼, 기존에 만들어진 인간 관계들로부터 벗어나 삶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좀 더 기묘해지고, 좀 더 재미있어진다. 우리가 아직 이름도 없는 이 고양이의 눈을 따라 성격 고약한 주인과 그 주변의 인간 세계를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무의식적으로 자동화된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좀 더 새로운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까닭이다. 우리가 목매고 있는 모든 의미들이나 가치들은 고양이의 눈을 통해서 바라본다면,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앞서 마사오카 시키 문하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다카하마 교시(高浜虛子·1874~1959)는 소세키를 기억하는 글에서 소설가로 유명해진 이후의 소세키가 아니라 함께 시를 짓거나 하면서 좌충우돌했을 때의 소세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른바 소세키적인 세계는 여기에서 출발해서 더 먼 어딘가로 나아갔지만, 그 세계의 본령은 늘 이 지점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홍익대 교수

2020-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