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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망각의 싸움

등록일 2021-11-21 18:57 게재일 2021-11-2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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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태수필가
조현태​​​​​​​수필가

퇴근하여 집에 도착하자 대문 우편함에 눈길이 갔다. 자질구레한 자동납부 통지서와 얇은 책 한 권이 꽂혀있었다. 이미 납부된 요금은 이메일로 확인한 내용이었다. 따로 영수 통지서를 보내지 않아도 되는데 매번 우편으로 발송되니 본척만척하고 휴지통에 던졌다. 이런 통지서를 모두 생략한다면 엄청난 종이와 재원이 절약될 텐데. 책만 가지고 들어와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뒤적거렸다.

두어 시간 지났을 때, 전화할 일이 있어 휴대폰을 찾으니 없었다. 아차! 자동차 거치대에 두고 왔구나. 그새 부재중 착신이 네 개가 떴다. 차례대로 전화를 했더니 하나같이 전화도 받지 않고 뭐가 그리 바쁘냐고 타박이었다. 여차저차 하였다고 설명하자 정신을 어디다 두고 그러느냐는 핀잔까지 했다. 근래에 깜빡증이 점점 늘어난다.

살다보면 이러한 깜빡증이 아니라 영원히 잊어버렸으면 더 좋을 일도 있다. 하지만 그런 기억은 반세기가 지나도 또렷이 남아있으니 오히려 애석하다. 특히 가슴깊이 새겨졌던 아리고 쓰린 생채기에 대한 기억은 왜 잊어버릴 수 없을까. 어쩌면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애꾸눈이라고 놀림 받던 기억, 삼층 옥상에서 추락하여 죽지 않고 발목만 박살났던 사건, 애인 빼앗기고 사기 당해도 대거리 한 번 못하고 풀이 죽어 술만 퍼마시던 아픔…. 차라리 야생동물처럼 몇 초 만에 잊어버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더듬어보면 뼈아픈 추억이 쉽사리 되살아나는 감정은 그 당시에 새겨진 상처가 아직 존재하기 때문이다.

불행이 싫어서 얼른 잊고 싶은 반면 행복은 좋아서 오래 기억하고 싶을까. 그러면 행복도 사라지지 않는 상처만큼 평생 동안 잊지 못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좋았던 행복은 상처만큼 오래 기억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노력하는 만큼 행복이 보장된다면 어떨까. 아마도 아팠던 것만큼 오래 간직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좀 더 행복하고픈 욕심이 작용하니까. 그래서 더욱 노력해야 할 터이다. 다시 말하자면 행복은 항상 미완성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욕심’을 빼면 ‘미완성’도 없어지는 계산이 된다. 그렇다면 빨리 잊을수록 좋을 것 같은 아픔은 왜 미완성이 없을까. 당연히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완전한 행복이 되려면 더 이상 행복하려하지 않아야 하리라.

휴대폰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는 사소한 일이든, 생명을 잃을 만큼 엄청난 사건이든 망각했다는 것은 같다. 하찮은 일은 용서되기 때문에 또 잊어버려도 되고, 대단한 일은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다. 좋았던 것은 기억할수록 좋고, 나빴던 일은 잊을수록 좋지 않은가.

기억과 망각이 맞서 싸운다면 어떨까. 싸워서 이긴 자의 쾌감보다 패배한 자의 처절함이 훨씬 더 진할 터이고, 패배는 쉬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싸움에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을 바에는 질 것을 염려해야 할 터이다. 여차하면 시비나 걸고 상대를 깔아뭉개야 내가 살아남는다는 삶의 방식이 너무 식상하다. 기억과 망각이 손잡고 미완성에 도전하는, 그래서 끝없이 노력하고 삶을 경영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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