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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 대선후보들의 ‘열린귀’ 아쉽다

등록일 2021-11-21 18:58 게재일 2021-11-2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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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충택 논설위원
심충택 논설위원

신라 제48대 경문왕 때 경주 도림사 대나무 숲속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들렸다는 삼국유사 설화는 정치권력의 ‘막힌 언로(言路)’를 풍자한 글이다. 현 정권의 메인스트림인 586세대도 대학시절 언론의 자유를 목말라했다. 당시 운동권 학생들에게 거의 유일했던 의사표현의 도구는 신문방송이 아니라 대자보였다. 그러면 그들이 180석 국회의석을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장악한 현 정부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열려 있는가.

지난해 한 대학생이 대학 구내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였다는 이유로 법원이 유죄(벌금 50만원) 판결을 내린 것은 현 정권의 언론관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정부 비판 대자보를 붙인 것에 무단침입 혐의를 씌워 기소를 하고, 법원이 독재 정권에도 없었던 판단을 내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이 또다시 언론장악을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 카드를 꺼내들었다. 연말까지 가동하는 국회 언론·미디어제도개선 특위에서 언론에 대한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을 비롯해 신문법, 방송법 등 언론 관련 법안을 패키지로 논의한다고 한다. 정상적인 언론사의 취재행위를 법으로 차단하고 대자보시대를 열자는 것과 다름없이 생각된다. 문제는 차기 유력 대통령후보들의 언론관도 현 정치권력과 다름없다는 점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최근 자신에 대한 언론보도와 관련 “우리가 언론사가 돼야 한다. 저들의 잘못을 우리의 카톡, 텔레방 댓글로 커뮤니티에 열심히 써서 언론이 묵살하는 진실을 알리자”고 했다. 이 후보는 지난 14일 경남 거창군청 앞에서도 지지자들에게“기울어진 운동장, 나쁜 언론 환경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즉흥연설을 했다. 이 후보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한창 논의 중일 때 이 법안에 대해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은 약하다. 언론사를 망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도 언로가 막혀 소통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변의 충고를 듣는 것을 꺼려해 중진급 국회의원들도 그의 방을 찾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소문이 나오고 있다. 윤 후보가 기자들과의 접촉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소리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언론 인터뷰 등을 최소화하고 기자들이 캠프사무실에 들락날락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대선 경선기간 동안 그의 캠프는 ‘서초동 캠프’라고 불렸다. 캠프가 마치 검찰청처럼 폐쇄적이고 관료화돼 있다는 의미다.

유력 대통령 후보 모두 우호적인 보도를 하는 언론은 가까이하고, 비판언론은 멀리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언론의 근본적 기능이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자이자 비판자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비판을 감당하는 것은 정치인의 숙명이다. 언론은 권력자들의 홍보도구가 아니다. 이재명·윤석열 후보 모두에게 언론에 대한 거부감이나 적대감을 버리고 언론의 견제 비판 기능을 즐길 줄 아는 철학을 가지길 권한다. 권력자가 비판의 소리를 포용하는 역량이 없으면 부패할 수밖에 없고, 역사적으로도 뒤끝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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