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 순대라 불리는 종교가 있다. // 그 종교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 맨 먼저, 자신이 / 평생 삼켜 온 내용물 토해내고 / 전신 뒤집어야 한다. …. 세상에는 순대라는 종교가 있다. / 숱한 고난을 이겨낸 / 그를 위해 식탁 앞에는 커다란 칼과 도마가 / 함께 자리 잡고 / 전신 드러낸 그를 경배하기 위하여 / 숟가락과 젓가락 든 사람들 모여들고 / 경건한 마음으로 / 그 앞에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다.”
문학뉴스 2018년 4월 16일에 게재된 박기영의 시 ‘순대론’의 일부이다. 돼지 창자 안팎을 깨끗이 씻어낸 뒤 당면, 채소, 고기 등 각종 소를 선지에 버무려 그 안에 채워넣고 쪄낸 우리 고유의 음식인 순대. 박기영 시인은 이를 종교로까지 승화시켰다. 수저 들고 ‘경건한’ 마음으로 먹기를 기다린다고 표현한 대로 한국인으로 순대 싫어하는 사람을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서울 관악구에 살던 결혼 초에는 신림동 순대타운을 즐겨 찾았고, 독립기념관을 다녀올 때면 천안 아우내 장터의 병천 순대를 먹고 오기도 했다. 마땅히 당기는 음식이 생각나지 않을 때면 학교 근처 식당으로 동료교수와 함께 순댓국을 먹으러 갔다. 여러 부위의 돼지고기와 순대가 듬뿍 들어있는 순댓국은 서민들의 든든한 한끼 식사이다. 소주 한 잔에 얼큰한 순대술국은 하루 노동의 피로를 풀어주는 훌륭한 ‘소울푸드’도 된다.
성경은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고기를 피째 먹지 말라고 한다. 따라서 순대를 먹는 것은 구약 성경과 유대인의 율법에서 금기를 두 개나 어기는 행위이다. 순대가 비록 대수는 아니지만, 내가 유대교인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지난 11월 초에 한 식품업체가 지저분한 환경에서 순대를 만드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보도가 나가자마자 이 업체에는 거래를 끊겠다는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며칠 뒤에 업체의 회장은 소비자들에게 사죄문을 올렸다. “가난한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맨주먹으로 오늘의 200여 명의 대가족과 400억 매출의 식품회사를 일군 제게 순대는 학교이고 공부이고 생명이고 제 삶의 모든 것”이었다며 다시 일어나 소비자들의 신뢰를 되찾고, ‘K-순대’ 세계화 시대를 개척하겠다는 약속과 다짐도 하였다.
식구 모두 순대를 좋아하여 진공포장된 순대를 사서 집에서 쪄 먹곤 한다. 이 보도가 나가기 며칠 전에도 두 묶음짜리 순대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아니나다를까, 문제의 순대제조업체의 이름이 포장에 찍혀 있었다. 아내는 그 순대를 치워 버렸다. 음식을 남기지도 않고 버리지도 못하는 내가 그 순대를 먹을까 염려해서 나 몰래 버려 버린 것이다. 한동안은 순대를 먹지 못할 것 같다. 순대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트라우마가 생기지나 않을까 걱정도 된다.
우연이겠지만 문제의 순대제조업체의 이름이 내 성의 본관과 같다. 회장의 성이 박씨이니 우리 가문과는 관계가 없을 터이지만, 왠지 사죄문에 마음이 짠하다. 부디 이 기업이 약속을 꼭 지키고 다시 일어섰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번 일이 우리 전통 음식과 길거리 음식의 위생 관리를 더 철저히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