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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책임감

등록일 2021-10-05 18:34 게재일 2021-10-0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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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경 받을 만한 스승이 줄어드는 건 큰 문제다. /pixabay

얼마 전 한 대학의 비대면 수업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오픈 채팅을 통해 강의를 진행한 것, 교수 자신이 집필한 교재를 구입 후 인증하라고 요구한 것, 인증하지 못한 학생을 수업에서 강제로 배제한 것이 논란의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이 사례가 네티즌들의 공분을 산 건, 결정적으로 그가 했던 말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교재를 준비하지 못한 학생을 향해 “가뜩이나 어려운 시절에 강의가 부실해지는 느낌”이라며 “강의를 망치려는 사람”, “강의를 부실하게 만드는 것을 도저히 넘어갈 수 없다”고 비난하며 그를 수업에서 배제했다.

네티즌들이 가장 문제 삼은 것은 그의 태도였다. 정작 본인 또한 오픈 채팅을 통해 대학 강의를 진행하는, 교수로서 성실하지 못한 태도를 보였음에도 단지 교재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학생을 힐난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느낀 분노의 초점은 그가 한 대학의 강의를 맡은 교수로서 책임감 있게 행동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적어도 그는 교수로서, 한 강좌의 선생으로서 학생들에게 최상의 수업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물론 그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 학기 수백만 원을 학비로 내고 제공받는 수업에서 그와 같은 강의 방식을 채택하진 않았을 것이고, 학교 측 또한 그렇게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사정을 옹호하고 싶지는 않은 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최상의 수업을 제공하고자 최대한의 노력을 행해야 하는 게 교수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보고 배웠던 교수들은 모두 그러했다. 어떤 사정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수업을 제공하고자 하는 책임감.

그리고 이 책임감에는 학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도 포함되어 있다. 선생은 제자가 뛰어나기에 선생을 자처하는 것이 아니다. 선생은 제자가 못난 모습을 보이더라도 선생을 자처해야 하며, 혼을 내서라도 그를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그는 제자를 힐난하고 비난했으며, 그를 타일러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기 보다는 수업에서 배제하는 방향을 택했다. 마치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 악덕 상인처럼…. 그 순간, 그는 선생이길 포기했다. 그는 스스로 학점을 사고파는 악덕상인이 되기를 선택했다.

만약 그가 선생이고자 했다면, 그는 학생을 포기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가 교재를 준비하지 못했다면 그에게 교재를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이유를 가르쳤을 것이다. 비록 혼을 내서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보다 나은 수업을 위해 오픈 채팅보다 나은 방법을 모색했을 것이다. 어떤 것이 학생에게 더 나은 선택인지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서 어떠한 고민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아마 문제를 직면했을 때 그가 보인 행동이 권위를 내세우는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른이 사라진 시대라고. 우리가 기대하는 어른이란, 문제를 직면했을 때 그에 합당한 지혜를 베푸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에, 어느 누구도 쉽사리 우리에게 지혜를 제공하지 않는다. 혹자는 그것을 질문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말할 테지만, 우리가 질문을 하지 않는 건 질문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걸 경험적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질문에는 권위로, 요청에는 묵살로 대응받은 경험이 우리를 자연스럽게 위축시켰기 때문이다.

좋은 질문이 나오기 위해서는 질문하는 법을 가르쳐야만 한다. 그리고 질문에는 대답이 돌아온다는 것을 경험시켜줘야만 한다. 권위 대신 해답을 제시하는 것, 혹은 해답을 찾기 위한 방법을 일러주는 것. 우리 시대에 어른이 없다는 것은 아마도 이와 같은 일을 함께해줄 사람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학생들이 선생을 공경하지 않는 것 또한 문제겠지만, 공경 받을 만한 선생이 줄어드는 것 역시 문제인 셈이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수업이 학생에게 제공해야 하는 것은 지식만이 아니다. 그들에게 사회생활을 위한 방식을 가르치고, 문제를 직면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그리하여 삶이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인지를 가르쳐야 한다.

그렇다면 저 사례 속에서, 선생은 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친 것일까. 도대체 그는 무엇을 가르치려고 했던 것일까. “학교는 좋은 학생만 길러내는 곳이 아니라 좋은 교사도 길러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던 채현국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그에게도, 그의 학교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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