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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을까 뜰까, 그것이 문제로다

등록일 2021-10-05 18:34 게재일 2021-10-0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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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봐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눈을 감을 것인가, 뜰 것인가. /언스플래쉬

아가사 크리스티가 추리 소설만 썼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물론, 그녀는 최고의 추리 소설 작가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녀는 80여 편의 추리 소설을 발표했으며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같은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추리 소설 작가로 꼽히며 명실상부 영원한 ‘추리의 여왕’이자 캐릭터와 플롯을 능수능란하게 운용하는 작가로도 정평이 나 있다. 무엇보다 그녀의 작품은 재미있다. 영국의 시인 소피 한나는 아가사 크리스티만큼이나 다양하고 흥미로운 추리 소설을 많이 쓴 작가는 없다고 말했으니, 나 역시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이토록 위대한 작가로 유명세를 날리던 아가사 크리스티는 1930년부터 1956년까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6편의 장편 소설을 발표하게 된다.

이것은 당대의 독자들에게 철저한 비밀에 부쳐진 사실이었다. 이렇게 발표한 작품들은 기존의 아가사 크리스티의 플롯을 따라가지 않는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명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소설에서 벗어나서, 인간 특히 여성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인생의 내밀한 지점을 파헤치며 벼랑에 내몰린 인간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그중에서도 ‘봄에 나는 없었다’는 뛰어난 작품이다. 나는 우연히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책 표지와 제목에 이끌려 아무 생각 없이 도서관에서 집어온 책이었는데, 다 읽을 때까지도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이라고 예상조차 못 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와, 이 작가 정말 대단한데?’하고 작가의 이력을 확인하고 굉장한 혼란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유능한 변호사 남편과 사랑하는 아이들을 가진, 그야말로 완벽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주부, 조앤이다. 그녀는 딸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사막의 기차역에서 발이 묶이게 된다. 가만히 앉아 있거나 사막을 걷는 것 외에는 아무 할 일이 없는 허허벌판에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생각에 잠기고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무시무시한 고요 속에서 그동안 묻어두었던 날카로운 과거의 조각들이 그녀를 아프게 찌르기 시작한다.

조앤의 딸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그녀는 정말 몰랐다. 왜냐하면 결코 알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자신에게 되묻는다.

‘나는 정녕 제대로 살아왔는가?’ 자신을 똑바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이 순간이 그녀에게는 괴롭기만 하다. 이러한 괴로움 속에서 그녀는 다시 한 번 의심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진실일까? 그게 진실이라는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결국 조앤은 생각과 고민을 멈춘다. 그리고 현실로, 거짓되지만 안온한 집으로 돌아가기를 선택한다.

이러한 고민에 빠진 또 다른 문학적인 주인공이 있으니, 바로 ‘햄릿’이다.

햄릿은 그의 숙부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깊은 고뇌에 빠진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이 유명한 구절은 영문학사 전체에서 제일로 꼽히는 명대사이다. 진실을 파헤치고 복수의 칼날을 뽑을 것인지, 혹은 진실을 바라보는 것을 포기한 채로 삶을 지속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놓인 것이다. 혹자는 햄릿이 결단을 미루는 우유부단한 인간상이라고 판단하기도 하지만, 내가 봤을 때는 그렇지 않다.

그는 분명하게 자신의 태도를 결정한다. 햄릿은 비극적 운명과 대면하기를 선택하고 숙부에게 칼을 들이댄다. 그로 인해 자신 역시 비참한 죽음에 내몰릴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 알고 있었음에도.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조앤과 햄릿의 고민의 지점은 같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은 완전히 상반된다. 조앤은 삶에 자리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그럴듯한 현실 속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햄릿은 끝까지 진실을 파헤치고 끝까지 마주한 뒤에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제 발로 걸어간다. 과연 누가 옳은가. 우리는 누구의 손을 들어 줄 수 있고, 누구를 비난할 수 있을까.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이러한 질문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민해야 할 최대의 과제인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진실을 분명히 봐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눈을 감을 것인가, 뜰 것인가. 우리는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서 섬뜩한 삶의 굴레 안에 있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실감한다. 어떤 인물에도 탄식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택하더라도 후회할 수밖에 없다. 그 아이러니가 바로 소설을 읽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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