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인구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지난해엔 인구 ‘데드크로스’(dead cross)가 처음 발생했다. 사망자 수가 출생아보다 많아 인구가 자연적으로 감소하는 현상이다.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OECD 198개 회원국 중 7년째 꼴찌다.
산모가 첫째 아이를 출산하는 시기도 OECD 국가 중 가장 늦다. 첫째 아이 출산 연령을 공개한 OECD 국가(30개국)의 평균 나이는 29.3세(2019년 기준)다. 하지만 한국은 이보다 2.9세 많은 32.2세다. 지난해엔 이 연령이 32.3세로 1년 새 0.1년 더 늘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젊은이들이 결혼을 미루는 추세가 두드러지면서 출산율 감소는 갈수록 심화할 것이다. 이 추세라면 30년 후엔 대한민국 인구는 지금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심각성을 깨닫고 2006년 저출산 대책을 처음 발표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국회 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정부가 2006년 이후 16년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책정한 예산만 총 380조2천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작금의 출산율은 오히려 감소했다.
이유가 뭘까. 예산이 쓰여야 할 곳에 쓰이지 않고 비효율적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유아를 직접 지원하는 예산은 크게 감소한 반면, 저출산과는 상관없는 사업에 예산이 투입됐다. 지난 16년간 책정된 저출산 예산 중 아동, 청소년, 산모를 지원한 규모는 전체 절반을 가까스로 넘는 수준이었다. 이에 반해 청년을 대상으로 한 사업은 저출산 예산의 43.0%를 차지했다.
이런 현상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심화됐다. 대책 첫 해인 2006년 76.8%에 달했던 영유아 대상 예산 비중은 지난해 31.5%, 올해 26.1% 등으로 크게 줄었다. 2015년까지만 해도 자녀 양육 가구를 지원하는 사업만 저출산 예산으로 분류했지만, 3차 저출산 대책이 시작된 2016년부터는 청년의 일자리와 주거 안정을 지원하는 사업도 저출산 대책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올해 저출산 예산엔 △프로스포츠팀 지원 △돌봄노동자권리보호사업 △게임기업 지원 △기술인력 지원 △에코 스타트업 지원 △폐업예정 소상공인 지원 △협동조합 종사자 지원 △지역 문화 기획자 지원 등도 포함됐다. 이들 사업은 저출산 대책으로 보기 어렵다. 가족 여가 진흥이 저출산 대책이라며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데 지원하는가 하면, 대학에서 인문학을 강화하는 프로그램도 저출산 예산으로 둔갑했다. 이러니 저출산 예산을 두고 ‘주머니 돈이 쌈짓돈’이란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수도권 집중 현상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과 인천, 경기를 포함하는 수도권의 면적은 전체국토의 11.8%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인구는 50.1%로 전체 절반을 웃돌았다. 통계를 작성한 이래 처음으로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넘어선 것이다. 지방의 청년들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양질의 교육과 일자리가 몰려 있는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서울공화국’, ‘서울민국’, ‘수도권공화국’이란 말이 등장한 지 오래다.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지역은 심각한 인구 유출에 허덕이면서 수도권과의 불균형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청년들은 수도권 과밀로 지나친 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면서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경향이 뚜렷하다. 결혼 후에도 주택문제나 교육비, 육아비용 등의 부담으로 출산을 엄두조차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고령 인구’, ‘초고령 인구’ 중심사회로 치달으면서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가 엄습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지방소멸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국가 차원에서 여러 가지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지방분권이니, 지역균형발전이니 하는 갖가지 정책들이 우후죽순처럼 고개를 들고 있으나 자리를 만들고 예산만 축내면서 보여주기식 탁상행정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사고 있다.
내년에는 제20대 대통령 선거(3월9일)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6월1일)가 치러진다. 그러나 국가의 존립 기반 자체를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인구소멸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은 공약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대장동’, ‘화천대유’, ‘천하동인’, ‘고발사주’, ‘손바닥 왕(王)’ 등 온갖 비리 의혹과 고자질, 무속 논란으로 대선 키워드가 점철되고 있다.
후보들은 이제라도 인구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국민 앞에 공약해야 한다. 구호에만 그칠 수 있는 경제정책과 주택안정, 일자리 창출, 지역균형발전 공약은 곤란하다. 그동안의 정책들을 점검하고 예산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의견을 수렴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책을 추진하는 게 완성도를 높이는 지름길이다. 인구 소멸은 대한민국 소멸이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