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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우울

등록일 2021-10-19 18:18 게재일 2021-10-2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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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바르트 뭉크의 작품 ‘절규’.

예술가의 뇌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의 뇌와 비슷하다는 견해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미미한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우울한 감정이 창조성을 발휘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정신 분석가들의 결론이 아니더라도 이것은 얼마든지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이다. 역사상 위대한 예술가로 칭해지는 이들은 때때로 우울증을 앓았다. 빈센트 반 고흐, 슈베르트, 말러, 헤밍웨이…. 이들의 작품은 섬세하며 이성적인 동시에 감정을 건드리고 추동력이 있으며 한없이 경계가 넓어지는 경험과 함께 강한 충격을 안겨주기도 한다.

에트바르트 뭉크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대표작으로 칭할 수 있는 ‘절규’를 보고 있노라면 시각적 이미지로 국한되지 않고 청각과 촉각적 지점까지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림에서 얼굴에 손을 대고 있는 인물은 정면으로 관객을 향하고 있다. 관객에게 자신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형태다. 거기에서는 공포가, 절규가, 찢어지는 것과 같은 비명이 흘러나온다. 같은 주제로 그린 그의 소묘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덧붙여 있다.

“두 친구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처럼 붉어졌고 나는 한 줄기 우울을 느꼈다. 친구들은 저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나만이 공포에 떨며 홀로 서 있었다. 마치 강력하고 무한한 절규가 대자연을 가로질러 가는 것 같았다.”

정수리 위로 해가 내리쬐는, 별다를 것 없는 일상적인 날, 친구들과 길을 걸어가던 뭉크는 문득 공포를 느낀다. 그것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관찰한다면 볼 수 있는 이미지가 아니다. 내적으로 발동된 잠재된 불안과 두려움에 가깝다. 그러나 뭉크에게 그것은 분명 실재하는 감각이었을 것이다.

그와 함께 같은 거리를 산책하던 친구들은 느끼지 못했던 원천적인 고통과 슬픔. 뭉크에게 그토록 섬세한 감정의 파동을 일게 했던 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뭉크에게 죽음은 머나먼 추상적 개념이 아니었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나를 폐렴으로 잃었고, 같은 해 남동생 역시 같은 병으로 죽었다. 강압적으로 그를 통제하던 아버지 역시 세상을 떠났다. 뭉크는 “나는 인류에게 가장 두려운 두 가지를 물려받았다. 하나는 신체적인 허약함이고, 하나는 정신병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과도한 불안증세와 심지어 환각 증세까지 겪게 되면서 정신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던 전적도 있다.

그의 작품을 그의 삶과 연결시키지 않더라도 그는 다른 사람보다 확실히 예민하게 감각하는 사람이었음은 확실하다. 그의 내면에서는 강렬한 추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울증이라는 병으로 명명하기에는 부족한, 정신이 망가졌다는 것으로 국한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뭉크는 그것을 외면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응시하고 표현해내려고 노력했다.

그건 뭉크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가끔 유령처럼 속삭이는 텅 빈 목소리를 듣게 된다. 삶의 무용함, 혼란, 외로움, 불가능한 이해와 관계, 붙잡을 수 없는 감정들…. 그것을 듣는 일은 분명히 고통스럽다. 불가해하고 어리석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표현해내는 것 역시 그러하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러나 그것을 듣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예술가들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위대한 작품들은 개인의 고통스러운 투쟁의 결과인 것이다.

우리의 생각의 끝은 어딜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리하여 그 생각의 끝에 도달하게 되면 거기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결코 거기에 가 닿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매번 생각의 과정 중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결코 완성할 수 없는 피안의 세계. 그것을 단지 ‘죽음’이라는 관념으로 치환할 수는 없다.

예술가들은 그곳에 끝끝내 가닿기 위해 늦은 밤 혼자 책상 앞에 앉아 마음껏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 불분명하고 고통스러운 행위가 그들을 좌절시키고 또 기적처럼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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