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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함께 끄는 대한민국

조현태​​​​​​​수필가 유럽 어느 목장에 종자가 좋은 말이 있었다. 어느 날 한 농부가 그 말 네 마리를 구입하였다. 그는 이 네 마리의 말들은 나란히 매어 마차를 끌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멀쩡해 보이는 말들이 농부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말들이 만나기만 하면 사납게 날뛰고 서로 싸우며 무섭게 으르렁거리는 행동을 했던 것이다. 그런 말들을 나란히 매어 마차를 몰게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말들이 따로 흩어져 있으면 전혀 그렇지 않은데 함께 모이기만 하면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내달리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먹이를 주며 달래보기도 하고 채찍으로 벌을 주기도 해 봤으나 사이가 좋아질 기미가 없었다. 농부는 고민에 빠졌다.오랜 고심 끝에 수의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그 말들을 잘 길들일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가르쳐달라고 했다. 수의사도 농부의 설명을 듣고 명쾌한 답을 찾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될지 여러모로 궁리하다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수의사는 네 마리의 말들을 마구간에 몰아넣었다. 그리고는 한 마리씩 따로 있도록 칸을 질렀다. 말들은 여전히 옆 칸에 있는 말을 의식하며 소란스럽게 으르렁거렸다. 수의사는 칸막이에 적당한 창을 뚫었다. 그리고 창마다 몇 가지 놀이 기구를 매달아 두었다. 말들이 머리로 툭툭 받아치며 돌릴 수 있는 바퀴모양의 장난감, 발굽으로 쳐서 한 쪽에서 다른 칸으로 넘길 수 있는 공, 끈에 매달아 흔들리도록 만든 알록달록한 인형 등의 놀이 기구였다.말들은 이런 장난감에 많은 흥미를 보였다. 말들이 장난감에 관심을 보이자 수의사는 한 주간에 한 번씩 말들의 자리를 교대로 바꾸었다. 놀이기구를 통해 서로 호감을 조금씩 나타내며 장난감을 함께 갖고 놀기 시작했다. 그리고 네 마리의 말들은 차츰 차츰 서로간의 적대감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네 마리의 말들은 매우 친한 사이로 변했다. 드디어 네 마리 말을 한 마차에 나란히 매어도 괜찮았다. 오히려 서로 머리를 부비고 핥아주며 친해졌다. 네 마리 말들은 마차를 놀이기구 다루듯 주거니 받거니 재미있고 신나게 몰게 되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개미 혁명’중.사람들이 사는 사회에도 여러 가지 공동체가 있다. 가정, 학교, 직장, 종교, 각종 단체 이를테면 체육, 음악, 미술, 문학, 과학, 농업, 상업, 공업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공동체와 개인 사이에도 알게 모르게 저항감과 반발심, 적대감이 있을 수 있다.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으로 인하여 불평하고 미워하여 지나치게 거북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공동체나 개인이 그 수의사와 같은 처방을 받을 수야 없지만 적어도 적개심은 없어야 동행이 가능하다.어떤 형태로든 같은 방향으로 달리거나 행동해야 공동체 또는 전문인이 아니겠는가. 동행하지 않으면 위의 책에서 말하는 말들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 대한민국이 넘어야 할 고지가 바로 코앞이다. 누리호 발사를 온 국민이 지켜보며 필시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니까 같은 생각이 곧 동행이다. 함께 뭉치지 않으면 경제적, 정치적 식민화가 닥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2021-10-24

10월의 마지막 날

윤영대수필가 10월 달력을 자세히 보니 국경일 2개, 법정기념일 7개 외에도 많은 ‘~의 날’이 있는 문화의 달이다. 또 음력 9월9일 중양절(重陽節)도 있어 노란 국화꽃으로 화전도 부쳐 먹고 유자를 잘게 썰어 꿀물에 타서 화채를 만들어 마시기도 하는, 가을의 으뜸가는 상달이라는데 벌써 마지막 주일이다.풀잎에 찬 이슬이 맺히는 한로(寒露)는 벌써 지났고, 하얀 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을 맞고 보니 산과 계곡엔 울긋불긋 단풍이 절정이고 아름답게 활짝 핀 국화를 시샘하듯 들판엔 코스모스와 구절초의 무리가 한창 나풀댄다. 기러기 날아가는 황금 들판에는 농부들이 추수를 마무리하며 겨울 맞을 준비로 바쁘고 겨울잠을 자야 하는 벌레들은 숨어버린다. 이렇게 자연은 풍요롭고 알뜰한 계절을 베풀어 주는데 복잡한 정치벌판에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무슨 씨를 뿌리는지 온갖 시끄러운 말과 행동이 어지럽다. ‘된서리가 내리면 온 천지가 깨끗해진다’는 말처럼 서리 내려 맑게 씻었으면 한다.이번 10월은 날씨가 참 변덕이 심했다. 월초엔 30도를 웃도는 110년 만의 무더위가 덮치더니 곧이어 수도권에 113년 만의 가을 폭우가 내렸었고 또 보름도 지나기 전 중순엔 64년 만에 전국적으로 이른 한파 특보가 발령됐었다. 갑작스런 기록에 ‘가을이 사라졌다.’는 우려 섞인 말들도 나왔다. 경기 성남의 대장동이라는 조용한 마을에 택지개발 사업을 벌여 수천 배의 떼돈을 번 50억 클럽 얘기도 떠도는 것을 보니 기후위기와 함께 우리 사회도 위기가 온 탓일까 매우 걱정된다.이제 반소매, 짧은 바지, 엷은 속옷 모두 벗어 빨아 넣고, 긴 옷에 두꺼운 옷을 꺼내입고 추워지는 계절에 대응하듯 우리 국민들도 정치계의 비바람에 진흙탕물 튀기지 않도록 맑은 마음으로 조심해 가야겠다.시골집 대문간의 작은 감나무에는 주먹만한 홍시가 여남은 개나 열렸고 석류도 탐스럽게 입을 벌리는데 이른 아침 나가보면 그 밑자락엔 단풍잎이 떨어져 가을바람에 휩쓸려 다니고 겨울의 전령사 흰서리가 돌담 아래서 희끗거린다. 코로나 거리두기도 완화되어 다음 달이면 위드 코로나로 전환되어 모임이나 영업시간 제한도 풀리고 코로나와 같이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니 반갑다. 국내외서 백신 여권 말이 나오자 벌써 자가격리가 없는 11월을 내다보며 해외여행의 주문도 늘고 있다고 해서 나도 쓸쩍 꿈을 꾸어본다.문화의 달 10월엔 많은 축제가 몰려있다. 포항시도 스틸아트페스티벌, 거리예술축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려 문화도시로의 위상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였고 이제 그 축제들도 끝나고 있다. 10월의 마지막 날은 할로윈데이다. 어린이들은 큰 호박에 눈 코 입 등을 파서 괴물 마스크로 변장하고 장난도 치겠지만, 가족들과 차분한 마음으로 예술회관이랑 미술관 등으로 문화 나들이를 하는 것도 좋겠다.10월의 마지막 날이 오면 즐겨 불러보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떠오른다. 가로수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툇마루에 앉아 고구마 구워 국화주 한 잔 마시며 이 계절을 노래하고 싶다.“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2021-10-24

코로나19 재택치료 확대… 국민불안 크다

심충택 논설위원 정부가 다음달 초 위드코로나 전환을 예고함과 동시에 재택치료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재택치료 확대 이유는 무증상이거나 경증인데 굳이 병원 혹은 생활치료센터에 격리함으로써 의료인력과 의료시설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재택치료시스템을 보면, 코로나19 확진자가 원할 경우 보건소에서 확진자의 건강상태나 거주환경을 확인해, 적절성 여부를 판단한다. 대상자로 결정된 확진자는 건강관리 앱을 설치하고 하루에 2번씩 건강 모니터링을 실시하는데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경우 비대면 진료를 통해 약을 처방받는다. 감염자의 격리관리를 위해 대상자는 GPS기능이 탑재된 안전보호 앱을 설치해야 한다. 확진 후 10일째가 되면 검체검사 후 격리해제 되는 식으로 운영된다.방역당국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 재택 치료를 받는 환자는 2천280명(수도권 2천176명·비수도권 104명)이다. 재택치료에 대해 일선 보건소에서는 인력도 없고 경험도 없다며 답답해 하고 있다. 정부는 생활치료센터와 유사한 수준(환자 100명당 간호사 최소 3~5명, 의사는 최소 1~2인 정도)으로 보건소에 의료인력을 배치할 예정이지만, 보건소에서는 이미 백신 접종과 선별진료소 운영으로 과부하가 걸린 상황에서 재택치료까지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수도권 보건소에서는 이미 재택치료자를 내버려둔다는 민원이 많이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감염병 전문가 중에는 재택치료 확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재택치료 환자가 늘어나면 관리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우선 환자가 응급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시스템이 안 갖춰져 있다. 지난 20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재택치료를 받던 환자가 확진 다음날인 21일 병원 이송 중 숨진 사건은 이를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응급 상황에 대비해 재택환자가 입원할 병원이 미리 지정돼 있어야 하는데, 이 원칙이 안 지켜져 병원을 수소문하는 과정에 치료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고 한다. 재택치료 환자가 외부에 몰래 돌아다녀도 현실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무단이탈을 막으려는 조치인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애플리케이션(앱) 의무 설치가 아직 유명무실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에 의하면 “재택치료가 끝날 때까지 앱을 설치하지 않았는데도 아무 제재가 없었다”는 환자 반응도 있다. 재택치료 규정상 보건소 협력병원은 하루 1, 2차례 비대면으로 확진자의 건강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데, 환자가 자신을 담당하는 의료기관도 모른 채 지내다가 재택치료 시작 5일째가 돼서야 협력병원의 연락을 받은 경우가 있다고 한다.재택치료에 대한 실현가능하고 합리적인 모델이 확립되기까지는 전국 지자체가 이 시스템을 동시에 가동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확진자가 급속도로 쏟아질 수 있고 위중증 환자관리도 제대로 안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위드코로나는 반드시 국민적 합의를 거쳐 시행돼야 한다.

2021-10-24

중국산 김치 공포

중국에는 김치와 전혀 다르지만 김치의 대표적 번역어로 파오차이라는 말이 사용된다. 파오차이는 채소를 염장한 중국의 절임배추를 이르는 말이지만 중국 사람들은 한국의 김치를 그렇게 부른다. 만드는 방식이나 모양도 김치와 다르다. 오히려 서양의 피클에 가깝다.파오차이는 한국 김치가 중국으로 본격 수출되기 전에는 중국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쓰촨지방의 향토음식에 불과했다.그러던 것이 2020년 11월, 중국의 환구시보가 파오차이가 국제표준화기구(ISO) 인증을 받아 국제 김치시장의 기준이 됐다는 보도를 하면서 마치 중국이 김치 종주국인 된 듯한 논란을 자주 일으키고 있다.올 1월에는 중국의 최대 유튜버 ‘리즈치’가 김치를 직접 담가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만드는 과정을 소개하는 영상을 올렸다. 이 영상물에는 중국의 전통요리라는 해시태그까지 달아 이를 본 우리 국민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중국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 김치가 한류를 타고 국제적으로 크게 인기를 누리자 이를 계기로 중국이 김치 종주국 행세를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동북공정처럼 김치를 통해 또다시 역사를 왜곡한다는 비판도 했다.이런 가운데 중국산 김치에 대한 불안감을 조장하는 동영상이 최근 또다시 나돌아 충격을 주었다. 붉은색 양념으로 추정되는 물질을 한 여성이 밟고 있는 모습의 영상이다. 과거 알몸 배추로 국민에게 쇼크를 주었던 중국산 김치의 비위생적 제조과정을 다시 연상케 한 동영상이다. 식약청이 비식품 물질이라고 뒤늦게 해명을 했지만 중국산 김치에 대한 우리 국민의 불신감은 가시지 않는 분위기다. 우리 식탁 깊숙이 들어온 중국산 김치 먹을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스럽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0-24

배터리산업 중심도시로 성장하고 있는 포항

포항시가 지난 21일 영일만 산업단지에서 에코프로 4개 자회사인 에코프로EM, AP, CNG, Innovation 공장 준공식을 가짐으로써 명실상부한 2차전지 산업의 세계적인 중심도시로 떠올랐다. 정부는 현재 2차전지를 반도체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주력산업으로 키우고 있다. 2차전지란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충전을 통해 반영구적으로 사용하는 전지를 말한다. 반도체가 우리 몸의 머리 같은 존재라면, 배터리는 동력의 원천인 심장에 비유될 정도로 배터리산업은 차세대 주요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 2차전지 매출은 2030년이 되면 세계시장의 40%를 차지할 전망이다. 이날 준공한 4개 자회사중 에코프로EM은 2차전지 양극재를 생산하는 에코프로BM과 삼성SDI가 합작으로 설립했으며, 에코프로AP는 하이니켈계 양극재를 생산하는 에코프로BM과 에코프로EM에 양극재 부원료인 고순도 산소와 질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회사다. 그리고 에코프로CNG는 사용 후 배터리에서 원료를 추출하며, 에코프로Innovation은 리튬소재를 가공하는 회사다. 에코프로는 지난 2018년부터 영일만1·4 산업단지 내 13만5천여평 부지에 ‘에코 배터리 포항캠퍼스’라는 2차전지 종합생산 클러스터를 조성해 오고 있었다. 에코프로는 그동안 이 클러스터에서 에코프로GEM과 에코프로BM공장을 가동해 왔다. 에코프로가 향후 5년 내 이 클러스터에 투자 계획인 금액인 2조2천억 원에 이르며 신규 고용인원도 2천400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포항시는 지난 7월 포스코케미칼 2차전지의 핵심소재인 양극재 공장을 유치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포스코케미칼은 포스코와 함께 리튬, 니켈, 흑연원료 등의 자원개발과 선제적 투자, 소재연구 개발로 2차전지 사업경쟁력을 높여왔다. 도시경쟁력 확보를 위해 신성장 기업 유치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는 포항시의 노력이 차츰 결실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든든하다. 포항시는 앞으로 이들 배터리산업 관련 기업들이 영일만항에서 생산규모를 키우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서 이들 기업들이 포항의 세계화에 주역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21-10-24

백신접종률 70% 도달, 경각심 풀지 말아야

23일 우리나라 인구대비 백신접종 완료율이 70%를 넘었다. 지난 2월 백신접종을 시작한 이후 240일 만이다. 누적 1차 접종자 기준 전체 인구비 접종률은 79.4%다. 보건당국은 해외 주요국과 접종률이 유사하거나 높은 수준이라 했다. 국민의 적극적인 백신 참여와 잘 갖춰진 의료체계 및 의료진의 헌신적 노력 덕분이라 하겠다.백신접종 완료율 70%는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가는 위드코로나의 중요한 전제 조건이다. 정부는 이미 발표대로 11월부터 위드코로나 체계로 전환한다고 한다. 이에 앞서 정부는 이미 출범시킨 국무총리와 민간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일상회복지원위원회를 통해 오는 29일 일상회복 지원을 위한 구체적 방안도 발표한다.위드코로나로 전환된다고 당장 마스크를 벗는 것은 아니다. 위드코로나로 가기 위해선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백신 미접종자에 대한 접종을 서둘러야 추가 확산을 막을 수 있다. 돌파감염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어 돌파감염도 간과해선 안 된다. 특히 국민들이 코로나가 잡힌 것으로 생각하고 경각심을 늦추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위드코로나라 하더라도 기본방역 수칙을 잘 지켜야 점진적으로 일상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이다. 위드코로나는 사망자 방지와 위중증 환자를 집중 관리하는 의료체계다. 격리치료가 아닌 재택치료를 확대하는 것도 위드코로나의 핵심적인 대책 중 하나다. 또 다중이용시설 운영제한이나 행사, 모임 제한도 서서히 완화해서 일상을 점차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지난 20일에는 재택 치료 중이던 60대 환자가 이송체계 미흡으로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재택 치료자가 늘어날 위드코로나 방역체계에 대한 더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정부는 코로나19 위기기간 동안 중단했던 소비쿠폰을 다시 재개해 소비를 진작시키겠다고도 했다. 위드코로나 전환에 맞춰 정부가 소비 진작을 서둘 일은 아니라 본다. 방역체계를 완화하면 업소의 운영시간이 풀리고 시중 소비는 자연 늘어날 것이다. 정부는 당장의 소비 진작보다는 위드코로나에 따른 방역체계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아직 한 번도 백신을 맞지 않은 미접종자가 1천만명이 된다. 이상반응을 우려하는 이들에 대한 대책이 먼저다. 정부도 국민도 위드코로나에 들떠 경각심을 늦추는 일은 없어야 한다.

2021-10-24

혁신적인 인구정책만이 미래를 보장한다

고윤환 문경시장 인구지진(Age quake)이 가속화 되고 있다.지난해 우리나라 출생아는 27만 명, 사망자는 30만 명으로 사망자수가 출생자수를 추월하는 데드크로스가 시작되며 우리나라는 인구지진의 초기 단계에 들어섰다.이로 인해 도시 지역은 계속되어 상승하고 있는 높은 집값, 교통 혼잡, 환경 문제 등 과밀·혼잡 비용이 증가하고 있고, 여기에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경기침체로 일자리를 잃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반면 농촌의 경우 저출산, 고령화, 수도권으로의 인구유출 심화로 활력은 저하되고 지속 가능성마저 우려되고 있다.문경의 경우에도 인구구조 변화와 기간산업의 사양화에 따른 도시성장의 정체로 사회·경제·문화 등 지역쇠퇴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문경시 인구는 석탄산업 시기인 1970년대 최대 16만 명까지 증가했으나 1980년대 이후 폐광과 함께 급속히 감소되었으며, 현재는 7만~8만 명으로 인구가 유지하고 있으나, 청년 인구 및 40대 인구 감소세, 50대 인구 증가 둔화, 60대 이상 고령인구 증가의 양상을 띄고 있다.먼저, 청년층이 희망하는 가치 있고 보람된 일자리, 높은 집값에서 벗어난 안정된 사회 정착에 대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곳, 장·노년층이 희망하는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 인생 이모작, 사회적 인정 등에 대한 욕구를 달할 수 있는 새로운 도전 공간으로 농촌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귀농·귀촌·귀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의견이다.그동안 문경시는 귀농인 보금자리 운영, 귀농인 소득작물 시범 사업, 체계적 영농 교육과 경영컨설팅 지원 등 적극적인 귀농·귀촌 시책을 추진해 2019년 1천 51세대, 1천350명, 2020년 1천164세대, 1천399명을 문경에 정착시켰다.또한, 문경의 2020년 기준 합계출산율은 1.29명으로 전국 평균 0.837명, 경북 평균 1.00명에 비해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농촌의 빈집을 활용해 예비 귀농인들이 1년간 살아보도록 하는 귀농인 보금자리 사업은 농촌살이를 체험하며 주택과 영농기반 확보, 영농컨설팅과 현장교육 등 정착을 위한 임시거주지 역할을 하며, 2014년부터 61세대 142명이 이용해 정착 인원은 37세대 84명에 이른다. 많은 귀농·귀촌 희망자들의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바로 거주지이다.농촌에 방치되거나 적절히 관리되지 못하는 빈집은 마을과 지역사회의 치안과 안전, 경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마을 내 기존 주민이 고령화로 사망하거나 요양시설로 거처를 옮기면서 빈집이 발생하고, 타 지역에 거주하는 자녀가 상속받아 관리가 소홀해지는 경향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방치되고 있는 빈집의 주된 원인은 소유자가 빈집을 매매 또는 임대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농촌 빈집을 정비·활용하는 데 주요한 장애 요인이 된다.반면, 신규택지를 개발하여 분양하는 경우 막대한 설계비, 상하수도, 도로, 터 닦기, 그 외 기반시설비 등 비용이 많이 들어 구매자에게 높은 가격에 분양할 수 밖에 없고,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정책으로 도시민들이 2억 원을 초과하는 농어촌주택 구입 시 1가구 2주택 적용으로 세제상 혜택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문경에서는 최근 문경살리기 범시민운동 추진본부가 출범하고, 문경을 살리기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문경사랑 주소갖기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이 가운데 농촌에서 살아보기를 준비하는 도시민들에게 주거를 임대·지원하는 문경형 경량철골조 모듈주택사업 예비 수요조사가 실시됐다.경량철골조 모듈주택 사업은 귀농·귀촌을 고민하고 있지만 막상 집을 구하기 쉽지 않은 현실을 반영해 농촌에서 살아볼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귀농·귀촌에 대한 실패확률을 줄여 안정적인 정착을 유도하고자 구상됐으며, 귀향·귀농·귀촌인에게는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하고 시골 곳곳에 방치되었던 폐가나 빈집을 정비함으로써 지역에는 주거 환경개선 효과와 지역경기활성화 등 1석 3조의 효과가 기대 된다.

2021-10-24

탐추

독서모임에서 박웅현의 ‘다시 책은 도끼다’를 읽고 느낌을 나눴다. 밑줄 친 문장 중에 풍류에 대해 정의를 해 놓은 부분이다. 그림 설명해주는 손철주님은 봄이면 탐매하러 가자고 지인들에게 연락한다. 몇 날 몇 시에 모여서 2박 3일 일정으로 매화 향기를 느끼러 가니 참석하라고 말이다. ‘탐매’라는 낱말이 국어사전에 나온다. 탐매하다, 탐매객, 이런 표현이 있을 정도이다. 그렇게 매해 탐매를 떠난다고 하니 그게 바로 풍류라고 한다. 그럼 나도 풍류객이다. 계절마다 피는 꽃을 찾아 나서니 말이다.지금은 가을, 오늘은 구절초를 보러 갔다. 서악동 도봉서당 뒤에 구절초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지 몇 년째인데 이제야 가게 되었다. 일하는 지인들의 시간에 맞추다 보니 어스름 녘에 찾아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데 눈앞이 환하다. 삼층탑 주변에 하얀 꽃잎으로 수를 놓았다. 구절초가 언덕을 덮고 있다.해가 산 너머 집으로 서둘러 가느라 붉은 그림자가 서악동에 내렸다. 어두워지기 전에 얼른 꽃밭을 눈에 넣어야 했다. 차에서 내리니 서늘한 기운이 골짜기에 가득할 뿐 늦은 시간이라 인적은 끊겼다. 그래서 구절초밭이 온통 우리 차지였다. 밭고랑 사이를 거닐자 은은한 가을 저녁 향내가 풍겼다. 아, 좋다~하는 소리가 서로의 입에서 나와 미소짓게 했다.언덕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탑 주변을 하얀 구절초 병정들이 에워쌌다. 그 옆으로 서당 기와의 색이 짙어 꽃이 더 환하게 돋보였다. 골짜기를 둘러싼 소나무 숲은 어두워져도 꽃밭엔 어둠이 더디게 내렸다. 덕분에 천천히 구절초를 탐하는 시간을 가졌다.일행 중에 오 학년 사내아이 둘이 구절초 사이로 뛰어다녔다. 사진을 찍어 저녁을 먹은 후 포토제닉상을 뽑겠다고 했더니 카메라를 향해 열심히 포즈를 취해준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박중훈과 안성기의 명장면도 재현하고, 어깨동무도 했다가 슈퍼맨도 되어주었다. 별 이야기 아닌데도 까르르 웃고 조잘거리는 소리가 꽃이 피어나는 소리와 닮았다.깜깜해져 꽃이 보이지 않을 때 즈음 산을 내려왔다. 구절초를 간직한 서라벌 하늘 위로 달이 둥실 떠올랐다. 달이 이지러진 곳 하나 없이 동그랗다. 오늘이 보름인가, 달력을 찾아보니 음력 시월 십육 일. 어제가 보름이었다. 낮 동안 포항은 종일 비가 내려 꽃을 보러 못 가겠구나 했다가 오후 5시쯤 구름이 걷혔다. 경주로 와보니 땅이 젖지 않아 여긴 비가 오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이래서 계획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걸 또 느꼈다.도솔 마을에서 경주의 맛을 느끼며 찍은 사진을 자세히 보았다. 멋진 사진의 주인공에게 문화상품권을 주기로 해서인지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어른 셋이 사진을 돌려보며 어느 게 더 좋다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두 아이에게 ‘천원이라 미안해’하며 만 원짜리 상품권을 줬더니 받자마자 입이 함지박만 해졌다. 그 얼굴이 구절초처럼 방싯거린다. 아이들이 꽃보다 곱다.가장 행복할 때는 맛있는 거 먹으면서 다음에 뭐 먹을지 의논할 때이다. 구절초 보고 와서 남은 가을에 어디로 탐추하러 떠날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양의 핑크 댑싸리가 시월 말이면 절정이고, 안동 시내 낙동강 둔치의 핑크뮬리 보고 헛제삿밥 먹는 코스도 좋다. 경주 최제우 동상이 있는 천도교 성지 용담정으로 가는 길이 은행나무 가로수이다. 곧 노랗게 물들어 우리를 부를 것이다. 조금 멀리 눈을 들면 순천만의 낙조가 보인다. 갈대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바람과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면 우리도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노을을 보면 좋은 곳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니 파주출판단지 지혜의 숲의 높은 책장 앞에서 인증샷을 찍으면 더없이 좋은 여행이 된다. 가을을 탐할 곳이 끝도 없이 튀어나온다.배불리 가을을 채우고 경주의 밤거리를 걸었다. 보름달이 더 높이 솟았다. 아이들이 신나서 앞서서 뛰어갔다. 달을 배경으로 한 컷의 꽃 사진을 더 찍었다. 신라의 달밤이다. /김순희(수필가)

2021-10-24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골프장 변호하는 경주시

경주시 천북면에서 골프장 공사를 하는 (주)태영건설이 1만㎡가 넘는 산림을 불법훼손한 사실로 인해 사법처리가 진행 중인 과정에서 경주시가 골프장 준공인가를 내준 것에 대해 특혜의혹을 제기한 본지 보도를 두고, 경주시가 이례적으로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골프장 업체를 대변해 그 내막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경주시는 지난 7월 태영건설이 천북면 성지리 일원에 24홀 규모 골프장과 진입도로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1만715㎡ 규모의 산림을 무단훼손한 사실을 파악했다. 이에따라 경주시는 지난 9월2일 태영건설과 공사 책임자 박모씨를 산지관리법위반혐의로 대구지검 경주지청에 고발했으며, 검찰은 지난 7일 태영건설과 박씨에게 벌금형 처분을 내렸다.이 과정에서 경주시가 산림 원상복구명령 등 산지관리법 위반에 대한 행정·사법절차가 진행 중인데도 태영건설 골프장에 실시계획변경인가와 준공인가를 내줘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경주시는 “태영건설에 내려질 예정이었던 원상복구명령은 태영건설이 앞서 제출한 사업계획 변경 신청건이 9월 16일 승인되면서 해당 의무가 면제됐다”고 밝혔다. 태영건설 골프장은 지난 7월 경주시가 산림훼손사실을 적발하기 직전(6월) 골프장부지 면적추가와 진입도로 선형변경을 위해 경주시에 사업계획변경절차를 신청했다. 경주시는 지난 17일 ‘태영건설 골프장 특혜논란에 대한 경주시 입장’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지형파악이 어려운 산지개발 특성상 사업시행자가 지속적인 측량을 시행해 산림훼손 예방에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태영건설이 이를 소홀히 한 것으로 판단된다. 산림훼손의 대부분을 차지한 진입도로의 소유권은 준공 후 경주시에 기부채납돼 이를 특혜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보도자료를 보면, 태영건설이 골프장 건설을 위해 산림훼손을 한 이유가 ‘산지개발 특성상 지형파악이 어려웠다’는 전제가 있고, 또 산림훼손한 지역이 대부분 진입도로이며, 그 진입도로는 경주시에 기부채납됐다는 내용이다. 누가봐도 골프장 건설업체 입장을 비호하고 있는 내용이다. 경주시에 묻고 싶은 것은 △지형파악이 어려운 점 △진입도로 기부채납이 산림불법훼손과 무슨 연관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명백하게 불법행위를 한 골프장 측을 위해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무리하게 변호하는 경주시를 두고 어느 누가 특혜조치로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2021-10-21

전기차 선도도시 대구, 충전 인프라는 뒷전

대구가 최고의 친환경 전기자동차 선도도시를 추구하면서 정작 충전소 인프라 투자에는 매우 인색했다는 국회 자료가 나왔다.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양금희 의원(국민의 힘)에 따르면 올 6월 기준, 대구에 등록된 전기자동차는 모두 1만3천974대이나 급속충전기는 677기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급속충전기 1대가 감당해야 하는 전기차 수는 20.64대로 전국 평균(13.48대)보다도 크게 뒤떨어졌다. 대구시의 전기차 등록 대수는 경기, 서울, 제주에 이어 전국 4위다. 급속충전기는 17개 광역지자체 중 꼴찌권인 15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대구시는 지역산업 구조의 획기적 전환을 위해 일찍부터 미래형 자동차산업 육성쪽으로 정책을 펼쳐왔다. 그 일환으로 전기차 선도도시를 추구했으며 그 결과 2020년에는 전기차 선도도시로 국가브랜드 대상을 3년 연속 받기도 했다. 또 세계 전기자동차협회가 전기자동차산업 발전에 공헌이 큰 도시에 주는 전기차 모범 도시상도 아시아태평양지역을 대표해 받는 영광도 안았다.대구시는 2016년 전기차 200대 보급을 시작으로 1년만인 2017년 10배 수준인 2천127대를 보급했고, 2019년에는 누적 1만대를 돌파했다. 특별광역시 중 인구수 대비 전기자동차 등록비율 전국 1위를 했다. 이에 발맞춰 대구시는 2030년까지 전기자동차 50만대를 보급하고 지역내 등록차량의 50%까지 전기차를 보급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발표했다.그러나 정작 전기차와 동시에 확장해야 할 급속충전 시설은 등한시했다. 결과적으로 대구시 정책을 믿고 전기차를 구입한 시민들만 불편하게 된 꼴이 됐다. 전기차 선도도시로서 대구시의 이미지 관리에도 나쁘다. 대구시는 완속충전가를 포함하면 대구의 충전기 인프라가 나쁘지 않다고 하나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말이다. 바쁜 세상이다. 급속충전기로 교체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세계적으로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는 추세다. 대구시가 전기차 선도도시를 유지하려면 전기차 보급뿐만 아니라 충전기 인프라 등 모든 분야에 지속적인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양 의원의 자료에 의하면 대구에는 61대의 수소차가 등록돼 있으나 수소차 충전소는 겨우 2곳뿐이라 한다. 친환경도시와 산업구조 전환을 바란다면 대구시의 분발이 있어야 겠다.

2021-10-21

마피아

우리나라 표준국어대사전에 마피아의 정의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를 근거로 한 강력한 범죄조직, 자국에 정치적 폭력을 행사하고 도박, 금융 따위에 관련된 거대한 범죄조직”이라 표현했다.우리가 통칭 사용하는 마피아는 폭력적 집단이며 불법적 범죄 조직이란 뜻이다. 흔히 정치 마피아, 법조 마피아, 관피아 등의 호칭을 쉽게 사용하지만 마피아란 말의 뜻을 찬찬히 따져보면 상당한 모독적 의미가 담겨있다.정치권에서 특혜시비 공방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드러난 법조인의 모습을 보면 법조 마피아라는 말이 그냥 나오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법관, 변호사 등 우리사회를 선도해 나갈 법조계의 역할을 생각하면 국민에게 안겨준 실망감은 크다 할 것이다.원래 마피아의 발상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다. 시칠리아를 중심으로 활약한 비밀결사대 혹은 조직 폭력배를 이르는 말이다. 1900년 초중반 이 조직이 미국으로 건너와 국제적 범죄조직으로 명성을 알리게 된 것이다. 지금은 기업형 범죄조직이란 보통 명사로 쓰이는 말이다. 일본의 폭력 조직인 야쿠자를 일본 마피아로 부르는 것 등이 이런 케이스다.1972년 상영된 영화 ‘대부’는 마피아 조직의 단면을 볼 수 있었던 영화로 유명하다. 범죄 영화로서 역사상 최걸작으로 평가된다. 영화 속의 마피아가 지나치게 미화돼 비판도 제기됐으나 마피아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한 공로는 크다.정치권의 대장동 개발 특혜시비 공방 속에 여당 대선후보의 국제 마피아 연루설까지 등장, 논란을 키우고 있다. 대선전의 품격이 떨어진 느낌이다. 사실 여부야 밝혀지겠지만 혼탁해진 대선전을 보는 국민의 마음은 어둡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0-21

이재명 vs 윤석열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유력주자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한 사람은 능수능란한 언변과 순발력으로, 또 한 사람은 ‘1일 1실언’으로 곤욕을 치르는 후보다. 바로 여당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얘기다.여당 후보로 확정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번 주초 현직 경기도지사 자격으로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대장동 개발특혜의혹과 관련, 야당의 집중포화를 받아냈다. 이 지사는 특유의 달변으로 정면돌파를 시도, 일정부분 성공한 듯 보인다. 확신에 찬 말투와 안색으로 대장동 개발은 단군이래 공공이익을 최대로 공익환수한 모범사업이라는 자화자찬이 이어졌다. 청산유수처럼 매끄러운 말솜씨에 여유로운 얼굴 표정으로 야당 의원들을 농락했다. 대장동 개발을 주도하고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당한 유동규가 측근 중의 측근임이 확연한데도 측근이 아니라고 잡아뗐다. 새로 제기된 조폭과의 연루설에 대해선 첨부한 돈 사진이 다른 데서 쓰였던 사진이니, 모두 헛소리라 치부했다. 푼돈으로 급조한 법인에 수천억원의 초과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초과이익 환수조항이 빠진 계약서를 결재하고도 “환수논의가 있었는 지 모르겠다”고 했다가 “초과이익 조항을 추가하자는 직원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대장동 개발사업을 자신이 설계했다고 해놓고, 유동규가 구속되자 개인의 범행으로 몰고 관리책임을 인정하는 선에서 덮으려한다. 이미 과거 형수에게 쌍욕을 한 것은 욕 할만하니 했다고 넘어갔고, 여배우와의 염문설도 터무니없다고 잘랐다. 그의 화법은 나치시대 선동가인 요제프 괴벨스를 연상시킨다. 괴벨스는 “선동은 문장 한둘로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고 했다.이에 반해 국민의힘 대권주자 가운데 선두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올해 정치판에 뛰어든 정치초년병이다. 토론회나 기자회견에서 말하는 걸 보면 아마추어티가 역력하다. 카메라만 보면 긴장돼 고개를 좌우로 돌리는 습관 하나 고치려 해도 잘 안된다. 잇따른 설화사건도 그렇다. 정치권 언어에 익숙하지 못한데다 비유를 들어 생각을 설명하려다 꼬투리 잡히는 일이 너무 잦다. 정치판에서는 앞뒤말 자르면 오해하기 쉬운 말들은 경쟁자들에게 공격의 빌미가 되지만 그걸 체득하고 실천하기엔 물리적 시간이 너무 짧았다. 억울하다 싶은 사안을 해명할 때 얼굴색이 붉게 달아오르고, 어떻게 대답해도 곤란한,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질문에도 굳이 대답하려 애쓴다. 구렁이 담넘듯 동문서답 하는 일이 없다. 너무 다른 두 후보를 견줘본다. 말을 잘하는 게 좋지만 자신의 허물을 가리는 데 쓰이니 오히려 감점이다. 귀는 움직이나 마음은 요지부동이다. 그러니 필자는 달변보다, 서툴게 더듬거리는 눌변(訥辯)에 더 마음이 가는 셈이다. 진솔한 마음에서 우러난 말이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다.건곤일척의 선거에서 이기려면 표심을 얻어야 한다. 과연 두 후보 가운데 누가 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얻을 지 두고볼 일이다.

2021-10-21

요행과 확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될 확률은 대략 815만분의1 정도라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당첨이 안 될 확률이 99.99…%라는 얘기다. 벼락을 맞아 죽을 확률보다도 배나 낮은 것이 로또복권 일등 당첨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도 매주 8백만 매 이상 복권이 팔린다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심리가 그만큼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아무리 확률이 낮아도 위험부담이 적으면 버리는 셈치고 해보게 되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심리일 것이다. 상당한 위험부담이 있는 데도 요행을 바라고 투기를 하는 것은 남달리 사행심이 강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일 터이다.‘오징어게임’이라는 드라마가 세계적인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거액의 빚을 지고 삶의 막장으로 몰린 사람들이 456억 원이라는 거액에 눈이 멀어 0.2%의 확률에 목숨을 걸고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이 드라마의 내용이다. 전혀 아무런 탈출구가 없다가 일확천금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풍족한 삶을 살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이성을 마비시켜버린 거라고나 할까. 아무리 돈이 절박하더라도 죽을 확률이 99.8%인 게임에 목숨을 건다는 건 정상적인 심리상태가 아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인 오늘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드라마라고 하는데, 세상이 이런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건 너무 끔찍한 현상이 아닌가.카메라 앵글은 최후의 승자인 주인공을 쫓아가지만 그동안 죽어간 사람들은 아무런 해결도 없이 더 참담한 결과만 남겼을 뿐이다. 참가자 456명 중에 455명이 죽고 단 한 사람이 살아남는 건 사회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가 비록 거액의 상금을 손에 쥐었다 한들 456명 중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사람들 말고는 대다수가 처참한 일을 당한 사회라면 그게 바로 지옥이 아니고 뭐겠는가. 지금 한반도의 북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도 거기에서 멀지 않을 것이다.‘오징어게임’ 만큼이나 매스컴의 화제가 되고 있는 게 ‘대장동사건’이다. 일확천금이라는 점에서는 양자가 닮았지만, 한 쪽은 목숨을 걸고 수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은 데 비해 다른 쪽은 땅 짚고 헤엄을 쳤다는 점에서는 천양지차다. 몇 사람이 수천억 원의 돈을 챙기면서 남을 죽이기까지 한 건 아니지만, 여러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편취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오징어게임’ 승자가 차마 그 돈을 쉽게 쓰지 못한 것과는 달리 대장동사건 관련자들은 6년 근무 직원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주는 등 로비자금이다 고문비용이다 흥청망청 광란의 돈 잔치를 벌인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사행심이나 한탕주의가 횡행하는 사회는 분명 병든 사회다. 의식주가 절박하던 시절에 비해 몰라보게 경제사정이 좋아졌지만, 그것이 물질적 속박을 벗어나게 한 것은 아니었다. 물질에 집착하고 예속되는 현상은 오히려 더 심해진 게 아닐까 싶다. 물질문명에 경도되어 정신적 가치를 등한시해서는 삶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가 없다. 풍요롭고 균형 잡힌 사회로 가려면 교육이나 언론도 중요하지만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좋은 본을 보여야 한다. 지금의 대권후보들 중에는 그런 인성과 지성과 품격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2021-10-21

점입가경(漸入佳境) 의 대선 레이스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옛 중국에 전국에서 그의 그림을 구경하러 올 정도로 그림을 잘 그리는 고개지라는 사람이 있었다.그런데 그는 사탕수수를 늘 단맛이 적은 줄기부터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옆에 있던 친구가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고개지가 “갈수록 더 좋은 경치를 보고 싶은 것처럼, 갈수록 더 단맛을 느끼고 싶어서 그렇다네”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 점입가경은 어떤 일이나 풍경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재미있어지는 것을 의미한다.내년 3월 9일로 예정된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들의 레이스가 점입가경의 맛을 주고 있다.이번 경기도 국정감사는 경기도지사인 이재명 여당의 대통령 후보를 놓고 흡사 대선 토론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설전을 벌이고 막을 내렸다.공익환수를 더 철저히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질타와 그 원인이 야당에게 있다는 방어로 불꽃 튀는 설전을 벌였다. 대장동 사업에 대한 이 후보의 역할에 대한 비난과 그에 대한 정당성 방어가 팽팽히 맞선 가운데 국민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는 결론으로 끝을 맺은 듯하다. 어쨌든 경기도 국정감사는 끝났고 여당의 최종 후보인 이 지사의 대선 행보는 많은 화제를 뿌리면서 본격화할 전망이다.이런 가운데 야당의 최종 후보 선발을 위한 긴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두 번에 걸친 압축과정을 겪어 최종 4명의 후보가 마지막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이 2강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서 둘 중에 한 명이 최종 주자가 될 확률이 높은 상태에서 여론은 팽팽히 갈라지고 있다.윤 전 총장이 아직 정치 초보인 건 맞지만, 새로운 사람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는 것은 과거 그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강직성에 환호하는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 하는 실언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가 국회의원도 한번 해본 적 없는 신인이라는 점에 오히려 점수를 주고 있다.반면 홍준표 의원의 오랜 의원직 경험과 지사로서의 행정 경험을 높게 사는 사람들은 ‘홍카콜라’라는 별명처럼 바른말을 속 시원하게 잘 던지는 모습을 좋아한다. 정치 행정 경험이 풍부한 것도 그의 장점이 될 수 있다.그런 면에서 20, 30대 젊은 표가 행방을 가를 전망이라는 관측도 있다.점입가경인 것은 미세하지만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윤 전 총장이 그의 입지를 굳힐 수 있을지, 홍 의원 등 다른 후보들이 반전을 해낼 수 있을 지가 관전의 포인트다. 앞으로 다섯 번의 토론을 더 한다고 하고 그리고 11월 5일 전당대회를 열고 최종 대선 후보를 발표한다고 한다. 이후 4개월간의 여당, 야당 두 후보의 대결은 더 흥미로울 것이다. 이것은 직접 투표로 선출하는 민주주의를 가진 국가의 국민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이다.정정당당한 대결을 통해 국민의 결정이 내려지고 한국의 민주주의의 모습이 세계인에게 존경받는 그런 모습을 기대해 본다.

2021-10-21

인명 구조소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배의 침몰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해안 지역에 보잘 것 없는 인명구조소가 있었다. 몇 밖에 없는 구조원들은 밤낮으로 쉴 새 없이 자신들의 몸을 돌보지 않고 구조활동을 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건졌다. 세월이 흐르고 이들이 구조사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후원회를 조직하고 후원을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후원자들을 관리하고 친목하는 일이 구조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되었다. 급기야 구조소는 후원회원들의 친목회관으로 전락하게 되고 구조소는 그 본래적 목적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뜻있는 사람이 다시 구조소 본래적 사명으로 돌아가 구조만을 위한 새로운 구조소를 세웠다.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건지게 되었고 생명을 구조 받은 이들은 이 구조소의 후원자가 되었다. 세월이 흐르자 이 구조소 역시 회원들의 친목회관으로 전락하였다. 이런 일은 이후에도 계속 반복되었다. 웨델의 ‘인명구조소’에 나오는 이야기이다.넷플릭스의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세 명의 기독교인이 나오는데 모두가 다 기독교를 조롱하거나 비난하는 부정적 내용으로 채워졌다. 80∼90년대 이전의 기독교 대중문화는 영화 ‘낮은 대로 임하소서’와 ‘사랑의 원자탄’ 등에서 보듯 대중들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지금의 기독교는 대중문화 속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교회학자는 한국교회가 양적인 성장을 통해 물질주의신앙에 빠지면서 본래적 사명을 잃어버린 겉만 화려한 무덤교회가 되어 버렸다고 한다.야웨신앙에서 가장 경계했던 신앙은 바알종교였다. 바알종교는 농업이 주 산업이었던 당시에 노동력의 확보를 위한 다산과 농사와 축산을 풍요롭게 하는 부의 신이었다. 이스라엘은 이 바알종교를 함께 섬기는 혼합신앙에 급속히 빠져 들었고 점차적으로 물질만능과 물질풍요만을 쫓는 신앙이 되어 버렸다. 엘리야는 천박한 물질자본주의 바알종교를 개혁하기 위하여 목숨을 건 대결을 벌여 공의와 도덕과 자비와 믿음을 상실한 이스라엘을 고발하고 본래의 신앙으로 돌아갈 것을 호소했다.한국교회의 첫 시작은 비록 보잘것없는 오두막집에서 시작했으나 인명구조를 위한 본래적 사명에 충실하였다. 하지만 오늘의 교회는 양적성장과 함께 바알종교화 되어 구조소라기 보다 회원들의 친목회관으로 변질되고 우리 사회 역시 바알종교에 물들어 버렸다. 무엇이든 확장되고 비대해지면 본질을 잃고 변질되기 쉽다는 것을 잊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2021-10-20

우리말에 녹아있는 우리네 삶

우리말은 어느 나라 말보다 감각적이다. 동작, 모양, 상태 등을 음으로 나타내는 소리글자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자음과 모음의 음운 체계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한글 자모의 결합으로 표현하지 못할 음이 없을 정도이다. 우리말은 보이는 모습은 물론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태까지 가장 닮은 음으로 나타낼 수 있다.미쁘다, 미덥다, 살갑다, 얄궂다, 퀭하다, 애틋하다, 아련하다, 아스라하다, 시큰둥하다, 뾰루퉁하다, 아늑하다, 청승맞다, 달짝지근하다, 살뜰하다, 얼큰하다, 거나하다, 허우룩하다, 푼푼하다. 진득하다, 삼삼하다, 함초롬하다, 새초롬하다, 늙수그레하다 등, 우리말 형용사는 다른 언어가 흉내조차 못 내는 표현이 수두룩하다.몽총하다 - 융통성 없이 새침하고 냉정하다.- 박력이 없고 대가 약하다.- 부피나 길이가 좀 모자라다.‘몽총’이라는 어감을 음미해보자. ‘몽’에서 ‘몽땅하다’가 연상되고 ‘총’은 사물에서 튀어나온 오라기로 꼬리 또는 ‘짧다’가 연상된다. 또한 ‘시치미’가 연상된다. 그래서 시치미 떼듯 새침하게 굴거나 길게 이어가지 못하거나 좀 모자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얼마나 기가 막힌 표현인가.가다, 오다, 먹다, 뛰다 같은 동사는 동작을 나타내므로 외국어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형용사는 다르다. 우리말은 상태를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내기도 하는데, 그 비유를 곱씹어보면 참 재미있다.- 눈 : 눈이 높다, 낮다. 눈 밖에 나다, 눈 코 뜰새 없다, 눈에 익다, 눈에 밟힌다, 눈 빠지게, 눈 뜨고 코 베간다.- 코 : 큰코 다친다, 코를 납작하게, 콧방귀, 콧대가 높다, 코 꿰다, 콧대를 꺽다.- 귀 : 귀가 얇다, 귀 따갑게, 귀가 뚫린다.- 입 : 입이 걸다, 입이 야물다, 입을 맞춰두다, 입안에 혀처럼 감긴다, 입방정을 떨다.- 목 : 목 잘린다, 목 빠지게 기다린다, 목구멍에 거미줄치랴,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간 : 간이 크다, 작다, 간이 부었다, 간이 떨린다, 간을 빼준다.- 손 : 손이 크다, 손이 작다, 손이 검다, 손 털다.- 발 : 발이 짧다, 발이 길다, 발이 넓다. 손발이 맞다, 발이 빠지다, 발목 잡히다.- 다리 : 양다리 걸치다, 남의 다리 긁는다, 한 다리 건넌다.- 어깨 : 어깨에 힘 주다, 어깨 너머로 배우다, 어깨(깡패).- 머리 : 머리 꼭대기에 앉아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러한 표현은 문장에서 주어의 상태를 나타내지 않는다. ‘눈이 높다’는 수준이 높은 것에만 관심을 두고 여간한 것은 시시하게 여길 만큼 거만하다는 뜻이다. ‘콧대가 높다’도 비슷한 뜻이다. ‘귀가 얇다’는 속는 줄도 모르고 남의 말을 잘 믿는다는 뜻이다. ‘발이 길다’는 음식 먹는 자리에 우연히 가게 되어 먹을 복이 있다는 뜻이다.이러한 말을 곱씹어보면 표현이 매우 직접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목이 빠지게 기다렸으니 얼마나 간절했다는 말인가. 배 터지게 먹다, 박 터지게 싸우다, 목 터지게 부르다, 눈 빠지게 보다, 쌔 빠지게 일하다, 배꼽 빠지게 웃다, 뼛골 빠지게 고생하다, 등이 이런 갈래의 말이다.이러한 말은 비유의 묘를 잘 살린다. 상태를 사람의 실제 행위로 표현해 본뜻 이외의 뜻을 은유로 나타낸다. ‘간이 크다’는 간의 크기만 말하는 게 아니다. ‘대담(大膽)하다’라는 형용사를 실제 사물로 비유한 문장이다. ‘애(창자)가 끓다’, ‘염통에 털이 나다’,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간이 떨어질 뻔하다’, ‘손끝이 맵다’, ‘입이 야물다’라는 표현도 이와 같은 비유이다.쌀쌀한 가을 이맘때면, 외롭고 허전해서 옆에 누가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러한 마음을 우리는 ‘옆구리가 시리다’로 간단하게 표현한다. 잘 먹고 마음 편하게 사는 상태를 우리는 ‘배부르고 등 따시다’라고 표현한다. 이처럼 우리말 관용어에는 직유가 풍성하고 은유가 넘친다.우리말은 우리 민족성의 보고이다. 은근, 풍자, 해학 같은 민족의 정서가 고스란히 말에 실려 속담이 되고 관용어가 되었다. 다채로운 정서 또한 형용사와 부사의 발달로 나타났다. 우리말은 우리네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수필가·문학평론가

2021-10-20

슈퍼 콘크리트

‘슈퍼 콘크리트’는 일반 콘크리트 대비 강도는 5배 이상 강하고, 수명은 4배 이상 긴 초고성능 콘크리트를 가리킨다.내구성이 뛰어나 콘크리트와 철근 사용량이 30% 이상 절감되고 수명이 길어 추후 보수공사 필요성도 적다. 결과적으로 일반 콘크리트에 비해 탄소 배출이 30%가량 줄어든다. 기후위기 시대에 각광받을 첨단 건축자재다. 슈퍼 콘크리트의 핵심은 ‘공극률’을 낮추는 데 있다. 이 비율이 낮을수록 콘크리트가 버틸 수 있는 무게가 늘어난다. 슈퍼 콘크리트의 공극률은 일반 콘크리트 대비 5배 이상 줄어든 2% 이하다. 공극률이 낮아지면 수명도 늘어난다. 물, 염소이온, 이산화탄소 등이 침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 콘크리트의 수명은 채 50년을 넘기 어렵지만 슈퍼 콘크리트는 수명이 200년 이상이다. 최근 국내에서 개발된 슈퍼 콘크리트의 원천기술은 마이크로·나노 재료를 융·복합해 압축강도 80~180MPa, 인장강도인 19MPa, 내구수명 200년 이상에다 기존 동급의 콘크리트 대비 제조비용을 50% 이상 절감해 화제다. 이 기술은 이미 세계 건설 현장에서 쓰이고 있다.‘2018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받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PLACE1의 독특한 외벽 패널이 슈퍼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울릉도 ‘힐링스테이 코스모스 리조트’(2017년)의 우아한 조개껍데기 구조도 슈퍼 콘크리트가 아니면 구현이 불가능했단다. 세계 최초 압축강도 180Mpa 초고성능 콘크리트 사장교인 춘천대교(2017년)와 교각과 교각 사이 길이가 540m로 세계에서 가장 긴 콘크리트 사장교인 ‘고덕대교’(2022년 완공예정)에도 이 기술이 적용됐다. 첨단 건축자재가 아름다운 건축물로 변모되는 과정은 드라마틱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0-20

특권에는 특별한 까닭이 있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국회의원은 특권을 가진다.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 그는 현행범이 아닌 이상 회기 중 국회의 동의없이는 체포되거나 구금되지 않는다. 국회에서 직무상 발언하고 표결한 바에 대해 민사상, 형사상 및 행정상 그 어떤 법적 책임을 지지않는다.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표하여 국정을 살피고 입법함에 있어 외부의 압력이나 위협을 받지않고 소신껏 발언하고 행동하도록 보장한다. 그의 행위와 발언이 진정과 진실을 담고있을 것이라는 국민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발언의 내용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거나 행위의 기저에 불법이나 비리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국민은 그들을 믿거라 하면서 국회로 보낸 셈이다.신뢰가 무너지면 기초부터 흔들린다. 발언이 명백한 허위사실을 담고 있었다면, 그 발언에 기초한 내용과 논지를 국민이 수용할 방법이 없다. 거짓말을 믿어줄 국민이 어디 있는가. 어쩌다 이처럼 딱한 일이 벌어졌을까. 국민은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분명하게 확인하지 않고 발설한 의원에게 명백한 책임이 있다. 국민이 특별한 권리를 제공할 때에 의원은 특별한 책임을 기울여야 한다. 국민을 대표하고 국익을 우선하여야 할 자리에서, 정당만 대표하며 당략에만 몰입한 나머지 벌인 패착이 아닌가. 국민은 진실을 원할 뿐이다. 허위와 과장을 담은 발언과 주장에 넘어갈 국민은 없다. 거짓이 드러나면 지지하던 국민들도 생각을 달리하지 싶다. 의원 본인은 물론 소속정당도 부정적인 국민여론에 시달리지 않겠나.권리는 소중하다. 특별하게 부여받은 권리일수록 특별하게 다루어야 한다. 특권을 함부로 여기면 국민저항을 만난다. 해당발언을 접한 국정조사장에서 당장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한 사람 의원이 저지른 뼈아픈 실수가 국회가 소신있고 책임바르게 국정을 수행할 소중할 권리를 손상하고 박탈당할 위기로 몰아갈 수도 있다. 국회의 위상을 무너뜨리고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릴 위기국면이 아닌가. 세상이 변하여, 같은 편이라면 무조건적인 신뢰를 가지고 거짓과 왜곡도 믿어삼키던 시절이 더는 아니다. 내 편일수록 철저하고 세심하게 살펴 확인한 정보를 기반으로 발언하고 행동해야 한다.국민은 어찌해야 하는가. 나를 대표하라고 보낸 국회의원의 행위에 거짓이나 기만이 없는지 부단히 경계해야 한다. 팩트와 진실이 넘쳐야 할 자리에 허위와 날조가 들어서면, 나라와 민생은 갈 길을 잃는다. 국민은 국회가 있어 편안해야 한다. 국민에게 걱정을 끼치는 국회는 상상에도 없다. 오로지 진실에 기초하여 나라와 국민을 섬겨야 한다. 발표와 토론에 동원하는 자료는 모두 사실에만 근거해야 한다. 사실확인을 토대로 나누고 알려야 한다는 원칙은 국회뿐 아니라 언론에도 마찬가지다. 팩트에 힘이 있다. 거짓에 의지하면 무너질 뿐이다. 확인없이는 팩트가 죽는다. 진실이 흔들리니 특권이 도전받지 않는가. 진실이 드러나야 나라가 산다. 팩트가 확인되어야 국민이 편하다.

2021-10-20

경북도 해외시장 개척, 코로나 극복 희망점 되길

경북도가 오는 11월 27일 6박8일 일정으로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선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20여명의 대표단은 네덜란드와 터키 등을 방문하고 현지 단체장 접견과 투자 유치를 위한 각종 업무협약 등을 체결할 예정이다. 경북도의 이번 해외시장 투자유치 및 개척 활동은 2년 가까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코로나19 대유행 속에 처음 이뤄진다는 점에서 기대와 의미가 크다. 특히 오는 11월 시작되는 위드 코로나에 발맞춰 벌이게 되는 경북도의 해외시장 투자유치 활동은 업계 지원을 위한 시의적절한 대응으로 평가된다.경북도는 이번 해외투자 유치 활동에 이어 내년 1월에는 미국에서 열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2)도 참석한다. CES와 연계한 투자유치와 통상확대, 지역농산물 판매 등을 위한 해외시장 개척도 함께 벌이게 된다고 한다.경북도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로 2년 가까이 해외 교류와 투자유치, 통상확대에 나서지 못했다”며 위드 코로나시대 개막을 계기로 적극적인 해외투자 유치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적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는 코로나 대유행으로 그동안 문을 닫고 있던 해외시장도 백신접종 확대 등을 통해 이제 조금씩 문호를 개방하는 추세에 있다.코로나 사태로 침체에 빠졌던 국내시장 경기를 일깨우고 수출업계에게는 해외시장 진출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어줄 경북도의 해외투자 유치 활동에 많은 기대가 모아지는 것은 당연하다.현재 경북도의 수출실적도 코로나 대유행에도 불구, 비교적 양호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이번 해외투자 유치 활동으로 올해 경북도가 계획한 400억 달러의 수출실적이 무난히 달성하길 기대한다.2년 동안 움츠렸던 해외시장 활동이 이제는 기지개를 켜고 있다. 괌과 사이판 등 해외 항공 길이 열리고 해외교류 분위기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경북도의 이번 해외시장 개척은 이런 점에서 선점적 의미를 넘어 업계에게 큰 자극제가 될 수 있어 긍정적이다.경북도는 위드 코로나에 맞춰 나서는 해외시장 투자유치가 더 큰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코로나 이후 달라진 국제환경을 잘 살펴보고 지역업계에게 도움이 될 정보 등을 잘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본격적인 위드 코로나 시대에 대응할 경북도의 해외투자 전략에 기대를 걸어본다.

2021-10-20

오늘부터 스쿨존에 잠시 정차해도 단속된다

도로교통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21일부터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안 모든 도로의 차량 주정차가 금지된다. 통학거리가 멀어 부득이 차량을 이용해서 등하교해야 하는 어린이를 위해서는 ‘통학차량 안심승하차 존’이 운영된다. 학교 정문이나 후문 근처에 파란색 안내 표지판이 설치된 곳에서만 정차가 가능하며 5분을 넘지 않아야 한다. 스쿨존이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 2개의 도로가 만나는 교차지점 등에는 ‘어린이보호구역 표지판’이 설치돼있다. 경찰이 집중 단속을 진행하는 오전 8시~오후 8시에 스쿨존 안에서 주정차했다가 적발되면 일반도로의 3배인 12만 원(승용차 기준)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이 스쿨존 현장 상황을 충분히 모니터링하며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했지만, 당분간 주변 주민들의 불편이 클 것으로 보인다. 단속 강화로 대로변 차량소통은 원활해지겠지만, 이면도로는 주정차 차량으로 인해 혼잡해질 게 뻔하다. 스쿨존 주변 주택 밀집지역의 비좁은 골목길은 등하교 시간 차량이 얽혀 통행마저 불가능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주차난으로 인해 차량 소유자와 주민 간의 다툼도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스쿨존 구역 상가에서도 불만이 쏟아질 수 있다. 잠깐이라도 차량이 정차할 수 없으니까 손님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쿨존 교통안전은 어린이 보호를 위한 조치이니만큼, 불편이 있더라도 국민이 적극 동참해야 한다.최근 한국소비자원이 초등학교, 어린이집까지 가는 통학로에 있는 어린이보호구역 29개 지점을 조사한 결과, 이 중 20개 지점에 무인 교통단속카메라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 대상은 전국의 사망 사고가 발생한 지점 16곳과 초등학교 정문 등 어린이보호구역 내 주요 시설 주출입구 13곳이다. 교통단속카메라는 규정 속도위반 차량을 적발할 수도 있지만 운전자가 안전운전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스쿨존 안전을 위해 당국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조치는 교통단속카메라를 확대 설치하는 일인 것 같다. 운전자들은 주변에 초등학교나 유치원 등이 있다면 단속카메라에 관계없이 과속주행은 삼가고, 도로에 설치된 어린이보호구역 안내표지를 살피며 주정차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2021-10-20

‘특별함’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얼마 전, 2년 반을 사귀다 마침내 늦깎이 결혼을 한다며 준비가 한창이던 지인 하나가 갑자기 무슨 수가 틀렸는지 안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알고 본즉, 결혼할 사람이라고 또 사랑하니까 많이 퍼주고 하다가 결국 덩그러니 밑둥치 하나만 남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신세가 돼버린 것이었다. 소설 속 나무는, 그래도 노년이 돼 돌아온 소년과 짧은 시간이라도 보냈지만, 현실 속 나무들은 만신창이가 된 자신과 마주해야 하니 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그런데 왜 사람들은 잘해 주는 상대를 그리 헌신짝 대하듯 할까?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상대의 ‘베풂’을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거나 예전만큼 베풀지 않으면 도리어 서운해하거나 화를 내고 심지어 상대를 무시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애초부터 인성이 시쳇말로 ‘글러 먹어서’ 그렇다면 할 말 없지만, 평범한 이들조차 사실 그런 경우도 많은 것은 왜일까? 그것은 바로 상대에 대한 존중과 존경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 대한 존중/존경은, 타자와는 다른 그 사람만의 특별한 가치를 발견할 때 자연스레 생겨나는 법이다.옛말에, ‘夫婦有別’이라는 말이 있다. 이때 ‘別’은, 조선조 대학자인 한원진과 정약용이 “각자 제 남편/아내를 두고서 난잡하지 않은 것”이라 해석한 데서 보듯, 성 윤리에 대한 단서다. 즉, 남자 또는 여자로서의 성 역할에 대한 ‘구별’보다는, 상대방을 ‘각별/특별’히 인식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선조들은 내 짝에 대한 특별한 감정은 타인에 대한 마음과 같을 수 없다고 보아, 다른 아낙/남정네들과의 情事를 극도로 꺼렸으며, 설사 그러한 일이 발생하면 윤리에 어긋난다고 보아 크게 지탄하기도 했던 것이다.그런데 상대에 대한 이 ‘특별함’은, 발견하는 사람의 안목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갖추기 위한 사람의 노력 또한 중요하다. 조선조 학자 유희춘의 아내 송덕봉이, 서너 달 다른 부임지에서 기생을 멀리함을 자랑한 남편의 편지에, ‘이를 두고 고결하다며 덕을 베푼 생색을 낸다면 당신도 분명 담담하여 사심없는 사람은 아닐 터. 마음이 깨끗해 밖으로 유혹을 끊고 안으로 삿된 생각이 없다면 어찌 꼭 편지를 보내 공치사를 한 뒤에야 남들이 알아주겠습니까?’라며 일침을 가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신이 나를 아내로서 ‘특별히’ 여긴다면, 기생을 안 만남이 당연한데, 뭐 그리 자랑삼느냐는 명확한 태도에서 여성으로서의 기품과 범접할 수 없는 품위가 확연히 드러난다. 이처럼 ‘특별함’은 바로 스스로가 스스로의 바운더리를 명확히 하고 그 가치를 지키는 데서 빛나는 법이다. 오래 전 사석에서, 모 사업가가 애인 없어 속상하다는 푸념을 하자, 다들 ‘요즘 시대에 애인 없으면 바보’라며 놀린 일이 있었다. 웃자고 한 말이었지만, 배우자에 대한 특별함을 망각한 시대의 한 단면이라 웃프지 않을 수 없었다. 바야흐로 10월, 몸도 마음도 풍성한 이 멋진 계절 가을엔, 그동안 소홀히 해 왔던 내 짝에 대한 ‘특별함’을 한번 발견해 보면 어떨까? 또 나만의 ‘특별함’을 가꾸는 노력도 한번 해 보면 어떨까?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인간관계의 참맛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2021-10-20

메타버스와 디지털 격차

김규종 경북대 교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용과 주근깨 공주’를 보고 느끼는 점이 많았다. 모든 연령대가 함께 볼 수 있는 만화영화지만, 어른들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시간에 영화관에 들어온 아이는 한 명이었다. 아이는 영화가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교차함에 따라 몰입도에 차이를 보였다. 가상세계에 완전히 몰두하되, 현실세계에는 시큰둥했다.호소다 마모루의 2009년 만화영화 ‘썸머 워즈’를 보고 아주 놀란 적이 있다. OZ라는 가상세계를 일본 농촌의 대가족과 연결하는 내공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저런 상상력을 가진 감독이 여전히 일본에 있구나, 하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진 것이다. 12년이 지난 2021년에 그가 보여주는 가상세계는 훨씬 진화한 공간으로 다가온다.감독은 ‘메타버스’를 영화의 전면에 배치한다. 어린 시절 엄마를 잃은 상처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으면서 세상과 단절한 여고생 스즈. 제한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좋아하는 노래도 못하던 스즈. 그런데 메타버스의 가상공간 U에 접속하자마자 스즈는 놀라운 가창력을 가진 아바타로 재탄생한다.인터넷 가상공간에서 ‘벨’이란 아이디로 새롭게 탄생하여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스즈. 가상공간 U의 가입자는 50억! 순식간에 1∼2억의 가입자를 매료시키는 벨. 여기서 스즈와 벨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일본의 평범한 고교생 스즈와 가상공간을 매혹하는 새로운 스타 벨의 정체성이 뒤섞여진다는 얘기다.가상공간에서 만나는 용의 상처와 고통을 동정하는 스즈는 실제 현실에서 그를 찾아내려 한다. 스즈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현실의 ‘케이’를 만나고, 그를 보호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가상공간과 현실세계의 조화롭고 경이로운 만남이다. 아바타의 세계를 현실로 인도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인간다움의 영역을 확장하는 호소다 마모루!만화영화가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깊은 한숨이 나온다. ‘썸머 워즈’에서 가상공간과 실제 현실은 따로 존재하는 개별적인 공간이다. 그런데 이번에 ‘용과 주근깨 공주에서 두 공간은 개별적으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서로 이어져 있다는 차별성을 보여준다. 가상공간의 경이로운 진화가 이루어진 셈이다.‘메타버스’는 단순한 3차원 가상공간이 아니라, 가상공간과 현실이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공간이며, 현실과 가상세계의 교차점이 삼차원 기술로 구현된 세계라는 말이 실감 나는 영화가 ‘용과 주근깨 공주’다. 저런 세계가 바로 옆에서 펼쳐지고 있건만, 한국의 노인들은 그저 그런 드라마와 빤한 노래자랑에 열광하며 세월을 보낸다.공공장소에서 울려 퍼지는 전화기도 끌 줄 모르는 노인들. 그들이 조만간 경험하게 될 디지털 격차가 두렵다. 메타버스가 일상화하는 시점이 온다면, 세대 간의 상호이해와 소통이 얼마나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더 늦기 전에 노인 세대를 위한 디지털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1-10-19

코로나19, 풍속을 바꾸다

박창원​​​​​​​수필가 우리가 만들어가는 물질문화는 빠르게 변한다. 걸어 다니다가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2,3년마다 휴대폰을 바꾸고 하는 것은 물질문화의 변화다. 전 세계인이 이 변화의 물결 속에 별 거부감 없이 동참한다. 그러나 풍속, 종교, 의식주 같은 정신문화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법으로도 바꾸기 어렵다. 억지로 변화시키려 하면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긴다.우리 사회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대다수 사람들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변하지 않은 게 있다. 혼례, 장례, 제례 같은 생활풍속이다. 절차가 복잡하고 허례허식적 요소가 많아 누구나 공감하는 문제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지켜 온 미풍양속이라는 수식어를 등에 업고 누구도 어찌하지 못하는 문화로 존속해 왔다.내 집안의 경우 명절 때마다 고향 어머니 댁에 대가족이 모여 음식을 만들고,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해 오다가 지난 추석에 대구의 맏형 댁에서 형님 가족만 모인 가운데 차례를 지냈다. 나는 참석하지 못했다. 지난 해 추석, 올 설에 이은 세 번째다.그렇게 공고하던 우리의 생활풍속이 최근에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조사의 경우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 직접 가지 않고 온라인으로 축하를 하거나 문상을 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혼례에 관한 한 우리는 비슷한 기억을 갖고 있다. 모처럼 맞은 주말에 지인 자녀의 혼례식이 있어 예식장에 간다. 어렵게 주차를 하고 식장으로 올라간다. 줄을 서서 혼주에게 눈도장을 찍고, 축의금을 식권과 바꾼 다음 여러 손님이 뒤섞인 뷔페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온다.장례는 또 어떤가? 누가 상을 당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는다. 퇴근하자마자 곧장 장례식장으로 달려간다. 수십 개의 조화가 줄지어 있는 복도를 지나 빈소에 도착하면 이미 많은 문상객이 와 있다. 빈소에서 고인에게 예를 표하고 상주에게 몇 마디 위로를 건네고 부의금을 건넨 다음, 접객실로 이동하여 지인들과 인사를 하고, 국밥 한 그릇을 먹으며 1시간 남짓 시간을 보낸 뒤 집으로 돌아온다.이처럼 우리는 친지, 동료, 사회적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경조사를 챙기는 데 많은 시간과 경비를 들인다. 한국인들의 독특한 생활풍속이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만만찮다. 정부에서 1969년 1월에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바꿔 보려했지만 실패했던 이 풍속이 지금 변하고 있다. 청첩이나 부고를 할 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축하나 조문을 제한한다고 하고, ‘마음 전할 곳’이라는 난에다 혼주나 상주의 계좌번호를 적어두는 추세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주 가까운 친척이나 친한 사람 아니면 축의금을 계좌로 보내게 되는 것이다.이 변화를 이끄는 주체는 정부도, 시민단체도 아닌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2년이 되어간다. 이 현상으로 인한 팬데믹이 종료되더라도 제례나 경조사는 우리 의도와 상관없이 소가족 단위로 축소되고 절차도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수정될 것이다. 코로나 이전(B.C, Before Corona)’과 ‘코로나 이후(A.C, After Corona)’라는 시대 구분은 이처럼 우리의 생활풍속에서도 예외가 없어 보인다.

2021-10-19

사색의 계절

언제부턴가 한국인이 선호하는 계절이 가을에서 봄으로 바뀌었다.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국민을 상대로 선호 계절을 조사해 보았더니 2014년 조사에서는 가을이 1위로 선택됐다. 그러나 5년 후 같은 내용으로 다시 조사를 했더니 이번에는 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조사기관은 이유는 명확지 않으나 벚꽃 열풍과 많아진 봄철 축제와 무관치 않을 거라 풀이했다.그러나 성별 조사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갈라졌다. 남성은 가을(40%), 여성은 봄(45%)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봄과 가을은 기온이 비슷한 계절이지만 느낌은 다르다. 채근담에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과 같이 부드럽게 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하라는 말이 있다. 춘풍추상(春風秋霜)이 바로 그것이다. 봄은 따뜻한 바람에, 가을은 찬 서리로 비유한 것이다.어느 작가는 봄을 상쾌한 아침에 비유했고, 가을은 차분한 저녁으로 표현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가을은 영혼의 계절”이라 불렀고, 헤르만 헤세는 가을은 “더 높은 삶으로 들어가는 계절”이라 말했다. 서정주 시인은 ‘국화옆에서’라는 자신의 시에서 서리 속에 홀로 피는 가을 국화를 강인한 생명력으로 표현했다.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 가을은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신비로운 자연의 섭리를 다시 생각나게 하는 계절이라는 것이다.독서의 계절, 그리움의 계절, 사색의 계절, 낭만의 계절이라 불리는 것 등은 나름 가을의 특징을 잘 드러낸 말이다. 누구나 시인이 되고 싶은 계절이 돌아왔다. 시끄러운 세상일 뒤로하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깊은 생각에 잠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0-19

옛 노래의 추억과 한류의 빛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1920년 6월에 창간된 천도교 청년회의 기관지인 ‘개벽’ 1922년 1월호에 실린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의 전문이다. 단 4연으로 된 짧은 이 시는 처음에 작곡가 안성현에 의해 가곡풍의 노래로 만들어졌다. 안성현은 월북하여 북한의 공훈예술가 칭호까지 받았고 2006년 북한에서 세상을 떴다. 안성현의 곡으로 된 ‘엄마야 누나야’는 작곡가의 월북 탓인지 지금은 거의 불려지지 않는다.이 시는 KBS의 초대 악단장이었던 바이올린 연주자 겸 작곡가인 김광수에 의해 다시 노래로 만들어졌다. 지금 불리는 노래는 거의 김광수 작곡의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작곡가의 영향이 컸던지 안성현 곡으로 알고 있는 이들도 꽤 많다. 김광수 작곡의 동요풍 노래인 ‘엄마야 누나야’는 성악가가 부르기도 하고 대중가수가 부르기도 했는데, 나에게는 도쿄국제가요제, 아테네국제가요제, 칠레가요제에서 상을 받은 국제적 가수 정훈희가 부른 대중가요로 기억되고 있다.대중가요의 힘이 큰 때문일까? 서울 한강변의 작은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지금은 한강서 좀 떨어진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는 이따금씩 이 노래가 귓가에 맴돌곤 한다. 아들만 주르륵 넷인 집안의 셋째이기에 누나는커녕 누이동생도 없지만, 어린 시절 한강 백사장에서 모래를 만지며 놀던 기억 속에서 있지도 않은 어여쁜 누이가 늘 함께 하는 것은 이 노래 탓이리라.이른바 ‘글로벌 슈퍼밴드’ 구성을 목표로 한 JTBC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2’가 지난 6월 21일에 시작해 지난 4일에 막을 내렸다. 아들 덕에 보게 된 이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나는 가끔씩 전율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이렇게 노래도 잘하고 연주도 멋들어지게 하는 젊은이들이 많은지. 혼신의 힘을 기울이기도 하고, 제 흥에 푹 빠져 즐겨가면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그 열정은 또 얼마나 대단하던지. 옥석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문외한의 눈과 귀여서 그랬나, 최종 수상자는 말할 것도 없고 초반에 탈락한 지원자들까지 기량이 떨어지는 이들을 찾기 힘들었다.비틀즈의 노래를 즐겨들으며 자란 7080세대의 나는 BTS와 블랙핑크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을 보며 한국 가요, 한류의 힘에 새삼 놀라고 있다. 이들 아이돌그룹은 연예기획사의 치밀한 기획과 투자와 노력이 만들어낸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결과물, 최고의 상품(또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우리나라 가수가 부른 노래의 세계적 열풍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나라 구석구석에서 올라온 슈퍼밴드 출연자들의 면면에서 나는 그 열풍의 단초와 빛줄기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 겨레의 몸과 혼 속에 스며있는 음주가무의 전통이 한류의 빛의 시발점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그나저나 부동산업계에선 김소월을 두고 한강변 아파트의 폭등을 예견한 시인이라는 농담이 떠돈다는데, 젊은 시절에 대중가요만 듣고 있지 말고 일찌감치 한강변에 자그마한 아파트 하나를 마련했어야 하나?

2021-10-19

포항지진 이재민, 4년만에 텐트생활 접었다

포항시는 어제(19일) 오전 흥해 실내체육관에서 그동안 체육관에서 생활해 오던 지진피해 이재민들이 텐트 생활을 끝마치고 체육관을 떠나는 기념행사를 가졌다. 지난 2017년 11월 15일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서 발생한 규모 5.4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체육관에 마련된 임시 구호시설에 머물러왔던 이재민들이 이날 4년여 만에 임시대피소 생활을 마무리 지은 뜻 깊은 행사였다. 이재민들이 삶의 터전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은 최근 국무총리실 소속 포항 지진피해구제심의위원회가 제19차 회의를 열고, 한미장관맨션과 대신동 시민아파트에 대해 ‘수리 불가’ 판정을 내리면서 실질적인 피해보상을 받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흥해 실내체육관에는 지진 발생 직후 흥해읍 주민 수천명이 대피했었지만, 어제까지 거주해온 주민들은 20가구 정도 된다. 여진이 잦아들자 주민 대부분이 집으로 돌아갔고, 흥해읍 대성아파트를 비롯해 지진으로 전파(全破) 판정을 주민들은 LH와 부영 등이 제공한 임대주택으로 떠났다. 4년 동안 체육관에서 텐트생활을 해오던 이재민들은 모두 한미장관맨션 입주민들이다. 한미장관맨션은 지진으로 벽이 갈라지거나 천장에서 물이 새는 등 피해가 났지만, 전파 판정이 아닌 소파(小破) 판정을 받았었다. 전파 판정이 나야 임대주택 거주 자격을 얻는데, 포항시가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정밀안전진단을 거쳐 ‘약간 수리가 필요한 정도’인 C등급을 매기면서 이주 대상에서 제외됐다. 당시 한미장관맨션 입주민들은 ‘아파트 내부에 한 번이라도 직접 들어가 봤다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며 포항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지만 패소했었다. 이재민들은 피난생활을 오랫동안 했지만 지금이라도 올바른 판단이 이뤄져 다행이라는 입장이다.수리불가 판정을 받은 한미장관맨션은 곧 재건축이 추진될 예정이다. 체육관을 떠나는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은 기존 아파트를 철거한 후 재건축할 때까지 지진특별법 지원금으로 인근에 주거지를 마련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온갖 트라우마를 겪으며 고통에 시달렸을 이재민들이 안전한 주거지를 마련해 새출발하길 바란다.

2021-10-19

인구감소지역 고시 정도론 지방소멸 못 막아

행정안전부가 경북도내 16개 시군 등 전국의 89개 시군구를 인구감소 지역으로 지정 고시했다. 이번에 지정된 지역에 대해서는 내년에 신설되는 1조원 규모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원하고 행·재정적 뒷받침도 하겠다고 한다. 지방소멸 문제와 관련해 중앙정부가 대응체계를 본격화한다는 점에서 이번 지정 고시의 의미를 둘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인구소멸 문제에 대해 지자체와 정부가 수십조원의 예산과 각종 정책을 쏟아부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는 점에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수도권으로의 인구집중과 지방의 인구 감소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대책을 논의하고 예산을 투입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지방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혁명적 조치 없이는 실효적 성과가 없다는 것도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안다.행안부가 매년 1조원 규모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원하고 제도적으로 지원에 나선다고 하지만 지방에서 인구증진 효과가 나오긴 어렵다는 뜻이다. 행안부는 이를 계기로 지역이 활력을 찾는 전환점이 되길 희망하나 이번 조치는 언 발에 오줌누는 격에 불과하다.행안부 자료에 의하면 경북은 전남과 함께 16개 시군이 인구감소 지역으로 지정고시 됐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감소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1981년 319만명의 경북 인구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264만명으로 줄었다. 지난 한해동안만 2만6천명의 인구가 감소했다.국토 면적의 11%인 수도권에 인구 절반 이상이 모여 사는 비정상적 수도권 일극체제를 파괴하지 않는 한 지방의 인구감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가 인구감소 지역을 지정 고시하고 1조원의 예산을 통해 각종 인구활력 증진사업을 추진한다고 수도권으로 넘어간 젊은이가 지방으로 되돌아 오진 않는다. 국토균형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혁명적인 정부 조치가 필요하다. 수도권 공장총량제나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만해도 정부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말로는 국토균형발전을 외쳤지만 내용은 알맹이가 없다. 행정이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지방으로 권한을 분산할 의지가 조금도 보이지 않은 것이다. 이번 정부 조치가 지방소멸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지역민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방을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획기적 해법을 내놓아야 지방도 수긍할 수 있다.

2021-10-19

공정과 평등이라는 게임의 룰

80년대 후반에 태어난 나는 꽤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넉넉한 환경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여러 문화들을 어떠한 제한 없이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용 컴퓨터가 급속히 보급되기 시작하고 고속 인터넷이 보편화된 덕분에 우리 세대는 일찍이 경험할 수 없었던 문화들을 아주 손쉽게 향유할 수 있었다. 만화, 영화, 음악, 판타지 소설 등 다양한 문화들이 인터넷 공간을 통해 공유되기 시작했는데, 그 가운데 나의 10대를 사로잡은 것은 게임이었다. 삼국지, 영웅전설, 랑그릿사, 울티마 등 지금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게임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화려한 그래픽과 비장한 스토리에 사로잡힌 우리는 꼼짝없이 밤을 새어가며 전국의 통일과 세계의 안위를 위해 싸우는 주인공이 되어갔다.내가 게임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건 사실 이유가 있다. 1등을 강요하지만 어떻게 1등을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고, 나의 노력보다 늘 더 노력하는 누군가로 인해 경쟁 속에서 뒤처지기만 했던 현실과 달리 게임의 세계는 공정과 평등을 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노력을 통해 우리는 얼마든 강해질 수 있으며, 노력은 결과와 늘 일정하게 비례했다. 다른 것 필요 없이 단지 컴퓨터만 있으면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는 이 세계를 현실보다 사랑했던 건 당연한 결론일지도 모른다.그런 의미에서 게임의 세계는 현실보다 공정했다. 노력을 하고, 그 노력에 따라 공평한 결과를 분배받을 수 있는 세계. 모든 기회가 평등하게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는 세계. 물론 ‘리니지’와 같은 MMORPG 게임에서는 빈부의 격차와 힘의 논리에 따라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또한 게임의 룰에 따라 얼마든, 언제든, 누구든 뒤집을 수 있었다. 필요한 건 게임의 구조에 대한 이해와 그에 따른 노력 두 가지 뿐이었다. 우리가 그 세계 속에서 노력을 할 수 있었던 건 이와 같은 게임의 룰이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이 또한 이젠 옛날의 얘기에 불과하다. 게임의 룰은 더 이상 모든 유저에게 공평하고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현실의 자본력이 게임 속 판도를 결정하는 가운데, 게이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남들보다 많은 지식이나 노력이 아니라 게임 밖 현실에서의 재력이다. P2W(Pay to Win)이 기본 법칙이 된 게임 속에서 플레이를 통해 강해지는 것보다 같은 시간 돈을 벌어 그 돈을 게임에 쏟아 강해지는 것이 더 효율적이게 된다면, 과연 이것은 무엇을 위한 게임일까? 이와 같은 구조는 게임의 룰이 왜곡되고 변형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게임의 룰은 모든 유저에게 공정하고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게임의 룰 또한 유저의 자본력에 의해 그 적용이 얼마든 달라진다.90년대와 2000년대의 게임사가 유저 친화적 입장에서 게임을 디자인하고, 유저를 하나의 새로운 세계에 정착시키고 그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던 것과 달리, 이제 게임사는 유저들에게 더욱 경쟁을 부추기며 그러한 경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으로 과금을 강요한다. 그 과정에서 게임의 룰은 더 많은 재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정되며, 이와 같은 과정은 유저들을 지치게 만든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가뜩이나 수저 계급론이 팽배해진 현실 속에서 게임 속 세계마저 현실과 유사하게 돌아가도록 구성된다면, 이를 환영할 게이머는 과연 몇이나 될까? 최근 나타난 NC소프트의 부진은 이와 같은 게임사의 태도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게이머들이 예전과 같은 게임의 룰을, 공정과 평등이라는 기본적 원칙이 지켜지는 세계를 원한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게임의 룰이 공정하고 평등할 때, 그리고 이것이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믿을 수 있을 때 게임 속 세계는 나름의 합리성을 통해 지속된다. 그와 같은 게임의 룰이 깨질 때, 유저들은 게임을 떠나버리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고전 게임의 향수에 빠지거나 클래식 버전의 게임에 몰입하는 건 단순한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공정과 평등이라는 게임의 룰이 지켜지는 세계를 원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게임이 현실을 닮아가는 것이 유독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우리에게 도피할 곳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는 선언과 같기 때문인 것일까. 그렇다면 이 글이 게임에 대해 말하고 있음에도 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다.

2021-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