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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퍼스의 노예들 <Ⅳ>

등록일 2022-06-06 18:03 게재일 2022-06-0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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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이건욱

노마는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소리 지르지 마. 창피하게.

안나가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노마에게 작게 말하라 시늉을 했다. 노마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말 말고 제대로 말해봐. 너는 뭐라고 대답했는데?

-그 사람이 나한테 직접 말한 것은 아니고 그 사람이 그 사람 아들에게 그렇게 약속했대. 그 사람 아들이 내게 이야기해줬어.

-뭐라고? 그러면 회장 아들이 협박을 한 거야? 이거, 이거 딱 그림이 그려지네.

안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그런 게 아니고, 알고 있어라 내게 귀띔을 해 준거야. 알아서 살 궁리를 하라 말해준다는 느낌이었어. 갑자기 당하고 나서 놀라지 말라는 그런 뉘앙스. 그리고 그 사람 아들 그 사람과 안 친해. 부자지간인데 잘 보면 무슨 원수 같아.

-안 친하기는 뭘 안 친해.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부자지간이지. 가족끼리 싸우다가도 제삼자 앞에서는 달라지는 게 사람이야. 네가 아직 순진해서 잘 모르는 거야. 이것들이 교묘하게 말이야.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순진한 사람을 가지고 놀려고 하네. 그 자식이 뭣 하러 널 위해 그런 것을 말해주겠냐? 혹시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시끄럽게 하지 말라. 그거잖아.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거지. 이런 나쁜 놈. 너, 그 자식 전화번호 알지? 전화번호 내게 보내. 내가 한 번 만나야겠어.

안나는 그 자식이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 다시 물었고 노마는 인조인간 말고 인조인간의 아들을 말한 것이라 대답했다.

-만나서 뭐라 할 건데?

-걱정하지 마. 무턱대고 싸우지는 않을 테니까. 정확한 뜻과 의도를 확인해야지. 그 쪽에서 뭘 줄 수 있는지 확인도 하고 다짐도 받아야지. 지금까지는 그냥 있었는데 안 되겠어.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야겠어. 넌 모른 척하고 가만있어. 전화번호나 보내.

노마는 자신을 바라보는 안나의 눈길, 여동생이 보내는 신뢰와 감사의 눈빛에 마음이 약간 누그러졌다. 화제를 돌렸다.

-참, 인조인간 수술이 언제라고 했지? 벌써 병원도 다 정하고 그랬나?

-아직 날을 정하지는 않았어. 출시 예정인 신제품이 있는데 그걸 기다리고 있대. 왜? 꽃이라도 보내시게?

-꽃 같은 소리 하기는. 위험한 수술은 아닌 거지?

-갑자기 걱정을 해주고 그래? 인조인간 어쩌고 하더니.

-어찌 되었던 조카의 아버지가 될 사람이니 건강해야 하잖아. 의료사고 같은 것 생겨서도 안 되고. 혹시 너, 우현이 기억나? 내 친구. 우리 집에도 제법 놀러 왔었잖아. 같이 영화도 보러 가고 그랬는데.

-기억하지. 그런데 왜?

-그 녀석이 인공 장기 관련 사업을 하거든. 인조인간이 수술을 받는다기에 그 녀석 생각이 잠깐 났어. 그 녀석을 도와줄까 하고. 안 되겠지? 인조인간은 정품으로 들어온 최고급만 쓰겠지?

-우현 오빠한테 내 이야기 한 거야? 오빠가 말한 거야? 여동생이 마이걸이 되었다고. 미쳤어?

안나가 발끈했다. 노마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아니야. 설마 내가. 그냥 한 번 해본 생각이야. 정말이야. 그 녀석은 아무것도 몰라.

-절대로 말하면 안 돼. 그런 일 생기면 오빠하고 나 사이는 끝이야. 그리고 아무튼. 돈이 문제가 아니야. 이번에 이식받으려는 것은 인공 폐인데 신제품이야. 중고가 없어.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도 없고. 그리고 오빠는, 오빠 조카의 아빠가 되는 사람 수술인데 중고를 권하려 했단 말이야?

안나는 자신이 마이걸이 된 것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노마를 다그쳤고 노마는 이전에도, 앞으로도 그런 일 없을 것이라 다짐했다. 노마는 문득 궁금했다.

-안나, 너 우현이 중고를 취급한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나는 중고라고 말한 적 없는데.

안나는 예전에 노마가 이야기해준 적 있다며 벌써 깜빡깜빡하는 것이냐 놀렸다.

 

그날 노마가 맡은 곳은 스무 군데였다. 점심시간을 포기하고 안나를 만났었다. 오전에 일곱 집을 돌았으니 오후에 열세 곳을 방문해야 했다. 오후 첫 방문 수리는 카페 근처의 아파트였다. 현관 벨을 누르고 한참을 기다렸다. 노인의 발걸음이다. 모니터로 노마를 확인하고 현관까지 걸어오는데 제법 시간이 걸린다. 방 안에 있었다면 더할 것이다. 노마는 기다리는데 익숙했다. 문이 열렸고 노마가 현관으로 들어섰다. 현관 입구에 서 있던 노인이 노마를 아래위로 살폈다.

-기사 양반 기다리느라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노마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았다. 약속한 시간보다 십오 분 정도 빠른 방문이었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일단 로봇부터 보겠습니다.

노인은 노마를 가정용 로봇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로봇은 거실 한쪽에 세워져 있었다. 최근 출시된 신제품이었다.

-바꾸신 지 얼마 안 되었군요.

노인은 그걸 어떻게 아느냐 감탄을 했다.

-제 일인데요. 어르신이 접수하실 때 말씀주시기도 했고요. 신제품은 원래 고장이 잦습니다. 다음부터는 신제품이 출시된 후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교체하십시오. 그래야 생산과정이나 개발과정에서 놓친, 뒤늦게 발견된 오류 같은 것들이 교정된 제품을 쓰실 수 있을 겁니다.

노마가 로봇을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로봇의 골격이나 외관에는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어르신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하셨지요? /김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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